구성된 침묵: 학생회 활동을 통해 바라본 대학원생 정책

조승희, 신유정, 신희선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seungkey@kaist.ac.kr, ssinyou@gmail.com, rebecca20@kaist.ac.kr


Prologue

이번 호에 소개될 인물은 “한국 과학기술인재의 요람”이라고 불리는 카이스트(KAIST)에 재학 중인 조승희이다. 카이스트는 대전광역시 유성구 대학로에 위치한 “특수 대학교”로 한국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국가의 주도 하에 설립된 학교이다. 1975년 첫 졸업생을 배출한 이래 현재까지 1만 여명의 이공계 박사생들을 배출하였으며 (2015년 기준), 소위 다양한 “과학한국의 역군들”을 배출해내었다. 조승희는 학부시절 카이스트에서 화학을 공부하였지만, 현재는 과학기술정책학을 공부하고 있다. 과학기술정책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과학한국의 역군들”이 탄생하는 공간이 궁금했던 그는, 2014년부터 대학원 총학생회에 입회하여 현재는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가 본 카이스트란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그는 한 마디로 카이스트는 “침묵의 공간”이라고 말한다. “침묵의 공간”이란 무슨 뜻일까? 그는 왜 카이스트를 “침묵의 공간”이라고 말하는 것일까? 하지만 카이스트를 “침묵의 공간”이라고 말한 사람은 그 뿐만이 아니었던 듯 하다. 1993년 출판된 “과학원 아이들”이라는 책에는 한국과학원(지금의 카이스트)의 아이들은 아래와 같이 묘사되고 있다.

“대부분의 원생들은 자신의 학문 이외의 존재에는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 단지 취미 활동 즉 운동이랄지 그림이랄지 음악처럼 자신의 여가 활용 시간에 관한 것에는 또 열심이었지만, 대중 앞에 선다거나 정확하게 말한다면 자신의 시간을 자신과 직접 관련돼 있지 않은 곳에 투자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1]

20년이 지난 지금 카이스트는 어떤 모습일까? 조승희가 목격한 학생 사회와 학교는 어떤 모습이며 그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우리는 이번 호에서 조승희의 자전적 글을 통해 2016년의 카이스트의 단면을 들여다 보려고 한다. 한국의 카이스트라는 공간은 다양한 과학기술현장 중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이에 더하여 조승희가 보는 카이스트는 그 중에서도 일부를 드러낼 것이지만, 그것을 조명하고 분석하고자 하는 것이 본 지면의 목표이다.

구성된 침묵: 학생회 활동을 통해 바라본 대학원생 정책

대학원생은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고 흔히들 이야기한다. 학생 신분을 유지한 채 노동이라고 할 수 있는 일들을 수행하기 때문에, 학생이기도 하고 노동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늘 인건비나 인권과 관련해서 대학원생과 교수 사이에 갈등이 많이 일어난다.

하지만 대학원생들은 부당하다고 느끼는 일을 당하더라도 대부분 침묵한다. 대학원 총학생회에 2년하고도 반년 더 있으면서 학생들의 침묵을 많이 경험했고, 이러한 정적과 마주할 때만큼 답답할 때도 없었다. 처음에는 학생회에 관심이 없는 학생들을 속으로 많이 원망하기도 했다. “무슨 말을 해줘야 나도 뭔가를 하지!”하고 말이다.

이들은 왜 침묵할까? 당장 생각나는 것을 말해보자면 대학원생은 “졸업”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다. 조금만 참고 졸업만 하면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이다 보니, 쉽게 나서서 이야기하지 못한다. 막연히 누군가가 문제를 해결해줬으면 하고 하루하루 졸업까지 버티는 것이 대학원생들의 현실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대학원생들이 단순히 정의감이 부족해서, 공부만 좋아해서, 또는 무책임해서 침묵하는 것일까? 학생들의 침묵에는 이유가 있고, 이들이 침묵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여러 겹의 요인들이 있다는 것이 나의 관찰이고, 생각이다.

말하지 못하는 학생들

“일단 내 통장으로 돈이 들어오면 그걸 내 월급이라고 생각 못해. 어차피 뺏길거…”

“너네 랩 그럼 아직도 랩비[1] 있는 거잖아? 그거 불법인건 알지?”

“…응.”

“근데 왜 신고 안해?”

“… 잘못된 건 연구실 사람들도 다들 알고 있지만, 그런 거 때문에 진짜 피 본 교수 연구실도 보이니까 함부로 얘기를 못하지.”

– 친구와의 대화 중.

 

이공계 연구실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성질 하나는 그룹으로 일한다는 점이다. 여러 사람이 연구 장비를 함께 쓰고, 연구실에서 함께 실험을 하고 데이터를 만든다. 그룹으로 일하게 되면, 이 연구실이 없어지는 순간 내 연구도 함께 없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연구실의 실질적인 주인(지도 교수)에게 문제가 생기면 내 연구에도 문제가 생기고, 나와 동기들은 졸업에 차질이 생기게 된다. 어느 과의 아무개는 지도교수가 도중에 학교를 관두셔서 박사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더라, 또 다른 과의 어느 교수는 감사 지목당해서 검찰 수사를 받고 자살을 했다더라 하는 등, 무시무시한 이야기 속 주인공이 되지 않기 위해 애쓴다. 연구실 문제를 고발한다는 것은 곧 내부 고발자가 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에, 말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반강제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외부에서 봤을 때, 학생들은 절대 “강제적으로” 무언가를 당하거나, “강제적으로” 뭔가를 하지 못하도록 막히지 않는다. 늘 밖으로 들려오는 말은 “자발적으로”이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랩비를 조성해서, 모두가 평등하게 월급 받고 산다고 한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토요일 랩 미팅에 나온다고 한다. 신입생들이 “자발적으로” 학과 장기자랑에서 옷을 벗고 춤을 췄다고 한다.[2] 심지어 학과의 발전을 위해 몇몇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수백, 수천만 원을 기부했다고 한다. ‘강제성이 있는 것이 아니냐,’하고 고위 책임자를 문책하면 돌아오는 대답은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냐”하는 반문, 또는 “법대로 해보려면 해봐라”라는 분노 섞인 말들이었다. 똑같은 질문을 학생에게 물어보면, 돌아오는 대답은 이렇다: “응. 완전 있지, 시X!!”

2014년 대학원생 권리장전[3]을 선언하기까지의 과정에서, 학생들의 말을 들을 의향이 전혀 없다고 판단되는 몇 명의 교수님들도 봤다. 카이스트 대학원생 권리장전의 내용이 완성되고 본격적인 홍보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포스터와 플래카드도 캠퍼스 구석구석에 붙이고, “카이스트 대학원생 권리장전 지지합니다”라고 써있는 팜플렛도 붙였다. 모든 교수 연구실 문에도 붙이며, 권리장전을 지지하면 경우 문에 붙어있는 팜플렛을 그대로 유지해달라고 부탁드렸다.(사진). 그 과정에서 몇 가지 해프닝이 있었다. 어느 학과에서는 한 교수님이 팜플렛을 발견하고 몹시 분노(?)해서, 복도의 모든 팜플렛을 뜯어서 찢고 구긴 다음, 우리 눈 앞에서 쓰레기통에 처박기도 했다. 이 외에도 노벨상 수상 후보로 올라갔던 한 교수님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었다.

“최근 이공계 학생들이 마치 노조처럼 움직이면서 권리장전이라는 걸 만들어 연구실 문에 막 붙이고 그러는데, 그건 아니다. KAIST에서도 학생들이 권리장전을 붙이겠다고 해서 내 실험실에는 절대 붙이지 말라고 크게 반발했다. 내가 세계 여러 곳을 다녀봤는데 어느 곳도 학생들이 그렇게 하는 경우가 없다. 일부 착취하는 교수가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왜 전부를 가지고 흔드나. 요새 아이들이 그러는 것을 보면 환멸을 느낀다.”

– Daily UNN 인터뷰 중.

학교의 구석구석에 조용히 숨어있는 문제점을 바깥으로 꺼내어 알리고, 그것을 해결하자고 제안했을 뿐인데, 이것을 가지고 일부 교수님들이 분노를 하는 모습을 보면, 일차적으로 학생들의 입을 막으려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왼쪽은 권리장전 포스터. 포스터에 오른손을 붙이고 사진을 찍는 페이스북 캠페인을 진행한 적 있다. 오른쪽은 학생연구실 문에 붙은 권리장전 팜플렛. 카이스트 권리장전 선언식 한 달 전인 2014년 9월, 당시 원총 집행부원들은 교내 모든 학생 연구실 문과 교수 연구실(보이콧 선언한 교수 제외) 문에 권리장전 팜플렛을 부착하고, 지지하면 팜플렛을 그대로 유지해달라고 부탁했었다.

학생 사회와 학교와의 장벽

이러한 일련의 우울한 일들이 카이스트에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나마 국내 대학 중에서는 카이스트 대학원 학생회가 가장 잘 정비되어있다는 것은 장담할 수 있다. 학생회 간부 전원이 활동근로비를 받고 일하고 있고, 학교와의 소통도 자유로운 편이며, 대학원생 인권센터 설립과 권리장전 선언도 가장 먼저 이루어진 곳이다. 또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학생회-학교 간 노력도 강한 경향이 있다. 일례로 “랩비” 문제의 경우, 카이스트에서는 표면 위로 떠올라 학교와 학생회가 함께 고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동안, 다른 대학들에서는 거의 일상인양 문제제기가 아예 없었다.[4] 카이스트는 일차적으로 대학원 총학생회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중요한 회의에는 모두 참석시킨다.

“000 회의가 열립니다. 회장님은 꼭 참석하실 수 있게 부탁드려요.”

“제가 그 기간은 프로젝트 일이 바빠서 어려울 것 같은데… 저 대신 다른 학생회 간부를 보낼게요.”

“아 아니요, 이 회의는 회장님이 안 오면 안되는 회의라서요. 다른 날로 옮기더라도 꼭 오셔야 합니다.”

 

대학원 총학생회장이 흔히 듣는 말들이다. 물론 학생회의 의견을 필수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고, 카이스트의 선도적인 모습 중 하나이다. 그러나 학교가 항상 학생들의 말을 경청하고, 의견을 잘 반영해주지만은 않는다. 학생회장에게는 늘 마이크를 넘겨주지만, 정작 대학원생들은 투명인간에 가깝다.

학교에게 대학원 총학생회는 하나의 행정 부서와 비슷하다. 어쨌든 “대학원 학생들”을 책임지는 기구이고, 그 기구의 대표를 불러서 회의에 참석시킨다는 뜻은 그들에게 “우리는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했다”라는 것과 같은 의미가 된다. 물론 가장 쉽고 깔끔한 방법이긴 하지만, 학생회장 입장에서는 자신이 학생들의 대변인이 아니라 하나의 행정직원이 된 느낌을 점점 강하게 받게 된다. 일반 학생들 이야기는 잘 듣지 않다가, 학생회가 전화 한 통만 하면 들어주는 것을 본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걸 아는 사람들은 어떤 불편한 점이 생기면 처음부터 학생회 메일로 건의하거나, 나에게 개인적으로 부탁을 한다. 대학원생들은 대체로 대학원 총학생회를 신뢰하고 지지한다고 표현하지만, 학교에 대해서는 “직접 말해봤자 안 바뀐다”는 인식이 강하다. 즉, 학교와 학생회 사이의 거리가 가까울 뿐, 학교와 학생사회 간의 벽은 언제나 존재한다.

“일단 대학원생이 노동자는 아니잖아요?”

내가 들어간 회의에서 한 보직교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학생 사회와 학교 간에 만리장성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대학원생이 학생이냐 노동자냐”의 논쟁일 것이다. 설령 대학원생이 노동자라고 하더라도, 공식적으로는 그런 주장을 해선 안 되는 것이 학교의 입장이다. 정부에서 카이스트 학생들에게 주는 것은 월급이 아니라 “장학금”인데, 이제 와서 우리 학교를 공식적으로 대표하는 사람이 “우리 학생들은 다 노동자인데요?”라고 주장한다면, 국가는 “그랬던 거였어? 그럼 너흰 학생이 아니니까 장학금도 필요 없겠네?”하고 예산을 잘라버리면 그걸로 우리 학교 모든 대학원생의 월 급여도 끝이다. 그리고 그 월급은 고스란히 다른 학교 학생들 월급이 되는 것이다.

학생이냐 노동자냐의 논쟁이 만리장성이라면, 예산 싸움이 천리장성 정도 될 것이다. 어딜가나 힘든 것이 돈 문제인 건 어쩔 수 없듯, 카이스트에서 예산문제는 단순히 밥그릇 문제라기보단 정책의 문제이고, 사람의 문제이다. 예산,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정책은 최전방에서 정책을 제안할 수 있는 사람들(보직교수, 총장 등)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아젠다를 따라갈 수 밖에 없다. 학생회장은 학생들이 돈이 없다고 열심히 주장해도, 미래부에서 창업이 중요하다고 말한 이상, 그리고 학교의 정책 결정자들이 그것이 중요하다고 마음을 굳힌 이상, 카이스트에서는 학생들 추가TA 예산을 증액하기보단 K-SCHOOL[5]을 설립하는 것이 우선이 된다. 어떻게 보면 정치적인 이유들로 학교와 학생 사회 사이에 잘 풀리지 않는 갈등이 늘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보직 교수님들의 입을 통해 듣게된다. “네, 그거는 매년 나오는 얘기지만요…” 하고 말이다.

 

p3

필자가 그린 그림. 미래부 등 큰 덩어리의 예산을 책임지는 정책결정자가 있고, KAIST에서 총장이나 부총장 등 보직교수가 우리 학교에 필요한 정책을 내세워 그 큰 예산의 일부를 달라고 한다. 대학원 총학생회장은 그 정책 결정의 장에 들어가진 못하고, 대학원생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동시에 KAIST 보직교수에게 요구를 해야만 하는 (난감한) 상황.

소통은 개나 줘

그나마 학교 내에서는 우리 대학원생들 말을 들어주는 노력이라도 존재한다. 학생회장을 그렇게 어렵사리 섭외하려고 애쓰시는 행정선생님들도 있고, 우리 요구를 다 반영은 못하더라도 우리 말을 따뜻하게 들어주시려는 총장님, 부총장님, 학생처장님도 계신다. 그러나 학교 밖으로 가면 대학원 학생회도 그저 어린애들이 된다.

2016년 날씨가 한창 더워지기 시작할 때쯤, 국방부에서는 전문연구요원을 폐지하겠다는 발표를 했고, 전국의 대학이 이것 때문에 시끌벅적했다. 한번은 미래부 산하 전임출연연기관 기관장협회에서 토론회가 열렸고, 나를 포함한 각 대학의 학생회 대표들이 참석했다. 우리는 국방부가 내놓은 이런 정책이 이공계에 얼마나 큰 타격을 줄지, 우리가 원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열심히 설명했다. 물론, 그 토론장에서 전문연 제도가 폐지되어야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지만 워낙 원로 과학인들이 많이 앉아있는 자리이다보니 학생회가 발언하면 듣는 사람이 얼마 없었다(물론 그 외 발표 시간에도 다수의 사람들이 졸고 있었지만). 기껏 발표하고, 흥분을 애써 가라앉힌 상태에서 토론한 결과는 “그래도 학생들은 이런 거 신경쓸 때가 아니죠.”였다. 한 마디로 ‘공부하고 있을 시간에 왜 여기있어? 허허허.”였다. 토론회가 끝나고, 은퇴를 했거나 은퇴에 가까워보이는 과학인들이 토론회가 끝나고 내 앞을 지나가면서 “그래, 학생들이 이런 주장을 하고 있으면 안되지.” 하고 토론회에서 아주 뜻깊은 결론을 얻은 마냥 가벼운 걸음으로 토론회장을 나갔다.

2014년 권리장전을 다른 학교들과 공동 선언하는 자리에서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원래는 당시 회장이 참석했어야 하지만 사정이 있어서 내가 대신 가서 선언식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카이스트라는 네임밸류 때문에 MBC에서 친절하게 생긴 아나운서 한 분이 인터뷰를 나에게 끈질기게 요청했다. 결국 넘어간 나는 커다란 카메라 앞에서 있는 힘껏 긴장했고, 내가 뱉은 말 한 마디 때문에 우리 학교와 학생회, 그리고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피해가 가면 안된다는 생각에 굉장히 공식적인 어투로 말하였다. 나는 자꾸만 이 권리장전의 목표와 의의를 이야기했고, 아나운서는 이공계의 문제가 무엇이냐고 반복해서 물었다. 결국 못 이겨서 말한 몇몇 학생들이 겪은 부조리한 사례만이 MBC 8시 뉴스에 나갔다.

p4

2014년 권리장전. MBC 인터뷰:

기자: “… 피해를 당한 대학원생 3명 중 2명은 신고를 당하면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 그냥 참고 넘어간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조승희: “… 교수님 지도 하에서 논문을 내야하는 것도 있고, 학위를 끝내야 하는 의무감이 있으니까, 혹시 모를 그런 문제점 때문에…”

정책과 소통, 그리고 사람

정책이란,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책을 제시해서 결국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힘 없는 대학원생들을 대표하는 사람에겐 이 세 가지 모두 참 어려운 과정이다. 학생들의 말을 들어서 문제를 파악해야 하는데 잘 들리지 않고,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는데 학교와의 장벽에 가로막히고, 사람을 만나도 우리의 말을 자세히 들어주는 사람은 흔치 않았다. 카이스트에서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은, 대학원생들, 즉 미래 과학도를 꿈꾸는 사람들이 “조용한” 이유는 단지 사회문제에 관심이 없거나 공부 밖에 몰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말하기 힘들도록 만드는 환경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통이란, 상대방이 정말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것을 존중해주는 것이지, 본인이 이미 정해놓은 결론에 근거하여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힘이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으니까, 힘을 길러야한다”고 말이다. 힘이 있는 사람들이나 말 한 마디하면 백 사람이 “예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자동 소통을 하지, 우리같이 힘 없고 공부밖에 모르는 공부벌레들로 찍힌 사람들은 말해봤자 무시를 당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일까 하고 생각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말하기 시작했다. 토론회에서, 국회에서, 언론에서, 대자보에서, 설문조사에서, 웹툰에서, 그리고 선언식에서 말이다. 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들어주어야 할 사람들이 들어주지 않는 것이다.


 

[1] 연구실에서 학생들에게 일정한 금액의 월급을 평등하게 지급하거나, 연구장비를 사기 위해, 연구실에서 모으는 일종의 공동자금을 랩비라고 부른다. 연구실이 운영되기 위해 필요한 돈은 보통 국가 과제나 기업 과제에서 받아오는데, 과제는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으며, 그 기간도 불규칙적이다. 따라서 과제가 한번에 모두 끊기거나 공백이 있는 때를 대비해 랩비를 모아놨다가, 연구실 운영이 어려운 시기에 그 랩비를 학생들 급여나 연구에 필요한 장비, 회식 등에 사용한다. 그러나 랩비는 연구 부정사례를 많이 야기한다는 이유로 불법으로 지정되었다.

[2] 신입생 환영회에서 신입생들에게 장기자랑을 시키는 몇몇 학과들에서 인권침해가 도를 넘었다고 생각된 순간,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장기자랑을 완전히 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진행하는 학과들도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3] 대학원생 권리장전은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에서 먼저 제안한 것으로, 대학원생의 인권과 연구환경에 대한 권리를 선언하여, 그 권리를 교수와 학생 모두가 알고, 지키기 위해 노력하자는 목적으로 시작된 움직임이었다. 우리 원총은 청년위원회에서 내려온 권리장전 내용을 받아서, 우리 학교의 맥락에 맞게 고쳤다. 우리 학교 법률 전문가 교수님께 자문도 받고, 학생 공청회도 두 차례나 열어서 수정하고, 내부 회의에서 또 고치고, 또 자문을 받았다.

[4] 카이스트가 2015년 청렴도에서 꼴찌를 기록했으나, 서울에서 대학원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랩비는 당연히 있는 거 아니야? 없는 곳이 없는데…”라고 말한다.

[5] 카이스트에서 새롭게 제시하고 있는 창업융합전문석사 및 기업가정신부전공 프로그램.

 

Epilogue

조승희는 이번 <뒤켠>에서 학생 사회와 학교 사이에는 ‘장벽’이 있다고 표현한다. 그 장벽은 사실 한국사회-정부-(과학기술특성화대)학 교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카이스트는 1970년대 “국가 발전을 위한 과학기술 연구개발”이라는 사명감 하에 정부의 막대한 지원금을 받아왔고 이는 곧 “국가의 미션은 학교의 미션”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학교에 유례없는 지원금을 퍼붓는 대 신 학교는 국가에 헌신해야 했다. 학교의 발전은 곧 국가 경제발전을 뜻했기 때문이다. 당시 학생들이 그렇게 열심히 공부했던 것은, 카이스트의 연구실에 불이 꺼지지 않았던 것은, 애국심의 표명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나라의 발전을 위해 공부해야 했고 국가로부터 막대 한 지원금을 받던―에서 학생사회가 목소리를 내기란 쉽지 않았다. 누굴 탓할 것도 없이 그렇게 장벽은 소리없이 쌓였다.

대학원 총학생회장 조승희는 그렇다면 지금 그 장벽 위를 걷고 있는 사람이다. 장벽 위에서 학생 사회와 학교 모두를 내다봐야 하고 동시 에 양쪽의 의견을 서로에게 전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벽 위를 걷는 느낌은 불안정하고, 부담스럽고, 두려울 것이다. 힘들다고 어느 한 쪽으로 폴짝 뛰어 내려올 수도 없다. 반드시, 약속된 시간까지, 장벽 위를 걸으며 양쪽 모두의 목소리를 서로에게 전달해야 한다.

장벽 위에서 메세지를 전달하는 사람은 두 경우에 어려움을 느낀다. 전달할 메세지가 없거나, 메세지를 전달을 했는데 그것을 듣는 사람이 없거나. 조승희는 이번 글에서 본인이 두 경우 모두를 경험하고 있음을 말한다. 많은 경우, 학생 사회는 목소리가 없고 학교는 듣지 않는다. 그리고 이 경우 우리가 그토록 바라는 “소통”은 실패한다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승희는 계속 학생 사회와 학교 사이에 있는 장 벽 위를 걸어야 한다. 약속된 시간이 끝나면 다른 누군가가 그 일을 해야 한다. 우리가 이번 <뒤켠>에서 목격한 조승희의 모습은 그러나 의무감 만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었다. 조승희는 학생 사회가 말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목소리가 조금씩 커진다면, 듣지않던 누군가에게 들리고 조금씩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믿음이 조승희를 장벽 위에서 걷게 만들고 있다.

이것이 대학원 총학생회 회장으로서 조승희의 미션이라면 과학기술 정책을 고민하는 우리의 미션은 더 넓은 시야에서 카이스트의 위치 를 돌아보는 것일 것이다. 1970년대가 아닌 2010년대, 더이상 “경제발전”이 국가의 유일한 과제가 아닌 한국 사회에서, 카이스트가 여러 과학기술특성화대학 사이에서 어떤 역할을 왜 맡아야하는지 돌 아봐야할 것이다. 더 무서운 “침묵”은 여기서 발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침묵”을 깨지 않고는 이제 막 시작된 학생들의 외침 은 또 다시 묻히고 말 것이며, “인재의 요람”은 “침묵의 공간”으로 계속 남을 것이다.


 읽을거리

e0050351_4812db930bb19이영섭 (1993) 과학원 아이들 / 김영사

카이스트의 80년대는 어떠했을까? 이 책은 카이스트를 졸업한 학생이 쓴 소설책으로 당시 한국에서 과학기술을 전공한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그 삶에 대해 유쾌하지만 진지하게 묘사하고 있다. 오늘날의 카이스트와 비교해 보면 흥미로울 것이다.

60449_18841_2542한경희, 게리 다우니 (2016) 엔지니어들의 한국사: 근현대사 한국 엔지니어들의 변천사 / 휴머니스트

이 책은 전반적으로 한국에서엔지니어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인식되어 왔는지, 그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 서술하고 있다. 한국 엔지니어에 대한 폭 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카이스트를 또는 카이스트 학생들을 재해석해 보는 것도 유의미한 작업일 것이다.

k062535775_1 29 고대원총 이음지기 (2016)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 / 북에디션

정말로 이런 일들이?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슬픈 대학원생들의 사연이 담긴 만화책이다. 인권을 무시당함은 물론이고 졸업과 졸업 후 커리어까지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대학원생들의 이야기들이 고스란히 나와있다. 고려대학교 원총 학생들이 스스로 이런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모아 세상에 알리기까지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만하다. “에이 우리 학교엔 이런 일까진 없지라고 누구나 생각하겠지만, 과연 그럴까?


[1] 이영섭. 과학원 아이들 (김영사, 1993), p.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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