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시력을 잃었다.

박준혁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석사과정)
wingofsnak@kaist.ac.kr


2015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석 달간 다섯 명의 젊은이들이 시력에 손상을 입었다. 그들의 건강에 어떠한 문제가 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의 공통점은 같은 업종의, 같은 공정을 담당했던 노동자라는 것이었다. 그들은 세 개의 서로 다른 휴대전화 부품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며, 모두 알루미늄 절단 작업을 수행하던 사람들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의 업무는 자동으로 알루미늄을 자르는 기계에 알루미늄 판을 교체하는 것이었다. 작업에서 실수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들의 눈을 앗아간 것은, 가공 단계에서 뜨거워진 알루미늄을 식히기 위해 사용한 메탄올이었다. 알루미늄에 묻어있던 메탄올을 공기총으로 닦아내는 과정에서 작업장에 잔류한 메탄올에 장기간 노출되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1]

혹시 소주의 첫 한 잔을 버리던 습관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는가. 이러한 행동을 설명하려는 여러 낭설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소주병 위쪽에 메탄올을 비롯한 불순물들이 모여있다는 것이었다. 정제 기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해, 걸러내지 못한 유해물질이 남아있었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의 신빙성은 차치하더라도, 메탄올이라는 물질의 유해성은 이미 오랜 상식이었던 것 같다. 메탄올에 노출되는 경우 실명 및 뇌와 장기의 손상 등의 피해를 입을 수 있으며, 다량 노출 시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메탄올을 작업장에서 사용할 경우, 작업장 내 농도 기준이 설정되어 있으며, 밀폐 설비 내지는 배기 장치를 설치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번 실명 사고가 발생한 작업장들에서는 이러한 설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작업자들 또한 자신들의 공정 사이에 메탄올과 같은 유독한 물질이 사용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고가 발생했던 공장은 언제 사고가 발생해도 이상하지 않을, 취약한 상태였던 것이다.[2]

이번 메탄올 실명 사고가 굉장히 이례적인 일일까? 최근 한국에서 발생하는 화학 물질 관련 사고를 보고 있자면 유감스럽게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2011년에 밝혀진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고를 비롯하여, 구미에서 발생한 불산 누출 사고, 삼성전자의 불산 누출 사고 등 크고 작은 화학물질 관련 사고가 발생했다. 이처럼 화학 물질 사고는 어느 특정한 공간과 계층에 한정하여 발생하지 않는다. 이는 현대 사회의 화학 물질에 대한 의존성에서 기인한다. 화학 물질은 그 용도의 다양함으로 오랜 세월 인류와 함께 발전해왔고, 근래에 들어와서 더욱 넓은 범위에서, 더욱 많은 숫자가 유용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약 1억1800만종의 화학물질이 등록되어 있고, 그 숫자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CAS). 바꿔 말하자면, 우리는 일상적으로 화학물질에 노출되어 있으며, 그들에 의한 위험이란 일상 속에 상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의 화학물질에 대한 문제의식이 극대화된 것은 인도 보팔 지역에서 발생한 가스 누출 사고 이후였다. 1984년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었던 유니언 카바이드의 인도 자회사, 유니언 카바이드 인디아 Ltd가 보팔 지역에서 운영하던 살충제 생산공장에서 아이소사이안화메틸 (MIC)가 대량으로 유출되었다. 이 사고로 사고 직후에만 약 3천여명이 사망했고, 약 20여만명의 사람이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현재까지 이 사고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은 약 2만명에 이른다. 더욱이 사고가 발생한 공장이 미국 기업인 유니언 카바이드의 것이었다는 점과 그들의 공장이 미국 버지니아 주에 위치하고 있던 것이 미국 시민들의 불안을 더욱 자극했다. 이 사건이 발생했던 시점은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의 임기 중으로, 당시 전임자였던 지미 카터 대통령이 입법 예고를 해두었던 화학물질관리법을 취소하고 훨씬 강도가 약한 화학물질관리법을 통과시켜 놓은 상태였다. 이는 카터 대통령의 법안에 비해 훨씬 친기업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되며, 당시 레이건 대통령과 공화당이 주창하던 신자유주의적인 생각을 방영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보팔 사고로 인해 화학물질에 대한 경각심이 증폭되면서 이러한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시장 논리와 기업의 자율적 규제로는 부족하다는 여론이 강하게 확산된 것이다.[3]

이를 기점으로 미국 지역에선 강한 화학물질 규제에 대한 요구가 발생하였고, 미국 국회 차원에서 알 권리(Right-to-Know)에 대한 제도적 강화가 이루어졌다. 이는 화학물질의 정보를 대중에게 공개하고,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화학물질을 관리하겠다는 정책 방향이었다. 특히, 미국 환경보호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EPA)이 운영하는 TRI(Toxics Release Inventory) 프로그램 등이 이러한 방향성을 잘 보여주는 예시일 것이다. TRI는 각 작업장에서 배출하는 화학물질의 정보를 연방정부 차원에서 수집하여 일반 대중들이 컴퓨터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즉 정보화를 통해 화학물질 배출의 관리를 하겠다는 정책 방향이었던 것이다. 정보화를 통한 화학물질의 관리는 비단 미국에서만의 독특한 방식이 아니다. EU 역시 REACH(Registration, Evaluation, Authorisation and Restriction of Chemicals)라는 규정을 만들어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 즉, 정보화를 통한 관리 규정을 운영하고 있다.[4] 시장에 유통되는 모든 화학물질은 이 규정에 따라 그 유독성 정보가 생산되어야 하며, 정보가 없는 화학물질은 애당초 수입, 유통, 저장, 생산 등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한국 역시 정보화를 통한 화학물질 관리에 더욱 힘을 쓰는 모양새이다. 기존에 있던 ‘유해화학물질관리법’을 ‘화학물질관리법’으로 개정하고, ‘화학물질 평가와 등록에 관한 법률’을 신설하여, 기존보다 더욱 엄격하게 화학물질의 정보를 수집, 관리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등록해야 하는 화학물질의 기준을 이전보다 더욱 엄격히 하고, 관리하는 대상도 유해화학물질만이 아닌 전체 화학물질로 넓히는 등의 변화가 눈에 띄는 지점일 것이다. 그 이전부터 한국의 화학물질 관리는 정보화를 중심으로 하는 경향이 강했다. 정부에서 지정하는 화학물질을 제외한다면(실제로 그 숫자가 사용되는 전체 화학물질의 종류에 비하자면 적은 편이지만) 기본적으로는 화학물질배출량 공개 시스템과 작업장 내 물질안전보건자료(MSDS)의 공개 정도를 꼽을 수 있었다. 현재의 제도 역시 이러한 제도의 강화, 즉 공개되는 정보 종류의 확대와 정보 수집의 기준 강화, 그리고 기존에는 기업 비밀로 취급되어 공개되지 않던 화학물질에 대한 기준 강화[5] 등이 주요 골자라고 볼 수 있다.

화학물질의 위험을 정보화를 통해 관리할 수 있다는 생각은 기본적으로 한 가지 전제 위에서 성립한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더 많은 상황에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은 단순히 정부 조직에서만 발견되는 것은 아니다.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많은 사람들은, 더 많은 정보를 자신들이 가지고 있을 때, 화학물질을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간주하곤 한다. 혹은, 이러한 정보들이 화학물질에 의한 상해가 발생하였을 때, 이를 보상하는 것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현대 사회에서 일반화된 ‘더 많은 정보’에 대한 요구와 그 궤를 함께 한다. 흔히 말하는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며, 지식에 대한 인식이 이전의 시대와 많이 달라지게 되었다. 이전까지의 지식은 근본적으로 경험에 의존하는 지점이 많았다. 어떠한 현상, 사물 등에 대한 개인의 경험이 공유되며 지식을 형성한 것이다. 이의 바탕에는 경험을 통한 사물에 대한 이해가 가장 우선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보화 시대의 주요한 특성은 손쉽게 공유 가능한 정보가 지식으로 취급된다는 것에 있다. 이러한 정보들은 다양한 (정부 기관 및 민간 기업을 포함하여)기관에서 생산되는데, 동일한 대상을 두고도 각 기관이 필요로 하는 정보는 상이하기 때문에, 하나의 대상을 파편화 하게 된다. 즉, 정보화 시대에서 우리가 어떠한 대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파편화와 추상화 과정을 거친 일련의 정보들을 조합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 방식으로 현상에 대한 착오를 일으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우선, 정보가 의미하는 바에 대한 오해이다. 정보화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직접적으로 현상과 상호작용하는 것이 아닌, 매체(인터넷, TV 등)를 통한 중계 과정을 거친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은 수치화 내지는 지표화 된 정보들이며, 이러한 수치와 지표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를 명확히 이해하는 것에서 착오가 쉬이 발생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지표에 대한 과대 해석이다. 어떠한 현상을 이해할 때, 지표화 되지 않은 것들을 무시해 현실에서 발생하는 현상과는 다른 방식으로 현상을 축소 혹은 변형하여 이해하기 쉽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현상에 대한 맥락과 추상화 하기 어려운 요소들이 정보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생략되기 때문에 존재하는 위험이며, 정보화에 대한 과도한 신뢰가 어째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가를 설명하는 지점이기도 하다.[6] 근본적으로, 우리가 현대에서 정보를 획득하는 방식은 매개자를 놓고 이루어지는 간접 상호 작용이며, 이 과정에서 실제 현상에 대한 적절한 대처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한국의 화학물질 관리 제도 역시 이러한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한국은 다수의 화학물질 사고를 겪었고, 이에 대한 대응으로 관련 법률의 재정비 등을 실시했다. 앞서 말했듯, 이러한 제도 개선의 골자는 ‘사업장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에 대한 더욱 치밀한 정보화’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보화로는 어느 작업장에서 저장하고 있는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는 수집이 가능하지만, 그곳의 전반적인 안전 수준, 노동자들의 인식, 화학물질 관리의 수준 등 수치화할 수 없는 것들은 파악할 수 없다. 결국, 더욱 확실한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정보 수집의 측면뿐 아니라, 현장을 관리할 수 있는 법률 및 제도의 개선, 인력 충원 등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메탄올이 위험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에 대한 정보는, 굳이 법률 개선을 하고 나서야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6년의 우리 사회는, 20대의 청년들을 결국 지켜주지 못했다.

메탄올 중독 사고가 보여주듯, 정보화만으로는 문제의 예방이 어렵다. 정보를 아는 것은 분명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뒷받침할 물질적 규제 없이는 이와 유사한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정보를 가지고 현장을 책임질 ‘사람’, 유해한 화학물질에 노출되지 않도록 안전 대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규제’, 정보를 인지하고 올바른 사용 수칙을 따를 수 있도록 하는 ‘교육’ 등, 화학물질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단순히 ‘더 많은 정보를 통해 우리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만으로는 우리 사회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정보의 생산에만 급급하여 제도적 정비를 거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리 멀지 않아 또다시 누군가의 눈물을 바라보아야만 할 지 모른다.


읽을거리

9780226257204Kim Fortun (2001). Advocacy after Bhopal.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인도 보팔에서의 화학물질 누출 사고 이후 발생했던 다양한 계층에서의 반응들을 보여주는 책. 저자인 Kim Fortun 본인이 시민 운동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였고, 미국에서의 반응뿐 아니라 인도 정부의 입장, 보팔 공장에서 근무하던 노동자들의 입장 등, 재난을 둘러싼 넓은 스펙트럼의 입장을 볼 수 있는 책.

Screen Shot 2017-05-06 at 11.49.22 PMHaridimos Tsoukas (1997). The tyranny of light: The temptations and the paradoxes of the information society. Futures, Volume 29, Issue 9.

정보화 사회가 가정하는 ‘더 많은 정보는 더 많은 문제의 해결’이라는 전제가 가져오는 모순점에 대해 논한 논문. 현대 사회에서 정보가 가지는 속성과, 그러한 속성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모순적 상황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 정보화의 명암에 대해 의문점이 있다면 흥미를 가질 수 있을 논문.


[1] 장인수. ‘20대 청년들 5명 잇달아 실명, 장애 ‘공포의 공장’. MBC 시사매거진 2580. 2016.4.4

[2] 전종휘. ‘가습기살균제 참사 ‘판박이’…’메탄올 실명 사태’ 아시나요?’. 한겨레. 2016.5.11

[3] Kim Fortun. Advocacy after Bhopal.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1)

[4] 박지현. (2014). EU 화학물질정책의 최근 동향과 시사점. 『環境法硏究』 第36卷 2號

[5] 그러나 여전히 위원회의 판단에 따르며, 여전히 기업비밀을 인정받기 쉽다는 평가가 주요하다.

[6] Haridimos Tsoukas. “The tyranny of light: The temptations and the paradoxes of the information society,” Futures Volume 20, Issue 9 (1997): 827-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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