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원으로 혁명하기

장동현 ((주)노페땅 공동대표)
cdh@nofetan.com


Screen Shot 2017-05-09 at 12.23.07 PM삼천원은 지속가능한 덕질을 위해 문화예술인의 기본소득을 창출하고자 하는 정기결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입니다. 아티스트들은 자신의 창작물과 연계된 다양한 리워드를 금액별로 설정합니다. 팬들은 관심 있는 아티스트를 찾아 원하는 리워드를 선택하여 해당 리워드의 금액을 월 단위로 정기적으로 결제합니다. 팬들의 결제는 아티스트의 기본소득이 되어 안정적인 기반이 되어주고, 아티스트는 이를 통해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나가 창작물로 보답합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커피 한 잔 사 먹기도 애매한 적은 돈, 삼천원. 그 단어를 나는 과감히 내 첫 창업 아이템의 이름으로 선택했다. 무려 이공계 학부에 남아있기엔 꽤 부담스러운 학번인 내가 그나마 학사모를 쓸 가능성이 있었던 마지막 졸업 학기를 과감히 포기한 채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여 만든 아이템이 바로 ‘플랫폼 삼천원’이다.

나는 스타트업을 하고 있다. 팬들이 좋아하는 아티스트에게 매달 결제하는 삼천원이 모이고 모여 백 명이면 월 30만 원, 천명이면 월 300만 원의 기본소득이 생겨날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서 착안했다. 플랫폼 삼천원에서 아티스트는 금액별로 다양한 리워드를 설정한다. 제공되는 리워드들은 대부분 아티스트의 창작활동과 연계된 창작물들이다. 팬들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페이지에 접속하여 리워드를 보고 금액을 선택하여 월 단위로 정기결제한다. 이렇게 팬들이 정기적으로 결제하는 금액은 자연스럽게 아티스트의 기본소득이 된다. 아티스트는 이렇게 창출된 기본소득을 바탕으로 더욱 안정적인 창작활동을 이어나가 창작물로 팬들에게 보답한다. 이런 선순환 구조 속에서 플랫폼 삼천원의 표어인 지속가능한 덕질이 완성된다.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에게 직접 월급을 주는 플랫폼’이라고 설명하곤 하는데, 조금은 멋져보이고자 줄임말로 ‘아티스트의 기본소득을 창출하는 정기결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이라는 다분히 IT시대적 네이밍으로 소개할 때도 있다. 어느 쪽이든 지속가능한 덕질을 위한 IT서비스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창업의 계기는 작은 분노였다. 16년 초, 대구의 한 라이브클럽에서 오랜만에 취향을 저격하는 밴드를 보았었다. 소위 입덕해버린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유튜브와 페이스북을 뒤지며 해당 밴드의 음원과 영상을 섭렵하고자 마음먹었던 날 바로 다음 날, 그 밴드는 활동중지를 발표했다. 좋아하는 밴드를 더는 볼 수 없다는 분노를 풀 방법이 없어 지인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성토했다. 놀라웠던 것은 이런 경험이 나만의 경험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 이야기를 나누었던 사람들도 저마다 다른 취미 분야에서 이런 문제를 겪었다는 경험을 공유하게 되었다. 밴드가 해체해버려 더는 라이브를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이야기, 작가가 활동을 관둬 연재가 중단되어버린 소설의 이야기, 연재처를 옮겨 성급히 마무리되어버린 웹툰 이야기 등 덕질할 수 없게 되어버린 덕후들이 이야기와 경험을 나누었다. 그리하여 이런 문제가 문화예술 분야 곳곳에 존재하는 문제임을 알게 되었다. 저소득, 불안정한 수입원, 그로 인해 강요되는 겸업에 시달리다가 이어지는 아티스트의 활동중지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던 것이다.

십년지기 친구들이 모여 많은 방법을 고민하였다. 우리는 문화예술의 소비구조에 주목했다. 지금은 아무리 팬들이 소비금액이 적지 않음에도 유통과정에서 수수료, 광고비, 임대료 등이 빠지고 나면 적은 금액만이 실제로 아티스트들에게 전달된다. 그때 떠올랐던 것이 바로 정기결제 형식의 크라우드 펀딩이었다. 크라우드 펀딩은 참 신비롭다. 그것은 후원과 소비의 묘한 경계에서 작동한다. 마치 공정무역이나 착한 소비처럼 크라우드 펀딩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심리에는 내가 낸 가치만큼의 대가를 받는다는 교환심리를 넘어선 전달이 일어난다. 만약 팬들의 적은 돈이라도 정기결제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이란 방식을 통해 직접 아티스트들에게 전달이 될 수 있다면 이렇게 모인 금액은 아티스트에게 안정적인 기본소득이 되어 창작활동에 힘을 실어주고 아티스트와 팬 모두에게 큰 힘이 되어줄 것이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사실 결국 크라우드 펀딩이란 전통적인 후원체계의 IT 시대적 모습이나 다름없다. 정당에 내는 당비나, 노조에 내는 조합비, 시민단체에 내는 회비 등의 후원체계가 IT시대를 맞아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단장한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크라우드 펀딩은 조금은 더 자본논리에 몸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IT기술을 통해 웹으로, 앱으로 구현된 후원은 전국에 인터넷망이 깔리고 스마트폰이 보급된 시대적 맥락과 함께 공간적, 시간적 한계를 넘어서 수많은 대중-유저와 접촉한다. 더 많은 후원을 끌어내기 위해 유저의 방문 경로부터 성비, 지역, 잔존시간, 결제전환 컨텐츠 등 수많은 지표를 추적하고 분석한다. 후원과 소비의 중간지대 어디쯤에서 크라우드 펀딩은 사람들이 돈을 쓰는 자연스러운 이유를 실험하고 그 논리와 유저경험을 만들어낸다. 그리하여 접속하고 결제한 유저들은 자연스럽게 플랫폼 삼천원이라는 아이템 안에서 ‘아티스트의 기본소득 마련’에 기여하면서도 기본소득이라는 메시지가 아닌 다른 다양한 이유로 아이템을 인식한다.

이런 아이템의 발상은 어느 정도는 내 경험에서 기인했다. 본격적으로 창업을 시작하기 전, 몇몇 시민단체에 소속되어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갔던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후원회원을 모집하기 위해 다양한 장소에서 회원가입서를 돌릴 때마다 으레 가입을 권유했던 멘트 중 하나가 연 십만 원까지 소득공제가 되니 어차피 돌려받을 돈, 우리 단체에 내 좋은 일에 쓰실 겸 가입하시라는 이야기였다. 신기한 점은 그렇게 거리에서 가입서를 돌릴 때마다 선뜻 나서 가입을 하시는 분들의 꽤 많은 비중은 이미 이 단체 저 단체 후원을 하고 있어 연 십만 원을 아득히 넘게 내고 계신 분들이었다. 그런 식으로 한번 정기적으로 후원을 시작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새로운 정기후원에도 훨씬 쉽게 접근하고 선뜻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삼천원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번 이런 식으로 문화예술에 대해 정기적인 결제라는 방식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다른 아티스트에 대해서도 정기결제란 방식으로 납부를 하는데 훨씬 낮은 진입장벽을 보일 것이다. 그것이 삼천원이란 아이템을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다.

아이템 구상이 끝나자마자 우리는 실현 가능성을 검증하고자 했다. 구글 설문을 작성하여 SNS로 전파하였더니 짧은 시간 만에 무려 273건의 응답이 모였다. 설문결과가 보여준 높은 고객 충성도와 문제 인식의 공유는 바로 프로젝트를 시작할 이유를 주었다. 그러나 그다음 고민이 있었다. 방식이었다. 우리는 어떤 형식으로 프로젝트 조직을 꾸릴지에 대해 고민했다. 단순 대학생 프로젝트 그룹부터, 시민단체, 재단, 벤처 그 모든 형태를 고민했다. 고민의 끝에 우리는 스타트업을 선택했다. 이유는 명료했다. 문화예술인들이 제대로 된 수입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시장 구조의 왜곡과 부조리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해결하고자 하는 이 자본주의의 문제는 결국 가장 자본주의적인 방식으로 해결해야만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 모든 형태 중에 우리는 벤처를 택했다. 사업계획서를 작성했고 투자처를 찾아다녔다. 운 좋게도 두 번째로 제출했던 사업계획서가 바로 주목을 받아 투자를 받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내 인생 첫 창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학부에 남아있기엔 꽤 부담스러운 학번이었다. 그나마 마지막 졸업 학기를 이수하던 도중이었다. 그러나 아이디어가 생각나고 그 가능성을 확인하자마자 과감히 학업을 중단하고 강의실을 뛰쳐나와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여 창업했다. 입덕한 밴드의 활동중지부터 사업계획서 작성까지 단 2개월밖에 되지 않는 거침없기도, 무모하기도 한 실행력으로 시작하게 된 창업이었지만 동시에 그 선택은 절대 짧지 않았던 고민과 방황의 끝에 내려진 결론이기도 했다. 졸업을 앞두고 서 있을 지평에 대한 깊은 고민이 있었다. 그 어떤 진로를 택하건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진로를 택하고자 하였다. 여태까지도 변화를 위하여 다양한 일들을 해온 까닭이었기 때문이다. 한때는 이공계 특성화 대학교의 총학생회장이었다. 학생운동의 한 가운데서 이공계생의 조직과 운동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고민했었다. 한때는 노조에 몸을 담고 수많은 근로기준법 위반사항에 대해 공부하며 노동운동의 꿈을 꾸었다. 한때는 과학기술학에 매료되어 과학자들의 운동을 짚어가며 연구노동자를 위한 정책수립과 정치적 해결을 꿈꾸기도 했다. 창업을 결심하기 전 가닥이 잡혔던 진로는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정책대학원으로의 진학, 하나는 시민단체 상근직으로의 진로. 그러나 그 어느 쪽에도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해도 내가 하는 일이 옳다는 당위성 뒤에 숨어 핑계를 대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무엇보다도 앞섰다. 그래서 지금 걷고 있는 스타트업의 길이 마음에 들었다. 작게는 유저방문 수부터 크게는 매출까지, 객관화된 수많은 수치가 내가 기획하는 마케팅과 아이템의 유효함을 증명하고 판단한다. 내 결정들은 수시로 그 준엄한 심판의 장 위에 놓인다. 과연 내가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가, 그 변화는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다. 그 앞에 솔직하고 겸허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음을 준비할 수 있다. 그 솔직함이 마음에 들었다.

어느 순간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바뀌었다. IT기술의 발달과 함께 매체는 권력을 쥔 사람들의 주머니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는 평등한 지평으로 바뀌었다. 페이스북, 트위터와 같은 SNS조차도 매체의 임무를 수행하며 정보를 유통하는 시대이다. 그러나 여전히 민주화된 매체에 비해 생산되는 정보는 비대칭적이다. 정보의 생산 대부분은 상위 몇 퍼센트조차 되지 않는 콘텐츠에 집중된다. 어제 개봉한 블록버스터라던가, 공중파의 아이돌 이야기라던가 하는 정보들이 매체를 잠식한다. 이런 상황에서 나머지 대부분의 콘텐츠는 주목을 받지 못하고 그들에 대한 정보는 유통되지 못한다. 이런 구조 속에 콘텐츠는 그 자체의 매력과 힘을 쉽사리 잃을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 역시 점점 더 하나의 메인스트림이 아닌 다양성을 원하며 수많은 서브스트림의 문화를 소비하고자 하지만 유통되는 정보의 한계 때문에 쉽사리 접하지 못한다. 그 사이의 물꼬를 트는 일을 하고 싶고 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굳이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자본 없이도, 인맥 없이도 계속해서 창작활동을 해나갈 수 있고 이들에 대한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어 소비될 수 있는 새로운 프레임을 짜는 일, 그것이 이루고 싶은 변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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