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언 맨”과 엘론 머스크 : 기술 실천과 기술자본의 신화

문병준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
moveslike15@naver.com


1. 상징으로서의 인물(figure)

영화 “아이언 맨”의 3편에는 “만다린”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주인공 토니 스타크와 적대관계에 있는 바이오기술산업체이자 테러조직인 A.I.M.-텐 링즈의 지도자로 알려져 있었는데, 영화 중반부에 이르러 밝혀지는 것은 이 만다린은 진짜 조직의 지도자가 아니라 단지 고용된 배우였다. 이 배우는 조직을 대표하여 방송에 출연하고, 이 테러조직의 사상과 실천을 대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 테러조직은 여느 조직들이 그러하듯 여러 조직원들의 협력과 분업에 따라 체계적으로-비개인적으로 작동한다. 그럼에도 이 조직은 어떤 이유에 입각하여 전략적으로 배우를 고용하여, 조직이 행하는 모든 일들이 만다린이라는 개인의 인격, 성격, 의지에 따라 행해지는 일들로 보여지게끔 하는 것이다. 왜 이런 인격에 의한 대표가 필요한가? 영화 속에서는 테러조직의 활동을 세계인들에게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테러라는 활동은 점령을 위한 군사행동이 아니며 단순히 인명을 살상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테러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평범한 개인을 어느 면에서나 훨씬 넘어서는 존재로 묘사되는 인물이 이러한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실천을 이끌 때, 메시지의 수신자들은 더 크게 설득되거나 더욱 공포스러워하게 된다.

합리성 중심의 발전된 근대사회에서도 여전히 신화적인 사고방식이 사회의 지배에 쓰이고 있다고 관찰한 사회학자 아도르노(Adorno)와 호르크하이머(Horkeheimer)는 신화란 개념화의 노고는 피하면서 사람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가는 방식이라고 논하였다. 신화는 자연세계와 사회세계를 막론하고 그 작동의 방식이나 질서를 사람들에게 더욱 선명하게 밝혀 주는 듯하지만, 그것은 피상적인 감각일 뿐 실제로는 사람들을 ‘어둠 속에 머물게’ 하고, 주체적이고 실질적인 이해를 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것이다.[1]

즉, 신화의 대상이 되어 신화적으로 묘사되거나 또는 스스로를 신화화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명백히 드러내지 않고 알 수 없는 것인 상태를 유지하면서, 상대에게 가까이 다가가, 상대로 하여금 자신을 이해하고 있다는 허위의 믿음을 갖게끔 만드는 것이다. 이 만다린이라는 인물, 그리고 만다린-테러조직 관계 구조가 중요한 이유는 이것이 바로 신화화의 방식으로 작동하고 이러한 신화는 사회적 현실 속에서 반복적으로 활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특히 여기서는 기술과 자본의 결합과 관련하여 나타나고 있는 독특한 하나의 현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만다린-테러조직 관계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이중적으로 반복되고 또 겹쳐진다. 먼저 영화라는 형식을 통해서이다. 영화는 단순히 시각화된 허구가 아니라 사회 구조를 내포하고 있는 일종의 자료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영화는 산업적으로 생산-공급되는 상품이고, 그래서 수요와 소비라는 형식으로 대규모 사회구성원의 실천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언 맨”이 속하는 같은 소위 ‘수퍼히어로’물의 경우에는 서사보다도 주인공 인물의 특성과 매력이 가장 주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나 현대의 문화상품 속 대다수의 다른 영웅들과 달리, “아이언 맨”에서 그의 영웅으로서의 정체 – ‘아이언 맨’으로서의 인격과, 정상적 사회구성원인 ‘스타크’의 인격은 유리되어 있지 않다. 여러 가지 이유로 영웅으로서의 자신의 정체를 숨겨야만 하는 다른 수퍼히어로들과 달리, 기술산업체의 소유주인 스타크가 ‘아이언 맨’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또한, 다른 수퍼히어로들의 경우에는 기자나 의사, 가난한 학생 등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 특히 직업이 영웅으로서의 그 자신과 아무런 관계도 갖지 않는다. 그러나 스타크의 경우에는 그 자신이 기술자이고 또한 기술산업체의 소유주임이 그가 영웅 ‘아이언 맨’이 되는 데 있어서 결코 뗄 수 없는 관련성, 인과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아이언 맨”은 다른 어떤 수퍼히어로보다도 사회(친화)적인 인물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스타크의 영웅적인 행보는 영화 속에서 대표적인 기술자이자 대표적인 자본가가 된다. 이는 영화 밖 현실세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2. 두 세계의 중첩 지점으로서의 인물

이러한 가능성을 실제로 실현시키는 것이 바로 영화 속 인물 ‘스타크’와 현실 속의 기술자이자 자본가인 ‘엘론 머스크’의 중첩이다. 최초로 만화 “아이언 맨”을 영화화할 때 배우 R. 다우니 Jr.과 감독 파브로가 현실 속의 ‘아이언 맨’을 어떻게 연기하고 또 촬영할 것인가의 영감을 얻기 위해 머스크를 인터뷰한 것은 유명한 일화일 뿐만 아니라, “Times”[2]지나 “Recode”[3] 등의 유력한 매체를 통해서 수년 동안 반복해서 보도되었다. 이어 “아이언 맨” 2편에서는 실제로 머스크가 영화에 짧게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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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다른 세계 속 동일 인물의 조우 (가장 오른쪽부터 머스크와 스타크)

영화 속에서 머스크는 설정상 스타크가 만들어낸 “멀린 엔진”을 극찬하고 그로부터 전기제트기에 대해 착상하였다고 말한다. 이에 스타크는 그 착상을 현실화하자며 구두로 협업을 약속한다. 그런데 이 ‘멀린 엔진’이라는 것은 사실 현실 속에서 머스크의 기업 SpaceX가 개발해 낸 로켓 엔진의 이름이다. 즉, 영화 속 스타크가 발명해낸 것은 현실에 있는 것이고 바로 머스크의 기업이 해낸 것으므로, 영화 속과 현실 사이가 연결되고 둘은 같은 인물이 된다. 물론, 머스크는 이미 현실 속에서 거대한 성공을 거둔 실리콘 밸리 출신의 자본가로, 물리학 지식에 기반하여 로켓 디자인에도 참여하는 기술자로서의 능력도 가진 것으로 매우 유명하다. 그는 이미 해당 분야의 대표적 인물인 것이다. 그러나 그가 영화 속의 스타크처럼 직접 혁신적인 기술개발을 수행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의 커리어 상에서의 성공은 모두 경영자로서 이룬 것이다. 그러나 매체와 담론 영역에서 그는 그가 운영하고 있는 기업체 전체, 그리고 그 기업들이 만들어 낸 기술적 생산물들 전체와 곧바로 동일시된다. 마치 만다린이 가상적으로 테러조직 전체를 하나의 자기 인격 안에 담는 것처럼, 머스크 역시 자신의 기업들 그리고 관련 산업 영역 전체을 표상하는 인물이 된다.

수퍼히어로물의 주인공과 동일시가 되면서 머스크가 갖는 이런 대표성은 더욱 확산되며 신화로서의 성격을 공고히 하게 된다. 전세계인이 머스크를 보며 “아이언 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아이언 맨”을 보면서 머스크의 이야기를 한다. 이처럼 특히 기술-자본의 결합을 대표하는 인격을 중심으로 현실 인물에 대한 영화적 신화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그 자체로서 새로운 현상이며 또한 매우 의미있는 문화적 현상이다. 그리고 이 문화적 현상의 중심적 대상이 되는 것이 바로 기술이다. 그렇다면 영화 속 스타크와 현실의 머스크가 결합하면서 현대의 신화를 써나갈 때, 기술에 대한 조명은 어떻게 이루어지며, 구체적으로 그 인물들의 어떠한 실천과 결합되는가? 이런 결합 지점이 바로 문화로서의 기술의 현황과 미래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끔 만들어주는 단초가 된다.

3. 신화적 인물의 기술 실천

이러한 인물의 기술 실천은 다음의 세 가지 양상을 보인다. 첫째는 수퍼히어로 혹은 신화적 인물의 힘의 원천으로서의 기술이다. 앞서 다루었던 바에 의하여, 수퍼히어로물의 주인공들은 현실 속의 저명인과 직접적으로 겹쳐질 수 없다. 대부분의 수퍼히어로들의 힘과 능력은 환상적인 원천, 혹은 우연한 사고로부터 기인하는 것으로, 체계적인 계획, 교육에 의하여 주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언 맨’의 힘과 능력은 자연-물리세계의 법칙을 따르는 과학기술을 통해서 주어지기 때문에, 물론 그 영화 속에서의 묘사는 환상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인 이성의 사용을 통해 실현될 수 있는 것, 추구할 수 있는 것이 된다. 그래서 “아이언 맨”은 수퍼히어로물일 뿐만 아니라, 그것들 중 유일하게 science fiction으로도 분류된다.

둘째, 기술은 신화적 인물에 의해서 생산되고 활용됨으로써 더 나은 미래의 기술이 된다. “아이언 맨” 2편에서는, 현실 속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관심의 대상에서 벗어나고 영향력을 상실한 박람회(Expo)를 영화 안에서 부활시킨다. 토니 스타크는 아버지 하워드 스타크가 제시했던 비전을 자신에게 열광하는 우리 시대의 인물들에게 다시 보여준다.

“모든 것이 기술을 통해 성취가능합니다. 더 나은 삶. 더 나은 건강. 그리고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평화의 가능성까지. … 기술은 인류를 위한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습니다. 곧, 기술은 당신의 일상을 살아가는 방식에 영향을 줄 것입니다. 더 이상의 지루한 일은 없어지고 더 많은 여가활동을 위한 시간을 가지며 달콤한 삶을 즐기게 됩니다.”

– 하워드 스타크, “아이언 맨 2” 스타크 박람회에서 재생되는 녹화된 연설 중

이러한 발상은 이미 낡은 기술결정론-기술유토피아주의이다.[4] 그러나 현실 속에서 기술이 아무리 사회적 조직양식이나 문화적 실천, 권력관계 등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아무리 그러한 기술발전이 인류가 겪고 있는 여러 고통의 원천들을 완전히 끝내는 데 실패하고 오히려 새로운 위험요소들을 가져왔다고 하더라도, 이런 오래된 논의가 다시 소환되는 것이다.

현실 속의 머스크가 대중 담론을 형성할 때 수행하는 주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대중에게 기술에 대한 상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영상매체 “TED”에서의 머스크 강연에서, 사회를 맡은 크리스 앤더슨은 그에게 왜 하필 실리콘 밸리 스타트업으로서 자동차 산업 – 이미 거대한 업체들에 의해서 과점되어 있는 산업에 진입하려 하는가에 대해서 물었다. 이에 대해서 머스크는 그 자신이 이미 “대학 때부터 세계와 인류에 어떤 것이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칠 것인가를 고민하였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 그 고민의 결과 “지속가능한 수송수단과 에너지 생산이 인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는 것이다.[5]

일종의 겸손함의 외양을 지니고 있지만, 깊이 살펴보지 않더라도 이러한 시각이 하워드 스타크가 제시하는 기술결정론-유토피아주의의 사고방식 위에서 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스타크 그리고 머스크와 같은 기술-자본가들은 기술이 미래를 결정하지는 않더라도 가장 큰 영향력을 가졌으며, 세계를 경제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발전시킨다는 담론을 끊임없이 설파한다. 실리콘 밸리의 기업들과 그들을 모방하려는 세계의 스타트업들이 한 목소리로 되뇌이는 말은 그들이 그리고 그들의 상품이 “세계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든다(make the world a better place)”는 관용어이다. 이들은 학술적인 진리 주장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닌데, 왜냐하면 그러한 진술을 하고 승인받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명제의 진위여부 같은 것은 우리 시대에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그저 스스로의 실천에 대해서 스스로가 생각하는 바를 담담하게 말할 뿐인 그런 태도를 견지한다. 그러나 우리 시대에 이들이 아닌 다른 그 어떤 자들도 결코 자신의 실천 혹은 직업에 대해서 스스로 이러한 평가를 내리지 못한다. 왜냐하면 발전해온 사회세계에 대한 객관적인 관찰과 기술(description)은 어떠한 위치나 지위를 점하고 있는 사회구성원이나 집단들도 결코 자신들의 이해관계, 혹은 더 근본적인 자기 위치에 의해서 규정되는 인식 관점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며, 자기 실천이 보편적으로 합리적이라거나 정당하다는 주장을 그 누구도 할 수 없도록 만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생각해 보면 이러한 기술-자본가 혹은 경영자들의 자기긍정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러한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자기 정당화는 기술-자본의 결합 가운데에서 명백하게 기술 축에 기반하는 것이다.

셋째, 신화적 인물은 기술을 통해서 이후 세대를 자기 자신과 동일한 유형의 행위자로 재생산한다. 테드의 앤더슨은 또한 머스크와의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어떻게 하면 그처럼 어느 한 측면만이 아니라 기술, 디자인, 경영을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는지, 특히 교육과정을 통해서 이후 세대가 그러한 능력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없을지에 대해서 묻는다. 이에 대한 머스크의 대답은 “물리학적으로 사고하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명백한 과학적 추론에 따라서 모든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라는 의미였을 이러한 대답은 기술, 디자인, 경영의 통합이라는 가치 있고 선망의 대상이 되는 능력-특성이 기술을 중심으로 정체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앤더스은 이러한 머스크의 대답을 듣고서 이렇게 말한다. “보고 있는 소년 소녀들은, 물리학을 공부하십시오. 이 남자에게 배우세요. (Boys and girls watching, study physics. Learn from this man.)” 여기서 물리학은 실제 물리학, 단순한 분과학문이 아니라 머스크의 사고방식, 기술자로서의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영자로서의 실천, 그의 정신과 생활방식까지 그 모든 것들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즉, 미래세대는 머스크라는 인격을 모방하도록 권유받는 것이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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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아이언 맨’ 수트에 대한 개선 의견을 내는 소년

이처럼 단순한 우상, 열광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모방의 대상이 되는 인물로서의 기술-자본가의 모습은 영화 속에서도 제시된다. “아이언 맨” 시리즈 전체에 걸쳐서 그를 우상으로 삼고 따르는 인물들로 어린 아이들의 이미지도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단순히 스타크를 우상으로 삼는 것을 넘어서 3편에서는 그와 협력하는, 특히 기술적으로 협업하는 어린 소년이 나온다. 적들의 습격에 의해 근거지를 잃고 도망친 스타크는 엘리트 교육기관이 있을 리 없는 시골 마을의 어느 가정집 차고로 숨어든다. 여기서 스타크는 한 고아 소년과 만나게 되는데, 이 아이는 처음에 스타크의 예상을 뛰어넘는 완성도를 가진 공기총으로 그를 위협하고, 이후 소년의 기술적 작업공간인 차고 안에서 아이언 맨 수트를 수리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차고에서의 기술적인 작업이라는 것은 실리콘 밸리로 대표되는 기술 자본의 산실과도 같은 상징적인 공간이다. 여기에서 스타크와 소년은 연령이나 교육수준을 넘어서서 오로지 실력만으로 서로를 인정하고 대등한 동료의 위치에서 협력한다.

순수한 능력주의의 장이자, 메리토크라시를 정당화하는 데 가장 큰 근거로 작동하는 기술의 영역 안에서 이 소년은 이미 미래의 스타크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스타크는 특수하고 이질적인 영웅인 것이 아니라 그것이 비공식적일지라도 교육, 제도, 지도 등에 의해서 양산이 가능한 매우 정상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인간형 가운데 하나가 되는 것이다. 하나의 인물 상, 인간형이 의지와 노력을 통해서 도달가능한 것으로 상상되고, 그것이 사회적으로 매우 큰 보상과 높은 지위를 가지며 강력하게 정당화될 때 이것은 합리적 선택을 넘어서 한 사회의 ‘규범적 우세종’이 된다.[7] 머스크와 스타크는 단순히 부러워할 만한 성공한 개인이 아니라 닮기 위해 노력하고 적극적으로 모방해야 할 존재인 것이다. 그리고 역시 그들을 그러한 존재로 만드는 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능력이자 특징이 바로 기술자 혹은 과학자의 정체성인 것이다.

4. 신화의 효과들

다시금 상기해야 하는 것은 이처럼 영화가 현실 인물을 신화화하고, 현실의 인물이 영화의 인물과 공통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면서 자본과 결합한,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여전히 순수하고 열정적인 기술자로서의 정체성을 내세울 때, 이것이 서두에서 다루었던 ‘만다린’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임, 전략적인 연기이자 자기표현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을 사용하는 주체는 우리 시대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특수한 분야의 자본가들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전략은 매우 큰 성공을 거두어 스타크도 머스크도 각각의 세계에서 가장 큰 정당성과 권위를 갖고, 또한 가장 모범적이고 바람직한 인물이 된다.

그러나 스타크는 환상의 인물이고, 머스크는 과학-기술자로서의 정체성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처럼 기술자본가들이 기술이라는 표상을 상징성을 수단으로 하여 가장 현대적이고 유효한 헤게모니를 확보할 때 실제의 기술자 직업집단은 어떠한 이익과 손해를 얻는지, 그들의 위치와 지위는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머스크를 비롯하여 많은 가장 거대한 부를 소유한 자본가들 가운데 기술자 출신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부와 명예가 이러한 기술자 출신 자본가들에게 집중되고 있는 현재의 양상은 직업인으로서의 기술자와 기술자 집단의 재생산에 이로운 환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러나 만약 기술이 당연하게 자본과 결합하고 산업적으로 이용되는 방식으로만 작동하고 발전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기술을 비산업적-상업적인 방식으로 다루거나 사유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상실될 수 있다. 아도르노의 문화산업에 대한 관찰을 기술산업에 적용시켜 볼 수 있다면, 기술과 자본의 결합의 결과물인 산업을 통해 대규모의 수요와 결합하고 자본이익을 내는 모든 것들은 오로지 그 이유만으로도 정당화되어 실로 유의미한 것인지, 혹시 허섭쓰레기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에 대한 물음을 면제받게 된다.[8] 기술이 돈을 버는 데 쓰여서는 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기술에 향방에 대해서 더 공적이고 보편적인 방식으로 다룰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과학기술정책은 높은 정도로 산학 협력을 지향하고 있고, 주요 대학의 공과대학에서는 기업가 정신을 함께 가르치는 프로그램들이 생겨나 기술과 자본(산업)은 분리불가능한 통합적 일체로 만들어가고 있다.

특히 이러한 위험성은 자본가도, 기술자도 아닌, 특히 사회 속에서 비교적 미약한 다수의 사회구성원들이 기술-자본가의 이데올로기에 포섭되어가는 정도가 커지고, 과학기술에 대한 통제력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낮아짐과 함께 증가한다. 아도르노의 논의를 반복하자면, 기술에 대한 신화는 기술과 그것의 사회적 작동에 대한 진정한 이해를 불가능하게 하고, 더욱 어둠 속으로 파묻히도록 할 것이므로, 그렇다면 자본가도 기술자도 아닌 여타 사회구성원들이 그에 대해서 지분을 주장하고, 각자의 이익을 위해서 이용하고, 통제력을 가질 수 있는 전략들을 세우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이 기술을 포섭하면서, 기술과 다른 사회구성원 집단들이 맺는 관계가 상품과 소비자로 수렴된다면 과학기술에 대한 민주주의적 접근 같은 것은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특히 미약한 사회구성원들이 기댈 수 있는 규범적이고 제도적인 보루이다. 권력과 과학기술이 결합하면서 사회가 민주성을 잃고 다수의 사회구성원들이 피지배 상태에 처하고 말 것이라는 기술적 통제사회에 대한 공포는 이러한 이유에서 생겨났다. 그러나 영웅화되는 기술자본가라는 인물의 신화는 이러한 근거 있는 우려 혹은 공포를 마비시키는 것이다.


읽을거리

테오도르 아도르노 • M. 호르크하이머, 김유동 역, 『계몽의 변증법』, 문학과지성사, 2001.

pppp근대적 합리성-근대의 합리주의를 비판한 것으로 유명한 이 책은 표면적으로는 기술과 관련해서는 그다지 본격적이지 않고 특별할 것이 없는 저술일지도 모른다. 기술을 대표적인 도구적 합리성의 사례로 본 이들은 설령 기술 자체는 중립적일 수 있더라도 현재는 지배계급의 지배수단으로 쓰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두 사상가의 더욱 특별한 점은 도구 자체가 구체적인 사상이나 입장, 지향이 될 수 있음을 전력을 다해 논증한 것이다. 예를 들어, 기술과 같은 도구적 합리성이 작동하기 위해서 필요한 수량화 혹은 디지털화는 도구 자신의 성격일 뿐만 아니라 적용 대상의 성격도 강제하며 결국 결과의 본질까지 결정한다. 이러한 점에서 기술을 사유하는 데 있어서도, 긍정/부정과는 별개로, 이 책의 접근방식은 그 시야와 깊이를 넓혀주는 데 도움을 준다.

찰스 테일러, 이상길 역, 『근대의 사회적 상상』, 이음, 2010.

ppppp이 책은 부제에 적혀 있는 (시장)경제, 공론장, 인민주권이라는 세 가지 ‘시공간적으로 특수한’ 제도 혹은 질서의 성격과 출현과정에 대한 분석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저자의 접근방식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은 상상이 실재적인 제도로 이어질 수 있는 논의의 근거를 마련했다는 데 있다. 헤겔철학의 관념론적 성격을 수용-발전시킨 철학자 테일러는 개인의 상상은 상상으로 끝나지만, 공유되는 상상은 개인의 행위를 변화시키고 그러한 실천들이 축적되면서 정형화된 실천의 형식-제도로 이어진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책이 출발시키고 있는 접근법은 단순한 경제결정론이나 제도결정론을 넘어서서 어떻게 관념(idea)이나 인지표상, 문화적 사고방식의 차이 같은 것들이 실물적인 변화를 추동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도와준다.


[1] 테오도르 아도르노 · M. 호르크하이머, 김유동 역 (2001), 『계몽의 변증법』, 문학과지성사, p. 16.

[2] Jon Favreau, “THINKERS : Elon Musk,” Time, 2010년 4월 29일, http://content.time.com/time/specials/packages/article/0,28804,1984685_1984745_1985495,00.html.

[3] Eric Johnson, “SpaceX CEO Elon Musk has done the ‘real’ Iron Man several favors,” Recode, 2016년 10월 12일, http://www.recode.net/2016/10/12/13259344/elon-musk-iron-man-jon-favreau-tony-stark-spacex-recode-podcast

[4] 이두갑·전치형 (2001), 「인간의 경계 : 기술결정론과 기술사회에서의 인간」,『한국과학사학회지』, 제23권 제2호, p. 166-168.

[5] “Elon Musk: The mind behind Tesla, SpaceX, SolarCity,” TED, 2013년 2월 촬영,  https://www.ted.com/talks/elon_musk_the_mind_behind_tesla_spacex_solarcity?language=ko.

[6] 앞의 영상

[7] 김홍중 (2009),「진정성의 기원과 구조」, 『한국사회학』제43집 5호, p. 166.

[8] 테오도르 아도르노 · M. 호르크하이머, 김유동 역 (2001), 『계몽의 변증법』, 문학과지성사, p.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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