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메타과학기술정책인가: 해외동향∙연구자 민원처리∙화려한 담론을 넘어서기 위한 과제는?

안오성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ohsung@kaist.ac.kr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의 박사과정으로 있는 안오성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 지난 12월 22일(목)에 개최한 제407회 과학기술정책포럼(제목: ‘혁신정책연구의 현재와 미래 : 과학기술-경제-사회의 Tripod’)의 패널 토론자로 참석했다. 포럼은 정재용 KAIST 기술경영학부 교수의 발제에 이어 안오성 책임연구원 외로도 이정원 STEPI 부원장, 홍형득 강원대 행정학과 교수, 용홍택 미래창조과학부 과학기술정책관의 글로벌 수준에서의 혁신정책연구 현황 및 미래, 향후 과학기술혁신정책연구 이슈에 대한 토론으로 진행되었다. 이후 <과학뒤켠>에 해당 토론에 참여한 안오성 책임연구원이 토론 내용을 복기하며 포럼 후기 및 해당 주제 리뷰를 보내왔다. 그의 글과 함께 ‘메타’과학기술정책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보는 것은 어떨까.

*발표 자료동영상은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 홈페이지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본 토론의 배경이 된 것은 한국과학기술 행정이 시작된 지 50년, 과학기술정책대학원(STEPI) 30주년을 맞아 전환의 모티브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행사의 동기로 제시된 “오늘날 경제사회의 빠른 변화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과학기술 혁신을 통한 바람직한 미래 창출을 원하는 사회적 기대가 높아지고 있는” 무거운 책임의식과 함께, 국가혁신정책의 비효율성의 근원과 개선의 방향,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STEPI와 같은 정책전문조직이 무슨 일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해보고자 하였다.

영상을 통해 포럼을 복기하는 필자에게도 참여자들의 발표는 최고수준이라 할만하다. 깊은 열정과 열림, 폭넓은 이해와 전문성이 모두 느껴진다. 하지만, 포럼이 앞에 언급했던 개최목적과 기대에 충분히 부응했는지, 그리고 포럼에서 무슨 가치와 어떤 배움을 공유할 수 있을지는 또 다른 문제다. 필자는 이런 문제의식들을 토대로 본 리뷰를 작성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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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오성 (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책임연구원)

정재용 교수의 발표는 실로 방대한 빅데이터 조사에 기반을 두어 과학기술혁신정책의 세계적 동향을 Entrepreneurship, Network, Collaboration, Sustainable, Energy, Transition, Social 등의 7개 키워드로 정리하였고, 연구 동향에 있어서는 혁신 형태의 대전환 (예를 들어 톱다운연구에서 풀뿌리연구의 강조) 등이 식별되었다.

혁신전략의 기본요인인 정책환경의 변화에서는 양극화, 저성장, 시스템 실패 3가지 면에서 해외동향을 진단했고, 그중 양극화 현상 관련하여 성과의 배분 문제뿐 아니라 지적 재산권 정책 부진 (지재권의 전유-공유시스템 미정착)이 제기된 것은 주목할 지점이다. 후자는 우리나라 혁신정책의 난맥상을 타개할 핵심 주제라는 것이 필자의 평소 소신이다. 선도국의 빠른 혁신역량을 고려할 때, 최근 대학을 중심으로 강력하게 요구되는 연구자의 자율연구, 풀뿌리 연구와 함께 지적재산의 연계성과 공유성 문제가 대두하고 있다. 연계성 확보로 ‘묻지 마 지적재산’ 문제를 넘어서고, 공유성 확보를 통해 공공성을 높이려는 취지이다.

순수기초연구의 요람, 미국에서조차 활용처(산업, 응용연구기관)와 연계된 목적형기초연구가 강조되고 있다. 우리와 같이 혁신역량의 열세국가에서는 지적재산의 연계성뿐 아니라, 공유성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혁신주체들이 연구결과를 사유화하고 그로서 국가 연구과제 사업 ‘수주’ 경쟁력에 안주하기보다는, 지식재산의 전유-공유 체제의 공교한 설계를 통해 국내연구역량의 협력기반을 강화하는 것이 과기정책의 핵심사안 중 하나이다. 그러나, 현실은? 연결고리 역할을 해야 할 출연연은 연구과제중심제 (Project-Based System, PBS) 로 인해 산업, 학계 그리고 타 연구기관과 경쟁해야만 하는 ‘이익단체’로 내어 몰렸다. 심한 표현인가? 같은 기관 내에서조차 세부조직단위 간 과제수주경쟁으로 협력이 저해된 현상은 이미 여러 정책의제 경로에서 확인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기관별 정책기능과 연구전략 기능의 대부분이 단기적 리더십과 관료의 지배하에 처한 상황에서, 학계의 선행연구와 산업/국방/공공 부문의 개발연구를 이어줄 국가연구기관의 연계역할(응용연구, 목적형기초연구 심화, 시범운용 등)과 국가 연구사업의 장기적 정책리더십에 관한 구조적 한계를 찾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전적인 권한 이양이 답이 될 것인가? 이 또한 중간연결조직, 정책 소양을 가진 전문가 집단의 성장, 그리고 이들의 결합을 도울 수 있는 정책 환경이 아니고는 한계가 클 것이다.

바로 이러한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저 요인’에 의해, 정 교수가 언급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확산하는 시스템의 연결성 미진 ‘현상’과, 신기술 출현(융복합 연구 결과 등)에 의한 산업이 체감할 수 있는 성과 미진 ‘현상’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시스템 실패현상으로 제시된 “새로운 기술경제 패러다임 출현을 선도할 새로운 산학연 협력 시스템 미 출연” 또한 앞서 제시한 기저 요인의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그 기저 요인을 얼마나 다루고 있을까? 현상적 문제 파악과 대증적·파편적 대안만 반복되어 왔다면, 이제 정책 인들의 접근 방법은 달라져야 한다.

정 교수의 발표로 돌아가 보면, 혁신정책의 구조라는 중요한 개념을 제시했다. 우선 새로운 혁신정책은 과학기술만이 아니라 경제, 사회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 유럽 미국 등의 혁신정책 동향은 4가지 키워드, Holistic, Interactive, System, Integrative 로 압축했다. 이 관점에서 우리나라 과기정책의 과제를 다음 두 개 항을 포함하여 총 6개 과제로 제시했다.

  • – 신기술, 신산업 육성을 위해 요구되는 ‘정부의 기업가 정신’의 중요성 부상
  • – ‘기술공급지향’에서 ‘수요견인’으로 전환을 지속가능한 성장의 핵심의제로 제시

 

위 발제는 “혁신정책 연구의 현재와 미래, 과학기술-경제-사회”라는 거대주제를 포괄적으로 담아내었지만, 발표자가 언급한대로 우리의 ‘현재’는 제한적으로 다뤄졌다. 발제 환경이나 제한된 시간을 고려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발표 자체보다는 해외에서 뜨는 주제, 뜨는 정책 동향을 면밀히 살펴온 우리의 ‘정책연구의 관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잠시 생각해보자.

과기정책 인들이 일반적으로 동의하는 지점은, 우리나라는 지나친 ‘정책 아이디어 쇼핑’, 즉 해외동향에 기민하게 반응했던 것이 외려 문제라는 점이다. 아무리 면밀한 해외동향분석이라도, 우리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그만한 무게로 균형을 이루지 않으면 결국 우리에게 맞지 않는 옷을 비싼 값 주고 사는 격이 된다. 즉, 우리에게 절실한 정책을 도입하면서도 핵심 속감은 엉뚱한 경우도 가능하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정책실험’이 이뤄지고 있지만, Lessons Learned의 분석과 기록유산은 일천하다.

일례로, 미국의 목적형 R&D Small Business Innovation Research (SBIR) 제도, 미국 방위 고등연구계획국 (Defenc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DARPA) 식 경쟁형 도전적 연구과제 추진을 들 수 있다. 두 제도 모두 우리 현실에 매우 필요한 정책이지만, 잘 정착하지 못하고 있고, 성공적 정책실험에 이은 정책 확산은 더욱 곤경에 처해있다. SBIR제도 도입은 왜 실패하고 있을까? 발주기관이 행정부처가 아닌, 수요연구 기관이어야 하고 ‘존재하지 않는 기술’의 첫 시범적용시장을 전제로 추진하는 신규기술-신규시범 시장의 기획과 복수경쟁개발 및 실패에 대한 귀책면제가 핵심이지만 우리나라 연구사업의 선정·평가·감사 등에 관한 상위적 혁신이 아니고는 담아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DARPA식 프로젝트 매니저 (Project Manager, PM) 제도는 왜 실패할까? 같은 원리로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사업관리자, PM에 주제발굴, 팀 구성, 목표 및 예산조정 관련 전권이 주어져야 하고 또한 이런 역할을 감당할만한 훈련된 사람의 육성이 필요하지만, 우린 이것이 빠진 채 도입했다. 산업부, 미래부, 국방부 모두 이와 유사제도를 도입했지만, 유사한 형태로 권한은 적고 책임만 전가하거나, 이 두 가지 모두 제한된 형태로서 과감한 도전적 연구가 실질적으로는 불가능하다. 이 두 가지 사례 외에도 현실은 더 참담하다. 원인 진단 없이 폐기되거나 사문화된 정책의 무덤. 대표적 사례가 중소기업기술개발제품 우선구매제도이다. 이 제도는 OECD가 2014년도 발간한 한국경제 보고서에서도 잘 활용할 것을 권고한 것을 통해 필자도 주목하게 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이 제도를 90년대에 만들었지만 사문화되었다는 점이다. 최근에 개선 대안을 연구한 정책연구결과물 또한, 여전한 기존체제 내에서의 대안 담론-즉, 인증제도, 전주기 연구개발 제도와 병행 등의 범주에 속한 관료주의적 개선안들-을 내어놓고 있지만, 어떤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해외동향과 정책아이디어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원인은 세 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다. 첫째, 우리만의 고유한 정책 철학의 부재. (뿌리가 없으면 솔바람에도 쉬이 흔들리듯) 둘째, 공공정책 실패사례 혹은 실질적 폐기 상태에 들어간 정책들을 역사학자가 들여다보고 정리할 기회가 적었다는 점. (정책형성 과정이 부실하거나, 근거자료가 남아있지 않으면 들여다보기조차 어렵다) 셋째, 본질적․ 구조적 정책혁신 과제의 지연과 적체를 가려줄 ‘이쁜 마스코트’ 전략의 필요. (철학의 부재를 가려줄 섹시한 야마를 늘 좇고 있다)

특히, 이쁜 마스코트 전략은 과학기술과 신산업 육성 관련 국가정책의 부실 문제가 붉어질 때마다 출연연에 관한 폭로성 기사(감사부문, 언론 분야의 정설은 출연연이 가장 깨끗한 집단이라는 암묵적 공감대에도 불구하고)로 언론이 장식되는 현상과 연결하여 이해할 수 있다. 즉, 언론과 국정보고에 미래의 중후장대한 계획을 띄우려면 자연스레 그 그림자(부실했던 과거 정책의 추억)가 부담스럽게 된다. 이때, 그 과거의 부실에 대한 담론을 출연연의 문제로 치환하면, 정책 담론에서 과거의 부담은 줄고 미래 담론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이 두 개 전략이 연결되어 있다고 필자는 판단한다. 이처럼 우리나라 정책 담론은 출연연의 문제로 왜곡·축소되고 정부가 발표한 중후장대한 계획은 한동안 언론에 노출된다. 좀 잊힐만할 때 무늬만 다른 어떤 것에 무대를 내어줄 때까지. 바로 이 지점이 필자가 감탄하면서도 (그 많은 정책실패 담론을 효과적으로 비껴간 점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는 지점이다.

바로 이런 관점에서, 우리가 그 많은 토론회에도 불구하고 정책 철학 부재라는 현실자체를 의제로서 만날 수 없었던 구조적 원인을 추측해 본다. 바로 정책경쟁주체의 부재와 민주적 토론의 장의 부재. 이를 다시 뒤집어 보면 정책경쟁 주체 역할을 해야 할 학계/연구계의 공공정책 마인드 ‘한계’(‘부족’이라 표현하기보다는)와 ‘정책 의존성’을 들 수 있다. 학계/연구계가 속한 집단의 이익 대변에 천착해온 점에서 ‘한계’와, 공공성에 관한 책임은 정부에 돌리는 점에서 ‘정책 의존성’이다.

따라서 해법은 더 높은 상부와 국가운영 시스템, 그리고 이를 중심으로 형성된 지성의 공백을 동시에 다뤄야 한다. 우리 사회 전반에서 그동안 계획경제의 신화 속에서 견고히 뿌리내린 관료주의, 아니 관료독재체제라 할 만큼 공고해진 정부 중심의 정책형성․ 정보독점체제. 그리고 이러한 경로에 대한 적응과 의존 문제. (문화 혹은 리더십 문제로 표현하기보다는) 달리 표현하면, 중간전략/중간실행에이전트의 육성과 권한 이양에 관한 담론의 공백을 정책 중심의제화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성찰적 견지에서 볼 때, 정책현장의 진단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홍형득 교수의 토론 발제는 잘 이어진다. 그는 우선 혁신정책의 범위와 영역에서 과학정책, 기술정책 등이 포괄-혼재된 우리나라 혁신정책의 맥락적 양상에 대한 비판을 제기했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현재의 발표는 이러한 포괄-혼재성 위에, 시장경제와 사회 관점을 포괄하는 것으로 한 단계 더 확장된 형태라는 뼈 있는 진단을 내렸다. 즉, 정책 담론의 세분화, 응축, 구조적 접근 필요를 제기한 것이다.

특히, 해외 학술연구단체의 미래 키워드 조사, 우리의 과거 경로의 확장 형태로서는 새로운 시대를 대비한 혁신정책 패러다임 도출이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책의제 형성, 제도화 과정 자체를 혁신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리란 의미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책연구에 있어서 이론적(개념정립) 이슈와 정책적(문제 해결) 이슈의 혼재 현상을 지적해 주었다. 특히, 전술한 바와 같은 4차 산업혁명 같은 혁명적 미래가 요구하는 불연속적 환경을 전제한 새로운 혁신생태계, 혁신플랫폼 조성을 반영하여 경로 의존적 정책패러다임의 탈출을 강조했다. 끝으로 혁신정책은 정부의 역할변화-주도자에서 지원자로의 전환–가 핵심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홍 교수의 경로 의존적 정책패러다임 탈출, 정 교수의 탈 추격형 새로운 기술경제 패러다임은 모두 대대적인 전환이 필요함을 역설해 주고 있다. 필자가 발제 발표한 것은 바로 그 대전환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실행적 과제에 방점을 두었다.

우선 필자는 두 가지 화두를 주제로 삼았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질문은 무엇인가? 현상적·대증적 대안 나열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놓치고 있는 많은 질문 중에는 우선, ‘연결고리 담론의 부재 혹은 의도적 배제’를 들었다. 일례로 이날 발제발표의 경우에서도, 해외 동향이나 “우리가 그동안 톱다운으로 꿈을 많이 팔아왔다”는 큰 주제의 반성에 이어서 제기되는 실행 대안은 대개 상위적 개념에 맴돌거나, 최하단의 구체적 실천적 담론(일례로, “과제기획과 전략적 실행을 잘 하자”라는 대안제시 등)으로 축소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접근은 포괄성과 구체성을 모두 만족하게 하는 듯하지만, 실제적으로는, 톱다운의 실행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중간전략/중간실행에이전트의 육성과 권한 이양 과제/중간에서 정책의 건전성을 검증할 정책경쟁 프레임 부재 등을 담론의 중심에서 배제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한마디로, 큰 이야기와 세부적 대안 사이에 핵심 중간 담론이 걸러지는 메커니즘이 반복되고 있는 현상을 생각해 보자고 주장했다

또한, 그동안 많은 혁신 담론과 정책실험이 있었지만, 어떤 시도와 실패가 있었고 왜 실패했는지, 특히 왜 실패가 반복되는지에 관해 책임 전가와 원인진단이 축소되는 문제를 주목할 필요도 피력했다.

해외 혁신 동향 연구 관련, 정 교수가 제시한 키워드 조사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최종 선정된 7개항에서 제외된 ComplexityEvolution에 주목할 필요도 제기했다. 이 두 개의 키워드가 갖는 정책적 시사성 때문이다. 즉, 장기적 연구개발보다는, 복잡한 대규모 개발을 여러 단기 단계로 나누어 진화적으로 개발-획득하는 ‘단기성, 실증성, 책무성’이 강조된 정책개념을 반영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미 국방성을 중심으로 2000년대 초반부터 중후장대한 장기과제들의 반복된 실패에 대한 성찰적 반성을 통해 단계적·진화적 개발-획득으로의 대전환이 이뤄졌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 현상에 기저 요인은 무엇인가? 발주자 (정부)의 더 많은 책임과 위험부담 수용이라는 발상의 전환에 있다. 우리의 연구현장은 수많은 담론에도 불구하고 본질은 반대로 가고 있다. 공공정책의 도전이 여기서 드러난다. 책임과 위험을 민간과 정부가 어떻게 공유하고 분담해 갈 것인가에 관한 문제. 과제 단위별 감사가 아닌, 상위 정책적 평가의 방향과 기준, 무엇보다 과학기술 연구 결과가 한국사회 혁신에 더 큰 도움이 되는 데 필요한 구조적 혁신안은 지속적으로 도전하고 개선해야 하는 상위적 과제다.

국내에 최적화된 과기정책을 만들기 어려운 현실과 관련하여, “우리만의 과기정책이 없다”는 비판 담론 자체도 오히려 현실 왜곡일 수 있다는 점을 주장했다. 즉,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누군가가 없다는 점을 드러내지 않고서, 애먼 보고서의 부실이나 부재를 거론하면 “보고서만 다시 잘 쓰면 될 것”이라는 논리가 암묵적으로 작동하게 된다. 보고서, 전략이 부실하다는 현상진단은 의미가 없으며, 이를 담당하고 견제할 에이전시의 부족, 과기정책의 민주화와 관련된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권한을 독점한 정치 행정의 문제와 책임을 하청부하는 현상, “합의안을 가져오라”는 태도가 아닌, 의제를 주도하고 민주적 합의를 이끌어가는 새로운 리더십 모델의 필요를 언급했다.

이어진 미래부 용홍택 과학기술정책관의 발표는 차분하면서도 진지했다. 향후 과기정책의 핵심 키워드로써 사람, 분권, 융합이라는 세 가지를 제시하고. ‘사람’ 관점에서, PBS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연구자를 먼저 선정하여 그의 연구경력, 역량, 창의성에 맞는 분야를 지원하는 방향으로 전환해 갈 계획을 언급하였다.

‘분권’이라 함은 全 과제를 전문기관이 선정·관리하던 방식에서 탈피, 산학협력단에 믿고 맡기는 방식 적용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자유공모형 기초연구사업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되 대학 등 각 연구기관에 ‘덩어리 예산’으로 맡기고 3~5년 뒤 연구사업 성과를 확인하는 신뢰기반 분권으로의 지향성을 강조했다.

‘융합’ 관련, 정부예산이 각 부처에서 따로따로 예산을 공급하던 관행을 깨고, 사업 단장에게 하나의 통합된 예산으로 공급되게 하는 실질적 융합연구 방안이 소개되었다. 즉, ‘부처매칭형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예리한 독자라면, 필자의 발표 때까지 타올랐던 담론의 확장이 여기서 갑자기 차분히 사그라짐을 느낄 것이다. 합리적 정책개혁 과정은 차분함과 뜨거움을 둘 다 요구하며, 차분함은 공공성의 지킴이인 관료의 최고 덕목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두 가지를 연결하고 통합할 숙의의 과정에 있다. 서로의 다름을 확인하고 그 접점에서 진지한 끝장토론을 이어가거나, 다음의 후속 토론을 어떤 지점에서 다시 시작할지 서로 합의하고 끝내는 진화적 정책토론의 장을 운영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사회자형 리더십 (권위자형 리더십과 대조적으로), 정책 형성체계의 구조화, 선진화라는 변화가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발표내용 참조)

플로어에서는, 그간 정책실험에 대한 평가결과가 있느냐는 중요한 질의(없다는 답변)와 연구자에게 과감한 권한 이양이 핵심의제가 되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이런 질의와 토론 발제에 대한 총체적 답변으로서, 정 교수는 불확실성을 받아들이지 않는 우리 문화를 키워드로 언급했다. 주요 사항을 정리하면, 4차 산업혁신이라는 거대담론도 선진국 추종형 혁신 담론일 수 있다는 지적; 특히 사람 중심 평가 체제로써 중간에 포기 가능한 연구가 중요하다는 점; 중간에 포기한 연구에 대한 불이익 면제 수준의 평가가 아닌, 포기하더라도 그 시도를 통해 달성된 학술적 역량 성과와 가치가 무엇인가를 질적으로 평가하고 인정해 주는 시스템; 기획자나 실행자나 서로 신뢰를 기반으로 한 모형설계와 정책실험이 진행될 필요를 강조했다.

이정원 부원장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 과학기술정책의 민주화, 민주주의를 강조했다. 정치경제 사회적 전환의 필요를 느끼고 변화를 꿈꾸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것은 하나의 기회로 볼 수 있다는 긍정의 신호로 해석해 주었다.

앞으로, 한국적 혁신정책의 전환적 개혁이슈는 어떻게 구체화 되어갈 것인가?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학계는 해외동향 기반 이론적 체계적 연구를 계속하는 가운데 우리만의 현실에 통합하는 데에 따르는 근본적 진단과 구조적 대안제시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정부는 기존 경로의 파괴적 혁신은 고려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 선택지는 많지 않고 제한적인 정책실험을 이어갈 것이다. 과학기술-경제-사회의 Tripod라는 거시적 담론은 기존 경로의 해체를 지향하는 파괴적 혁신의제와 병행되어야 한다. 그 시작 지점을 식별하는 것은 해외의 동향에서 찾기보다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찾자는 것이 필자의 발표요지였고, 이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책 경로의 파괴적 혁신은 이러한 포럼만 아니라 별도 전문위원회를 아무리 열어도 불가능하다. 그 사례는 최근에 공전하고 있는 여러 가지 형태의 상위자 보고용 정책의제경쟁경로(국과심, 전략회의, 자문회의 등)의 양태나, 관료의 입김으로 인해 들러리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는 출발위(출연연발전위원회)의 ‘자발적’ 혁신안 구상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시도는 왜 무력해지는 것일까? 기존의 행정관료들의 시각과 관점이 중심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또 왜 그럴까? 정책 담론의 장(Policy Venue)이 행정권력 내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시도도 무력해지긴 마찬가지다. 다수의 민간주도형 과기정책포럼에서는 반대편에서의 입장을 들고 나와 공개석상에서 뜨겁게 부딪혀 보아야 할 관료들이 나오지 않는다. 양 진영이 서로 다른 플랫폼에서 각자의 입장만 천명하는 행사를 진행하는 셈이다. 그 양 진영이 공개석상에서 부딪힌 드문 경우가 바로 이번 407차 포럼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여러 가능성과 아쉬움을 동시에 보여준다. 특히, 많은 이야기로 본질에 다가섰지만, 서로 부딪히는 접점이 겨우 확인되는 순간 포럼은 끝났다는 점에서. 사실은 바로 그 지점이 정책토론의 실질적 출발점이 되어야 함에도.

그래서 정책형성 과정의 개방화/민주화를 우선 과제로 생각한다. 그 환경 속에서 보다 심도 있게 역할을 할 정책전문인들이 부문별로 자라나고 대표성을 확보하도록 정진하는 것이 관건이다. 밀실정책/과기정책의 엘리티즘 문제가 자주 거론되지만, 민간 정책전문인들의 대표성 부재와 미성숙은 결과이자 원인이다. 새로운 정책방향과 합의의 과정을 지탱해 줄 철학적 기반을 제공할 지성의 강줄기가 전환의 핵심동력이기에.

그 철학적 기반 역시 해외 사례 연구로만 접근하면 한계에 직면한다. 우리만의 컨텍스트와 통합되어야 비로소 ‘철학’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토론과 포럼, 공청회는 결국 기존 경로를 바꾸지 못하고 모두 무위에 그칠 수도 있고 우리만의 새로운 과기정책 철학을 조성해가는 장이 될 수도 있다. 그 갈림길은 우리의 선택과 준비에 달려 있다.

한국이 당면한 위기는 지성의 위기이다. 이 지성의 위기를 알리는 경고음은 정부 탓, 관료 탓, 출연연 탓 등으로 소비되고 있거나, 너무나 거시적인 이야기들 속에서 질식되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고 ‘뒤켠’에 머물러 있다. 기존 경로 속에서 공공성의 대변인으로 잘 훈련된 정책가들과 기존 정책에 대한 파괴적 혁신의 필요를 자극하는 특정부문 정책전문인들, 그리고 이러한 이해관계자들 간의 합의를 매개할 이론적·철학적 토대를 든든히 하고 ‘전환의 공감대’를 확장해가는 ‘학자적 정책인’들과 과학기술정책 사회학자, 역사학자들의 뜨거운 지성 경쟁이 일어나야 한다.

이정원 부원장이 언급한 바와 같이 과학기술정책의 민주화는 시대적 과제이다. 하지만, 특정 의제와 관련한 다양한 이해관계의 충돌과 역사, 사회경제적 컨텍스트를 이해하면서도 여러 의제를 관통하는 체제 전환적 의제에 철학적 논리를 제공함은 힘겨운 도전이다. 그리고 또한 가치 있는 도전이다. 학자적 정책 인들이 성장하여 더 나은 정책 화두를 정책시장(Policy Venue)에 공급하고 공감대를 확산해 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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