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동물 위령제

이승준 (KAIST 생명과학과)

leesj1991@kaist.ac.kr


 

지난 5월말, 실험동물 위령제가 있었다.

학부 때부터 생명과학과 학생회를 하면서, 언젠가는 꼭 실험동물 위령제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몇 년간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지 꼬박 5년만에 대학원 봄 사업을 통해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그동안 한 학기에 한 번씩은 크고 작은 행사를 꼬박꼬박 해왔었는데, 왜 작은 위령제를 여는데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몇 주간의 기획 과정과 덥고 바람 심한 당일 실무를 뛰어준 후배들의 많은 노력 덕에 마음속 돌 하나를 내려놓을 수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실험실과 가까운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효모, 다음에는 애기장대, 나름 다양한 모델생물들을 경험해왔고, 지금 있는 연구실에서는 쥐를 사용한다. 처음 이 연구실에 와서 쥐를 다루고 실험하는 방법들을 배울 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 있다. 바로 처음 내 손으로 쥐를 죽였을 때다. 특별히 우리 연구실은 뇌를 연구하기 때문에, 희생된 쥐의 뇌를 바로 추출하여 샘플로 사용한다. 쥐를 케이지에서 꺼내고 내 손에 뇌가 들려 있었을 때까지 들었던 오묘한 기분은 글로 옮기기 힘들다. 그래봤자 작은 실험용 쥐이고, 연구에 필요하다는 당위성까지 있었지만, 무언가 죽인다는 불쾌함과 망설임, 죄책감 등이 뒤섞여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가 죽여온 많은 생명들은 단단한 외피가 있거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동물의 형태를 가지지 않았다. 털과 척추와 눈이 있는 무언가를 죽인다는 것, 그 숨이 끊어지는 찰나를 내 손 위에서 본다는 것은 머리로나 마음으로나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실험동물을 사용하는 연구에서, 실험동물의 희생은 필수적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정기적으로 동물 윤리 교육을 받고, 실험동물의 고통을 최소화 하는 실험법들을 배운다. 하지만 많은 교육들 중에 실험자의 입장을 고려하는 내용은 거의 없다. 매년 기억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생명을 희생시키는 실험자들의 마음속엔 분명 어떤 무거운 덩어리가 자리잡고 있다. 진지한 추모는 마음속 미안함(때로는 슬픔까지)을 해소하는데 효과적이고 가장 쉬운 방법이다. 실험동물 위령제에서 행한 짧은 추모는, 술을 마시거나 해외여행을 가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실험실 밖에 있게 했다. 준비된 국화 한 송이에 비하면 값진 휴식이다. 그러므로 실험동물 위령제는 사실 철저히 인간을 위해서 열린다.

 

 

동물실험을 많이 행함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카이스트에는 정기 실험동물 위령제가 없었다. 이번 위령제가 끝난 뒤, 학교 동물실험동에서는 내년부터 함께 위령제를 하자는 제안을 해왔고, 다른 과에서도 실험동물 위령제를 준비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일개 대학원생으로서 학내 문화를 바꾸는 데 일조했다는 생각에 소박한 뿌듯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어딘지 아쉽다. 내가 생각하고 경험한 실험동물 위령제는 대외적으로 보여주거나, 흥미유발을 위한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었다. 학생들이 이유를 찾고, 자리를 만들기 전에 이미 기본적으로 제공되어왔어야 할 정신적 복지 중 하나에 가까웠다. 앞으로 이러한 자리가 계속되고 점점 늘어가기를, 그 곳에서 많은 사람들과 희생된 실험동물들이 휴식을 찾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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