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버트 위너와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 ‘인간의 인간적 활용’의 내용 변화를 중심으로

김희원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heewon.kim09@gmail.com


 

사회 비판적인 과학자, 노버트 위너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이란 통상 과학자가 자신이 수행하고 있는 연구 과제의 잠재적 위험을 파악하고, 이를 사회에 미리 경고하는 책임을 말한다. 2015년 12월에 세계 유수 과학자들이 모여 인간의 유전자 조작과 이를 가능하게 만드는 크리스퍼(CRISPR-Cas9) 기술의 잠재적 위험성에 대해 논의하는 모임을 가진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이다. 이 자리에 모인 과학자들은 크리스퍼의 위험성을 충분히 검토하고 유전자 변형 기술의 적절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기 전에 더 연구를 진행하는 행위가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 이때 과학자가 사회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대상은 자신의 전문 분야로 한정되어있었다.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이론의 선구자 노버트 위너(Norbert Wiener, 1894-1964)가 말하는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은 이와 조금 다른 의미를 지닌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 공군을 위해 적군 비행기의 움직임을 예측해 격추하는 대공예측시스템을 연구한 위너는 자동제어장치에서 사용하는 커뮤니케이션과 제어, 음성 피드백 기작으로 인간의 움직임을 설명할 수 있다고 보았다.[1] 이 모델은 훗날 피드백 작용과 인간의 움직임, 정보 이론을 종합적으로 보는 ‘사이버네틱스’라는 새로운 과학 분야로 확장되었다. 위너는 사이버네틱스 이론이 인간과 우주에 대한 지식, 사회에 대한 해석과 깊이 연관되어 있고, 더 나아가서 개인의 삶과 사회 전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정리한 학술서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s: Or Control and Communication in the Animal and the Machine)』를 발간하며 사이버네틱스 이론을 학계에 널리 알렸다. 동료 과학자들이 사이버네틱스 이론을 발판 삼아 사회 문제에 더욱 관심을 두기를 희망한 것이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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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위너가 자신의 이론을 바탕으로 구현한 빛에 반응하는 삼륜 장치 ‘빨로미야(Palomilla, 스페인어로 나방을 의미한다)’. 나방과 같이 빛을 향해 이동하도록 설계되었다.]

 

『사이버네틱스』를 발표한 위너가 자신의 이론을 쉽게 설명한 대중서 『인간의 인간적 활용(The Human Use of Human Beings)』을 발간한 것은 1950년이었다. 당시 국제 사회는 냉전이라는 이념과 체제의 대립으로 인한 국가 간 긴장 관계 속에 놓여있었다. 자유 민주주의 진영의 중심이었던 미국에서는 내부 반공주의 세력에 대한 탄압으로 인해 사회 갈등이 더욱 심해졌다. 사회 문제에 관심이 깊었던 위너는 이와 같은 정치 사회적 분위기의 변화에 더욱 민감했을 것이다. 실제로 위너는 초판 발간 후 4년이 지난 1954년에 『인간의 인간적 활용』의 개정판을 출간했다.[3] 개정판에서 다루는 사이버네틱스의 핵심 내용은 초판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일부 개념을 서술하는 방식이나 어조에 변화가 있었고, 새로운 내용이 사례로서 추가되기도 했다. 개정판의 서문을 작성한 과학사학자 하임즈(Steve J. Heims)는 초판에 신랄하게 적혀있었던 정치 비판적인 내용이 개정판에서는 많이 순화되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리고 내용이 많이 수정되면서 철학서와 같이 느껴진다고 평가했다.[4]

일반적으로 개정판은 자신의 이론이나 생각에 변화가 생겼거나 수정해야 하는 내용이 있을 때 발간된다. 개정판이 단기간에 발표되었다는 것은 기존의 이론이 급속도로 발전했거나, 책을 고칠 수밖에 없는 외부적인 요인이 있었음을 의미한다.[5] 이 글은 위너의 책에 등장하는 학문적 이론과 비유, 그리고 사이버네틱스 이론을 사회적인 영역으로 확장하는 위너의 주장과 서술 방식이 4년 만에 어떻게 변하였는지를 다룰 것이다. 이를 위해 『인간의 인간적 활용』의 초판과 개정판의 서술을 비교·분석한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가 1950년부터 1954년 사이에 고조되었던 반공주의나 ‘매카시즘’ 현상과 관련이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사라진 정부 비판의 내용과 ‘매카시즘’

『인간의 인간적 활용』 초판에서 위너는 사회 비판적인 입장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사이버네틱스 이론을 따르는 이상적인 사회에서는 음성피드백 원리에 따라 결과물이 입력물을 조절한다. 즉, 상위계급에서 내리는 명령이 아래 계급의 상황을 반영해야 하는 것이다. 이 기준에서 냉전기 미국 사회의 폐쇄적인 모습은 이상적인 시스템의 작동 기작과 거리가 멀었다. 위너는 “모든 명령이 상위 계급에서부터 아래로 전달되지만, 아래에서 다시 위로 올라가지 않는” 파시스트와 기업적 전통, 그리고 정부의 운영 방식을 비판했다. 초판의 마지막 장에서는 “오늘날 종교와 공산당의 경직성 사이에서 언론의 자유가 산산조각”났고, “미국이 공산당이나 종교와 같은 방법으로 새로운 경직성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그 열정은 둘 중 어느 것에도 견줄 수 없다”라며 미국 사회의 폐쇄성을 다시 한번 비판했다.

당시 미국 정부에서는 정부 활동에 협력하지 않는 지식인을 ‘잠재적 위험 분자’로 분류하고, 이들이 공산주의 관련 활동에 참여하는지 감시했다. 이 공산주의자 색출 열풍은 1950년에 공산주의자 지식인 명단을 발표한 상원의원 매카시(Joseph McCarthy)의 이름을 따서 ‘매카시즘’으로 불렸다. 매카시의 명단에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군사 연구의 핵심부에서 활동한 물리학자 오펜하이머(J. Robert Oppenheimer)도 포함되어있었다. 오펜하이머는 수소 폭탄의 개발에 반대하고 고의로 연구를 지연시켰다는 이유로 간첩 혐의를 받았다. 그는 누명을 벗기 위해 청문회를 요청했지만, 간첩이라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었음에도 국가 안보에 위협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이 때문에 오펜하이머는 공직을 박탈당했고, 프린스턴 대학의 교수로서 여생을 보냈다.[6] 이처럼 냉전 시대에는 과학자들이 반공주의 정책의 희생양이 되어 실직하거나 불이익을 당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 군사 연구를 그만 두고 정부 비판적인 태도를 숨기지 않은 위너 역시 ‘국가 안보의 적’이라는 낙인을 피할 수 없었다. 미연방수사국(FBI)은 1940년부터 위너의 행적을 조사했지만 별다른 특이사항을 발견하지 못해 1948년 10월에 공식적인 조사를 마쳤다. 그러나 소련이 핵무기 개발에 성공하면서 국제 사회의 긴장이 고조되자 1950년에 상원의원이 된 매카시는 극단적인 반공주의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1951년 2월에는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었던 로젠버그 부부(Julius and Ethel Rosenberg)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졌고, 같은 해 9월 12일에는 위너의 동료이자 네덜란드 공산당원이었던 더크 스트루익(Dirk Struik)이 연방정부에 대항하는 폭동죄로 정직 처분을 받았다.[7]

동료 학자들이 정치적 신념이나 사회적 행보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처하는 모습을 지켜본 위너는 자신 역시 안전하지 않음을 인지하고 불안해했다. 위너의 불안감은 주변인들에게 보낸 편지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인간의 인간적 활용』 초판이 발간된 그해 6월, 위너는 자신의 정신과 주치의에게 편지 한 통을 보냈다. 편지에는 자신의 새로운 책이 미국의 자본주의와 기업 문화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기 때문에 매카시 측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가 담겨있었다.[8] 위너는 이듬해 스위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자신이 재직해있었던 MIT에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마녀사냥 때문에 매우 피곤하고 불안하다”라는 내용의 전문을 보냈다.[9] 이념 전쟁의 중심에 있었던 미국 사회의 배타적인 분위기가 위너의 정신적, 심리적 상태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불행하게도 위너의 걱정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위너는 매카시가 1953년에 공개한 위험인물 의심자 명단에 포함되면서 매카시 위원회의 면밀한 조사를 받게 되었다. FBI는 위너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를 착수하기도 전에 위너가 공산당으로부터 여러 번 가입 제안을 받았다는 사실과 1952년에 네덜란드 공산당원 스트루익의 집에서 열린 크리스마스 파티에 참석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1954년 1월, 인도에서 연구 활동 중이었던 위너는 자신의 이름이 명단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인도의 미국 총영사 사무실을 찾아가 결백을 주장했다. 일전에 국제과학회의에서 소련 대표단과 접촉한 사실이 문제시되자 위너는 이에 대해 적극적으로 해명하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인도 현지 조사관은 위너가 소련 대표단과 접촉한 것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상부에 보고했고, FBI는 이를 근거로 그가 위험인물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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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1954년 인도 통계 대학(Indian Statistical Institute)에 머물고 있는 노버트 위너]

 

위너는 그해 인도에서 『인간의 인간적 활용』의 개정판을 완성하고 세상에 공개했다. 초판의 미국 정부와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은 모두 사라졌고, 위너가 미국의 반공주의적 움직임에 대해 길게 서술했던 부분과 공산주의에 대해 적은 개인적인 의견이 대부분 생략되었다. ‘Communist(공산주의자)’와 ‘Communism(공산주의)’ 단어가 초판에서는 총 26회 등장했지만, 개정판에서는 8회 등장하는 것에 그쳤다. 사이버네틱스 이론의 사회적 기여에 누구보다 관심을 갖고 있었던 위너가 갑자기 사회 문제에 대한 언급을 줄이는 모습이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와 같은 서술상의 변화는 불가피했다. 강력한 반공주의 정책이 자신의 목을 조여 오는 상황에서 위너의 이러한 태도 변화는 신변 보호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과학자와 어거스틴적 악마, 이념 전쟁과 마니교적인 악마

개정판에서 위너는 사회 문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대신, 여러 비유적 도구와 사례를 바탕으로 ‘기브스 자유에너지 법칙(기브스주의)’와 냉전 사회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기브스주의는 자연 현상의 불확실성과 사건의 우연성을 설명하는 물리학의 법칙이다. 위너는 우주에 존재하는 불완전성이 성 어거스틴이 설명하는 ‘소극적인 악’(한국어 번역본에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악령’이라고 번역하고 있다)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즉, 자연의 근본적인 무질서함을 ‘아우구스티누스의 악령’이라는 개념에 빗대어 설명하고 있다.

위너가 대공예측시스템을 개발하면서 마주했던 파일럿들은 자연의 무질서함을 따르는 대신에 의도적·전략적으로 비행술을 바꿈으로써 포수의 예측을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위너는 자율적 의지를 바탕으로 책략과 술수를 사용하는 적군이 적극적인 성격을 가진 ‘마니교적 악령’과 같다고 설명했다. 개정판에서 위너가 새롭게 소개하는 두 종류의 악령은 각각 자연 현상의 특성과 냉전기의 사회상을 설명하는 도구들이었다. 이러한 도구들 덕분에 개정된 책에는 하인즈가 말한 것과 같이 초판에 신랄하게 적혀있었던 사회 비판적인 내용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러했다.

하지만 두 종류의 악령에 대한 설명을 좇아가다 보면 사회 문제에 대한 위너의 메시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개정판의 마지막 장에서 발췌한 아래 두 문단은 과학의 문제와 사회의 문제를 두 종류의 악령과 각각 연결지어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다.

 

과학자가 맞서 싸우는 악마는 의도적인 악의로 가득 찬 악마가 아니라 혼동의 악마다. 자연이 엔트로피적인 경향을 드러낼 것이라는 견해는 마니교적인 것이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적인 것이다. (필자 번역 및 강조, p. 190)

십자군과 지하드, 그리고 “자본주의적 악마”에 맞서는 공산주의의 전쟁에는 마니교의 암시가 미묘하게 감정적으로 존재한다…. 공산주의와 종교 단체의 여러 구성 요소는 마니교적인 태도를 보인다. 마니교적인 환경은 과학 활동에 적합하지 않다. 이는 마니교가 어떤 특정 믿음을 갖기에 좋지 않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관찰하는 현상이 신의 작업인지 아니면 악마의 작업인지 확실히 알지 못할 때, 신념의 뿌리가 흔들린다. 이런 조건이 갖추어지면 신과 악마 사이에서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가능하고, 이러한 선택은 악마 숭배, 마법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사악한 마법이 가능한 환경에서는 마녀사냥이 성행할 수 있다. 러시아에 베리야가 있고 우리에게 매카시가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필자 번역 및 강조, pp. 191-192)

 

위너는 과학자들이 맞서 싸우고 있는 ‘자연’이 그 어떤 악의도 갖고 있지 않은 ‘혼동의 악마’, 즉 ‘성어거스틴의(아우구스티누스적) 악령’이고,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간의 전쟁에는 의도적 악의를 지닌 ‘마니교적 악령’의 암시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마니교적 악령과 같이 의도적인 악의가 있는 환경이 과학 활동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의도적 악의(냉전 체제)와 무질서함(자연 현상)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와중에 과학적 신념을 갖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위너는 이처럼 과학적 신념이 흔들리는 사회에서 ‘사악한 마법’이 가능하고, 사악한 마법이 가능하다는 것은 매카시즘과 같은 마녀사냥이 성행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초판에서 볼 수 있었던 직접적인 사회 비평은 사라졌지만, 개정된 책에는 그와 유사한 내용이 우회적이고 비유적인 표현으로 서술되어 담겨있다.

위너는 새롭게 발간한 『인간의 인간적 활용』 개정판에서 미국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완전히 지워버린 것이 아니었다. 극단적인 반공주의 정책 때문에 심리적 압박을 느끼던 와중에도 위너는 철학적이고 비유적인 도구들을 사용해 매카시즘을 비판했고 그 상황 속에서 과학 활동을 하는 어려움을 대중에게 전달했다. 미국 사회에 대한 비판과 과학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간접적인 서술 방식으로 개정판 전반에 녹아들어 있었다.

 

마무리하며 : 노버트 위너가 말하는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

노버트 위너는 세계대전과 냉전을 겪으면서 사이버네틱스 이론을 창안하고, 더 나아가서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과 미덕에 대해 깊이 고민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정부 비판론자를 수용하지 않는 당대 정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위너는 냉전 체제와 미국 사회 전반을 비판한 대중서 『인간의 인간적 활용』의 구성과 서술 방식을 수정해야 했다.

하지만 위너는 매카시즘의 위협이 최고조에 이른 순간에도 자기 생각을 완전히 굽히지 않았다. 개정판에서 그는 이념 전쟁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과학자들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다만, 직접적이고 강렬한 문체로 구성되어있었던 초판과 달리 개정판에서는 세련된 비유와 철학적인 논조로 자신의 생각을 풀어냄으로써 매카시즘의 철퇴를 피했다. 하지만 위너가 책을 처음 쓸 때부터 갖고 있었던 미국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은 『인간의 인간적 활용』의 초판과 개정판에서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었다.

위너가 과학자로서 갖고 있었던 사회적 책임은 사이버네틱스 이론의 사회적 영향을 넘어섰다. 그는 자연과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을 이해한 지식인으로서 동료 학자들에게 사회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론으로 인간 사회를 설명한 대중서를 출판했다. 위너의 사이버네틱스 이론은 인간 사회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사회 현상 그 자체를 설명할 수 있는 도구의 잠재성을 갖고 있었다. 위너의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읽을거리

Screen Shot 2017-11-12 at 10.36.47 PM노버트 위너 지음. 이희은, 김재영 옮김. <인간의 인간적 활용>. 텍스트. 

본 글에서는 노버트 위너가 쓴 <인간의 인간적 활용>의 내용을 깊이 다루고있다. 미국의 수학자인 저자가 사회 철학자의 입장에서 쓴 이 책은 ‘엔트로피’, ‘피드백’, ‘정보’의 의미와 각 핵심개념들이 우리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되는지 살펴보고, 이를 통해 인간과 기계의 본성과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쉽게 풀어냈다.

R.B. Freeman, The Works of Charles Darwin: an Annotated Bibliographical Handlist, (Folkstone, 1977).

Screen Shot 2017-11-12 at 10.36.16 PM초판과 개정판을 비교함으로써 저자의 입장이나 연구의 변화를 드러내는 작업은 과학사 연구에서 빈번히 시도되었다. 프리먼(R.B. Freeman)은 다윈의 『종의 기원』이 여섯 차례에 걸쳐 개정되었던 사실에 주목하고 각 발행 판의 특징과 차이점, 그리고 그 변화의 배경에 대해 연구했다. 프리먼은 다윈이 마이바트가 제시한 자연주의 메커니즘을 비판하기 위해 『종의 기원』 6판에 새로운 장을 추가한 점을 사례로 제시하며 책의 내용이 외부 학계와 상호작용하면서 변화했음을 보여주었다.

 


 

[1] 위너의 사이버네틱스 이론이 발전한 과정은 다음 글에 잘 정리되어 있다. 「[홍성욱의 포스트휴먼 오디세이] 사이버네틱스, 인간을 새롭게 정의하다」 http://news.mt.co.kr/mtview.php?no=2017052408520449422&type=1

[2] Wiener, N. (1956), I am a Mathematician, the Later Life of a Prodigy : an Autobiographical Account of the Mature Years and Career of Norbert Wiener and a Continuation of the Account of His Childhood in Ex-prodigy, Doubleday, p. 325.

[3]  오늘날 서점에서 볼 수 있는 한국어판 『인간의 인간적 활용』은 이 개정판의 재판을 번역한 것이다.

[4]  Wiener, N. (1954), The Human Use of Human Beings: Cybernetics and Society, Houghton Mifflin, p. xvii; 서문에서 하임즈는 “I miss the bluntness and pungency of some of the comments in the earlier edition, which apparently were ‘cleaned up’ for the second.” 라며 초판의 신랄하고 거친 비판을 그리워한다

[5] 개정판의 첫 장에서 위너는 초판의 내용에 최신의 이론을 덧붙이고, 비논리적이거나 오류가 있는 내용을 제거했다고 설명한다. Wiener, The Human Use of Human Beings : Cybernetics and Society, pp. 15-16.

[6] Hecht, D. K. (2008), “The Atomic Hero: Robert Oppenheimer and the Making of Scientific Icons in the Early Cold War,” Technology and Culture, Vol. 49-4, pp. 943-966.

[7] Conway, F. & Siegelman, J. (2004), Dark Hero of the Information Age: In Search of Norbert Wiener, the Father of Cybernetics, Basic Books, p. 256.

[8] Wiener, letter to J. Rioch, 22 June. 1950: Conway & Siegelman(2004) 에서 재인용.

[9] Text of telegrams, August 1951, MIT Institute Archives, Collection AC4, Office of the President, Records 1930-1959, box 238, folder3: Conway & Siegelman(2004) 에서 재인용.

[10] Conway & Siegelman, Dark Hero of the Information Age: In Search of Norbert Wiener, the Father of Cyberne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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