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노마딕 라이프

강연실 (가톨릭대학교 박사후연구원)

yeonsil.kang.30@gmail.com


 

졸업과 함께 어느 곳에도 소속되지 않은 몸이 되었다. 독립연구자, 혹은 백수가 된 것이다. 국립국어원은 백수(白手)를 “직업이 없이 돈을 벌지 않고 집에서 빈둥거리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박사라는 타이틀은 얻었으나 학생이라는 직업을 잃었고, 돈은 벌고 있지 않았으며, 이제 집에서 빈둥거릴 수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훌륭한 백수가 될 조건은 갖춘 셈이었다.

 

사실 백수가 되어 조금 신났다. 진로가 정해지지 않았으므로 불안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지금이라면 평소에 하기 어려운 일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상상해왔던 일은 어느 멋진 도시에서 한 달 정도의 시간을 보내며, 말하자면 “디지털 노마드”가 되어 보는 것이었다. “디지털 노마드”는 지리적 제약을 두지 않고 자유롭게 세계를 여행하지만, 일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1] 직업과 대학 1학년 때 수강한 교양수업에서 처음 접한 이 단어는 마치 이 때를 위해서 내 머리 속 어딘가에 고이 잘 보관되어 있었던 것 같았다. 당장 급하게 할 일도 없었고, 설령 생긴다고 하더라도 컴퓨터와 인터넷만 있으면 될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나는 막 강박사가 되지 않았던가? 세상 그 어느 누구보다 떠날 자격은 충분했다.

 

검색을 시작했다. “Best places for digital nomads.” 나의 기준은 이랬다. 통장에 잔고 사정을 고려해 물가가 싼 동남아의 도시 중, 인터넷이 잘 되지만 적당히 시골이고, 여행하기 좋은 곳. 전 세계 도시 중 나의 선택지는 인도네시아 발리 우붓과 태국 치앙마이로 좁혀졌다. 두 도시 모두 나의 기준을 적당히 만족시켰다. 우붓은 영화 <먹고, 마시고, 사랑하라>의 배경이 되어 인기를 얻은 곳이다. 디지털 노마드들을 위한 코워킹 스페이스가 잘 구비되어 있어서 이미 이 세계에서는 꽤 유명한 도시였다. 그곳으로 여행을 다녀온 W는 숲이 울창하고 논이 펼쳐진 아름다운 곳이라고 평가했다. 치앙마이는 BBC에서 선정한 디지털 노마드로 살기 좋은 다섯 개 도시 중 하나로 선정된 바 있다. 디지털 노마드로 지내기에 적합한 세계 여러 도시들을 알려주는 “Nomad List”에 의하면 방콕은 “노마드 스코어,” 비용, 인터넷 속도, 유흥과 관광, 그리고 안전 다섯 가지 평가 항목에서 모두 만점을 받은 도시였다.

 

Pict1

그림 1 “발리…우붓…태국…치앙마이…”

 

결과부터 말하면 나의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아니, 시작도 못 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박사과정을 마치는 기간 동안 재정 상황이 그 어느 때 보다 좋지 않았다. 더 중요한 것은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자금을 융통해 보기도 전에, 나는 이미 여러 일을 벌이고 있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과학책과 관련된 일을 시작했고, 동시에 필진을 꾸려 한겨레 사이언스온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박사 후 과정에 지원하는 원서를 몇 개 준비하고 있었고, 학회에 초록도 하나 보냈다. 5월 대선이 가까워질 때 사이언스온 필진들과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느라 갑자기 더 바빠져 하루에 세, 네 시간을 자며 일하던 어느 날, 우리 아버지는 나에게 한 마디 하셨다. “원래 백수가 과로사 하는 법이다.”

 

나의 바쁜 백수 시절은 여름의 시작과 함께 끝이 났다. 다행히 연구재단에서 펠로우십을 받아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시작했다. 공식 소속이 생겼고, 생활을 유지 할 정도의 수입이 생겼다. 이제 막 시작했지만 실제로 하는 일이 크게 바뀐 것은 아니다. 여전히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학교에 자주 가고, 글을 쓰며 괴로워한다. 앞으로 했던 연구를 다시 들여다보고, 새 연구를 시작해야 할 테니 여전히 공부하는 게 일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내 삶은 어느 때 보다 자유롭고 불확실하고 불안해졌다. 학생 때는 적어도 졸업 때 까지 몇 년이 예측 가능했다면, 박사후 연구원 계약은 대개 1년 혹은 2년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예측이 쉽지 않다. 부산에서 일하게 되거나, 홍콩에서 또다른 박사후 과정을 밟거나, 유럽의 어느 소도시에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 디지털 노마드가 되겠다는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나는 진짜 노마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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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디지털 노마드와 호보는 한끝차이.

 


추천 여행지

이래저래 재다가는 방콕꼴을 못면한다.

인도네시아 발리 우붓Screen Shot 2017-11-12 at 10.48.26 PM

대체로 발리 하면 바다와 리조트를 떠올리지만 우붓은 밀림과 논이 펼처진 곳에 위치한 예술인 마을이라고 한다. 해발 200m에 위치해 있어 연중 최고기온이 섭씨 30도가 넘지만 아침과 저녁에는 쌀쌀하다고 한다. 예술 클래스나 쿠킹 클래스, 그리고 요가 클래스 등 체험할 것이 다양하고, 동남아의 다른 관광지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조용해 휴식이 필요한 도시의 현대인에게 좋을 법한 여행지라고 한다.

태국 치앙마이Screen Shot 2017-11-12 at 10.48.32 PM

태국 북부에 위치한 도시로 해발 300m에 위치해 있어 너무 덥거나 춥지 않다고 한다. 1000여개의 고산족 마을이 위치하고 있고, 여러 사원들이 있어서 태국의 불교 문화를 만끽할 수 있다고 한다. 태국 음식 맛난 것은 두말 하면 잔소리라고 한다. 이 뿐 만이 아니다. 아티스트의 작업실과 예쁜 식당, 카페가 모인 구역도 있어, 힙스터들에게도 추천하는 여행지라고.


 

[1] 디지털 노마드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싶다면 다음 기사 참조. “Nomads at last,” The Economist (2008.4.10. http://www.economist.com/node/10950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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