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위의 벗은 여자

한혜정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석사과정)

hhj29@kaist.ac.kr

 


 

 

‘우리나라 인터넷은 OO양이 발전시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포르노그래피 업계에 종사하는 여성 혹은 성행위 영상이 유출된 여성으로 인해 인터넷 대중화가 빠르게 이뤄졌다는 뜻이다. 이 섬뜩한 우스갯소리는 사실 놀라운 이야기는 아닌데, 당장 주변을 둘러봐도 포르노그래피를 통해 인터넷 사이트 이용 방법이나 동영상 다운로드 방법 등을 익혔다는 경험담이 넘쳐난다. 실제로 포르노그래피가 사람들로 하여금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기술에 흥미를 갖게 하여 높은 초기 비용을 극복하도록 유도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1] 과학사학자 쿠퍼스미스(Coopersmith)는 “포르노그래피의 생성, 전송 및 확산은 통신기술의 발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포르노그래피는 기술로서 정의된다”고 하였다.[2] 그렇다면 인터넷 대중화의 태동기였던 1990년대 한국 사회에서 포르노그래피는 어떤 모습으로 정의되었는가?

우리나라에 인터넷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82년이다. 그러나 초기 인터넷은 전문적인 설정을 필요로 했던 탓에 연구원과 소수의 대학생으로 이용자가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던 중 1994년에 상용 인터넷 서비스가 시작되어 많은 사람이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1998년에는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가 개시되었고 1999년에는 인터넷 사용자가 순식간에 1000만 명을 돌파하였다.[3] 인터넷의 급격한 변화는 곧 포르노그래피의 변화를 의미했다. 예컨대 온라인에서 유통되던 대부분의 정보가 저용량 이미지나 텍스트의 형태였던 1990년대 중반에는 재미교포 누드모델 이승희가 포르노그래피를 대표하는 유명인사였다. 플레이보이 란제리지에 데뷔한 이승희의 사진이 온라인에 돌아다니자 전국에 이승희 열풍이 분 것이었다. 초고속 인터넷이 도입된 1990년대 후반에는 동영상이 인터넷 포르노그래피의 주된 형태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여성 연예인 성관계 영상 유출 사건 두 건이 전국을 강타하였는데, 초고속 인터넷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인 1998년에는 약 4개월 만에 영상이 전국적으로 확산된 반면, 경쟁이 과열되고 국민PC가 전국적으로 보급된 2000년에는 고작 사나흘 만에 전국적으로 영상이 퍼져나갔다. 비디오나 CD를 주고받을 필요 없이 클릭 몇 번으로 순식간에 여러 사람과 영상을 공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근대 이후 사회에서 포르노그래피의 확산을 저지하는 결정적인 마찰로 작용한 것은 본디 수치심이었다. 푸코(Foucault)는 근대 국가의 통제 작용으로 사람들이 포르노그래피와 같은 성 표현을 수치스럽게 여기게 되었다고 주장한다.[4] 그러나 인터넷은 이러한 마찰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익명성의 보장과 1:1 접촉에서의 해방으로 말미암아 나를 숨길 수 있게 된 인터넷 세상에서는 수치심이라는 장애물을 손쉽게 뛰어넘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5] 게다가 인터넷이 대중화된 1990년대 후반은 성인이 포르노그래피를 보는 것이 사회적으로 강하게 지탄받는 시대도 아니었다. 포르노그래피 사이트에 대한 의견을 조사하였더니 응답자 중 절반 이상이 성인이 이용하면 문제가 없다거나 혹은 아예 무제한 개방되어야 한다고 대답했을 정도였다.[6] 인터넷을 규제하기 위한 여러 법적 장치도 마련되었지만 포르노그래피의 진화를 저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심지어 음란물 등 전 세계 유해 사이트 중 한국어 사이트가 영어에 이어 2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7]

바로 그때, 포르노그래피에 저항할 새로운 마찰로 등장한 것이 ‘청소년 보호’의 논리였다. 시발탄은 이른바 일진회 논란이었다. 1997년, 언론에 청소년 폭력서클 일진회가 처음으로 보도되었다. 일진회란 명칭은 학생들의 싸움을 소재로 한 일본만화에서 따온 것으로, 전국적으로 불거진 일진회 논란은 곧 만화책과 잡지에 대한 거센 비난으로 이어졌다. 언론은 만화책을 포함한 대중매체에 대한 성인들의 공포를 자극했다. 폭력 및 음란물로부터 청소년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여론이 빠르게 형성되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음란유해매체 규제에 관한 법’이라는 이름으로 제정될 예정이었던 포르노그래피 규제법이 ‘청소년 보호법’이라는 명칭으로 제정되었다.[8] 그러나 포르노그래피 등으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한다는 해당 법의 제정 취지가 무색하게도 정작 청소년에게 명백하고 실질적인 피해를 끼치는 아동 포르노에 관한 규제는 2000년 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다.[9] 게다가 청소년 보호법이 말하는 청소년 유해 매체물은 실제로 ‘청소년’에게 유해한지 아닌지는 관련이 없었다.[10] 청소년 유해 매체물 심의기준은 “음란한 자태를 지나치게 묘사한 것”, “성행위와 관련하여 그 방법, 감정, 음성 등을 지나치게 묘사한 것” 등 사실상 청소년과는 관계가 없는 모호하고 포괄적인 기준이었다. 청소년 보호법은 공동체 전체를 성 표현물로부터 분리하려는 법에 가까웠던 것이다.

청소년 보호법의 제정과 더불어 청소년을 교육하는 기성세대가 포르노그래피로부터 스스로를 검열하는 자기검열이 활성화되었다. 1999년에는 네이버가 유해한 사이트를 자동으로 차단하는 검색엔진 주니어 네이버를 서비스하기 시작했다. 또한, 같은 해에 인터넷 포르노그래피 접근 차단 소프트웨어인 수호천사가 출시되었다. 수호천사는 “댁의 자녀는 안전하십니까?”라는 광고를 신문 여기저기에 게재하며 부모세대의 공포심을 자극했는데, 복잡한 설정 없이 간편한 설치할 수 있던 덕에 일명 컴맹 부모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이 컴맹 부모들의 공포는 실로 거대했다. 심지어 한 토론회에서는 “자녀가 사용하는 컴퓨터의 모뎀을 전부 부숴야 한다”[11]는 주장까지 제기될 정도였다. 컴퓨터와 인터넷 때문에 청소년들이 포르노그래피를 스스로 유통할 수 있게 되었다며 걱정하는 기사가 하루가 멀다고 쏟아져 나왔다. 인터넷 포르노그래피로부터 내 아이를 지켜야 한다는 부모세대의 공포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런데 도대체 포르노그래피가 무엇이길래 이들은 그토록 포르노그래피를 무서워한 것일까? 또한, 포르노그래피를 대체 어떤 이유로 무서워한 것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우선 포르노그래피는 오래된 연구 주제 중 하나이며, 포르노그래피에는 굉장히 다양한 정의와 입장이 존재함을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맥키넌(MacKinnon)과 드워킨(Dworkin)을 필두로 한 안티-포르노그래피 페미니스트들은 포르노그래피를 ‘여성의 종속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여성의 종속을 묘사하는, 성적으로 노골적인 것’으로 정의하였다.[12] 그들은 성적으로 노골적이기만 할 뿐 여성을 종속시키지 않는 것은 ‘포르노그래피’가 아닌 ‘에로티카’라고 보았으며, 포르노그래피가 여성에 대한 차별과 학대를 조장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나 이외에도 포르노그래피는 ‘성적으로 노골적인 것’이나 ‘성적 흥분을 일으키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성적으로 노골적인 것’ 등으로 정의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정의를 즐겨 사용한 이들 중에는 포르노그래피에 강하게 반대한 보수주의자도 있었고, 포르노그래피에 우호적인 반응을 보인 여성주의자도 있었다. 후자는 맥키넌과 드워킨의 모델을 여성을 연약한 피해자로만 묘사하는 낡은 고정관념에 가깝다며 비판했는데, 여성해방을 위해서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섹슈얼리티를 표현하는 새로운 이미지와 단어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한국의 부모세대는 새로운 섹슈얼리티를 주장하는 페미니스트 학자들과는 전혀 다른 입장을 취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맥키넌과 드워킨의 정의처럼 ‘여성의 종속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여성의 종속을 묘사하는, 성적으로 노골적인’ 매체물로 포르노그래피를 바라본 것도 아니었다. 부모세대의 포르노그래피에 대한 정의는 안티-포르노그래피 페미니스트보다는 보수주의자에 가까웠다. 이들에게 주로 문제가 된 것은 폭력성이 아닌 성적 노골성이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포르노그래피란 무엇이었던 것인가? 1990년대 후반에 그려진 아래 그림에그 실마리가 있다. 이 그림의 오른편에는 순진한, 그러나 컴퓨터를 잘 다루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가 있다. 아이는 포르노그래피를 보고 있고 부모세대의 손은 컴퓨터와 아이 사이에서 이를 저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 포르노그래피는 폭력적이거나 직접적 해를 끼치는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단지 ‘스크린 위의 벗은 여자’일 뿐이다. 비단 이 그림뿐만이 아니다. 언론사나 작가를 불문하고, 이 시기에 그려진 인터넷 포르노그래피를 묘사한 삽화는 십중팔구 이러한 구성을 지니고 있다. 즉, 진한 입술 등 여성을 상징하는 문화적 성기(cultural genital)[13]를 지니는 ‘스크린 위의 벗은 여자’로 인터넷 포르노그래피가 묘사된 것이다. 제작자와 배포자, 여러 성별의 배우들 등 인터넷 포르노그래피를 구성하는 다른 사람이나 요소는 쏙 빼놓은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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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1 언론에 비친 인터넷 포르노그래피][14]

 

또한, 1998년의 한 신문기사는 인터넷 포르노그래피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세이프(safe)섹스’라는 개념에서 시작하는 온라인 섹스. 에이즈나 성병이 없고 윤리도 터부도 없다. …비싼 커피를 사주며 시구를 외울 필요도 없다. 그저 신용카드 번호를 두드리고 집게손가락으로 ‘클릭’하면 20달러에 한달 내내 절대 ‘노(No)’라고 말하지 않는 여성들.[15]

철학자 아감벤(Agamben)의 논의를 빌리자면 인간은 정치적 존재인 비오스(bios)와 생물학적 존재인 조에(zoe)로 구분된다.[16] 한 인간이 비오스로서의 의미를 박탈당하고 단지 벌거벗겨진 생물학적 삶인 조에로 남게 될 때, 그가 존재하는 곳은 별다른 이유나 양심의 가책 없이 그에 대한 폭력이 행해지는 섬뜩한 공간이 된다. 인터넷 공간에서 눈 깜짝할 새에 유통되는 포르노그래피는 말하고 움직이며 행위하는 사람이었다. 에이즈나 성병이 생각날 만큼 실제 성행위와 비슷하지만 실제로 걱정할 필요는 없는 가상 세계의 영상이었다. 이 공간에서 포르노그래피 속의 여성은 걱정 없이 즐길 수 있는 움직이는 벗은 몸뚱어리일 뿐이었다. 내 아이를 해칠 그 무시무시하고 박멸해야 할 포르노그래피는, 단지 ‘스크린 위의 벗은 여자’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스크린 위의 벗은 여자’ 개념을 대체할 논의는 없었을까. 적어도 1990년대까지 한국에서는 포르노그래피 논쟁이 전면에 대두된 적은 없었다. 다만 1999년에 연예인 서갑숙이 출판한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가 산발적이나마 포르노그래피에 관한 논의의 장을 열었다. 이 책은 여성을 그저 수동적으로 응시 당하는 대상이 아닌 자신의 성을 적극적이고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주체로 서술해 사회에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서갑숙은 “‘포르노그라피’란 용어는 인간관계에 있어 더 아름다운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긍정적인 의미”라며 제목의 의도를 밝혔다.[17] 그러나 이를 두고 성교육 전문가 구성애는 “포르노주인공 같은 삶을 살지 않는 당신은 책의 제목부터 고쳐야”한다며 비판했는데, 한국처럼 가부장제가 강하고 여성 인권 수준이 낮은 사회에서는 섹슈얼리티 논의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것이었다.[18]

구성애의 지적대로, 인터넷이 막 대중화된 1990년대 한국은 여성 인권 수준이 현저히 낮은 심각한 가부장제 사회였다. 예컨대 1997년까지는 부부간의 폭력 행위에도 가정 내에서 해결해야 할 사적인 일이라는 이유로 국가나 제3자가 개입할 수 없었다.[19] 또한 1995년까지 형법 제32장의 명칭은 「정조에 관한 죄」였는데, 다른 남성의 “부녀”를 건드려 “정조”를 훼손한 자를 벌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1994년에 인터넷 대중화 조짐과 더불어 새로운 유형의 성폭력 범죄가 빈발하자 제정된 일명 성폭력 특별법은 정작 여성의 권리와는 거리가 있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건전한 사회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제정되었다는 해당 법은 남성의 여성에 대한 성적 접근을 통제하는 데에 치중할 뿐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에는 초점을 두지 않았다.[20]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였을 때, 1990년대에 한국의 여성 인권 운동가 상당수가 피해자로서의 여성에 몰두하며 안티-포르노그래피 입장을 취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포르노그래피가 내 아이가 접해서는 안 되는 무시무시한 해악이자 ‘스크린 위의 벗은 여자’로 상징된 것은 당시 사회상의 적나라한 반영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후로 20년, 인터넷이 대중화된 시점으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인터넷 포르노그래피는 많은 변화를 거듭하였지만 여전히 거대한 이슈로 자리하고 있다. 몰카 범죄나 리벤지 포르노 같은 디지털 성범죄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전문 배우가 등장하는 포르노그래피에도 한 편에서는 인권 이슈가, 다른 한편에서는 인터넷 검열 이슈가 제기되는 등 여러 사회·기술적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어떠한 찬반 주장을 피력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찬반 논쟁을 펼치기에 앞서 우리 사회에서 포르노그래피가 어떻게 정의되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치밀하게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포르노그래피에 관한 목소리가 들려온다면, 그 목소리를 한 꺼풀씩 뜯어내 보자. 그리고 살펴보자. 그 끝에, ‘스크린 위의 벗은 여자’가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지 말이다.


읽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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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헌트, 조한욱 역. <포르노그라피의 발명>, 책세상, 1996. 

프랑스 혁명기에 그려진 마리 앙투와네트의 누드화로부터 무엇을 읽어낼 수 있는가? 민주주의와 포르노그래피 사이의 역설적인 관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포르노그래피는 한 사회의 기술 및 문화, 정치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섹슈얼리티와 사회기술사, 특히 1500~1800년대 유럽의 역사에 흥미가 있다면 이 책을 강력 추천한다.


[1] Coopersmith, J. (1999), “The role of the pornography industry in the development of videotape and the Internet”, Proceedings of 1999 IEEE International Symposium on Women and Technology: Historical, Societal, and Professional Perspectives, Institute of Electrical and Electronics Engineers, pp. 175-182.

[2] Ibid.

[3] 안정배 (2014), 『한국 인터넷의 역사』, 블로터앤미디어.

[4] Foucault, M., Trans. Hurley, R. (1990), The history of sexuality: An introduction, volume I. New York: Vintage.

[5] 홍성욱 (2002), 『네트워크 혁명, 그 열림과 닫힘』, 들녘, pp. 160-164. 저자는 “인터넷의 익명성은…포르노그래피의 확산을 제한했던 두 가지 요소인 수치심과 무지”를 사라지게 했다고 주장한다.

[6] 동아일보 (1998. 07. 20), 「“음란사이트 성인이용땐 무방” 48.7%」.

[7] 동아일보 (2003. 04. 27), 「한국어 유해사이트 영어 이어 세계 2위」. 해당 기사에 따르면 유해사이트 언어는 영어가 1위(93.6%), 한국어가 2위(9.5%), 일본어가 3위(2.3%), 독일어가 4위(1.3%), 프랑스어가 5위(0.9%)이며, 유해사이트 유형은 음란사이트가 압도적인 1위 (98.9%)이다.

[8] 이동연 (2001).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몇가지 ‘문화정치적’인 질문들」, 『‘표현의 자유’ 공청회 – 김대중정권 하에서 과연 ‘표현의 자유’는 존재하는가?』.

[9] 2000년에야 「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이 제정되어 “청소년을 이용하여 음란물을 제작 배포하는 행위” 등을 법적으로 규제하기 시작했는데, 미국이나 영국 등 외국에서는 포르노그래피 및 청소년 보호에 관한 논의가 초기부터 아동포르노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10] 장여경 (2001), 「인터넷과 표현의 자유」, 『표현의 자유’ 공청회 – 김대중정권 하에서 과연 ‘표현의 자유’는 존재하는가?』.

[11] 「연재: 우리는 인터넷에서 자유를 발견했다 – 불온한 인터넷, 자유를 외치다」, http://act.jinbo.net/wp/28820/

[12] West, C. (2004. 05. 05; 2012. 10. 01), “Pornography and Censorship”,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https://plato.stanford.edu/entries/pornography-censorship/

[13] Robertson, J. (2010), “Gendering Humanoid Robots: Robo-Sexism in Japan,” Body & Society, Vol. 16, pp. 1-36. 를 참조하라.

[14] 경향신문 (1997. 01. 20), 「인터넷 음란물 차단 국산 SW 나온다」.

[15] 동아일보 (1998. 03. 02), 「”NO”를 모르는 ‘온라인 사랑’」.

[16] Agamben, G., Trans. Heller-Roazen, D. (1998), Homo Sacer: Sovereign Power and Bare Life. Stanford University Press.

[17] 매일경제 (1999. 10. 26), 「포르노비디오 나도 찍었다」.

[18] 동아일보 (1999. 11. 04), 「‘아우성’ 구성애씨, 서갑숙씨 공개비판」.

[19] 1997년에야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가정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부부 간의 폭력에 국가나 제3자의 개입이 가능해진다.

[20] 박미숙 (2000), 「성폭력관련법률의 체계화 방안 – 성폭력특별법에 나타난 정책방향을 중심으로」, 『형사정책』, 제12권 제2호, pp. 237-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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