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CH에서 KAIST로 교환가기

강미량 (POSTECH 화학과)

miryang1002@postech.ac.kr


 

나는 STP 수업을 듣기 위해 지난 2017학년도 1학기 동안 KAIST에 머물렀다. 이 글은 POSTECH 화학과 졸업반인 내가 KAIST로 교환학생을 가게 된 시작부터 그 끝까지의 경험을 담은 후기이다. 생생한 감정을 독자에게 전달해주기 위해 중간 중간에 당시 썼던 페이스북 일기를 첨부하였다.

 

  1. 교환학생 신청서 제출하기 (2016년 12월)

내가 카이스트로 교환을 가기로 정한 때는 11월이었다. 화학과 대학원 진학과 다른 길을 두고 약 3개월을 줄타기를 하다 결심한 선택이었다. 교환 예정학기가 졸업학기만 아니었어도 그렇게까지 고민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필이면 졸업학기였다. POSTECH 학칙 상 졸업학기에는 교환학생을 신청하지 못하기에 졸업을 미루는 서약서를 작성해야 했다. 별것 아니었지만 졸업이 걸린 ‘서약서’라는 단어가 무겁게 다가왔다.

더 큰 문제는 교수님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우리 학교 화학과는 반드시 화학과에서 학사 논문을 써야 졸업을 할 수 있다. 한 학기 만에 실험 결과를 내기 힘들기에 보통은 1년 이상 연구실에 머물며 졸업을 준비한다. 7학기가 다 지나가도록 실험을 시작하지 않은 내가 지도 교수님께 ‘KAIST에 가서 과학기술정책 수업을 듣기 위해 한 학기 졸업을 미루겠습니다’라고 말씀 드리는 것은 곧, ‘화학이 아닌 학문을 배우기 위해 KAIST에 갔다 온 뒤 남은 학기에 논문을 어떻게든 써서 졸업을 해보겠습니다’라고 선언하는 것과 같았다. 여기에 길게 풀어 놓을 수는 없지만, 확실히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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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
트위터 출처- 선바 (@sunbakim)

 

그래도 어찌어찌 신청서를 제출하니 기대가 봉곳이 솟아 올랐다. 화학을 공부할 때는 이해가 안 되거나 모르는 것은 있어도, 교과서 밖을 넘어 궁금한 것은 없었다. 가끔씩 물이 육각수라 몸에 좋다는 글귀에 분노할 때 빼고는. 무엇보다 실험이 너무 싫었다. 입으로 훅 하고 불면 날아갈 것만 같은 mmol 단위의 양(무거워야 1~2g 부근)을 어깨 담 결려가며 살살 쓸어 담는 일상이 힘들었다. 그에 반해 <과학뒤켠> 1권과 ‘과학기술정책읽어주는남자들’을 통해 엿본 과학기술정책은 궁금한 것도 있고, 화학실험도 하지 않는 그런 좋은(?) 학문이었다. POSTECH에서는 배울 수 없는 내용들이 많았기에 이번 기회에 열심히 공부한다면 대학원 선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1. 살 곳 고민하기 (2017년 1월) – 기숙사 vs. 반지하방?

도대체 나는 어디에 살아야 할까. 교환학생에 합격하고 나니 앞으로 살 곳에 대한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제껏 KAIST는 교환학생에게 기숙사를 제공하지 않았다. 혹시 몰라서 KAIST에 문의했더니 본교 학생을 다 채우고 난 뒤 잔여석이 남으면 그때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러니까 개강이 2월 27일인데 1월 19일이 되어야 내가 기숙사에 살 수 있는지 아닌지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교환학생이지만 정식 프로그램을 통해 학교를 다니는 것인데 조금 억울했다.

손 놓고 기다릴 수 없어 주변 자취방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고작 4개월을 살 처지라 일찍 알아보지 않으면 자취방 값이 비싸진다. 그렇다고 해서 집이 있는 제주도에서 매번 비행기를 타고 통학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한 달에 15만원짜리 궁동 반지하방을 두고 엄마와 실랑이를 할 즈음, KAIST에서 연락이 왔다. 나래관에 자리가 비었다는 것이다. 친구가 신축보다 좋고 삼신축(?)보다는 덜한 신신축(??)이라고 말해주었다. 무슨 말인지는 알아듣지 못했지만 좋은 기숙사라고 하니 다행이었다.

 

  1. 학교에 적응하기 (2017년 2월 말 ~ 3월)

– 길 찾기  

2월 24일, KAIST에 도착했다. KAIST의 첫 인상은 산이 없는 학교였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내 눈에 걸리는 산이 없었다. 한 번도 산을 끼고 돌지 않는 동네에 살아본 적이 없어서 신기했다. 새로운 환경에 기숙사도 정해졌겠다, 성공적인 학기를 보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10분만에 기대가 깨졌다. W8건물에서 학생증을 발급받고 나래관까지 가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분명 10분 거리라고 했는데 처음 온 사람이 한 번에 찾기에는 KAIST가 너무 넓었다. 부지는 넓어도 반이 가속기라 생활반경 자체는 좁은 POSTECH과는 달랐다. 내가 원체 길을 못 찾는 사람이기도 했다. 과연 수업은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 개강 전에 몇 번이고 기숙사에서 인문사회과학동까지 찾아가보곤 했다.

이후에도 학기가 끝날 때까지 학교 지리를 외우지 못했다. 건물의 동서남북은 알겠는데 그 뒤에 붙는 숫자는 도무지 규칙을 알 수가 없었다. 자연과학동이 있는 동쪽과 잘 가지 않는 북쪽 앞 번호가 제일 어려웠다. 그래서 그냥 한 학기 동안 네이버 지도 앱이나 네비게이션을 이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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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카이스트의 건물 번호]

 

전공은 POSTECH

POSTECH에서 함께 온 친구가 있었다. 우리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KAIST라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내다 올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친구가 얼굴에 POSTECH이라고 써놓은 것도 아닌데 수업에서 자꾸 전공수업에서 전공이 무엇인지, 어디까지 배웠는지, POSTECH 수업과 여기 중 어느 것이 나은지 묻는다고 했다. STP 수업은 딱히 그러지 않았지만, 내가 말하기 전에 POSTECH임을 알고 있는 게 신기하긴 했다. 알고 보니 전공 및 학과를 적는 란에 교환학생들은 POSTECH이라고 적혀 있었다. 내 전공이 화학이 아닌 POSTECH이라고 하니 기분이 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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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내 전공은 POSTECH]

 

전공이 POSTECH이 되어서 그런가, 화학과와 학교 학사팀 간에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 되는 듯 했다. 서류를 다 내고 교환학기를 와 일주일 째 수업을 듣고 있는데 우리 과에서 자꾸만 POSTECH 수강신청을 하라고 연락이 왔다. 별 문제는 없을 거라 생각하면서도 불안했다. 혹시나 다시 돌아가야 하는 것인가 싶어 몇 번이고 학교에 전화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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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나는 KAIST에 있다]

 

  1. 안정적으로 학교 다니기 (2017년 4월)

 한 번에 몇 십 명씩 모여 질문과 토론이 없는 강의를 듣는 것을 싫어해서 그런지 10명 이내의 학생이 모여 주로 토론을 하는 STP 수업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알기로는 대학원 수업을 제외하고는 이런 소규모 강의가 POSTECH에는 없다. 지식과 권력, 삶의 질과 기술정책, 정책설계실습의 세 과목을 들었는데, 공부 양도 적당했고, 배우는 내용도 흥미로웠다. 이때쯤 수업을 함께 듣는 학생들과 안면을 트고 혼밥족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postech. ac.kr이 아닌 portal.kaist.ac.kr을 먼저 입력하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드디어 이 학교에 적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1. 혼란 속에 학기 마무리하기 (2017년 5월 ~ 2017년 6월)

 5월부터 다시 정신이 없어졌다. POSTECH은 타 학교에 비해 수강신청이 빠르기에 여름학기와 2학기 수강신청을 5월에 한다. 문제는 POSTECH의 여름방학이 당겨지는 바람에 여름학기 시작과 1학기 KAIST 종강 시기가 겹친다는 점이었다. POSTECH 학사팀에 물어 보았지만 교수님께 연락을 해서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는 답변이 돌아 왔다. 일주일 전체를 결석할 수는 없기에 POSTECH과 KAIST 수업 양쪽에 모두 양해를 구하고 한 주간 왔다 갔다 하면서 수업을 들었다. 대전에 올라가는 버스에서 발표를 준비하고 포항에 내려오는 버스에서 여름학기 숙제와 기말 페이퍼를 써야 했던 그런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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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인수분해는 과외용]

 

사실 이 후기에 간간히 썼던 두 학교 학사 시스템 간의 커뮤니케이션 부족은 국내 교환학생들이 자주 경험하는 것이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는 부분이다. 의도적으로 안 고친다기보다는, 교환 프로그램을 만들 때 학교의 차이를 세밀하게 따지지 않았거나, 개별 학교의 일정을 바꿀 때 교환 프로그램을 고려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들이 대부분이다. 이번에 학사 일정이 겹친 것도 학생들의 인턴 경험을 장려하기 위해 POSTECH에서 여름방학을 늘리고자 1학기를 일찍 마쳤기에 벌어진 문제였다. 국내 교환학생의 수가 그리 많지 않기에 이런 문제가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 교환 학생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꼭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다.

이런 점만 빼면 내게 교환학생 경험은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게 해주었던 소중한 기회였다. POSTECH에서 개설되지 않는 과목을 다양하게 들을 수 있고, 진학을 고민하던 대학원을 체험할 수 있었다. 연예인 과정남이 직접 대학원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이 분들을 처음 만날 때 덜덜 떨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교환을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가라고 전하고 싶다. 물론, 졸업학기라면 다시 한 번 곰곰이 고민해보길 추천한다.

 


KAIST에서 밥 먹기 좋은 곳 for 포스테키안

서브웨이

버거킹, 과메기, 대게가 있는 포항에 없는 서브웨이. 가격은 그리 싸지 않지만 학내에 있는 롯데리아보다 낫다.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먹고 롯데리아에 가서 학생할인을 받아 1000원짜리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

*무엇보다 사람이 많아서 누가 혼자 먹든 안 먹든 신경을 쓰지 않는다.

풀빛마루

이런 곳을 5월이 되어서야 알게 되어 억울했다. 부리또가 일품인 곳이다. 음식을 사서 테이크 아웃한 뒤 롯데리아 옆 의자나 태을관 옥상(*)에 가서 먹으면 카이스트의 낭만을 느낄 수 있다.

*STP 대학원생들의 팁이었다.

카이마루

카이마루는 워낙 유명해서 추천에 넣기 좀 그렇지만 혼자 밥을 먹을 때 가장 애용했던 곳이다. 메뉴도 많고, 군중 속의 고독을 느끼며 먹기 안성맞춤인 곳이다. 학기 초에는 포항에서 혼밥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영상통화를 걸어서 화면 속 친구와 함께 먹기도 했다.


 

 

++  [그림 1.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의 페이스북 포스팅에서 공유한 트위터 출처는 선바(@sunbakim)임을 밝힙니다.  <과학뒤켠> 3호 인쇄본에는 실수로 누락되었습니다.
다음 인쇄 시에는 좀 더 꼼꼼하게 살필 것을 약속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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