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의 골든에이지와 21세기의 퓨처라마

조정훈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석사과정)

cosmos4910@kaist.ac.kr


 

미래 담론의 열기가 뜨겁다. 그러나 좀처럼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그 열기와는 별개로 미래 담론의 방향성에 관한 의문 부호도 또한 끊이지 않는다. 본고에서는 학문적으로 미래를 탐구하는 미래학의 황금기를 거슬러 살펴보며 21세기 한국의 미래 담론에 기대하고자 하는 바를 짚어본다.

 

필자에게 미래의 모습에 대해 상상했던 가장 최초의 기억에 관해 묻는다면, 그것은 아마도 초등학교 미술 수업시간에 열린 ‘과학 상상화 그리기 대회’와 관련된 기억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서투른 솜씨로 4절 도화지에 그려 제출한 그림은 하늘을 가로지르는 교통망으로 연결된 부유하는 공중도시의 모습이었다. 2000년대 초반, 얼마 되지 않는 짧은 시간 동안 일단의 초등학생들이 그려낸 미래 사회의 모습은 대체로 발전된 도시의 풍광과 하늘을 나는 자동차, 가정용 로봇과 유비쿼터스 시스템이 도입된 가정과 같은 첨단 기술의 집합적인 이미지들을 담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인 1964년의 뉴욕에서 열린 세계 박람회 (1964/1965 New York World’s Fair) 에서도 이와 흡사한 기록들이 발견된다. 80개 나라가 참여하고 약 5천만 명 이상이 다녀간 이 박람회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제너럴 모터스 (GM; General Motors) 사에서 주관한 퓨처라마 (Futurama) 전시였다. 박람회의 관람객들은 전시장에 마련된 트랙을 따라 움직이는 장치에 앉아 근미래 사회의 미니어처 모델을 조망했다. 광활한 우주, 해저와 극지방의 탐험, 사막을 끝없이 가로지르는 고속도로들과 미래 도시의 풍경들은 1960년대의 세계가 상상했던 과학과 기술의 발전상을 비춘 미래의 모습이었다.[1] 그런가하면 플로리다의 디즈니랜드에서는 미래 사회 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준비로 한창이었다. 디즈니가 에프코트 (EPCOT; Experimental Prototype Community of Tomorrow) 라고 이름 붙여 계획한 이 전시관은 당시 세계인들에게 미래 사회의 기술과 일상을 한 발 앞서 소개하려 하고 있었다. 이처럼 미래적인 이미지로 가득찬 1960년대의 사회는 2000년대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바라보는 미래상에 대한 예측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미래 예측에 대한 아이디어와 방법론을 제공해준 미래학이 자리하고 있었다. 1940년대 후반 세계 대전의 종식과 더불어 태동한 미래학은 이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196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는 황금기를 맞이하려 하고 있었다.

 

그림1. The city of future, part of GM’s Futurama exhibit at the World’s Fair (AP Photo)그림2. EPCOT Center of “Florida Project” by Walt Disney Productions

 

냉전과 미래학의 탄생

미래에 관한 다양한 생각과 관측들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존재해왔지만, 본격적으로 학문적 방법론을 도입해 미래에 관한 예측을 강구하기 시작한 미래학의 탄생은 세계 대전의 산물이었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 끝나고 미국과 소련의 두 초강대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은 각자가 짊어진 전쟁의 여파를 수습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 각국의 지도층은 그러한 와중에도 피해를 수습과 더불어 국가 발전상을 고민해야하는 상황에 처해 있었다. 사회적으로는 세계 대전을 일단락 지은 원자 폭탄의 공포가 전 지구를 휩쓸었고 총성이 잦아들며 찾아온 냉전 구도는 세계 시민들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전쟁을 겪은 세대는 자신들을 둘러싼 세계의 미래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냉전 구도 속에서 서로 간의 또다른 전쟁을 염두할 수밖에 없었던 미국과 소련은 군사적 방법론으로서의 의사 결정 모델 개발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미 공군으로부터 투자를 받았던 프로젝트 랜드 (Project RAND) 는 미래 예측을 위한 방법론들을 개발하기 시작했고 1950년대에 델파이 기법 (Delphi method) 이라고 불리는 미래학의 핵심 기법을 창안한다. 델파이 기법이란 전문가 집단의 의견을 익명성에 기반하여 수렴하고 조정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방법론으로, 이 시기에는 상기한 델파이 기법을 필두로 다양한 미래학의 기법들이 개발되었다. 현재에도 여러 분야에서 통용되는 게임 이론, 다양한 미래의 상황들을 시나리오로 구상해 예측해보는 시나리오 기법 등 미래 예측을 위한 다양한 방법론들이 이 시기에 탄생하였다. 다만, 이러한 방법론들은 냉전 구도의 긴장이 팽팽하던 만큼 군사적 사안들에 중점적으로 적용되었다. 미국은 델파이 기법을 통해 다가올 전쟁에 필요한 핵무기의 수량 따위를 계량했다. 스탠리 큐브릭 (Stanley Kubrick) 감독의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Dr. Strangelove (1964)’의 모델이 된 미래학자 허먼 칸 (Herman Kahn) 은 시나리오 기법을 통해 핵전쟁의 결과를 예상하여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시기의 미래학은 전시의 전략적 방법론 이상의 역할에 도달하지 못했다.

 

Screen Shot 2017-11-13 at 12.05.31 AM

그림3. Dr. Strangelove (1964)

 

미래학의 황금기

한편, 냉전의 긴장 구도가 하강세에 접어들기 시작한 1960년대에 이르자 미래학의 위상 또한 변화를 겪게 된다. 전쟁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잦아들고 다가올 미래에 대해 보다 긍정적으로 생각할 여지가 생기자 군사 전략을 위해 개발되었던 미래학 이론과 방법론들이 군사 분야 이외의 다양한 분야들로 옮겨가 꽃피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미래학은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이르는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델파이 기법과 같은 미래학적 방법론을 정부 차원에서 벗어나 원하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이용하게 된 이른바 ‘방법론의 민주화 (democratization)’ 는 곧 미래학 자체의 영역 확대로 이어졌고, 확대된 미래학적 기조는 하나의 운동 (movement) 의 단계로까지 확장되기에 이른다. 핵전쟁을 비롯한 전시 상황과 관련된 식량, 인구, 에너지, 환경 문제 등의 주제들이 미래 예측의 대상에 연이어 오르내렸다. 특히 진취적 분위기의 사회적 운동의 범주에 닿은 미래학적 방법론의 적용 분야는 정치학, 경제학, 환경학, 사회학 등 사회가 움직이는 범위 전반에 걸치게 된다. 이처럼 미래학은 당시의 시민들이 미래에 대해 품었던 두려움, 불안, 혹은 희망을 바탕으로 다양한 관심사에 대한 예측을 가능하게 했다. 세계적으로는 미래학을 연구하는 각종 세계 기구들의 설립을 통해 국제적인 학문 교류들이 이어졌다. 미국의 주도로 설립된 세계미래학회 (WFSF; World Futures Studies Federation) 와 유럽 및 제3세계 국가들을 주축으로 한 (WFS; World Future Society) 등이 미래학 연구와 교류의 장을 마련하며 미래학 연구에 박차를 가했다.

사회적으로 냉전 구도가 하강기에 접어들고 케네디가 우주 개발을 선언하는 등 미래에 대한 낙관론이 만발하게 된 이 시기의 미래학이 미친 파급력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지금으로부터 약 반세기 전의 황금기에 미래학은 미래의 여러 모습들을 예측하였다. GM사의 세계 박람회 전시와 디즈니랜드의 에프코트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당시에 전시되었던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담은 퓨처라마들이 전기차와 자율주행시스템, 인공지능과 로봇 등의 다양한 과학기술의 개발로 대표되는 21세기의 현시점에 그대로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방법론의 민주화와 그를 배경으로 한 사회적 참여로 대변되는 황금기 미래학의 미래 예측도가 시사하는 바는 적지 않다.

 

한국에서의 미래 담론

황금기 미래학의 세계적 흐름을 타고 한국에서도 미래학에 관련된 움직임이 있었다. 바로 1968년, 이한빈 경제부총리의 주도 하에 한국 최초의 미래학회가 탄생한 것이다. ‘한국 2000년회’라는 이름으로 1968년 설립된 한국 최초의 미래학회는 북미의 미래학적 기조를 기반으로 한 학술회였다. 이한빈 경제부총리의 회고록에 따르면 당시의 한국에서 미래학회 설립의 취지는 경제개발과 같이 당면한 문제들보다는 앞으로 다가올 문제들에 대해 멀리 내다보자는 데에 있었다. 이러한 취지에서 미래학회는 당시 델파이 기법을 적용하여 과학기술처 산하의 KIST와 ‘서기 2000년의 한국에 관한 조사연구’라는 이름으로 한국 최초의 미래학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북미의 미래학적 분위기를 수용하고 소화하려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미래학계는 그 황금기까지 함께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1970년대 한국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미래학은 일찍이 그 황금기를 가능하게 했던 ‘사회가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다양한 학계가 참여하여 의견을 공유하는’ 형태로 수용되지 못했다. 이 시기의 한국 사회가 미래학에 대해 나누었던 이야기들을 당시의 미래학 관련 언론 자료를 통해 살펴보면 이와 같은 한계가 단면적으로 드러난다.[2] 분석에 따르면 당시 박정희 정권 하에서의 미래학은 주로 경제 발전 계획과 같은 국가 발전의 아젠다를 위한 구호로 이용되었고, 이어지는 정권들에서도 먼 미래의 문제들을 예측하여 준비하기보다는 정부주도 하의 경제와 산업 분야의 전략을 마련하는 정도로 이해되었다. 단기적이고 계획적인 모습으로 대표되는 당대의 한국에 전시된 퓨처라마들은 그저 달성해야할 목표와 수치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미래학은 사회 속에서 그 영역을 확장할 기회를 찾지 못한 채 미래를 예언하는 학문으로 일컬어지는 수준에서 때때로 언급될 뿐이었다.

그러나 미래학의 학문적 확장의 성공 여부와는 별개로 한국 사회 내부에서 미래에 대한 담론은 언제나 가장 주요한 논제로 취급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2000년대에 부르짖어졌던 선진국 도약의 구호로 대표되는 국내 미래 담론의 경향성은 최근에 들어 탈추격이라는 새로운 구호 아래 그 중요도를 달리하는 듯 하다. 국가 차원에서는 정부 부처에 ‘미래’라는 단어가 도입되거나 4차 산업 혁명으로 대표되는 근미래 사회를 예측하려는 위원회를 설치하는 등 미래를 대비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학계 차원에서는 KAIST에 한국 최초로 미래학을 다루는 학제가 설립되고 미래학회가 재창립되는 등 새로운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정부, 학계, 그리고 사회가 원활하게 소통하며 진행되는 황금기적 미래 담론의 모습은 아직까지 찾아보기 어렵다. 이를테면 4차 산업 혁명과 같은 키워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21세기가 추구해야 할 미래상의 다면적인 모습에 대한 논의들이 그렇다. 황금기의 미래학이 남긴 것은 21세기 사회의 모습에 근접한 미래 예측뿐만이 아니다. 미래상에 대한 신빙성 있고 심도 있는 예측은 사회 전반이 미래 담론에 참여하였기에 비로소 가능했던 것이다. 반세기 전에 남겨진 미래학의 유산은 바로 동시대 사회의 총체적인 의견의 집합이 미래에 대한 유의미한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미래학은 어떠한 위치에 자리잡고 있는 것일까.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에 미래는 당연하게도 예측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20세기가 꿈꾸던 모습에 근접한 미래상에서 살아나가고 있는 21세기의 세계에서도 미래는 역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정부는 미래에 대해 고민하고 국가 차원의 전략을 강구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전략 수립의 측면에서의 미래학은 다시금 황금기를 누리려는 것처럼 보인다. 미래라는 말이 직접적으로 포함되지 않더라도 사회 곳곳에서는 4차 산업 혁명과 같은 전략적인 키워드를 중심으로 현 시점에 추구해야 할 미래상, 즉 21세기의 퓨처라마들이 전시되고 있다. 그러나 미래 예측이 점차 어려워지는 현 시점에서 탈추격의 구호를 외치며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국가 주도의 탑다운 방식으로 아젠다를 지정하고 그에 따라 움직이는 전략과 같이 면밀한 계획이나 확신이 아닐 것이다. 1960년대 미국에서 미래학이 황금기를 맞이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방법론의 민주화를 기반으로 한 다학제적 접근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미래를 고민하는 시민 참여적 특성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가 꿈꾸는 미래가 낡은 미래 예측에 그칠 것인지 훗날 황금기로 기억될 모습일 것인지는 앞으로 진행될 미래 담론의 형태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지난 날의 황금기에 꽃피었던 미래학적 기조를 떠올려볼 때 21세기의 한국 사회에 전시되는 퓨처라마들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재고가 필요한 시점이다.

 


볼 거리

퓨처라마(Futurama)

Screen Shot 2017-11-13 at 12.07.38 AM<퓨처라마>는 심슨가족으로 유명한 맷 그레이닝이 1999년 제작한 미국 SF 애니메이션이다. 뉴욕에 사는 피자 배달부 필립 J. 프라이가 2000년 1월 1일 사고로 인해 냉동되었다 가1000년뒤의세상에깨어나게되면서겪게되는미래사 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그 제목은 1939년 뉴욕 세계 박람회의 ‘퓨처라마’ 전시관으로부터 따왔다고 한다. 블랙 코미디로 가득한 미래 사회를 즐겨보자.

 


 

[1] 「’64-65 NY World’s Fair FUTURAMA Ride Video」, https://www.youtube.com/watch?v=2-5aK0H05jk

[2] 최준호 (2015), “한국언론을 통해 본 미래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 연구”, KAIST 석사학위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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