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脫)원전 정책을 겪는 원자력공학도의 소고

지영택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박사과정)
ytjee0721@gmail.com


고리1호기 퇴역식과 탈(脫)원전 선언, 그리고 에너지전환

지난해 6월 19일 00시, 국내 첫 원자력발전소 고리 1호기가 영구 정지되었다. 지난 40여 년간 사건·사고 없이 안정적으로 전력을 생산하며 국가산업발전의 발판이 되었던 원자력발전소의 퇴역식 기념사에서 탈(脫)원전시대가 선포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6기의 신규 원전 건설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고 원전 운영허가기간을 연장하지 않으며, 석탄 화력과 원자력 대신 LNG와 재생에너지를 바탕으로 한 에너지전환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1]

해당 기조를 바탕으로 지난 12월 28일 산업통상자원부(이하 산업부)는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발표하였다. 2030년 전력수요를 기존보다 약 11% 낮게 예측하였으며, 예비전력 비율은 총 전력수요의 22%로 설정하였다.[2] 발전원별 발전비율은 석탄과 원자력이 감소하고 LNG가 증가하며 재생이 크게 증가한다.[3] 실효용량[4]은 LNG가 38.6%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석탄, 원자력, 재생, 기타 순이다. 이 중 일조량과 풍속, 온도, 저장장치 등에 제한받는 재생에너지의 경우에는 전력생산이 일정하지 않아 실제 발전량보다 약 6.6배 많은 설비가 필요하다고 제시하였다.[5] 요약하자면 2030년 우리나라는 기존 전망보다 적은 전력을 사용한다는 전제하에 석탄과 원자력의 비중을 줄이고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20%까지 확보하며, 부족한 부분을 LNG로 채울 예정이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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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현재 대비 2017년, 2030년, 그리고 2040년 전원믹스 전망 (출처: 산업통상자원부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탈원전 정책의 바탕에는 전력이 남아도는 지금이야말로 에너지전환의 적시라는 판단이 깔려있다. 하지만 전력이 정말 남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다. 산업부는 하절기 공공기관 에너지절약대책을 시행하였고[7], 내가 공부하는 카이스트에서도 작년 7월 14일 이와 관련하여 ‘여름철 에너지절약 대책 및 이행실태 불시점검 안내’ 공문이 배포되었다. 공문은 실내온도를 평균 28°C 이상(전년도 대비 2°C 상승)으로 유지하는 것을 포함하여 에너지를 절약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심지어 세부 항목 중에는 전력을 많이 사용하는 실험은 피크시간(14시~17시)을 피해서 진행하고 가급적 실험실 내 발열 장비를 옥외에 설치하라는 등 연구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항목까지 있었다. 공공기관 절약대책과 불시점검, 근 7개월간 총 10회의 수요감축 요청[8], 그리고 보조수단인 유류발전기 가동 등은 전력이 남는다는 산업부의 발표와는 상이한 흐름이다. 향후 15년의 전력수요를 예측하는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2017 동계 최대 전력수요 전망치는 한 달 만에 이미 6회나 빗나갔다(1/28 기준).[9] 그렇기 때문에 에너지전환에 기반을 둔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의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나는 원자력공학도로서 대학원이라는 우산 아래 이번 정책을 간접적으로 체감하고 있다. 이 글은 전공과 연관이 있다 보니 조금은 진지할 수 있지만, 탈원전 정책에 대한 비판과 논설의 글은 아니다. 대신, 찬·반 논의의 평행선에 대한 요약과 함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현재 상황을 서술하고자 한다.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 복기:
공론조사 과정과 결과발표, 그리고 최종보고서에 대하여[10]

탈원전 정책 추진에 있어서 가장 큰 국민적 관심을 끈 절차는 단연 신고리 5·6호기 건설 여부를 묻는 공론조사이다. 정부는 숙의민주주의를 지향하며 공론화위원회를 출범, 비전문가 500명을 모아 시민배심원단으로 선정하여 신고리 5·6호기[11]의 건설 재개·중단 결정을 맡겼다. 시민배심원단은 전화 조사 2만 명을 바탕으로 시민참여단에 참가할 의사가 있는 사람들 중 성별, 연령, 지역, 찬·반·유보 분포 등을 고려하여 선정하였다. 공론화위원회는 2017년 7월 24일에 출범하여 3개월의 여정을 시작했지만, 아쉽게도 시민배심원단 선정-정보제공-의사결정 기간은 그보다 짧은 1개월이었다.[12] 자료집이 공개되고 다수의 TV 토론회와 지역토론회를 거친 후 10월 15일 시민배심원단의 2박 3일 합숙토론이 종료되었다. 이 여정 동안의 자료집과 토론회 자료 등은 모두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공식 사이트에 공개되었다.[13]

공론조사의 결론이 발표되는 10월 20일 오전 연구실은 평소보다 더욱 조용했다. 공론조사 결과발표는 오전 10시 배경설명을 시작으로 긴장된 분위기에서 진행되었으며, 10시 20분쯤 공론조사 결과가 재개 59.5%, 중단 40.5%로 19%p 차로 오차범위를 벗어나며 건설재개의 손을 들었다는 이야기가 이어폰을 끼고 있던 오른쪽 귀로 흘러들어왔다. 연구실 곳곳에선 작은 탄성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세부 내역 보고를 들어보니 우연히 재개 측 의견이 높게 나온 것이 아니라 1-4차 및 최종조사에 걸쳐서 점진적으로 비율이 증가하였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건설재개 입장이 각각 17.9%와 19.5%로 가장 낮았던 20대와 30대가 최종조사에서는 각각 56.8%와 52.3%로 증가한 것은 실로 고무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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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1차 전화조사부터 최종조사에 이르기까지 건설 재개 및 중단에 대한 의견 추이 (출처: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시민참여형조사 보고서)

공론조사를 통해서 본 원자력은 어느덧 이념에 가깝게 되어있었다. 이미 주관이 뚜렷한 건설 재개·중단 지지자를 설득하기보다는 유보표 확보가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실제로 1차 조사와 비교했을 때, 59.5%p의 재개 입장 중 5.3%p만이 1차에서 중단 의견을 가지고 있었고, 중단 입장 역시 40.5%p 중 2.2%p만이 1차에서 재개 의견을 가졌었다. 결국, 기존 표의 90% 이상이 유지되었고, 유보표 흡수만으로 19%p의 차이를 보였다는 것이다. 틀림없이 유보였던 시민배심원단에게 결정을 위한 이정표를 제공한 것은 건설적인 과정이었다. 하지만 각자의 견고한 의견을 설득하고 합치점 혹은 타협점을 도출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공론화위원회 결과발표의 맺음말인 ‘원자력발전 축소 권고’는 공론조사 최종보고서를 과장하여 해석한 것이 아닌가 싶다. 결과발표에서는 정책 방향에 대해서 원자력발전 축소가 53.2%, 확대가 9.7%로 나왔기 때문이라고 언급되었으나, 실제로는 원자력발전 축소(53.2%), 유지(35.5%), 확대(9.7%), 유보(1.6%)로 유보의 행방에 따라 축소와 유지·확대의 차이가 공론조사 오차범위인 ±3.6%p 이내로 들어갈 수 있다. 이를 정부에 권고하려면 유보라는 항목을 없애거나 축소의 비중이 유보를 고려하더라도 오차범위를 벗어날 정도로 높았어야 한다. 또한, ‘건설이 재개된 후 취해야 할 조치사항’에 대해서는 안전기준 강화(33.1%), 탈원전 정책 유지(13.3%), 사용후핵연료 해결방안 마련(25.4%), 신재생에너지 투자 확대(27.6%)로 오히려 탈원전 정책 유지는 가장 적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어찌 되었든, 신고리 5·6호기 건설은 재개되었고 정부의 탈원전 기조는 더욱 탄력을 받았으며,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원자력발전 비중 축소계획을 가시화하였다.

 

현재의 찬반대립, 그리고 앞으로의 논의방향:
원자력과 재생에너지는 양자택일이 불가능한 상호보완적 전력원

원자력발전을 둘러싼 찬성과 반대 입장은 공론조사에서도 보았듯이 아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찬성 측은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전력 공급, 에너지의 준국산화, 미세먼지와 온실가스의 저감, 그리고 수출을 통한 국가경쟁력 증대 등을, 반대 측은 사고 시 방사능의 위험성, 국내 원전 밀집도, 사용후핵연료 관리 및 원전 해체 비용 등을 주요 근거로 삼는다. 각자의 주장에 대해 조금 더 들여다보자면 찬성 측은 지금 수준으로 원전 비중을 유지하며 적절히 발전원을 섞어 최적의 에너지믹스를 도출하자는 것이고, 반대 측은 원전은 위험하니 원전 제로를 추구하면서 재생에너지로 전환하자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원자력발전 찬성 측 또한 재생에너지 확대를 환영한다는 점이다. 다만, 재생에너지의 간헐적인 발전량을 보완하기 위한 안정적인 전력 공급원으로 원자력을 활용하자는 것이 주요 입장이다. 정부 역시 태양광과 풍력이 확대될 수는 있어도 간헐성에 대한 설비확충[14]이 필수적이며, 석탄과 원자력을 한꺼번에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정부의 대안은 LNG를 기저발전으로 활용하여 석탄과 원자력의 비중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양측의 입장을 고려해보았을 때, 재생에너지의 적절한 확대와 함께 주요 기저 발전원이 LNG인지 원자력인지를 논의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지만 원자력과 재생에너지의 양자택일이 논의의 대상이 되다 보니 찬·반 대립은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원자력발전과 LNG를 비교하자면 원자력발전은 사고 시 방사능 유출, 국토 오염, 피폭 등의 우려가 있으며, 발전전기요금의 일부를 사후처리기금으로 조성하여 원전해체, 사용후핵연료 및 폐기물 처분비용을 마련하고 있지만 그 규모에 논란이 지속되고 있고 사용후핵연료 관리 정책과 비용이 명확하게 정립되어 있지 않다.[15] LNG발전은 석탄 화력보다 절반가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만 원자력발전과 비교하면 55배를 배출하고[16], 미세먼지(PM10)와 초미세먼지(PM2.5)를 동반하며[17], 사고 시 지구온난화지수가 이산화탄소보다 21배 높은 메탄이 고스란히 배출된다.[18] 추후 기저발전에 대한 논의는 결국 방사능·사후처리 경제성이 문제가 되는 원자력과 온실가스·미세먼지가 문제 되는 LNG 사이에서 전원믹스를 어떻게 수립할 것인지가 주 내용이 되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LNG를 가져가고 원전을 줄이는 것이 현 정부의 목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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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발전원별 온실가스(등가 이산화탄소) 배출량 비교 (출처: Markandya, A. & Wilkinson, P. (2007), “Electricity generation and health”, The Lancet, Vol. 370, pp. 979-990.)

195개국이 협약에 서명한 파리기후협약과 지난 12월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의 원전축소 공약 보류[19]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인 온실가스는 국제적인 현안이다.[20] 우리나라는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기저발전으로써 원자력을 LNG로 서서히 대체할 계획이다. 우리나라는 2030년 전망치 기준 37%의 온실가스를 줄여야하고[21], 미세먼지 또한 점차 심각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모순적이게도 이번 정부에서는 신고리 5·6호기와 신한울 1·2호기 건설로 인해 원전 수가 증가한다. 앞으로 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이 시간에 지남에 따라 얼마나 확보가 될지는 예견하기 어렵지만 탈석탄·탈원전의 속도와 LNG 확대는 온실가스와 미세먼지 문제, 그리고 원자력발전에 대한 합리적인 사회적 비용에 맞추어 견고하게 그 비율이 조절되어야 할 것이다.

 

학계의 분위기와 연구 환경의 변화: “대응책이 필요하다.”

탈원전 정책이 구체화됨에 따라 학계의 분위기와 연구 환경은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이해관계자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배제되고, 탈원전 정책은 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본격적인 논의 없이 진행되고 있어 답답한 분위기인 것은 사실이다. 반면 한국형 상용원전은 국제적으로 안전성과 건설·운전 역량을 입증받으며[22] 원전 수출 전략·계획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탈원전과 원전 수출을 동시에 당면한 지금은 다소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학과의 분위기는 우울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더 알아가자’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과거에는 각 교수님들의 전문분야를 바탕으로 학과 세미나가 구성되었다면, 지난 가을학기에는 에너지 정책 전반에 걸친 내용이 시리즈로 구성되어 여러 학과 구성원에게 전력수급과 전원의 경제성, 전력망, 각국의 에너지 정책 현황 등을 소개하였다. 타임지 선정 ‘환경 영웅’ 마이클 셀런버거[23]와 전 미국 에너지장관 스티븐 추 교수[24], OECD 원자력기구 윌리엄 맥우드 사무총장[25]과 같은 세계적인 전문가들의 유익한 강의를 직접 들을 기회도 있었다. 세 연사 모두 원자력발전에는 아주 작은 확률로 위험성이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다만, 지구온난화와 미세먼지의 문제가 원자력의 ‘확률적 사고’보다 더 큰 문제이고 현안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학과 구성원끼리 공론조사 기간 동안 방송된 토론회와 매스컴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에너지전환 정책에 대한 최신 소식을 빠르게 받아볼 수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상황이 조금 달랐다. 2016년부터 우리 학과는 사우디아라비아 왕립 원자력·신재생에너지원(K.A.CARE[26])과의 협력을 통해 사우디의 차세대 원자력 리더가 될 학생들을 위한 하계강좌를 개설한 바 있다. 학과의 모든 교수님과 여러 조교들이 4주에 걸쳐 강의, 시험, 발표, 실험 등을 수행하고 학생들을 평가하는 큰 학문적 교류이자 외교의 일환이었다. 2017년에도 어김없이 하계강좌가 개설되었다. 두산중공업과 고리 원자력발전소 견학을 다녀온 후, 학생들이 한국은 왜 탈원전을 하며 건설은 왜 중단된 상태인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본국에서 소형모듈원전의 사전설계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나라가, 이웃 나라 아랍에미리트에 원전을 수출·건설하고 있는 나라가, 그래서 차후 표준형 원전 운영을 생각하며 학문을 배우러 온 나라가 정작 자국 내에서는 원전건설을 백지화하고 원자력발전 비중을 축소하는 중이었던 것이다. 에너지전환을 바탕으로 간략하게 설명하려고 했지만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듣는 그들도 설명하는 나도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미래원자력기술 발전전략’에 따르면 에너지 정책의 변화에 따라 연구개발의 초점도 상용원전 및 차세대 원전개발에서 안전과 해체, 타분야와의 융·복합으로 옮겨간다.[27] 기존연구사업 예산이 일부 재편성되고 몇몇 대형연구개발사업에 대해서는 적정성을 재검토한다. 일부 계속과제는 연구비가 삭감되었고, 신규과제를 준비하는 연구실이나 대형 프로젝트를 주로 수행하는 기관은 목표하던 연구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특히 중장기·대형 프로젝트 확보에 차질이 생길 경우엔 해당 프로젝트 유관 위탁연구나 인력양성이 축소되어 원자력 안전의 기초체력이 약화되고 저변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연구개발사업의 성격과 규모를 급격하게 변화시켜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미 일부 ‘연구개발’사업에 대해서는 ‘원자력과 관련 없는 전문가’들로 구성한 평가단이 ‘사업성’ 평가를 준비하고 있다.

특정 학문의 기반에는 연구개발 못지않게 인력양성도 큰 영향을 미친다. 우리 학과를 포함한 국내의 원자력 학과는 원자력발전뿐만 아니라 사용후핵연료·방사성폐기물 처분, 재료 연구, 방사선의료연구, 중성자를 활용한 기초연구, 핵융합연구 등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강한 탈원전 기조로 인해 원전 관련 연구만 하는 학과로 모습이 비춰지며 신규인력 유입이 벌써 급감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원전건설 역량이 우리나라보다 뒤처진 이유는 일시적인 탈원전으로 인해 원자력 유관 산업이 붕괴되어 그간 높아진 안전기준을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28] 일본 역시 일시적인 탈원전으로 인해 인력 공백이 생기면서 원전산업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29] 우리나라는 지금 탈원전 정책과 원전 수출 장려를 동시에 추진[30]하는, 어찌 보면 모순적인 상황에 처해있다. 인력이 감소하는 환경에서 인력이 더 필요하게 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될 것이다. 저변 유지를 위해서라도 학계와 정부가 경각심을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

 

조금씩 변해가는 일상. 신뢰 회복을 위하여.

정부의 기조가 탈원전으로 접어들면서, 그리고 공론조사가 진행되면서 뉴스와 토론을 통해 원자력에 대한 정보가 빈번하게 제공되었고 이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원자력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사실이다. 지인들은 물론이고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전공을 소개하다 보면 자연스레 몇 마디를 나누게 된다.

내 경우 초면인 사람과의 원자력 이야기는 주로 택시 안에서 이루어지는데, 짧은 시간 동안에도 상당히 치열하게 진행된다. 특히 요즈음에는 원자력을 전공한다고 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로 인해 이야기가 시작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이 경우 기사님은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이야기를 마쳐야 하기 때문에 나는 보통 듣는 입장이 되거나 짧게 답할 수 있는 질문만을 듣게 된다. 흥미로운 점은 대화의 질과 수준이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굉장히 높아졌다는 것이다. 특히 공론조사가 이루어지는 기간에는 더욱 그랬다. 밤늦게 기차를 타고 서울에서 대전으로 내려와 대전역에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9월 말 선선했던 어느 날이었다. 라디오에서는 어김없이 공론조사 소식과 함께 자료집 관련 뉴스가 나왔고,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기사님은 앞서 언급한 원자력발전의 장단점을 정확히 꿰고 있었고 건설 중단 측의 재생에너지발전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소견을 가지고 있었다. 마지막에는 조심스럽게 “그래도 짓던 것은 마저 지어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덧붙이시며 내 전공을 물어보셨고, 원자력공학이라 말씀드렸더니 미소를 머금고 조금 더 의견을 피력하며 운전을 계속했다. 나는 평소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날은 상상 이상으로 깊고 수준 높은 관심에 놀라 택시에서 이어폰을 빼고 집까지 온 손꼽히는 날이었다.

지인들과의 대화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진행된다. 아무래도 아는 사람들이다 보니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만나는 것도 있고, 다행스럽게도 서로 간에 정과 예의가 존재해서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정보를 제공해주는 기회가 생긴다. 물론 간혹 호기심이 많은 지인이 함께하면 ‘그래도 만약에’라는 무한루프에 빠지게 되지만, 대부분의 경우 건설적으로 대화가 끝난다. 가장 빈번히 들은 질문은 ‘우리나라 원전은 안전해?’와 ‘일본여행 가도 돼?’이며, 전자의 경우에는 핵분열의 원리와 U-235/U-238의 차이점부터 시작해서 대표적인 사고의 원인과 과정, 원자로 설계의 차이, 원전의 다중방어 안전계통 등을 차례대로 설명하다 보면 서로가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후자는 방사선과 그 단위의 개념을 시작으로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현황을 보여주고 “만약에 나라면…”이라는 개인 의견을 덧붙이며 대답을 전개하는데, 조금이나마 그 지인의 고민에 (아마)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예전에는 “잘 사냐?” 정도에 불과했던 신변잡기적 대화는 어느덧 전공을 일상대화에 녹일 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일수록 더 깊어졌다. 전공수업을 포함하여 2016년까지 말한 ‘원자력’이라는 단어의 수보다 2017년 당해 동안 말한 ‘원자력’의 횟수가 더 많다고 느껴질 정도로 주변 사람들의 원자력에 대한 관심은 크게 변화하였다.

지금까지 원자력은 주로 국책사업으로 진행되었으며 단어의 어감과 학문의 진입장벽 때문에 사회적으로 소통이 그리 활발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베크렐(Bq), 시버트(Sv), 핵분열 등 일상생활과는 거리감 있는 용어와 개념의 사용으로 소통의 문제가 심화된 것 역시 사실이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안전정보공개센터, 한국수력원자력과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의 정보제공 및 홍보활동 등 지속적인 노력과 플랫폼은 있었으나 알고자 하는 사람이 마음먹고 찾아와야 한다는 점에서 그 한계가 확연히 존재했다. 이번 공론조사와 더불어 에너지정책과 관련된 이야기가 6월 이후 끊임없이 보도되면서 지금까지 부족했던 사회와의 소통을 몰아서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원자력산업회의가 지난 1월 12일 개최한 원자력계 신년인사회에서는 올해 2018 무술년을 ‘국민신뢰 회복 원년’이 되길 기원하고 당부하는 목소리가 한 곳에 모였다.[31] 원자력이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되고 언급되는 지금 이 기회가 다시금 대중과 원자력계 간의 신뢰와 소통을 회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조심스럽게 소망해본다.


읽을거리

리처드 뮬러, 장종훈 옮김, 허은녕 감수, <대통령을 위한 에너지강의>, 살림, 2014.
Screen Shot 2018-04-09 at 11.01.48 AM.png대통령이라는 자리는 하나의 이슈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파고들고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업무가 많은 자리이다. 대신 한 국가의 리더로서 올바른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각 이슈의 사실과 논리를 이해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의 저자 리처드 뮬러는 현존하는 에너지 자원의 개념·현황·전망을 이 한 권에 모아두었다. 마치 대통령에게 간결하고 필수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보좌관이 말하는 것처럼 쓰여진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 안에서 각 에너지 자원 지식에 대한 진입장벽이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Screen Shot 2018-04-09 at 11.01.56 AM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종합토론회 발표영상 (17.11.13자) <http://www.sgr56.go.kr/npp/join/semiar.do>
11월 13일 업로드 된 종합토론회 발표영상 6개는 공론조사 마지막 여정인 시민배심원단의 2박3일 합숙토론 중에서도 마지막 날(10월 15일) 발표를 모아둔 것이다. 각 20분 내외의 영상들은 숙의자료집과 각종 지역토론회에서 미처 정제되지 못한 오류들을 최종적으로 짚어나감과 동시에 건설 재개·중단 측 핵심자료를 압축적으로 발표하는 발표자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시민배심원단으로 참여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이제 와서 보고서나 숙의자료집을 정독하기에는 시간적으로 부담이 되는 사람이라면, 이 발표영상 6개만 보아도 아쉬움을 달래고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 번 정리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판도라의 약속, 로버트 스톤, 2013.
Screen Shot 2018-04-09 at 11.02.01 AM공론조사를 통해서 본 원자력은 어느덧 이념에 가깝게 되어있었다. 이 영화(다큐멘터리)에는 한때 원자력을 반대하던 환경운동가들이 출연한다. 핵분열의 원리와 원자로의 구조, 사고 경위와 여파, 방사선 이야기, 사용후핵연료와 방사성폐기물 등 찬·반 논의에 빈번하게 거론되는 현안들을 바탕으로 어떤 객관적인 정보가 그들의 ‘이념’을 바꾸었는지를 그들의 목소리로 직접 서술한다. 89분간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그리고 세간에 알려진) 정보가 생각보다 왜곡된 부분이 많을 수 있다는 것을 드러냄과 동시에 원자력에 대한 다양한 오해를 풀어줄 것이다.


[1] 연합뉴스(2017. 06. 19), 「[전문] 文대통령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 기념사」.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6/19/0200000000AKR20170619071500001.HTML)

[2] 전력수요: 113.2GW(제7차) → 100.5GW(제8차), 예비율을 포함하여 122.6GW 확보 목표

[3] 발전원별 예비율 조정은 다음과 같다. 석탄(45.3%→ 36.1%), 원자력(30.3% → 23.9%), LNG(16.9% → 18.8%), 재생(6.2% → 20.0%)

[4] 석탄(38.9GW, 31.6%), 원자력(20.4GW, 16.6%), LNG(47.5GW, 38.6%), 재생(8.8GW, 7.1%), 기타(7.4GW, 6.0%)

[5] 재생에너지 실효용량 8.8GW(총 실효용량의 7.1%) → 정격용량 58.5GW(총 정격용량의 45.2%)

[6] 산업통상자원부(2017. 12. 29),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7~2031)」.

[7] 산업통상자원부(2017. 07. 10 보도자료), 「올해 여름철 에너지절약은 공공기관이 앞장선다」.

[8] 전력수요가 급증할 때 전력 사용량 감축을 위해 사전에 계약을 맺은 기업들에게 전력 사용 감축을 지시하고 적정한 보상금을 주는 제도. 처음 도입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불과 세 번(2014/12/18, 2016/01/28, 2016/08/22) 행해졌으나, 2017년 7월부터 총 7회(7/12, 7/21, 12/13, 12/14, 12/20, 1/11, 1/12, 1/24, 1/25, 1/26)의 수요감축 요청이 행해졌다.

[9] 한국경제(2018. 01. 24), 「원전 가동 줄여놓고 “공장 전기 꺼라”」, (http://news.hankyung.com/article/2018012446121) 전력통계정보시스템, (http://epsis.kpx.or.kr/epsisnew/)

[10]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2017. 10. 20),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시민참여형조사 보고서」 및 「신고리 5·6호기 공론화 시민참여형조사 보고서 발표문」.

[11] 당시 종합공정률 28.8% (집행금액 1조6천억 원)

[12] 시민배심원단의 첫 오리엔테이션은 9월 16일에 이루어졌으며 자료집은 9월 28일에 배포되었다.

[13] http://www.sgr56.go.kr/npp/join/resources.do

[14]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8.8GW의 실효용량을 위한 58.5GW의 설비. 47.2GW(원전 34기) 규모의 추가 신규 설비가 필요.

[15] 연합뉴스(2017. 10. 12), 「국감 도마 위에 오른 ‘원전 발전원가’…신재생의 ‘4분의 1’」.(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12/0200000000AKR20171012139100003.HTML)

[16] J. V. Spadaro et al. (2000),  “Greenhouse Gas Emissions of Electricity Generation Chains: Assessing the Difference”, IAEA Bulletin, Vol. 42-2, pp. 19-24.

[17] United States 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US EPA) (1998), AP-42: Compilation of Air Emission Factors, 5th ed. Vol. 1, Chapter 1.1.4: Natural Gas Combustion.

[18] “GHG Data: Global Warming Potential” (UNFCCC), (http://unfccc.int/ghg_data/items/3825.php)

[19] 71%의 에너지를 원자력으로 충당하고 있는 프랑스는 2025년까지 50%로 낮추겠다는 로드맵을 발표하였으나, “국제사회의 최우선 해결 과제는 이산화탄소 배출과 지구온난화”라며 독일의 탈원전에 대해서도 “독일은 가동을 중단하면서 재생에너지를 개발했지만 화력발전소를 대거 재개하여 이산화탄소 배출을 늘렸다”고 말하며 원전축소 공약을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20] 에너지경제연구원(2017. 12. 26), 「2017년 세계 에너지·기후변화 정책변화 방향」, 『세계 에너지시장 인사이트』, 제17-43호.

[21] United Nations Framework Convention on Climate Change (UNFCCC) (2015. 06. 30), “Intended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INDC) Submissions by the Republic of Korea”

[22] 한국형 원전 APR1400 모델은 지난 8월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표준설계 인증심사 3단계를 통과했고(프랑스: 심사포기, 일본: 10년째 1단계에 정체), 지난 10월에는 유럽 수출형 모델 EU-APR 역시 유럽사업자요건 인증심사를 최종 통과하였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성공적으로 상업운전을 하고 있는 3세대 가압형 원전이라는 점에서 안전성과 건설-운전 역량이 동시에 입증된 모델이 되었다.

[23] 지난 7월 정부에 원전제로 정책 재고를 요구하는 서한을 들고 방한하여 “원자력은 무조건 위험하고 신재생에너지는 깨끗하고 지속 가능하다는 장밋빛 환상에서 벗어나야한다”고 했다. 카이스트 강연영상은 학과 홈페이지(http://nuclear.kaist.ac.kr/nu_board1/13418)에서 찾아볼 수 있다.

[24] 지난 11월 카이스트 에너지포럼을 위해 방한하여 “한국 정부는 탈원전 정책을 재고하여 독일의 사례를 따라가면 안 됩니다”라고 강조하였다.

[25] 국제 핵연료주기 학술대회(GLOBAL2017)을 위해 방한하여 “한국의 탈원전 정책을 존중하지만 탈원전으로 발생하는 신규 에너지 수요를 어떤 에너지원에서 찾을 것인지 진지하고 신중하게 고민해야 합니다”라며 각 나라의 환경과 에너지 수급 상황에 맞춰 정책이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답했다.

[26] King Abdullah City for Atomic and Renewable Energy

[27] 과학기술정보통신부(2017. 12. 19 보도자료) 「과기정통부, 문재인정부의 원자력 R&D 방향 제시」.

[28] 에너지신문(2017. 08. 03), 「美 V.C. Summer 원전 건설중단 발표」.

[29] 중앙일보(2017. 08. 23), 「日 “원전 수출하려는데… 원전 인재와 연구용 원자로 없어 답답”」. (http://news.joins.com/article/21868559)

[30] 21조원 규모의 영국의 무어사이드 원전사업권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소형모듈원전 사전설계 사업이 순항중인 사우디아라비아에서도 올해 원전 2기를 국제입찰에 부치며 프로젝트 수주를 위해 오는 2월 산업부 장관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할 예정이다. 지난 10월에는 체코의 원전 특사 일행이 한국수력원자력을 방문, 신규원전 발주에 청신호가 켜졌다.

[31] 전기신문(2018. 01. 12), 「원자력계 신년인사회…“국민적 신뢰 회복의 원년”」.(http://www.electimes.com/article.asp?aid=151571394515219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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