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과기린의 영화뒤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필자 소개

곰과기린

현재 동거 중인 곰과 기린은 만난지 올해로 8년째가 되는 사이다. 기린은 현재 석사과정에서 고통받고 있으며 곰은 정말 신기하게도 아직 학부생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8년 동안 곰과 기린의 주된 술안주는 영화였다. 영화뒤켠은 그 술자리 이야기를 글로 연성하라는 편집장의 요구로 탄생하였다고 한다.


 

곰: 안녕하세요 여러분, 곰과기린의

기린: 영화뒤켠 코너입니다. 이번 호에 저희 곰과기린이 영화뒤켠이라는 코너로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짝짝짝) 어떤 코너인가요, 곰군?

곰: 네, 기린형. 영화뒤켠 코너에서는 영화라는 대표적 대중 매체가 과학을 어떤 방식으로 그리는지 살펴볼겁니다.

기린: 그렇습니다, 오늘 영화뒤켠의 첫 시작을 장식할 주제는 바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가 되겠습니다. 최근 10년간 극장가를 장악하고 있는 대중성 영화의 끝판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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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극장가를 장악한 대중성 영화의 끝판왕,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곰: 네, MCU의 시작을 알린 <아이언맨(2008)> 부터 가장 최근 나온 <토르: 라그나로크(2017)> 까지 총 17편의 영화가 개봉했는데요.

기린: 계산해보니 한국에서만 무려 누적 8천만에 가까운 관객을 모았어요. 거칠게 나누어봐도 영화 한 번 내면 5백만 관객이 동원된다는 이야기네요.

곰: 계산하면서 어이가 없더라구요. 무려 17편의 영화가 서로 스토리가 이어지고 있는데 어떻게 꾸준히 평타를 치고 있죠?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2017)>를 보세요… 한국에서 백만 관객도 못 찍고 내렸어요. 제가 4번이나 봤는데도 말이죠…

기린: <스타워즈> 시리즈는 한국에서 흥행하지 못하는 것으로 유명하죠…반면에 마블은 주변에서도 새 영화가 나오면 영화관 가서 봤다는 얘기를 심심치않게 들을 수 있으니까요, 대중성이라는 측면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이네요.

곰: 이렇게 크나큰 대중성을 가진 프랜차이즈인 만큼 MCU가 대중문화 전반에 가져오는 파급력은 상당할것으로 짐작됩니다.

기린: 그런데 저희가 여기, 과학뒤켠의 영화뒤켠에서 MCU를 다루기로 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죠, 곰군?

곰: 그렇죠, 비록 과학과는 별 상관이 없어보이는 슈퍼히어로 프랜차이즈라지만 MCU에는 의외로 과학이 정말정말 많이 등장합니다. 상당수의 히어로가 과학자이고, 그게 아니라면 과학 기술을 통해 슈퍼 파워를 얻었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어요.

“MCU 상당수의 히어로가 과학자이거나 과학 기술을 통해 슈퍼 파워를 얻었다는 설정이에요.”

기린: 맞아요, 심지어 어떤 영화에서는 주요 스토리라인, 혹은 소재가 과학기술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기도 하죠. 예를 들면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이하 <에이지 오브 울트론>)같은 경우 최근 들어 한참 핫했던 AI 이슈들과 연관이 되어 있는 식으로요.

곰: MCU의 히어로들은 힘의 원천에 따라 두 가지 부류로 나뉘어요. 토르나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마법적 힘을 가진 존재, 아니면 과학의 힘으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존재들 입니다. 자연스레 마법의 힘을 가진 히어로들은 판타지 장르를 떠오르게하고, 과학 기술로 만들어진 히어로들은 SF 장르를 떠오르게 합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다분히 판타지적인 히어로인 토르나 닥터 스트레인지마저도 인간의 과학을 통해 설명하려는 장면들이 영화상에 많이 드러난다는 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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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테서랙트를 열천체물리학으로 설명하려는 시도. 천재 토니 스타크는 열천체물리학을 하룻밤만에 마스터했다고 한다.[1]

 

기린: <어벤져스>에서는 로키가 테서랙트를 어떤식으로 이용할지를 토니 스타크가 설명하는데 굳이 “열천체물리학”이라는 개념을 불러오죠. 하룻밤 사이에 “thermo-nuclear astro-physics” 전문가가 된 토니 스타크는 마법의 오브젝트인 인피니티 스톤을 분석해요. 맞아요, 저도 마블에서 과학이 어떤 식으로 등장하는지 이번 기회에 눈여겨 살펴보게 되었는데요. 우선 방금 곰군이 얘기한 히어로의 정체, 혹은 기원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흔히 미국 코믹스 역사에서 실버에이지라고 불리는 시기인 1950년대 중반부터 70년대까지의 기간 동안 탄생한 슈퍼히어로들이 주로 과학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져 있죠. 역사적으로 과학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던 시기이기도 하고요. 그 중에서도 제일 유명하고 이해하기 쉬운 건 역시 마블 프랜차이즈의 선두주자,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겠죠?

곰: 토니 스타크는 천재 공학자 컨셉이에요. 천재이고 돈도 많아서 옳은 일을 할 모티베이션이 필요했던 존재인데, 셀럽 무기상에서 세계 평화의 수호자로 전직한 케이스죠. 가슴팍에 상온 핵융합이 가능한 소형 아크 원자로를 달고서 그 동력으로 몸을 감싼 슈트를 이용해 초음속으로 비행해요. 무기 팔던 시절의 노하우를 슈트 적재 적소에 쑤셔 넣고, 직접 코딩한 자비스라는 AI 비서가 전투 상황은 물론 일상 스케줄과 사업 관리까지 하고… 이건 뭐 전자공학, 기계공학, 컴퓨터공학… 그냥 혼자 공학계열 다 해 처먹어요.

기린: 직업은 천재 엔지니어, 기원은 가내 수공업으로 만든 핵융합 원자로. 그야말로 과학에서 태어난 슈퍼히어로네요. 그런데 아이언맨 외에도 과학적 기원을 가진 인물들은 많아요. 유전자 조작 거미에 물려서 초인이 된 스파이더맨, 감마선을 쬐고 초록괴물이 된 헐크, 슈퍼 솔저 물약을 맞고 다시 태어난 캡틴 아메리카, 천재 박사가 개발한 소형화 슈트를 입은 앤트맨까지…지금 나온 슈퍼히어로들의 많은 경우가 그 기원을 과학, 혹은 공학에서 찾아볼 수 있어요. 비록 그 자세한 과정은 보여주지 않지만 일단 소재가 과학인 히어로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그야말로 슈퍼 파워를 만드는 과학!

우리가 슈퍼히어로 영화를 보고 ‘과학’을 딱히 떠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과학이 단순히 히어로 서사를 위해 소비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곰: 아쉬운 점은 이들 과학이 정말 슈퍼 파워를 만들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과학이라는거죠. 우리가 슈퍼히어로 영화를 보고 ‘과학’을 딱히 떠올리지 못하는 이유는 과학이 단순히 히어로 서사를 위해 소비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RPG 게임을 하면 경험치를 쌓고 좋은 아이템을 얻으면서 강해져야 되는것처럼, 아이언맨은 더 좋은 슈트를 만들고, 더 쿨한 슈트를 만들고, 더 강력한 슈트를 만들면서 성장을 해요. 근데 여기서 아이언맨이 과학 기반의 히어로라는건 별로 중요하지 않죠. 중요한건 아이언맨이 점차 성장하고 강해진다는거지 과학은 그 매개체일 뿐이에요.

기린: 과학이 단순하게 묘사된다는 점에는 저도 동의해요. 한 가지 더, 히어로의 기원과 연결되면서 어쩌면 더 중요한 스토리라인과의 시너지가 매우 미약하다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영화가 뭐 꼭 교훈적이거나 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과학적 기원을 가진 슈퍼히어로의 서사가 그 기원과 전혀 연관이 없다면 그것도 문제죠. 그런 점에서 17편의 마블 영화들 중에서 그나마 이 지점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준 게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라고 생각해요. 공학자인 토니 스타크가 다분히 공학적이고 독단적인 사고방식을 통해 세계 평화를 추구하고 그 과정에서 울트론이라는 토니 스타크의 안티테제격 슈퍼 빌런이 탄생한다는 플롯은 아이언맨의 정체성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죠. 그런데 <에이지 오브 울트론>외에는 이런 지점에 대해 유효한 시도를 한 작품이 떠오르지 않네요.

곰: <에이지 오브 울트론>은 연구자의 독단적인 연구 프로세스가 어떻게 해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최초의 Sci-Fi 문학으로 불리는 메리 셸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1818)>도 그렇지만, 그 외에도 굉장히 많은 Sci-Fi 영화들이 다루어왔던 문제를 MCU에서도 시도했던거죠. 시도는 했지만 끝까지 밀고 나가지는 않았어요. 이 영화에서 울트론이라는 빌런을 만들어낸 토니 스타크와 브루스 배너는 왜 심판 받지 않는걸까요? 토니 스타크에 대한 심판은 아이언맨의 액션으로 치환되었어요. 엄청난 해악을 만들어내자 마자 바로 싸워야 하다보니 문제의식이 곧바로 희석되었단 말이에요. 영화가 연구 윤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려다가 말았고 너무나 아쉬운 결과물이라고 생각해요.

이건 우리가 연구실에서 볼 수 있는 과학이 아니에요. 화려하고 뭐든 잘 되어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 같은 과학이란 명백히 잘못된, 선택적인 묘사죠.”

기린: 그러게요, 더 깊이있게 풀어낼 수 있었을텐데 발만 담그고 쓱 지나갔죠. 음, MCU가 다루는 과학은 그러니까 말하자면 “슈퍼 과학”인 것 같아요. 등장하는 과학의 상당수가 소수의 천재 과학자들의 개별적 작업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처럼 묘사되고, 일반 대중은 접할 수 없는 기밀의 과학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이렇게 스크린 위에 그려지는 슈퍼히어로들이 사용하는 과학은 섹시하고 멋지죠. 그런데 이건, 그러니까 우리가 공대 연구실에서 볼 수 있는 과학이 아니에요. 이 영웅들의 과학을 보고 있으면 화려하고, 뭐든 한 번에 잘 될 것 같고, 좋은 결과로 이어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지만 주변을 둘러보면 명백히 잘못된, 그러니까 선택적인 묘사죠. 방금 곰군이 이야기한것처럼 그 부작용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크게 다루지 않고 있고요.

곰: 우리가 학교를 다니면서 매일 목격하는게 연구 과정의 협업인데… 과학은 같이 하는게 아니었나요?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브루스 배너와 토니 스타크가 잠깐 협업을 하긴 하지요. 그게 비록 울트론을 탄생시키는 결과로 이어지지만… MCU는 과학계의 협업보단 과학자 사이의 대립을 더 좋아하는것 같아요. 천재 과학자와 좀 덜 천재인 과학자 사이의 대립. 주로 토니 스타크를 더 빛나는 재수덩어리로 만들어 주는 장치들이에요.

기린: 음, 그랬던가요? 좀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줄 수 있나요, 곰군?

곰: 아이언맨의 주요 빌런들을 기억해 봅시다. 1편의 아이언몽거, 2편의 위플래시, 3편의 킬리언 모두 토니 스타크와 일을 같이 했거나, 그의 아버지 하워드 스타크와 협업했거나, 토니와 협업하려다가 무시 당했던 사람들이었죠. 스타크 가문의 잘난 맛에 크게 상처입고 돌변해 빌런이 되었어요. 과학자들은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그리고 결국엔 그런 개인적 동기가 연구적 결과물끼리 물리적으로 치고 박고 싸우는 방식으로 스크린에 그려지는 거에요.

기린: 그런데 천재가 아닌 일반인 과학자들이 MCU 영화에 아주 나오지 않는 건 또 아니에요. 성실한 인간 과학자들도 나오죠, 예를 들면 토르 시리즈의 히로인인 제인 포스터, 아니면 자주 얼굴을 비추는 에릭 셀빅 박사…아, 한국인 캐릭터로 나온 헬렌 조도 있네요.

곰: 네, 보다 평범한 과학자들이 좀 나오긴 합니다. 그냥 슈퍼 파워가 없는 비슈퍼히어로 과학자라 해야할까요? 어쨌든 이들을 통해서 MCU는 세계관 전반의 과학적 설정을 풀어내고는 하죠, 약간 뜬금없는 설명충 캐릭터들이에요. 그리고 이런 비슈퍼히어로 과학자들은 마블 영화에서 항상 민폐 캐릭터로 나옵니다. <어벤져스>에서 로키가 치타우리 군단을 어떻게 지구로 불렀죠? 에릭 셀빅 박사를 조종해서 그의 두뇌를 이용해 포탈을 열었어요. 포탈을 통해 쳐들어온 치타우리 군단이 뉴욕을 초토화 시켰죠.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는 울트론이 헬렌 조를 조종해서 보다 진화하려고 하고, 제인 포스터는 에테르의 숙주가 되죠. MCU에서 슈퍼 파워가 없는 과학자는 이렇게 더 강한 존재의 도구가 되기 마련이에요. 자기의 연구적 성과가 어떤 가치를 위해 구현될지에 대한 선택권이 없이 휘둘리는 존재로 그려져서 너무나 슬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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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비슈퍼히어로 과학자들이 강력한 존재에게 조종당하는 모습. 왼쪽부터 에릭 셀빅, 제인 포스터, 헬렌 조이다. 모두 눈동자 색깔이 이상하게 변했다.[2]

 

비슈퍼히어로 과학자들은 마블 영화에서 항상 민폐 캐릭터로 나옵니다.”

기린: 생각해보면 슈퍼히어로 무비라는 게 애초부터 초인들이 범인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해결한다는게 포인트인 장르니까 어쩔 수 없는 문제인가 싶기도 하다가 슈퍼히어로 무비라고 꼭 그래야 하나, 하는 언제나 같은 결론에 이르고는 하는데요. MCU가 과학을 다루는 지점에서 이런 슈퍼히어로무비적인 부분이 부각되는 것은 사실인 것 같아요. 그런데 영화들을 다시 보다보니 잘 된 점들도 있지 않나 싶은게, 마블 영화 중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이 종종 있었거든요. 예를 들어, 개인적으로 MCU 영화들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등장인물을 고르라면 <스파이더맨: 홈커밍(2017)>의 빌런 벌처, 에이드리언 툼스라는 인물을 꼽고 싶어요.

곰: 기린형은 벌처가 왜 좋았나요?

기린: 이 벌처라는 빌런은 말하자면 생계형 악당인데요. 벌처는 원래 폐기물 수거 업체를 운영하는 가장이었어요. 그는 어벤저스가 일으킨 뉴욕 사태, 그러니까 외계인 치타우리 군대의 침공 이후에 외계 폐기물을 수거하는 일에 대규모 투자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가 후원하는 ‘데미지 컨트롤’이라는 기업이 다짜고짜 나타나 일거리를 빼앗아가요. 이후 생계가 막막해진 벌처는 폐기물 수거 업체 직원들과 함께 훔쳐낸 외계 폐기물에서 얻은 기술로 무기를 제작해 비밀리에 판매하는 어둠의 사업에 뛰어듭니다. 아이언맨의 기원이 첨단 과학을 하는 천재 과학자라면 벌처의 기원은 창고 안의 소시민 공학자라고 할 수 있겠죠. 벌처는 아이언맨처럼 혼자 슈트를 개발하고 활동하는 천재가 아니라 철저히 분업화된 시스템을 가진 하나의 아이콘이에요. 벌처가 외계 폐기물을 훔쳐오면, 직원들이 무기를 만들고 판매하죠. 이러한 벌처의 존재와 기원은 아이언맨의 대척점에 위치해있고, 아이언맨이라는 슈퍼히어로의 그림자를 형상화 한 빌런이라고 생각해요. 그 점이 마음에 들었던것이죠.

곰: 하지만 벌처는 아이언맨이 상대하는 빌런이 아니잖아요? 저는 그 점이 이상했어요. 왜 벌처의 상대는 스파이더맨이죠? 그는 분명 토니 스타크의 거대 권력이 만든 부작용 중 하나인데 말이죠. 벌처를 정면으로 상대하는 아이언맨이 나왔다면 얼마나 큰 가능성이 열렸을까요? 하지만 벌처는 결국 스파이더맨을 상대할 빌런이기 때문에, 피터가 좋아하는 여자애의 아빠 캐릭터로 전락해버려요. 훨씬 더 대단한 의미를 담을 수 있었던 빌런인데 개인적인 동기로 축소 시켜버렸어요. 벌처가 토니 스타크와 맞섰다면 얼마나 많은 세계관 내의 문제점들을 시사할 수 있었을까요? 토니 스타크는 또 더 깊게 자기 성찰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을테고요. 하지만 우리에게 보여준 현실은 데이트 허락이나 해주는 쪼잔한 아빠 역할의 벌처였어요.

자꾸 가능성을 열어두고 황급히 닫는다는 느낌이 들어요. 충분히 더 깊이 다룰 수 있는 방향이 될 수 있었다가 스토리가 대중성을 위한 안전한 선택으로 향하는거죠.”

기린: 그렇죠, 원작에서 벌처는 스파이더맨의 상대로 나온단말이죠. 코믹스를 원작으로 하다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일 수도 있겠어요, 원작의 팬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을 수도 없을테고요. 하지만 그 결과는 결국 스토리라인의 문제로 이어져요. 더 효과적인 서사를 창조해낼 수 있어 보이는데, 그러지 못하게 되었죠.

곰: 자꾸 가능성을 열어두고 황급히 닫는다는 느낌이 들어요. 충분히 더 깊이 다룰 수 있는 방향이 될 수 있었다가 스토리가 대중성을 위한 안전한 선택으로 향하는거죠.

기린: 맞아요, 지금 열심히 문제점을 얘기하긴 했지만 MCU는 확실히 가능성이 있어요. 잘 가다가 옆으로 샌다는 느낌이 항상 있지만요. 굳이 지금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과학이라는 범주가 아니더라도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이하 시빌 워)에서 보여준 정치적 이야기처럼요. (이것도 중간에 갈등의 진행 과정이 개인적 동기로 전환되면서 더 큰 얘기로 가지 못하고 흐지부지 되긴 했지만요.) 앞에서 원작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원작의 변용과 변주가 가능하다는 점도 MCU의 가능성이라고 봐요. 코믹스라는 소스를 차용하고 있지만 마블에서 굳이 MCU라는 새로운 세계관을 스크린에 그려내겠다고 한 것은 코믹스의 그 방대하고 다양한 설정을 취사선택, 혹은 변형해서 보여주겠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겠죠. 실제로 전개 과정에서 원작과 다른 행보를 많이 보여주고 있고요. 그래서 지금 실버에이지의 슈퍼히어로들을 스크린 위에 그려내고는 있지만 이 소재들을 가지고 21세기의 과학기술 담론을 반영하는것도 충분히 가능할거라고 생각해요. 현대적 재해석이라고 할까요? 지금 다루고 있는 히어로들의 스토리는 아무래도 반세기 이상 지났으니까요. 이를테면 냉전 시대의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는 점에서 그래요. 캡틴 아메리카의 기원이 세계 대전 과학과 이어져있고, 레드 스컬이나 위플래쉬같은 빌런들 또한 그 시절 추억의 악당 모음같은 느낌이에요. 물론 흥미진진할 수 있지만 다소 낡았다는 느낌도 있죠.

곰:  네, 과학기술의 대립 구도가 매우 낡은 방식을 차용하고 있다는 데에 저도 동의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MCU도 좀 어린 과학도를 다룰 때는 새로운 방식을 보여주고 있는것 같아요. 어린 아이들과의 협업은 항상 긍정적으로 다뤘네요. <스파이더맨: 홈커밍>에서는 피터 파커를 도우는 컴퓨터 너드 친구 네드가 있었고, <아이언맨 3>에선 토니가 어린 공학도 아이와 후미진 창고에서 함께 슈트를 고쳐나가요.  실버에이지 시대의 과학적 대립 구도가 새로운 세대의 과학자들에게는 이어지지 않는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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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네드와 피터는 서툴면서도 은근히 뭐든 잘하는 너드 콤비이다. 데스 스타 레고 세트 조립부터 학교 실험, 퀴즈 대회, 그리고 벌처와의 싸움까지 네드와 피터는 함께한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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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토니 스타크가 슈트를 수리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는 아이의 이름은 할리 키너라고 한다. 다정해 보이지 않는가?[4]

 

기린: 지금 세대는 냉전을 겪지 않은 세대니까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냉전과 같은 과학적 대결 구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거겠죠. 저는 MCU가 우리 시대의 Sci-Fi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누구든지 아이언맨이나 캡틴 아메리카를 보고 충분히 과학적 상상력을 키울 수 있죠. 마치 스타워즈 시리즈가 미국 어린이들에게 광선검과 우주에 대한 동경에서 오는 과학도의 꿈을 심어주었던 것처럼요. 마블의 경우에 인터넷 기사를 조금만 뒤져봐도 아이언맨 슈트를 실제로 만들 수 있느니, 실제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라느니 하는 기사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어요. 사람들은 아이언맨을 현실에서도 보고싶은가봐요.

“MCU가 우리 시대의 Sci-Fi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마치 스타워즈 시리즈가 미국 어린이들에게 광선검과 우주에 대한 동경에서 오는 과학도의 꿈을 심어주었던 것처럼요.”

곰: 이미 굉장히 많은 아이들이 토니 스타크를 우러러보고 있지 않나요? 공학자 하면 생각나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일걸요? 아이언맨의 슈트는 우리 세대 아이들에게 미국 베이비부머들의 광선검과 밀레니엄 팔콘과 같은 존재일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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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스파이더맨 피터 파커의 삼촌 벤 파커는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가르침을 전한다. 샘 레이미 감독의 <스파이더맨(2002)>에서.[5]

 

기린: 맞아요, 이런 현상은 아마 코믹스라는 제한적인 매체에서 스크린이라는 훨씬 더 범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매체로 옮겨왔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겠죠. 스파이더맨의 벤 삼촌이 했던 대사가 생각나네요.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MCU의 엄청난 대중성은 분명 어떤 식으로든 우리 시대에 영향을 미치겠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곰: 긍정적이라면 많은 아이들이 MCU가 보여주는 과학의 매력적인 이미지에 유혹 당할거란 걸까요? 하지만 그건 너무 위험하다구요. 그 누구도 실제 세상에서 토니 스타크처럼 무책임하게 과학을 해서는 안돼요. 절대.

기린: 맞아요, 정부의 묵인 하에서 기밀로 무차별적 생체 실험을 자행해서도 안되죠.

곰: 이제 곧 MCU의 Phase 3가 막바지에 다르고 있어요. 지금까지의 MCU 영화들이 쌓아가던 가장 큰 스토리라인의 클라이막스가 곧 개봉할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이하 인피니티 워)에요. 드디어 타노스라는 우주적 존재의 빌런이 나와 인피니티 스톤들을 총동원한 싸움을 하는거죠. 마블은 여기서 지금까지 쌓아온 MCU의 마침표를 어떻게든 찍을거에요. 기존에 주축을 이루던 히어로인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의 세대 교체가 이루어질 것 같아요. 저는 이 세대 교체 과정에서 곧 개봉할 영화 <블랙 팬서(2018)>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봐요. 스토리적으로도 그리고 과학을 다루는 방식에서도요. 블랙 팬서는 아이언맨 같은 재력과 부를 모두 겸비하고 있으면서 캡틴 아메리카처럼 고민이 많고 도덕적인 캐릭터에요. 동시에 굉장히 과학적으로 발달한 나라의 국왕이구요. 저는 블랙 팬서가 새로운 세대의 MCU의 방향을 제시할거라 믿어요.

기린: 블랙 팬서가 다스리는 와칸다 왕국이 외부와 거의 차단된 새로운 세계라는 점도 기존 세계의 질서와 다른 모습을 그려낼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곰군이 말한대로 와칸다는 대놓고 엄청난 과학기술을 보유한 과학기술강국으로 그려져왔으니까요. MCU가 어떤 방식으로 와칸다를 그려내는지 얼른 확인해보고 싶네요. 공개된 예고편에도 나왔지만 이어서 개봉하는 <인피니티 워>에서도 와칸다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걸로 보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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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블랙 팬서와 와칸다 왕국의 모습. 와칸다에서 어쩌면 MCU의 과학이야기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지 않을까?

곰: 블랙 팬서야 말로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에 걸맞은 히어로가 아닐까요? <시빌 워>에서 아버지의 원수 지모에게 복수하지 않고 자살하려는 그를 막아서며 정의의 심판을 받게끔 결단을 내리는 멋진 캐릭터였다구요. 블랙 팬서야말로 마블이 보다 무거운 주제를 좀 더 진지하게 다루도록 만들 수 있는 열쇠라구요! 우리 어서 <블랙 팬서>를 보고 다음 호에서 만납시다!

기린: 근데 우리 다음 호에서도 만날 수 있는건가요, 편집장님?

 


추천 볼거리

곰과기린_그림_추천볼거리

<블랙 팬서(2018)>

2018년 2월 14일 개봉작인 MCU의 최신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에 처음 등장하여 상당히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던 슈퍼히어로 ‘블랙 팬서’의 솔로 무비다. MCU 세계관의 과학 강국 와칸다의 모습뿐만 아니라 영화 <크리드 (2015)>에서 엄청난 롱테이크 복싱 씬을 찍었던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연출에도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1] 영화 <어벤져스(2012)>.

[2] 좌측부터 영화 <어벤져스(2012)>, <토르: 다크월드(2013)>,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

[3] 영화 <스파이더맨: 홈커밍(2017)>.

[4] 영화 <아이언맨3(2013)>.

[5] 영화 <스파이더맨(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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