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물성

김초엽 (SF 작가)


 

작가 소개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모니터 속에서 시간여행을 하거나 비현실과 비일상의 논리적 세계를 탐독하며 밤을 새는 삶을 살다 결국은 SF를 쓰게 되었다.

추상적인 삶의 속성들을 구체적인 과학의 언어로 포착하고, 그럼으로써 또 다른 질문들을 발굴해내는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 이상한 상품의 견본품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마감을 앞둔 사무실에 있었다. 특집 기사 중 하나로 들어갈 영화 리뷰를 써주기로 했던 평론가는 마감을 두 번이나 미루더니 결국은 원고를 못 주겠다고 한 시간 전에 문자를 보내왔고, 다른 지면에서는 갑자기 저작권 문제로 트집을 잡기 시작한 사진작가 때문에 골치가 아팠다. 펑크 난 지면에 대신 들어갈 기사를 쓰기 시작한 신입 에디터는 삼십 분마다 한숨을 푹푹 쉬며 내 책상으로 노트북을 가져와 도움을 요청했다. 그것도 처음 한두 번이지, 나는 나대로 담당한 원고의 초과 분량을 줄여나가는 중이라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래서 편집실의 누군가가 그 ‘이모셔널 솔리드’ 사의 신제품을 보조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찰칵찰칵 사진을 찍어댈 때도 나는 시선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후배들이 테이블 앞에 모여서 신기한 듯 한마디씩 떠들어대기 시작하자 소음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

“이게 요즘 인스타그램에 엄청 올라와요. 정식 출시도 안 했는데 벌써 중고로 비싸게 팔리고…”

“그러면 그냥 바이럴 아냐?”

“저도 그런 줄 알았다니까요. 근데 그렇게 보기엔 반응이 워낙 열광적이라. 돈 받고 홍보 안 해주기로 유명한 계정들도 다 올라왔거든요. 옆 동네는 벌써 전화 인터뷰도 했더라고요. 웹에는 내일 올린대요. 우리도 늦기 전에 인터뷰 따야 하는데.”

시끄럽다고 한마디라도 해줄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시야에 들어온, 그 열광적인 반응을 일으켰다는 제품의 모습이 좀 이상했다. 초록색의 네모난 자갈 모양의 물체. 그게 다였다.

“정하 선배. 끝났어요?”

“아니. 근데 그건 뭐야? 돌멩이?”

“아. 이거 말이죠. 감정의 물성이라는 건데, 재밌는 물건이에요.”

기다렸다는 듯이 한 후배가 패드를 눈앞에 들이댔다. 이번 호의 맨 마지막에 실리는 ‘주목할만한 아이템’ 란에 들어갈 아주 짧은 소개글이었다. 보통 SNS에서 인기를 끌었던 생활용품들이나 인테리어 소품들이 소개되는 란이었는데, 이번에는 설명만으로는 도저히 정체를 짐작할 수 없었다.

소개글에 따르면 이모셔널 솔리드는 원래 문구류를 만드는 평범한 회사였다. 감각적인 디자인, 즉 사진이 예쁘게 찍히는 디자인으로 소소하게 인기를 끌었고, 국산 문구 제품으로는 드물게 다이어리니 만년필이니 하는 것들을 커다랗게 지하철 광고를 붙이기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소리소문없이 장사를 접었다. 그러다가 일 년 만에 다시 등장해서 출시한 제품들이 바로 이 <감정의 물성> 라인이었다는 것이다.

“감정의 물성?”

“그러니까 자기들 말로는 감정 자체를 조형화한 제품이래요. 종류도 꽤 많아요.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공포체’, ‘우울체’ 하는 식으로 이름이 붙고, 파생되는 제품으로 비누나 향초, 손목에 붙이는 패치도 있고요. 지금 유진 씨가 구해온 건 침착의 비누라는 건데, 실제로 비누로 써도 되지만 그냥 손에서 만지작거리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나 봐요. 십 분 정도 사용하면 마음이 차분해진다고…”

“그게 무슨 바보 같은 소리야?”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째 예전에 들어봤던 유사과학류의 제품들과 하는 소리가 딱 비슷했다. 뇌파를 이용한 집중력 강화니, 한 알 삼키는 것만으로 마음을 진정시키는 약이니 하는 물건들. 하지만 그런 것들은 대부분 말도 안 되는 사기이거나 정말로 약국에서 처방전 받고 팔려야 하는 걸로 결론이 나지 않았던가.

“근데 진짜 효과가 있다니까요. 다들 하는 말이 그래요. 자기들도 그냥 설마, 말도 안 돼, 하는 기분으로 샀는데 정말 효과 있다고. 저기 유진 씨가 들고 있는 건 ‘설렘’ 초콜릿인데, 한 조각 먹었다가 벌써 삼십 분째 저러고 있잖아요. 남친 전화 기다린다고.”

“초콜릿은 원래 사람을 설레게 해. 그게 ‘설렘’ 초콜릿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그런 정도가 아니라니까요.”

후배는 한숨을 푹 쉬었다. 나도 한숨을 쉬고 싶었다. 어쩐지 힙스터들을 대상으로 한 기묘한 사기극이 시작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과거의 직업병과 맞물려 가슴 속에서 꾸물거리며 똬리를 틀었지만, 시사 프로그램의 막내 작가였던 그때와는 달리 이곳은 안전한 대중문화잡지였다. 굳이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었다.

이모셔널 솔리드 사의 물건이 정말로 효과가 있다는 후배들의 주장과 달리, 동기로 입사한 지우는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그런 거 있잖아. 무슨 퍼니퍼니샵 같은, 좀 특이한 아이템을 파는 곳들. 막상 들여다보면 진짜 기능이 있는 건 아닌데, 키덜트들의 수집 욕구를 자극한다고 해야 하나? 그런 쪽으로 인기가 많을 것 같은데.”

연인이자 동거인인 보현에게도 작은 피규어들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다. 그중에는 미관상 꽤 그럴싸한 물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저 그랬다. 보현은 각각의 피규어들이 의미를 갖기 때문에 중요한 것이라고 말했고, 나는 아마 ‘감정의 물성’ 또한 그런 이상하고 사소한 물건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상술이겠거니 하고 넘겨짚었다.

어쨌든 나는 곧 이모셔널 솔리드에 대한 이야기를 잊어버렸다. 그보다는 편집장과의 신경전, 그리고 보현과의 갈등이 최근 내 모든 신경을 집중시키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예쁘장한 돌을 만지작거리며 평온과 행복을 얻든 말든 내게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보현에게서 벌써 며칠째 연락이 없었다. 연락이 없다고 해서 그녀의 행방을 알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었지만, 말 한마디 붙이지 못하는 건 같았다. 집에 들어서면 보현은 흘끗 나를 돌아보다가 사다리로 연결된 복층에 틀어박혔고, 잠들기 전 샤워를 하기 위해서만 잠시 내려왔다. 보현의 직장은 나보다 한 시간도 더 가야 하는 곳에 있었기 때문에 아침에 눈을 뜨면 보현은 이미 출근하고 없었다.

일주일쯤 그런 상태가 이어지고 있었고, 오늘은 꼭 보현과 대화를 해보아야겠다고 결심했던 참이었다. 퇴근길의 카페에서 보현이 좋아하는 케잌 한 조각을 사서 방으로 들어섰다.

그런데 문을 여는 순간 묘한 향기가 훅하고 끼쳐왔다. 방을 가득 채운 향기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무슨 향수를 이렇게…”

나는 말을 멈췄다. 보현이 울고 있었다. 그녀의 발치에는 방금 개봉한 듯한 택배 상자가 놓여 있었고, 그녀는 작은 돌 하나를 쥐고 있었다. 푸른색의 돌이었다. 보현은 한참이나 울었는지 새빨간 눈으로 나를 흘끗 바라보더니 다시 자신의 손에 쥔 돌로 시선을 돌렸다. 그 와중에도 짙은 향기는 폐를 찌르듯이 콧속으로 파고들어 왔다. 조금 화가 났다.

“이게 다 뭐야?”

“우울체.”

내 시선은 그녀가 개봉한 박스의 겉면을 향했다. 본 적이 있었다. 이모셔널 솔리드의 ‘우울’ 라인 패키지였다.

보현은 말이 없었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녀는 작년 말부터 부모님과의 신경전을 매일 치르며 지쳐 있었다. 우리는 몇 년간을 함께 살았지만 보현의 강한 의지에 따라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고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는데, 보수적인 가풍을 가진 그녀의 집안에서 보현을 미친 딸 취급을 하고 있었다. 삼촌이 지병으로 쓰러진 이후에는 결혼하지 않을 거면 들어와서 간병을 도우라며 압박을 가해왔다. 보현의 가족들이 나도 못마땅하게 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요즘은 나에게도 알 수 없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다. 보현은 여동생 때문에 가족들과 아예 연을 끊지도 못했다. 그들을 증오했지만 동시에 사랑 하고 싶었던 보현에게 최근의 사건들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였다. 보현도 그걸 원하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가 결혼을 원하지 않았던 것도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대한 그녀의 염증 탓이 컸으니까. 문제는 그녀와 내가 겪는 감정적인 피로였다. 나는 내 관여를 원하지도 않으면서 우울과 신경증만을 쏟아내는 보현에게 지쳐갔고, 일주일 전쯤 그냥 그분들이 바라는 대로 결혼식 정도는 해도 되지 않겠냐는 이야기를 꺼낸 상태였다. 보현은 화를 냈고, 그때부터 이 냉전기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

속이 상했다. 대체, 이 망할 물건들은 다 뭐란 말인가.

한참이나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해야 했다. 보현은 오랜만에 내 옆에서 잠이 들었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출근하러 나갔는지 없었다. 나는 서랍장 위에 쌓여있던 우울체들을 모두 쓰레기통에 버렸고, 보현에게 문자를 보내서 상담치료를 받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괴로웠지만 일은 해야 했다. 업무 시간에는 애써 보현과의 문제를 잊고 일에 집중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 주에는 이상하게 넘어와야 할 작업들이 얼른 오지 않았고, 멍하니 모니터를 보고 있다가 딴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내 자리를 오가며 한 마디씩 던지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이야기까지 다 주워듣게 되었다.

이를테면 이모셔널 솔리드 사의 소식 같은 것.

정식 런칭 한 달 만에 감정의 물성은 트렌드이자 일종의 현상이 되어 있었다. 이미 발 빠르게 움직인 잡지들은 감정의 물성 제품을 면밀하게 분석한 기사와 대표 인터뷰를 실었는데, 대표의 얼굴이나 신상은 아직 알려진 것이 없었다.

“대체 왜 어떤 사람들은 ‘우울’이나 ‘분노’, 공포’ 따위를 사려고 하는 거지?”

이모셔널 솔리드 사의 물건들이 정말로 효과가 있는지보다 왜 ‘그런 물건들을 사려는 사람이 존재하는가’라는 것이 나의 주된 의문이었다. 사실 내심 효과가 없다는 결론을 이미 내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 중 잘 팔리는 물건이 ‘행복’, ‘침착함’ 같은 감정들이라면 대중들이 플라시보 효과에 의존하여 위안을 얻으려는 것이라고 이해해볼 수도 있을 텐데, 부정적인 감정들조차도 잘 팔려나가고 있다는 것이 정말 이상했다.

대체 돈을 주고 우울해지려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돈이 너무 많아서 행복감마저 주체할 수가 없는 것일까? 그렇게 삐딱한 생각을 하며 나는 감정의 물성이 유행하는 현상을 관망했다. 내가 워낙 시큰둥했던 탓에, 몇 번인가 감정의 물성을 리뷰하고 싶어 하던 후배들은 곧 빠르게 주제를 바꿨다.

인스타그램에서 먼저 유명해진 이모셔널 솔리드는 곧 인터넷 커뮤니티와 문화면 기사를 휩쓸기 시작했다. 유튜버들은 직접 감정의 물성을 사용하는 리뷰 동영상을 찍어 올렸고, 얼마 뒤에는 공중파 방송에도 등장했다.

한편 정부에서도 이 현상을 꽤 미심쩍게 바라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경쟁사라고 할만한 곳은 없었지만 이모셔널 솔리드의 제품이 온갖 커뮤니티 사이트를 도배하는 것에 불만을 가졌던 이들이 감정의 물성 제품들을 허위과장광고라며 잔뜩 민원을 넣었고, 곧 식약처에서 조사에 들어갔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이미 안전성 검증을 거친 제품이었는데도 민원을 마냥 무시할 수는 없는 상황인 것 같았다.

“선배, 이거 봐요.”

그래서 그 기사를 보았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도 ‘터질 게 터졌구만’ 정도의 감상이었다. 기사는 꽤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있었다.

<으슥한 골목길의 청소년 범죄, 그 뒤에는 ‘증오체’가 있었다…>

최근 일어난 청소년들의 집단 폭행 사건을 보도하면서, 그중 가해 청소년들이 이모셔널 솔리드 사의 제품을 소지하고 있었던 사건들을 집중 조명한 기사였다. 감정의 물성에 대한 의심과는 별개로, 유행에 민감한 청소년 중 그 제품을 안 사본 녀석들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유행이었기에 기사의 신뢰도는 낮아 보였다.

“걔들은 증오체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 게 아니라, 일단 범죄를 저지르고 핑계를 댄 거 아닐까?”

어차피 범죄를 저지를 거였으면서 술에 취해 심신미약 상태였다고 둘러대는 놈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시큰둥한 내 반응과 달리 후배 에디터들의 표정은 자못 심각했다. 하긴, 실제로 효과가 있다고 굳게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충격적인 기사가 또 없을 것이다. 이 사무실에서도 가끔 기묘한 향수 냄새가 났고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게 ‘침착의 향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감정의 물성의 효과를 믿는 이들은 어디에나 있다.

다음날 휴게실에서 나는 유진이 감정의 물성 제품들을 휴지통에 버리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내가 빤히 바라보자 유진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저도 ‘증오’를 샀었거든요. 좀 무서워서, 이건 버리게요.”

“다른 건 그냥 갖고 있고?”

“네. 제일 자주 쓰는 건 ‘편안함’인데 꽤 좋아요. 위험할 것 같지도 않고요.”

“그게 어떻게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는지 신기하더라. 그냥 그렇게 믿고 싶은 거 아닌가?”

가볍게 던져보려고 했던 질문이 입 밖으로 나가는 순간 날카로운 어조가 되어서, 질문한 나조차 조금 흠칫했다. 하지만 유진은 의외로 몇 번 그런 질문을 받았던 것인지 아니면 이미 생각해본 문제였는지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효과가 없다고 믿을 이유도 없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항우울제 같은 건 분명한 실체가 있는 약물이고, 사람의 기분과 정신에도 영향을 미치잖아요. 물론 이모셔널 솔리드 사에서는 감정의 물성 제품의 정확한 작용 기제를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항우울제는 기분을 나아지게 만드는 거지만, 감정의 물성은 부정적인 감정들도 엄청 잘 팔린다면서.”

“글쎄요. 제가 듣기로는 그런 부정적 감정 라인은 판매되는 물량에 비해서 실 사용량이 적다고 들었어요. 이것도 옆 잡지사에서 쓴 리뷰 글에서 본 얘기지만.”

“그럼 왜 굳이 그걸 사는 거지?”

유진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더니 휴지통에 버린 제품을 흘끔 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미간을 잔뜩 찌푸린 내 표정을 살피더니,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음. 선배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제 생각은 이래요. 물성이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사로잡아요. 왜, 보면 콘서트에 다녀온 티켓을 오랫동안 보관해두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사진도 굳이 인화해서 직접 걸어두고요. 전자책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실물이 있는 종이책이 더 많이 팔리고.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이미지를 향수로 만들어서 파는 그런 가게도 있죠. 근데 막상 사면 아까워서 한 번도 안 뿌려보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내 얼굴에 떠오른 표정이 꽤 바보 같았는지 유진은 씩 웃더니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냥 실재하는 물건 자체가 중요한 거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감각할 수 있다는 게 의외로 매력적인 셀링 포인트거든요.”

사무실로 돌아가서 그녀는 자신이 읽었다던 감정의 물성 특집 기사를 나에게 보여주었다. 무려 열 몇 페이지도 넘게 지면을 할당한 심층 분석 기사는, 각각의 감정 라인들이 갖는 향과 질감, 제품의 권장 사용시간, 맛, 모양, 그리고 심지어 라인별로 다른 가격까지 각 요소가 어떻게 사용자들의 특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데에 쓰이고 있는지를 살피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이게 어떤 거대한 퍼포먼스나 예술에 차라리 가깝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효과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과 사용자들이 플라시보 효과에 의존하고 있다는 생각은 여전했지만 말이다.

기사는 여러 반응을 같이 담고 있었다. 대중들의 반응은 첨예하게 갈렸다. 누군가는 감정의 물성을 천재 화학자의 장난이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일종의 사회적 실험이라고 했다. 이중맹검 실험에서 이모셔널 솔리드 사의 제품들이 정말로 효과가 있었다는 주장과 전혀 효과가 없었다는 연구 결과가 동시에 쏟아져 나왔다. 분석 장비에서 감정 제품들은 늘 제각각 다른 결과를 내놓았다.

“난 딱히 효능이 없다는 쪽에 걸게. 어때?”

“한번 두고 봐요.”

나와 유진은 감정의 물성이 실제로 효과가 있는가를 두고 오만 원 씩을 내기로 걸었다.

다시 시간이 흘러갔다. 방송을 한번 탈 때마다 인기 검색어에 오르던 이모셔널 솔리드에 쏟아지던 관심도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했고, 나는 보현과의 관계에 머리를 쥐어뜯는 날들이 더 많아졌다. 보현은 자신의 괴로움을 나에게 쏟아내다가 곧 사과하는 일을 반복했고, 나는 더 냉담해지고 무덤덤해졌다. 사실 내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보현만큼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가족과 아예 인연을 끊는 쪽을 택했겠지. 여동생에 대한 죄책감은 어쩔 수 없고. 그런 마음의 일면을 완전히 숨길 수는 없었던지,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내 대답에는 점점 가시가 섰다.

차라리 보현에게 항우울제나 이모셔널 솔리드의 ‘행복체’ 같은 것들이 효과가 있었으면 좋았을 법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식의 해결책을 찾지는 않았다.

몇 주 뒤에 아침 편집회의에 모인 우리는 인터넷 뉴스의 메인에 걸린 기사를 함께 보았다. 충격적인 헤드라인이었다.

“이모셔널 솔리드 사의 모든 제품이 판매중지 처분을 받았대요.”

더욱 충격적인 것은 감정의 물성 제품들의 실체였다. 감정의 물성은 일반적인 생활용품들에 소량의 효능 물질을 섞은 것이었는데, 그것들이 실제로는 향정신성 약물들과 유사한 새로운 종류의 화합물이었던 것이다. 재차 실시된 안전성 검증 실험에서, 추출된 화합물들은 생쥐의 혈뇌장벽을 쉽게 넘어 중추신경계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

“정말 마약이었다니.”

유진은 황당한 듯이 중얼거렸다. 그녀는 내기에서 이겨서 나에게 오만 원을 받아갔지만, 그다지 기뻐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중독성과 의존성까지 치명적이라는 보고는 없었다. 실제로 감정의 물성에 포함되었던 화합물들은 인체에 크게 유해하지는 않다는 의견이 곧 중론이 되었다. 부작용이 보고된 사례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농축되거나 순수한 약물도 아니었으니 사람마다 일관적이지 않은 반응이 나타났을 것이다. 지금도 나는 그 제품들의 효과 절반 정도는 플라시보나 집단 환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엄연히 마약류로 관리되어야 할 약물들이 버젓이 생활용품으로 둔갑하고 팔려나갔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였다. 검증 실험에서 진짜 영향력을 가진 약물임이 드러난 이상 그대로 팔릴 수는 없었다. 감정의 물성 제품들은 대부분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물질을 함유하고 있었기에 즉시 임시마약류로 지정되었고, 이모셔널 솔리드 사의 대표는 불법 의약품을 유통하고 마약류 관리법을 위반한 혐의로 수배되었다.

하지만 이모셔널 솔리드의 온라인 팝업스토어는 그대로 해외 서버로 옮겨졌다. 여전히 감정의 물성을 몰래 구매하여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미 몇 달간 팔리던 물건이어서 익숙해진 것인지, 식약처의 발표 직후에는 크게 동요했던 대중들의 반응도 몇 주 만에 금방 잦아들었다. 중고거래 사이트에서는 원가에 프리미엄까지 붙인 감정의 물성 판매 글이 올라왔다가 수시로 삭제되기를 반복했다.

사람들은 감정의 물성을 위협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필요한 물건으로 받아들였다.

하필 그날 내가 어떻게 카페에 앉아있던 이모셔널 솔리드 대표를 한 번에 알아보았는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나는 보현과 한바탕 전화로 싸운 이후 차를 몰고 회사에서 조금 떨어진 카페로 향했고, 샌드위치를 사기 위해 카운터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그때 창가에 앉아있는 한 남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남색의 코트를 입고 기묘한 무늬의 머플러를 두르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올려둔 상자는 상표명들이 다 지워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건 감정의 물성 패키지였다. 남자는 능숙하게 제품을 꺼내 살피며 수첩에 무언가를 메모하다가 다시 완벽한 솜씨로 포장을 되돌려 놓았다. 나는 거의 확신에 차서 샌드위치를 주문하는 것도 잊고 그의 앞으로 성큼 걸어갔다.

“저기요, 혹시…”

그가 홱 고개를 들었다. 경계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는 이내 시선을 내려 내 목에 걸린 사원증을 보았고 안심인지 불만인지 모를 묘한 얼굴을 했다. 나는 그에게 정중하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어느 잡지의 에디터라고 적힌 명함을 건넸다. 그는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예전에도 그는 몇 번 자신이 이모셔널 솔리드 사의 대표라는 것을 알아챈 사람들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모셔널 솔리드가 판매중지 처분을 받은 이후로는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나의 끈질긴 설득 끝에 결국 그는 인터뷰를 수락했다.

“늘 전화로만 했는데, 대면 인터뷰를 해보는 건 처음이군요. 하지만 이게 마지막 인터뷰에요. 다들 제 말을 경청할 것도 아니면서 냉소적인 질문만 해대니. 아마 당신도 그러겠죠.”

나는 그를 경찰에 넘길 생각이 없었다. 단지 궁금한 것들이 있었을 뿐이다. 처음에는 예의상의 질문들이 이어졌다. 어떻게 문구 업체에 불과했던 이모셔널 솔리드 사가 그런 물건들을 파는 곳으로 변했나. 감정의 물성 아이디어를 처음 낸 것은 누구인가. 직접 제조한 것인가. 효과가 정말로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

그러나 그런 질문들은 사실 의미가 없었다. 감정의 물성이 판매중지 처분을 당하기 전에도 그는 늘 일관적인 태도를 유지해왔다. 그가 점점 피곤한 얼굴을 했고, 결국 나는 정말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대표님. 사실 저도 이 현상을 이해해보려고 나름대로 노력했습니다. 이모셔널 솔리드 사의 제품들이 미친 듯이 팔려나가는 현상을요. 저희 직원들은 초콜릿과 와인을 사는 것과 똑같은 일이라고 하더군요. 항우울제를 처방받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이야기였죠. 그런데… 제가 정말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게 있어요. 사람들이 돈으로 행복을 사고 싶어 하는 건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대체 왜 어떤 사람들은 ‘우울’을 사는 겁니까? 왜 ‘증오’와 ‘분노’ 같은 감정들이 팔려 나가죠? 돈을 주고 그런 걸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 건가요?”

그는 그제야 조금 흥미를 보였다. 입꼬리를 조금 올려 웃는 그의 미소는 체념한 것 같기도, 나를 비웃는 것 같기도 했다.

“소비가 항상 기쁨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는 행위라는 생각은 이상합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감정을 향유하는 데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기도 하기도 해요. 이를테면, 한 편의 영화가 당신에게 늘 즐거움만을 주던가요? 공포, 외로움, 슬픔, 고독, 괴로움… 그런 것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죠. 그러니까 이건 어차피 우리가 늘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까?”

섣불리 반박할 말은 없었다. 하지만 반발심이 생겼다. 무언가 다르지 않은가. 우리가 소비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오직 감정 그 자체였던가? 인간은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가 아닌가? 의미가 배제된 감정만을 판매하는 것은 인간을 단순히 물질에 속박된 동물로 전락시키는 일이 아닐까?

여러 가지 질문들이 떠올라 그중 하나를 선뜻 던질 수가 없었다. 내가 말이 없자, 남자는 얼른 자리를 떠나고 싶은 얼굴을 했다.

그때 나는 문득 얼마 전 오만상을 찌푸리며 보았던 신파 영화를 떠올렸다. 정확히는, 내 옆자리에서 세상이 무너진 듯 엉엉 울며 손수건으로 코를 닦던 옆자리의 한 중년 여성을 떠올렸다. 영화 상영이 끝나고 크레딧이 올라가는 동안 나는 영화에 대한 메모를 하고 있었고, 그녀는 내 옆에서 한참이나 훌쩍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이런 억지 신파 영화에 그렇게 감동을 했을까, 하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그녀가 가방에서 영화 포스터를 꺼낸 다음 신경질적으로 구겨 바닥에 버렸다. 그리고 돌아보지도 않고 자리를 떠났다. 조금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그녀에게 영화의 내용은 중요했을까? 그 순간이 이상하게 기억에 남았다.

의미는 맥락 속에서 부여된다. 하지만 때로 어떤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담긴 눈물이 아니라 단지 눈물 그 자체가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결국 나는 복잡한 기분 속에서 질문을 끝마치지 못하고 그를 보냈다.

 

몇 달이 지난 뒤에는 해외 서버로 옮겨졌던 이모셔널 솔리드 사의 홈페이지도 완전히 닫혔다. 일본에서 비슷한 제품이 팔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정말로 같은 사람이 만든 물건인지 아니면 카피 제품일 뿐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날, 나는 보현의 서랍장 위에서 수십 개의 감정의 물성 제품들을 발견했다. 하나같이 전부 ‘우울’이었다. 그 옆에는 병원에서 처방받아 온 항우울제가 있었다. 나는 이제 그녀가 우울에 빠져 죽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살아남고 싶은 것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널 이해 못 하겠어.”

보현은 선택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발목이 잡혀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녀를 억압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이런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건 더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우울체’가 그녀의 슬픔을 어떻게 해결해주는가?

“물론 너는 모르겠지, 정하야. 너는 이 속에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내 우울을 쓰다듬고 손 위에 두기를 원해. 그게 찍어 맛볼 수 있고 말랑말랑 만져지는 것이었으면 좋겠어.”

그녀는 체념한 듯 웃었다. 테이블 위의 휴대폰이 울렸다. 그녀의 삼촌에게서 온 전화였다. 보현은 말을 이어갔다.

“어떤 문제들은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가 없어. 이건 고체보다는 기체에 가깝지. 무정형의 공기 속에서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가 짓눌려. 나는 감정에 통제받는 존재일까? 아니면 지배하는 존재일까? 나는 허공 중에 존재하는 것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해. 그래. 네 말대로 이것들은 그냥 플라시보이거나, 집단 환각일 거야. 나도 알아.”

보현은 우울체를 손으로 한번 쥐었다가 탁자에 놓았다. 우울체는 단단하고 푸르며 묘한 향기가 나는, 부드러운 질감을 가진, 동그랗고 작은 물체였다.

“하지만 우울의 입자들은 산산이 흩어져 내 폐 속으로 들어오겠지. 이 환각이 끝나면.”

우울체 하나가 탁자 위를 굴러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게 더 나은 결론일까.”

나는 시선을 피했고 그 순간 보현이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잠시 뒤 그녀가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갔다. 문이 닫혔다. 휴대폰의 진동이 멈췄다. 고개를 들었다. 이제 허공을 가득 채운 침묵이 느껴졌다.

보현을 무슨 말로 위로해야 했을까? 무언가 중요한 것이 가슴속에서 빠져나가 버린 듯 싸늘했고, 나는 그게 생각이나 관념이 아닌 실재하는 감각임을 알았다.

그제야 어설프게 그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잠시 머물렀다 사라져버린 향수의 냄새. 무겁게 가라앉는 공기.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흐느끼는 소리. 오래된 벽지의 얼룩. 탁자의 뒤틀린 나뭇결. 현관문의 차가운 질감. 바닥을 구르다 멈춰버린 푸른색의 자갈들. 그리고 다시, 정적.

물성은 어떻게 사람을 사로잡는가.

나는 닫힌 문을 잠잠히 바라보다가 시선을 떨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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