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먼저 밀려나는가? 조선산업의 물량 순환 주기에 대한 믿음이 불황 중에 하청 노동자에게 준 영향

이인건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catshower@kaist.ac.kr


 

가라앉는 기술(submerging technology)

조선업계의 불황은 저녁을 먹는 중에도 들려왔다. 불황은 분명 대단한 소식이었다. 그러나 저녁 시간의 식당에서 나오는 뉴스는 다른 소식들과 함께 불황을 공평하게 전시했다. 불황도 아나운서의 침착한 보도 속에서 전달되는, 그런 일이었다. 나중에야 나는 영도 조선소의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던 한 노동자를 기억했다. 그는 복직했으나 이내 회사는 조선소를 필리핀으로 이전했다.

누군가는 불황을 아주 오래전부터 예견했다. 중국이 무서운 속도로 한국을 추격해서 자동차와 배, 반도체까지 우리나라를 따라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중국에 관한 단편적인 소식을 듣다 보면 이 괴담의 실체는 모호한 것 투성이지만 분명 어떤 사람들은 2015년 조선해양산업의 불황 이후 더 이상 배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이곳 대전에서 멀리 부산, 거제, 울산, 그리고 군산에서 조선소의 문이 닫히고 있었다. 이 년 정도 지나고 나는 동료들과 연구 계획서를 썼다. 해고 노동자들과 함께 그들이 가진 기술이 가라앉아 버릴지도 모르며 그들의 정체성과 기술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고자 한다고 적었다. 그리고 한 달 뒤에 거제로 가는 버스를 탔다.[1]

 

조선산업의 확장, 조선해양산업의 불황

한국은 세계 조선산업을 주도했다. 언론은 현대중공업이 2003년에 오랜 조선 산업의 도시인 스웨덴 말뫼에서 골리앗 크레인을 1달러에 사 올 때 이를 바라보던 시민들의 눈물을 ‘말뫼의 눈물’이라고 적었다. 눈물은 승자의 기억이었다. 일제강점기에 부산을 중심으로 성장한 한국 조선업은 70년대 중반부터 거제와 울산에도 주요 산업으로 자리했고 선박 규모 신기록을 몇 번씩 갈아치웠다. 주문이 쌓여 수출기여품목 1위를 기록했으나 영원하지 않았다. 중국의 조선산업이 성장하며 2011년 즈음 한국보다 더 많은 주문을 받은 지 4년 뒤, 마산과 영도의 눈물에 이어 한국의 눈물이 등장한다.

한국 조선업계는 중국의 추격에 대응하고 있었다. 해양 플랜트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어려운 일이었다. 해상에서 천연자원을 시추, 정제하는 바다 위의 공장을 짓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험과 기술이 필요했다. 그러나 업계는 선수금을 낮춰 대량 수주를 감행했고 2008년 곧 호황을 누렸다. 호황은 길었지만 지금, 결과는 참담하다. 노동자들은 밀려나고 있다. 이미 2016년 6월부로 약 만여 명(58.8%)의 노동자들이 주요 조선소에서 해고되었다.[2] 정부는 조선업계에 지원금을 보냈다. 지원금의 타당성을 두고 언론은 대우조선해양의 문제를 앞다투어 보도했다. 국책 은행과 중앙 정부도 보조금 지원을 두고 대립했다. 결국 금융 지원의 대가는 각 조선사가 자구안을 마련하는 것이었는데, 주로 인원 감축이었다. 정부는 해고 노동자들을 위한 정책을 시행했다. 특별지원센터를 설치하고 노동자들이 조선해양산업을 떠날 수 있도록 재교육과 재취업 및 귀농 사업을 알선했다. 정책의 근본적인 방향은 조선사들이 저가 과잉 수주를 하지 못하도록 건조 능력을 줄이고 다시 주문이 늘기를 기다리는 것이기 때문이다.[3]

 

썰물과 밀물

다시 올 호황에 대한 황준기 씨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외적 환경이 변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중국이 성장했고 유가가 하락했으며 환경 규제는 심화되었다고 말했다. 한편 그는 거제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배관 설계공으로 입사했지만 다양한 경험과 장기의 해외 연수를 통해 CAD 개발에도 관여했다. 우리가 그를 만났던 2017년 7월, 연초에 은퇴했으나 아직 프로젝트가 끝나지 않아서 더 머물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불황을 근심스럽게 보던 대부분의 보도와 달리 차분했다. 마침 같은 그룹의 계열사에서 그에게 일자리를 제안했다. 그는 바로 움직일 계획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부산과 거제에서 보낸 그에게는 먼 여행일지도 모르지만, 그는 담담하고 안정적으로 조선산업계에서 내려가고 있었다.

같은 회사에서 설계 업무를 하는 민영수씨는 중국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갖고 있었다. 중국의 조선산업은 한국이 해양 플랜트 사업을 시작할 때 생각한 것보다 건조기술을 빠르게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사고에 대해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중국 조선소에서 사고가 자주 난다고 말했다. “자기 배 만드는데 사람 죽으면 선주들이 싫어하지.” 실제로 중국 조선소의 도크가 안전하지 않다는 보도는 꾸준히 있다.[4] 그는 중국 회사도 한국에 발주한다며, 한국이 조선업이 중국에 지레 겁먹은 것으로 생각했다.

한국은 정말로 경쟁력을 잃었을까? 한국의 경제 발전과 중국의 추격을 논하는 주요 문헌은 조선업이 추격당했다고 기술한다.[5] 중국은 선발 주자인 한국을 낮은 인건비와 정부 지원을 통해 추격했다. 한국 조선산업이 경쟁력을 잃었다고 판단하게 된 근거는 조선업계의 산업 주기에서 찾을 수 있다. 산업계는 “높은 수요 – 설비증강 – 과잉선복 – 시장악화 – 수주감소와 과당경쟁 – 선가하락”의 순환을 반복한다고 알려져 있다.[6] 중국은 한국보다 더 낮은 가격으로 수주한다. 경쟁이 과열되어 선가가 떨어지고 경쟁에 참여했던 한국 조선사는 손해를 본다. 그리고 높은 수요가 다시 발생하더라도 여전히 저가 수주를 통해 우위를 점한다. 하지만 중국은 2015년 불황 후 한국보다 더 많은 조선소를 폐업하고 발주를 잃었다. 표에 나온 것처럼 2016년이 지나고 전체 조선산업 중 가장 많은 배를 만든 것은 중국이나 일본이 아닌 한국이었다. 여전히 중국은 한국보다 수주잔량이 더 많지만 한국은 불황 중에 1위를 되찾았다.

 

2016년 연말 기준 한중일 건조량

한국 중국 일본
GT

총톤수

25,035

(38.9%)

22,419

(34.9%)

13,310

(20.7%)

CGT

부가가치

환산톤수

11,584

(34.7%)

11,585

(34.7%)

6,984

(20.9%)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2017)[7]

 

조선산업의 불황 속에서 교훈을 찾기 위해서는 산업 주기를 비판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산업 주기는 규칙적인 움직임보다는 불확실성을 반증한다. 호황일 때는 과열을 정당화하며 불황에는 기업이 인력 감축으로 대응하는 데 활용되며 노동자와 정부가 구조조정을 수긍하는 데 활용되기 때문이다. 산업계는 실제 주기를 예측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주기 또한 매번 다르다. 그림의 붉은 선에 나타나듯이 1970년대에서 90년대의 주기는 불규칙한 등락을 보여준다. 시장 조사업체들은 다시 수주량이 천천히 늘어날 것이나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견하고 있다. 그게 언제인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세계 조선시장 신규수주량.png

그림 1. 세계 조선시장 신규수주량

(출처: 배규식 외(2016. 10)에 실린 日本造船工業會(2016. 3), 造船關係資料(shipbuilding statistics)의 자료를 가져옴)

 

조선사들은 불확실한 상황 중에 호황을 기다리며 인건비를 최대한 절약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다가올 상승을 기다리듯이 현대와 삼성은 플랜트 사업에서 취약점으로 지적받은 설계 인력을 늘리고 일부 숙련 기술공들을 회사에 남겨두었다. 한국이 세계 조선업계를 선도한 것은 건조 능력에만 한정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건조를 수행할 노동자들은 여전히 하청 구조에 있다.

플랜트 건조에 경쟁력을 제공하는 일용직 노동자(물량팀)들은 저숙련 기술자로 분류되었다. 그들은 용접, 배관, 배전과 족장[8] 등 전반적인 건조 및 관련 업무를 수행한다. 관을 이어 붙이고 단열재를 덧씌우며 전선을 놓고 블록을 조립하여 연결한다. 건조는 저숙련 반복 작업으로 보이지만, 플랜트의 구성 요소에 맞게 각각 다른 재료와 기법을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실제로 선주들은 구성 요소마다 다른 기준을 갖고 공사가 끝나면 자체 검사관을 파견한다. 검사관들은 선주의 단순한 변심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트집을 잡아 공사를 번복한다. 이때 조선사는 공사를 변호하지 못하면 페널티를 지불한다. 물량팀 노동자인 오준택 씨에 따르면 조선사들은 이에 대응할만한 체계가 없다. 물량팀 노동자들은 팀 단위로 움직이며 하루에서 달 단위로 변경되는 하청 계약 따르며 동시에 검사관에게 대응하기 위해 스스로 기술을 익힌다. 운이 좋으면 학원에 갈 수 있지만 인터넷 영상, 책 등을 활용한다. 그럼에도 보유한 기술을 인정받지 못하여 가장 먼저 임금과 고용 감소의 대상이 되었다.

물량팀 노동자인 오준택 씨는 자신을 숙련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설명했고 건조 현장에서 생기는 경영상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었다. 배관 작업을 할 때 조선사들이 선주가 세운 표준 체계를 도입하지 않고 작업을 지시하거나 필요한 기술을 가르치는 교육이 미흡하거나 없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기술을 익히기 위해 우연한 기회에 해외에서 온 기술자들에게 배울 기회가 있었고 부족한 점은 스스로 공부했다고 이야기했다. 그의 이야기에 따르면 다른 하청 숙련공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기술을 학습하는 것 같았지만 가끔 일하면서 생기는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했던 일을 다시 하게 되는 일이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작은 균열들은 건조 일정에 영향을 준다. 건조에 참여하는 노동자들 사이의 의사소통을 어렵게 하며 각 부품을 검사할 때 한 번에 끝낼 일을 두 번 하게 되어 건조를 지연시키고 조선사는 지연에 따른 페널티를 지불하기 때문이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KBS 다큐멘터리[9]에 나온 한 노동자는 지금의 위기를 견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금은 물량이 없지만 낡은 배를 대체할 배를 만들 때 다시 호황이 온다는 것이다. 물량이 밀려오기 전, 썰물의 시간 동안 모두가 황준기 씨처럼 기술을 살리지는 못하고 있다. 일부는 연관 산업인 항공우주산업으로 재취업했지만 채용한 회사에서 비리 사건이 터지며 난초하고 있다. 다른 이들은 퇴직금으로 자영업자가 되어 탑차를 몰거나 일식을 배우기 위해서 서울로 떠나고 있었다. 부동산을 공부하거나 드론 조종 등 새로운 기술을 익히기도 하고 귀 농촌 및 어촌 사업에 참여하기도 한다.[10] 정부는 조선업 노동자들이 크레인 운전이나 용접, 배관, 족장처럼 조선업 노동자들이 건설 노동과 비슷한 일을 수행한다는 점에 착안해서 관련된 직업을 알선해주었다. 그러나 다른 산업으로 들어가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같은 직종이나 조금씩 활용하는 기술이 다르기 때문이며 무엇보다도 이미 해당 산업도 포화되어 있기 때문이다.[11]

 

부유하지 않기 위해

건조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숙련 기술자들이 필요한가. 불황을 가장 경제적으로 보낼 방법을 찾기 위해서 조선산업계가 던진 질문이었다. 산업계와 정부는 떠날 사람과 남을 사람을 정하며 대답했다. 여전히 대답해야 할 문제가 있다. 호황이 왔을 때 다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아니, 호황이 오는가? 호황이 올지, 얼마나 그 파고(波高)가 높을지 알 수 없다면, 분명 하청 구조를 통해 유연성을 갖추는 것이 좋은 선택인지도 모른다. 태풍 앞에선 선장이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 짐을 밖으로 던지는 것처럼. 그러나 이대로는 불황에서 배울 수 없다. 불확실함의 반증에 불과한 주기와 그에 대한 믿음을 길잡이로 삼아 부유할 뿐이다. 중국이 쉽게 갖지 못한 건조 기술의 경쟁력을 지키는 것은 그 수행자들을 안정적으로 고용하는 것이다. 하청 구조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건조 능력은 불안정 노동과 기술 관리 체계 미비 속에서 부표처럼 떠오르고 가라앉기를 반복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다시 불황이 왔을 때 숙련 기술자들은 그들의 기술과 함께 여기저기로 흩어져 버릴 것이다.

 


읽을거리

15041537_001.jpg

 

배 만들기 나라 만들기: 박정희 시대의 민주노조운동과 대한조선공사 남화숙 지음 남관숙, 남화숙 옮김. 후마니타스. 2013.

조선업의 부흥과 조선 노동자의 정체성 형성을 일제시대와 개발 독재 시대에서 찾는 책이다. 두꺼운 편이라 다 읽진 않았다. 그래도 재미있어서 계속 읽지 않을까?

 

과학뒤켠_FINAL_20180313.jpg

EBS 다큐멘터리. 극한 직업 조선소 비계 발판공편 2012.3.14.

책보다 재미있고 실감나게 조선소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이다. Youtube에도 공개되어 있다.

 


 

[1] 나는 KAIST 인문사회과학대학원의 대학원생 지원 사업인 모험연구에 참여하고 글감을 얻었다. 대학원생들이 자유롭게 평소 관심을 갖는 분야의 연구를 수행하는 사업이다. 이 글에는 참여 연구원인 성두현이 제시한 표현이 쓰였다. ‘가라앉는 기술’, ‘밀물과 썰물’이다.

[2] 배규식, 이정희, 정흥준, 박종식, & 심상완 (2016), 「조선산업의 구조조정과 고용대책」, 세종: 노동연구원.

[3] 배규식. (2016), 「조선산업의 구조적 위기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세종: 노동연구원.

허환주. (2016), 「조선업 빅딜? 왜 망하는 길로 가는가」, 박종식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연구원 인터뷰. 프레시안.

[4] Maritime Accident Casebook. (2009), 「30 China Ships Crack Cranks」.

http://maritimeaccident.org/2009/08/30-china-ships-crack-cranks/ by 2018.1.22

[5] 이근. (2014), 「경제추격론의 재창조」 (1판), 오래.

[6] 배규식 외(2016)의 보고서

[7]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2017), 「조선자료집」.

[8] 높은 곳에서 공사를 하도록 설치한 가설물인 비계의 다른 말. 건조물 옆에 발판과 보조대를 설치해서 노동자들이 다니고 기자재를 나를 수 있도록 한다.

[9] KBS. (2016), 「3일. 조선의 바다, 기로에 서다 – 거제 통영 조선소」, 6월 12일 방영.

[10] KBS. (2017), 「KBS 스페셜 땐뽀걸즈」, 4월 13일 방영.

[11] 정호재. (2017), 인터뷰 중

배규식, 이정희, 정흥준, 박종식, & 심상완. (2016). 조선산업의 구조조정과 고용대책. 세종: 노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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