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 상식을 묻다: [대학원생 권리강화 방안연구] 뒤켠의 고민들

전준하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휴학생)

schneider0104@kaist.ac.kr


 

김현정: 그러네요. 예, 큰 뉴스입니다. 노동자로 처음 인정을 받은 대학원의 조교들. 이 뉴스의 행간, 이면. 들어가보죠.

김성완: 첫번째 행간은 ‘상식이 교문에서 막혔다’입니다.

김현정: 교문에서요?

김성완: 네, 흔히 대학을 지식의 상아탑이라고 부르잖아요. (김현정: 그렇죠.) 그만큼 가장 공정하고 합리적일거라고 우리는 믿고, 그렇게 생각을 하지 않습니까? (김현정: 예, 예.) 그런데 실제 현실은 정반대였다는 거죠. 예외가 변칙을 낳았습니다. 대학조교들은 교수 허드렛일들을 해주는 존재처럼 인식이 돼왔던게 사실입니다.

김현정: 사실은 조교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기도 했어요, 그동안에.”

『김현정의 뉴스쇼』, CBS 라디오, (2017.11.13)


 

우리가 묻지 않은 질문

서두에 인용한 라디오 방송에서 김성완은 이른바 ‘동국대 조교 사태’를 두고 “상식이 교문에서 막혔다”고 그 행간을 읽었다. 동국대 조교 사태는 대학원생 조교를 사용하고서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고 4대보험 가입을 하지 않는 등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대학 본부를 동국대학교 대학원 총학생회(이하 원총)가 고발하여 결국 총장이 검찰에 송치된 사건을 가리킨다. 노동을 한 자에게 마땅히 노동권을 보장해야한다는 상식을 어겨온 대학의 행태를 꼬집은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읽은 행간은 동국대 조교 사태만이 아닌 최근 폭넓게 논의되고 있는 대학원생 권리 침해 문제 전반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다. 대학원생 조교가 마주하는 열악한 처우와 노동권 침해만큼이나 대학원생 인권을 상습적으로 침해하는 ‘괴수’[1] 이야기는 대학원을 거친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고 들은 경험이 있을 정도로 만연한 문제다. 이를 지적한 20년 전 기사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오래되기도 했으니 다음과 같이 말해도 무리가 없을 듯 하다.[2] “상식은 항상 교문에서 막혀있었다”.

상식이 교문에서 막히자 이를 되찾고자 했던 대학원생은 대학을 나와야만 했다. 동국대 조교 사태에서 원총이 대학을 나와 변호사를 만나고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을 찾았던 것처럼 말이다. 모두를 경악시킨 인분교수 사건은 피해자가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다 만난 다른 아르바이트생의 권유로 경찰에 신고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박사학위과정 중에 책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를 쓴 김민섭은 근무조건이 맥도날드보다 못한 대학을 떠나 더 이상 시간강사가 아니게 된지 오래다. 전국대학원총학생회협의회를 위시한 여러 대학원 총학생회의 대학원생 권리장전 제정을 위한 노력 역시 교문 밖 대통령직속청년위원회와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해서야 빛을 발할 수 있었다. ‘갑질 교수 끝판왕’으로 불린 서울대 사회학과 H교수에 대한 징계가 정직 3개월에 머무르자 “말그대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한” 해당 사건 대책위원회를 결성했던 동 대학원생 10명은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자퇴서를 제출했다.[3]

 

전준하 그림 1

그림 1. H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학생모임이 서울대학교 행정관 앞에서 천막농성을 시작하자 대학 본부는 하루만에 철거 경고장을 부착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끈질기게 121일동안 농성을 이어나갔고, 끝내 징계 결과를 바꾸진 못했지만 여러 제도적 개선을 이뤄냈다.

 

그렇게 대학원생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외치는 대학원생들의 목소리는 대학 밖 언론과 국회, 정부를 타고 그 어느때보다도 크게 울려 퍼졌다. 대학원 담당 조직이 따로 없는 교육부가 <대학원생 권리강화 방안연구>라는 제목을 가진 정책연구용역과제를 발주한 배경이다. 어쩌다 보니 그 과제는 대학에 있는 나와 내 지도교수님 앞에 놓였고, 졸지에 나는 학위논문 작성에 집중해야 할 졸업학기에 대학원생을 연구하는 대학원생, 조교를 연구하는 연구조교가 되었다. 연구를 시작한 후 세상에는 더 많은 대학원생 권리침해 사례가 알려졌고, 내게 그 사례 하나하나는 단순한 안타까움이나 분노 대상을 넘어 응답해야 하는 요청이 되었다. 문제가 너무나도 명백했기에 대학을 나온 대학원생과 교육부의 요청에 따라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두고 말 그대로 대책과 방안을 도출하는 데에 힘썼다. 그 결과 지난 4월 대학원생 조교 제도 운영 가이드라인과 대학 인권센터 설치 방안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했다.

하지만 보고서와 함께 고민도 끝난 것은 아니다. 요청에 대한 나름의 응답을 했으니 기분이 후련할 법도 한데, 그 이후로도 계속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 힘들었다. 대학원생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침해당하고 있으니 이를 보호하고 강화해야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문제제기에서 상식적인 해결책 제시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에서 질문하지 못한, 때문에 대답하지도 못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성완의 말을 빌리자면, 상식이 교문에서 막힌 것을 문제삼고 어떻게 상식이 교문 안으로 들어오게 할지 논의하는 동안 우리는 ‘어떻게 상식이 교문에서 막혔는지,’ ‘어떻게 대학원생이 대학을 나오게 되었는지,’ 다시 말해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묻지 않았다. 제목에서부터 이미 무엇을 문제시할지 정해놓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만 주목했던 정책연구보고서로는 아직 대답하지 못한 질문이 남아있었다. 여기에 ‘문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토대로 보고서에 담지 못한 그 뒤켠의 고민들을 나누고자 하는 이유다.

 

메인테이너로서의 대학원생

복수의 대학원생 연구 및 인권 환경 실태조사는 대학원생 중 과반수 이상이 자기자신을 ‘학생노동자’로 인식한다는 일관된 결과를 나타냈다.[4] 때문에 2018년 초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이하 대학원생노조)이 출범한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늦게 생겼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최근에는 대학원생 조교를 노동자로 인정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5] 이처럼 노동자에게 노동권을 보장해야한다는 상식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 대학 밖에서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한편, 대학 안팎으로 노동권 보장이 가정하는 대학원생이 노동자인지 여부부터 의문을 표하는 사람이 적지않다. 이른바 ‘학생인가, 아니면 노동자인가’하는 대학원생의 정체성 논란이다.

한 국내 대학 총장은 ‘근무 시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대학원생은 대학원에 남아있으면 안된다며, 대학원생은 예비 전문가로서 밤이나 주말에도 연구에 몰두해야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바 있다.[6] 다른 해외 대학의 총장은 대학원생이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에 반대한다며 교수와 대학원생 관계는 사용자-노동자 관계가 아닌 멘토-멘티 내지는 스승-제자 관계로 남는 것이 바람직하며 실제로 대다수가 그렇게 경험할 것이라 주장했다.[7] 하지만 이들의 발언과 주장은 실제보다 개인적인 신념에 따른 소망 내지는 당위에 가깝다. 오히려 지금까지 거의 유일한 대학원생 노동조합의 효과에 대한 실증 연구는 노동조합의 손을 들어주었다. 노동조합에 의해 대표되는(union-represented) 대학원생이 아닌 대학원생에 비해 더 좋은 경제적 처우를 받고 있을뿐더러 지도교수로부터 받는 개인적 지원과 공식적 지원에도 더 크게 만족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8] 논란은 계속 이어지겠지만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등 대학원생을 노동자로 인정하고 노동권을 보장해주는 것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추세로 보인다.

하지만 대학원생이 학생인지 노동자인지 혹은 둘이 섞인 학생노동자인지 그 여부를 따지는 대학원생의 정체성에 대한 논의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대학원생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가 사전에 갖고 있는 학생과 노동자라는 개념적 범주에 기반한 대답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이 근로기준법 등 이미 자리잡은 제도를 이용해 보다 쉽게 대학원생 노동권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문제 해결에 주목하기보다 문제 이해에 목표를 둔다면 대학원생의 정체성을 이미 있는 범주나 그 혼합에서 찾기보다 대학원생이 실제로 수행하고 있는 활동과 기능에서 찾을 필요가 있다. ‘대학원생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는 ‘대학원생은 대학원생이다’라고 답하자. 우리는 ‘대학원생은 무엇을 하는가? 그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대학원생의 또다른 이름은 조교다. 고등교육법, 표준직업분류나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나름 조교에 대해 정의하고 있지만 단어가 실생활에서 쓰이는 범위는 훨씬 광범위하며, 앞에 붙는 단어를 보면 대충 어떤 일을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조교들이 대학 곳곳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는 각 대학의 조교 임용 규정, 조교 장학금 제도, 대학 및 학과 홈페이지 등을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찾아본 결과 대학원생은 고등교육법이나 표준직업분류, 사전 상 정의에 포함된다고 볼 수 있는 교육조교나 연구조교를 넘어 행정조교, 산학협력조교, 기숙사조교, 상담조교 등의 이름으로 대학 곳곳에서 대학이 필요로 하는 거의 모든 형태의 활동을 담당하고 있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름을 통해 예상할 수 있는 활동 외로도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지만 담당자가 없거나 부족한 업무 역시 조교들의 몫이었다. 대학 재정 악화로 청소노동자를 해고한 대학이 해당 건물 청소를 대학원생이 맡게 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9]

또한 적지 않은 대학원생이 학회 간사로 임명되어 관련 활동을 하며, 특히 이공계 대학원생의 경우 대부분 학생연구원으로 국가연구개발사업 혹은 기업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연구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학회 간사는 학회 ‘인싸’가 될 기회 아니냐며 열정페이를 요구 받으면서 학회지 및 학술대회 관리부터 회원 및 재정 관리 등 학회 전반적인 운영을 도맡아 한다.[10] 한편, 학생연구원은 교수가 부단히 수주해오는 연구과제를 실질적으로 수행하는 주체다. 때문에 지방에서는 대학원생이 없어 연구실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팽배하다.[11] 대학원생은 대학뿐 아니라 학회를 지탱하며 연구시스템을 지속시킨다.

조교와 학회 간사, 학생연구원으로서 대학원생이 수행하는 갖가지 활동을 보건대 우리는 이들이 명실상부한 대학과 학회, 연구시스템의 메인테이너(maintainer)로 자리잡았다고 말할 수 있다. 메인테이너란 앤드루 러셀(Andrew Russel)과 리 빈셀(Lee Vinsel)이 기술혁신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우리 사회를 비평하며 이미 만들어진 기술과 그로 구성된 기반 인프라가 별 탈 없이 돌아갈 수 있도록 그것을 유지하고 지속시키고 보수하는 사람을 지칭한 표현이다.[12] 메인테이너는 우리 사회가 존속하기 위해 혁신가보다 더 필요한, 아니 필수적인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있다 없어지지 않는 이상 잘 보이지 않고 주목받지 못한다. 대학원생 역시 마찬가지다. 조교와 학회 간사, 학생연구원으로 그들이 하는 일은 잘 보이지 않을뿐더러 하찮게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학원생은 대학과 학회, 연구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가도록 여기저기서 맡은 역할을 다하고 있다. 일반적인 인식과 다르게 대학원생은 졸업하기 전 이미 학계와 연구계의 일원이며, 학생 또는 노동자이기 이전에 학계와 연구계를 지키는 메인테이너다.

 

교수니까 괴수다

2004년, KAIST 대학원 총학생회는 대학 단위 최초로 대학원생 연구환경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 적지 않은 대학원생이 인건비 전용과 부당 업무 지시를 경험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지만 당국 관계자는 “원생들의 조사 결과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며 “대다수 교수들은 원생들과 극히 원만한 인간관계와 연구환경을 유지하고 있다”고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13] 2012년, 서울대학교 인권센터는 1000명이 넘는 동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인권실태조사를 실시하여 성적 비하 발언을 들은 경우가 20%에 달하고 사적 업무 지시와 연구비 유용을 경험한 응답자 비율이 각각 10%를 넘는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대학 본부는 조사 결과가 언론을 통해 이슈가 되자 “마치 서울대 전체 교수가 문제가 있는 것으로 비춰진 것 같”다며 전체 교수에게 사과 메일을 발송하는 등 교수 사기 저하라는 ‘급한 불 끄기’에 급급했다.[14] 이처럼 교수가 대학원생 인권을 침해한 사건이 알려질 때마다 대학 본부와 교수들은 일부 사례 때문에 교수 전체가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 당해선 안된다고 항변하기 바빴다. 대학원생들이 대학 안팎에서 목소리를 높일 때 교수들은 응원 대신 조용히 ‘나는 아니야’라고 되뇔 뿐이었다.

‘난 그런 적 없다’, ‘내 주변에는 그런 교수 없다’거나 ‘그럴 리 없다’는 발화가 얼마나 무의미한지는 지면을 할애해가면서까지 설명하지 않겠다.[15] 하지만 대학원생 인권침해 문제는 ‘극소수 괴수’만의 문제일 뿐 ‘대다수 교수’는 문제없다는 사고방식과 태도는 분명 논파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잘못된 논리에 기반함에도 불구하고 앞서 살펴본 카이스트와 서울대 사례에서와 같이 교수나 대학 본부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내용일 뿐더러 별 일 없이 대학원 생활을 하고 있거나 마친 사람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괴수와 교수를 나눠 생각하는 이분법적 사고는 문제를 일으킨 교수를 괴수라는 다른 유형의 사람으로 구분하고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치부한 채 괴수가 따로 있지 않다는 사실과 교수니까 괴수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이미 대학원생들은 괴수가 따로 없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들은 후배들에게 교수가 학부생을 대하는 모습을 믿지 말라고 충고하며 지도교수를 정할 때 학문적으로 뛰어난지 여부만 봐서는 안된다고 경고한다. 교수는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상대하는 사람에 따라 괴수이기도 아니기도 하다. 괴수라는 유형의 사람이 따로 있어 그가 인권 침해를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교수도 인권 침해를 할 수 있으며 그 순간 바로 괴수가 되는 것이다. 이는 교수가 아니고서는 괴수가 될 수 없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논문지도를 모텔에서 해주겠다거나, 훈계라면서 폭언이나 폭행을 일삼거나, 인건비를 횡령하거나 연구저작물을 가져가고, 이를 지적하거나 고발한 대학원생에게 학계에 발을 못 붙이게 하겠다고 협박하는 등 교수에 의한 대학원생 인권 침해 사건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유형은 모두 그가 교수이기 때문에 저지를 수 있었던 짓이다. 운 나쁘게 괴수임이 드러나도 대부분 교수로 구성된 징계위원회로부터 휴가에 가까운 정직이라는 중징계를 받고서 다시 교단에 설 수 있는 것 역시 그가 괴수이기 이전에 교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교수라는 사람이 그럴 수 있지?’라고 물을 것이 아니라 그가 교수라서 그럴 수 있었다는 생각을 갖고 ‘괴수가 된 교수’를 이해해야한다. 앞서 던진 질문은 괴수를 이해못할 사람으로 규정한 채 누가 괴수인지, 또 괴수가 얼마나 많은지(혹은 적은지)에 집착하며 문제를 괴수 개개인에게 귀인한다. 결국 해법은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찰이나 법원에서 사실관계를 따져 드러난 잘못에 대해 엄격히 처벌하면 된다는 사법적 접근을 통한 엄벌주의다. 예방효과가 부족할 뿐만 아니라 피해자 보호보다 가해자 처벌을 우선시 하는 등 부작용을 가져온다는 이유로 관련 전문가가 입을 모아 반대하는 방법이다. 반면 교수가 어떻게 괴수로 변하는지를 이해하고자 노력할 경우 우리는 교수가 대학에서, 특히 대학원생과의 관계에서 어떤 입장과 위치에 서게 되는지, 어떤 요소들이 교수라는 자리를 구성하고 그 중 어떤 것이 괴수를 만드는 데에 기여하는지를 분석할 수 있다. 즉, 괴수를 개인이 아닌 사회 현상으로 바라볼 수 있으며, 이는 제도적 해법을 도출하기 위한 첫 발걸음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교수는 어떻게 괴수가 되는가? 여태 우리가 묻지 않았던 질문이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이에 대한 대답을 내놓은 바 있다. 바로 교수와 대학원생 사이에 도제 관계가 성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각기 다른 관념을 통해 가지고 있는 집합 심상으로서의 ‘도제 관계’라는 단어는 질문에 충분한 대답이 될 수 없다. 그보다 대학원생의 정체성 논의에서처럼 실제 대학원생과 교수 사이에서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관찰함으로서 대학원생에게 교수(특히 지도교수)란 어떤 의미를 가지는 존재인지를 규명하는 일이 필요하다. 따라서 나는 교수와 대학원생을 도제 관계로 해석하기보다 교수를 대학원생의 의무통과점(obligatory passage point)으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16] 말그대로 대학원생은 입학 시점부터 졸업까지, 학계에 남고자 한다면 그 이후까지도 ‘의무적으로’ 교수를 통과해야만 원하는 것을 얻고 원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무통과점으로서의 교수는 ‘갑질’을 하지 않고서도 충분히 대학원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 학부 졸업생이 대학원생이 되고자 대학원에 진학할 때부터 그는 교수, 특히 미래 지도교수가 될 교수를 통과해야만 한다. 대학에 남아 학업을 계속하기 위해 장학금을 받거나 조교나 학회 간사, 학생연구원이 되어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고자 할 때도, 어쩔 수 없이 공부와 연구를 잠깐 쉬어야 할 때도, 원하는 수업을 들으려 할 때도, 논문을 작성해 학술대회나 학술지에 투고할 때도, 학위논문을 작성하여 졸업할 때도 대학원생은 교수에게 통과 허락을 받아야만 한다. 심지어 졸업 후 일자리를 구할 때도 교수를 통과해야만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미 제도적으로 교수는 대학원생의 의무통과점이 된 것이다. 심지어 일부 교수는 대학 밖에서도 의무통과점 행세를 서슴지 않는다. 지도학생의 연애와 결혼, 출산과 육아를 명시적으로 혹은 사실상 금지하기도 하고, 생김새와 차림새, 말투와 행동까지도 간섭하기 일쑤다. 이는 괴수가 주로 보이는 특성이기도 하다. 의무통과점으로서의 교수는 괴수가 되기 너무나도 쉽다.

 

대학원에서 통하는 상식

“’그들이 미친 것이 틀림없어’라는 설명밖에 할 수 없는 어떤 것의 발견은 우리가 연구 중인 행위에 관해 충분히 모르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는 것이다.” (p.64)

하워드 S. 베커(2004), 『학계의 술책』

상식이 교문에 막힌 대학에서 대학원생이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가 일상적으로 침해당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 그 자체로도 심각한 문제다. 내가 참여한 <대학원생 권리강화 방안 연구>라는 제목의 정책 연구 과제에서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반면 이 글에서는 그것을 그대로 문제 삼기보다 현실에 드러난 현상으로 바라보고 그 현상이 어떻게 나타날 수 있었는지를 기술하고자 했다. 대학원생을 학생이나 노동자, 혹은 학생노동자라고 규정하기보다 그들이 실제로 수행하는 활동과 기능에 주목했고, 그 결과 대학원생은 학계의 메인테이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대학원생 인권을 침해하는 ‘괴수’ 개개인에 주목하기보다 교수가 어떻게 괴수가 되는지를 묻고 교수가 대학원생의 ‘의무통과점’이 된 사실을 드러냈다. 대학원생 권리침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선 대학원생이 메인테이너로, 교수가 그들의 의무통과점으로 자리잡은 대학원의 구조를 이해해야만 한다. 교문이 상식을 막은 것이 아니라 교문 안에 다른 상식이 있었던 것이다.

교문 안 다른 상식을 고려하지 않은 채로 겉으로 드러난 문제에 대한 해결방안만을 강구한다면 그 해결책은 겉돌기만 하거나 예상치 못한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킬 공산이 크다. 대학 인권센터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법안은 누구도 반대하기 어려운 정책이지만 많은 대학은 구색 맞추기에만 급급하다. 동국대 조교 사태 이후 대학원생 조교가 노동자 지위를 얻게 될 낌새를 보이자 일부 대학은 대학원생 조교를 사실상 해고하는 움직임을 취하기도 했다. 대학원생 권리침해 문제뿐만 아니라 대학과 관련된 여러 문제와 이에 대해 정부가 내놓은 정책이 비판을 받는 지점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 효과적인 정책을 도출하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주어진 문제를 충분히 이해하고 설명하는 일이다.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여도 끊임없이 재해석하고 재정의하며 다른 문제로 치환하기도 하는 지난한 작업을 통해 우리는 단순한 미봉책이 아닌 개혁을 이룰 정책을 논할 수 있다.

우리는 대학을 나온 대학원생을 통해 사실상 대학원의 메인테이너임에도 불구하고 주목받지 못한 대학원생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교수가 더 이상 의무통과점이 아닌 대학 밖에서야 그들의 노력은 빛을 발할 수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를 단순히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강화해달라는 요청만으로 해석한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대학에 교문 밖 상식을 묻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요청은 메인테이너로서의 대학원생과 의무통과점으로서의 교수로 이루어진 대학원 구조에 대한 교문 안 상식을 묻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누가 할 수 있나? 여전히 대학 안은 조용하고, 어쩌면 이 침묵이 또다른 교문 안 상식인지 모르겠으나 일부 대학원생과 일부 교수의 ‘대학원생 권리침해’ 문제가 더 이상 그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를 포괄하는 대학원의 문제가 된 만큼 대학 안에서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읽을거리

읽을거리1. 슬픈대학원생들의 초상29대 고대원총 이음지기, 김채영 그림 (2016), 『슬픈 대학원생들의 초상』, 북에디션.

대학원생 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법한 웹툰이다. 나 역시 이 웹툰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부끄럽게도 ‘다 아는 내용이겠지’라는 생각에 읽지 않다가 <대학원생 권리강화 방안 연구>를 수행하며 읽었다. 단순히 슬프거나 화나는 사례들 모음이 아닌 매 회마다 대학원생이 처하는 상황과 내∙외적 갈등, 구조적 문제를 엿볼 수 있다.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총학생회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다. http://krgs.org/index.php?mid=webtoon

읽을거리2. 지배받는 지배자

김종영 (2015), 『지배받는 지배자』, 돌베개.

우리나라 학계를 연구한 몇 없는 저서 중 하나. 보통 미국 유학파 엘리트를 분석한 책으로 알려져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들을 통해 우리나라 학계나 기업 조직 문화 등을 비판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새롭거나 신선하지는 않으나 우리나라 학계에 남고 싶다면 한번쯤은 읽어봐야 할 책.

 


 

[1] 대학원생을 상대로 폭언이나 협박, 사적 업무 지시 등의 사소한(?) 갑질부터 인건비 횡령, 폭행, 성희롱 및 성폭력에 이르는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교수를 지칭하는 은어로, 이제는 꽤나 보편적으로 쓰이는 단어다.

[2] 예를 들어, 대학생신문(2001.9.24), 「현장진단 2001 대학을 가다 (5) 대학원 문제」.

[3] 대책위원회 일원이었던 김일환의 글을 참고하라. 서울대저널(2018.6.7), 「’H교수 운동’,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다」, http://www.snujn.com/index.php?mid=news&category=117&document_srl=38586. 이른바 ‘H교수 운동’은 학부생 중심의 ‘H교수 사건 대응을 위한 학생모임’과 함께 자보 및 성명서 작성, 피켓•플랑 시위와 촛불집회, 천막농성과 동맹휴업, 릴레이 단식 등을 이어가며 정말 끈질기도록 계속되었다. 지난 7월말 121일 만에 천막 농성은 끝이 났지만 김일환이 말하듯 H교수 운동은 계속된다.

[4] 2014년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조사에서는 대학원생들이 자신을 순수히 “학생”으로 인식하는 비율은 37%인데 비하여 “학생근로자”라는 인식은 58.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순수하게 “근로자”로 인식하는 4.8%를 포함하면 63%의 대학원생이 본인의 정체성 일부 혹은 전부를 근로자에서 찾았다. 2015년에 수행된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와 2017년에 경희대 대학원 총학생회가 진행한 조사 역시 비슷한 결과를 보인 바 있다.

[5] 박광온 외 10인(2018.7.17),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 의안번호 14459.

[6] 신성철 KAIST 총장의 발언을 아래에 옮긴다. “대학원에 간다는 것은 전문가로서의 삶을 살겠다는 것이므로, 그러한 삶이 본인에게 가치가 있고 즐거운지 생각해야 한다”; “대학원생이 밤새워 일하는 것이 불쌍해 보이는 사람은 대학원에 가면 안 된다”; “대학원생이 ‘근무 시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토요일에는 회의를 하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 “KAIST에 이러한 학생이 반 이상이라면 KAIST는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카이스트신문(2018.5.29), 「여러 현안에 대한 논의 오간 총장 간담회」, http://times.kaist.ac.kr/news/articleView.html?idxno=4304

[7] 당시 하버드대학 총장 드류 길핀 파우스트의 발언을 아래에 옮겨 적는다. “We really think that it’s a mistake for graduate students to unionize, that it changes a mentoring relationship between faculty and students into a labor relationship, which it is not appropriate and is not what is represented by the experience of graduate students in the University.” The Harvard Crimson(2015.9.9), 「Faust Opposes Graduate Student Unionization Efforts」, https://www.thecrimson.com/article/2015/9/9/faust-disapproves-grad-unionization/

[8] Rogers, S. E., Eaton, A. E., & Voos, P. B. (2013), “Effects of Unionization on Graduate Student Employees: Faculty-Student Relations, Academic Freedom, and Pay”, ILR Review, 66(2), pp. 487–510.

[9] 연합뉴스(2018.1.15), 「[카드뉴스] “청소근로자 고용할 돈 없으니 대학원생들이 청소하세요”」,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8/01/12/0200000000AKR20180112059200797.HTML

[10] 나는 국내 학회 활동에 익숙하지 않아 학회 간사의 활동을 파악할 때 다음과 같은 글에 의존했다. 이 글들 모두 업무에 비해 넉넉치 않은 경제적 대가에 초점을 맞췄지만 여기서는 이들이 실제로 맡는 업무가 얼마나 학회 존속을 위해 필수불가결한 일인지 지적하고자 한다. 김민섭 외 (2016), 「대학원생 학회 간사의 연봉은 20만원」,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16933.; 염동규 (2018), 「훈수 말고 행동을」,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41784;. 홍덕구 (2018), 「연봉 100만원짜리 간사라니」, http://www.sisain.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30988.

[11] 한국경제(2017.7.20), 「지방 공대는 이미 초토화.. 석•박사 한명 없는 학과 수두룩」, https://news.v.daum.net/v/20170720175802584.

[12] 두 사람은 Aeon에 Hail the maintainers라는 제목의 기고문(https://aeon.co/essays/innovation-is-overvalued-maintenance-often-matters-more)을 발표한 이후 The Maintainers라는 연구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학술대회를 열고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Themaintainers.org 참고. 국내에선 전치형이 칼럼을 통해 메인테이너에 대해 소개한 바 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797187.html).

[13] 연합뉴스(2004.09.14), 「KAIST 대학원생, “교수가 제자를 머슴 부리듯」; 제 32대 KAIST 대학원 총학생회 (2004), 「KAIST 대학원 연구환경 실태조사」 해당 조사결과 총 응답자 수 795명(당시 전체 대학원생의 18.4%였다고 한다)의 응답결과 직접적으로 인건비를 유용당한 경험이 있는 대학원생은 13%, 사적 업무 지시나 부당한 행정사무 강요 등 부당처우를 경험한 대학원생은 약 20%에 달했다.

[14] 서울대학교 인권센터는 2012년에 진행한 인권실태조사결과를 비공개로 전환하기에 이르렀다. 인권실태조사결과는 서울신문(2012.10.11), 「교수집 개밥 주는 서울대 대학원생」; 대학 측 반응은 한국대학신문(2012.10.16), 「교수들 눈치 보기 바쁜 서울대?」 http://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115521

[15] 남궁석은 이것이 직접 물어본대로라면 검출되지 않아야 할 오줌 성분이 수영장에서 검출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는 그런 항변을 하는 교수들에게 해줄 말은 이것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어쩌라는 겁니까?” 남궁석 (2017),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BRIC 과학협주곡, http://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289269

[16] 의무통과점은 프랑스의 과학기술학자 미셸 깔롱(Michel Callon)이 주창한 개념으로, 역시 그가 발전시킨 행위자-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의 핵심어 중 하나다. 해당 이론에 입각해 보다 엄밀히 교수와 대학원생 관계를 분석할 수도 있겠으나 여기서는 연결망을 구성함에 있어 반드시 통과해야만 하는 마디(node)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만을 차용하고자 한다. 개념을 처음 소개한 다음 논문을 참고하라. Callon, Michel (1986), “Elements of a sociology of translation: Domestication of the Scallops and the Fishermen of St Brieuc Bay”. In John Law (Ed.), Power, Action and Belief: A New Sociology of Knowledge? London: Routledge, pp. 196-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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