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의 자리: [너도 인간이니?]를 통해 본 로봇과 인간의 만남

신희선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rebecca20@kaist.ac.kr


 

* 이 글은 KBS2 드라마 <너도 인간이니?> 에 대한 다수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다. 2018년 8월 5일을 기준으로 작성되었으며 총 36회분 중 현재 32회까지 방송되었다.

 신희선 그림1

<그림 1> 월화드라마 <너도 인간이니?> 포스터[1]

 

남신III’의 ‘남신’ 되기 프로젝트

내가 아플 때, 바쁠 때, 기분이 안 좋을 때, 나 대신 내 일을 해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기 그런 로봇이 있다. 2018년 6월 4일 방영을 시작한 KBS 월화드라마 <너도 인간이니?>에 등장하는 로봇 ‘남신III’ 이야기다(그림 1). <너도 인간이니?> 1화는 1998년 로봇공학자 오로라가 그의 아들 ‘남신’(서강준 분)[2]과 꼭 닮은 인공지능 로봇 ‘남신I’(6세 버전 남신 모사 로봇)을 만드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1년 전 시아버지인 PK 그룹 대표 남건호(박영규 분)가 회사의 대를 잇기 위해 아들 남신을 빼앗았고, 인공지능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촉망받던 로봇공학자 오로라(김성령 분)는 종적을 감추고 아들과 닮은 로봇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2004년에는 중학생 버전 남신 모사 로봇 ‘남신II’를, 2015년에는 성인 버전 남신 모사 로봇 ‘남신III’(서강준 분)를 만드는 데에 성공한다. 자신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오로라를 안아주며 남신III는 이렇게 말한다. “울면 안아주는 게 원칙이에요.”

 

신희선 그림2

<그림 2> 월화드라마 <너도 인간이니?> 인물관계도[3]

 

상대가 울면 안아주는 것을 제1원칙으로 아는 따뜻한 로봇 남신III는 어쩌다 인간을 사칭하게 되었을까? “인간사칭 사기극 핵심관련자들”의 중심에는 “감성로봇 사기꾼” 남신III와 그의 창조자이자 어머니인 오로라, 그리고 남신의 유일한 친구이자 개인비서 지영훈이 있다(그림 2). 일곱 살에 엄마와 이별한 뒤 줄곧 엄마를 그리워하던 남신이 아무도 모르게 체코로 떠나며 사건은 시작된다. 체코로 향한 남신의 뒤에는 회장 자리를 노리는 PK 그룹 총괄이사 서종길(유오성 분)의 사주를 받은 최상국(최병모 분)이 있었다. 남신을 미행하던 최상국은 서종길의 지시로 남신을 살해하려고 계획한다. 남신이 체코의 길거리에서 자신과 똑같이 생긴 남신III을 보고 당황하여 멈춰 선 순간(그림 3), 대형 트럭이 남신을 치고 지나가고, 남신은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는다. 오로라는 남신III에게 한국에 가서 인간 남신이 깨어날 때까지 그의 자리를 지켜달라고 부탁한다. 이 사실을 아는 유일한 사람 지영훈(이준혁 분)은 남신III 곁에 붙어서 남신 행세를 돕는다.

 

신희선 그림3

<그림 3> 체코의 길거리에서 서로를 마주치게 된 인간 남신(왼쪽)과 남신III(오른쪽) [4]

 

갑자기 인간 사회에 투입되는 것은 남신III와 오로라에게 없던 시나리오였다. 남신III는 오래전 헤어진 아들에 대한 오로라의 그리움을 달랠 존재였을 뿐이다. 그런 로봇이 한 회사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재벌 3세의 자리를 메꿔야 한다니. 게다가 그 재벌 3세가 거친 말버릇에 갑질을 서슴지 않는 ‘개망나니’라니.

남신III가 진짜 남신처럼 행동할 수 있도록 지영훈은 수많은 가상 시뮬레이션을 반복하여 남신III을 훈련한다(그림 4). 먼저 남신III가 PK 그룹의 직원들을 처음 만나는 장면이 연출된다. 남신III가 자신에게 인사하는 직원들에게 깍듯하게 인사하자 지영훈이 꾸짖듯 말한다.

지영훈: 신이는 직원들에게 인사 안 해요.

남신III: 왜요?

지영훈: (신이는) 좀 까칠해요. 턱 들고, 시선 내리깔고.

다음은 남신이 남신의 할아버지이자 PK 그룹의 회장인 남건호를 마주하는 상황이다. 남신III가 쇼파에 앉아 신문을 읽는 남건호 옆에 앉아 책을 펴자 지영훈이 곧바로 지적한다. “신이는 회장님을 피해요. 말도 잘 안 섞죠.”

가장 위험한 인물은 남신을 호시탐탐 노리는 서종길이다. 가상의 서종길을 만나는 상황에서 그를 못 본 척하며 지나치려는 남신III에게 지영훈은 “서종길 이사는 적이지만 약혼녀 서예나의 아버지에요. 인사 정도는 해야죠.”라고 말한다. 약혼녀 서예나(박환희 분)와는 가벼운 애정표현도 못 하게 한다. “약혼녀 서예나는 여동생 같은 존재예요. 스킨십 금지.”

자신에게 인사하는 직원들을 무시하기, 친할아버지를 피하기, 자신과 사이가 안 좋은 적에게 인사하기, 약혼녀를 여동생처럼 대하기. 모두 남신III가 배워 온 보편적 지식과 윤리와는 대치되는 행동이다. 남신III는 인간 남신처럼 행동하기 위해서 주변 인물과의 복잡한 관계를 이해하고 그에 맞춰 행동해야 했다. 상대의 표정과 맥박으로 거짓말을 탐지할 수 있지만 일부러 모른 척해야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인간처럼 보이기 위해 이 로봇은 이제까지 배워 온 인간 사회의 기본 윤리와 원칙 대신, 차갑고 건방진 모습을 갖춰야 했다.

 

신희선 그림4

<그림 4> 가상 현실에서 시뮬레이션을 통해 사람들과 만나는 상황을 연습하는 남신III[5]

 

착한 로봇과 나쁜 인간

PK 그룹의 자율주행 차량 프레젠테이션 현장에 나타난 남신III는 성공적으로 발표를 마치면서 본격적으로 인간 사회에 투입된다. 남신III가 로봇이라는 것을 들키지만 않으면 아무도 이것이 사기극이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발생하면서부터 남신III는 인간 남신답지 않은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갑작스러운 화재가 발생하자 ‘재난 모드’로 바뀐 남신III는 불 속으로 들어가 사람들을 구한다(그림 5). 해킹을 당한 자율주행차가 제어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이를 멈추기 위해 몸을 내던지고, 눈물을 흘리는 강소봉(남신III의 경호원)을 따뜻하게 안아준다. 11회(2018년 6월 25일 방영)에서 남신III는 강소봉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몇 시간 동안 식당 밖에 서서 소봉을 기다린다. 식당 주인은 그런 소봉에게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사람한테 그러는 거 아니야.”라고 핀잔을 준다. 소봉이 “아줌마가 뭘 알아요. 쟤(남신III) 사람 아니에요.”라고 대꾸하자 주인은 “사람 아니긴. 지(소봉)가 사람 아니구먼.”이라며 되려 소봉에게 면박을 준다. 남신III는 분명 ‘인간미’ 넘치는 로봇이다.

반면 남신III가 만나는 인간들은 너무나 비도덕적이다. 인간 남신부터가 그렇다. 남신은 자신의 가치를 떨어뜨려 PK 그룹 후계자의 위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악행을 저지르고, 갑질을 서슴지 않았었다. 남신의 할아버지 남건호는 자신의 욕심을 위해 며느리로부터 아들을 강제로 빼앗는다. 서종길은 자신의 야심을 위해서 남신을 해칠 계획을 짠다. 강소봉은 서종길의 사주를 받아 남신의 방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고 감시한다. 강소봉의 절친 조기자(김현숙 분) 역시 남신과 서종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뒷돈을 챙긴다.

<너도 인간이니?>가 보여주는 인간적인 로봇(humane robot)과 비인간적인 인간(inhumane human)의 역설적인 만남을 두고 평가가 엇갈린다. 칼럼니스트 유선주는 “극의 현실 인식과 지향하는 윤리의 수준이 너무 낮아서 참담할 지경”이라고 비판한다.[6] 윤리 수준이 너무 낮아서 오히려 비현실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설정이 어색하지 않다면 우리가 이미 치열한 경쟁 속에서 서로를 속고 속이는 삶의 풍경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칼럼니스트 박상완은 과거 정의로운 격투기 선수였던 강소봉이 돈만 밝히는 속물 경호원으로 변한 모습이 다소 급작스럽고 작위적이긴 하나, 현실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과 매우 닮아있다고 지적한다.[7]

착한 로봇과 나쁜 인간의 모습은 우리가 로봇을 인간적이라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우리 자신은 얼마나 인간적인지, 우리 사회는 얼마나 도덕적인지 돌아보게 한다. 실제로 제작진은 “인간이 아닌 로봇을 통해 인간다움에 대해 묻는 과정”이라고 드라마의 취지를 설명했다.[8] 더불어 세상을 배워가는 로봇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때때로 상식을 벗어난 행동을 하는 인간들에게 ‘너도 인간이니?’라는 질문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9] 모 일간지는 이 드라마가 단순한 로봇 드라마가 아니며, ‘가장 비인간적이어야 할 로봇이 어쩌면 가장 인간적일 수도 있다’는 무거운 메시지를 품고 있다고 평가했다.[10]

 

신희선 그림5

<그림 5> 불길 속으로 들어가 강소봉을 구해오는 ‘재난모드’의 남신III[11]

 

로봇의 자리

<너도 인간이니?>에서 남신III는 현실 세계의 사람들을 만나며 우리 사회를 촘촘히 엮고 있는 다양한 가치들을 익혀간다. 회사를 지키기 위해 치매에 걸렸다고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할아버지를 기꺼이 눈감아주었고, 자신을 위협하는 고모 남호연(김혜은 분)과 서종길을 되려 협박하기도 한다. 누군가에겐 때론 도덕과 공익보다 사적 이익이 우선순위를 지닌다는 것을 배웠고, 때로는 상대가 혼자 있고 싶을 땐 내버려 두고 들키기 싫은 비밀을 눈감아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12] 자신에게 프로그래밍 된 윤리 원칙들이 현실 세계에서 반드시 지켜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13]

남신III가 지속적으로 주변 인물들과 부딪히며 사람들의 복잡한 세상을 배워서 ‘한 사람의 몫’을 하고 한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인간 남신을 대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 남신의 얼굴을 하고, 말투를 쓰고, 행동을 하는 남신III을 사람들은 의심하지 않았다. 인간 남신의 ‘자리’가 이미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남신III는 정치적으로 얽혀있는 인간 남신의 사회적 지위 덕분에 비밀을 들키고도 문제없이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었다. 14회(2018년 7월 3일 방영)에서 남신의 약혼녀 서예나는 남신III가 로봇이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어 큰 충격을 받는다. 그는 “오빠(인간 남신) 일어나면 널 용광로에 녹여버릴 거야.”라며 화를 내지만 남신III를 쉽게 버리지 못한다. 남신III가 꿰차고 있는 인간 남신의 지위 때문이다. 서예나는 오히려 남신III를 이용하기로 마음먹는다. 자신과 결혼하기 싫어하던 인간 남신이 깨어나기 전에 서둘러 결혼식을 진행하려고 한다.

인간 남신의 의식이 조금씩 돌아올수록 남신III의 존재는 위태로워진다. 21회(2018년 7월 16일 방영)에서 남신의 의식이 회복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오로라는 남신III가 자신 몸속에 있는 킬스위치의 존재를 알게 되어 문제를 일으킬까 봐 걱정한다. 그러자 오로라의 오랜 친구이자 남신III의 ‘아빠’인 기계공학자 데이빗이 되묻는다.

데이빗: 왜? 그놈이 알면 안 되나? 지 몸 속에 얼마나 잔인한 게 있는지 알 권리가 있잖아.

오로라: 그 아이 제멋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 못 봤어요? 킬스위치 알고 작동 거부하면 어쩔거에요? 진짜 신이가 일어났는데 계속해서 신이 주위 맴돌면 정말 위험해질 수가 있다고요.

데이빗: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야. 그리고 뭐, 진짜 신이? 당신한테 그놈은 가짜야? 전혀 중요하지 않냐고!

오로라: 어차피 진짜 신이는 하나에요.

데이빗: 와, 당신 진짜…

지영훈: 당장은 신이 회복이 중요하니까 두 사람한테 말조심하죠. 신이 몸이 완전해질 때까지는 어쨌든 필요한 존재니까요.

데이빗: 허, 다들 미쳤네. 뭐 애초부터 다 미친 짓이었으니까.

데이빗은 남신III의 알 권리를 주장하지만, 오로라는 남신III는 ‘진짜 남신’이 아니라고 단정하고, 지영훈은 남신III를 그저 인간 남신의 몸이 완전해질 때까지 필요한 존재일 뿐이라고 평가한다. 인간 남신이 나타나면 그 자리에 있는 남신III는 더이상 그들에게 쓸모가 없다.

남신III의 사례는 로봇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로봇이 기술적, 윤리적 문제를 일으키지 말아야 할 뿐만 아니라 로봇이 들어갈 집단 역시 로봇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적당한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문화인류학자 김현경은 이것을 인간과 사람의 차이라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굵은 글씨 필자 강조).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보이지 않는 공동체—도덕적 공동체—안에서 성원권을 갖는다는 뜻이다. 즉 사람임은 일종의 자격이며,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사람과 인간의 다른 점이다. 이 두 단어는 종종 혼용되지만, 그 외연과 내포가 결코 같지 않다. 인간이라는 것은 자연적 사실의 문제이지, 사회적 인정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개체가 인간이라면, 그 개체는 우리와의 관계 바깥에서도 인간일 것이다. 즉 우리가 그것을 보기 전에도, 이름을 부르기 전에도 그 고유한 특성에 의해 이미 인간일 것이다. 반면에 어떤 개체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며, 그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14]

다시 말하면, 어떤 이는 혼자서 인간은 될 수 있어도 사람은 될 수 없다. 사람이 된다는 것, 즉 사회적 성원권을 얻어 한 사회의 구성원이 된다는 것은 인정과 환대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남신III의 경우, 미리 준비되어 있었던 인간 남신의 자리 덕분에 주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무사히 공동체 속에 안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만약 남신III가 인간 남신을 모사한 로봇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드라마를 벗어나 조금 먼 미래를 상상해 볼 수 있겠다. 전혀 새로운 로봇이 우리 옆에 등장했을 때 우리는 로봇에게 적절한 자리를 내어 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는 로봇을 환대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우리는 로봇을 맞이하기 위해 새로운 자리를 마련하고 환대해주기 위하여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어쩌면 다양한 장치를 동원해야 할지도 모른다.[15]

 

한 사람의 몫을 하기

드라마가 중반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남신III에 변화가 생긴다. 그는 더 이상 원칙대로만 행동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살아가면서 ‘학습’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남신III는 자신을 ‘인격체’로 대해주는 주변 인물들에게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그들을 위해 때로는 논리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고 위험을 감수한다. 강소봉이 위험에 빠졌다는 사실을 감지했을 땐 결혼식 도중에 뛰쳐나온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남신III 에게 오로라가 화를 내자 남신III는 “내가 인간 남신인 척을 안 하면 엄마 아들이 아닌 거에요?”라고 대꾸한다. 아들이 그리워 만든 로봇. 누워있는 아들을 위한 로봇. 오로라에게 인간 남신 역할을 하지 못하는 남신III는 더이상 ‘가치’가 없다. 남신III의 돌발행동이 계속되자 20회에서 오로라는 남신III의 작동을 완전히 멈출 수 있는 킬(Kill) 스위치 작동까지 고려한다(그림 6). 오로라가 킬 스위치 앞에 앉아 고민하자 데이빗이 다그친다.

데이빗: 당신 미쳤어? 지금 킬스위치를 왜 꺼내? 그걸로 뭐 하려고? 당장 애를 죽일 작정이야?

오로라: 그럼 어떡해요? 애는 점점 이상해지고…

데이빗: 걘 로봇이야. 당신이 만든 로봇! 이상해지는 게 아니라 발전하는 거잖아. 왜, 그놈이 더 발전할까 봐 두려워? 더 발전해서 당신 아들한테 해코지할까 봐? 그런 터무니없는 상상이 어딨어! 그런 억측이 어딨냐고! 당신, 과학자도 아냐. 형편없는 엄마일 뿐이야, 알아?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사람들과 만나 커가듯 남신III 역시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회화된다. 그러나 오로라 박사는 그것을 위협이라고 느낀다. 데이빗은 남신III의 변화를 ‘발전’이라고 느끼지만 오로라는 ‘이상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로라는 남신III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남신III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사고하고 시키는 대로 행동하길 바랄 뿐이다.

 

신희선 그림6

<그림 6> 킬 스위치 앞에 앉아 고민하는 오로라 박사[16]

 

인간 남신이 조금씩 의식을 되찾자 남신III도 자신의 존재가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인간 남신이 깨어나면 난 뭐가 되지? 어디서 뭘 어떻게 해야 되는 걸까? 난 로봇이니까 쓸모 있어야 되는데, 엄마한테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지는 거잖아.”라고 말하는 남신III에게 강소봉은 “니가 왜 쓸모없어? 나한텐 쓸모있어 충분히.”라고 말한다. PK 그룹 본부장의 역할을 위해 투입되었던 남신III가 강소봉과 친구 관계로 발전하며 새로운 ‘쓸모’를 얻게 된 것이다. ‘인간 남신의 대체재’로서는 쓸모가 없어졌지만 강소봉의 ‘친구’가 되며 이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이유가 새로 생겼다. 이렇게 남신III는 조금씩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여 인간관계의 망을 넓혀 간다.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은 사회의 구성원들을 서로 연결되어 있는 유기체의 세포에 비유하며, “인간사회란 자유로운 존재들의 조화로운 전체”라고 말한다.[17] 한 사회에서 개개인은 서로 보이지 않는 끈과 위계질서로 묶여 있으며, 사회 전체의 더 큰 행복을 위해서는 부분의 희생이 요구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사회의 요구와 개인의 의무는 불변한 것이 아님을 강조한다.

우리들 중 어느 누구도 사회로부터 완전히 분리될 수는 없으며, 그렇게 되는 것을 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 자신의 힘의 대부분이 사회로부터 발생하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행위에 가장 큰 수확을 보장해 주는 그의 지속적인 긴장력과 그의 노력의 불변하는 목표는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사회의 요구 때문에 생기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 한 개인을 모든 사회생활에서 단절된 것으로 생각하려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18]

드라마가 후반부에 들어서며 인간 남신은 의식을 되찾고 인간 남신과 남신III 사이에 갈등이 시작된다. 인간 남신이 깨어난 후에 자신의 원래 자리로 바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남신III가 인간 남신의 말투, 행동, 인간관계를 익혔던 것처럼 인간 남신 역시 자신의 공백기 동안 남신III가 맡았던 역할을 배워야 했다. 그러나 로봇을 흉내 내야 한다는 사실에 인간 남신은 분노한다. 인간 남신은 자신과 똑같이 생긴 남신III가 왠지 섬뜩하고, ‘신아!’라는 말에 반응하는 남신III가 못 미덥고, 고통도 감정도 모르는 로봇이 징그럽다. 급기야 강소봉을 건드리지 말라는 남신III의 말에 흥분한 인간 남신은 “너 진짜 네가 인간인 줄 아는구나. 잘 봐. 누가 인간인지.”라며 남신III의 얼굴에 상처를 입힌다(그림 7). 회사에 출근해서는 직원들에게 폭언을 하고, 자신을 껴안는 조카를 손으로 밀어내며 “눈앞에서 꺼져.”라고 말한다.[19] 또한 할아버지 남건호가 오래전부터 몰래 오로라의 로봇 개발을 지원하고 남신III의 정체를 알면서 묵인해 온 사실을 알고 더욱 분노한다. 결국 인간 남신은 남신III를 ‘수동제어모드’로 전환하여 강소봉의 목을 조르고 남건호를 옥상에서 떨어뜨려 죽이려 하는 등의 악행을 저지른다.[20]

 

신희선 그림7

<그림 7> 인간 남신이 휘두른 공구에 상처를 입은 남신III[21]

 

인간 남신의 폭주가 계속될수록 남신III의 ‘인간미’가 돋보인다. 우는 조카를 달래주고 치매로 입원하는 할아버지를 따뜻하게 배웅한다. 인간 남신이 병실에 누워있는 동안 남신III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비인간적인 인간 남신보다 더 인간미 넘치고, 더 일을 잘하는 남신III의 모습을 좋아하게 되었다. 심지어 남건호 PK그룹 회장은 인간 남신 대신 남신III에게 회사를 물려줄 구상까지 한다. 지영훈과 오로라 역시 인간 남신이 돌아왔지만 남신III를 선뜻 없애버리지 못한다. 32회(2018년 7월 31일 방영)에서 지영훈은 남신III에게 “그쪽은 나한테 의지하고 싶을 만큼 든든하고 속 깊은 존재예요. 기계지만 마음있는 특별한 기계니까.”라고 속마음을 처음으로 고백한다. 그리고 인간 남신의 폭주를 막기 위하여 ‘또 다른 남신’, 남신III의 존재를 세상에 공식적으로 발표하기로 마음먹는다.

공동체 속에서 사람들은 조정과 조율(coordination)을 통해 서로 관계를 맺고, 그러한 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특정한 지위와 권위를 얻는다. 다양하게 형성된 관계 안에서 개개인은 의무를 지게 되며, 이것은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한다. 로봇 역시 마찬가지다. 설령 로봇이 우리 사회 안으로 들어오더라도, 로봇은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를 맺어야 하며, 그로 인해 새롭게 형성되는 의무와 질서 속에 자신을 적절히 위치시켜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위해선 인간의 인내심과 로봇의 노력이 필요하다.

 

로봇이 인간 사회에 자리 잡기 위한 조건

<너도 인간이니?>는 상상을 기반으로 한 SF 판타지물이다. 아직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최첨단 기술이 많이 등장한다. 그러나 텔레비전 드라마는 단순히 미래를 상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현실을 재현하기도 하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허구의 세계를 마치 현실 속에 존재하는 것처럼 꾸미기도 하여 시청자들의 인식에 영향을 미친다.[22] 더욱이 SF는 인간과 기술의 관계와 미래의 전망에 대한 담론 생산에도 기여한다.[23]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너도 인간이니?>는 허구의 드라마이지만, 로봇과 우리의 미래에 대한 우리의 시각을 돌아보게 한다.

로봇의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들은 대개 ‘머지않은 미래에 로봇이 인간과 함께 생활하며 살아가는 새로운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위를 획득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24] <너도 인간이니?>의 줄거리 역시 그러한 견해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 아니라, 사람들의 환대와 존중, 꾸준한 상호작용이 필요한 일임을 기억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는 다른 구성원과의 관계를 조율하고 자신의 위치를 파악할 줄 아는 현명함과 때로는 자신을 위험으로부터 위장할 줄 아는 영민함 역시 필요하다. 구성원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일종의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며, 그만큼 무거운 의무가 뒤따른다. 로봇이 얼마나 착하고 똑똑한지, 얼마나 인간을 똑같이 흉내 낼 수 있는 지만으로 로봇의 미래를 가늠할 수 없는 이유다. 로봇이 인간 사회에 자리 잡기 위한 조건은 훨씬 더 복잡하다.

 


읽을거리

신희선 읽을거리1김현경 (2015),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

로봇에 대한 책은 아니지만, 우리가 어떻게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차근차근 분석하는 책이다. 처음 읽을 땐 어려울 수 있지만 낯선 외국에 가서 힘들었던 경험, 학창시절 동아리 생활, 또는 어떠한 집단에라도 소속되었던 적/소외되었던 적을 떠올리며 읽는다면 충분히 공감하며 읽을 수 있다.

 

신희선 읽을거리2

민경배 (2016), 『SF영화와 로봇 사회학』, 커뮤니케이션북스.

로봇이 등장하는 10개의 SF 영화를 통해 도구, 공포, 협력자로서의 로봇, 로봇 윤리와 권리 등 다양한 주제를 소개하는 책이다. 로봇과 사회학의 접점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입문할 때 읽으면 좋겠다. 무엇보다 짧고 간결해서 술술 읽힌다!

 

 


 

[1] KBS TV, 서강준, “너도 인간이니?”, http://www.kbs.co.kr/drama/ruhuman/behind/tt/index.html. 포스터에서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서강준이 남신III, 뒤에서 측면을 바라보고 있는 서강준이 인간 남신이다.

[2] 이 글에서 오로라의 인간 아들 남신과 로봇 남신III를 구분하기 위하여 각각 ‘인간 남신’과 ‘남신III’라고 표기하기

로 한다.

[3] KBS TV, http://www.kbs.co.kr/drama/ruhuman/about/cast02/index.html

[4] <너도 인간이니?> 3회 중(2018년 6월 5일 방영). 이 장면이 나오자마자 인간 남신은 정체 모를 트럭에 부딪혀 의식을 잃는다.

[5] <너도 인간이니?> 3회 중(2018년 6월 5일 방영)

[6] 「[TVIEW] <너도 인간이니?> 인간은 왜…」, http://www.cine21.com/news/view/?mag_id=90433.

[7] 「[박상완의 드라마 공작소] 퇴보하는 인간, 진화하는 로봇」, http://www.munhwada.net/home/m_view.php?ps_db=culture_drama&ps_boid=50.

[8] 「’너도인간이니’ 측 “로봇 통해 인간다움에 대해 질문할 것”」,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5/30/2018053000670.html.

[9] 「[스한초점] ‘너도 인간이니’가 단순한 로봇드라마로 느껴진다면」, http://sports.hankooki.com/lpage/entv/201806/sp20180612084123136670.htm.

[10] 「[스한초점] ‘너도 인간이니’가 단순한 로봇드라마로 느껴진다면」, http://sports.hankooki.com/lpage/entv/201806/sp20180612084123136670.htm.

[11] <너도 인간이니?> 5회 중(2018년 6월 11일 방영)

[12] <너도 인간이니?> 22회 중(2018년 7월 16일 방영) 강소봉의 대사다. 거짓말을 하는 소봉을 잡아내자 소봉은 남신III에게 “니가 뭔데 내가 어디 있는지 알아내고 내 마음 자꾸 훔쳐봐? GPS? 거짓말탐지기? 그렇게 하는 건 진짜가 아니야. 혼자 있고 싶을 땐 내버려 두고, 들키기 싫을 땐 눈감아 주는 거, 그런 게 진짜 알아주는 거라고.”라며 화를 낸다.

[13] 설령 개개인이 모두 도덕적으로 행동한다고 해도 남신III에게 현실 세계는 여전히 어려웠을 것이다. 개인이 집단을 이뤄 행동할 때는 윤리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정치 영역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 책을 참고할 수 있다. 라인홀드 니버, 이한우 번역 (2017),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문예출판사. [Niebuhr, R. (2013) Moral Man and Immoral Society: A Study in Ethics and Politics,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nd edition.]

[14] 김현경 (2015), 『사람, 장소, 환대』, 문학과지성사, pp. 31.

[15] 전치형 (2017), 「포스트휴먼은 어떻게 오는가: 알파고와 사이배슬론 이벤트 분석」, 『일본비평』, 제 17호, p. 18-43. 이 글에서 전치형은 2016년 3월 개최된 이세돌-알파고 바둑 대국(서울)과 2016년 10월 개최된 사이배슬론(cybathlon) 대회(스위스 취리히)를 분석함으로써 포스트휴먼은 물질적, 언어적, 사회적 전략과 기술(technology) 장치들을 통해 비로소 한 사회에 등장한다고 지적했다.

[16] <너도 인간이니?> 20회 중(2018년 7월 10일 방영)

[17] 앙리 베르그송 (1998), 『도덕적 종교의 두 원천』, 서광사, pp. 16-18. [Bergson, H. (1932) Les deux sources de la Morale et de la Religion.]

[18] 앙리 베르그송 (1998), 『도덕적 종교의 두 원천』, 서광사, pp. 23. [Bergson, H. (1932) Les deux sources de la Morale et de la Religion.]

[19] <너도 인간이니?> 27회 중(2018년 7월 24일 방영)

[20] <너도 인간이니?> 26회 중(2018년 7월 23일 방영)

[21] <너도 인간이니?> 31회 중(2018년 7월 31일 방영)

[22] 최상민 (2012), 「대중의 욕망과 드라마적 재현: 김수현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중심으로」, 『드라마연구』, 제 36호, p. 199-223.

[23] 황혜진, 이승환 (2005), 「SF 영화 <매트릭스>에 나타난 문화적 혼성성」,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제5권 제5호, p. 92-99.

[24] 민경배 (2016), 『SF영화와 로봇 사회학』, 커뮤니케이션북스, pp. xv.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WordPress.com 제공.

위로 ↑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