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 선택의 정치학: 한국 탐폰 도입 사례를 중심으로

이영주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석사과정)

earth83@snu.ac.kr


 

그림1 어플리케이터형 탐폰 위wikipeidia.org

<그림 1. 어플리케이터형 탐폰의 구조[1]>

 

들어가며

월경을 전면으로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의 첫 장면은 한국인 감독의 네덜란드인 친구의 회고로 시작된다. 오직 초경 때 패드형 생리대를 사용해 보았을 뿐이라는 그녀는 네덜란드에서는 대부분 탐폰을 사용한다며 감독으로부터 손수 만든 패드형 생리대 주머니를 선물 받았을 때의 당혹감을 이야기한다. 이러한 장면은 여성 개인의 경험에 그치지 않는다. 2013년 미국 여성 위생용품 시장에서 탐폰 점유율은 37.1%, 가까운 일본에서도 13.9%의 수치를 기록한 데 비해, 한국의 탐폰 점유율은 6.2%에 불과했다.[2] 이러한 통계까지 더한다면 『피의 연대기』의 첫 장면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월경은 여성 대부분이 겪는 보편적인 몸의 현상이지만, 이를 다루는 기술은 결코 보편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이러한 차이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한국 여성들은 왜 네덜란드나 미국 여성들에 비해, 이웃 아시아 국가인 일본 여성들에 비해서도 탐폰을 덜 사용하는 것일까? 이러한 차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3]

 

그림2 탐펙스광고 New York Mirror

<그림 2. 1938년 탐팩스 광고[4]>

 

미국의 탐폰: 낯선 기술은 어떻게 익숙한 기술이 되는가?

20세기 초 미국에서 등장한 탐폰은 원래 상처에서 나오는 혈액을 흡수하는 외과적 용도 혹은 질 분비물을 흡수하는 등의 산부인과적 용도로 고안되었다. 일회용 패드형 생리대가 본격적으로 상품화된 지 약 10여 년이 지난 1930년대, 탐폰이 월경혈 역시 흡수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에 착안한 일련의 특허들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월경혈 흡수 목적의 탐폰이 상품화되었다. 당시 시중에 판매된 탐폰으로는 디지털(digital)형 탐폰 윅스(Wix)와 어플리케이터(applicator)형 탐폰인 탐팩스(Tampax) 등이 있었다. 두 제품 모두 면이나 셀룰로오스 재질로 되어있어 월경혈을 흡수하는 부분인 흡수체에 사용한 탐폰을 제거하기 위한 실이 달려 있다는 점은 같았지만, 디지털형 탐폰은 손가락을 이용해 탐폰을 질에 삽입해야 했던 반면 어플리케이터형은 제거용 실이 달린 흡수체가 피스톤 형태의 어플리케이터에 들어 있어 손가락을 질에 넣지 않고도 탐폰을 삽입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었다.[5]

미국에서조차 이 낯선 생리대의 보급은 쉽지 않았다. 한번 쓰고 버린다는 점 외에는 천이나 헌 옷을 이용해서 만든 재래식 생리대와 일회용 패드형 생리대의 사용법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탐폰은 질 속에 흡수체를 넣어 사용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생리대와 완전히 다른 종류의 실행을 요구했다. 탐폰을 질 안에 넣으면 처녀막이 손상된다거나, 성적 자극을 일으킬 것이라는 사회적 우려 역시 여성들로 하여금 탐폰 사용을 주저하게 했다. 1930년대 미국 여성 위생용품 시장에서 탐폰의 점유율은 채 5%가 안 되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폰은 당시 일회용 패드형 생리대에 비해 분명한 장점이 있었다. 1930년대 출시 이후 194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탐팩스 광고에 꾸준히 나타나는 문구 “벨트 없음, 핀 없음, 패드 없음, 냄새 없음(no belts no pins no pads no odor)”에서 당시 패드형 생리대 사용에 따르는 불편한 점이 무엇이었는지, 탐폰 제조사들이 어떤 식으로 이 불편을 해소해 줄 것이라 약속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당시 패드형 생리대를 사용하기 위해 생리대를 몸에 고정시킬 벨트와 핀 같은 보조도구가 필수적이었던 데 반해, 탐폰을 사용하는데는 별도의 보조 도구가 필요하지 않았다. 1969년 존슨 앤 존슨(Johnson & Johnson)이 접착형 생리대 스테이 프리 미니 패드(stay free mini pad)를 출시하고 나서야 여성들은 벨트와 핀 없이도 패드형 생리대를 사용할 수 있었다. 더욱이 탐폰 사용 시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문구는 20세기 내내 미국인들을 구속한 ‘청결과 (좋은) 냄새’라는 규율을 공략하고 있었다. 월경 중에도 각종 신체 활동 특히 패드형 생리대를 착용하고는 하기 어려운 목욕과 수영 같은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점 역시 탐폰 제조사들이 내세운 탐폰만의 장점이었다.

이러한 장점 덕분에 1936년 무렵부터 탐폰 사용자는 서서히 늘어 갔다. 환자로부터 탐폰이 건강에 해롭지 않은지를 질문 받는 의사 역시 늘었으며, 1940년대 무렵에는 이러한 임상의들이 생산한 논문과 기업 및 대학의 후원을 받은 연구 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탐폰 관련 의학 지식이 생산되었다. 당시 의학적 담론은 탐폰에 대한 상이한 의견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탐폰이 자연스러운 피의 흐름을 막는다는 이유로 탐폰 사용을 반대하는 의견이 있었는가 하면, 탐폰이 성적 자극을 유발하므로 탐폰 사용은 처녀(virgin)가 아닌 이에 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러한 논의들 사이에서 탐폰 사용에 긍정적 입장을 취한 이 중 한 명은 로버트 디킨슨(Robert Dickinson)이었다. 부인과 교과서 편집자이자 미국 모자건강 위원회(the National committee on Maternal Health) 서기를 맡은 바 있는 저명한 산부인과의 디킨슨은 1945년, 탐폰의 성적 자극은 무시할만한 수준이며 오히려 패드형 생리대가 클리토리스를 자극하여 성적 자극을 일으킬 수 있을 뿐 아니라, 소변에 의한 오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다. 무엇보다 그는 탐폰이 처녀막을 손상시키지 않는다고 서술하면서 의학 전문가들이 명시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피해왔던 처녀막의 문제까지 분명히 했다.

1949년 대중적으로 영향력 있는 매체인 컨슈머 리포트(Consumer Reports)가 디킨슨의 논문을 인용하면서 탐폰에 대한 미국 사회의 인식은 전환점을 맞았다. 탐폰 회사들이 제작, 배포한 성교육 책자들 역시 이러한 의학적 권위를 동원해 탐폰 사용을 주저하는 미혼 여성들을 안심시켰다. 1978년, 약 40여 년 전만 해도 5%에도 못 미쳤던 미국 여성 위생용품 시장에서의 탐폰 점유율은 46%까지 상승하여 패드형 생리대와 함께 시장을 거의 양분하고 있었다. 탐폰의 인기는 미국에 그치지 않았다. 같은 해 뉴질랜드 여성 위생용품 시장에서 탐폰의 시장 점유율은 62%, 스웨덴 49%, 서독 42%에 이르는 등 일부 국가의 탐폰 점유율은 패드형 생리대의 점유율을 상회하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가까운 일본마저도 탐폰의 시장 점유율은 1972년 조사된 10%에서 1978년 18%로 상승하는 추세를 보였다. 1970년대 후반, 탐폰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곳곳의 일회용 생리대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던 유망 기술이었다.[6]

 

한국의 탐폰 도입: “제3세대 생리대”의 등장

한국에도 탐폰이 소개된 것은 이렇듯 세계 곳곳에서 탐폰의 인기가 높았던 1970년대 후반 무렵이었다. 1976년 화강양행의 스틱형 탐폰 ‘몽크린’을 시작으로 1977년에는 동아제약이 어플리케이터형 탐폰 ‘템포’를, 1978년 태평양화학이 디지털형 탐폰 ‘아모레 탐폰’을 출시하면서 탐폰은 몇 년 전에야 본격적으로 형성된, 그러나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는 한국 일회용 생리대 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소개된 탐폰들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질 내에 삽입해야 했지만 공통적으로 탐폰이 패드와 다를 뿐 아니라 더 나은 기술임을 내세우고 있었다. 탐폰 제조사들은 탐폰을 사용하면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자전거 타기, 수영, 등산, 테니스 같은 운동과 더불어 목욕까지 자유롭게 할 수 있다며 이 기술이 패드형 생리대와는 완전히 다른 “제3세대 생리대” 혹은 “새로운 차원의 생리대”임을 광고했다.[7]

 

그림3 템포 광고 『여성동아』 1977년 10월호

<그림 3. 1977년 템포 광고[8]>

 

그러나 탐폰 제조사들은 사용자들을 주저하게 만드는 이 기술의 단점 즉, 처녀막 손상에 대한 우려와 사용 방법의 어려움도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동아제약은 1977년 여성 청소년 대상의 잡지 여학생』에 기사 형태를 빌린 광고를 실어 미혼 여성이 템포를 사용해도 처녀막이 손상되지 않으며, “설명서대로만 따르면” 통증이나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듬해 1978년 여학생』, 『여성동아』에 게재한 템포 광고에는 아예 다음과 같은 문구를 삽입하여 여성들의 불안을 완화시키고자 했다.[9]

“템포는 삽입기가 달려있어 처음 사용하시는 분도 부드럽게 질의 바른 위치에 삽입할 수 있으며 처녀막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으므로 미혼녀도 마음 놓고 사용할 수 있읍니다.[10]

1930년대 미국 여성들에게 그러했듯, 몇몇 단점에도 불구하고 탐폰이 패드형 생리대가 제공하지 못하는 종류의 장점을 제공한다는 점은 분명했다. 동아제약이 템포를 발매한 첫 해인 1977년, 여성 위생용품 시장에서 템포의 점유율은 2.9%에 그쳤지만, 태평양화학에서 아모레 탐폰을 출시한 1978년 탐폰의 점유율은 6.1%로 뛰어올랐다. 이 낯선 기술은 분명 한국 여성들에게 나름의 장점을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11년 후인 1989년, 생리대 시장에서 탐폰의 시장 점유율은 1.3%,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탐폰은 동아제약의 템포와 대웅제약의 탐팩스 두 종류뿐이었다. 당시 패드형 생리대 시장을 두고 유한킴벌리, 서통 P&G 등의 대기업을 필두로 크고 작은 패드형 생리대 제조사들이 경쟁하는 상황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패드형 생리대를 넘어설 “제3세대 생리대”를 표방했던 탐폰은 패드를 대체하기는커녕 극소수의 여성들이 사용하는 생리대가 되었다. 한때 나름의 장점을 인정받았던 탐폰은 왜 소수가 사용하는 생리대가 되었을까?[11]

한국 여성들의 탐폰 사용을 가로막은 요인 중 하나는 앞서 인용한 광고 문구가 보여주듯 탐폰을 사용하면 처녀막이 손상될 것이라는 염려였다. 탐폰을 사용하면 처녀막이 손상되냐는 질문은 탐폰 출시 초기인 1970년대 후반-1980년대에 『여학생』의 독자 고민 상담 코너에서 심심찮게 나오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이 질문들에는 단순한 처녀막 손상에 대한 염려 이상의 것이 담겨 있었다. 1985년 『여학생 6월호 독자 고민 상담란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게재되었다.

 

Q: 템포를 쓰면 처녀막이 파손되나요?

저는 삽입식 생리용품인 템포를 쓰고 있는 여중생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친구가 템포를 잘못 쓰면 처녀막이 파손된다고 하던데 만약에 처녀막이 다치기라도 한다면 어떻게 되나요. 혹 어른이 되어서 아기를 못 낳게 되나요? 정확한 말씀 부탁드립니다.[12]

 

질문은 단순히 처녀막 손상 뿐 아니라 처녀막 손상에 따른 임신 가능성의 문제를 묻고 있었다.

당시 여학생 대상 잡지의 고민 상담란에는 이렇듯 월경과 처녀막, 임신과 생리대에 대한 질문 외에도 늦어지는 초경, 일정하지 않은 월경 주기, 월경혈의 양이 너무 적어 장래 임신 가능성이 걱정된다는 고민 등이 빈번하게 게재되었다. 1970년대 후반 학교 교육을 받았던 여성들 사이에서는 규칙적인 월경이 누구나 있어야 할 정상적 현상이며, 이 현상이 임신이라는 생식 기능과 분명히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 나타났다. 이는 이전 세대의 여성들 사이에는 존재하지 않는 종류의 새로운 것이었다.

 

그림4 코텍스 후리덤 광고 『여학생』 1984년 7월호

<그림 4. 1984년 코텍스 후리덤 광고[13]>

 

월경하는 몸과 탐폰 사이의 긴장: ‘특별한’ 몸과 ‘평소 같은’ 몸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경을 경험한 여성들의 월경에 대한 인식은 의학 및 교육 전문가들이 생산한 지식에 기인한 것이었다. 1960년 후반부터 의학 및 교육 전문가 사이에서 월경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였다. 이들은 월경을 “장차 어머니가 될 준비로 마땅히 있어야 하는 생리현상”으로 정의하고 월경 시 심신의 상태와 이에 요구되는 행동들을 규정했다.[14]

 이들이 생산한 지식은 1970년대 초반에는여성동아』 같은 기혼 여성 대상의 잡지를 통해,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여학생』 같은 청소년 대상의 잡지, 학교에서 특강 형식으로 이루어진 성교육 시간과 청소년 및 어린이 대상의 성교육 도서 등을 통해 확산되었다.

이러한 교육 속에서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에 청소년기를 보낸 여성들은 월경을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정상적인 현상이자 임신과 관련된 현상으로, 월경 기간은 평소와는 다른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때로 여기기 시작했다. 여성들은 『여학생』 같은 청소년 대상 잡지의 독자 고민 상담란을 통해 월경하는 몸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어떤 생리대를, 어떻게 쓰면 좋을지를 구체적으로 묻기 시작했다. 탐폰에 관한 질문 역시 이러한 종류의 질문이었다. 탐폰 사용은 단순히 처녀막의 문제가 아닌 월경하는 몸 관리의 차원의 문제였다.

1940년대 미국과 달리 1980년대 한국의 의학 및 교육 전문가들이 탐폰 사용이 부적절하다고 명시적으로 말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월경하는 몸이 정상적이면서도 특별히 관리해야 할 대상이라는 이들의 규정과 탐폰의 속성은 상반되는 것이었다. 1980년 미국에서 탐폰을 사용한 여성 수십 명이 독성쇼크증후군(Toxic Shock Syndrome)으로 사망했다는 외신 소식은 탐폰이 잠재적으로 건강에 위험하다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15] 이와 더불어 전문가들은 월경 기간이 세균 감염에 취약한 때라는 의견을 전파하고 있었다. 가령 1983년 서울특별시 교육청 연구소가 발간한 교사용 지침서에는 “월경 때에는 性器[성기]의 組織[조직]이 연해져서 세균의 感染[감염] 우려가 많”다는 내용이 실려 있었다.[16]

전문가들은 월경 기간 동안 과격한 신체 활동 역시 권장하지 않았다. 월경 기간 동안 ‘적당한’ 운동이 권장되곤 했지만, 평소와는 구분되는 이 기간 동안 등산과 승마, 수영 같은 ‘과격한’ 운동은 삼가야 할 행동으로 규정되었다. 실제로 대다수의 여학생은 월경 중의 체육 활동을 부정적으로 보았다. 1986년 여학생 825명을 대상으로 여고생들의 체육 기피 현상과 월경과의 관계에 대해 연구한 한 논문에서 월경 시 체육 수업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한 학생은 전체의 9.94%에 불과했으며, 월경 기간 중 체육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견학(見學)”한 적이 있는 학생은 전체의 81.45%를 차지했다. 월경 기간 중에도 “적당한” 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논문의 저자조차도 “특히 세균이 감염되기 쉬운 목욕이나 수영은 삼가”는 것이 좋다고 쓰고 있었다. 이러한 논문의 존재 자체가 여학생들의 월경 중 체육 기피 현상이 만연한 것임을 보여주는 증거였다.[17]

 

그림5 템포광고 『여학생』 1984년 7월호

<그림 5. 1984년 템포 광고[18]>

 

1980년대 들어 여성 청소년들 사이에 월경하는 몸을 특별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인식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데 비해 탐폰 제조사들이 내세우는 장점은 출시 초기와 별다를 것이 없었다. 1988년 대웅제약이 탐팩스를 출시하기 전까지 1980년대 거의 유일한 탐폰 제조사로 남은 동아제약은 패드형 생리대들이 더 얇고, 더 흡수력이 좋아졌다며 개선을 강조하는 가운데 꾸준하게 탐폰과 신체 활동을 연관 지었다.[19] 그러나 탐폰 광고가 약속하는 ‘평소처럼 등산, 목욕, 수영까지’ 할 수 있는 몸은 여성들이 인식하고 있던 정상적이면서도 ‘특별한 관리가 필요한’ 월경하는 몸의 이미지와 일치하기는커녕 상충했다. 대부분의 여학생들은 잠재적으로 건강에 위험하며 사용하기도 어려운 탐폰을 이용하면서까지 취약한 월경 기간 동안 체육 활동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나가며

삽입형 생리대 탐폰은 1970년대 후반 한국에 도입되었다. 탐폰은 당시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여러 국가에서 패드형 생리대만큼이나 널리 사용되고 있던 생리대였다. 그러나 이 새로운 종류의 생리대는 한국에서는 그다지 보급되지 못했다. 탐폰을 사용하면 처녀막이 손상될 것이라는 염려, 패드형 생리대와는 완전히 다른 난해한 사용 방법도 문제였지만, 1970년대 후반 무렵부터 여성 청소년들 사이에 나타난 월경하는 몸을 특별하게 관리해야만 한다는 인식은 여성들로 하여금 탐폰을 여러모로 부적절한 생리대로 느끼게 했다. 이러한 인식은 월경하는 여성의 몸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을 생산한 의학 및 교육 전문가와 대중매체, 국가 주도의 성교육에 힘입어 형성된 것이었다. 즉, 한국의 저조한 탐폰 점유율은 탐폰이라는 기술을 만들고 사용하는 이들뿐 아니라 이 기술이 다루고 있는 월경하는 몸에 대해 규정하는 이들, 그리고 이러한 규정을 실어나르는 이들까지 포함하는 다양한 행위자들 간 상호 작용의 결과물이었다.

주목할 점은 한국에서 이러한 결과를 빚어낸 각각의 요소들이 탐폰이 발명된, 그리고 탐폰이 널리 보급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 미국의 상황과 완전히 다른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미국 여성들 역시 한국 여성들과 마찬가지로 탐폰을 질에 삽입하면 처녀막이 손상되지 않을지 염려했으며, 탐폰 제조사들은 이 제품이 패드형 생리대를 착용하고는 할 수 없는 수영, 목욕 같은 신체 활동까지 가능케 해 준다고 말하고 있었다. 결국 오늘날 한국의 저조한 탐폰 점유율은 어느 한 종류의 거대한 개념, 소위 순결 이데올로기나 한국 특유의 문화에서 기인한 것이라기보다는 탐폰이라는 기술을 만들고 판매한 이들, 이 기술이 다루고 있는 월경하는 여성의 몸에 대한 전문가들의 규정, 이러한 규정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면서 기술을 사용하는 여성들 개인을 비롯한 각각의 요소들 간 작은 차이들이 중첩된 결과라고 하는 것이 적절하다. 이와 더불어 탐폰이라는 낯선 기술을 둘러싸고 이 기술의 사용자와 제조자, 그리고 월경에 대해 규정하는 이들 간 상호 작용의 과정은 우리가 기술이라는 의식조차 없이 자연스레 사용하는 일상의 평범한 기술마저도 복잡한 맥락 안에서 작동하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읽을거리 & 볼거리

이영주 읽을거리1Bray, F. (1997), Technology and Gender,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중국 송·명대 시기를 중심으로 여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가옥, 직조(織造), 재생산 기술을 다루고 있는 이 책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기술이 사회적 질서를 내포하는 동시에 사회적 질서를 형성하는 일종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것이다. 사회가 규정한 여성의 역할, 여성, 그리고 기술이 어떤 식으로 맞물려 돌아가면서 중국 사회의 질서를 구현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이는 이 책을 통해 무심히 사용했던 일상의 기술들이 갖는 의미에 대해 새로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영주 읽을거리2수잔 스트레서, 김승진 번역 (2010),「낭비와 욕망」, 이후.

일회용 생리대나 종이컵, 휴지 같은 물건을 소비한다는 것은 이 물건들이 한번 사용되고 나면 용도를 잃고 버려진다는 점에서 ‘소비’인 동시에 쓰레기의 ‘생산’이다. 생리대는 물론이고 거의 모든 물건을만들어 쓰던 우리는 왜 이렇게 변했을까? 수잔 스트레서는 이러한 변화가 개개인의 욕망에 기인한것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 청결과 효율성 같은 전에 없던 종류의 가치가 중요해졌기 때문임을 지적한다. 책을 읽고 나면 우리를 소비로 인도하는 갖고 싶은 ‘욕망’의 근원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영주 읽을거리3김보람 감독 작, 다큐멘터리,「피의 연대기(For Vagina’s Sake)」, (KT&G상상마당, 2017).

본 글의 첫머리에서 인용한 바로 그 다큐멘터리이다. 연대기라는 제목은 ‘연대(年代)와 연대(連帶)’라는 두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지만 이 다큐멘터리의 무게는 연대(年代)보다는 연대(連帶)에 실려 있다. 전 세계 월경하는 여성들 사이의 보편적 경험에 보다 초점을 맞추고 있는 해당 다큐멘터리와 본 글이 주목하고 있는 차이를 겹쳐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이다.


 

[1] 영문 위키피디아 「Tampon」, https://en.wikipedia.org/wiki/Tampon

[2] 국가별 탐폰 점유율에 대해서는 유로모니터 2013 자료, 유한킴벌리(2014. 8. 28), 「보도자료: 이제야 활짝 열리는 국내 [탐폰] 시장」에서 재인용.

[3] 한국에서 ‘생리대’라는 단어는 일반적으로 패드형 생리대를 지칭하나, 본 글에서는 사전적 의미 즉 ‘월경혈을 흡수하는 도구’인 패드형 생리대와 탐폰 등을 통칭하는 의미로 ‘생리대’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음을 밝힌다.

[4] New York Mirror. 이미지 출처: The Duke Digital Repository, https://idn.duke.edu/ark:/87924/r4tt4gd0g (접속: 2018. 8. 6).

[5] 디지털(Digital)이라는 단어에는 손가락이나 발가락과 연관된(relating to the fingers or toes), 손가락을 쓴(done with a finger)등의 의미가 있다.

[6] 미국의 탐폰 대중화 과정에 대해서는 다음 두 책을 참고하였다. Lara Freidenfelds. (2009), The Modern Period: Menstruation in Twentieth-century America, Baltimore: JHU Press, pp. 170-192; Sharra Louise Vostral. (2008), Under Wraps, Lanham: Lexington Books, pp. 89-140. 국가별 탐폰 점유율에 대해서는 Heinrich and Bob Batchelor. (2004), Kotex, Kleenex, Huggies: Kimberly-Clark and the Consumer Revolution in American Business, Columbus: Ohio State University Press, p. 100; 동아제약, “先進外國의 女性生理用品의 市場占有率 比較”: 장석진 (1981), “우리나라 女性 生理用品 製造業의 마아케팅에 관한 硏究”, 고려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7쪽에서 재인용.

[7] “광고: 생리용품의 선택차원이 달라졌읍니다”, 『여성동아』, 1976. 6월호., “광고: 世界 女性들과 함께 쓰는 템포 탐폰”, 『여성동아』, “광고 : 생리대이야기1 가마 안에서 맞은 그날 ”, 『여성동아』, 1978. 1월호.

[8] 『여성동아』 1977년 10월호.

[9] “광고 : 여성생활정보 – 생리대 없이 생리기간을 보낸다!”, 『여학생』, 1977. 7월호.

[10] “광고 : 생리기간에도 수영을 즐기세요”, 『여학생』, 1978. 9월호; 『여성동아』, 1978. 10월호.

[11] 장석진. 같은 글, pp. 37.

[12]  “오손도손 상담실”, 『여학생』, 1985. 6월호, pp. 328.

[13] 『여학생』, 1984년 7월호.

[14] 이화여자대학교 인간발달연구소. (1971), 『(중·고교생을 위한) 성교육 : 계획과 실제』 (서울: 교육출판사, pp. 72.

[15] “삽입 生理帶 위험 「탬폰」中毒 쇼크40명 숨져”, 『동아일보』, 1980. 10. 11.

[16] 서울특별시 교육연구원, 『성교육 자료, 1983』, 97쪽.

[17] 成周煥. (1986), “女高生의 生理 및 體育授業 忌避現狀에 관한 硏究”, 『敎育論叢』 6, pp. 151-72.

[18] 『여학생』, 1984년 7월호.

[19] “광고: “생리일에도 수영을 즐기세요””, 『여학생』, 1981.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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