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포닥 적응기: 새로운 문화 속에서 연구하기

최재원 (취리히대학교 물리학연구소 박사 후 과정 연구원)

jchoi@physik.uzh.ch


 

주말에 일하지 않고도 좋은 연구를 하는 법을 배워 오겠습니다

드디어 일할 곳을 정했다. 약 5개월에 걸친 인생 첫 구직활동이 마무리 된 것이다.

그렇게 좋아하던 농구도 끊은 채, 박사후 과정 연구원(post-doctoral researcher, 이하 포닥) [1] 일자리를 얻기 위해 전 세계의 연구 그룹에 지원 메일을 보냈다. 첫 한 달 동안에는 긍정적인 답장을 하나도 받지 못했다. ‘이렇게 연구 커리어가 끝나는구나’ 하는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온라인 및 방문 인터뷰 끝에 다행히 몇몇 연구 그룹으로부터 좋은 제안을 받았고, 스위스의 취리히 대학교(Universitat Zurich)와 폴 쉘러 연구소(Paul Scherrer Institut)간의 협력 연구 프로젝트에 합류하기로 결정했다.

“학계에서 정규직 일자리를 얻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 새로운 곳에서는 누구보다도 절실하다는 각오로 일해야 해”. 지도교수님은 둥지를 떠나는 제자에게 맥주를 사 주시며 마지막 당부를 하셨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래. 나는 연구실 동료들에 비하면 성실하지 못했어’ 하는 죄책감이 들었지만, 입에서는 엉뚱한 대답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하지만 저는 절실하지 않아도 좋은 연구를 하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그림 1

<그림 1. 취리히대학교>

 

새로운 출발, 새 별명, 그리고 상호작용

취리히의 낯선 시차에 적응하기도 전에 새 동료들은 나에게 별명을 지어줬다. 바로 ‘Nearest Neighbor J-1’이라는 별명이다. 연구실 동료들이 ‘Jaewon’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발음해야 가장 정확한지 물어보자, 나는 알파벳 ‘J’와 숫자 ‘1’을 붙여서 J-1 이라고 읽으면 비슷하다고 알려줬다. 며칠 후 연구실 세미나에서 초청 연사가 발표를 하는데, 여기저기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결국 한 친구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재원, 발표자가 자꾸 네 이름을 부르는 게 너무 웃겨서 못 참겠어!”

참고로, ‘J1’은 고체물리학 분야에서 가장 가까운 입자 간의 상호작용(nearest-neighbor interaction)을 나타내는 기호로 종종 쓰인다. [2] 그래서 초청 연사가 관련된 연구 내용을 발표하는 중에 내 이름을 반복적으로 부르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세미나에서 ‘J1’이라는 기호가 나올 때 마다 동료들은 말없이 나를 쳐다보며 놀리곤 한다. 그렇게 나는 멀리 한국에서 온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는 재미있는 별명과 함께 새로운 연구실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새로운 별명의 의미처럼, 새 직장에서는 주변 다양한 연구자들과의 상호작용이 훨씬 중요해졌다. 박사과정 동안, 나는 주로 지도교수님 과의 이체 문제(two-body problem)를 해결 하는데 에너지를 쏟았다. 실험실에서 혼자 실험을 수행하고 분석했고, 교수님과 일대일로 토론하고 논문을 썼다. 하지만, 새 프로젝트는 다양한 선수 구성을 자랑한다. 우선 지도교수가 취리히 대학교와 폴 쉘러 연구소에 각각 한 명씩, 두 명이다. 이 중 한 명인 요한은 항상 낙관적이고 긍정적이며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시도를 즐기는 반면, 다른 한 명인 시몬은 잠재 위험 요소를 미리 파악하여 관리하려는 신중한 성격이다. 이 외에도, 새로운 실험 플랫폼의 제작을 도와주는 톡톡 튀는 성격을 가진 랩 엔지니어인 도미닉, 펄스 고자기장(high magnetic field) 실험의 세계적인 전문가이자 엄격하고 철저하기로 소문난 일본인 협력 연구자, 그리고 시료 제작과 이론 해석을 담당하는 학과의 다른 교수들이 주요 구성원이다. 나는 절대온도 1켈빈(Kelvin) 미만의 극저온 실험 환경의 설계 및 직접 실험을 수행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전문성을 가진 연구자들이 모여서 지금까지 도달할 수 없었던 극한 환경에서 일어나는 양자역학적인 물리 현상을 연구하는 실험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 바로 나의 메인 프로젝트이다. 협력 프로젝트의 어려움도 물론 있다. 각자의 분야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온 구성원들의 연구 성향과 우선순위는 서로 달랐다. 같은 목표를 공유하고 있기는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연구를 해 나갈지 혹은 어떤 세부적인 이정표가 더 중요한지에 대한 의견은 천차만별이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정기 회의에서 내 역할을 하고 의견을 내는 것이 힘들었다. 전공 분야인 극저온 실험에 대한 기술적인 질문들에 올바른 답을 주는 것은 물론, 누군가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면 성공 가능성을 평가하고 기존의 계획에 잘 버무려 내어야 했다. 하지만 구성원들이 전달해 주는 다른 분야의 전문 지식을 회의 중에 빨리 습득하여 소화해 내고, 서로의 요구사항을 만족하는 해결 방안을 신속하게 제시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게 되었다.

또한, 지도교수는 자주 외부 연구자들을 초청하곤 한다. 손님이 오면 포닥 및 박사과정 학생들과 20~30분 정도의 개인 토론 시간이 주어진다. 또, 매일 가지는 그룹 점심 티타임에서도 초청해서 함께 이야기를 할 기회를 준다. 나는 새로운 분야로 옮겨온 처지라 잘 모르는 내용에 대해 토론을 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고, 가끔 일상적인 수다를 삼십 분 넘게 주고받을 때는 데이터 분석이나 논문 작성에 쓸 시간을 허비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소소한 수다 속에서 새롭게 연구할 문제들을 발견하고 협력연구가 시작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생각을 고치게 되었다. 나도 우연한 기회에 도움을 받아 실험 결과를 분석하는데 중요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다. 특히, 교수부터 학부생까지 마치 친구와 숙제 문제에 대해 토론하듯이 자유롭게 의견을 주고받는 점이 인상 깊었다. 왜 한국에서는 이러한 광경을 보기 어려운 걸까? 아직 그럴듯한 결론을 찾지는 못했다. 여기는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아서 언어가 더 수평적일 수도 있고, 일상 생활에서의 문화가 더 수평적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행히 6개월이 지나면서, 활발해진 주변과의 상호작용에 부쩍 적응을 하게 되었다. 물론, 지금은 더 자주, 그리고 더 깊이 주변과 상호작용 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상상력이 없는 죽은 물리학자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상호작용하는 프로젝트 주간 회의는 종종 역동적으로 진행되곤 한다. 특히, 랩 엔지니어(이자 클럽 DJ이자 레게 뮤지션)인 도미닉은 자신감과 당돌함으로 나를 종종 당혹스럽게 만들 때가 많다. “아이디어 뱅크”인 그는 회의마다 실험 장비 설계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들을 쏟아낸다. 나는 아이디어의 구현 가능성을 평가해야 하는데, 정해진 실험 날짜까지 준비를 마치기 위해서는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면 안되기에 보수적인 태도로 접근할 때가 많다. 도미닉이 아이디어를 내면, 낙관론과 신중론으로 나뉘어 격렬한 토의가 시작된다. 결국 팀원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시뮬레이션이나 이론적 계산을 준비해서 그런 아이디어가 왜 실현 불가능한지 혹은 어느 수준까지 구현이 가능한지를 보여준 적이 몇 번 있었다. 당시 극저온 실험에 대한 경험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낙관이나 자신감으로 뭉쳐있는 그에게 가끔 짜증이 날 때도 있었다.

하루는 주간 회의가 끝나고 동료가 좋은 저널에 논문을 게재한 것을 축하하는 파티를 열었다. 도미닉은 이날도 맥주를 마시며 머신 러닝이나 블록 체인과 같은 최신 이슈들에 대한 당혹스러울 정도로 낙관적인 전망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윽고 주제가 양자 컴퓨터로 넘어갔다. 이 분야는 포닥을 구하면서 관심있게 지켜보던 주제 중 하나였다. 그래서 나는 왜 양자 컴퓨터를 상용화 하는 것이 생각처럼 간단치 않은지, 어떤 제약 조건들이 있는지, 분야를 선도하는 구글이나 IBM의 연구 그룹들이 어느 수준에 도달해 있는지를 논문을 인용해 가며 설명했다. 그걸 쭉 듣고 있던 도미닉은 심드렁하게 답했다.

“뭐, 논문 열심히 읽었네. 그런데 그런 문제는 IBM도 구글도 아닌 전혀 예상치 못한 사람이 튀어나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해결할 거야. 인류는 그렇게 가까운 미래에 양자 컴퓨터를 쓰게 될 거야. 인류는 항상 그렇게 발전해 왔어.”

갑작스러운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등장에 피곤함이 몰려왔다. 그런 근거 없는 주장을 하면 어떻게 토론을 하느냐, 좀 더 공부를 하고 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핀잔을 주자, 그는 다시 한 번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논문? 난 논문 별로 안 믿어. 너는 항상 나한테 논문을 인용하며 설명을 하더라. 근데 같은 현상을 연구하는데도 결과가 다른 논문들도 많지 않아? 나는 네가 논문 속의 지식에 너무 갇혀있는 것 같아 토론하면서 답답할 때가 많아.”

조용히 옆에서 우리 둘 사이의 논쟁을 지켜보던 지도교수 요한이 처음 입을 열었다.

“맞아. 논문이 꼭 중요한 건 아니지. 재원, 지난 몇 개월간 함께 일하면서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어. 우리는 너의 지식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고 있고, 프로젝트도 잘 굴러가고 있어. 그런데 너는 그 지식을 어떤 아이디어가 실현 불가능한지를 증명하는데 쓰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 하지만 시뮬레이션이나 계산을 해서 확실한 결론을 얻는 경우는 드물지. 결국 이론 계산에 시간을 쓰기보다 성공할 거라 믿고 일단 시도하는게 중요해. 물론 네가 포닥이라 시간이 없고 가능성이 높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건 이해해. 하지만 나는 네가 얼마나 시간을 쓰고 비용을 써도 지지해줄 수 있어. 더 많은 아이디어를 상상하고 시도를 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네 아이디어가 실패하는게 네가 똑똑하지 않다는 걸 증명하는게 아니야. 네가 상상력과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다면, 함께 연구하는 것이 더 재미있을 것 같아.”

“연구에서도 마찬가지야. 난 네 지도교수이니, 네가 훌륭한 물리학자가 되었으면 좋겠어.그런데 상상력 없이는 결국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가설을 만들 수 없어. 상상력이 없다면 죽은 물리학자와 다름 없어. 너는 양자 컴퓨터의 성공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면서 도대체 왜 그걸 연구하고 싶어한 거야?”

파티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는 트램 안에서, 요한이 해 주었던 조언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내가 이 곳에서 포닥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연구 아이디어를 찾는 법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인터뷰를 하러 취리히를 방문한 날, 요한은 카페에 같이 앉아서 두 시간 동안 공책에 연필로 그림과 그래프를 그려가며 다양한 연구 주제들을 이야기 해 줬다. 내 프로젝트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연구 주제들만 해도 9~10가지나 되었다. 그렇게 풍부한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배워 보고 싶었다.

나는 예전에 아이씨스츠(ICISTS)라는 동아리의 초창기 멤버로 활동하면서, 동료들을 곤란하게 할 정도로 많은 엉뚱한 아이디어를 내곤 했었다. 머릿속엔 온통 이 백지장에 어떤 새로운 그림을 그릴지를 상상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반면, 물리학을 연구하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많이 내지 못했다. 그래서 참신한 연구 아이디어가 부족하다는 점을 스스로의 단점으로 평가하곤 했다. 어쩌면 도미닉과 요한의 말대로 논문을 읽고 지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더 익숙해져서 상상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더 훌륭한 물리학자가 되기 위해서, 최근에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 더욱 긍정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고 있다. 회의에서 새로운 실험 아이디어가 나오면, ‘NO’라는 마음의 소리와 새로운 시도에 대한 귀찮음을 억누르고 최대한 실현 가능한 방향으로 아이디어를 가공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를 내기 위한 작은 노력을 시작했다. 논문을 읽거나, 세미나를 듣거나, 데이터를 분석하면서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면 그때마다 아이디어 노트에 적어놓고 여유가 날 때 구체화를 시켜 보곤 한다. 그리고 그렇게 조금씩 내 가설과 아이디어 꾸러미를 넓혀가고 싶다. 혹시 모르지.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기가 막힌 실험 아이디어들을 발견하게 될 지도.

 

훌륭한 맛집의 ‘오너 셰프’가 되려면?

“재원씨는 언제까지 포닥 생활을 하실 계획이예요? 교수가 되는 것이 목표죠?”

박사 학위를 받은 뒤부터 자주 듣는 질문이다. 아직 연구 실적이 독립적인 연구자가 되기에 턱없이 모자라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진 않았지만, 어렴풋이나마 세워놓은 기준이 있다. 적어도 다음 몇 년 간 도전하고자 하는 물리적 문제들과, 그것을 풀 수 있는 가설과 아이디어를 갖기 전에는 독립적인 연구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흔히 지도교수와 제자의 관계를 도제식 교육 방식에 비유한다. 도자기를 굽는 스승에게 기술을 전수받는 기능공처럼, 영화 <스타워즈>의 마스터 제다이와 파다완처럼, 혹은 스승 요리사 밑에서 몇 년간 실력을 갈고 닦는 견습 요리사처럼 말이다. 하지만 훌륭한 스승에게 배운 뒤 독립했다고 하여 항상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예전 식당에서 음식을 만들던 레시피를 그대로 가져온다면, 성공한 아류가 될지언정 요리의 대가는 될 수 없을 것이다. 20대를 오롯이 보낸 대전 카이스트를 떠나면서, 좋은 연구를 하는 법을 배워 오겠노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은 연구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연구 아이디어를 생각해낼 수 있을까? 절박한 심정으로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보편적으로 좋은 방법일까?

위와 같은 의문을 가진 채 새로운 환경에서 연구를 시작한 지 이제 9개월이 되었다. 이 기간은 새로운 분야를 배우고 실험을 준비하는 기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연구 문화에 적응해 나가는 기간이기도 했다. 처음 취리히에 왔을 때, 나는 연구 그룹에서 가장 늦은 시간까지 일을 했고 주말에도 자주 출근을 하곤 했다. 오전 10시를 넘겨 출근해서 저녁을 먹기 전에 퇴근하는 동료들을 보며 한국의 대학원생들에 비해 성실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오고 가는 사람이 없는 주말의 캠퍼스는 주말에도 불 켜진 연구실이 많은 카이스트와는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하지만, 다양한 동료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시험하는 데 시간을 쓰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동료들이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을 목격하면서, 절실함과 노력에 관한 신화에 대한 의심을 가지게 되었다.

디제잉과 음반 작업을 위해 일주일에 나흘만 일하고 오후 4시가 되기 전에 퇴근하는 도미닉은, 일을 시작한지 반년만에 연구 그룹에서 필수 불가결한 존재가 되었다. 연구 그룹의 다양한 실험 장비들을 획기적인 방향으로 개선하고 있다. 몇몇 성과에 대한 특허를 신청했고, 스핀-오프 방식의 창업을 계획하고 있다. 또, 연구 그룹에서 파티광으로 통하는 데니스는 틈틈히 머신 러닝을 공부하는데 재미를 붙이더니, 실험 장비의 정렬 문제를 자동화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시간 손실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네이쳐 자매지에 두 편의 논문을 게재할 정도로 연구 성과가 좋지만, 4년 만에 석사와 박사를 모두 마치고 연구가 아닌 새로운 일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한다.

‘절실함’이나 ‘절박함’은 분명 강력한 동기를 부여해 준다. 하지만 절박함을 느끼게 하는 환경에 의한 수동적인 동기 부여가 사라졌을 때에도 여전히 좋은 연구를 할 수 있을까? 물론 그런 절실함에서 오는 동기 부여를 평생 동안 잃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욱 많을 것이다. 반면, 좋은 동료들과 함께 즐겁게 연구하며 성공하는 경험을 쌓아 나가는 과정은 더욱 장기적이고 능동적인 동기부여를 만들어 줄 수 있다. 물론, 쉽게 게을러지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어떤 연구 문화와 태도가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를 찾는 데 도움이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어쩌면, 이 질문은 결국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취리히에서 포닥 연구를 시작하기 전에는 부족한 물리학 지식이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걱정이 앞섰다. 언어 능력에 대한 걱정도 많았다. 하지만, 정작 지난 8개월간 겪었던 가장 큰 어려움은 연구라는 활동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였다. 새로운 연구 문화에서 더 중요시되는 덕목을 배워야 했다. 다행히도 이러한 큰 변화의 과정을 관심있게 지켜봐 주고, 때로는 솔직한 조언을 해 주며,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주는 동료들과 함께 일하게 된 것은 크나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읽을거리

읽을거리_학문의 즐거움

히로나카 헤이스케, 방승양 번역 (2001), 『학문의 즐거움』, 김영사.

필즈상을 수상한 히로

나카 헤이스케 교수의 수필. 스스로를 천재가 아닌 노력을 해야 하는 평범한 사람이라고 낮추는 겸손한 저자가 어떻게 진지하고 즐겁게 학문을 탐구해 나가는지를 마치 잔잔한 일본 영화를 보듯이 소박하고 담백하게 기록하고 있다. 연구 생활에 어려움을 느낄 때마다 책장에서 꺼내어 다시 읽어보게 되는, 과학 공부를 시작하려는 후배들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

 

읽을거리_부분과 전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유영미 번역 (2016), 『부분과 전체』, 서커스출판상회. 김영사.

현대 물리학이 태동하던 혁명과 같은 시기의 물리학자들이 어떻게 과학적 문제를 발견하여 가설을 세우고, 토론하고, 합의에 이르는지에 대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책. 이미 정립된 지식을 교과서를 통해 명료하고 일관성있게 배우는 것과 달리, 학문의 최전선에서 새로운 과학적 지식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의 고민과 사유의 흔적을 느껴볼 수 있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철학, 언어, 종교, 윤리,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들은 마치 실재하는 ‘유리알 유희’를 지켜보는 듯한 착각을 준다.


 

[1] 박사후 과정 연구원 혹은 포닥(postdoctoral researcher, or postdoc)

박사학위 과정을 마친 뒤, 독립적인 연구자

가 되기 위해 필요한 연구 역량과 경험을 쌓기 위해 추가적인 연수를 받는 연구원을 의미한다. 대부분 계약직 연구원의 신분으로 대학교나 연구소의 연구 그룹에서 활동을 계속하게 된다. 점점 박사후 과정을 거치는 연구자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영어로는 ‘포스닥(postdoc)’ 이라고 줄여 부르기도 한다. 이후 본문에서는 편의상 ‘포닥’이라는 줄임말을 사용하도록 하겠다.

[2] 최근접 입자간 상호작용(nearest-neighbor interaction)

어떤 물질의 물리적 특성을 정확하게 계산하기 위해서는 시스템을 구성하는 입자와 그 입자간의 상호작용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작업은 기술적, 시간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상호작용의 세기는 두 입자간 거리가 가까울수록 강하고 멀수록 약해지는 경우가 많으므로, 개별 입자에 강한 영향을 미치는 가장 가까운 몇몇 입자들과의 상호작용만을 고려한 근사적인 상황을 가정하여 물성을 계산하는 경우가 많다. 몇몇 이론 모델에서 J1은 가장 가까운 입자간의 상호작용 강도를 나타나는 기호로 쓰인다. 비슷하게, J2는 두 번째로 가까운 입자간의 상호작용을 나타낸다.

[3] 이체 문제(two-body problem)

고전역학은 시스템 안에서 상호작용하는 물체들의 위치, 속도, 가속도 등이 시간에 따라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계산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지구의 궤도와 같이 두 물체가 상호작용 하는 경우인 이체(two-body) 문제는 일반적인 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3개 이상의 물체가 상호작용하는 다체(many-body) 문제는 특수한 몇몇 경우 혹은 근사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에만 해를 찾을 수 있는 난제이다. 본문에서는 이체 문제를 비교적 간단한 두 사람간의 의사소통에 비유한 반면, 다체 문제를 더욱 복잡한 높은 수준의 의사소통이 필요한 다양한 배경의 팀원들간의 상호작용에 비유하였다.

[4] 고자기장(high-magnetic field)

물질의 자기적 성질은 다양한 양자역학적 현상을 발현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실험 물리학자들은 다양한 종류의 자석을 이용해 자기장을 가하여 물질의 자기적 성질을 측정한다.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우리 주위의 지구 자기장보다 약 80만 배 정도 강한 35~50테슬라(Tesla)의 자기장과 1켈빈(Kelvin)보다 낮은 온도의 극한 환경에서 새로운 양자역학적인 물리 현상을 발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5] 절대온도 켈빈(Kelvin)

과학자들은 일상 생활에서 쓰이는 섭씨, 화씨와 같은 단위 뿐만 아니라 ‘켈빈’이라는 단위를 사용한다. 고전 물리학에서 절대온도 켈빈은 열역학적 에너지가 0이 되어 기체 분자의 움직임이 완전히 정지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273.15켈빈은 섭씨 0도에 해당하며, 1켈빈의 온도 차이는 섭씨 1도의 차이와 같다. 절대 0도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열역학 제 3법칙), 밀리켈빈 혹은 마이크로켈빈 범위의 더 낮은 온도에서 새로운 물리적 현상을 발견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6] 아이씨스츠(ICISTS)

카이스트의 학생들로 구성된 동아리로, 매년 ICISTS-KAIST라는 국제 학술회의를 개최하고 있다. 해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약 200명 규모의 참가자와 초청 연사들이 일주일간 대전 캠퍼스에 모여 과학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미래에 제시할 비전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영감을 얻는다. 주제 선정, 연사 섭외, 컨텐츠 디자인, 마케팅, 재정 후원처 찾기 등의 주요 업무를 학생들 스스로 계획을 세워 문제를 해결해 왔다. 2005년부터 시작하여 14번째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WordPress.com 제공.

위로 ↑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