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내과 의사, 인류학의 길을 찾다.

이기병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석사과정 | 내과 전문의)

hallas79@naver.com


 

도상(途上)의 실존(實存)

내과 수련을 막 마친 2010년도의 나는, 전문의로서의 자격을 얻기 위해 분투했던 지난 수년간의 혹독했던 기억과 앞으로 내딛을 새 발걸음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과 약간의 희열, 그리고 막연한 희망에 들떠 있었던 것 같다. 의대에 막 입학했을 때와 6년의 공부 끝에 ‘의사’ 직함을 가운에 달게 되었을 때, 메이저 파트인[1] 내과에 지원했을 때도, 중환자 의학(critical care medicine)을 세부전공으로 선택하고자 했을 때도 모종의 떨림과 선택의 긴장은 항상 존재했었지만 주로 주어진 일을 버텨내기에 급급했을 뿐 어떠한 실천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 일련의 공식적인 과정을 마치고 세상에 나오는 당시의 내가 느꼈던 감정은 다소 복잡하고 생소한 것이었음이 틀림없다.

모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남자 의사들은 군대라는 통과 의례를 무사히 마쳐야 한다. 2010년도 병원 밖으로 막 나온 내가 처음 맞이한 세계는 군대였다. 의사들은 신체등급에 따라 군에 차출되는 군의관과 국내 보건의료의 갖가지 공백을 메우기 위한 공중보건의사로 나뉘어 군역을 마치게 된다. 물론 3년이라는 기간은 똑같지만 4주간의 훈련 이후 사회로 나와 생활하게 되는 후자의 입장은 전자에게 있어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한다. 나의 경우는 간발의 차(?)로 후자에 속하게 된 케이스였다. 이윽고 4주간의 군사훈련을 마치고 향후 3년간 근무할 위치를 지원하게 된 나는 의외의 선택지에 망설였다. 의료집중도가 비교적 높은 서울에는 공중보건의사가 근무할 자리라곤 없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던 나는, 서울 구로구의 한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무료 병원에서 내과 전문의 인력으로 공중보건의사를 원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실상 의사들에게 군대 3년의 시기는(특히 공중보건의로서의 3년의 시기는) 경우에 따라 개별 차는 있겠지만 처음이지 마지막인 ‘휴가’로 호명되곤 한다. 시간의 압박을 좀 덜 받아도 되는 시기. 효율적으로 보내지 않아도 죄책감이 덜한 시기랄까. 지금 돌아보자면, 그 때 나는 의사로서의 운명이 바뀌는 선택을 하고 만 셈이 되었다. 이제 그 이유에 대해서 말하려 한다. 실상 이 글은 과학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생의학(biomedicine) [2] 체계에서 훈련받은 젊은 내과 의사가 세계 각국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를 진료하며 경험한, 일종의 ‘문화적 회심’에 대한 짧은 소회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 간행본의 제목처럼 (과학으로서의) 의학 뒤켠에서 등장할 만한 서사이며, 현대의학이라는 거대한 헤게모니가 미처 포섭하지 못한 세상의 이면을 엿보는 한가지 방식이다.

 

의문(疑問)과 모순(矛盾)

“우리가 사는 세상은 서로를 갈라놓는다.

침묵을 강요당하는 대중이 질문하지 못하게 하며,

심판받는 자들이 심판하지 못하게 하며, 고립된

개인들이 함께하지 못하게 하며, 영혼이 그 조각들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게 한다.”

–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분열」 –

외국인 노동자를 진료하는 3년 동안 나는 아프리카 대륙의 이디오피아에서부터 동남아시아, 그리고 중국 조선족에 이르기 까지 10개국에 이르는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환자들을 진료하며 그간 내국인 환자들에게서 경험하지 못했던 일련의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부족한 소통을 위해 새벽에 외국어 학원에 등록하는 한편 1차 진료기관인 의원급이지만 국내의 인구 집단과는 다른 유병율과 환경에서 태동한 다양한 경우의 질병들을 감별해야 하고, 또 건강보험이 없는 환자들이 많아 (상급병원 전원이 사실상 어려운 이유로) 감당할 수준이 넘는 중증도와 난이도를 커버 해야 하는 부담 역시 상당했다. 그러나 진정한 공부는 현장에서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실제로는 항상 고통스런 공부의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예컨대, 모국어 외에는 말이 통하지 않는 코트디부아르에서[3] 온 30대 난민 청년이 운동시 호흡 곤란(dyspnea on exertion)으로 내원했을 때 심초음파를 통해 심장판막질환을 진단, 난민 단체와 연대하여 기금을 마련하고 수술을 도왔던 경험은 가슴 뿌듯했으며, 갑상선 초음파와 생화학적 검사를 통해 이유 없이 체중이 감소하던 50대 여성 동남아 환자의 갑상선 기능이상과 악성종양을 진단하여 수술로 연결짓고 투약을 유지시키며 증세를 호전시켰던 경험 등은 지금도 벅차고 가치 있는 기억으로 회상한다. 그러나 그 반대편의 경험 역시 실재한다. 내가 만나본 외국인 환자들은 내국인 환자들과는 달랐다. 고혈압 환자에게 약을 먹으라고 설명하고 처방한다고 해서 그가 약을 먹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중한 병을 발견해서 그에게 상급 병원에 갈 것을 권유하고 소견서를 써 준다고 해서 그가 그렇게 실천할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편, “어디가 아파서 오셨어요?”로 시작하는 일반적인 계통 문진(review of system)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환자의 상태도 이런 혼선을 가중시켰다. 예컨대 조선족의 경우가 그러했다. 이들 중 다수는 어디가 아프냐는 질문에 한 두 가지의 주요 증상(chief complaint)을 말하는 대신 8-9가지의 증상을 쏟아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보통 이런 경우 의사들은 황망하다 못해 화가 난다. 현대의 생의학은 인류에게 보편적인 질병 체계(disease entity)를 구획하고 이에 대해 진단하고 치료하는 체계를 고안해 냈다. 이를 위해서는 증상을 만들어내는 원인을 특정 장기와 질병으로 좁혀 들어가는 논리 전개 방식이 필요하다. 그런데 조선족 환자들 중 다수는 “머리 아프다”부터 시작해서 다리와 어깨가 아프고 가슴이 뻐근하고 숨쉬기가 바쁘다(힘들다), 소화가 안된다 등을 남발하는 탓에 뇌, 심장, 폐, 근골격계, 소화기계 등 온갖 장기의 구획들이 소환된다. 다시 말하면 특정 질병으로 좁혀 들어가 마침내 진단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 전혀 동조되지 않는 전횡인 것이다. 생의학의 훈련만을 받아온 나는 이런 상황에 쉽게 적응할 수 없었다. 이들은 왜 (한결같이) 이러는 것일까. 나는 의문스러웠다.

하기 내용은 인류학 대학원에 진학하며 작성한 나의 연구 계획서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본 연구자는 의과대학 출신으로 사회과학적인 연구 및 접근을 배울 기회가 많지 않았으므로 지인을 통해 연구 논문을 추천 받거나 직접 서적을 골라 독학할 수 밖에 없는 한계에 자주 봉착했다. 다행스럽게도 본 연구에 앞서 조선족 이주노동자들 진료 현장의 문화적 갈등 양상을 고찰한 연구들을 살펴볼 기회가 있었다.

“조선족 환자들을 진료할 때, 진료를 받아본 경험이 많은 내국인 환자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생의학적으로 개념화 된 병력 청취를 수행하기에는 쉽지 않다. 조선족 환자들은 주소(Chief complain)에 대한 개념 없이 흉통, 상복부 통증, 요통 등의 여러 기관을 의심할 수 있는 증상에 대해 두루뭉실하게 표현하는 경향이 있었다. 조선족들은 생의학적 진단 체계에서 잘 포착되지 않는 신체화(somatization: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낙인이 강력한 사회에서, 정신질환을 가진 환자의 심리적 고통이 부정되고, 신체적인 증상으로 대치되어 발현하는 것을 의미)된 방식으로 증상을 호소하였다(박영수 2012).”[4] 이호영 등은 연변조선족 사회정신의학 연구(1994)[5] 에서 연변의 한족이나 농촌의 내국인에 비해 연변조선족의 신체화 경향이 높게 나왔던 연구를 발표한 바 있다. 신체화된 증상 호소의 원인에 대해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기(1966-1976) 인민공사의 노동과 대중동원에 참여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정당한 자격을 부여받는 유일한 탈출구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낙인이 부여되어 있는 심리적인 우울증의 증상이 아닌 신체화 되어 나타나는 신경쇠약(neurasthenia) 의 증상을 호소하는 길 밖에는 없었다(Kleinman 1986).”[6] 는 설명을 확인할 때 진료 현장에서 환자의 모호한 증상이 검사 결과와 일치하지 않아 진단이 어려웠던 상황이 하나의 가능성으로 이해가 되었다.

또한 치료자, 즉 내국인 의사 측의 입장에 대한 통찰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역시 재고해볼 가치가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근대 생의학의 패러다임 하 의료환경에서, 사회적 실재로서의 환자는 사라지고 대상화된 신체로서 병든 기관을 교정하는 데만 초점을 맞추어 치료하게 되기에,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하기 위해 더 이상 환자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는 없어졌다(Foucault 2006).”[7] “환자의 병력 청취를 넘어, 환자의 생각과 경험을 담은 질환 서사(illness narrative)에 귀 기울이는 것 자체가 진료실의 맥락에서 잊혀지고 있다(Kleinman 1989).”[8]는 지적은 이미 현대의 의료적 의사소통 구조가 왜곡되어 있음을 보여주며 본 연구에 귀중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실상 현행 대한민국의 보험 수가 체계 및 의료 관행 안에서 한 환자 당 10분 이상 충분한 시간을 쏟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환자들도 빠른 진료와 처방을 원하는 경우가 많다. 나의 진료 경험상 북한 이탈주민이나 조선족 이주노동자들의 습성도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환자의 사회 문화적 배경 확인 및 ‘질환 서사’ 청취는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하지만 한번의 완벽하고 충분한 진료형태가 아니라 지속적이고 꾸준한 형태로 완성해 나가는 쪽이 설득력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의사로서의 나는 이들의 증상 표현에 중국의 문화혁명과 연관된 역사적, 사회적, 문화적 배경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게다가 나중에 추가적으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들이 여러 군데가 아프다고 표현하는 저변에는 문화적으로 형성된 ‘질환 서사’의 아비투스(habitus)[9]를 가속화시키는 이주노동의 각종 트라우마와 고용 불안, 같은 민족임을 기대했으나 냉담하게 돌아선 한국사회에서 느끼는 외국인 노동자로서의 차별과 낙인 등이 배어 있었던 것이고 그것이 신체화라고 하는, 마음의 증상을 몸으로 표현하는 현상으로 표상된 것이다. 처음에는 내 의문에 해답이 될만한 이러한 연구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반가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무게가 묵직하게 내 의사로서의 삶에 일종의 ‘의미’를 환기하기 시작했다. 환자들의 질환 서사를 이해하려면 이러한 문화적 사회적 배경 이해가 필요했음을 알게 된 것이다. 결국 나는 이들에게 묻고 싶은 것을 묻고 있었던 것이지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 셈이다. 아울러 이를 둘러싼 또 한가지 다른 의문은 ‘마음과 몸은 분리되어야 하는 것일까?’이다. 그들이 아프다고 외치는 몸의 반응들이 신체화라고 정리해야 하는 생의학의 진단 체계는 마음-몸 이분법이라는 상정된 의제에 의해 정당성을 부여 받는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마음이고 어디까지가 몸인 것일까. 그들은 마음만 아프고 몸은 안 아픈 것인가? 아니면 장기에 구획되지 않지만 진짜로 아픈 것인가? 생의학에서도 ‘신체화’의 논의에서는 그들의 통증이 실재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얼마나 어떻게 아픈 것일까?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했다. 평가될 수 없는 통증이 실재한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인가? 통증과 고통은 주관적인 것인데 그렇다면 개개인의 주관적 고통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객관적인 의학 및 과학이란 무엇인가? 전술한 조선족 환자들의 경우처럼 개인의 고통에 있어 다소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영역이 존재한다면 그것을 해석할 때에 개별 사회와 각기 다른 문화적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인류 보편적이고 객관화된 의학이란 과연 실천 가능한 ‘과학적’ 학문인가? 만약 의학이 실천적이지도 과학적이지도 않은 일면을 가진 과학적 실천이라는 모순을 가졌다면 그 공백은 어떻게 메워져야 하는가? 의사로서 나의 균열된 인식은 어떻게 생의학의 진단 및 치료라는 인식론적 틀과 화해할 수 있는 것일까?

 

의학 뒤켠의 출발선(出發線)

고민을 거듭하며 진료와 의학 공부 이외에도 사회과학 서적을 뒤적이던 나는 마침내 내과 의사이자 인류학자인 폴 파머가 남긴 언명에 매료되었다. 그의 말의 초점은 이러하다.

“인간 군상이 모두 합리적인 기획으로 분류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 분석과 측정으로 파악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인간이 ‘의미’를 추구하고 움직이기 때문이다. 의미가 주는 심급이 여기 있다. […] 인류학이란 결국 인간이 세상 속에서 추구하고 갖는 ‘의미’를 탐구한다는 점에서 다른 학문들과 구별된다.”[10]

앞서 말한 ‘신체화’ 논의처럼 측량에 실패한 고통이 실재한다고 할 때 나는 그것에 부여된 의미를 탐사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게 되었다. 고통과 통증은 개인적인 것이라고 상상하지만 실제로는 그가 속한 문화와 사회와 역사 속에서 위치 지어진 다양한 의미의 심급들 위에서 상연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오래된 논쟁인 자연과 문화 사이에서 고통에 대한 의학적 사유가 가지는 스펙트럼은 실상 방대하다. 예컨대, 훅실드는 감정노동을 이야기 하면서 사회 내 노동 문화와 심리적 고통을 연결지었다.[11] 버틀러는 젠더와 연관된 고통의 문제를 만들어내는 생산적 권력이 사회적으로 수행되는 것이라고 말했으며[12] 파머는 구조적 고통과 가난의 순환 문제를 논하면서 가난과 질병을 조장하는 세력을 암시하고 대적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13]

지금까지의 이야기처럼 의사로서 ‘진료실 내의 의료’의 한계에 회의를 느낀 나는 여러 학문의 길을 검토한 끝에 인류학의 길에 입문하기로 마음먹었다. 나에게 참된 의학이 갖는 의미를 묻는다면 인간을 향한 ‘열린 과학’ 이다. (엄밀한 용어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님을 양해바란다.) 내가 알기로 어떤 학문도 그 자체로 완벽하지 않다. 융합이니 통섭이니 하는 말이 ‘대안’에서 ‘대세’가 되고 있는 것엔 분명 일정 부분 우려의 소지가 있다 하더라도, 전문성이 세분화되고 세분화가 더욱 전문화되는 작금의 시대에 지식인들과 연구자들은 서로 다른 학문의 지평에 서 있을지언정 지속적으로 서로 대화하고 토론해야 한다. 이런 견지에서 실상 지금 내가 관심 있는 일은 아직은 그리 가망이 없어 보이는 생의학과 사회과학 사이의 접점에서 대화와 토론을 중계하고 유통하는 일, 또 그렇게 생산된 논의가 다시 양자에게 흡수되고 재생산되어 상아탑에서도 진료현장에서도 실행 가능한 일정한 결실로 나타나는 일이다. (나는 이것을 일종의 사회의학적 실천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것은 명시적으로 현대 생의학의 주된 관심분야가 아니며 스스로 과학이라 자부하는 의학의 ‘뒤켠’ 에서 일어나는 일이자 일어나야 하는 일이다.

물론 나는 현직에서 일하고 있는 내과 의사다. 병원에서 대학원 공부를 위해 야간당직을 해야만 하는 운명이다. 앞으로도 의사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오히려, 비록 기존 생의학의 틀에서는 불온한 시도일지라도 의사의 길을 계속 걸어가면서 인류학 연구를 통해 생의학적 사유와 지식, 실천 체계를 검토하며 더 나은 인간 이해와 치유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현재 내게 주어진 일이라 믿는다. 바라기는 그리하여 전술했던 바 ‘사회의학’적 의제를 성숙시키고 일부 선취하기에 온당한, 새로운 출발선의 점 하나가 되기를 희망하는 바이다.


읽을거리

읽을거리1_사회적 고통

 

아서 클라인만, 안종설 번역 (2002),「사회적 고통」, 그린비.

절판도서로 헌책방이나 도서관에서 구하거나 영어판으로 읽는 방법이 있다. 다양한 고통의 층위에 대해 논하는 방식이 지성인들의 눈과 귀를 새롭게 해줄 것으로 믿는다. 과학으로서의 의학적 사유와 대화하는 문화와 사회의 고통 체현 방식을 엿보기 좋은 입문서로 일독을 권한다.

 

 

읽을거리2_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아툴 가완디, 김미화 번역 (2003),「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동녘사이언스.

외과의사인 필자의 눈으로 보는 현대 생의학의 논점들을 날카롭게 해부한다. 우리가 믿고 있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의학의 명제들은 실은 어느 정도는 ‘구성된’ 것이며 이는 실천과정에서도 많은 난제들을 채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방기한다. 고민이 필요한 성역을 성토하는 솔직한 문체가 돋보인다.

 


 

[1] 여기서 major란 전공이라는 뜻이 아니라 minor가 아니라는 의미이며, 임상의학에서 흔히 major란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정신과의 5개 분과를 일컫는다.

[2] 거칠게 말해 ‘생의학’ 은 현대의학이라는 이름으로 흔히 불리는 일련의 지식 및 실천 체계의 통칭이다. 이 글에서는 일반적인 의미로는 현대의학 이란 용어를, 다른 학문과의 경합이 상정되는 상황에서는 생의학 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이다.

[3] 이 나라는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역사가 있어 일부 사람들은 불어를 구사한다. 그러나 이 청년은 불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4] 박영수 (2012), “조선족 이주노동자의 질병경험을 둘러싼 문화적 갈등 양상”,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5] 이호영, 신승철, 이동근 (1994),「연변조선족 사회정신의학 연구」, 토담.

[6] 박영수 (2012), “조선족 이주노동자의 질병경험을 둘러싼 문화적 갈등 양상”,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재인용.

[7] 미셀 푸코, 홍성민 번역 (2006),「임상의학의 탄생: 의학적 시선의 고고학」, 이매진.

[8] 박영수 (2012), “조선족 이주노동자의 질병경험을 둘러싼 문화적 갈등 양상”, 서울대학교 석사학위논문 재인용.

[9] Bourdieu, P. (1990), The Logic of Practice, Stanford University Press, pp.53 / 김동일 (2016),「피에르 브루디외」, 커뮤니케이션북스. 쉽게 말해 습관(habit)에 가까운 개념이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아비투스란 ‘지속 가능하고 변환 가능한 성향의 체계, 즉 구조들의 구조화 기능을 수행하도록 예정된 구조화된 구조’다. 즉 목표를 획득하기 위해 필요한 작동에 대한 습득을 표현하거나 목표들에 대한 의식적인 저항을 의식하지 않고서도 그들의 산출에 객관적으로 적응될 수 있는 재현과 실천을 조직 하고 발생시키는 원칙이다.) 더 자세한 논의를 위해서는 (피에르 브루디외, 최종철 번역 (2005),「구별짓기」, 새물결.)을 참고하라.

[10] 트레이시 키더, 박재영, 김하연 번역 (2005),「작은 변화를 위한 아름다운 선택」, 황금부엉이.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폴 파머 의 전기라 할 수 있는 저서 127쪽의 내용을 중심으로 해당 의제를 축약 및 재구성 하였음을 밝혀 두기 위해 […]로 표기 하였다.

[11] 앨리 러셀 혹실드, 이가람 번역 (2009),「감정노동: 노동은 우리의 감정을 어떻게 상품으로 만드는가」, 이매진.

[12] 주디스 버틀러, 조현준 번역 (2008),「젠더 트러블: 페미니즘과 정체성의 전복」, 문학동네.

[13] 폴 파머, 김주연, 리병도 번역 (2009),「권력의 병리학: 왜 질병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오는가」,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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