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중독에 대하여

최혜원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석사과정)

heyone@kaist.ac.kr

 


전기 에너지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 환한 빛이 되기도 하고 따뜻한 열이 되기도 하며 시원한 바람이 되기도 한다. 자연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인공적으로 재현되는 순간이다. 이로써 불변하는 자연에 적응해 살아왔던 인간은 전기라는 훌륭한 에너지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맞이한다. 동공을 미세하게 조절하여 조도를 유지 하지 않아도,[2] 애써 근육을 떨어 체온을 높이지 않아도 일정한 밝기 와 온도의 완벽한 환경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현시대의 전기는 편리한 생활을 돕는 에너지 그 이상이기도 하다. 스마트폰과 같이 똑똑한 기계들이 뇌를 확장하고자 하는 시도는 마셜 맥루한 (Marshall McLuhan)이 말한 “인간 확장으로서의 기술(Technology as Extension of the Human Body)”의[3] 정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전기 에너지는 이러한 욕망의 실현에 있어 핵심적 요소 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기가 없었던 세상은 떠올릴 수 있어도 전기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전기가 ‘무언가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음’ 또는 ‘어떤 것에 몹시 의존’에 부합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전기에 중독됐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중독(addiction)의 사전적 의미는[4 ]“무엇을 하거나 사용 하는 행위를 멈추지 못하는 것(An inability to stop doing or using something)”으로[5] 어떤 행위를 스스로 멈출 수 있는 능력의 여부는 중독을 판단하는 주요한 지표가 된다. 다시 말해 중독의 증상은 주체적 통제권을 상실했을 때 드러난다.

그림1

<그림1 콘센트 뒤에 무엇이 있을지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지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1]>

그러나 전기와 중독, 두 단어를 나란히 두는 일은 도박이나 마약과 같은 종류의 중독을 말하는 것과는 다소 다른 감이 있다. 일반적인 중독이 신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해로운 결과를 내는 물질이나 행위를 대상으로 하고 이 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을 때 책임을 주로 개인에게 돌린다면, 전기에 대해서는 ‘인간에게 해로운가’라거나 ‘누구에게 통제권이 있는가’의 질문에 있어 앞선 중독과는 같은 대답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를 쓰는 일’을 마찬가지로 매우 의존적이고 부재를 상상할 수 없으면서도, 중독이라고 할 수 없는 ‘물을 마시는 일’과 같은 선상에 둘 수는 없을 것이다. 물과는 달리 시스템과 기계를 통해 가공되지 않은 전기는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한다. 전기를 인간의 오랜 생존 전략에 슬쩍 편입시키기에는 우리 몸이 전기에 대해 너무 무지하다는 뜻이다.

그림2

<그림2 인도에는 전기를 훔치는 전기 도둑이 많아 정부 차원의 제지가 계속되고 있다.[6]>

더불어 우리에게 전기가 없는 삶이 있었고(여전히 어딘가에는 전기 없는 삶이 있지만),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희생을 강요당하는 누군가의 삶도 존재한다는 사실 역시 전기가 본능이 아닌 중독의 대상임을 생각해보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부터 그리고 어떻게 전기에 중독되었는가? 전기 중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발전(發展)을 위한 발전(發電)

전기를 사용하고 내는 요금은 흔히 전기세로 불린다. 전기요금은 엄밀히 말해 세금이라고 할 수 없음에도[7] 사람들이 전기료를 세금 으로 인지하는 까닭은 전기 공급이 정부의 주도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한국전력공사는 1961년 설립된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의 시장형 공기업으로[8] 그들의 자회사와[9] 민간 발전사 등으로부터 생산된 전력을 공급받아 최종 소비 형태에 맞게 가공하여 송전하는 일을 한다. 이후 2001년 설립된 한국전력거래소는[10] 한전과 발전사를 중재하며 전기 수요를 예측하고 전력 생산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역할을 맡는다. 결국 기업이나 민간은 생산 단계에만 부분적으로 관여할 뿐 전기를 공급을 계획하고 판매하는 일 모두 정부 기관이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전력 시장이 이러한 형태를 띠게 된 이유는 전기가 공공재의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다. 공기업 역시 기본적으로는 시장의 원리에 따라 전기를 판매하고 수익을 내는 역할을 하지만, 이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전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유가변동 등 외부 요인에 전기료가 큰 타격을 받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정부가 강조하는 대로 전기의 공공성은 중요하다. 국가가 주도하는 전력 산업은 시장 논리에 휩쓸려 사회가 마비될 일도, 지독한 자본주의 원리에서 배제되는 사람도 최소화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다수의 행복을 보장한다는 국가 정책의 기저에는 1978년 전력 수급의 안정적 도모와 국민경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11] 제 정된 ‘전원개발촉진법(電源開發促進法)’이 있다. 이 법은 국가 발전 과 경제 부흥을 최상의 가치로 내걸던 박정희 정부 시절 만들어졌는 데, 전원 개발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에 대해서는 토지 활용을 비롯한 각종 제약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보장한다. 화력발전소와 원자력 발전소가 도시와 공단 지역의 원활한 전력 공급을 목적으로 농어촌 지역에 무더기로 들어설 수 있는 법적 근거도 여기에 있었다.[12],[13] 예로 충남에 있는 당진화력은 생산하는 전기의 대부분을 전력 자급 률이 1.8%에 불과한 서울 지역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으로 송전하 고 있다.[14] 당진 화력발전소는 발전용량이 전 세계 3위에 들 정도로 대규모 발전시설을 보유하고 있는데,[15] 이는 건강 문제와 환경 오염 등으로 주민들의 반발이 극심했음에도 20년간 꾸준히 발전설비를 증설해온 결과이다.[16] 이렇게 지방에 사는 소수를 희생시켜 만들어 진 전기는 거대한 송전탑을 따라 흐르다가 도시가 가까워지면 땅속 으로 들어가서 눈에 보이지 않도록 지중화(地中化)된다.[17] 전기가 흐르는 철탑은 많은 사람들에게 흉물이라는 이유에서다.[18]

중독된 줄 모르는 중독자들

대한민국 전체 인구 대비 수도권(서울•경기•인천)이나 광역 단위 지역의 인구는 70%에 이른다.[19] 인구의 대다수가 이른바 도시에 사는 셈이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발전시설이 내뿜는 오염 물질에 노출될 일이나 전기가 흐르는 압도적인 철탑을 마주할 일 없이 전기를 소비한다. 도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전기에 대해 가지는 경험이라고 해봤자 콘센트 구멍에 돼지코라 불리는 플러그를 찔러 넣는 게 다인 것이다.

그림3

<그림3 당진의 송전탑[20]>

그림4

<그림4 콘센트 모양은 나라별로 굉장히 다양하며 일반적으로 전압에 따라 분류된다[21]>

현대 사회의 정보와 기반시설 (infrastructure)에 대해 연구한 사회학자 수잔 레이 스타(Susan Leigh Star)도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기반시설(invisible infrastructure)이 가시화되는 경우는 그것이 극단적으로 무너지는 정전 (black out)이 발생했을 때라고 말한다.[22]

만약 서울에 정전이 발생한다면 어떨까? 불 꺼진 고요한 도시가 상상 하는 전부라면 이 역시도 국가가 얼마나 전기를 잘 숨겨왔는지에 대한 증거다. 도시는 단지 눈이 머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전이 일어난 즉시 교통 신호 시스템이 멈추기 때문에 도로 위의 차들은 뒤엉켜서 오도 가도 못 하게 된다. 지하철이나 엘리베이터를 이용 하던 사람들은 환기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밀폐된 공간에서 점점 숨쉬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전력이 없으면 물 공급도 타격을 받는다. 정수가 되지 않아 물은 단수될 것이고 하수를 배출하고 처리하는 시스템도 멈춘다. 주요 기관들은 정전을 대비해 비상 발전기를 소유 하고 있지만, 정전이 길어진다면 결과적으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상점들은 문을 닫고 금융 업무도 중단되며 비행기의 이착륙도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벗어날 해답을 줄 것만 같은 스마트폰은 시각을 알려주는 시계로, 그마저도 배터리가 다하면 고철 덩어리로 전락하게 된다.[23]

물론 이와 같은 묘사는 정전이 발생하고 국가가 아무런 역할을 하 지 못했을 경우다. 우리나라에서 정전을 경험하기는 쉽지 않지만, 세계적으로 정전은 드문 현상이 아니며 대부분은 극단적 결과를 맞기 전에 수습된다. 한국에서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정전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정부의 철저한 방침 때문이다. 전력 수급을 전담하는 산업통상자원부는 전기의 안정적 수급을 위해 전력 시장을 통제와 더불어 전력 예비율을 설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전력 예비율은 전력 수요를 채우고 난 여분의 에너지 상태를 나타 내는 예비 전력을 백분율로 표시한 수치이며[24] 정부는 전력수급기본 계획을 통해 전력 수요가 많은 여름철에도 예비율이 10%가 넘어가 도록 적정 예비율을 산정한다.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발표한 적정 설비 예비율은 22%(최소예비율 13%, 불확실성 대응 예비율 9%)인데, 15% 내외로 목표하는 미국이나 유럽연합에 비해 너무 높다는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25]

전기에너지는 저장이 어렵다. 때문에 예측이 빗나가 전력 소비량이 예상보다 적다면 예비율에 해당하는 설비와 전력량은 고스란히 잉여가 된다. 그러면 남는 전기를 판매하기 위해 전력 가격은 인하 되고 [26] 이는 다시 소비량의 증가와 발전 설비의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27]결국 국가가 정전을 막기 위해 만들어내는 예비 전력이 전기 소비를 더 권장하고 있는 셈인데, 여기에서 모순은 전기의 사용량이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정전이 발생했을 때 우리가 전기 없이 할 수 있는 일들이 줄어간다는 점이다. 비유하자면, 어둠을 피하고자 전압을 높이면 전구는 밝아지지만 그 전압을 버티지 못한 필라멘트가 ‘팟’ 하고 끊어지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금단현상은 가히 어둠보다 더 무서운 존재다.[28]

그림5

<그림5 대정전이 발생한 후 복구되지 못한 도시를 그린 NBC 드라마 REVOLUTION의 포스터[29]>

중독시키는 정부와 중독당하는 기업

정부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전력 시스템 내에서 전기 중독은 개인 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정에 비해 상대적으로 전력 소비가 많은 기업 들은 중독의 정도가 더욱 심하다. 2017년 국제에너지기구(IEA) 가 발간한 보고서에 의하면 2015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연간 전력 사용량은 534Twh로 세계 8위이며, 1인당 전력 소비량도 아이슬란드(5만 5054kWh)와 미국 (1만 2833kWh)을 제외하고 는 1만 558kWh로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 높은 수치다.[30],[31] 이때 부문별 전력 사용량을 자세히 살펴보면 산업용 전력 소비량은 전체의 54%, 가정 및 일반용은 39%다.[32] 즉, 한국의 전력 사용량이 국제적으로 높은 순위를 차지하게 된 것에는 산업 부문에서 기업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겠다.

기업이 전기에 중독되는 이유는 뚜렷하다. 전력 소비가 많은 한국 산업 구조의 특성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시장경제에 따라 움직이는 기업 에게 에너지는 돈이다. 기업은 전력이 다른 에너지에 비해 저렴하기 때문에 전기를 택했을 뿐이다. 경제성장을 최우선에 두고 전기를 저렴하고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는 정부의 에너지 정책 기조는 급등 하는 유가에 휘청이는 많은 기업들에게 전력 사용을 가장 합리적인 선택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이유로 1990년대 휘발유, 등유 등의 에너지유를 주로 사용하던 기업들이 유가가 오르자 비싼 에너지유 대신에 가격변동이 없는 전력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에너지 원료를 직접 연소하는 것이 열효율 면에서 훨씬 합리적인 가열이나 건조용 장비들조차도 전기가 훨씬 저렴하다는 이유로 전력화된다. 원료인 1차 에너지보다 연소과정에서의 열 손실과 송전단계에서의 전력 손실을 거친 2차 에너지가 더 싸게 판매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산업용 전력의 낮은 가격보다는[33] 기업의 전력 사용량이 가파르게 증가하는 것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정부에 있었다. 정부는 전력화를 규제하거나 과징금을 부과하기는커녕 그 증가분을 그대로 수요 예측에 적용하여 에너지기본계획을 세우고 실제로 이에 맞게 수요를 늘렸다. 또한, 저렴한 전기를 공급하기 위해 생산 단가가 싼 원자력과 석탄을 주 에너지원으로 채택해왔다. 그리고 가장 경제적인 에너지원을 이용하여 전기를 생산한다는 ‘전기급전’의 논리에 따라 발전소를 가동하면서, 생산 단가에 포함되 지 않는 여러 가치들은 배제되었다. 경제의 논리에서 벗어나 신재생 에너지 비율을 지속적으로 높여 온 많은 OECD 국가들과 비교되는 지점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비용기반체제로 돌아가는 전력 시장 속 에서 전기를 쓰는 일은 경제 성장을 돕는 훌륭한 일이었고, 어느새 기업은 전기에 중독되길 권장 받고 있었다.

우리는 전기 중독자다

우리는 전기를 모른다. 언제부터인가 이 에너지를 활용하는 것은 몸을 쓰는 일과 같이 매우 쉽고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맨몸으로 전기를 쓰는 법을 모른다. 우리가 아는 전부는 전력 시스템이 무너지면 기계라는 껍데기가 남는다는 사실 뿐이다.

전기 에너지는 일의 양을 나타내는 킬로와트(kW)라는 단위로 추상화 되며, 이는 사회가 정한 기준에 따라 또 다른 단위인 화폐(KRW)로 다시 변환된다. 화폐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 전력을 인지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수단이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발전이란 슬로건을 내세워 전력을 공공이라는 포장지에 예쁘게 포장하여 헐값을 팔고 있으며, 도시의 사람들과 많은 기업들은 이에 취해 전기의 진짜 모습을 보려 하지 않는다.

그림6

<그림6 레베카 홀랜드(Rebecca Howland)의 작품 Message to the Public: Electric City. [34]>

결국, 복잡한 도시 안으로 꼭꼭 숨어버린 전기의 실체를 마주하기 위해서는 화폐라는 숫자가 담지 못한 이면을 보는 일이 중요하다. 공공이란 명목으로 들어선 발전소에 삶의 터전을 빼앗긴 사람들과 경제적인 에너지원이라 불리는 원료들이 전기를 생산하면서 자연에 남기는 흔적들은 쉽게 전기를 소비하는 이들에게는 잘 보이지 않는다. 전기의 공공성이 배제하는 사람들과 전기의 경제성이 놓치는 가치 들이 있음을 깨달을 때 전기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가 나타난다. 그리고 전기가 보이면 비로소 그 전기에 중독된 ‘우리’도 함께 드러난다. 우리는 모두 전기 중독자다.


읽을거리 & 볼거리

읽을거리1

리처드 화이트, 이두갑 번역 (2018), <자연 기계>, 이음. [Richard White(1995), The Organic Machine: The Remaking of the Columbia River, Hills and Wang, HarperCollinsCanadaLtd]

역사학자 리처드 화이트는 전기를 얻기 위한 댐 건설을 단순한 환경파괴로 해석하지 않는다. 그는 이것을 인간과 강의 관계가 변한 것이라 설명하며, 자연과 인간이 어떤 관계를 맺어 왔는지를 살핀다. 이 책을 통해 ‘전기’에 의미를 좀 더 깊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읽을거리2에바 웨버(Eva Weber) (2012), 블랙아웃(Black Out), 다큐멘터리, 47min
글에서 전기의 인프라를 마음껏 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한 것 같아, 여기서나마 그의 뒤켠도 보이고 싶었다. 소개하는 다큐멘터리는 인구 중 80%는 전기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다.


[1] “I Am Supercharged”, https://medium.com/@joeymckeown/i-am-supercharged-2018c22b8713

[2] 어두운 곳에서는 동공의 크기를 키워 눈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을 늘리고 환경에 적응한다. 밝은 곳에서는 반대로 반응한다.

[3] McLuhan, M. (1964), Understanding media: The extensions of man. New York: McGraw-Hill.

[4] 우리말에서는 중독이라는 한 단어로 표시되는 것이 영어로는 poisoning과 addiction으로 분류된다.

[5] Cambridge Dictionary, “addiction”, Accessed Jan 21, 2019. https://dictionary.cambridge.org

[6] “India to fine firms for blackouts, crack down on electricity theft “, https://in.reuters.com/article/india-power-theft-blackouts-copy/india-to-fine-firms-for- blackouts-crack-down-on-electricity-theft-idINKBN1E20DA

[7] 전기요금(전기료)는 강제로 부과되는 세금과 다르게 사용량에 따라 대가를 지불하는 방식이므로 세금이라 할 수 없다. 그러나 국립국어원은 ‘전기세’를 전기료를 일상적으로 이르는 말로 올바른 표현으로 인정하고 있다.

[8] 한국전력공사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의 공기업이라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9] 한국전력공사의 발전 부문 자회사는 총 6개(한국수력원자력, 한국중부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남동발전, 한국서부발전, 한국동서발전)로 전력을 생산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그 외 자회사로는 한전 KPS, 한전원자력연료 등이 있다.

[10] 전기사업법 제 35조에 따르면 한국전력거래소의 설립목적은 “전력시장 및 전력계통의 운영을 위(함)”이다.

[11] “전원개발촉진법”, http://www.law.go.kr/법령/전원개발촉진법

[12] 이 법은 70년대 각종 산업의 근간이 되는 전력의 원활한 공급을 위한 것이었지만, 법령이 포함하고 있는 ‘무소불위 권력’과 운영 방식 때문에 법을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13] “국가산업은 절대선(善)인가…귀 닫은 정부”,  https://www.nocutnews.co.kr/news/4610612

[14] 중앙일보(2019.01.25), “충남 이어 당진 ‘화력발전 연장 반대’”.

[15] https://www.sourcewatch.org/index.php/Top_ten_largest_coal_plants_in_the_world

[16] “보령·당진·태안에 화력발전 대규모 증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28&aid=0000029563

[17] 국립국어원의 신어 사전에 의하면 지중화는 “땅속에 묻거나 설치함”을 일컬으며, 전선 지중화는 “도로위의 복잡한 전선을 심어 전봇대를 없애고 도시를 아름답게 하는 일”로 정의된다.

[18] “충남, 발전소·발전량·송전탑 1위…한전 지중화 사업 ‘전국꼴찌’”, http://www.anewsa.com/detail.php?number=1368756&thread=09r02

[19] 통계청 2018년 12월 자료, http://kosis.kr/index/index.do 20 당진의 화력발전소에 대한 다큐멘터리 <화력발전소 옆 사람들(2018)> 중 한 장면

[21] https://www.ceptics.com/blogs/news/travel-adapters-where-to-start

[22] STAR, S. L (1999), “The Ethnography of Infrastructure”, American Behavioral Scientist 43, no.3, pp. 377–391.

[23] 피터 타운센드, 김종명 번역(2018),<과학자도 모르는 위험한 과학기술>, 동아엠엔비 [Peter Townsend (2018), The Dark Side of Technology, Oxford University Press, USA]

[24]전력 예비율은 최대 전력 수요에 비해서 발전설비 용량이 얼마나 여유가 있는지를 의미하며, 총 발전설비 용량의 여유를 의미하는 설비예비율과 총 발전설비 용량에서 고장이나 정비 등을 차감한 여유를 의미하는 공급예비율로 나눌 수 있다.

[25] “전력수급계획, 설비예비율 15%면 충분?”, http://www.energ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4752

[26] 과도한 예비율로 생긴 적자는 가격을 떨어뜨려 잉여 전력을 팔거나, 아니면 오히려 전기 요금을 높여서 비용을 메꿔야 한다. 정부는 주로 전자의 해결방식을 택해왔다.

[27] “‘주요 OECD 국가들과 비교해보니’… 신규원전계획 포함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 과잉설비 논란”, http://kfem.or.kr/?p=151557

[28] 전압을 높이면 전력이 커져서 전구는 밝아진다. 그러나 과전압은 필라멘트가 끊어지는 원인이 된다.

[29] http://blog.daveg.ca/2013/11/06/technical-plot-holes-in-nbcs-revolution/

[30] 에너지경제연구원 (2017), <자주 찾는 에너지 통계>

[31] 국가의 전력 소비량은 그 나라의 산업구조나 기후 및 생활방식 등에 따라 상이할 수 있기 때문에 단순 비교에는 한계가 있지만 한국과 유사한 조건을 가진 독일이나 일본과 비교하더라도 한국의 전력 소비는 양적으로 많을 뿐만 아니라 그 증가세도 빠르다.]

[32] “국가에너지통계 종합정보시스템”, http://www.kesis.net

[33] 전압이나 송전 부분에서 원가 자체가 낮은 산업용 전력이 다른 용도로 쓰는 전력보다 저렴한 것은 다소 당연하다.

[34] 레베카 홀랜드는 송전탑을 주제로 다양한 작업을 해 온 예술가다. 미국 Public Art Fund는 1982년부터 Message to the Public이라는 제목으로 미디어 기반의 예술작품을 타임스퀘어 보드에 송출하는 장기 프로젝트를 했다. 해당 사진은 프로젝트 일부인 홀랜드의 작품 Electric Cit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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