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의 일상사를 읽는 법

강미량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석사과정)

 miryang1002@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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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과학기술정책 읽어주는 남자들(박대인, 정한별) (2018), 『과학기술의 일상사: 맹신과 무관심 사이 과학기술의 사회생활에 관한 기록』, 에디토리얼. (이미지 출처 : 에디토리얼 제공)>

 ‘과학기술’과 ‘일상’은 함께 썼을 때 그리 어울리는 조합이 아니다. ‘과학기술이 바꾸어 갈 일상’이나 ‘교양으로 알아두면 좋을 일상 속 과학기술’이 아닌 ‘과학기술’과 ‘일상사’(事인지 史인지 확실치 않지만)의 조합은 생소하기까지 하다. 이는 과학과 공학을 연구하거나 개발하지 않는 시민들에게 익숙한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의 일상사>의 저자인 과학기술정책 읽어주는 남자들(이하 과정남)이 말하고자 하는 과학기술이 다르기 때문이다.

과정남이 쓰는 과학기술은 자연의 비밀을 밝혀내기 위한 과학이나 경제발전을 이끌기 위한 기술혁신이 아니다. 과학상상화 그리기 대회 속 휘황찬란한 미래과학도, 재난을 단박에 예측하고 해결해 줄 기술도 아니다. <과학기술의 일상사> 표지에 그려진 청바지에 후드 티를 입은 여성과학자의 모습이 암시하듯, 흰 가운을 입고 홀로 고독하게 머리를 싸매고 있는 남성 과학자의 천재적 발명품은 더욱 아니다. 과학기술은 발전한 미래의 상징과 교양 지식으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독자는 과학기술을 지원하고 연구하고 향유하는 모습과 그를 수행하는 사람들의 삶 또한 과학기술의 일상사라는 메시지를 읽는다.

<과학기술의 일상사>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비교적 분명하다. 첫째, 과학지식과 기술인공물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국가가 과학기술연구를 지원하기 위해서 시민은 세금을 내야 한다. 연구비를 받은 과학자와 공학자는 연구 장비를 사고 시행착오를 거쳐 실험을 한다. 돈을 지원받기 위한 행정 업무는 실험만큼이나 중요한 축인데, 그 어떤 돈도 문서를 쓰고 남기고 보내지 않고서는 오고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과정남이 5장 <연구지원정책>에서 언급한 연구과제 제안요청서 (RFP, Request for Proposal)가 한 예다.

모든 연구가 과학기술정책의 지원대상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 또한 과학기술정책의 중요한 교훈이자 정책 논쟁의 시발점이다. 과학기술을 연구할지 말지를 선택할 수는 있어도 과학기술에 영향을 받을지 혹은 받지 않을지를 선택할 수는 없는 현대 사회에서 어떤 연구를 지원할 지는 시민의 권리와 맞닿아 있다. 따라서 국가는 해당 연구가 현 시점에서 필요한지, 사회적 의제와 잘 맞아 떨어지는지를 꼼꼼히 논해야 한다. <과학기술의 일상사>는 이 과정을 기록하는 책이다.

정책적 고민을 거쳐 전반적인 과학기술연구뿐만 아니라 당면한 환경오염에 대응하기 위한 규제과학이나 (2장 과학기술과 법), 재난을 ‘막기 위한’i 과학기술에 연구비가 지원된다 (7장 재난). 최근 미세먼지 대책(혹은 해결책)에 대한 높은 과학기술적 관심이나 과학기술계에 불어 닥친 4차산업혁명 광풍을 이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이때 과정남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과학기술정책이 결코 비정치적이지 않다는 점을 함께 피력한다. 즉 미세먼지 대책이나 4차산업혁명 관련 정책은 중요하다고 해서 그냥 만들어지지 않는다. 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는 정치적 의사결정이 중요하게 개입한다.ii

과학기술정책의 정치성은 눈 앞에 보이는 현실에서 한 발짝 물러나 수행되고 있지 않은 연구를 고찰할 때 드러난다. 정책이란 결국 한정된 예산에서 “무엇을 배제할 것인”지를 다투는 정치의 영역에 속해있고, 배제되어 생산되지 못한 과학기술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관심을 받지 못해 잘 연구되지 못한 영역과 관심을 지나치게 받아 비대해진 영역은 모두 어떤 집단의 삶에 크게 영향을 줄 것이다. 과학기술 지식이나 인력정책이 여전히 성차별적임을 지적한 6장 <과학기술과 여성>이 대표적인 사례다.iii

<과학기술의 일상사>가 전하는 두 번째 메시지는 연구는 사람이 한다는 것이다. 과학과 공학을 업(業)으로 삼기 위해 과학기술인은 학부생-대학원생-박사 후 연구원(Post-Doc)으로 이어지는 10년 이상의 긴 수련 기간을 거친다. 독립연구자로 자리를 잡기 전까지 이들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학생도, 노동자도 아닌 불안정한 삶을 살아간다. 과정남은 “제도는 나름대로 대학원생을 해석하고 있”지만 “이 해석에 대학원생 스스로의 인식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라고 지적한다.iv ‘대학원생’이라는 공식적인 범주가 없다는 말이 아니라, 이들이 누군지, 어떤 일을 하는지 적절히 파악되고 있지 않다는 주장이다.

한 예로, 2016년 3월에 한국화학연구원에서 일하던 학생연구생이 실험 도중에 폭발 사고를 당해 손가락이 절단되었지만 산업재해 보상을 받지 못한 일이 있었다. 과학 연구를 수행함에도, 제도상 ‘학생’이지 ‘노동자’가 아닌 그들은 산업재해 보상을 받을 수 없고 4대보험도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례는 “떠돌이 계약 노동자”로서 대학원생, 학생연구생, 박사후연구원 등의 존재를 제도적으로 파악하는 일이 단순히 개념적인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안전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 권리와 결부된다는 점을 보여준다v (4장 떠돌이 계약 노동자).

또한 과학기술인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는다.vi 저자들이 짚은 대로 “여성 과학기술인들의 처지와 형편은 한국사회가 성취한 평균적인 성평등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vii 여성과학기술인이 마주친 제도적 문제를 도식화하는 모델 중에 ‘새는 파이프라인(Leaky pipeline)’ 이나 ‘L자형 생애주기’가 있다. 새는 파이프라인은 고위직으로 갈수록 여성과학기술인이 줄어드는 이탈 현상을, L자형 생애주기는 취업-경력단절-재취업을 거치는 한국 일반여성과는 달리(M자형 생애주기) 연구분야가 빠르게 바뀌는 이공계의 경우 여성이 이공계로의 재취업이 힘든 현상을 가리킨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같은 과정을 밟고 있는 남성에 비해 여성과학기술인의 수는 줄고, 출산이나 육아를 위해 한 번 과학기술계 밖으로 나간 여성들은 다시 돌아오지 못하곤 한다. 국가 경쟁력 향상을 위해 여성과학기술인을 양성하자고 외치지만, 결혼을 해 출산과 육아를 하게 된 여성 연구자가 안정적으로 연구를 수행할 수 있는 시스템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viii ‘슈퍼우먼’이 되기보다 비혼 혹은 아이 안 갖기를 선택하는 여성연구자가 늘어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과정남이 대한민국의 성역할 관념을 드러내기 위해 인용했던 <대한민국 출산 지도>는, 가임기 여성이라면 누구든 ‘출산’이란 임무를 수행하라는 노골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왜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는지 고민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ix 일과 가정의 ‘양립’을 외치는 사회의 목소리가 무색한 지점이다 (6장 과학기술과 여성).

과정남은 과학기술정책의 관점에서 과학기술의 일상사를 이해한다는 것이 이 두 관점, 즉 과학기술이 생산되는 사회적 과정을 살피는 것과 이를 생산하는 다양한 층위의 사람을 파악하는 것을 포괄한다고 말한다. 어떤 정책적 사안을 다룰 땐 “저 정책이 대체 누구를 대상으로 하는지, 그래서 무엇이 문제라고 주장하는지”가 핵심 질문이기 때문이다.x 그러므로 이 책을 통해 ‘과학기술의 일상사’의 지평을 넓힌 독자는 과학기술을 이용하는 시민의 삶이 일상인 것처럼 과학기술을 생산하는 자들의 삶도 일상이며, ‘과학기술’을 핵심에 두고 이 두 삶을 아우르는 모든 정책이 과학기술정책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이 지점이 ‘과학기술정책’의 정확한 정의는커녕 ‘과학’과 ‘기술’과 ‘정책’이 무엇인지도 알려주지 않는 이 책을 “시간을 들여 읽어볼 만한 것”으로 만든다.xi “국가는 과학기술의 혁신과 정보 및 인력의 개발을 통하여 국민경제의 발전에 노력하여야 한다”는 헌법 제9장 127조 1항이 보여주듯, 역사적으로 한국의 과학기술은 경제발전의 견인차로서 “한강의 기적”을 이끌어 낸 도구로 당연시 되어왔다.xii 그러나 모호함을 견뎌 이 책을 끝까지 읽는다면, 시공간을 초월하는 과학과 기술과 정책의 정의는 없으며, 그것은 현재를 사는 한국 시민이 과학기술을 어떻게 상상하고 과학기술인의 정체성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 또한 알게 될 것이다. 과학기술은 “한강의 기적” 이상의 다양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앞서 살펴본 예시 외에도 <과학기술의 일상사> 속 주제는 과학기술과 법/제도의 관계, 노동 이슈, 과학관, 재난, SF, 과학 경찰을 넘나든다. 다루는 주제가 넓은 만큼 인용하는 자료도 과학사, 과학기술학, 과학기술정책학 등 학술 문헌과, 과정남이 직접 팟캐스트를 통해 진행한 인터뷰 등으로 다양하다. 덕분에 때로는 잘 뒷받침된 논증을, 때로는 역동적인 현실감을 한 권의 책에서 동시에 읽을 수 있다. 즉 “과학기술에 대해 ‘안다’는 것은 결과물인 지식을 습득한다는 것보다는 조금 더 폭넓은 개념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몸소 보여주는 책이다.xiii

그러나 이로 인해 각 장마다 학술적 깊이와 다루는 이슈의 너비가 다르다는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기초과학을 다룬 1장과 연구진흥정책을 다룬 5장을 보자. 1장은 ‘과학’이란 개념의 출현에서 시작하여, 2차 세계대전 이후 생긴 ‘기초과학(basic science)’의 개념과 선형적 모델(linear model)xiv로 대표되는 기초과학 연구 지원의 정당성을 다룬 뒤, 한국의 기초과학연구진흥법으로 넘어간다. 개념을 구체적으로 논하고 깊이 파들기보다는 개괄을 하는 식으로 서술했다.

그런데 이후 5장 <연구진흥정책>에서 1장에서 잠깐 소개되었던 선형적 모델이 다시 등장하는데, 이때는 선형적 모델에 기반해 연구의 결과물에만 집중하는 과학기술평가방식이 과학기술이 만들어지는 사회적 과정을 모두 포괄하지 못함을 지적하기 위해서다. 이는 선형적 모델을 이미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곧바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임에도 5장 이전에 선형적 모델에 대한 개념적 서술은 거의 없다. 머리글에서 “전문서적이라기엔 너무 얕고 교양서적이라기에는 괜히 어려워 뵈는 미묘한 글이 된 것” 같다는 글쓴이의 소감은 이와 같은 책의 특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xv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기술의 일상사>는 과학기술정책 관련 대중서가 거의 없는 한국에 귀중한 책이다. 글을 끝내기 전에 이 책을 읽는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하고 싶다. 내가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일부러라도 각 장에 서술된 과학기술정책/과학기술인의 특성을 겹쳐 읽고 질문하는 것이다. 앞서 짚었듯 장마다 끌어오는 문헌의 종류가 달라 각 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내용이라기보다는 유리된 내용으로 읽히기도 하며, 독자의 배경에 따라 모든 장을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각 장을 따로 이해한다면 이 책을 좀더 풍부하게 읽을 기회를 놓친다.

예를 들어, 마지막 <나오며> 장에서 과정남은 과학기술정책의 결과에 주목하는 것뿐만 아니라 과학기술정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기록하고 관찰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를 6장의 여성과학기술인 정책에 적용한다면 정책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지적된 ‘낮은 출생률’에 담긴 여러 맥락을 찾는 노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리고 정책이 미처 묻지 않았던 고학력 여성과학기술인의 생각, 근무 조건, 실험실 생활 등을 따져 보고 ‘이것은 왜 정책의 고려대상이 되지 않는지’를 물을 수 있다. 이렇게 <과학기술의 일상사> 속 내용을 이모저모로 엮어 새로운 질문을 만들어 나간다면 좀더 풍부하게 책을 읽고 구체적인 삶에서 문제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읽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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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순, 김소영(2015),, <과학기술정책: 이론과 쟁점>, 한울아카데미.

과정남의 책이 과학기술정책을 대중서로서 풀어냈다면 이 책은 학술서 중 입문서다. <과학기술의 일상사>를 읽고 이 분야에 좀더 관심이 생겼다면 추천한다.


[1] (편집자 주) 과정남은 박대인과 정한별로 이루어진 비즈니스 유닛이자 온라인 인격체이다. 2014년부터 과학, 기술, 그리고 정책과 관련된 복잡한 이슈들을 가볍지만 진지하게 핥아보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과학뒤켠> 2호 “연구실 뒤켠의 과학기술인”을 쓰기도 했다. 공식 페이스북 주소인 https://www.facebook.com/STPreaders/에서 이들의 활동을 확인할 수 있다.

[2] 재난을 막기 위해 과학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서사로는 재난 상황과 맥락, 과학기술에 내재한 위험과 한계를 보지 못한다. 이에 과정남은 지금까지 일어났던 재난을 바탕으로 사회적 학습을 충분히 한 뒤 ‘재난’과 ‘과학기술’의 의미를 재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학기술정책읽어주는남자들(2018), <과학기술의 일상사>, 에디토리얼. 7장 재난 참고.

[3] 과학기술정책읽어주는남자들(2018), 앞의 책, 354~364쪽.

[4] 특히 에밀리 마틴의 The Egg and The Sperm (1991) 참고. 과학기술정책읽어주는남자들(2018), 앞의 책. 188쪽.

[5] 과학기술정책읽어주는남자들(2018), 앞의 책, 141쪽.

[6] 과학기술정책읽어주는남자들(2018), 앞의 책, 145쪽.

[7]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오마주한 표현.

[8] 과학기술정책읽어주는남자들(2018), 앞의 책, 181쪽.

[9] 주혜진(2014)은 여성과학기술인 지원정책이 “젠더가 사라진 인재육성정책 혹은 노동수급정책의 성격을 띤다”고 비판한 바 있다. 주혜진(2014), “여성과학기술인 지원정책에 ‘여성’은 있는가”, <페미니즘 연구>, 14(2), 153-202쪽. 또한 다음을 참고. 정연보(2018), “‘4차 산업혁명’ 담론에 대한 비판적 젠더 분석”, <페미니즘 연구>, 18(2), 3-45쪽. 이은경(2012), “한국 여성과학기술인 지원정책의 성과와 한계”, <젠더와 문화>, 5(2), 7-35쪽.

[10] 과학기술정책읽어주는남자들(2018), 앞의 책, 191쪽.

[11] 과학기술정책읽어주는남자들(2018), 앞의 책, 351쪽.

[12] 과학기술정책읽어주는남자들(2018), 앞의 책, 21쪽.

[13] 변화를꿈꾸는과학기술인네트워크(ESC)에서 127조 1항 ‘과학기술의 혁신’을 경제 발전의 수단으로 삼도록 명시한 부분을 삭제하고 “국가는 학술활동과 기초 연구를 장려할 의무가 있다”는 신설 조문을 1장 총강에 둘 것을 제안한 바 있다. 김찬현(2018), “한국 사회에 뿌리박힌 ‘세기의 숙제’과학기술과 헌법”, <에피>, 3호, 214~226쪽 참고.

[14] 과학기술정책읽어주는남자들(2018), 앞의 책, 367쪽.

[15] 선형적 모델은 기초 → 응용 → 개발 → 확산으로 이어지는 단방향 과학기술혁신 모델을 일컫는다. 참고로 페이스북 페이지 Secret Lab of Mad Scientist도 <과학기술의 일상사> 리뷰에서 선형적 모델을 예시로 책의 독자층이 명확하지 않음을 지적한 바 있다. (2018년 11월 14일 게시글)

[16] 과학기술정책읽어주는남자들(2018), 앞의 책,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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