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 인력 정책의 뒤켠: 여성과학기술인 육성ㆍ지원 기본계획을 중심으로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석사과정

우지수

woojisu@kaist.ac.kr


지난 3월 26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에서는 “제4차 여성과학기술인 육성ㆍ지원 기본계획”(4차 기본계획)을 심의ㆍ의결했다. 2002년 발효된 <여성과학기술인 지원 및 육성에 관한 법률>(여성과기인법)은 5년마다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2004년부터 시작된 기본계획이 올해로 벌써 네 번째 차례가 된 것이다.

법은 당시의 정치적 여론에 따라 국회에서 제ㆍ개정되곤 한다. 법은 그렇지만, ‘기본계획’ 은 온전히 행정부의 소관이다. 따라서, 이 기본계획은 정부의 정책 기조를 담아 법이 지향하는 바를 어떻게 실행할 것인지를 구체화한, 일종의 ‘정치적 메시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4차 기본계획이 전달하는 정치적 메시지는 무엇일까? ‘여성과학기술인’[1]을 이번 정부에서는 어떻게 지원하고 육성하겠다는 것인가?

이번 4차 기본계획의 ‘기본’ 비전은 “여성과학기술인의 창의적 역량 및 잠재가치가 발현되는 사회”[2]이다. 3차 기본계획의 비전이 “양성[兩性]이 함께 이끄는 과학기술과 창조경제”[3]였던 것을 돌이켜보면, 이 ‘비전’이라는 것에 당시 정부의 의지가 어떻게 담기는지를 짐작해볼 수 있다. 우리는 3차 기본계획을 세웠던 박근혜 정부의 ‘키워드’로 ‘창조경제’를 빼놓을 수 없다. 그렇다면 문재인 정부의 ‘키워드’는 무엇인가? ‘창의’? ‘잠재가치’? 두 단어 다 크게 회자된 적은 없는 듯하다. 그나저나, ‘잠재가치’ 는 무엇인가? 여성과학기술인에게 어떤 잠재가치가 있다고 보는 것인가? 3차와 4차, 두 기본 계획을 비교해보면, 4차 기본계획에서는 3차 기본계획의 비전에 비해서는 정부의 성격이 크게 드러나지는 않는 듯하다. 이 글에서는 4차 기본계획을 이전 기본계획들과 함께 살펴보고 비판적으로 접근해 보려 한다. 이는 기본계획을 새롭게 수립한 새로운 정부의 정치적 메시지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기 위함이다.

1차 기본계획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실행되었다. 당시는 여성과기인법이 막 발효되었던 시기로, 법의 성공적인 정착과 견고한 기반을 확보하는 것이 기본계획의 목적이었다. 이 목적은 1차 기본계획의 비전인, “여성과학기술인과 함께하는 조화로운 과학기술중심사회 구현”에서도 드러난다.[4] 여성과학기술인을 적극적으로 정부에서 발굴하고, 육성과 지원을 하는 것이 곧 ‘조화로운’ 사회를 구현하는데 필요하다는 관점 말이다. 1차 기본계획에서는 스스로 정책의 난점 중 하나로 “여성지원을 역차별로 인지하는 정서”가 있다고 꼽는다.[5] 때마침 이 시기에 사회적으로 크게 회자되었던 ‘이공계 기피’, ‘이공계 위기론’ 은 여성 우대라는 ‘역차별’ 에 대한 반감을 타개하는 데 좋은 전략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공계 기피현상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이공계 인력 수급에 차질이 예상되는”바, 더 큰 대의를 위해 여성과학기술인을 적극적으로 양성하고 활용하여 이공계 기피가 초래할 작금의 인력 부족을 막아 보자는 주장을 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6] 이러한 전략은 당시 갓 발효되었던 여성과기인법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는 데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나, 결과적으론 ‘역차별’ 논란을 해소하지 못한 채 회피한 셈이 되어버렸다.

2009년부터는 “여성과학기술인이 선도하는 창의적 과학기술사회 구현”을 기치로 2차 기본계획이 적용되었다.[7] 2차와 3차 기본계획의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국가경쟁력’이라는 표현이다. 두 기본계획 모두 국가경쟁력과 여성인력 간에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두 기본계획 모두 ‘고령화 및 저출산’ 사회가 됨에 따라 여성인력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는 것이다. 보이는 점만 두고 생각해보면, 이 전제는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아 더욱 건강하고 오래 사므로, 국가경쟁력을 견인하는 과학기술을 위해 여성이 더 많고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어 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은 국가경쟁력, 즉 세계를 선도해야 하는 대한민국의 뒤처지지 않는 위상을 위해, 그동안 갖은 이유로 인해 ‘잉여인력’ 이 되어 왔고, 과학기술 분야에서 제 역할을 맘껏 다하지 못하고 있던 여성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과학기술의 국가경쟁력을 재고하자는 속셈이었을 것이다! 놀랍게도 이러한 관점들은 2019년까지 이어지고 있다. 4차 기본계획의 추진 배경에서도 현재 “저출산 및 고령사회 진입으로 노동인구 감소 위기”에 처해 있는바, “생산가능인구 감소로 여성인력 양성, 활용의 중요성”이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고 언급하며 여전히 ‘여성과학기술인력’을 증진할 필요성을 국가적 위기 상황과 결합하여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8] (이 국가는 도대체 몇 년째 비슷한 위기에 처해 있는가?)

여기에서 앞서 4차 기본계획의 비전에 명시되어 있던 여성과학기술인의 ‘잠재가치’를 다시 생각해보자. 여성과기인법이 발효된 이후부터, 계속해서 여성과학기술인들이 적절히 활용되기를 바랐지만, 1차 기본계획을 세운 후 약 1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점과 함께 말이다. 사회학자 정연보는 ‘4차 산업혁명’ 담론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전유되고 있는지를 비판적인 젠더 관점에서 분석했다. 이 연구에서 정연보는 한국 사회가 과학기술에 대해 가진 관점이 그 자체로 젠더 문제를 심화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9] 앞서 살펴보았듯이 모든 기본계획은 국가의 경쟁력 확보와 발전을 기치로 삼고 수립되었는데, 이와 같은 성장 담론은 “경제 발전 혹은 국가 발전을 최고의 가치로 두면서 여성을 도구화하는 관점에 머물”[10]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기술의 ‘발전’과 국가의 경쟁력 확보를 동일시할 때, 실제 과학기술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도구적’인 존재로 전락시킨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지적을 발판 삼아 생각해보건대, 이번 4차 기본계획은 ‘성장 담론’속에서 여태까지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던 여성과학기술인의 ‘잠재적 활용 가치’를, ‘잠재(적 활용)가치’라는 비전으로 삼아 국가경쟁력 확보에 다시 한번 박차를 가해보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잠재가치에서 유리되어버린 ‘여성’은 여성과기인법과 그 기본계획이 어떻게 대해야 할 것인가? 그래도 명색이 ‘여성’ 과학기술인을 위한 제도라면 이에 대한 보다 신중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여성과학기술인을 과학기술의 ‘잠재가치’로 여긴다는 오래된 관점은 물론이고, 십 수 년째 여성과학기술인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아 비슷한 노력과 정책이 반복되고 있다는 것은 이번 4차 기본계획의 아쉬움이다. 여성과학기술인의 수를 늘리기 위해 노력한 지 어언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기본계획의 가장 주요한 골자는 여성과학기술인들의 수가 부족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아쉬운 점은 비단 앞서 언급한 점들만은 아니다. “산업구조 변화에 따른 근로형태 유연화로 여성의 일자리 기회”[11]가 확대될 것이라 짐작하는 ‘기술결정론적’이고도 지나치게 낙관적인 관점이나, 과학기술에서 ‘젠더혁신’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양성평등”을 실현해내겠다고 하는 점들은 여성과학기술인 정책을 단순히 성별에 따른 인력의 불균형 문제나 과학기술의 젠더 중립성을 확보하기 위한 관점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여성학이나 노동의 문제와 같이 더 풍부한 사회적 담론 속에서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함의를 준다.

과학정책의 뒤켠에서 ‘여성’ 자체에 초점을 맞춰 바라본 ‘여성과학기술인 육성ㆍ지원 기본계획’ 은 아직 갈 길이 요원해 보인다. 물론 왜 그 길이 요원한지는 또 새롭게 다뤄 볼 수 있는 주제일 것이다. 이 요원함으로 인해, 향후에도 여성과학기술인을 위한 정책은 계속 논의될 것이다. 5년 뒤 시행될 5차 기본계획이나, 여타 다른 과학기술에서의 ‘여성’ 정책, 혹은 젠더 문제들이 더욱 다양한 학문분과들과 함께 다뤄질 수 있기를 바란다.

 


[1] ‘여성과학기술인’ 을 하나의 명사처럼 사용하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여성 과학기술인’ 으로 표현하는 것이 ‘과학기술인’ 의 정체성을 더 잘 담아낸다고 생각하고, ‘과학기술인’ 중에서도 ‘여성’ 이 당면한 문제를 더 잘 포착할 수 있게 해낼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본 글에서 다루는 내용이 ‘여성과학기술인 육성ㆍ지원 기본계획’ 인 만큼, 띄어쓰기 없이 ‘여성과학기술인’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려 한다.

[2] 관계부처합동(2019), “제4차 여성과학기술인 육성ㆍ지원 기본계획(‘19~’23)[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3] 관계부처합동(2014), “제3차 여성과학기술인 육성ㆍ지원 기본계획(2014~2018)”

[4] 관계부처합동(2004), “第1次 女性科學技術人 育成ㆍ支援에 관한 基本計劃(案)”

[5] 위의 글, Ⅱ.2. 향후 전망

[6] 위의 글, Ⅰ.1. 수립배경.

[7] 국가과학기술위원회(2008), “제2차 여성과학기술인 육성ㆍ지원 기본계획(안)”, 국가과학기술위원회

[8] 관계부처합동(2019), “제4차 여성과학기술인 육성ㆍ지원 기본계획(‘19~’23)[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Ⅱ.1. 정책 환경.

[9] 정연보(2018), “’4차 산업혁명’ 담론에 대한 비판적 젠더 분석”, <페미니즘연구>, 제18권 2호, 3-45쪽.

[10] 위의 글, 22-23쪽.

[11] 관계부처합동(2019), “제4차 여성과학기술인 육성ㆍ지원 기본계획(‘19~’23)[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Ⅱ.1. 정책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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