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것, 인류세로 새롭게 바라보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홍예슬

hong0305@korea.kr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William Hawking, 1942~2018)은 만일 인류가 지금처럼 지구를 다룬다면 앞으로 100년 안에 우주로 이주해야 인류가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1] 육지를 지배했던 공룡과, 바다를 지배했던 삼엽충이 모두 멸종하고 인간이 지구를 지배하고 있는 현재, 그의 발언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지구는 더 이상 인간이 예측할 수 있는 행성이 아니다.[2] 1939~1945년 제2차 세계 대전, 1986년의 체르노빌,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호흡을 위협하는 미세먼지와 전 지구적으로 발생하는 폭염, 홍수와 같은 기후변화는 인류의 삶을 직·간접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인재와 자연재해는 모두 인류에 의한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영향이 지구 전체의 생태계를 변화시키는 현재, 홀로세(Holocene) 이후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라는 새로운 지질시대를 공식적인 지질시대 단위로 선포해야 한다는 논의가 지속되고 있다.[3] 인류세는 1922년 구소련의 지질학자인 알렉세이 파블로프(Aleksei Pavlov)에 의해 인간과 자연이 함께 진화한 행성 시대를 칭하는 용어로 처음 등장했다.[4] 이 용어는 일부 학자들에 의해서만 사용되다가 2000년 네덜란드의 대기화학자 폴 크뤼천(Paul Crutzen, 1933~)과 유진 스토머(Eugene F. Stoermer, 1934~2012)가 함께 IGBP(International Geosphere-Biosphere Programme)의 뉴스레터에서 발표한 기고문에서 언급된 후 대중화되었다.[5] 여기서 크뤼천은 산업혁명 이후 인간이 지구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지질시대로 인류세를 제시했고 이후 과학계뿐만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논의가 시작되었다.[6]

이러한 인류세에 대해 과학계뿐만 아니라 예술계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며 많은 작가들이 다양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염지혜 작가는 충적세 이후의 새 지질시대인 인류세를 구분하는 주요 계기가 되는 골든 스파이크(golden spike)로 플라스틱을 제시하고 있다.[7] 작업의 주요 소재인 플라스티글로머럿(Plastiglomerate)은 플라스틱 돌덩이로 플라스틱이 소각되면서 모래, 조개껍질, 화산암 등 주변 물질들과 뭉쳐져 만들어진 것이다. 작가의 〈플라스틱글로머럿〉 작품에는 하와이 빅아일랜드의 카밀로 해변에 서 작가가 직접 수집한 플라스틱글로머럿이 포함된다. 청정지역이라고 생각했던 하와이 해변에서 발견되는 화석화된 플라스틱 덩어리를 통해 작가는 지구 생태계 속 인류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20세기를 지나오며 인류의 흔적이 명확한 플라스틱, 콘크리트, 방사능 물질, 닭뼈, 이산화탄소 등은 현시대의 유산으로 기억될 것이다.[8] 특히 플라스틱은 대표적인 기술화석(technofossil)으로 인류세의 새로운 지층을 형성하고 있다.

 

[그림1-1]<그림1> 염지혜, 〈플라스틱글로머러틱한 삶의 형태〉, 2017, 단채널영상, 사운드, 컬러, 7분

[그림2]<그림2> 염지혜, 〈플라스틱글로머럿〉, 2017, 플라스틱글로머럿, 모니터(3분 39초, 무음, 컬러), 가변크기 / 사진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사진 촬영: 김진솔

인류세의 시작점에 대해서는 여러 논의가 있으며, 이는 인류가 지구 환경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시기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대표적으로 크뤼천이 주도하는 인류세연구그룹(Anthropocene Working Group, AWG)이 제시한 1950년대를 기준점으로 두는 의견이 일반적이다.[9] 하지만 인류세가 지질시대로 공인받기에는 지질학적인 논란이 존재한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시기의 문제가 있으며, 이외에도 홀로세의 뜻이 이미 인류 문명의 발달을 포함한다는 점, 골든 스파이크 논쟁 등이 있다.[10] 이 밖에도 서구 중심적인 시각을 내포한다는 인류세의 주체에 대한 논쟁도 있다.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인류세는 그 용어 자체가 사고의 전환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인류세는 홀로세와 같은 기존의 층서명과 달리 지질학적 범주에 국한되지 않는 의제를 함의하고 있다. 바로 ‘인류’와 관련된 다양한 요소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결국 인류세의 진정한 의미는 인간중심주의가 아닌 ‘탈’인간중심주의에 있으며, 인간과 비인간의 평등한 공생관계를 도모하고 새로운 관점으로 보기를 제안하는데 있다.[11]

지금 여기 대전에서 인류세에 대한 새로운 시도가 움트고 있다. 대전은 대덕연구단지를 비롯하여 자연, 인간, 기술을 통섭하는 인프라가 존재하는 지역적 강점이 있는 도시로, 현재 인류세 시대의 ‘실천’을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국내 유일의 KAIST 인류세 연구센터는 과학, 인문사회, 예술 등 다학제간 융합의 성격으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센터장인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범순 교수가 언급한 바와 같이 인류세 연구센터는 인간과 지구를 키워드로 삼아 과학, 공학, 인문학, 사회과학, 예술의 패러다임 변화를 촉발하고자 설립되었다.[12] 센터는 더 나은 인류의 삶과 더 나은 지구를 함께 추구하기 위해 과학계뿐만 아니라 대전시립미술관과 협력하는 등 예술 영역으로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또 다른 예로 대전시립미술관이 주관하는 대전비엔날레가 있다.[13] 2018년 비엔날레는 <바이오>를 주제로 과학기술과 예술적인 상상력이 결합된 바이오 아트를 선보였는데, 단순히 생명기술을 차용하고 활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윤리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이는 바이오 아트가 인간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의 일부인 인간의 입장에서 과학을 받아들이는 포스트 휴머니즘의 사유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바이오 아트는 인공장기와 생명연장, 유전자와 동물 실험 등에 대한 생명윤리 등의 동시대 과학 문제를 중요한 화두로 삼고, 이를 생태와 같은 거시적인 영역까지 끌어온다. 대표적인 예로 길베르토 에스파자(Gilberto Esparza, 1975~)의 작업은 인류세 시대의 예술적 실천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도시의 환경 문제에 관심을 둔 길베르토 에스파자는 하천의 70%가 오염된 멕시코에서 활동하면서 물과 관련된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2018 대전비엔날레에 소개된 그의 〈자동 광합성 식물Autophotosynthetic Plants〉은 박테리아의 대사 과정을 통해 오염된 물이 빛과 에너지로 변환되는 자체 재생 시스템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스페인의 여러 과학자와 협업했으며, 대전 지역의 열두 곳에서 채집한 오수(汚水)를 사용하였다. 오수는 기둥 12개에 담겨 박테리아가 전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에너지원을 제공한다. 박테리아가 생성한 전기에너지는 다양한 모듈을 통해 빛과 소리로 변환되어 작품 중앙의 구형 핵에 서식하는 식물의 광합성에 사용된다. 이 구형 핵은 미생물뿐만 아니라 물고기, 갑각류 등이 살아가는 중앙장치이자 박테리아를 통해 오염된 물을 섭취하는 소화체계, 전자 네트워크를 통해 작품 전체를 제어하는 신경체계로서 기능한다. 작품은 오염된 물을 에너지원으로 사용/정화하는 기계이자, 그 자체로 생태계인 일종의 하이브리드이다. 작품은 또한 오염된 물을 자원으로 사용하는 예술적 상상력을 현실의 공동체와 도시, 산업 등에 적용 가능한 모델로 구체화하며, 예술의 실천적 담론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림3> 길베르토 에스파자, <자동 광합성 식물>, 2014, 혼합매체, 다중 설치, 가변크기 / 제공: 대전시립미술관, 사진 촬영: 임장활

인류세 담론은 지구 생태계의 위기에 대한 응답과 동시에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반성을 내포한다. 담론에 따르면 인류세를 야기한 원인과 그에 대한 책임에서 인간은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류세 담론은 데카르트부터 이어진 인간/비인간 등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무너뜨리고 있다.[14] 현재 우리가 마주한 전 지구적 재난과 기후변화 등은 자연재해/인재와 같은 기존의 이분법으로는 이해가 어렵기 때문이다. 나아가 인류세 담론은 지구를 총체적으로 이해하길 요구하며, 이를 위해 새로운 사유와 실천을 요구한다.[15] 기존의 기계론, 인간중심적, 이 지구 시스템에 위기를 초래했다면, 인류세 담론은 시스템, 생명 중심적 사고방식을 통해 대안적 사유와 실천의 가능성을 찾도록 요구한다. 이런 관점은 2000년대 초부터 서구의 인문학, 사회과학 분야에 걸쳐 시작된 신유물론(New Materialism)에 일부를 빚지고 있다.[16] 신유물론의 핵심은 데카르트 이원론에 뿌리를 둔 인간 위주 사고의 극복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과학기술학(STS) 연구자 브뤼노 라투르는 인간에게만 부여하던 행위성(Agency)을 비인간과 무생물로까지 확장했고, 페미니스트 과학기술학 연주가 도나 해러웨이는 크틀루세(Chthulucene)이란 대안적인 개념으로 ‘친족(kin)’들과 평등한 관계에 기반한 공존을 시도한다.[17]

인간-사물-생명에 대한 이러한 관점을 잘 보여주는 예술 작품을 소개하고자 한다. 지루(Ji, Haru, 1971~)와 그라함 웨이크필드(Graham Wakefield, 1975~)는 ‘Articifial Nature(인공 자연)’라는 이름의 팀으로 협업하여 가상의 생물학적 복잡계를 선보였다. 2018년 대전 비엔날레에 소개되었던 <중첩 속으로Insuperposition>는 자연의 감각을 모사하는 디지털 환경과, 배아를 모사하는 컴퓨터가 결합하여 인공 생태계를 형성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세계는 세균이나 물고기와 같은 형태로 표현되며 관객은 모래 위에 그림자를 드리워 이 인공생태계와 상호작용할 수 있다. ‘유사-생명(quasi-life)’이 서식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이들은 사전에 인터페이스나 환경, 제약조건, 법칙 등 많은 요소를 프로그래밍한다. 하지만 작가는 프로그램을 통해 철저히 통제하는 대신 여백을 남겨 인공생명체가 제작된 생태계 안에서 유기적으로 진화하도록 한다. 즉, 창조주를 자처하지 않고 생명체가 자율적으로 성장하도록 유도하고 돕는다. 실제로 작가가 인공생태계의 여러 조건들을 프로그래밍할 때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인간과 작품의 자연스러운 상호작용이다. 따라서 즉각적인 상호작용에도 인간의 영향은 제한적이다. 인간의 역할은 절대적이지 않으며, 따라서 인간은 시스템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인간을 특권적인 종의 지위에서 끌어내리고, 다양한 생명체 중 하나로서 위치시키는 것이 이 작업의 핵심이다. 이를 통해 작가는 인간중심주의에서 탈피하고 대안적인 세계를 제시한다.

[그림4-2]

<그림4> Artificial Nature, <중첩속으로>, 2017-2018, 혼합매체, 비디오, 상호작용형 설치, 가변크기 / 제공: 대전시립미술관, 사진 촬영: 임장활

살펴봤듯, 인간과 생명에 대한 확장된 시각은 인류세에 사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한다. 인류세는 인간/비인간의 구분을 벗어나 확장된 타자들과의 새로운 관계망을 맺도록 요구한다. 물론, 인류세 개념의 도입에는 지질학적인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미 인류세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의 전환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가진다. 앞서 살펴본 예술가들이 인류세 시대의 새로운 관점들에 대해 발언하고 있듯이 말이다. 그렇기에 인류세의 정의나 시기 등에 관한 ‘완벽한 합의’라는 불가능한 목표에 힘을 소진하지 않았으면 한다. 인류세라는 단어가 함의하는 가능성과 방향은 단순히 지질학적인 성격에 한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 인류세는 인류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 ‘탈’인간중심주의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이러한 시도가 축적될 때, 인류세는 새로운 관점이자 하나의 태도로서 온전히 기능할 수 있다. 공존과 공생을 키워드로 인류세를 살아간다면 우리의 미래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그 경계에서 균형이 맞춰질 것이다. 대전시립미술관 또한 인류세 시대 예술 플랫폼 역할을 수행하며 그 시대정신을 구현하는데 힘을 보탤 것이다.

 


[1] 서울경제(2017-11-07), “스티븐 호킹, ”100년 이내 새로운 행성 식민지 개척 못하면 인류 멸종할 것“

[2] 자세한 내용은 마크 사피로, 김부민 번역(2019), <정상성의 종말: 지구 대재앙 시나리오>, 알마 참조.

[3] 특히 국제층서위원회(International Commision on Stratigraphy, ICS) 산하 제4기층서소위원회(Subcommisision on Quaternary Stratigraphy)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4] 인류세의 개념적 진화에 관해서는 Ian Angus(2016), Facing the Anthropocene: Fossil Capitalism and the Crisis of the Earth System, New York: Monthly Review Press 참고.

[5] Paul J. Crutzen and Eugene F. Stoermer (2000), “Anthropocene”, Global Change Newsletter 41, pp. 17-18.

[6] 2011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 지의 “인류세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Welcome to the Anthropocene)”의 특집호와 2016년 <사이언스> 지에 인류세 특유의 퇴적층을 증명하는 논문이 개제되면서 다방면으로 논의가 가속화되었다.

[7] 염지혜 작가의 홈페이지를 참조할 것(https://www.jihyeyeom.com). 또한, 동아사이언스(2014.06.16), “1000년 뒤엔 ‘플라스틱 돌멩이’가 지질학 증거?”를 참고할 것.

[8] 주간조선(2018.12.21), “230억마리 닭뼈가 뒤덮은 지구”

[9] Simon L. Lewis and Mark A. Maslin (2015), “Defining the Anthropocene”, Nature, vol. 519, pp. 171-180.

[10] 김지성, 남욱현, 임현수(2016), “인류세의 시점과 의미”, <지질학회지> 제 52권 제2호, 163-171쪽

[11] 김상민, 김성윤(2019), “물질의 귀환: 인류세 담론의 철학적 기초로서의 신유물론”, <문화/과학>, 97호, 68쪽

[12] KAIST 인류세 연구센터(https://anthropocenestudies.com). 박범순 교수는 플라스틱의 기하급수적 증가, 닭의 소비, 생물 대멸종, 핵실험에 의한 플루토늄-239의 전 지구적 증가를 인류세의 특징으로 꼽는다.

[13] 2018년 대전비엔날레에서는 대전시립미술관과 분관인 창작센터, DMA아트센터, KAIST비전관, 한국화학연구원 SPACE C#, 기초과학연구원(IBS) 과학문화센터 등 다양한 장소에서 ‘생명’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14] 이광석(2019), “‘인류세’ 논의를 둘러싼 쟁점과 테크노-생태학적 전망”, <문화/과학> 97호, 22-54쪽

[15] 클라이브 해밀턴, 정서진 역(2018), <인류세:거대한 전환 앞에 선 인간과 지구시스템>, 이상북스, 42-43쪽.

[16] 신유물론에 대해서는 김환석(2018), “사회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 신유물론”, <지식의 지평>, 25호, 81-89쪽을 참고할 것.

[17] 도나 해러웨이, 김상민 번역(2019), “인류세, 자본세, 대농장세, 툴루세: 친족 만들기”, <문화/과학>, 97호, 162-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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