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창 속 일차원적 연구자

 

전준하

schneider0104@kaist.ac.kr


“12점, 8점, 15점짜리인데 2저자니깐 대충 10점, 오 여기에도 쓰셨네. 10점, 여기는 뭐지? 모르겠다. 패스. 와 확실히 요즘 여기 많이 쓰는구나. 3점, 3점, 7점, …”[1]

공과대학 학부 시절 대학원 진학에 확신이 안 서 연구를 미리 경험해보기로 했다. 지도교수님께서 선배 한 분을 소개해주며 연구실에 나와 실험을 배우라고 하셨다. 그런데 연구실 생활 첫날 선배가 가르쳐 준 건 실험이 아니라 이력서를 읽는 방법이었다. 어떤 연구실에서 대학원 과정을 이수할지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선배가 신임 교수님의 논문 출판 목록을 훑더니 시험지를 채점하듯이 점수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선배는 그 과정을 몇 번 반복하더니 내게 괜찮은 교수님을 추천해줬다. 어리둥절했지만 연구자가 서로를 알아보는 방법이라는 생각에 멋있어 보이기만 했다.

선배가 읊던 숫자가 임팩트 팩터(Journal Impact Factor)[2] 였다는 사실을 학부 졸업 즈음에야 깨달았다. 대학원에 먼저 진학한 친구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논문 출판에 대한 이야기가 항상 나왔고, 그 때마다 임팩트 팩터는 빠지지 않는 주제였다. SNS를 통해서도 논문을 어디에 실었다는 자랑 글과 축하 댓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연구 내용과 과정이 대화 주제가 된 적은 손에 꼽는다.

공학에서 사회과학으로 전공을 바꿨지만 나도 대학원에 들어갔다. 선배들이 그만큼 강조한 걸까, 내가 과하게 받아들인 걸까. 첫 학기를 마치기도 전에 ‘빨리 논문을 출판해야 한다’는 생각이 내 머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연구분야조차 정하지 않은 석사 신입생이 ‘(논문을) 게재하거나, 도태되거나 (Publish or Perish)’라는 격언을 마음에 품고 살았다. 얼마 안 가 나는 무엇을 어떻게 연구해야 임팩트 팩터가 높은 학술지에 많은 논문을 빠르게 실을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 전략은 합리적이었다. 지도교수님이 담당하신 전공 강의계획서에 실린 논문이 어떤 학술지에 실렸는지 살펴보았다. 임팩트 팩터가 가장 높은 학술지를 골라 최근 몇 년 간 어떤 주제의 논문이 주로 실렸는지, 또 그 논문들이 얼마나 인용되었는지 찾아봤다. 그렇게 논문 검색 엔진인 Scopus, Web of Science, Google Scholar에 익숙해지고 논문 본문은 거의 읽지 않은 채로 초록만 수 백 편 훑었을 때쯤, 산학협력을 연구해야만 한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그렇게 연구분야가 정해졌다.

이제 내 눈에 들어온 건 교수 임용 정보가 올라오는 하이브레인넷과 같은 커뮤니티였다. 그 곳에선 박사 연구자가 신임 교원 지원조건을 충족하기 위해 몇 점 이상의 논문 점수를 필요로 하는지, 이 때 SCI급 학술지와 KCI 등재지는 각각 몇 점으로 쳐주는지와 같은 정보가 공유되고 있었다.[3] 출판한 논문 여러 편을 책으로 엮으면 논문과 책 모두 실적으로 인정 받지만, 반대로 책을 먼저 쓰면 같은 내용의 논문을 다시 쓰지는 못하니, 책 저술을 뒤로 미루라는 등의 ‘꿀팁’도 적지 않았다. 그렇게 학계에서 살아남는 전략을 세우는 데 골몰하던 중 다니던 대학원에서 교수를 새로 뽑는다는 소식을 들었다. 최종후보 이름을 듣자마자 나 역시 학부 시절 만난 그 선배처럼 그 분이 논문을 몇 편이나 썼는지, 어디 게재했는지, 그 학술지가 SCI급인지 아닌지, 임팩트 팩터는 얼마인지 따져보고 있었다. 물론 논문을 읽진 않았다.

 

가속화된 학계와 학계 화폐가 된 논문

나 같은 사람으로 가득 찬 학계를 상상해 본다. 모든 연구자는 이력서와 임팩트 팩터로 서로를 평가한다. 연구자들은 어떻게든 논문을 많이 써 색인시스템에 등재되고 높은 임팩트 팩터를 기록한 학술지에 출판하려고 애를 쓴다. 그들이 소속된 연구기관 역시 마찬가지다. 학술단체 역시 발행하는 학술지를 어떻게든 색인시스템에 등재하고, 학술지의 임팩트 팩터를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렇게 학계는 더 많은 논문, 더 많은 등재지, 더 높은 임팩트 팩터를 향해 나아간다.[4]

상상 속 일만은 아니다. 이탈리아의 물리화학자 우고 바르디(Ugo Bardi)는 논문을 개제하지 못하면 도태되는 분위기, 그리고 느슨한 문지기 역할의 동료평가(peer review) 제도가 학계를 논문 대량생산의 길로 이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로 인해 연구자가 논문을 너무 많이 써야하는 상황이 역설적으로 학문의 쇠퇴를 보여준다고 주장했다[5] 그는 학계의 논문이 현대 경제체제 아래 화폐와 비슷한 특성을 가짐을 보인다. (<표1> 참조) 나아가 그는 소비와 이윤 극대화를 향해 돌아가는 금융시스템이 다른 한편으로 천연자원을 착취하고 있어 지속가능하지 않듯, 학계가 그저 논문 수를 극대화하고 있는 현상 역시 절대 건강한 모습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1.    발행.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하듯, 논문 역시 인용색인시스템을 통해서만 가치를 부여받는다.

2.    지불. 논문은 그 자체로는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 연구비를 받거나 일자리를 구할 때만 화폐처럼 교환 가치가 있을 뿐이다.

3.    인플레이션. 화폐와 논문 점차 가치가 하락한다. 오래 된 논문일수록 가치를 인정받기 힘들기 때문에 개별 연구자는 계속해서 새로운 논문을 써야만 한다.

4.    이자. 화폐를 은행에 맡기면 이자가 발생하듯이 연구자는 본인의 논문 출판 목록을 지원기관에 제출해서 연구비를 받고 이를 토대로 더 많은 연구실적을 만들어낸다.

5.    유통 전 검증. 동전과 지폐가 공인기관의 검증을 거쳐 발행되듯 논문 역시 동료평가라는 검증 과정을 거친 후 유통된다.

6.    위조. 부실학술지는 위조지폐처럼 검증 없이 출판된다.

7.    악화의 양화 구축. 논문이 내용과 무관하게 모두 같은 표면적 가치를 가지게 되어 수많은 저질 논문이 양산된다.

8.    다단계 사업.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횡행하는 사업모델로 상당수의 부실학술지 역시 이를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표 1> 화폐와 논문의 공통점[6]

학계가 비단 논문 수만을 극대화하는 것은 아니다. 우고 바르디의 생각을 확장하면 논문이 실린 학술지와 그 학술지의 임팩트 팩터에 따라 논문의 환율이 달라진다고 해석할 수 있다. 논문이 얼마나 인용되는지에 따라 그 논문에 한해 인플레이션 속도를 늦추거나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경험할 수도 있다. 특허나 기술이전, 수주 연구비 등 다른 종류의 화폐 역시 존재한다. 이 화폐 가치가 모두 더해져 연구자 개개인의 값어치가 매겨지고, 더 나아가 대학이나 연구소, 국가까지도 순위가 매겨진다. 기업을 매출이나 시가 총액으로, 국가를 GDP나 경제성장률로 순위 매기듯 말이다.

몸값을 구성하는 성과 지표에는 상한선이 없지만, 연구비와 일자리는 한정적이다. 따라서 경쟁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성과 지표 극대화를 향해 굴러가는 학계 안에는 논문을 끊임없이 게재하기 위해 동시에 여러 연구과제를 수행하는 연구자들이 있다. 그들은 학계에서 늘어만 가는 논문 수 이전에 모든 면에서 빨라져만 가는 속도를 경험한다. 체코의 이론사회학자 필립 보스탈(Fillip Vostal)을 필두로 한 연구그룹은 이 현상을 ‘가속화된 학계(Accelerated Academy)’라고 명명하고 같은 이름의 학술세미나를 개최한다.[7] 여기서 가속은 연구자들이 논문을 개재하는 속도가 빨라졌다는 것뿐만 아니라, 연구자들이 느끼는 시간 압박이 커졌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현실 속 연구자는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에 연구하고 논문 쓸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반면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해당 연구분야에서 인정받기 위해, 자기 만족을 위해 요구되는 성과 기준은 높아져만 가기 때문에 갈수록 시간이 부족해진다.

역설적이게도 학계를 가속시키는 사람과 떨어져나가는 사람 모두 신진연구자들이다. 이미 자리를 잡은 선배 연구자와 다르게, 그들은 논문을 적잖이 개재하고도 심심치 않게 도태되곤 한다. 때문에 끝없는 압박과 불안, 스트레스는 그들에게 일상이 되어버렸다. 실제로 최근 박사과정 학생을 비롯한 이들의 정신건강상태가 심각하다는 연구결과가 연달아 나오고 있다.[8]

그림1-2

<그림 1> 기성연구자가 ‘논문을 개제하기 않으면 도태될 때’, (좌측) 신진연구자는 ‘논문을 게재해도 어쨌거나 도태된다. (우측) [9]

이들의 간절한 호소에 누군가는 지도교수나 선배 연구자의 조언과, 체계적인 정신건강관리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10] 하지만 당장 증상 완화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을까. 나 역시 스트레스와 불안을 못 이겨 지도교수님에게 하소연한 적이 있다. 마음 한 켠에는 논문 작성보다 강독에 온전히 집중된 학과 커리큘럼에 대한 불만도 있었다. 내가 징징대는 동안 교수님께서 조용히 들으시더니 한마디로 나를 돌려보냈다. “어차피 좋은 연구를 하는 사람은 좋은 자리에 가게 되어 있어요.” 당신이 교수이셨기에 할 수 있는 말씀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한 명의 교수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기도 하다.

도망치듯 다른 학과에서 들은 수업은 하나같이 실용적이었다. 연구 주제 정하기, 주제와 관련된 학술지 살펴보기, 최근 경향의 연구 방법론과 관련한 자료 찾기, 학술지 편집진의 의향을 파악하고 논문 쓰기. 강의의 모든 것이 효율적인 논문 출판 전략에 맞춰져 있었다. 수업을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교수님 한 분은 중간고사 기간에 학생 한 명 한 명을 만나가며 연구계획서나 논문 초안을 읽고 의견을 주기도 하셨다. 논문을 쏟아내진 않아도, 이른바 ‘탑저널’에 꾸준하게 논문을 실어온 분께서 다른 학과 학생에게도 열정을 보여주시니 고마울 따름이었다. 당시 나는 대학창업정책에 관심이 많았는데, 선행연구가 거의 다루지 않은 생계형 창업을 설명하는 이론을 만들고자 사례 분석과 인터뷰를 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교수님이 손사래를 치며 말씀하셨다. “안돼 안돼. 그런 연구는 대가들이 하는 거고, 그렇게 해서는 탑저널에 출판하기 어려워.” 아차, 연구분야도 전략적으로 골랐으면서 왜 주제와 방법론 같은 연구내용 역시 전략적으로 택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했을까.

 

성과지표로 구성된 연구자 자아와 동료평가

사실 학계는 전부터 일종의 금융시스템이면서 경쟁사회였다. 바르디와 보스탈을 비롯한 ‘가속화된 학계’ 연구단의 논의가 새로운 것은 금융시스템과 경쟁사회로서의 학계가 작동하는 방식의 변화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학계에서 통용되던 화폐는 인정이었다. 연구자는 논문 수 이전에 저자 명단을 신경 썼다. 저작권 문제와 별개로 표절은 인정을 가로채려는 시도이기 때문에 연구윤리에 어긋나는 행위로 여겨졌다. 연구자는 인정을 쌓아 명성을 구축하고, 일자리를 찾고, 연구비를 받았다.

학계는 최초만 인정한다. 미적분 개념의 최초 고안자 자리를 두고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벌인 갈등은 유명하다. 여전히 많은 연구자가 진행 중인 연구를 스쿱당할까봐[11] 걱정하는 이유다. ‘일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에서 경쟁이 치열한 건 당연지사다. 학계는 원래 인정을 놓고 벌이는 경쟁사회였다.

인정은 상호작용에서 비롯된다. 누군가를 인정하기 위해서는 그가 연구한 내용을 직접 파악하거나, 최소한 같은 연구분야에서 활동하는 다른 연구자들의 평가를 듣고 본인이 판단해야만 한다. 아인슈타인이 위대한 과학자로 역사에 남은 건 그가 단순히 논문 300여 편을 쓰고, 그것들이 저명한 학술지에 실려, 인용이 많이 되었기 때문은 아니다. 그의 논문을 직접 읽은 과학자들이 이를 바탕으로 그의 연구를 평가하고 업적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인정에 기반한 학계에서 연구자 개인의 자아정체성은 서로를 끊임없이 평가하고 인정하는 연구자들의 연결망 속에서 구성되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연구자 자아정체성은 성과 지표로 구성된다. 연구자의 이력서에는 연구 주제나 중요성 대신 끝없이 긴 논문 출판 목록이 나열되어 있다. 동시에 학계에선 제대로 된 동료평가 문화가 사라져간다. 굳이 바쁜 시간 내어 다른 연구자가 무엇을 연구했는지, 연구 과정과 결과는 타당한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따질 필요가 없다. 두 명 남짓한 익명의 평가자가 통과시켰으니 논문으로 출판되었겠지 싶다. SCI와 같은 인용색인에 등재된 학술지면 더더욱 믿을만하다. 연구자들은 평가를 아웃소싱 했고, 그 자리는 인용색인시스템과 성과지표가 채워왔다. 이것 없이 학계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즉 학계는 더 높은 성과지표가 인정을 대체한 금융시스템이자 경쟁사회가 된 것이다.[12]

각종 성과지표는 크게 두 가지의 정당화 기제를 통해 학계의 새로운 작동원리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첫째, 다양한 규모의 연구활동을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만들었다. 둘째, 기준과 근거가 불명확한 인정에 비해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라는 인식을 등에 업고 연구자와 연구 평가의 척도가 되었다.

하지만 첫번째 기제는 이미 앞에서 지적했듯 학계를 오히려 지속가능하지 않게 만들었다. 성과지표 관리로 나타나는 생산성과 효율성의 증가 또한 그저 착시라는 사실 역시 잘 알려져 있다.[13]

두번째 기제 역시 연구평가에서 합리성과 객관성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고민할 여지가 충분히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미셸 라몽이 관찰한 동료평가 현장은 학문적 우수성을 단순하게 재어 뛰어난 연구를 뽑는 곳이 아니었다.[14] 그곳의 연구자는 독창성, 방법론, 수행가능성 등의 다양한 기준을 두고 의견을 주고받으며 각 기준의 의미와 비중을 조정했다. 평가 대상이 다르게 해석되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개인이나 학문분과의 가치가 충돌하기도 한다. 요컨대 복잡한 과정 끝에야 합의가 이뤄지고 평가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성과지표에는 그런 과정이 결여되어 있다. 지표가 어떤 특성을 가지는지, 어떤 가치를 담고 있거나 배제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도 부족하다. 미셸 라몽은 성과지표가 정말 합리적이고 객관적일 수 있는지, 다시 말해 연구평가 방식을 정할 때 합리성과 객관성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 묻는다. 더 나아가 한계를 인지하면서도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해 노력하는 연구자들보다 성과지표가 나은 게 무엇인지, 그저 성과지표가 숫자이기 때문에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그림2

<그림 2> 대학 신임교수 임용 시 지원자도 검토자도 논문 점수 계산에 여념이 없다.[15]

 

철창 속 일차원적 연구자에서 벗어나기

뉴스타파가 지난 1년간 탐사보도를 통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한 끝에 학계 안팎으로 부실학술활동이 커다란 화제가 되었다.[16] 참가비만 내면 누구나 연단에 서서 아무 말을 해도 되는 무의미한 부실학술대회, 아무렇게나 쓴 글도 게재료만 내면 논문으로 실어주는 부실학술지, 그리고 여기에 연구비를 쓰고 그 결과를 실적으로 제출한 연구자들은 전 국민으로부터 큰 공분을 샀다. 과기부와 교육부는 보도에 언급된 학회에 참석한 연구자들을 파악하고 징계를 단행했다.[17] 심지어 신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후보자까지 부실학술대회 참석 논란으로 낙마했을 정도니 사태의 파급력은 결코 작지 않았다.

사태 이후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가 연구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보고서를 통해 학계가 부실학술활동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볼 수 있다.[18] 연구자들은 사태의 주요 원인으로 ‘양적 연구사업 평가 지표’(34%)와 ‘연구자 개인의 학문적 부도덕성’(33%)을 꼽았다. ‘학계 내부 무관심, 방관, 건전 견제 상실’을 지적한 사람은 둘의 절반도 안되는 14%였다. 책임지고 나서야 할 기관으로는 ‘연구사업 관리기관’과 ‘정부 부처’가 각각 34%, 24%로 가장 많이 언급되었다. 반면 학문공동체의 기초단위라고 할 수 있는 개별학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답한 사람은 8%밖에 되지 않았다. 연구자들의 인식은 뉴스타파를 비롯한 여러 언론사 보도에도 영향을 미쳤고,[19] 궁극적으로 올해 5월 정부가 사태 수습을 마무리하며 발표한 정책 개선안에 깊게 반영되었다.[20] 부실학술활동을 문제로 보고, 그 원인으로 양적 연구평가와 연구윤리를 지목하고 둘 사이에 인과관계를 적용한 것이다.

앞서 연구자들과 정부가 규정한 인과관계에 따르면 양적 평가를 질적 평가로 전환하고 연구자들에게 연구윤리 교육을 실시하면 부실학술활동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하지만 부실학술활동을 섣불리 문제로 정의하기엔 부실학술활동의 범위조차 모호하다. 부실학술활동을 널리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한 전문사서 제프리 비올(Jeffrey Beall)조차도 그가 만든 부실학술출판사 블랙리스트에 ‘아마도 잠재적으로 약탈적일 가능성이 있는 학술출판사(Potentially, possibly, or probably predatory publishers)’라고 이름 붙였을 정도다. 해결방안 역시 공허해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질적 평가를 어떻게 한다는 것인가? 실적란에 적을 수 있는 논문 수를 5개로 제한하는 대신 피인용수와 논문이 실린 학술지의 임팩트 팩터를 적으면 질적 평가를 할 수 있는 건가? 연구윤리 역시 마찬가지로 언론이 문제 삼으면 그제서야 연구윤리위반행위 목록에 내용을 추가하는 식으로는 의식을 제고할 순 없어 보인다.

나는 부실학술활동이 출현하고, 양적 연구평가가 제도로 자리잡고, 연구자의 연구윤리의식이 부족한 것을 모두 같은 원인에서 생겨난 현상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그 원인은 다름 아닌 성과지표가 연구자의 자아 정체성을 구성하고 있고, 그 연구자들이 다시 성과지표의, 성과지표에 의한, 성과지표를 위한 학계를 구성하고 있는 현실이다. 연구자들과 정부는 성급히 해결책을 내놓는 대신, 이 불편한 진실을 하루 빨리 깨닫고 먼저 학계의 현실을 진단하고 점검하기 바란다.

나는 연구자로서 생계 유지에 대한 불안과 압박이 끝없이 이어질까 두려워 이룬 것 없이 대학원을 나왔다. 시도 때도 없이 몰려오는 두려움은 내 끈기와 실력 부족 때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 밖에서 그 때를 다시 돌이켜보니 내가 정말 두려워했던 것은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보다 성과지표로 모든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철창과 같은 학계 속에서 성과지표만 극대화하는 일차원적 연구자가 되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내 연구자로서의 자아 정체성을 다른 연구자들과의 끝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찾고 싶다. 내 연구가 그저 이력서 길이를 늘리고 또다른 연구비를 가져오는 게 아니라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구성하는 학계에 기여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학계도 보다 천천히, 하지만 단단히 발전했으면 한다.

 


[1] 본문에 나오는 내 주변 사람들의 발언은 따로 녹취·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실제로 한 말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힌다. 하지만 아직도 그 말을 들은 순간이 생생하게 떠오를 만큼 내게 큰 영향을 준 기억임에는 틀림없다.

[2] Clarivate Analytics라는 회사가 운영하는 학술지인용색인 플랫폼 Web of Science가 해당 플랫폼 산하 인용색인에 등재된 학술지에 대해 매년 발표하는 학술지 단위 인용지표다. 한 학술지가 지난 2년간 인용된 횟수를 해당 학술지에 실린 논문 수로 나눠 계산하기 때문에 정확히 표현하면 과거 2년간 평균 피인용 횟수다. 직역하면 학술지 영향력 지수이나, 피인용 횟수가 곧 영향력은 아니기 때문에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이 글에서는 지표 이름 그대로 적는다.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번역보다 주로 ‘임팩트 팩터’라고 불린다.

[3] 미주 2번에서 언급한 Web of Science 산하 SCI(Science Citation Index)를 비롯한 총 4개 인용색인(SCI의 확장판인 SCIE, 사회과학 분야의 SSCI, 인문학 분야의 HCI)에 등재된 학술지를 SCI급 학술지라 통칭한다. 경우에 따라 국제학술출판사 Elsevier가 운영하는 인용색인 Scopus 등재지를 포함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한국연구재단이 국내 학술지를 대상으로 KCI(Korea Citation Index, 한국학술지인용색인)를 운영하고 있다. 등재지와 등재후보지로 나뉜다.

[4] Michael Fire and Carlos Guestrin (2019), “Over-optimization of academic publishing metrics: observing Goodhart’s Law in action”, GigaScience 8 no. 6, giz053.

[5] Ugo Bardi (2014.8.11), The decline of science: why scientists are publishing too many papers. https://cassandralegacy.blogspot.com/2014/08/the-decline-of-science-we-are.html

[6] 위와 동일.

[7] ‘가속화된 학계’ 연구그룹 학술세미나 정보는 다음 웹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accelerated.academy) 연구그룹에서 작성한 글은 다음 웹사이트에서 읽을 수 있다. (https://blogs.lse.ac.uk/impactofsocialsciences/the-accelerated-academy-series/)

[8] 예를 들어, Katia Levecque et al. (2017), “Work organization and mental health problems in PhD students.” Research Policy 46, no. 4, pp. 868–879. 연구논문은 아니지만 아래 기사도 참조하라. Guardian (2017.8.10), “The human cost of the pressures of postdoctoral research”.

[9] (좌측) Newspaper Enterprise Association (1992), “Berry’s World” http://1.bp.blogspot.com/-NmLhQF6vgoM/Tmek1dvNcul/AAAAAAAAAZY/h7zjGWC1haY/s1600/publish.gif

(우측) Nick Mortimer (2014), “Publishing your thesis”, New Zealand Journal of Geology and Geophysics. 57 no. 4, p.355.

[10] Nature (2019), “Being a PhD student shouldn’t be bad for your health”, Nature 569, no. 307.

[11] 진행 중인 연구를 다른 연구자/그룹이 먼저 출판했을 때 스쿱당했다(get scooped)고 표현한다.

[12] 2011년 말 교육과학기술부는 등재 절차가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등재지에 게재된 논문의 약 80%가 전혀 인용되지 않는 등 여러 비판을 검토하여 학술지 등재제도를 폐지하고 학계 자율평가를 유도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2년간 대학과 학회를 통해 의견수렴을 한 결과 학술지 등재제도를 개별 연구자 학술활동부터 대학교원업적평가까지 광범위하게 활용하고 있는데 대안이 마땅치 않다며 제도를 유지해야한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아 결국 유보 결정이 내려졌다. 수많은 연구자가 학술지 등재제도를 두고 해당 제도 운영 및 관리 기관인 한국연구재단 전신 학술진흥재단 이름을 붙여 ‘학진체제’ 운운하며 거세게 비판해왔던 것을 고려하면 이는 굉장히 상징적인 사례다. 다음 기사들을 참고하라. 동아일보(2011.12.08), “교수들 ‘실적 쌓기용’ 학술지 등재제도 없앤다”; 대한민국 정책브리핑(2013.07.19), “학술지 등재제도 유지·보완 추진”; 한국대학신문(2013.07.23), “학술지 등재제 유지 결정은 사필귀정”.

[13] 성과 측정을 위해 성과 지표를 선정하여 적용하는 순간 그 지표는 쓸모가 없어진다는 사실은 ‘굿하트의 법칙(Goodhart’s Law)’ 또는 ‘캠벨의 법칙(Campbell’s Law)’로 알려져 있다.

[14] 미셸 라몽, 정준영 번역 (2011), <교수는 무엇으로 판단하는가: 동료평가를 통한 학문적 수월성의 발견과 구성>, 지식의날개.

[15] 신인철(2019.03.25), “조교수 블루스 제87화,” KOSEN 웹진.

[16] 다음 웹사이트를 참고하라. (https://newstapa.org/tags/가짜학회) 부실학술활동 논란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시발점이 된 첫 기사 뉴스타파(2018.7.19), “’가짜학문’ 제조공장의 비밀”을, 몇몇 기사를 통해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경우 뉴스타파(2018.11.6), “현직 교수, 페이퍼컴퍼니 끼고 ‘다단계 학회 사업’”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17] 대한민국 정책브리핑(2019.5.13), “교육부·과기정통부, 책임 있는 대학의 연구문화 확립에 나선다”

[18] BRIC, 한겨레 미래&과학(2018.09.10), “유사학회 와셋(WASET) 사태 인식과 대응방안 의견조사”

[19] 예를 들어, 뉴스타파(2018.8.2), “실적 부풀리기 양적평가가 ‘가짜학회 참사’ 불렀다연구평가 지적 기사”

[20] 교육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2019.5), <정직하고 책임 있는 연구문화 정착을 위한 대학 연구윤리 확립 및 연구관리 개선방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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