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을지로 일대 생산네트워크의 기술적 조건에 대한 어떤 질문

도시상공업연구소(준) 연구원

최혁규

misueno4@gmail.com


 

 

힙스터의 성지’ 혹은 재개발 대상지

최근 몇 달간 많은 시간을 청계천과 을지로 주변에서 보내고 있다. 어쩌면 ‘힙지로’라고 해야 더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이제 을지로는 낡은 공구상가나 제조공장이 있는 도심제조업 지역이 아니라, 뉴트로(new+retro) 문화를 소비하고 향유할 수 있는 ‘힙스터의 성지’가 되었다. 몇 년 전부터 을지로 골목에 위치한 가게들이 SNS를 통해서 간간이 알려지더니, 어느새 청년층이 주로 찾는 ‘핫플레이스’가 됐다. 세월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도심 지역의 오래되고 후미진 이미지가 젊은 층의 감수성을 자극하고 있다. 한편, 노가리 골목 밖 청계천 쪽 도로에는 ‘청계천 생존권사수 비상대책위원회’의 상인들이 천막 농성을 하고 있고, 길 건너 입정동은 끝자락에 펜스가 쳐진 채 철거가 진행 중이다. 이 구역은 오랫동안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많은 문화예술가들이 을지로 전반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고, 세운상가 일대 도시재생 사업이 지역 산업 활성화를 목표로 ‘메이커 시티(maker city)’와 ‘도심 창의제조산업의 혁신지’를 새로운 구호로 내걸자 재개발 위험은 시야에서 가려졌다. 하지만 작년 말 갑자기 입정동 일대의 철거가 시작되면서 청계천과 을지로의 재개발 논란이 재점화됐다. 현재 철거 중인 세운 3-1/4/5 구역 외에도 다른 곳들이 재개발 대상지로 설정되어 있다. 그곳의 상공인들은 자기 사업장이 언제 철거될지 몰라 불안해한다. 이렇게 청계천과 을지로 지역은 자생적으로 지속해온 생산활동을 밀어내려는 재개발 충동과 그에 저항하는 세력의 쟁투, 도시재생이라는 명분으로 이 지역을 새로운 기술혁신지로 포장하려는 정책적 힘, 그리고 노스텔지어적 소비문화에 대한 열광이 서로 묘하게 긴장감을 이루고 있다.

 

<그림1> 을지로 일대의 풍경

 

청계천을지로 일대를 떠도는 재개발이라는 유령

최근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재개발 문제와 관련이 깊다. 물론, 이전부터 이 지역의 도시제조업과 전자상가 그리고 기술자에게 관심을 두고 있었으나, 본격적으로 현장으로 들어오게 된 계기는 재개발이다. 청계천·을지로 재개발의 쟁점을 알기 위해서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를 간략하게 살펴보자.[1]

1945년 소개공지(疏開空地)로 고시된 청계천 일대에는 해방 이후 무허가 판자촌이들어섰다.[2] 1966년 ‘불도저’ 김현옥 서울시장이 무허가 건물과 판자촌을 철거하고 이듬해부터 세운상가를 세우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면 종묘 앞부터 퇴계로까지 8개의 건물(현대, 세운 가동, 청계, 대림, 삼풍, 풍전, 신성, 진양)이 들어섰다. 그 당시 세운상가는 김수근 건축가가 설계한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로 평가받으며 세간의 이목을 끌었으나, 1970년대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쇠퇴하기 시작한다. 1977년에는 전기와 전자 업종이 도심부적격 업종으로 지정되었고, 1979년 처음으로 세운상가의 일부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이렇게 보면 1979년부터 지금까지 거의 40년째 재개발의 유령이 이 주위를 맴돈 셈이다.

1979년에 본격적인 재개발 조치도 시작되었다. 1987년 용산전자상가가 개장하면서 세운상가 일대의 전기전가상가를 용산으로 이주하는 정책이 시행되었다. 이에 따라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상권이 쇠락했다. 이후 2003년 이명박 서울시장은 청계천 복원 사업을 통해 이 일대의 재개발을 다시 시도한다. 이명박은 시민에게 자연과 여가를 제공하겠다고 천명하면서 청계천에 문화와 생태의 이미지를 부여했지만, 이 퍼포먼스는 결국 부동산 효과를 위한 것이었다.[3] 2006년에는 세운상가의 철거와 주변 지역의 개발을 위해 이 일대가 세운재정비촉진지구로 고시되었다. 2008년 오세훈 서울시장은 세운상가를 2015년까지 녹지로 바꾸려는 계획을 세우고, 세운상가의 시작점인 현대상가를 허물고 녹지공원을 조성하려 했다. 하지만 금융위기의 여파로 계획은 실패하고 만다. 이후 후임 박원순 시장은 세운상가를 존치하기로 결정했고, 2014년 세운상가 일대가 도시재생 활성화 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분리 개발 방식이 도입되어 기존의 재정비 촉진지역이 지구 단위로 나뉘게 되었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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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세운재정비촉진지구[5]

 

비록 세운상가 일대 도시재생 활성화 사업이 상가 건물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지만, 주변 지역 전체를 산업생태계로 간주하려는 태도도 지속적으로 보였다. 이에 재개발 문제 또한 조금씩 시야에서 사라져갔다.[6] 그러나 2018년 말 세운 3-1/4/5 구역에 펜스가 세워지며 철거가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이에 상인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여 수표교 주변에서 재개발 반대를 위한 농성에 들어갔다. 이 일대에서 활동하던 디자이너·기획자·작가·메이커·연구자·시민 등이 상인과 함께 이 지역을 지키기 위한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라는 자발적인 조직을 만들고, 이 역대를 ‘제조산업문화특구’로 지정하라고 요구하면서 재개발 반대 운동이 시작되었다. 이런 움직임에 응답하여 2019년 1월 박원순 시장은 이 일대의 재개발을 전면 보류하겠다고 선언했다.[7]

반년이 지났다. 비대위와 보존연대는 이 지역의 산업적·역사적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산업생태계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고, 현재 철거가 진행 중인 세운 3-1/4/5 구역에 문제가 없는지 감시하고 있으며, 서울시와 시행사를 향해 시위하고,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한 여러 활동을 지속 중이다.[8] 한편, 서울시는 3월에 <세운재정비촉진계획 재정비 수립 용역>을, 6월에는 <역사도심 생활유산 실태조사 및 관리방안 연구 용역>을 발주하며 나름의 대책을 세우는 중이다. 시행·시공사는 상공인을 중심으로 이주를 종용하고, 거리에는 벌써 세운 힐스테이트 분양 광고가 휘날리고 있다.

 

연구자로서의 개입, 민족지적 현장연구의 시작

이제 이런 복잡한 현장에서 ‘우리’가 어슬렁거리면서 무엇을 왜 하고 있는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우리는 ‘도시상공업연구소(준)’라는 이름으로 모여있는 서로 다른 분과의 연구자(지망생)들이다. 재개발 사태가 터지면서 이 지역에 관심이 있는 도시계획, 문화연구, 도시사회학, 기록학, 건축학, 인류학 등의 학문 연구자가 모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매주 만나 관련 문헌을 읽고 답사를 하면서 연구자의 입장에서 개입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는 매주 청계천과 을지로 골목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소규모 상점이나 공장에 들어가 이것저것 묻고 다닌다. 하지만 아직은 우리를 반기는 분보다는 퉁명스럽게 대하는 분이 더 많다. 아마 비슷한 내용으로 설문조사나 인터뷰를 진행했던 사람이 많았고, 또한 지역의 문화와 습속을 잘 모른 채 이것저것 묻는 우리를 ‘뜨내기’로 보고 귀찮아했을 수도 있다.[9] 좌절할 때도 있지만 언젠가 마음을 여실 것으로 생각하면서 꿋꿋하게 현장을 돌아다니고 있다.

 

<그림3> 입정동과 산림동 일대 골목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우리가 하는 것은 민족지 연구(ethnographic research)이다. 일종의 ‘도시 민족지’ 혹은 ‘산업 민족지’라 부를 수 있겠다. 민족지 연구는 현장에서 지역민의 행위, 사고방식의 조건이 되는 상징체계, 물질적 토대를 유추하여, 이들 삶의 총체적 양식을 파악하는 사회과학 연구 방법이다. 우리의 민족지 연구는 청계천·을지로 일대 도시 상공업의 역사적 형성, 상공업과 도시 형태의 관계, 소상공인들의 삶의 방식, 여기서 만들어지고 있는 제품들의 제조와 유통 과정, 그리고 암묵적 지식 등을 해명하려 하고 있다. 현재는 그 중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10] 청계천과 을지로에서 생산되는 제품이 어떤 업체의 어떤 공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지 연결점을 따라가며 기록하는 것이다.

이는 생산네트워크를 파악하기 위해 우리가 택한 일종의 전략이자 우회로이다. 상품 생산을 추적하면 산업생태계를 우회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우리는 이를 실증적인 사례로 제시하며 이 일대가 보존·유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할 요량이다. 선행연구에 따르면,[11] 청계천·을지로 일대는 지대가 높은 도심부 중앙임에도 불구하고 영세한 소규모 제조업이 밀집되어 있다. 이것은 자생적인 ‘산업생태계’ 또는 ‘생산네트워크’를 통해 지속된다고 연구는 분석한다. 하지만 이는 대부분 2010년 이전의 상황을 분석하여 나온 결과다. 따라서 예컨대 2014년 세운상가 일대의 도시재생사업이 상승시킨 임대료가 지역 산업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와 같은 이후의 상황은 충분히 반영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제품 생산을 추적하여 생산네트워크가 현재 어떻게 작동하는지, 재개발로 무엇이 어떻게 변화 중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물론 현장은 매 순간 변하기에 이것 또한 특정한 순간과 단면에 불과하겠지만 말이다.[12]

 

생산네트워크의 블랙박스, 현장 경험과 기술복제를 통한 기술숙련화

앞서 말했듯, 대부분의 연구는 산업 생태계나 생산네트워크가 존재해 이 일대를 존속시킨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부분에 주목하고 있다. 바로 소공인의 ‘전문적인 기술력’으로, ‘기술자들의 기술 숙련화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다.[13]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기술력은 현장에서 도제식으로 습득되고 숙련화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소위 불법으로 치부되는 기술복제를 통해서 숙련화되는 경우도 있다. 따라서 이 지역의 기술력을 언급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비공식적인 기술의 역사를 해명해야 한다. 이는 기술의 습득과 숙련화 과정이 비제도적이고 비합법적이라고 문제를 제기하는 게 아니다. 그동안 비공식적으로만 다뤄졌고 그래서 블랙박스로 남겨진 기술력의 구체적인 형성 과정을 규명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우선, 현장 경험을 통한 기술 습득과 숙련화를 살펴보자. 청계천·을지로 일대 소공인은 비공식적으로 그들의 기술을 숙련화하고 전문화했다. 입정동과 산림동 일대의 기계제조업 기술자들은 대개 친척이나 지인의 소개로 이곳의 종업원으로 일하기 시작했고, 현장에서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며 기계 사용법과 노하우를 습득했다.[14] 우리가 만난 기계제조기술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밥도 먹여주고 일도 알려준다고 해서 무임금으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시보리(spinning)’ 기술을 배워 지금까지도 그 기술로 먹고살게 되었다고 한다. 나아가 중국과 일본에서 자신이 보유한 기술을 배우려고 사람들이 찾아온 적도 있다며 자부심을 표현하기도 했다.

그림4

<그림4> 시보리 기술자의 숙련된 기술

두 번째는 기술복제라는 문제다. 장사동이나 예지동 일대에서 전기·전자 제품을 파는 업체는 해방 직후 고물상들이 일본 공장에서 나온 공구를 거래하기 시작하면서 형성되었다. 이들은 한국전쟁을 전후로 미군 부대에서 나온 무전기와 진공관, 콘덴서, 저항 등의 전기·전자 제품을 분해·조립·수리하고 거래하며 지금의 기술시장을 형성했다.[15] 또한 빽판과 전자 오락기, 해적판과 에로 비디오 등이 이곳에서 제작되고 암암리에 거래되었다.[16] 청계천 일대는 언더그라운드와 하위문화가 탄생할 수 있었던 비공식적인 기술복제와 암거래의 장소였다. 이곳의 기술자들은 이런 종류의 수리와 복제를 경험하며 기술을 습득하고 숙련화했다.

하지만 이들의 기술은 중요한 연구주제로 다뤄지지 못했다. 이들은 기술교육제도에서도 주요하게 다뤄지지 못했고, 주류 기술사나 산업사 연구에서도 주목받지 못했다. 가령, 1960-80년대 기술인력 양성에 대한 연구는 주로 국가 주도의 기술교육과 기능인력 공급체계에 주목한다.[17] 엔지니어에 대한 연구도 제도의 맥락에서 주로 다뤄진다. 이는 국가의 입장에서 기술을 사고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이들의 기술 숙련화와 기술복제는 여전히 구전으로 전해지거나, 연구를 통해 살짝 언급되며 일종의 블랙박스가 되었다. 하지만 산업생태계와 생산네트워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라도 이 요소는 꼭 해명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현장 연구를 통해 이 질문에 대해 어떻게 답할 수 있을지 계속 고민 중이다.

 

격동하는 현장에서 마주하는 문제들

 지금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는 서로 모순되는 여러 힘이 중첩되고 충돌하고 있는 격동의 현장이다. 우선, 도시재생과 재개발이라는 서울시 도시정책의 오른손과 왼손이 모두 관여하면서 행정의 모순적인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 과정에서 철거와 재개발을 추진하는 자본의 욕망과 이에 반대하는 상인들과 시민들의 분노가 서로 충돌하면서 도시의 모습을 재구성해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이 지역을 재편하고자 했던 도시정책의 여러 시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재구축하면서 끈질기게 생존하고 지속해온 도심부 생산활동의 역사적 장소가, 노스텔지어적 감수성의 확산으로 인해 ‘힙스터의 성지’로 추앙받으면서 소비문화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현장에서 지금 서울시는 기존 산업생태계를 유지하면서 대안적인 지역산업정책을 세우려 하고 있다. 즉, 재개발에서 배제되고 있는 상공인들의 권리를 지켜내고, 역사적으로 축적되어 온 산업적·문화적 힘을 토대로 하여 기존의 생산활동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적 방향을 제시하려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산업생태계나 생산네트워크의 작동방식을 규명하는 일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새로운 계획이 수립되지 않으면, 이 지역이 지속성을 담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이 지역을 제조와 같은 생산활동에 기반한 상공업 지역으로 지속하기 위해서는, 이를 지탱하고 있는 숙련기술이라는 블랙박스가 해명되어야 한다. 학술적인 차원만이 아니라, 도심부 제조업의 노동력과 기술력의 재생산이라는 실용적인 차원에서도 필수적인 과제다. 물론 이는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의 기술적 토대의 비공식성을 인정하고 쟁론한다는 조건 하에서만 가능하다.

 


읽을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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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2010), <도심 속 상공인 마을: 도심 상공인들의 생활문화>,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생활문화자료조사’ 중 세운상가 일대의 생활문화를 조사한 자료집이다. 이 책에는 청계천과 을지로 일대 상공인들의 경제활동과 사회적 관계망, 구술생애사 등이 담겨져 있다. 특히 기계제조업공장의 분업과 협업의 생산 체계와 작업 공정을 다루고 있는 부분을 읽으면, 이곳을 왜 ‘거대한 공장’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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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별(2013), “서울 도심부 도시형태 및 생산활동 변화에 대한 제도주의적 해석”,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도심 속 상공인 마을>이 생산의 내적 요소인 생산네트워크의 연계를 보여주고 있다면, 이 연구는 도심제조업 생산의 외적요소로서의 도시형태 변화에 주목한다. 신경제 혹은 지식기반경제 등으로 표상되는 후기산업사회로의 전환과 정부정책의 의도적인 배제 그리고 높은 지대로 인한 입지경쟁에도 불구하고, 도심부에 밀집하고 있는 제조업들이 어떻게 스스로의 형태와 기능을 재구성하면서 이에 대응하고 있는지를 밝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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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원(2017), “청계천 전자상가, 복제의 기술문화, 디지털문화의 형성”, <IDI 도시연구>, 제11호, 37-78쪽.

위 연구가 도심 상공업의 연계망과 도시형태를 설명한다면, 이 논문은 청계천 기술시장의 작동원리를 파악한다. 제도×기업×인물 중심의 주류 역사 서술과 달리, 논문은 청계천 전자상가라는 ‘암시장’에서 이루어진 ‘기술복제’를 중심으로 기술문화와 디지털문화의 형성을 그려낸다. 이는 포스트-식민주의 한국에서 기술문화의 형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통찰을 던져줌과 동시에, 언더그라운드 대중문화와 인터넷 하위문화의 물질적 토대를 해명할 수 있는 단초를 제시한다.

 


 

[1]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자세한 역사는 다음 자료집을 참고하라. 서울역사박물관(2010), <세운상가와 그 이웃들: 산업화의 기수에서 전자만물시장까지>, 서울역사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2015), <인현동: 세상을 찍어내는 인쇄골목>, 서울역사박물관.

[2] 청계천 일대의 판자촌 생활은 다음 저서에 담겨있다. 최협(2012), <판자촌 일기 – 청계천 40년 전>, 눈빛; 노무라 모토유키(2013), <노무라 리포트 – 청계천변 판자촌 사람들 1973-1976>, 눈빛.

[3] 김병욱, 엄정윤, 김승현(2010), “청계천 공간의 변화와 시기별 미디어 담론 변화에 대한 일 사례 고찰: 조선일보의 1960년대, 1980년대, 2005년대 담론을 중심으로”, <한국언론정보학보>, 통권 51호, 42쪽.

[4]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의 추진경위와 추진현황은 서울시 중구청에서 제공하는 다음 웹페이지를 참고하라(http://www.junggu.seoul.kr/content.do?cmsid=12410) 2003년부터 진행되었던 청계천 복원 사업과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된 이후의 과정에 대해서는 다음의 보고서를 참고하라. 서울특별시(2006), <청계천복원 사업백서>, 서울특별시; 서울특별시 도심재정비1담당관(2009), <세운재정비촉진지구 그 과정의 기록>, 서울특별시.

[5]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웹페이지

[6] 대표적으로 <세운상가 산업지도>라는 산업 현황 공유 플랫폼을 만들어 이 일대 제조 자원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서로 연계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보려 했다(http://sewoonmap.net).

[7] 서울특별시(2019.01.23), “서울시, 세운상가 일대 도심전통산업과 오래된 가게(老鋪) 보존 추진”.

[8]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의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공식 계정에서는 재개발 진행 상황과 이에 대처하고자 하는 보존연대의 여러 활동에 대한 소식을 접할 수 있다.

[9] 이 일대의 상공업은 주로 단골과 거래하는 방식으로 주문생산이 이뤄지는데, 이런 문화를 잘 모르고 온 사람을 ‘뜨내기’라고 부른다. 뜨내기에 대한 구술자료는 다음을 참고할 것. 서울역사박물관(2010), <도심 속 상공인 마을>, 서울역사박물관.

[10] 제품 생산 과정을 추적하기 위해 서울시립대 세운캠퍼스와 세운협업지원센터 기술중개소의 도움을 받았다. 세운상가 도시재생을 담당하고 있는 이들 또한 재개발로 산업생태계가 파괴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11]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상공업을 다룬 대표적인 연구에는 다음이 있다. 강우원(1996), “서울 도심부 제조업의 입지특성 연구”, <서울학연구>, 7호, 191-224쪽; 김용창(1997), “서울시 토지이용에서 위치이용의 지역적 특성과 도심부 소규모사업장의 존재양식”,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송도영(2001), “청계천 공구상가의 형성과 일상적 관계망”, <청계천: 시간,장소,사람 – 20세기 서울변천사 연구1>, 서울학연구소; 남기범(2001), “청계천로변 전문상가의 신산업집적체형성과 사회적 자본의 특성”, <한국경제지리학회지> 제4권, 제2호, 79-96쪽; 심한별(2013), “서울 도심부 도시형태 및 생산활동 변화에 대한 제도주의적 해석”, 서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가장 포괄적인 연구로는 “서울역사박물관 생활문화자료조사 보고서”가 있다.

[12] 이 연구의 중간결과는 2019년 5월 10일 <세운글로벌 포럼: 도시와 제조업의 미래>에서 “제품 X의 탄생: 청계천 일대 제조 과정 추적기”라는 제목으로, 2019년 6월 15일 <한국공간환경학회 춘계학술대회>에서 “도심부 제조업 내 상공업 네트워크의 작동: 청계천·을지로에서 생산된 제품의 제조 과정 추적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13] 이 지역을 설명하기 위해 살펴봐야 할 쟁점들은 산업생태계 외에도 여러 가지다. 특히, ‘비공식적인 기술 숙련화’에 대한 고민은 개인적인 연구 관심사이기도 하지만, 도시상공업연구소(준)의 소준철, 안근철, 조동원과 함께 공유하면서 토론하고 심화시키고 있는 주제이기도 하다.

[14] 자세한 내용은 다음 보고서의 1장을 참고하길 바란다. 서울역사박물관(2010), <도심 속 상공인 마을>, 서울역사박물관.

[15] 조동원(2017), “청계천 전자상가, 복제의 기술문화, 디지털문화의 형성”, <IDI 도시연구>, 제11호, 37-78쪽.

[16] 청계천박물관(2018), <메이드 인 청계천: 대중문화, ‘빽판’의 시대>, 서울역사박물관을 참고할 것.

[17] 대표적인 연구들은 다음과 같다. 김근배(2005), <한국 근대 과학기술인력의 출현>, 문학과지성사; 장미현(2016), <박정희 정부 시기 기술인력정책의 전개와 숙련노동자의 대응>, 연세대학교 박사학위논문; 조성재, 박준식, 전명숙, 전인, 김기웅(2013), <한국의 산업발전과 숙련노동 – 명장의 생애사를 중심으로>, 한국노동연구원; 한경희, 게리 리 다우니, 김아림 번역(2016), <엔지니어들의 한국사 : 근현대사 속 한국 엔지니어들의 변천사>,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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