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의 복원: 기억을 짓는 기술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한수지

sooji9155@gmail.com


 

프랑스 파리의 역사적 장소인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큰 불이 났다. 에두아르 필리프 프랑스 총리는 17일 노트르담 대성당 재건을 위한 특별 각료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에서 첨탑 재건을 위한 국제 공모전 실시 계획을 발표하며 “새 첨탑은 우리 시대의 능력과 기술에 맞게 설계돼야 한다. 이것은 분명 커다란 도전이자 역사적 책무”라고 말했다. [1] 화재로 소실된 첨탑을 그대로 복원하기보다는 현대적 해석에 나서겠다는 쪽에 무게를 둔 것이다. 전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텔레비전 연설에서 “노트르담을 이전보다 더 아름답게 지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2] 이에 불에 탄 부분을 수영장으로 바꾸자거나 온실로 바꾸자는 등 다양한 안이 나왔다.

그림1

<그림 1> 노트르담 성당 복원안[3]

1345년경에 완공된 노트르담이라고 하지만 내내 같은 모습으로 있었던 것은 아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심하게 훼손되었고 나폴레옹 전쟁 직후에는 철거를 고려해야 할 만큼 심각한 상태에 놓이기도 했었다. 1844년 루이 필립 왕은 외젠 비올레르뒤크를 복원을 담당할 건축가로 임명했는데 이 건축가는 건축물의 복원이란 건물을 단순히 유지하거나 수리하거나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어느 시점에도 없었던 완벽한 상태로 다시 창조하는 것이라고 호기롭게 말하며 당시로는 가장 최신의 재료라고 할 수 있는 강철 기둥과 새로운 디자인의 첨탑을 선보였다. 이렇게 완성된 모습이 우리가 알고 있던 노트르담 성당이다. 성당의 핵심을 잃거나 압도하지 않으면서도 현대적인 요소를 적용한 그 당시의 완성된 형태였던 것이다. 우리 기억 속의 노트르담은 한번 변형의 과정을 거친 노트르담인 것이다.

 건축은 그것이 놓여지는 위치, 장소, 상황에 철저히 지배된다. 이렇듯 특히 오래된 건축물에는 변화와 그때마다의 상황이 모두 축적되어 있다. 즉 건축은 변화해온 시대의 기억이 반영되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망각을 강력하게 정복해 주는 두 가지는 시와 건축이다. 둘 중에서도 건축이 더우수하다. 건축은 인간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전할 뿐 아니라, 인간의 손이 다루었던 것, 인간의 힘이 만들어 낸 것, 인간의 눈이 본 것을 제시하기 때문이다.”[4]

독일의 문화학자 얀 아스만과 알레이다 아스만 부부는 기억이 개인적 차원 혹은 추상적 의미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문화적 재현에 의해 저장되고 전승된다는 점에 주목하여 ‘문화적 기억’이라는 개념을 제기했다. 문화적 기억은 집단이 소멸하거나 사회적 조건이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기억 매체를 통해 전승된다. 매체는 집단의 기억을 저장하고 전승하는 문화적 재현이다. 또한 매체는 기억 전달의 물질이자 상징이기도 하다.

건축은 기억 매체로서 기술과 권력 지형의 변화에 특히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신의 매체적 표현을 자주 변화시켜왔다. 집을 예로 들면, 조선시대의 한옥은 목조 기술의 집약물이자 동시에 계급사회의 공간적 분화를 가시적으로 보여줬다. 현대의 아파트는 건설 산업기술의 집약체로서 현대인의 자본주의적 욕망을 상징한다. 이처럼 장소와 건축은 특정 시대의 기술·사회적 맥락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문화적 기억을 매개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노트르담은 불탄 첨탑을 그대로 복원하지 않고 새로운 기술을 반영하여 동시대성을 보여주는 기억 매체가 되는 것이다.

고대 이래로 건축물은 사건을 직접 목격한 개인보다 더 오랫동안 기억을 보존하며, 그것에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특성을 부여했다. 특히 20세기는 전례없이 기억에 사로잡혀 있었으며, 기억을 위한 건물을 짓고자 하였다.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 담론은 현대인의 ‘망각을 두려워하는 문화의 증후군’에서 비롯되었다. 박물관, 문서 보관소, 역사 연구와 유적 프로그램 등에 대한 대규모 투자는 망각을 두려워하는 문화 증후군을 반영한다. 인공 기억인 퍼스널 컴퓨터의 상업적 성공은 이것을 잘 보여준다. 발터 벤야민은 역사와 기억을 구분하며, ‘역사의 부패에 저항하는 기억의 흐름’을 설명했다. 이에 따라 우리는 ‘베트남 기념비, 홀로코스트 기념물들’과 같은 역사상 유래 없는 기억 그 자체를 기념 함으로써 ‘기억의 개념’을 획득했다.

얼마 전 근대건축 보존과 연구·조사 활동을 위한 전문가 단체인 한국도코모모에서 남영동 대공분실의 주제로 ‘근대 도시건축 Re-Birth 디자인 공모전’을 개최했다. 1987년 1월,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서울대 학생인 박종철 군이 경찰의 고문을 받다 사망하였고, 경찰은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발표하여 국민의 공분을 일으켰다. 대공분실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 역할을 한 박종철 군이 물고문으로 쓰러진 곳이며, 전국적인 반독재, 반인권 운동의 상징적 현장이 된 곳이다.

기억이 구체화되어 특별한 표상이나 상징물로 남게 된 물질적, 비물질적 장소를 피에르 노라는 ‘기억의 장소’라고 부른다. 기억을 표상으로 언급하고 자각하는 것은 기억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존재하지 않는 것을 구체화하고 특별한 표상으로 남기는 행위가 ‘기념’이다. 즉, 기념은 기억을 전달하는 행위로써 기억에 지속성을 부여하는 작업이다. ‘근대 도시건축 Re-Birth 디자인 공모전’은 아픔의 기억을 가진 대공분실을 어떻게 기념하면 좋을지 제안하는 공모전이다. 나는 이 공모전에 제출했던 “Walking in Memory”안을 보여주고자 한다. 나는 현재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생겼던 아픔의 기억을 건축물이 어떻게 매개할지 제안했다. 아래는 그 구성 요소에 대한 설명이다.

그림2

<그림 2> 제안한 이미지1

  1. 기억 속을 걷다

과거의 장소는 박제된 과거의 사건이다. 과거는 현재를 모방하지도, 미래를 좇지도 않는다. 단지 ‘그곳, 그때’에 한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는 현재 속에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단순히 기억을 재현하거나 과거의 건축물을 그대로 모방하는 방식으로는 그 속에 내포된 시간의 흐름을 충분히 읽을 수 없다. 그래서 민주인권기념관으로 바뀐 대공분실은 아픔의 기억을 전달하는데 한계가 있다. 사진과 유품, 기록이 연대기순으로 단순하게 나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공간을 체험하는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기억을 주입하는게 아니라, 그들이 공간의 기억을 스스로 환기하여 그 내용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Walking In Memory”는 과거의 공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대공분실을 둘러싼 새로운 켜를 만들어낸다. 긴 걸음은 과거와 현재의 경계선을 흩트려 놓으며, 이를 통해 과거의 기억이 관람자에게 느리고 깊게 스며들게끔 한다. 건축물을 단지 기억이 재현된 상징물로만 보기는 어렵다. 건축물 속에서 우리는 움직임에 따라 공간의 변화를 지각하고 경험한다. 건축물은 우리가 걷고, 멈추고, 바라보는 등의 감각 체험을 통해 애도와 슬픔, 죄의식, 감사와 같은 감정을 느끼게끔 만들고, 이를 통해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그림3

<그림 3> 제안한 이미지2

 

  1. 개의 벽과 대공분실

나는 “Walking in Memory”에서 대공분실을 기억의 벽과 추모의 벽으로 환원시켰다. 이 벽은 기존에 존재했던 담이 두께를 가지면서 생겨나는 공간이다. 현재(기억의 벽)와 미래(추모의 벽)는 과거와 나란히 놓인다. 기억의 벽에서 대공분실에 투영된 과거를 응시하며 기억은 한결 선명해진다. 이어 과거와 조우하는 공간인 대공분실을 지나 우리는 미래의 장소로 나아간다. 추모의 벽을 통해 과거의 공간을 바라보고 희생자들을 기린다.

건축적 진입은 어떠한 목적 공간을 접근해 들어가면서 전개되는 여러 가지 공간적 체험을 말한다.[5] 즉, 공간 체험은 진입이라는 과정을 통해서만 얻어지는 경험이다. 추모 공간에서는 관람자가 공간에 진입하는 순간 추모 행위가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나는 “Walking in Memory”에서 관람자가 대공분실로 바로 진입하지 않고, 한층 켜를 두고 돌아가 진입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대공분실이 눈앞에 보이지만, 곧바로 다가갈 수 없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공분실이란 기억의 장소을 더 오랫동안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고 싶었다. 관람자가 새로운 공간에 들어서기 전부터 전조를 느끼게 된다. 이 진입 공간은 다음에 들어설 목적 공간인 전시 공간, 그리고 체험 공간의 전조이기 때문에 관람자는 이에 대한 단서나 흔적을 발견할 수 있고, 건축물은 의미 있는 추모의 분위기를 자아낸다.[6]

 

  1. 물성

현재, 과거, 미래는 분리된 시간의 켜이다. 서로 다른 시공간은 수면 위에서 조우한다. 또한 공간 사이에 물리적인 거리를 초월하는 거리가 생겼음을 직감하게 만든다.

 과거의 공간은 검은색의 전벽돌로 이루어져 있다. 과거를 둘러싼 현재와 미래의 켜는 과거를 닮았으나, 다른 결을 가지는 검정 콘크리트를 주재료로 한다. 바닥의 질감은 자갈에서부터 사고석, 화산석에까지 이르며 거친 물성, 입자에서 시작하여 추모의 벽을 지나 크고 부드러운 표면으로 변화한다.

(C:UserssuzyDropbox[P-2019] 도시건축 Re-Birth 디자인

<그림 4> 단면

 

  1. 시퀀스

‘걷다’‘보다(현재)‘걷다’ / ‘보다(과거)‘읽다’ / ‘걷다’‘보다(미래) ‘걷다’

1)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대공분실은 인식되지 않는다. 좁고 긴 통로를 따라 깊숙한 어둠 속으로 걸어간다. 무거운 발걸음과 함께 기억의 벽에 도달한다. 조사실 층과 마주하여 기억의 벽에는 또 다른 좁고 어두운 방이 있다. 방의 좁은 틈을 통해 대공분실을 마주한다. 과거의 공간과 기억의 벽 사이에 존재하는 물은 물리적인 거리 이상의 거리감을 만들어낸다. 과거의 장소에 그들의 이야기가 투영되며 과거는 선명해진다. 또다시 좁고 긴 걸음이 시작되고 깊은 수면 위로 과거의 공간과 투사된 영상이 흐른다. 긴 통로 끝 마침내 과거와 조우한다.

2) 과거의 공간은 그대로 멈춰 있다. 조사실과 희생자들의 유품, 기록된 사진 등과 같이 머물러 있는 흔적들을 직접 바라보고 느끼는 공간이다. 시간의 켜를 지나 마주한 과거는 단단하게 스며든다. 1층을 내려와 다시 긴 걸음이 시작되며 과거의 장소를 관통한다. 치유의 공간은 통로와 나란히 놓인다. 과거의 기록, 현재의 지향점, 미래의 희망이 글로써 함축된 곳이다. 풍만한 빛이 공간을 따뜻하게 감싼다. 마침내 햇살이 내리쬐는 곳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되새긴다.

3) 다시 시작된 긴 길은 한층 더 넓다. 반짝이는 수면을 바라보며 추모의 벽을 향해 걸어간다. 추모의 벽은 413개의 균일한 공간을 가지고 이는 희생자 개개인을 기리는 공간으로 환원된다. 추모의 벽과 과거의 공간이 수면 위에 한데 담긴다. 시간이 중첩된 수면 위로 꽃을 띄어 그 넋을 기린다. 길을 따라 열린 과거의 장소로 되돌아가며 추모는 계속된다.

복원은 건물에 가해질 수 있는 가장 완전한 파괴를 의미한다. 어떤 잔여물도 거두어들일 수 없는 파괴다. 더불어 파괴된 작품에 대해서 거짓된 묘사를 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에 있어 스스로를 속이지 말자. 건축에서 언젠가 위대하고 아름다웠던 것을 복구하는 것은 마치 죽은 자를 깨우는 것처럼, 불가능하다. 내가 앞 장에서 생명의 전부라고 주장했던 그것, 오직 장인의 손과 눈으로만 주어지는 그 정신을 결코 다시 불러들일 수 없다. 다른 시간대는 다른 정신을 만들고 그래서 그것은 새로운 건물이다.” [7]

노트르담의 복원은 화재로 불타버린 이전과 지금의 기억을 다시 살리려하고, 대공분실의 복원은 그 공간의 아픈 기억을 현대인에게 다시 일깨우려 한다.  두 건물에는 사건과 기억이 모두 축적되어 있다.  건축 복원이란 물질적으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개인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어떤 경험을 자극하고, 재형성하는 과정이다. 만져지지 않지만 기억되는 사건과 경험을 어떻게 복원해야할까? 노트르담의 복원에는 상실을 슬퍼하는 2019년의 경험이 화재 이전의 기억과  함께 녹아있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 과거 경험과 기억을 건축물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담을까? 필자는 대공분실 복원의 사례로 “Walking in Memory”를 제시했다. 기억의 상징물로만 지어진 건축물이 아닌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기억하는 행위가 동반되었을 때, 건축물이 ‘기억’을 완성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기억의 매개체인 인공물이 아니라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건축물을 꿈꾸었다. 복원은 필연적으로 건축의 변’형’을 가져오지만, 사람들의 기억과 회상이 함께 이루어질 때 건축의 의미는 변질되지 않는다.

 


읽을거리

건축의 일곱 등불

존 러스킨 현미정 번역(2012), <건축의 일곱 등불>, 마로니에북스

서른 살의 존 러스킨이 당대의 건축 문화에 격분하여 6개월 만에 써내려간 건축 비평서이다. 러스킨은 여러 예술 중에서도 건축이 예술의 시작이자 질서의 본보기라고 믿었습니다. 6장 기억의 등불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1] 한겨레(2019. 04. 18), “노트르담 첨탑 설계 국제 공모…장미창 뛰어넘는 걸작 나올까“

[2] ibid.

[3] RedFriday(2019. 04. 27),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 아이디어 냈더니 ‘첨탑으로 장난치냐?’ 는 비판 받은 회사”

[4] 존 러스킨 현미정 번역(2012), <건축의 일곱 등불>, 마로니에북스

[5] 홍성용(1995), “진입공간의 구성과 특성에 의한 박물관 건축계획에 관한 연구”,

홍익대학교 석사학위논문, 30쪽

[6] ibid.

[7] 존 러스킨 (2012), 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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