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기술사에 대한 새로운 생각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석사과정

이슬기

sophia@kaist.ac.kr


책표지

데이비드 에저턴, 정동욱 박민아 옮김(2015), <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 석탄, 자전거, 콘돔으로 보는 20세기 기술사>, 휴먼사이언스. [David Edgerton (2007), The Shock of the old: Technology and Global History since 1900, Oxford University Press.][1]

 

 

 

새로운 기술이 등장했다는 소식은 꽤 익숙하다. 지난 4월을 잠시 떠올려보자. ‘4G보다 최소 20배 빠른 5G가 대한민국에서 세계 최초로 전격 상용화’[2]됐다는 소식이 있었다. 세계 최초 상용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한국 통신사들이 3일 밤 기습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해 경쟁자를 제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통신사들은 앞다투어 5G가 삶을 바꿔 줄 것이라 광고했다.[3] 기술은 주로 위와 같이 새롭게 등장했을 때 주목받고 최초로 기술을 개발한 국가와 함께 이해된다. 기술사학자 데이비드 에저턴(David Edgerton)은 그의 저서 낡고 오래된 것들의 세계사에서 다른 방식의 기술사를 보자고 제안한다. 에저턴은 발명과 혁신을 중심으로 쓰인 기술사를 ‘혁신 중심의 기술사’라고 하며 이 기술사야말로 낡은 것이라 한다. 에저턴은 낡은 기술사가 아닌 새로운 기술사를 낡은 기술들을 통해 보여준다.

에저턴은 혁신 중심의 기술사가 새로운 것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우리가 실제로 사용하고 있는 중요한 것들을 놓치게 한다고 책 전체에서 설명한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20세기를 “사용기술(technology-in-use)의 역사(12쪽)”로 다시 본다. 혁신 중심의 기술사가 새롭게 등장한 기술에 주목한다면 사용 중심의 역사는 그 시대의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기술에 주목한다. 사용 기술에 집중할 경우 기술이 멀리 있는 불분명한 것이 아니라 나의 일상 속에 있는 것, 당대에 쓰이고 있는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사용기술은 혁신 중심의 기술사에서 가려져 있던 것들로 실제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기술을 모호한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내가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물건으로 생각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책의 부제목에 있는 석탄, 콘돔, 자전거이다. 석탄은 석유보다, 콘돔은 피임약보다, 자전거는 자동차보다 낡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석유가 등장했다고 해서 석탄이 사용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낡은 기술은 새로운 기술이 등장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사용기술의 역사는 이처럼 새로운 기술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사용하던 기술에 집중한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에저튼이 던지는 질문들이다. “역사적으로 비행기가 콘돔보다 중요할까?” (23쪽), “20세기에 어떤 기술이 사람을 죽였는가?” (219쪽).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제시하면서 에저튼은 사용기술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사용기술의 역사는 국가와 기술의 관계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게 한다. 혁신중심의 기술사에서는 기술을 최초로 개발하거나 선도하는 국가만 남는다. 에저턴은 사용기술의 역사를 통해 혁신중심의 기술사에는 남을 수 없었던 가난한 나라의 기술사를 보여준다. 가난한 나라는 부유한 나라의 기술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가난한 나라는 기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지 않았다. 사용기술의 역사는 더 많은 나라의 기술사를 생각할 수 있게 해준다. 기술은 실제 세계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에 대한 예로 가난한 나라[4]의 “크리올 기술” (16쪽) 이 있다. 크리올은 다른 곳에서 유래한 어떤 것의 파생물을 의미한다고 한다. 원래의 기술이 가난한 세계에서 새 생명을 얻는 것을 크리올 기술의 한 양상이라고 설명한다. 기술은 어디에서나 같은 속도로 퍼져나가고 같은 양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상황에 맞게 변형되어 받아들여진다. 자동차 정비가 불가능한 지역에서도 자동차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정비되고, 슬럼 지역도 자신만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혁신을 이루고, 새로운 기술을 내는 부유한 나라에서도 낡은 기술은 계속 사용되었다. 영국에서 수송용 말이 가장 많이 사용됐던 것은 19세기가 아니라 20세기였다.[5] 자동차가 개발된 이후였지만 중요한 운송은 말이 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말은 자동차보다 훨씬 더 많이 사용됐다고 에저턴은 설명한다. 전쟁에서도 폭격기나 원자폭탄보다 대포와 총 같은 재래식 무기가 사람을 더 많이 죽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에서 목숨을 잃은 병사 중 절반이 대포로 목숨을 잃었으며,[6] 제1차 세계대전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대포를 더 많이 사용했다고 한다. 에저턴은 이처럼 새로운 기술에 주목할 때는 볼 수 없는 사실들을 드러낸다.

사용기술의 역사는 더 나아가 국가와 기술의 관계도 다른 각도로 생각할 수 있게 한다. 특정 기술을 개발한 사람의 국적이 어디인지는 중요한 문제이다. 한 국가에서 기술을 개발했다는 것은 그 국가의 기술력으로만 그 기술을 만들었다는 것으로 생각된다. 순수하게 한 국가의 기술만으로 개발을 하는 것이 불가능할 때에도 말이다.[7] 이 같이 기술은 국가와 함께 생각되며 민족주의와 연결된다. 에저턴은 이러한 연결이 나타난 이유를 “국가와 기술의 관계는 주로 발명과 혁신의 테두리 안에서 논의” (164쪽) 되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러한 기술민족주의가 극단적인 형태를 취할 경우 국가의 발전이 국가의 혁신 속도에 좌우된다는 가정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기술민족주의는 국가가 기술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이 가정은 국가의 성장으로 직결되지 않는다. 혁신이 이뤄진다고 해서 그 기술이 바로 사용되는 것도 아니다. 에저턴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물건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살펴보라고 한다. 컴퓨터를 보자. 이 컴퓨터에 사용된 각각의 기술에 그 것을 개발한 국가의 꼬리표를 붙일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기술은 국가의 꼬리표 없이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이처럼 에저턴은 2장부터 8장까지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고 분석하며 기술이 세상의 변화를 선도한다는 생각, 새로운 기술이 기존의 기술보다 더 좋다는 생각, 기술 혁신이 국가의 발전을 보장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난 새로운 역사를 보여준다. 에저턴은 혁신 중심적인 사고가 “변화를 원치 않을 때 변화를 피할 수 있는 흔한 방법”(311쪽)이라고 한다. 한국을 생각해보자. 이 글의 첫 문단에서 혁신을 성공한 ‘대한민국’의 사례를 보았다. 이처럼 한 국가가 어떤 기술을 개발했는지는 국가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로 생각된다. ‘최초’가 되기 위해 통신사들이 기습적으로 서비스를 시작한 것도, 그 과정이 전략처럼 여겨지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테다. 그러나 이 5G의 혜택을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8] 5G 상용화가 된 지 좀 지났지만 그 기술로 인해 일상이 바뀌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2019년의 기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5G가 아니라 지금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기술을 보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도 있다. 책 전체에서 에저턴은 다양한 시간과 지역을 오가면서 기술, 기술과 국가의 관계에 대해 설명한다. 이 때문에 혁신 중심의 20세기 기술사에 익숙하지 않다면 그의 설명을 이해하기 힘들다. 내용적인 면에서는 가난한 나라들의 기술에 대한 분석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크리올 기술을 설명하면서 케냐의 “날아다니는 화장실”, “밤의 흙”(75쪽) 등 이들이 가지고 있는 기술을 설명하는데 에저턴의 서술 역시 기술을 심층적으로 분석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재미있는 사례로만 언급하고 있는 것 같다. 그의 서술도 부유한 세계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가난한 나라 내에서 자신들의 기술을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더 추가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마지막으로 번역의 한계를 이야기하고 싶다. 책의 제목이 원서보다 친절해졌지만 낡고 오래된 것이라는 말 자체가 모호하게 느껴진다. 책 제목만으로 기술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까지 끌어들이기 어려워 보인다. 더불어 부제목인 “석탄, 자전거, 콘돔으로 보는 20세기 기술사” 역시 이 기술만 책에 등장할 것 같다는 인상을 준다.

책이 그리 얇지도 않고 기술사라는 다소 딱딱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읽을 가치가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기술의 역사를 다시 본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세계사를 다시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314쪽)는 에저턴의 설명처럼 이 책을 통해 기술뿐만 아니라 세계를 다르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기술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다. 기술사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필자도 기술사에 익숙하지 않아 처음에 고생했다. 필자와 같이 기술사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한국의 사례를 떠올려보길 추천하다. 우리나라에서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기술이 무엇인지, 지금 사용하고 있는 기술은 무엇인지, 미래의 기술들이 어떤 문제를 해결할 것이라고 기대되는지 등을 생각해보자. 에저턴이 제시했던 대로 사용하고 있는 물건을 떠올려도 좋다. 이처럼 우리나라와 기술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내가 기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이 책을 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1] 이하 쪽수만 표시한 인용문은 해당 책에서 발췌

[2] 매일경제(2019. 4. 4), “세계최초 5G…한국 3일밤 전격 상용화” https://www.mk.co.kr/news/business/view/2019/04/204594/

[3] LG유플러스는 5G가 상용화되기 이전인 2018년 12월 19일부터 5G 마케팅 슬로건으로 “일상을 바꿉니다”를 사용했다. 5G의 빠른 네트워크 속도를 이용하여 개인에게 맞춰진 콘텐츠와 VR, AR 서비스를 진행할 것이라 설명하고 있다.

“유플러스 5G가 여러분의 일상을 바꿉니다.”, https://blog.uplus.co.kr/3412

[4] 에저턴은 책에서 이 가난한 나라라는 표현이 다른 표현들, 개발도상국이나 제3세계 등 보다 나은 표현이라고 제시하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5] 같은 책, 65쪽.

[6] 같은 책, 220쪽.

[7] 같은 책, 163-164쪽.

[8] 경향신문(2019. 4. 5), “화려한 5G 축포 속에 가려진 것들”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904052102011&code=920100

5G 상용화 당시 통신사들은 고가 요금제에 혜택을 몰아 넣었다.

경남일보(2019. 4. 28), “5G 사각지대…지방은 ‘호갱’입니까” http://www.g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9882

기사에 따르면 수도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5G 기지국이 턱없이 부족하다. 5G가 상용화됐지만 실제로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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