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첼 카슨과 인류세의 교차점

DGIST 기초학부

정민주

jminju_97@dgist.ac.kr


 

환경오염과 이상기후가 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깊어지고 있다. 인류세에 대한 논의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인류세라는 단어가 등장한 지 20년이 채 되지 않았으며, 학계에서는 어느 시기부터 인류세로 볼 것인가를 활발히 논의 중이다. 언젠가부터 인간의 힘이 지구 전체에 영향을 줄 만큼 커졌다는 것이다.

인류세를 둘러싼 논의가 최근에야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와 관련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미국의 해양생물학자이자 작가인 레이첼 카슨을 만날 수 있다. 레이첼 카슨은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널리 알린 <침묵의 봄Silent Spring>[1]의 저자이다. <침묵의 봄>에서 카슨은 DDT와 알드린을 비롯한 합성화학물질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인간이 자연을 심각하게 변형시키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 글에서는 먼저 레이첼 카슨이 자연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의 저작을 통해 간단히 살펴볼 것이다. 이어서 카슨의 논의가 지금의 인류세와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카슨이 ‘인류세’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으나, 생태계와 인간을 바라보는 카슨의 시선은 지금의 인류세 논의를 이해하는데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침묵의 봄>이 출간되기 전에는 보존주의(conservationism)가 환경운동의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보존주의를 지지하던 이들은 자연 자원을 잘 보존하고 관리하면 인간이 자연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카슨의 글은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에 힘입어 환경운동의 방향을 생태주의로 바꿔놓았다. 생태주의는 보존주의보다 적극적인 개념으로, 자연을 활용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고, 인간도 자연의 일부로 본다. 생태주의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1969년 캘리포니아 산타 바바라에서 기름 유출 사고가 일어나자 이듬해 지구의 날이 제정되었고, 미국 내 DDT 사용이 금지되는 정책 변화가 일어났다. 이 같은 변화를 끌어낸 카슨의 공적을 인정해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카슨을 20세기를 변화시킨 100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카슨은 저서에서 크게 두 가지를 전달하려 했다. 첫째는 자연, 특히 바다를 통해 인간의 한계와 능력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둘째는 이 깨달음을 바탕으로 인간이 처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이다. 카슨이 자신의 저서에서 어떻게 이를 부드럽게 드러냈는지 살펴보자.

 

카슨이 사랑한 바다

카슨은 자신이 접할 수 있었던 다양한 자연 가운데 바다를 유독 사랑했다. 카슨은 바다에 관한 책을 총 세 권 집필했다. 가장 먼저 출간된 <바닷바람을 맞으며Under the Sea Wind>[2]를 필두로 <우리를 둘러싼 바다The Sea Around Us>[3], <바다의 가장자리The Edge of the Sea>[4]를 카슨은 차례로 출간했다. 바다에 관한 책을 세 권이나 집필할 정도로 바다를 사랑했지만, 정작 카슨은 바다에 직접 들어가는 것을 그리 선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무서워하는 쪽에 가까웠다고 한다. 그런데도 바다는 카슨에게 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이었고, 카슨이 자연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언제나 그렇듯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우리의 상상력을 더욱 강하게 자극하는데, 파도 또한 마찬가지다.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큰 파도는 눈으로 볼 수 없다. 그런 파도는 바다 깊이 숨어서 신비로운 경로를 따라 육중하게, 끊임없이 굽이친다. (<우리를 둘러싼 바다>, p. 205)

이처럼 끊임없는 사유의 장소로서 바다를 바라보았기에 카슨에게 바다는 생물이 살아가는 장소 이상이었다. 물론 우리는 바다를 매우 다양하고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여겨지는 몇몇 지표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그것은 수심이 될 수도 있고, 온도나 염도가 될 수도 있다. 이 지표들은 인간이 바다를 조금 더 깊이, 그리고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그러나 지표는 인간이 스스로의 시선에 얽매여 바다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역할도 한다.

해수면은 우리 눈에야 표식도 길도 없어 보이지만, 실은 뚜렷한 몇 개의 지대로 나뉘며 표층수의 패턴은 거기서 살아가는 생명체의 분포를 좌우한다. (<우리를 둘러싼 바다>, p. 59)

그런 까닭에 전적으로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혹은 남극에 속해 있는 바닷물이란 있을 수 없다. 지금 버지니아 해변이나 라호이아에서 유쾌하게 부서지는 파도는 몇 년 전 남극의 빙산 기슭을 찰싹이거나 지중해의 햇빛 아래 반짝이고 있다가 보이지 않는 물길을 따라 오늘 내 눈앞에 당도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처럼 깊이 숨어 흐르는 해류 덕분에 모든 바다는 진정으로 한 몸이 된다. (<우리를 둘러싼 바다>, p. 299)

카슨은 이처럼 바다를 분류하는 지표들은 인간이 임의로 만든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 인간만을 중심에 두고 자연을 해석하고 재단하면 바다의 속성을 간과하게 되어 자연을 실제와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카슨의 경고는 비인간이 느끼는 환경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무지한지 떠올려볼 때 더욱 와 닿는다. 인간의 시선에서 벗어나려 하는 것 이상이 필요하다. 인간과 비인간은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더라도 그 공간을 인식하는 범위나 방법에서 크게 다르다. 하지만 인간이 이런 차이를 평소에 깨닫기는 어렵다. 어렴풋이 다르겠거니 생각하는 정도에 그친다. 카슨은 인간이 해석하고 분류한 자연 외에도, 지구라는 큰 공간에는 충분히 다른 기준이 존재할 수 있음을 지적했다.

 

긍정적인 가능성

카슨은 인간에게 한계만큼이나 어떤 가능성 또한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인간이 비인간의 생활을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카슨은 <우리를 둘러싼 바다>에서 수중청음기와 파랑기록계 같은 도구를 예시로 든다.

잠수함을 탐지하기 위해 수중청음기를 비롯한 여러 청음 장치를 사용해본 결과, 세계의 상당수 해안 지대가 물고기, 새우, 알락돌고래, 그 밖에 미처 정체를 파악하지 못한 동물들이 울부짖는 소리로 무척이나 소란스럽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를 둘러싼 바다>, p. 102)

 바위로 이뤄진 랜즈엔드로 몰려오는 파도는 해저 바닥에 설치한 파랑기록계로 몰려오는 파도는 해저 바닥에 설치한 파랑기록계를 지난다. 그리고 위아래로 오르내리며 진동하는 압력을 통해 출발지인 머나먼 대서양 바다에 관한 숱한 이야기를 파랑기록계에 들려준다. 그 이야기는 파랑기록계의 기계 장치에 의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기호로 바뀐다. (<우리를 둘러싼 바다>, p. 181)

수중청음기와 파랑기록계는 인간이 맨몸으론 알 수 없던 바다의 움직임과 소란스러움을 알려주었다. 이처럼 인간은 자신이 발명한 도구를 통해 바다를 구체적으로 알게 된다. 비인간을 하나씩 이해하며 우리는 감각이나 인지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게 된다. 카슨은 인간이 가진 힘을 충분히 긍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겉도는 인간

하지만 인간은 수중청음기나 파랑기록계처럼 그의 힘을 긍정적으로 사용하지만은 않았다. 우리는 인간의 부정적인 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환경파괴가 그 예다. 이런 인간의 파괴력에 대해 카슨도 이야기한 바 있다. 카슨이 생각한 인간의 파괴력을 살펴보기 전에, 인류세에 대한 여러 의견 중 클라이브 해밀턴이 분류한 인류세에 반응하는 집단들을 살펴보자.

지구
인간 변하지 않는 힘 강해진 힘
변하지 않거나 약해진 힘 a) 부인 b) 포스트휴머니즘

존재론적 다원주의

강해진 힘 c) 에코모더니즘 체제 d) 신인간중심주의

<표1> 인류세에 대한 주장 정리[5]

포스트휴머니즘의 경우는 인간이 자연에 완전히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이 생각이 틀렸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자연의 ‘행위성’을 강조하여 비인간도 역시 인간처럼 행위력을 가진다고 본다. 에코모더니즘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자연을 파악하여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신인간중심주의는 인간이 과거와 달리 더 많은 힘을 가지고 있으며 이 힘이 환경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인간이 운명과 지구의 운명이 합쳐지고 인간은 이 합쳐진 운명에 매우 중대한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다.

카슨은 위 분류에서 지구의 힘이 강해졌다고 보는 두 입장과 기본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이들보다 최소 반세기 이전에 살았던 카슨이 생태계와 인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기본적으로 카슨은 지구 생태계를 무수히 많은 생물 종과 이를 제어하는 모든 환경 요소들의 긴밀한 결합으로 이루어진 복합체로 보았다. 인간은 조금 다른데, 인간이 다른 생명체보다 훨씬 큰 힘으로 상호작용하며 환경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카슨에게 인간은 상호작용들의 균형을 깨트릴 힘을 가진 존재였다.

지구 생명의 역사는 생명체와 그 환경의 상호 작용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넓은 의미로, 지구에 서식하는 동식물의 물리적 형태와 특성은 환경에 의해 규정된다. 지구 탄생 이후 전체적인 시간을 고려할 때 그 반대 영향, 즉 생물이 주변 환경에 미치는 영향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20세기에 들어서 오직 하나의 생물 종, 즉 인간만이 자신이 속한 세계의 본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 놀라운 위력을 획득했다. (<침묵의 봄>, p. 29)

또한 카슨은 인간이 없는 생태계는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없을 때 생태계는 소멸하거나 파괴되지 않고 회복 가능한 범위에서 안정적으로 변화한다. 인간은 이런 생태계의 질서를 파괴하고 있다. 인간이 자연에 일으킨 변화는 환경오염이 됐다.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깨달은 카슨은 바다 삼부작과는 다르게, 《침묵의 봄》에 자연을 지배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오만한 인간을 향한 경고의 메시지를 담았다.

산업이 발전하면서 등장한 화학물질이 우리 환경을 삼켜버리면서 전혀 새로운 공중보건 문제가 대두했다. (…) 오늘날 사람들을 위협하는 것은 근대적 생활방식을 수용하면서 인간 스스로 초래한 새로운 형태의 환경오염이다. (<침묵의 봄>, p. 215)

여기서 우리는 자연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그 어떤 것도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침묵의 봄>, p. 76)

인간이 아무리 안 그런 척 행동해도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다. 이 세상 곳곳에 만연한 공해로부터 과연 인간은 도망칠 수 있을까? (<침묵의 봄>, p. 216)

카슨은 생물이 환경에서 떨어져 존재할 수 없듯이 인간도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인간이 자연을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형태로서 이해되었다. 이런 사고가 현대의 환경문제로 이어졌기에 카슨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지금과 같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또한 자연과 공존해야 함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 인간이 이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책임과 노력

카슨은 또한 공존을 위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 제시했다. 그 노력이란 다른 생명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다. 카슨은 인간이 문제에 책임이 있으면서 해결할 능력도 갖추고 있기에 더욱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슨은 <바닷바람을 맞으며>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다의 생명체로서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려면 상상력을 적극적으로 발휘해야 한다. 또 인간이 지닌 많은 특징과 인간 중심의 척도를 잠시라도 포기해야한다.”[6] 카슨이 제시한 방법은 인간의 상상력을 극대화해서 다른 생명체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임의로 만들어놓은 척도에 파묻히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실제로 카슨은 의인화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바다 생명체를 상상하고 다르게 이해할 수 있는지 보여주었다. <바닷바람을 맞으며>에는 세 주인공 바닷새 실버바(Silverbar)와 고등어 스콤버(Scomber), 뱀장어 앤귈라(Anguilla)가 나온다. 이 책에서는 이들의 시선으로 바다에서의 삶을 보여준다. 카슨은 이를 통해 인간의 것과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드러내고, 독자가 다른 세계를 생생하게 감각하게 했다. 카슨의 서술을 읽으면서, 독자는 바다 생명체가 인간과는 매우 다른 공간의 단위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세가락도요가 잠들 무렵, 그러니까 세상이 암흑에서 빛으로 전환할 무렵 다양한 서식지를 출발해 해안을 따라 날아온 새들은 북쪽을 향해 서둘러 떠났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p. 60)

해가 다시 동쪽 하늘에 모습을 드러낼 무렵, 마지막 알껍데기를 계곡의 자갈 사이에 숨겼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pp. 77-78)

태양이 지평선 아래로 움직여 흰바다매의 둥지가 있는 절벽만이 그 빛을 받아 반짝일 때 실버바는 새끼 네 마리를 이끌고 황량한 툰드라를 날아올랐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p. 79)

카슨은 자연과 더불어 살기 위한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고 했다. 이는 여전히 유효하다. 인류세에 대한 다양한 입장이 조금씩 다른 방향을 추구할지라도, 크게 보면 이들은 모두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지향한다. 인류세에 대한 논의를 멈추지 않으면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앞으로 자연을 총체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이는 새롭고, 복잡하며, 어려운 길이다. 그 길을 위해 인간은 자연을 지배의 대상으로 바라보던 시선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는 인류세의 생태계에서 살아갈 방법이 있을 것이다.

 


[1] 이하 레이첼 카슨의 저서의 인용은 책 이름과 페이지로 표기함.

[2] 레이첼 카슨, 김은령 번역(2017), <바닷바람을 맞으며>, 에코리브르. [ Rachel Carson(1941), Under the Sea Wind, New York: Simon & Schuster]

[3] 레이첼 카슨, 김홍옥 번역(2018), <바다의 가장자리>, 에코리브르. [Rachel Carson(1955), The Edge of the Sea, New York: Peter Smith Pub]

[4] 레이첼 카슨, 김홍욱 번역(2018), <우리를 둘러싼 바다>, 에코리브르. [Rachel Carson(1950), The Sea Around U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5] 클라이브 해밀턴, 정서진 번역(2018), <인류세: 거대한 전환 앞에 선 인간과 지구 시스템>, 이상북스, p.140.

[6] 레이첼 카슨(2017), <바닷바람을 맞으며>, p.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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