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 없는 재활의학 분업의 역사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석사과정

강미량

miryang1002@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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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렌 그리처, 아널드 알루크, 전인표 옮김 (2019), <재활의 역사: 의료 노동분업의 정치경제학, 1890-1980>, 그린비. [Gritzer, Glenn, and Arnold Arluke (1985), The Making of Rehabilitation: A Political Economy of Medical Specialization, 1890-1980,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1]

 

 

 

<재활의 역사: 의료 노동분업의 정치경제학, 1890-1980>(이하 <재활의 역사>)는 1890년부터 1980년까지 재활을 둘러싼 의료 전문직 내 분업화가 진행되는 과정을 미국에 한정하여 서술하는 정치경제학 서적이다. ‘재활’의 명확한 정의도, ‘재활의학과 의사’라는 직업도 없던 19세기 말부터, ‘재활의학’이 제도화된 체계로 인정받기 시작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역사를 개괄한다. ‘재활이 무엇인가?’라는 규범적, 인식론적 질문을 하기보다는 누가 재활을 말하기 시작하고 어떤 식으로 추구했는지, 그를 통해 어떻게 지위 상승을 이루었는지 혹은 이루지 못했는지를 서술한다. 재활이 만성질환 환자 혹은 장애인이 추구해야 하는 당위가 아닌, 전쟁을 거치며 형성된 전문직 분과임을 주장하려 한다는 의미다. 약 35년의 차이를 두고 번역되었으나, 한국에 장애에 관한 인문학적, 사회학적 서적을 꾸준히 출판하고 있는 그린비의 장애학 컬렉션 6호로 발간된 만큼 한국의 상황에도 의미 있는 통찰을 줄 수 있으리라 기대되었던 책이다.

저자인 사회학자 글렌 그리처(Glenn Gritzer)와 아널드 알루크(Arnold Alruke)에 의하면, 미국 내 전기치료요법 의사들—이후 물리요법 의사, 물리치료 의사로 불리다가 재활의학과 전문의로 정착하는 이들[2]—은 19세기 후반까지 의사 집단 내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했지만, 협회를 창설하고 학술지를 발간하며 전문화의 기반을 쌓았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만성질환에 대한 의료적 수요가 늘어나자, 이들은 이전에 형성한 조직을 기반으로 정형외과와 직업재활전문가에 대항해 자신들의 전문성을 정당화할 수 있었다.[3] 막 성장하기 시작한 의료기사와는 성공적으로 위계 관계를 이루었다. 전쟁 이후에는 보훈청(Veteran Administration) 등 양차 세계대전 당시 생긴 기관이 계속 유지되면서 재활 서비스 또한 공적ㆍ사법적 의료시스템 내에 안착하였다. 저자들은 20세기 중반 재활 관련 학회가 국가가 인증하는 전문 학회가 되고, 재활 관련 직업이 전문 자격증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을 그 증거로 꼽는다.

<재활의 역사>의 주요 서술 목적은 전문가 사회 내 분업이 과학지식의 발전이나 최신 기술의 등장에 의한 결과가 아님을 ‘재활의학(rehabilitation medicine)’의 사례를 통해 보이는 것이다. 저자들은 “전문화가 과학 발전의 자연스럽고 불가피한 결과”(29쪽) 라고 설명하는 기술결정론적 ‘자연성장모델’—즉, 과학기술의 진보가 분과적 성장을 이끈다는—을 무너뜨리고자 한다. 과학과 기술은 전문화의 필요조건이 아니라, 특정 이익 공동체가 지위 상승을 위해 동원하는 자원이라는 것이다. 이때 재활의학은 탁월한 사례인데, 관련 업계 의사와 의료기사가 분업을 이루는 과정을 상대적으로 짧은 기간(약 50년) 내에 관찰할 수 있고, 전쟁 등의 역사적 사건이 개입하면서 생기는 극적인 우연성을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전반 동안 전쟁으로 인해 만성질환에 대한 의료적 수요가 증가하는 상황 속에서, 재활의학 의사, 정형외과 의사, 직업재활전문가,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등 조직의 형성과 쇠퇴에 대한 분석은 기술과 지식만이 의료 분업을 이끌지 않았다는 서사를 명확하고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그러나 <재활의 역사>는 과학과 기술의 역사적 역할을 ‘기술결정론적인 분업의 조건’과 ‘정치·경제적 지위를 얻기 위한 가용 자원’으로 과도하게 양분하기도 한다. 기술결정론을 피하기 위한 전략이나, 과학과 기술을 후자의 측면으로만 축소하여 해석하는 책의 서술 방식은 두 가지 문제점을 낳았다. 첫째, 이 책은 전쟁이 창출한 만성질환 환자의 수요를 강조하면서도, 전쟁 이전에 각기 다른 예비 전문직이 가졌던 기술과 전쟁 이후의 전문화 과정이 어떻게 구체적으로 연결되는지 충분히 서술하지 못한다. 전쟁이 만성질환 환자를 증가시켰다는 사실은 재활의학의 성장을 ‘어떻게’ 뒷받침하는가? 만성질환 환자의 증가는 재활의학[4]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일 뿐만 아니라, 이미 19세기 말에 전문성을 획득했던 정형외과가 영향력을 넓힐 기회이기도 했다. 만약 두 과정이 동시에 일어났다면, 정형외과와 재활의학의 관계는 전후 재활시스템의 공적 형성에 어떤 구체적인 영향을 미쳤는가? 또한 재활의학에 대한 전문성이 “전통적으로 주장했던 전문영역에 대한 인정에 의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전쟁에 의한 수요를 맞추기 위해 자신들의 노동의 정의를 [급성 치료에서 만성 치료로] 바꾼 능력에 의해 주어진 것”(154쪽)이라면, 왜 다른 전문직은 이에 성공하지 못했는가?

이 문제는 과학지식과 기술의 공유가 실은 집단 간 분업의 기초 조건이자, 그것들을 가용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전제라는 점에서 기인한다. 즉 과학과 기술을 지위 상승을 위한 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 과학과 기술을 이미 공유하고 있던 집단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들은 어떻게 한 집단이 특정 과학기술을 공유하게 되었고, 그를 어떻게 지위 상승에 사용했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물리치료 의사들이 제 2차 세계대전 시작 후 곧 “만성 및 장애 상황에 대한 재활이 그들의 영역의 기반으로 자리 잡”(115쪽)도록 할 수 있던 요인 중에서 설득력 있는 후보는 그들이 공유했던 물리치료 기술이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 저자들은 “물리치료 의사들은 병원에서보다 개방 시장에서 경쟁을 제한하는 데에 더욱더 성공적이었다. 그들의 위치가 의사직 내에서 높아졌기 때문”(117쪽)이라고만 논평하고 넘어간다. 사실상 물리치료 의사가 주도권을 잡을 수 있던 이유를 짚지 않은 것이다. 이 책에서 방사선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과학과 기술이 급작스레 등장하고, 전반적으로 연보를 풀어 쓴 듯한 느낌을 주는 까닭은 이렇듯 ‘변화’를 보여주면서도 그 변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서술하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 저자들은 주로 의학 영역을 참조함으로써 재활의학의 역사를 재활의 역사로 동치 시켜버렸다. 과학과 기술의 역할을 축소하면서 동시에 특정 집단과 맺는 맥락성—의학 영역으로 여겨진 것과 의학 영역이 아닌 것으로 여겨진 것—을 무시했다는 의미다. 이는 <재활의 역사>라는 제목과, ‘재활’과 ‘재활의학’을 교차 가능한 용어로 쓰는 본문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책의 서문을 쓴 의료사회학자 엘리엇 프라이드슨(Eliot Freidson)이 적절히 지적했듯, 1980년대 중반까지 “’재활’은 희미하고 제대로 기술되지 않은 개념이[었으]며, 그것의 구체적인 목표들은 상당한 변이성을” 가졌다. “이는 물리치료뿐만 아니라 직업교육, 구체적인 재건 수술과 교정, 정신치료까지 포괄해왔다.”(18쪽) 2011년에 세계보건기구와 세계은행이 발표한 재활의 정의—“장애를 경험하거나 경험할 가능성이 있는 개인을 지원하는 일련의 조치로서, 환경과의 상호작용에서 최적의 기능을 달성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목적을 지닌 것”—는 현재까지도 그 정의가 모호하고 가변적임을 암시한다.[5]

그런데 재활의학과 재활을 같게 보는 시도는 재활에 대한 특정 이데올로기를 담고 있다. 장애를 의료적 ‘치료’의 대상인 부족한 ‘몸’으로만 보는 의료적 모델과 같은 맥락에 있기 때문이다. 재활을 의학의 하위영역으로 두는 서술 방식을 피하고자 기술사학자 베스 링커(Beth Linker)는 본인의 책 <전쟁의 잔여물: 제1차 세계대전 미국에서의 재활War’s Waste: Rehabilitation in the First World War America>에서 재활을 “의료적 전문성의 영역”만이 아닌 “의학적 아이디어, 사회적 개혁, 문화적 가치, 전문가의 권위, 그리고 정책 형성”이 모여 만들어지는 결과로 보고자 하였다고 밝히기도 했다.[6] 재활이 한 사회가 공적ㆍ사적인 자원을 들여 회복시키고자 하는 질서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의료적 모델을 넘어 재활과 사회의 관계를 폭넓게 파악하려는 시도이다.

이 책은 ‘재활’의 형성에 관한 사회ㆍ역사학적 연구가 부족하던 1980년대 중반에 쓰였다. 의료 전문화가 “의학 지식의 절대적 증가”와 “과학적 기기들의 증식”에 의해 “촉진되었다”(29쪽)는 주장이 중론이던 당시에 중요한 사회학적 경험 연구를 제공했을 것이다.[7] 그러나 옮긴이의 바람처럼 “장애가 의학적 모델로 설명되는 것이 정말로 자연스러운 일이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인가?”(280쪽)라는 질문에 이 책이 적절히 답할 수 있을지, 한국 내에 만연한 의료적 모델을 극복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 책은 재활이나 장애의 의미에 관해 묻지 않으며, 오히려 의학 분업의 역사 내에서 재활을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1] 이하 쪽수만 표시한 인용문은 해당 책에서 발췌.

[2] 저자들은 직업명의 변화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전기요법의사(1890-1918) à 물리요법 의사 (1917-1920) à 물리치료 의사 (1920-1941) à 재활의학과 전문의 (1941-1950). 직업명은 정형외과 전문의,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등 주변 경쟁직과의 관계에서 전문직의 정체성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변했다. 저자들의 서술에 의하면, 이러한 정체성의 변화는 양차 세계대전과 깊은 관계가 있었다. 이는 각 변화가 일어난 시점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 본문 274쪽의 「붙임 A. 직업명의 변화」 참조.

[3] 전기치료요법 의사들이 처음부터 만성질환을 다룬 것은 아니다. 전쟁 이전의 의료적 대상은 급성질환 환자였기에, 전문의료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급성질환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을 증명해야 했다. 급성에서 만성으로의 변화는 의학사에서 중요한 주제이나, 이 책에서는 깊이 다루지 않는다.

[4] 당시 물리요법 혹은 물리치료의사

[5] “장애를 경험하거나 경험할 가능성이 있는 개인을 지원하는 일련의 조치로서, 환경과의 상호작용에서 최적의 기능을 달성하고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목적을 지닌 것.” 세계보건기구(WHO), 세계은행 (2011), <장애에 관한 세계 보고서(World Report on Disability)>, 96쪽. 이는 세계보건기구가 2001년에 발간한 <국제기능장애건강분류(ICF: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Functioning, Disability and Health)>의 장애 모델을 기초로 정의되었다.

[6] Linker, Beth (2011), War’s Waste: Rehabilitation in the First World War America, University of Chicago Press, pp. 191-192.

[7] Reiser, Stanley J. (1978), Medicine and the Reign of Technolog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p. 149에서 재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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