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테크니션 이재규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석사과정

박지원

parkjwn@kaist.ac.kr

정소연

soy5914@kaist.ac.kr


과학기술의 초상화는 천재 과학자만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실험 장비를 정밀히 조절하고 실험을 디자인했던 테크니션 없이는 반 쪽짜리 과학기술사만 존재할 뿐입니다. 이번 호에서 과학뒤켠은 카이스트의 테크니션을 찾아가 그들의 역사를 담은 과학기술을 알아보려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과학기술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산업의 역군을 꿈꾸며 테크니션이 되었고, 현재는 한국과학기술원 산업디자인학과 학생들에게 그의 테크닉을 전승하시는 이재규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한국인 테크니션, 산업의 역군

Q. 어떤 이유로 테크니션이 되셨나요?

오래전에는 우리나라가 산업의 역군을 중요시하는 시절이 있었어요. 내가 10대 때, 소위 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죠. 그때는 공고나 상고라는 실업계를 국가적 차원에서 부양하던 때였고, 그때 자연스럽게 나도 산업의 역군이 되어보고자 했어요. 즉, 기술을 만지고 다루는 쪽의 일을 시작했죠.

 

Q. 테크니션으로서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

프로모델러라는 일을 했어요. 주로 개발되는 제품의 워킹프로토타입을 제작하는 일이에요. 다양한 일을 했었죠. 자동차 디자인 모델 작업도 참여했고, 우리나라 초기 핸드폰 모델은 다 작업했었죠. 예를 들어, 그때는 금성 통신이었던 LG 또는 삼성. 그리고 우리나라 초기 노트북 제작하는 회사에서도 모델링 일을 했어요. 요즘은 그런 직업이 있는지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저는 프로모델러로 오랜 시간을 보냈어요.

 

Q. 프로모델러가 익숙하지 않은데, 어떤 일을 하는지 소개해주세요.

예를 들어 제가 전화기를 디자인한다면, 디자인 모델을 만들어서 품평하고, 그렇게 선택된 모델을 실제로 작동이 가능한 전화기로 만드는 일을 해요. 저희는 인터렉션이나 인터페이스 같은 테크놀로지가 안착할 수 있는 모든 도면을 만들어요. 워킹프로토타입[1]을 만들어보면서 후에 금형이나 양산 중 생길 수 있는 문제의 격차를 줄여나가는 일이에요. 1:1로 제작하는 작업 없이 금형을 했는데 문제가 생겨 수리하면 1~2억이 들어요. 모델을 통해서 끊임없이 제품 개발의 피드백을 받는 거죠. 버튼이 눌리도록 하고, 버튼감이 좋은지 안 좋은지 실험하고, 통화가 되도록 하죠.

 

Q. 모델링은 어떻게 배우셨나요?

어떤 능력이 있는 선생이나, 그 기술을 대표할 수 있는 선망 받는 하이클래스의 테크니션이 아래 사람들을 관리하고 지도했어요. 저희는 눈으로 보고, 그것을 하나하나 작은 것부터 만들면서 점점 더 나은 기술로 나아가는 거죠. 지금은 모든 것이 세분화되었지만, 그 이전에는 본인이 북 치고 장구 치고 모든 것을 다해야만 완성된 모델을 만들 수 있는 그런 시대였어요. 내가 이것[워킹프로토타입]을 만들기 위해서 부수적으로 기계 가공을 해야 할 부분에서는 기계 가공을 하고, 형을 만들어야 하면 진공 성형을 직접 한다던가. 모든 과정을 거쳐서 혼자 최종적인 완성 모델을 제작하는 시기라, 본인이 해야 하는 부분이 넓었죠. 그래서 배우는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Q. 프로모델러로서 중요한 능력은 무엇일까요?

모델링은 눈앞에 나타나는 것이라 거짓이 없어요. 측정하고 형태를 보면 잘못된 것인지 잘 된 것인지에 대한 구별이 너무나 명확하게 나타나는 일이에요. 상당히 치밀하게 접근을 해야 해요. 조립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항상 0.1~0.2mm 공차[2] 안에서 핸드메이드로 제작하죠. 도면 상에 문제가 없는데 제작 상에 문제가 있다면, 나의 책임하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실수를 적게 하려고 부단히 노력해야만 하죠.

 

Q. 이 일을 하실 때 즐거우신가요?

저도 처음에는 제가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지 몰랐어요. 그런데 이 일을 시작하면서 너무 재미있어서 밤을 다 새면서 일을 했어요. 남들 퇴근할 때 미안해서 퇴근하는 척했다가 다시 정류장에서 돌아오기도 하고. 더 제작해서 서랍 안에 감추어 놓고 퇴근하고. 다음 날 아침에 와서 보면 덩어리가 더 커져 있는 일이 생기자 나중에 사람들이 알게 되었죠. 저 친구가 갔다가 몰래 돌아오는구나. 재밌으니깐 시간 투자를 많이 했죠. 완성품에서 오는 즐거움 그런 게 있었어요. 그리고 우리가 만들었던 워킹프로토타입이 몇 달 뒤면 시중에서 판매가 되니까 그 또한 상당히 즐겁지요.

 

카이스트 테크니션, 소통하는 스승

Q. 산업계에서 일하시다가 카이스트에 어떻게 오게 되셨나요?

90년 대 초반에 카이스트와 국방부가 같이 하는 디자인 프로젝트가 있었어요. 그때 외부 인력이 필요해 한 달간 대전에서 학생들에게 디자인 모델제작을 가르쳤어요. 그 이후에 제 전임으로 있던 분이 다른 대학의 교수로 임용되고 제게 테크니션으로 학생들을 지도하면 어떻냐는 제의가 들어왔어요. 프리랜서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데 카이스트에 오면 제도권 내에서 생활하고 봉급생활자가 되는 거라 망설였죠. 고민을 하다 저에게는 새로운 경험이고, 그 경험을 맛보고 싶었어요. ‘과학기술원 내에서 모델 제작을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니 ‘대전광역시에서 나보다 모델을 잘하는 사람이 있을까?’하는 겁 없는 자신감이 있었죠.

 

Q. 카이스트에서 테크니션의 역사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한국과학기술대학(KIT)이 만들어졌을 당시 독일에서 마이스터 칭호를 받은 한국인들을 테크니션으로 영입했어요. 그분들은 기술교육원이라는 이름으로 교수와 직원이 아닌 별도의 중간 직급을 주고, 교수님 수준에 준하는 대우를 해줬어요. 서울 한국과학기술원(KAIST) 본원과 합쳐지면서 기술직과 행정직, 두 직급으로 나눠지고, 기술교육원이라는 직군은 사라졌어요. 이제 기술교육원으로는 안 뽑죠.

 

Q. 테크니션 사이에 교류가 활발한가요?

기술교육원분들과 그 이후에 뽑힌 테크니션들이 모여 기술교류, 정보교류 차원에서 회를 하나 만들었어요. 꾸준히 명맥은 유지되고 있는데 최근에는 워낙 장비가 좋아져서 과거처럼 기술교류가 활발하지 않아요. 하지만 일 년에 몇 번씩 모임을 갖고 있습니다. 서로 좋은 이점이 있어요. 예를 들어서, 내가 생명화학공학같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 도움을 청하면 그분들이 알고 있는 지식과 관련 자료를 넘겨주는 식으로 서로 도움을 받죠.

 

Q. 학생들에게 무엇을 가르치시나요?

기초디자인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재료를 다루는 방법, 제작에 필요한 기기, 컬러링 기법, 그래픽 기법을 교육하죠. 본인 연구를 시작하면 학생들마다 추구하는 것과 만드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1:1로 설명해주고 공구를 통해 손으로 무언가를 완성시키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학생들이 대부분 과학고에서 진학해서 이런 수업 자체가 굉장히 생소해요. 특히 비례, 균형, 텐션과 같은 시각적인 안목을 길러주려고 합니다. 이 단계를 넘으면 이 제품이 안전한가? 인간공학적인가? 를 다루죠. 고학년이 되면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기도 하는데 이럴 때 굉장히 뿌듯합니다.

 

Q. 카이스트에 온 후 따로 노력하신 점이 있으신가요?

학교에 온 후 학생들이 너무 똑똑해서 실습 질의응답을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카이스트는 연구 목적으로 접근하는 차이가 있죠. 야간에는 대학원에서 실기보다 디자인 이론을 정립하려고 시간 투자를 많이 했죠. 또 이재규라는 사람의 색을 명확하게 보여줘야 된다, 즉 모르는 것은 담백하게 모른다고 말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쌤 이거 잘 모르겠는데? 같이 알아보자.” 이야기했죠. 이것이 학생들에게 더 신뢰감을 준 것 같습니다. 또한 제가 모르는 것은 다른 전문가와의 관계를 통해 제시해 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목공예, 기계가공에 절대적으로 잘하는 사람들과 친분을 갖고 학생들이 제가 모르는 부분을 질문하면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Q. 학교에서는 테크니션이자 선생님이신데 선생님 역할은 어떠신가요?

학생들이 저에게 믿고 의지하고 싶어 하는 욕구도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있던 생각은 아니었는데 학생들이 힘들 때 여기서 몸을 움직이면서 작업하며 스트레스도 풀리는 공간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누가 저에게 그런 역할을 준 건 아니에요. 또 모든 학생이 저를 찾아온 것도 아니죠. 그래도 대학원 떨어져서 울면서 찾아오는 학생, 교수님께 혼이 나서 심리적으로 위축된 학생, 외국에서 와서 외로운 시간을 보내는 학생들이 찾아오면 “할 수 있어 걱정 마” 하고 밥이라도 같이 먹었죠. 어린 나이에 닥친 상황에 대한 좌절과 공포를 어른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주어요.

 

이재규 선생님의 인터뷰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 “오래전에는, 그때는” 그리고 “지금은, 요즘은” 이라고 말씀하시던 선생님의 답변이 계속 머릿속에 맴돕니다. 모형제작실습실이 있는 건물을 나와, 산업디자인 건물 큰 창문에서 보이던 화려한 컴퓨터와 기계의 장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3D프린팅 같은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손과 신체로 단련된 이재규 선생님의 기술은 종이와 연필을 통해 전승될 수 없는 지식이었습니다. 이재규 선생님은 대전에서 자신만큼 이 일을 잘할 사람이 없다고 확신했기에 KAIST 학생들을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하셨다 합니다. 자신의 기술을 완성하려던 그의 끊임없는 노력은 그의 눈과 손에 녹아 있었고, 지금 우리 손에 있는 이 기술 또한 완성품으로 만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1] 워킹프토로타입(working prototype): 실질적인 가장 큰 범위의 의도된 설계의 최종 디자인, 미학, 소재와 기능을 시뮬레이션을 시도합니다. 기능적 프로토 타입은 비용을 줄이기 위해 크기 (작게 줄인다면)에서 줄어들 수 있습니다. 제대로 작동하는 본격적인 프로토 타입 및 개념의 궁극적인 시험의 건설은 설계 결함에 대한 엔지니어 ‘최종 확인하고 더 큰 생산 실행 명령을하기 전에 막판 개선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https://www.manufacturingterms.com/Korean/Working-Prototype.html)

[2] 공차: <법률> 화폐나 도량형기(度量衡器) 따위에서, 정해진 규격과 실제의 것과의 차이를 법률에서 허용하는 범위. (고려대한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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