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인류학으로 바라본 인종주의와 과학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석사과정
박지원
parkjwn@kaist.ac.kr


박지원_책 이미지 (1)

조너선 마크스, 고현석 옮김 (2017),『인종주의에 물든 과학』, 이음.
[Marks, Jonathan (2017), Is Science Racist?, John Wiley and Sons Ltd.]

 

 

 


현대 사회는 사회적 편견을 옹호하는 정치적인 신념을 잘못되었다고 평가한다. 예를 들어, 인종주의에 기반한 노예제도, 인종분리제도 등을 옹호할 경우 사회적 낙인이 찍힌다. 그러나 생물인류학자인 조너선 마크스는 최근의 유전자 검사와 게놈의 과학적 연구도 인종주의에 뿌리를 둔 과학이지만, 대중은 이러한 연구 과정과 결과를 쉽게 용인하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에 문제를 제기한다. 그는 『인종주의에 물든 과학(원제: Is Science Racist?)』를 통해 유독 인종주의에 뿌리를 둔 과학만큼은 쉽게 용납하는 상황을 설명하고, 인종주의적 과학이 잘못된 생각을 지지할 뿐만 아니라 잘못된 과학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밝힌다.

저자는 인종주의에 물든 과학이 지지받는 현실의 시작점으로 과학을 정의한다. 저자에 따르면 과학은 의 정의를 든다. 저자에 따르면 과학은“현대 세계에서 권위 있는 지식을 생산하(61쪽)” 체계다. 책의 다섯 장은 과학과 인종주의라는 주제를 확장하며 과학이 어떻게 이러한 자격을 갖추게 되었는지를 설명한다. 1장에서는 과학계에서 인종주의가 난무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2장에서 인종이라는 분류가 학문적으로 어떻게 탄생했는지 설명한다. 이를 통해 과학의 원리라고 믿었던 인종이라는 개념이 어떤 점에서 논리적 비약을 가지는지 공격한다. 그다음 장부터는 주제를 바꿔 구체적으로 과학적 사고의 특성에 대해 설명한다. 3장과 4장에서는 과학이란 무엇이며, 과학의 가치중립성의 한계를 통해 유전체학과 생체의학의 불합리성을 지적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인류학의 시각에서 본 인간과 집단에 대한 이해를 설명하며, 생물학의 관점에서 인종주의가 받아들여질 때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끝맺는다.

현대사회의 대중은 인류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설명은 신뢰하는 반면, 창조론과 같은 신의 영역에서의 설명은 쉽게 납득하지 않는다. 그러나 조너선 마크스에 의하면 다윈의 진화론 이후 인종마다 어떻게 다르게 진화했는지의 문제가 결국 전근대적이라고 치부 당한 인류일조설(monogenism)과 인류다원설(polygenism)의 논쟁과 유사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자가 모든 인종이 같은 혈종에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라면, 후자는 처음부터 “신”이 다른 인종을 창조했다는 주장이다. 후자의 인종주의자들은 다윈의 이름과 함께 진화론의 논리를 이용하여 백인이 가장 진화한 형태의 인종이라는 점과 백인의 지능이 선천적으로 높다는 주장을 이어왔다. 이는 창조를 진화라는 과학의 언어로 교묘하게 바꾼 결과이다.

‘과학적’이기 때문에 이들의 목소리를 용납해도 괜찮은 것일까? 작가는 이 걱정을 감정적인 우려로 끝내지 않고, 인종주의의 개념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역사를 설명하며, 이 과학은 잘못된 과학이라고 비판한다. 린네는 인종이라는 명명 없이, 식물을 분류하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사람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모아 분류했다. 모순되게도 인종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린네의 분류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뷔퐁이 여행을 하며 만난 사람들을 ‘인종’으로 표현하면서부터다. 양 끝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하는 두 사람으로부터 태어난 개념이 인종이다. 조너선 마크스는 단지 인종이라는 개념의 잘못된 예로 우생학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시작부터 잘못된 실을 꿰고 싹튼 인종의 탄생은 그 이후로도 유전학과 잘못된 생각이 결부되며 인종주의의 뿌리를 더 깊게 박았다. 유전학은 게놈, 혈액형, 두개골 등을 분석하며, 인간의 생물학적 데이터와 문화적이고 사회적으로 형성된 특징 간의 상관관계를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또 다른 예로는 유전학에 기반을 둔 질병에 대한 이해도 있다. 저자는 특정 사람들만이 갖는 유전적인 특이점이 있을 수 있지만, 이는 현대적 의미의 인종과는 다른 차원이며, 건강의 문제가 다른 요인에서 비롯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인종과 인간의 변이는 다른 차원의 개념이며, 일반적으로 자연의 원리를 담고 있다고 믿는 과학과 달리 인종은 자연의 원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저자가 인종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종의 정의나 특징은 사회적이고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요소가 개입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종주의적 과학에는 크게 두 가지의 논리적 비약이 숨겨있다고 말한다. 첫째, 인종이라는 분류가 과연 적합하냐는 문제이다. 백인, 흑인 등 피부색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분류된 집단 내에서도 개개인은 하나로 묶을 수 없는 다양한 차원에서의 이질성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유전학적으로도 집단 내의 변이가 집단 간 변이보다 크며 이 변이는 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 둘째, 그는 그 기준이 정말 과학이 전제하는 객관적 기준에 의한 것인지를 의심한다. 인종주의는 과학의 분류 체계에서 나온 인종이라는 개념과 사회학적이고 역사적인 문명이라는 개념이 함께 충돌하면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저자는 이를 “생물문화적인 범주(bio-cultural category)”라고 칭한다(60쪽). 따라서 인종주의에서 상정한 우월한 인종과 열등한 인종의 기준은 자연의 원리로 설명할 수 없다.

대중은 인종주의가 잘못된 생각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과학의 언어로 “인종 간에 자연적인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믿음이 생길 여지를 남겨둔다면”(23쪽) 이는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직감적으로 느껴지는 허구성에도 불구하고 과학자 또는 과학이라는 단어가 함께할 때 그들의 주장은 힘을 갖기 때문이다. 과학은 표준화라는 과정을 통해 객관적이고 정확한 결과를 도출하고자 한다. 다시 말해, 실험의 주체를 지우고, 동일한 규칙을 적용할 수 있도록 실험 대상을 조정하여, 누구나 같은 결과를 창출하게 한다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이러한 과학적 사고 과정의 특징을 자연주의, 객관성, 합리주의, 정확성이라고 본다.

저자가 말하고자 한 과학의 이면은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과학적 사고와는 다른 방식으로 과학적 지식이 창출된다는 것이다. 과학적 사고의 객관성이라는 특징 때문에 과학은 도덕이나 개인의 이윤과는 거리가 먼 사고라고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나치에 의한 유대인의 집단 학살은 과학이 국가를 위한 합리성과 효율성이라는 좋은 무기를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저자는 현대 사회가 과학과 국가와의 연결고리를 넘어 DNA검사 사업과 같이 자본주의에 봉사하는 과학을 설명한다. 과학에 관점이 부재하거나 동일한 규칙만이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저자는 최소한의 도덕성을 지닌 과학자를 원한다고 말하는 것이다(67쪽). 아무리 과학적 사고가 자연주의, 객관성, 합리주의, 정확성이라는 특성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도덕성이 부재한 과학자가 잘못된 과학적 지식을 창출하는 것으로부터 보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에게 객관성과 주관성이라는 개념은 잘 와 닿지 않는다. 무언가가 객관적 혹은 주관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생각하는 방식 또는 접근의 문제이며 명사화시킬 수 있는 성질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립적이지 않으면서도 객관적인 글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너선 마크스의 책이 그 예라고 생각한다. 그가 인종주의는 잘못된 생각이고 과학은 이런 연구주제를 가져서는 안 된다고만 말했다면, 인종주의를 옹호하는 과학에 눈살이 찌푸려졌겠지만, 그의 글은 힘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최소한의 도덕성을 지닌 과학자와 과학지식이 필요하다는 그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 것은 그의 주관적인 평가를 설득시켜주는 많은 자료와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생물인류학의 지식으로 인종주의적 과학의 한계를 설명하고, 이를 확장시켜 과학의 권위에 도전하는 주장을 이해하기까지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하지만 그의 과학적 사고는 “인종 간에 자연적인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믿음”(23쪽)의 다른 이면을 보여주었고, 과학이 아닌 인간 사회의 현상으로 인간의 변이를 이해할 기회를 주었다.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WordPress.com 제공.

위로 ↑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