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인데 과학자이고 싶습니다

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ESC) 젠더다양성위원회 위원장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윤정인
jiyun960907@gmail.com


나의 직업은 엄마다. 그리고 엄마이면서 나는 과학자다. 필자는 항상 본인을 소개하는 데 “엄마 과학자”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실 본인의 세부적인 전공을 굳이 따져서 직업군을 설명하자면, 유기 합성을 전공한 유기화학자라고 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세부적으로는 의약품 합성 연구를 진행한 약학박사이기도 하고, 또 작은 벤처에서 연구소장을 하고 있으니 그 직책으로 불리어도 크게 불편할 일이 없다. 이렇게 삐까-번쩍한 수식어를 잔뜩 붙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엄마 그리고 과학자”라고 불리는 데 집착하고 있다. 굳이 거창한 이유는 딱히 없다. 그냥 내가 엄마임을 드러내고 싶기 때문이다. 적에게 나의 약점을 대놓고 드러내는 일종의 전략적 자세랄까?

사실 우리가 모두 알고 있지만,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그 이유…

입 밖으로 내뱉는 순간 완벽한 기정사실이 될까 무서워 차마 말하지 못하는 이유…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여성은 학생이란 이름을 달고 있을 때 가장 평등한 사회를 만나고, 그 이후의 삶에서부터 소소한 불평등을 경험하며 인생의 정점으로 결혼과 출산을 찍고 나면 “엄마”라는 직업을 평생의 약점으로 가지고 살 게 되지 않던가….

과거부터, 지금도, 그리고 어쩌면 미래도….

이 업계에서 여전히 엄마라는 것은 핸디캡이다. 아니라고 하지만, 핸디캡이 맞다. 그런 이유에서 필자는 내가 엄마임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내가 엄마인데 뭐 보태 준거 있느냐란 뉘앙스인 셈이다.

왜 나는 엄마라는 사실을 핸디캡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왜 굳이 엄마인데 과학자란 사실을 어필하고 싶은 것일까?

이는 내가 졸업 후 맞이했던 현실이 내가 대학원에서 기대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정면으로 마주했기 때문이다. 엄마와 과학자가 공존할 수 있는 개념이라는 나의 막연한 생각과는 달리 현실은 냉혹했다. 현실 세계에서 엄마는 과학자이면 안 되고, 과학자는 엄마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 둘은 절대로 공존할 수 없었다.

나는 박사 1년 차에 결혼을 했다. 많은 대학원 선배들이 그랬듯이, 안정된 가정을 꾸려 그 가정의 보살핌을 통해 박사를 마치고 가족들과 함께 외국에서 포스트 닥터 생활을 1, 2년 보낸 뒤 한국에서 정착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래서 학위 과정 중간에 결혼했다. 결혼 후 필자의 삶은 여느 대학원 선배들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시댁에서 조금씩 나오는 말은 신랑이 알아서 잘 커버를 쳐주었고, 사실 공부를 많이 하는 며느리가 꽤 어려웠던 시댁은 나에게 별말을 하지 못했다. 안정된 삶이었다. 그저 연구만 열심히 하면 되는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물론 약간의 불편함은 있었다.

마리 퀴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한 결혼이었다. 그러나 나는 마리 퀴리처럼 남편의 내조를 받을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정도까지의 내조를 받을 수 없었다. 전폭적인 남편의 지원으로 함께 공동연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남편은 타 회사에 다니고 있었으므로)  남편의 내조로 실험실을 차리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저 남편이 나를 내조하는 방식은 시댁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무것도 모르는 공부만 하는 서울 며느리”로 살 수 있게 나를 포장해주는 것이 다였다. 물론 이 정도만 해도 대한민국에서는 꽤 훌륭한 남편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나 일이 바쁜 연구직 아내를 둔 남편이라면 이 정도면 훌륭한 내조가 맞을 것이다. 덕분에 나는 공부하는 며느리로 특별히 귀찮은 일 없이 시댁 일은 모르는 척하면서 살 수 있었다. 약간은 불편하지만, 그럭저럭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평화로운 삶이 조금씩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나의 임신과 동시에 말이다. 살면서 단 한 번도 약자라고 생각해본 적 없던 나는 임신부 연구원이 됨과 동시에 약자라는 것을 인지하게 됐다. 임신하는 순간 제약이 걸리는 실험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고 자기장을 뿜어내는 장치인 NMR기기는 유기화학자들에겐 필수적인 분석기기이지만, 직접 오퍼레이션(operation)이 불가능했다. 임신부는 고 자기장에 노출되어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임신을 하고 난 뒤 주변 동료들에게 “미안하지만, 이것 좀 부탁해도 될까?”라는 말을 달고 살게 되었다. 무언가 자꾸 부탁해야 하는 입장이 불편해졌다. 이러한 불편함이 거듭될수록 죄인 아닌 죄인이 된 것 같았다. 모두가 나를 배려해주겠다고 말했지만, 이런 배려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 배려를 받는 순간 내가 온전히 연구자로 인정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팀의 배려로 일찍 퇴근을 할 수 있었고, 랩에서 맡은 업무도 줄일 수 있었고, 실험 양도 줄일 수 있었지만, 랩장이라는 직함이 가지고 있는 무게에 눌려 아무런 혜택도 누리지 못했다.

NMR사진_윤정인 (1)

<그림 1> NMR 분광기

대부분의 임신한 여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모두가 나를 배려해줌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를 증명하고 싶었다. 나에겐 배려가 아닌 “넌 이제 쓸모 없는 사람이야, 더이상 연구자가 아니야”라고 들렸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엄청난 벽에 부딪힌 셈이나, 지금에 와서 한걸음 떨어져서 쳐다보면 상당히 흥미로운 지점이 아닐 수 없다. 과학자가 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하고, 또 대학원에 진학하였고, 보다 더 큰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싶어 정부출연연구소의 학생연구원으로 지원했던 모든 삶의 시기에서 나는 내가 여성이기에 불이익을 받았던 기억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공계의 많은 여학생이 경험한 정도의 재수 없는 선배들이 몇몇 거슬렸을 뿐, 내가 여자이기에 랩실 면접에서 탈락하거나, 혹은 여성이기 때문에 논문을 낼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치거나, 또 심지어 여성이란 이유로 실험에서 배제를 당하거나 하는 등의 불합리한 일을 전혀 겪지 않았다. 정말이지 평등한 사회를 경험했다. 실험의 숙련도나 학문의 숙련도에 따라서만 오롯이 평가를 받는 너무나도 평등한 사회가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이 사회는 임신과 동시에 변하기 시작했다.

임신부 연구자가 된 뒤 사용할 수 없는 기계가 생겼다.

임신부 연구자가 된 뒤 사용할 수 없는 솔벤트(solvent)가 생겼다.

실험을 해보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실험들이 생겼다.

태아와 임신부에게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독성을 피하기 위해 실험이 제한되었다. 그러나 연구자로서 실험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실험을 하기 위해서 계속 주변 동료들에게 부탁해야 했다. 그리고 나는 한 명분의 일을 못 한다는 생각에 계속 작아졌다. 스스로 위축되기 시작했다. 물론 출산 이후의 현실에 비교하면 이 정도는 큰 문제도 아니었었다.

 

출산, 불편한 세상의 시작

이 조금 불편한 세계는 출산 이후, 내가 아이 엄마라는 것이 기정사실로 되는 순간 나를 밀어내는 완벽한 유리벽이 됐다. 아이 엄마는 취업시장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취업시장에서의 나는 [나이가 어린] [여성] 연구자였고, 그나마 나이가 어리다는 수식어가 붙을 때는 나의 연구에 관심을 주었다. 이런 관심마저도 나에게 [기혼 여성]이라는 단어가 붙고, 거기에 아이가 어리다고 하는 순간 없어졌다. 박사 후 바로 취업 준비를 하던 시절이나 혹은 이직을 준비하며 본 면접에서 참 당황스러운 순간이 많았다. 가장 당황스러운 순간은 연구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것이 아닌, 아이는 누가 키워줄 것인지를 물어볼 때였다. 아이가 있는데 야근을 할 수 있겠냐고 묻는 말이 가장 많았다. 아이 어린이집 등・하원 시간을 물어보는 곳도 있었다. 둘째 계획을 묻는 말도 많았다.

취업해야 하는 ‘슈퍼 을’이었던 당시에는 이 질문이 무슨 문제가 있는지도 인식하지 못했다. 당연히 연구자는 가정이 아닌 연구에 올-인을 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돌보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기업에 어필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웃기는 일이었다.

저 질문들은 나에게 하면 안 되는 무례한 질문이었다. 연구자를 뽑는 면접에서 성별, 결혼 유무, 아이 케어에 관련된 이야기는 연구자의 능력과는 무관한 질문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러한 개인사를 바탕으로 나의 성향이나 또 성장 가능성을 본인들의 입장에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나에게 그간 내가 쌓아온 연구 내용과 또 향후 하고 싶은 연구에 관하여 물어야 했다. 내가 만약 그들이 생각하는 [나이가 적당한] [남성] [기혼] [아빠] 과학자였다면 저런 질문을 했겠는가? 아니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남자 동기 중에는 단 한 명도 저런 질문을 받아본 이가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와 같은 전공자인 내 남편 역시 단 한 번도 저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했다. 내가 [기혼] [여성] [엄마] 과학자란 이유로 받아야 했던 질문이었다.

왜 저들은 나에게 그런 것을 물어야 했을까?

저런 질문들을 하는 기저에는 이런 생각이 깔려 있었을 것이다.

 

여자는 아이 핑계로 야근을 안 해.

애 엄마는 애 본다고 혹은 애가 아프다고 툭하면 회사를 안 나와.

애 엄마는 쉽게 그만둬.

 

그들이 나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의 본질은 이것들이 아니었을까? 그들이 궁금했던 것은 나의 학력과 연구 경력이 아니었을 것이다.

너 애 있다면서? 너 그럼 야근 안 할거잖아. 너 애 아프다고 안 나올 거잖아.

그게 묻고 싶었을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을 하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깊게 뿌리내린 젠더 의식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우리는 어린 시절 많은 책에서 비슷한 그림을 보고 자랐다. 양복을 입고 출근하는 아빠와 앞치마를 두르고 국자를 쥐고 있는 엄마, 그 가운데에서 가방을 메고 있는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둔 이상적인 가정의 형태. 이러한 그림은 우리의 무의식 속을 파고들어 남녀가 모두 평등하게 공부를 하고 사회에 진출하는 지금에서도 집안에서 돈을 버는 사람은 아빠, 그리고 아이를 케어 하는 사람은 엄마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저 연구자로서 기업에 입사하고 싶은 나에게 저런 질문을 하게 했던 것이 아닐까?

어쩌면 그들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삶을 뒤돌아봐도 여성 동료들은 아이를 보느라 바빴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아이 키우느라 힘들다며, 혹은 남편을 거취에 따라 조용히 회사를 그만두었을 것이다. 그런 틈에서 살아남은 여성 동료는 몇 명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나와 같은 신진 인력을 뽑았다가 마찬가지의 이유로 그만두는 것이 염려되었을 것이다. 그러한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나에게 저런 무례한 질문을 쏟아내며 내가 남자들과 동등하게 야근을 하고 아이가 아파도 나올 수 있는지를 묻고 싶었을 테다.

이상하지 않은가?

아이는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남성의 유전자와 여성의 유전자가 만나야 배아가 이루어진다. 유전자를 제공한 사람은 분명 2명이다. 즉 아이의 보호자는 엄마만이 아니다. 아빠도 보호자다. 그런데 왜 아이가 아파서 회사에 나오지 못하는 이는 엄마이어야 하는가? 저들은 왜 자신의 여성 동료가 실험이 바쁜데도 불구하고 퇴근을 해야 하는지를 한 번이라도 생각해보았을까? 아니 해봤을 리가 없다. 본인들은 야근할 때 아이를 하원 시키는 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해본 적이 없을 테니 말이다. 아이를 한 번도 하원 시켜본 적이 없는 이는 아이 하원 때문에 정시에 퇴근하는 동료를 이해할 수 없다. 이해하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은 공감 능력이 매우 뛰어난 사람일 것이다.

참으로 재미있는 상황이 아닌가?

여성 연구자 개인이 학위 과정에서 충실했건 그러지 않았건 졸업 후 연구자의 가치가 기혼과 미혼으로 분리된다는 사실이 말이다. 참으로 불편하지 않은가?

반대로 미혼이면 이러한 불평등이 해결될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실제 미혼인 여성 동기는 면접관에게 늘 자신의 결혼 계획을 설명해줘야 했다 했었다. 미혼인 여성 연구자에게는 남자친구가 있는지 남자친구와의 결혼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또 자녀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를 물어본다고 한다. 무엇 때문에 궁금한지 이젠 놀랍지도 않고, 그런 무례한 이들이 아직도 존재한다는 점이 사실 더 놀랍다.

 

여성 연구자는 대체 인력이 아니다

이러한 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성 연구자를 판단할 때 개인의 역량과 개인의 연구 커리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성 연구자는 언젠가 그만둘 수 있는 인력이라고 보고 있다. 이공계 인력이 부족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안에서 여성 연구자는 남성 연구자와 동등한 중요 인력이 아니라 결혼 여부에 따라 곧 그만둘 사람 혹은 한동안 계속 다닐 사람이라 평가하는 세상인 것이다.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막상 이러한 일을 정면에서 당하는 이는 자신이 부당한 일을 당하는지조차 모른다는 것이다. 그저 저런 무례한 질문에 대하여 아이 키우는 문제는 누군가 도와주는 이가 있어서 자신은 회사에 올인할 수 있다는 이미 정해진 답변을 내뱉어야 하고, 또 이러한 일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자신의 개인 역량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실제 내가 그랬다. 우리 부부는 함께 육아를 하기로 했지만, 실제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이는 나였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면서 야근을 하지 않고 나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졌다. 모두가 저녁을 먹고 야근을 하기 위해 움직이는데 눈치를 보며 옷을 입고 가방을 들고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정시에 퇴근하는 것이 죄인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연구는 개인의 컨디션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연구자가 연구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이가 아프다? 아이를 케어 한다고 밤을 새우고 회사에 출근하는 일이 반복되면 부득이하게 연구 컨디션이 나빠진다. 실험이 영향을 받기 시작한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면 실험을 망치거나 혹은 윗사람에게 실험 결과에 대한 압박을 받게 되는 일도 벌어진다. 이 모든 일을 경험하다 보면 연구자로서 자존감이 무너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전 회사가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벤처와 다르지 않았다. 바쁜 일이 없으면 정시에 퇴근하면 되고, 일이 바쁘면 주말에 나와서 실험을 해야 하는 곳이었다. 문제는 일을 마무리하고 나가고 싶지만, 연구팀 그 누구도 정시에 퇴근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정시 퇴근을 하는 이는 승진을 포기한 사람 혹은 회사를 취미로 다니는 사람이 된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는 아이 엄마를 향하게 된다. 남편이 버니 당신의 돈은 덤이라는 개념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애 엄마라 힘드니까”라는 말은 연구자에게 무서운 포장이었다. 이런 포장에 싸여 엄마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하는 연구자들은 점점 실무에서 멀어지기 쉽다. 실무에서 멀어지다 보면 어느 순간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이는 구조조정 순위의 대상자로 올라가게 된다.

나는 그렇게 첫 직장에서 서서히 멀어져 갔다. 아이 엄마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도 현장 연구자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도 너무나도 버거웠던 시기가 찾아왔었다. 그리고 현장 연구자의 직함을 버릴까 진지하게 고민해보기도 했었다. 아니면 엄마의 정체성을 버릴까도 고민했었다.

나보다 먼저 현장 연구자로 사는 많지 않은 멘토들은 대개 이렇게 말한다. 힘들지만 버텨야 한다고, 또 좋은 연구를 계속하다 보면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고, 남자보다 더 잘하면 된다고 이야기하신다. 남자 연구원들이 야근하는 것처럼 우리도 야근하고 일을 하면 인정받는다고 했다. 이러한 멘토들의 말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분명 그들은 그런 노력을 통해 인정받고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갔을 것이다. 우리의 선배들은 지금보다 더 척박한 환경에서 임신 출산 육아를 하며 훌륭한 연구자로 성장했고, 또 우리에게 그것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 부분이 참 어렵다. 내가 육아를 하며 연구자로서 자존감이 무너졌던 그때, 나는 내가 엄청난 연구를 해내지 못해 엄마라는 핸디캡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지극히 뛰어난 여성연구자만이 살아남는 시대에서 나 같은 평범한 연구자는 육아 핸디캡을 연구로 극복하지 못해 좌절감을 맛보게 될 수도 있다. 평범한 남성 연구자들은 엄청난 연구를 하지 않아도 아빠 과학자로 살 수 있는데, 평범한 여성 연구자들은 엄청난 연구를 해야 비로소 엄마 과학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는 말이 되지 않는다.

사회가 변했다고 한다. 과거보다 아이를 키우기 어렵지 않다고 한다. 예전보다 연구직도 육아휴직이나 출산휴가를 쓸 때 눈치를 덜 본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정상적인 곳이 적다. 출산휴가는 갈 수 있지만, 다녀온 후 승진에서 누락되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육아휴직을 쓸 수 있다고는 하지만 관리직 이상은 쓰기가 어렵다. 기업부설 연구소의 상시 인원에서 육아휴직자가 제외되기 때문이다. 작은 기업일수록 육아휴직을 꺼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연 사회는 변한 것이 맞을까?

평범한 엄마 과학자들이 뒤로 밀려나게 되는 이 사회가 과정 변한 것이 맞는 것인가? 아니 변하지 않았다. 시대가 변하고, 많은 여학생이 과학기술인이 되어 현장에 연구자로 나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리에게 가장 좋은 직업 선택지는 강사, 공공기관 종사자이다. 임신,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죽음의 트라이앵글을 무사히 넘기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선택지가 바로 강사와 공공기관 종사자라는 것을 보면 아직 사회는 변하지 않았다. 기업에서 과학기술인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평범해서는 안 되고, 누구보다 뛰어난 역량을 보여야 한다. 특히나 그 과학기술인이 여성인 경우, 우리는 같은 직급의 남성들에게 밀리지 않고 아래 직급의 남성들을 거느릴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므로 더 많은 능력을 요구받는다. 리더십을 보이기 위해 조직의 행사에 참여해야 하고, 불필요한 야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불행하게도 그런 일을 겪고 살아남아야 관리자의 위치로 갈 수 있다. 이제는 없어져도 될 법한 과거의 잔재들이 아직 이 동네에는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엄마 과학자라 칭한다. 엄마이고, 과학자이니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이다. 당신들이 모두 안 된다고 하는 그 두 가지 가치를 나는 함께 가져갈 테니 끝에 가서 웃는 사람이 누구인지 보자는 의미다.

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실이 내 후배들에게 더 많이 알려지길 희망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이 불편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 사회의 더 많은 사람이 알기를 원한다. 임신-출산-육아는 여성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부부의 문제이고, 가족의 문제이며 나아가 사회의 문제라는 것이 알려지길 바란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극복해야 하는 핸디캡으로 여기고 발을 동동거리며 사회생활을 하는 이들이 없기를 희망한다. 그냥 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나 같은 엄마 과학자가 늘어나길 바란다. 엄마라는 이름을 버려야만 과학자로 인정받고 과학자란 이름을 버려야만 엄마가 될 수 있는 그런 비극적인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

회사에서 출산휴가를 썼다는 이유로 근무 일수가 부족하다며 승진에서 누락되고

임신해서 아플 때, 원래 임신하면 그런 거라고 이해받을 수 있고

최근 연구실적을 적으면서 육아휴직을 한 연구자란 사실을 인정받을 수 있는 세상…

말도 안 되는 꿈이지만, 이런 것들이 당연해지는 세상을 바란다.

그래야지만, 내가 내 후배들에게 또 내 아이에게 연구자의 삶을 추천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읽을거리

 

읽을거리_1_정치하는 엄마가 이긴다 (1)

정치하는엄마들 (2018), 『정치하는 엄마가 이긴다』, 생각의힘.

“이제 우리 만납시다” 한마디에 외딴섬처럼 각지에 흩어져 있던 엄마들이 모여 비영리단체를 만들었다. 우리가 엄마로 살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 그리고 우리는 엄마가 되면서 무엇을 포기했는지, 왜 학력도, 환경도, 직종도 관계없이 엄마인 순간 사회적 약자가 되는지에 의문을 품은 이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읽을거리_2_사라진 여성 과학자들 (1)

펜드리드 노이스, 권예리 역 (2018), 『사라진 여성 과학자들』, 다른.
[Pendred Noyce (2016), Magnificent Minds: 16 Pioneering Women in Science
and Medicine, Tumblehome, Inc]

위대한 과학적 성취를 이루었지만, ‘여자라서’ 기억되지 못한 과학자의 이야기입니다. 마냥
과거의 일이라고 생각하기엔,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로, 지금의 우리는 정말 평등한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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