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보며 하이킥: 전자호구는 태권도를 망쳐 놓았는가?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김성은
kim8278@kaist.ac.kr

테크권도(Tech-kwondo)가 된 태권도

2017년 6월 27일 전북 무주에 위치한 태권도원. 2017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열린 이곳의 T1 경기장에 남자 68kg급 국가대표이자 세계 랭킹 1위인 이대훈 선수가 올라섰다. 대한민국 태권도의 간판인 그의 상대는 지난 2016년 리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아흐마르 선수를 꺾고 결승에 깜짝 진출한 대만의 황위런 선수였다. ‘준비! 시작!’ 주심의 힘찬 구령과 함께 부동의 랭킹 1위와 이변의 주인공 간의 마지막 겨루기가 시작됐다. 하지만 장내에 모인 사람들의 환호가 무색하게, 이들이 보여주는 발차기는 결승이라는 무게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빠르고 화려한 나래차기나 묵직한 뒤후려차기 대신 두 선수는 앞쪽 발을 공중으로 들어 올리더니 좌우로 흔들면서 서로를 견제하는 듯한 움직임을 취했다. 빈틈을 발견하면 공중을 휘젓던 속칭 ‘커트 발’로 상대의 몸통에 발을 가져다 대 듯 ‘툭’ 밀어 차서 효율적으로 점수를 내는 것이 두 선수의 공통된 전략이었다. 두 국가대표의 발차기에서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뒤돌려차기 한방으로 상대방을 KO 시켜버린 문대성 선수의 발차기와 같은 박력을 느끼기가 힘들었다. “흥미와 박진감이 사라졌다.” “허무하게 느껴졌다.” “발로 펜싱을 하는 것 같다.” “사람 다리가 아니라 오징어 다리 같다.” 이날 실망스러운 경기를 지켜본 관객들의 평가는 가혹했다.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던 태권도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지난 10여 년간 태권도가 박진감을 잃어버리게 된 원인의 핵심에는 전자적으로 점수를 측정하는 보호장비인 ‘전자호구’가 있다. 2010년 이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태권도 경기는 심판의 시각과 청각을 사용해 점수를 매겨왔다. 전통적인 ‘일반 호구’ 경기에서 심판은 발차기의 정확성과 강도를 주관적으로 판단해 점수를 준다. 점수가 쉽게 인정되지 않는 덕분에 머리를 노리는 멋진 플레이도 많았지만, 심판의 감각에 의존한 탓에 오심 논란도 끊이지 않았다. 최근의 태권도에서는 판정 시비를 없애기 위해 심판 대신 선수들이 몸에 두른 보호대인 전자호구가 타격을 자동으로 감지해서 점수를 센다. 인간 심판이 몸통을 울리는 ‘뻥’하는 소리가 날 정도의 강한 발차기에 반응하는 것에 비해, 전자호구는 센서가 달린 양말이 몸통을 스치거나 비비기만 해도 정확하게 감지해서 점수로 인정한다. 작은 접촉에도 점수가 나오다 보니 승리를 위해서는 조심스러운 경기 운영이 중요해졌다. 전자호구의 도입이 화려한 ‘기술’의 가치를 기계적 정확성으로 바꾸어놓은 셈이다.

태권도가 무엇보다도 공정한 스포츠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전자호구의 도입을 강력히 찬성했다. 사실 전자호구가 태권도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2000년대 후반의 세계 태권도계는 판정 시비, 오심 논란, 심판 매수 의혹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인간 심판에 대한 의심은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회에서 극에 달했다. 석연찮은 판정에 불만을 품은 한 선수가 경기 중에 심판의 얼굴에 발차기를 날리는 부끄러운 사건이 올림픽 중에 발생한 것이었다. 이후 국제올림픽위원회는 세계태권도연맹이 공정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못한다면 태권도를 올림픽 종목에서 퇴출시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위기에 처한 세계태권도연맹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부터 전자호구를 공식적으로 도입한 뒤 2012년 런던 올림픽에도 같은 기술을 적용했고 그 결과 올림픽 핵심종목으로 잔류했다. 이런 관점에서 전자호구는 태권도의 급작스러운 세계화가 불명예스럽게 끝나지 않게 도와준 귀중한 기계다.

반면 태권도 고유의 기술과 동작의 가치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전자호구가 태권도라는 스포츠를 완전히 망쳐버렸다고 생각한다. 태권도가 본격적인 경쟁적 스포츠로 변모하기 전 무도로서의 태권도를 수련했던 사람들은 더 크게 실망했다. 한국체육대학교 태권도학과의 장권 교수는 태권도 신문에 기고한 <전자호구 유감>이라는 글에서 전자호구 시대에 느낄 수 없는 박진감에 대한 그리움을 이렇게 표현한다: “태권도 경기의 묘미는 강력한 타격을 바탕으로 하여 몸통과 얼굴을 넘나드는 다이내믹하고 박진감 넘치는 발차기, 화려하면서 예술성 넘치는 발차기의 표현이 아닐까? 그래서 예전에 몸통 보호대를 정타로 찼을 때 나는 큰소리를 ‘대포소리’라고 하지 않았을까?…나는 다시 듣고 싶다. 아니, 보고 싶다. 그때 그 ‘대포소리’를 만들어 내던 강력하고 힘찬 발차기를.”  1985년부터 태권도를 수련한 스티븐 캐페너 서울여대 교수는 이보다 더 격양된 반응을 보인다. 2019년 6월 한국왕립아세아학회에서 발표한 “한국은 어떻게 태권도를 발명한 뒤 그것을 파괴하였는가(How Korea Created and then Destroyed the Martial Sport of Taekwondo)”라는 논문에서 그는 전자호구의 도입으로 인해 “태권도 코치들과 운동선수들, 그리고 행정가들이 더 이상 무엇이 적법한 태권도 기술인지 전혀 컨트롤하지 못한다”고 통렬히 비판했다. “모든 것이 전자호구의 변수로 결정되”는 겨루기에서 “태권도 고유의 기술적 성격은 완전히 저하”된다는 것이었다.  이 관점에서 전자호구는 태권도(taekwondo)라는 무예를 테크권도(tech-kwondo)라는 기예로 격하시키는 기계다.

그림 1. 전자호구의 원리를 설명하는 도식. 몸통 보호대의 우레탄 층 속에 지그재그로 배열된 압전소자들이 손과 발로 인한 타격이 전달하는 충격을 감지한다. 충격 감지의 상세한 기술적 원리는 전자호구의 제조사마다 다를 수 있다.[i]

전자호구 시대의 태권도

정말 전자호구는 태권도를 파괴해 버리고야 만 것일까? 실제로 태권도 현장에서 전자호구의 영향력은 광범위하다. 전자호구는 2010년 이후 태권도 선수들의 시합 방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요소라고도 할 수 있다. 선수들은 대회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전통적 발차기가 아니라 전자호구에 맞는 ‘변칙 기술’을 수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맞잡은 상태에서 제기를 차듯이 상대방의 허리에 다리를 가져다 대는 ‘몽키 킥’이나 다리를 뒤집어 상대방의 머리를 노리는 ‘스콜피온 킥’ 등은 발에 붙은 센서를 어떻게든 상대방의 몸에 가져다 대면 되는 전자호구 시대에 유리한 발차기다. “옛날 태권도를 고집하면 안 될 거 같아요. 전자호구에 맞는 발차기를 준비하고 연습해야 할 거 같아요.” 전자호구를 사용하는 세계대회를 준비하는 국가대표 선수들은 이렇게 말했다. “상상도 못 했던 발차기들을 선수들이 구사하다 보니까 태권도의 틀이 많이 깨지고 있는 거 같아요.”[ii] 전자호구는 태권도의 전통을 깨고 새로운 규범을 만든다.

때문에 전통적 의미의 태권도를 잘하는 것보다는 전자호구의 기계적, 전자적 메커니즘에 적응하는 것이 경기 승리에 더 중요한 요인인 경우도 많다. 매해 모든 출전선수가 메달권에 진입하던 대한민국 대표팀은 전자호구가 처음 도입된 올림픽인 2012 런던 대회에서 금메달 1개에 그치는 역대 최악의 성적을 거뒀다. 많은 태권도 전문가들은 이러한 성적 변화가 대표팀이 해외에서 주로 사용되는 다른 브랜드의 전자호구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국내에서 주로 사용되는 아디다스 계열 회사 KP&P의 전자호구는 충격에 의한 공기압 변화를 측정하는 ‘공압식’ 기계다. 반면 세계대회에서 주로 사용되는 라저스트 사나 대도 사의 전자호구는 압력에 의한 전류 변화를 측정하는 ‘전자식’이다. 접촉을 판정하는 기술적 방식이 다른 두 전자호구는 태권도 선수들에게 서로 다른 방식의 전술과 전략을 요구한다.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해외에서 많이 사용되는 전자식 호구는 충격보다는 접촉을 주로 감지하기 때문에 강력한 돌려차기보다는 밀어차기에서 많은 점수가 난다. 전자식 호구를 오랫동안 사용해 어떻게 점수를 쉽게 내는지 잘 알고 있는 외국인 선수들에게 경기가 유리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전자호구를 이해하는 것은 승리의 필수 조건이 되었다.

전자호구는 태권도 선수들의 몸과 자세에도 영향을 끼친다. 전통적인 태권도 경기에서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태권도 선수의 몸은 강력한 발차기를 토대로 결정적 ‘한방’을 날릴 수 있는 기술이 있는 몸이었다. 스탭을 밟으며 기회를 엿보다 머리 공격을 날리는 경기 전개가 많았기 때문이다. 반면 전자호구로 인해 몸통 공격이 빈번해진 현대 태권도에서는 순간적인 힘보다는 3회전 내내 꾸준한 발놀림으로 활발히 견제를 할 수 있는 지구력이 중요하다. 다양한 변칙 기술을 구사하기 위해 다리를 공중에서 급격하게 꺾는 유연성도 중요해졌다. 때문에 밀어차기에 적합한 유연하고 긴 다리를 가진 외국 선수들이 한국 선수들보다 유리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전자호구가 유도하는 몸의 변화는 선수들이 체득하는 기본자세에도 영향을 미친다. 전통적 경기에서는 언제든 뒤쪽 발을 사용한 돌려차기가 나갈 수 있도록 선수의 무게중심이 주로 앞쪽 발에 가 있었다. 반면 앞발을 들어 올려 상대를 견제하는 전략이 우세해진 현대 태권도에서는 대부분 선수의 무게중심이 뒷발에 있다. 선수들이 유년기부터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 체득하는 이 무게 배분법은 몸에 배어 태권도 전반을 특징짓는 몸놀림이 된다. 한 겨루기 코치는 태권도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선수들이 어렸을 때 몸에 밴 (뒷발 중심의) 무게 배분을 바꾸기 어려워한다”고 푸념하며 다양한 전술이 없어지는 현실에 안타까워했다.[iii] 전자호구는 선수의 바람직한 몸과 적합한 몸놀림을 규정하고 고정한다.   

그림 2. 전자호구 도입 이후에 새로 등장한 변칙 기술 ‘제기차기.’ 해외에서는 원숭이의 움직임을 닮았다고 해서 ‘몽키 킥’이라고 불린다.[iv]

전자호구와 공정성

‘태권도의 전통성을 없앤다,’ ‘화려한 발차기가 드물어졌다,’ ‘선수들이 소극적으로 변한다.’ 쏟아지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전자호구가 유지될 수 있는 것은 공정성을 담보한다는 대의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자호구로 진행되는 태권도 경기는 정말 더 공정할까? 전자호구가 도입된 2010년대의 태권도 경기에서 인간이 범하는 명백한 오심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합의 공정성의 문제가 말끔히 해결된 것은 아니다. 전자호구가 새로운 스포츠 공정성의 문제를 생성하고, 판정의 영역을 확장하고, 이를 더 미묘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전자호구 도입 이후 인간 심판을 매수하는 일은 드물어졌지만, 전자호구를 속이기 위한 새로운 반칙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지난 2017년 김운용컵국제오픈태권도대회가 열린 한양대학교 올림픽체육관에서는 전자호구를 속이는 기발한 신종 반칙이 적발되어 눈길을 끌었다. 경기 1회전이 끝난 경기장 바닥에서 ‘불법 자석’이 발견된 것이었다. 이날 사용된 전자호구가 양말에 붙은 자석을 이용해 발과 호구가 맞닿았다는 것을 측정한다는 사실을 활용한 신종 반칙이었다. 경기감독위원회는 의심이 가는 선수를 찾아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자석이 다른 양말에서 떨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해서 책임을 묻지는 못했다. 전자호구 자체의 공학적 한계를 악용하는 반칙과 편법도 있다. 발의 압력을 측정하는 센서들은 전자호구가 몸통과 완전히 밀착되지 않으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일부 선수들은 이러한 점을 의식해 자신의 전자호구를 일부러 약간 헐겁게 매는 편법을 사용한다. 때문에 심판과 경기진행요원들은 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호구가 적정하게 묶였는지, 또 선수나 코치들이 호구를 묶은 끈에 손을 대지는 않는지 감시한다. 인간 심판의 시청각적 능력과 양심의 문제였던 스포츠 공정성은 이제 전자 회로의 구조, 작동 원리, 디자인을 포함하는 영역으로 확장된 셈이다.

전자호구의 오류와 고장에서 오는 공정성의 문제도 있다. 경기 도중이나 이후에 땀이나 물이 손발 장갑에 스며들어 가면 전자호구의 고장을 일으킬 수 있다. 때문에 모든 장비를 일일이 검수할 수 없는 중소규모 대회에서는 상태 좋은 전자호구를 고르는 것이 억울하지 않은 경기를 하기 위해 무시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전자호구가 사용되는 경기가 일종의 ‘복불복’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이유다. 예상치 못한 다양한 종류의 고장과 결함은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어려운 각양각색의 공정성 문제를 발생시킨다. 전자호구가 접촉을 측정하는 ‘유효강도’ 문턱값이 낮게 설정된 경기의 경우 전자호구가 센서를 스치기만 해도 점수가 올라가는 ‘유령득점’이 발생하기도 한다. 타격이 발생한 시점과 전자호구가 점수를 표출하는 시점 사이에 시차가 생겨서 발생하는 ‘지연득점’도 있다. 센서고장, 네트워크 지연, 조작 미숙 등 하나로 특정하기 어려운 다양한 기술적 원인으로 발생하는 지연득점은 선수들의 컨디션과 전략에 예상하지 못하는 영향을 끼친다.[v]

그런가 하면 고전적인 인간 심판의 문제도 여전하다. 득점의 성공 여부는 전자호구가 독점적으로 판정하더라도 인간 심판이 승부에 개입할 여지는 언제든 남아있기 때문이다. 2019년 맨체스터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챔피언십은 전자호구 시대에도 인간 심판의 판정이 여전히 공정성의 문제에서 배제될 수 없음을 확인시켜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중국의 정수인 선수는 영국 비앙카 선수를 상대로 나선 결승전에서 20대 10이라는 압도적 점수 차이로 사실상 우승을 확정 지었는데, 경기 막바지에 심판으로부터 석연치 않은 연속 경고를 받고 반칙패를 당했다. 중국 태권도계는 정수인 선수가 금메달을 도둑맞은 셈이라며 대회 주최 측이 자국 대표인 비앙카에게 유리한 심판 판정을 내리도록 사주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설사 전자호구가 득점을 완벽히 잡아낸다고 한들 인간에 의한 오심과 비리를 완전히 막아낼 수는 없다.

이러한 사건들은 전자호구가 완벽히 정확하지도, 심판을 완전히 대체하지도 못한다는 점을 명백히 보여준다. 구기 종목에 도입된 다양한 전자식 채점도구를 분석한 과학사회학자 해리 콜린스 등은 이처럼 불완전한 기계에 대한 과도한 신뢰가 ‘거짓된 투명성(false transparency)’의 오류를 불러일으킨다고 주장했다.[vi] 이들이 비판한 ‘거짓된 투명성’의 대표적 사례는 테니스 코트 곳곳에 위치한 카메라로 공의 궤적을 추적해서 공이 ‘인(in)’인지 ‘아웃(out)’인지를 판정하는 호크아이(Hawk-eye) 기술이다. 호크아이는 다른 모든 채점도구와 같이 사실 그 자체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고 한정된 계측 능력을 토대로 최선의 결정을 내린다. 이들에 따르면 호크아이는 평균 3.6mm의 오차를 가지며 이 오차 이내의 공에 대해서는 확률적 평가를 내린다. 전자식 채점도구는 지각 능력이 제한된 인간 심판과 유사한 한계를 지니는 것이다. 문제는 현대 테니스의 룰이 마치 호크아이가 아무런 오차도 없이 사실 그 자체를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처럼 취급한다는 데에 있다. 따라서 오차를 기계적 정확성으로 없앨 수 있다고 주장하는 호크아이 기술은 공정성의 문제를 해결한다기보다는 회피한다. 공정성은 기계든 인간이든 항상 어느 정도의 오류를 범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이다. 공정성에 대한 논의는 오심을 스포츠의 일부로 인정하되 이를 형평에 맞게 대처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림 3. 스포츠에 적용된 전자식 채점 기술의 대표적 사례인 호크아이. 테니스의 경우 호크아이 기술은 경기장 곳곳에 놓인 카메라에서 수집된 이미지를 종합해 공의 궤적을 추정하는 방식으로 인과 아웃을 판정한다(위 사진). 때때로 밀리미터 단위의 미세한 차이로 판정을 내리기도 하는 호크아이 기술은 공정성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아래 사진).[vii]

토론을 유발하는 기계

그렇다면 전자호구가 본질적으로 공정하고 정확한지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기계와 인간의 한계점을 모두 인정한 상태에서 태권도의 다양한 가치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지에 관한 물음이다. 각자 나름의 장단점을 가진 인간의 판단과 기계의 판단을 어떠한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조합할 것인가? 이를 위해 심판, 경기 규칙, 전자호구를 어떻게 동시에 설계하고 유지해나갈 것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태권도는 인간과 기계 어느 한쪽을 배제하는 대신 오히려 규칙을 만드는 여러 행위자 사이의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기계 심판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더 많고 훌륭한 인간 심판들이 필요하다.

2016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제1회 세계태권도 코치 포럼은 세계태권도연맹이 전자호구 체제에 대한 현업 태권도 코치들의 의견을 청취한 최초의 자리였다. 27개 주요 국가의 태권도 지도자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는 전자호구를 사용하는 경기의 문제점과 그 해결책에 대한 신선한 제안들이 쏟아졌다. 각국의 코치들은 전자호구가 기계적 정확성으로 단순한 판정 시비를 줄였다는 장점에 동의하면서도 전통적 기술이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경기 규칙 개정이 시급하다고 보았다. 코치들은 우선 다양한 기술을 장려하기 위해 회전 공격과 머리 공격에 더 많은 가산점을 부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 전자호구가 인식하는 유효 강도의 문턱값을 현행 보다 올려서 발로 ‘툭’ 건드리는 정도로는 점수가 올라가지 못하게 하는 방법도 많은 공감을 얻었다.[viii] 이러한 코치진들의 제안은 실제로 2017년도에 개정된 세계태권도연맹의 공식 경기 규칙에 반영되기도 했다. 몸통 회전 기술의 배점이 3점에서 4점으로, 머리 회전 공격은 최대 5점으로 상향되어 어려운 기술의 가치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개정된 것이었다. 기계 심판의 적당한 사용은 인간 심판과 코치들의 토론과 합의를 통해 비로소 가능해지고 있었다.

전자호구를 사용한 경기가 더 공정하고 재미있게 진행되기 위해서는 인간 심판의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예컨대 전자호구 대회에서 선수들의 앞쪽 발 사용이나 변칙 기술 사용이 너무 과다해서 경기 진행에 무리가 가는 경우 인간 심판이 이를 판단해 경고를 부여하는 방식도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 경우 어떠한 종류의 앞발 공격이 적합한 것이고 어떤 것이 부적합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일은 잘 훈련된 심판이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 코치들의 의견이었다. 전자호구를 더 공평하게 쓰기 위해 심판들 간의 깊이 있는 토론이 필요하다는 이러한 주장은 기계의 합리성과 인간의 합리성이 배제적이기보다는 상호보완적이어야 함을 잘 드러내 주었다.

지금까지 태권도계가 전자호구를 도입하는 데 급급했다며 이제부터는 제대로 된 전자호구를 만들기 위해 설계 과정을 규제하는 새로운 규정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2017년 한국체대에서 열린 세계태권도포럼에서 발제자로 나선 국가대표 태권도 선수 황경선은 시합에 나서는 선수의 입장에서 전자호구의 발전 방향에 대한 의견을 개진했다.[ix] 황경선 선수가 꼽은 가장 시급한 일은 전자호구의 규격화였다. 대회를 주최에 따라 득점 방식이 전혀 다른 전자호구를 번갈아 사용하다 보니 선수들에게 지나친 혼란이 주어진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경우에도 전자호구의 설계를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통일하는 일은 여전히 태권도 전문가들과 전기공학자라는 인간의 판단과 결정에 남겨져 있었다.

인간과 과학기술의 조합”

“인간과 과학기술의 조합, 심판에 대한 전문적 훈련을 통해 선수와 지도자, 그리고 심판이 서로 신뢰할 수 있는 노력과 실행이 필요합니다.” 세계태권도포럼의세 번째 발제자로 나선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허버트 존 페레즈가 강조한 ‘인간과 과학기술의 조합’이라는 과제는 전자호구를 둘러싼 논쟁에 대한 적절한 응답으로 보인다.[x] 전자호구가 태권도계의 문제를 해결했다기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문제를 전면화시킨 것처럼, 기계적 정확성은 현대 스포츠가 봉착한 다양한 위기들을 일거에 해소할 수 없다. 움직임, 공정성, 전통의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서는 전자호구를 만드는 전기공학적 기술만이 아니라 인간 심판을 길러내는 교육적 기술, 새로운 규칙에 합의하는 정치적 기술, 그리고 인간과 기계의 장점을 현명하게 결합하는 사회적 기술이 두루 필요하다. 전자호구는 공정성 문제의 단일한 해결책이 아닌 토론을 유발하는 기계로 여겨져야 한다.

전자호구 논쟁이 주는 교훈은 공정에 대한 판단을 기계의 정확성으로 대체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에도 적용될 수 있다. 인공지능 면접관이 대기업 합격자를 결정하고, 자율주행차량이 사고가 발생할 때 누구를 희생할지를 결단하며, 로봇 판사가 형량을 정확히 계산해낼 것이라는 4차 산업혁명의 미래상 속에서 우리는 종종 심판의 자리를 기계에 내어준다. 그리고는 이러한 기술들이 공정성이라는 복합적인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줄 것이라 소망한다. 지난 10년간 펼쳐진 전자호구라는 우화는 기계 심판이 알아서 복잡한 윤리적 판단을 척척 내리는 미래가 얼마나 비현실적인지를 가르쳐준다. ‘판관 포청천’만큼이나 공상에 가까운 기계 심판을 기대할 수는 없어도, 우리는 이러한 미래상을 통해 인간 면접관과 인공지능 면접관, 자율주행차와 인간 운전자, 로봇 심판과 인간 법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전자호구 시대의 태권도 앞에 놓인 미래가 스포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i] 태권도용 전자호구 특허번호 KR101018038B1

[ii] YTN(2015.04.29), “태권도 전자호구 효과…대세는 ‘변칙 기술’,” https://www.ytn.co.kr/_ln/0107_201504291650039299

[iii] 태권박스(2020.06.13), “태권도 겨루기 지도자들 ‘술자리 리얼토크’”

[iv] YTN(2015.04.29), “태권도 전자호구 효과…대세는 ‘변칙 기술’” https://www.youtube.com/watch?v=uVibfGGrMtM

[v] 태권도신문(2019.07.22), “태권도 경기장에는 유령이 산다,” http://www.tkd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2740

[vi] Collins, Harry, Robert Evans, and Christopher Higgins. Bad Call: Technology’s Attack on Referees and Umpires and how to Fix it. MIT Press, 2016.

[vii] 호크아이 사 홈페이지, https://www.hawkeyeinnovations.com/

[viii] 무예신문(2016.10.20), “WTF 코치 포럼, 새 유형 발차기ㆍ전자호구 등 다양한 의견 나와,” http://www.mooye.net/11501

[ix] 태권도신문(2017.09.04), “올림픽스타 황경선, “변질 아닌 태권도다운 변화 필요하다”,” http://www.tkd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0778

[x] 태권도 신문(2017.09.04), “태권도 발전방향을 논한다. 2017 세계태권도포럼 열려,” http://www.tkd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0780


읽을거리

Collins, H., Evans, R., & Higgins, C. (2016). Bad Call: Technology’s Attack on Referees and Umpires and how to Fix it. MIT Press.

VAR, 호크아이, TV 리플레이 등 전자식 채점도구가 불러일으키는 문제를 과학기술학의 관점에서 분석한 책. 공정성을 제대로 논하기 위해서 기계적 정확성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만 하는 이유를 다양한 구기종목의 사례를 통해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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