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도시의 경계에 선 프리먼 다이슨의 당부

카이스트 물리학과 석∙박사통합과정
박현빈
hyun1379@kaist.ac.kr


프리먼 다이슨, 김희봉 번역 (2009),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 사이언스북스 [Dyson, F. (1981), Disturbing the Universe, Basic Books.]


자유로운 인간, 프리먼 다이슨

  지난 2월 28일, 영국 태생의 미국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Freeman Dyson, 1923~2020)이 세상을 떠났다. 이론물리학자인 그의 가장 유명한 업적은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 줄리언 슈윙거(Julian Schwinger), 도모나가 신이치로(Tomonaga Sin-Itiro)가 독립적으로 개발한 양자 전기역학[i]이 수학적으로 동일함을 밝힌 것이다. 한편, 그는 이론물리학 연구뿐 아니라 원자로 설계, 원자 폭탄을 추진력으로 이용하는 행성 간 우주선 개발, 그리고 앞선 연구들과 대조되는 핵실험 제한 및 핵무기 감축을 위한 과학자 연맹 참여 등 여러 방면에 걸쳐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한 분야에 종속되지 않았던 그는 본인 이름처럼 자유인(Freeman)으로 살았다.

그림 1 Freeman Dyson [ii]

마법 도시

  1979년 다이슨은 지난 반세기를 돌아보며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원제: Disturbing the Universe)라는 자서전을 썼다.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20세기 인간이 처한 상황을 관찰하고 기록해왔다. 책의 서두에 그는 이 기록을 바탕으로 “한 과학자가 ‘인간의 상황’에 대해 느끼는 것들을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라고 밝힌다(16쪽). 특별히 그는 제2차 세계 대전과 냉전을 겪은 사람으로서 전쟁과 평화, 희망과 실망, 역사 속 과학기술의 모습과 그것이 펼쳐갈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책 제목은 T. S. 엘리엇의 「프루프록의 사랑 노래」의 한 구절 “내 감히/ 우주를 흔들어 놓을 수 있을까?”(Do I dare/ Disturb the universe?)로부터 따온 것으로 보인다.[iii] 20세기 초 무기력한 근대인을 상징하는 프루프록은 우주를 뒤흔들기를 주저했지만, 20세기의 절반을 산 다이슨은 과감하게도 그 일에 뛰어들었다. 그는 내부자 입장에서 본 과학의 모습을 설명함으로써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어(disturbing) 과학과 사회를 새롭게 보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 것이다. 다이슨의 이야기가 세계를 얼마나 흔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 이야기는 필자의 세계를 흔들었고, 필자가 물리학자가 된다면 물리학뿐만 아니라 인간에 대한 통찰을 지닌 다이슨과 같은 학자가 되고 싶었다.

독특하게도 과학자인 그는 인간의 상황에 대해 느낀 바를 ‘시와 이야기’에 기대 설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 인간사에 대한 통찰을 제시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그가 인생을 해석하는 틀로 사용한 이야기는 여덟 살에 읽었던 동화 『마법 도시』(Edith Nesbit, 1910)[iv]인데, 이 역시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한 과학자가 인생을 통해 체화한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인간사에 대한 더 진실한 그림을 제공해 준다.  

  다이슨이 인용한 『마법 도시』는 세 가지 주제로 세계를 철학적으로 조망했다. 첫 번째는 인간의 정체성이다. 주인공인 고아 소년 필립은 큰 집에 홀로 남겨져있는데, 이 상황이 인간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듯 보인다. 필립은 주위에 널려 있는 골동품으로 장난감 도시를 만드는데, 어느 날 장난감 도시가 진짜 도시만큼 커진다. 이 마법 도시를 배경으로 두 번째 주제가 등장하는데, 바로 기술이다. 이 도시에는 기계에 대한 특별한 규칙이 있다. “누구든 기계를 한번 가지면, 평생 그 기계를 써야 한다”라는 것이다. 세 번째 주제는 언젠가 구원자가 나타난다는 오래된 예언의 성취이다. 다이슨은 과학자로 살아가며 자신이 사는 세계가 마법 도시와 동일함을 깨달았고, 『마법 도시』의 구성처럼 자신의 자서전을 집필했다. 다이슨의 책은 총 3부로 되어 있어 ‘1부. 영국’에는 전쟁이라는 크고 비극적인 세계에 내던져진 그의 젊은 시절이, ‘2부. 미국’에는 전쟁 후 마법 도시의 규칙을 따라 과학기술과 함께 살았던 미국 생활이 담겨있다. ‘3부. 저 너머’에서는 과학기술이 그릴 미래와 마침내 발견한 구원자가 다뤄진다. 본 글에서는 책의 순서를 따라 그의 경험을 소개하고 그를 당혹스럽게 만들지도 모를 필자의 해석을 덧붙일 것이다.

영국에 던져진 고아

  다이슨은 음악가 아버지와 변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예술과 문학적 소양을 기르며 자랐다. 그의 시인적인 기질은 아마 부모님의 영향에 기인했을 것이다. 한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매료된 그는 시공간에 대한 이론을 이해하고자 미분방정식 책을 끼고 성탄절 휴가를 보낼 정도로 수학과 물리에 열정을 보였다. 그의 어머니는 방학 때 열네 시간씩 공부하던 그를 슬프게 쳐다봤다고 한다. 그러나 어린 그에게 아인슈타인의 언어를 이해하는 것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일이었을 뿐 아니라, 전쟁이 다가오는 비극적인 상황에서 시간을 쏟아도 아깝지 않은 유일한 행위였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수학을 공부하던 그는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의 폭격 사령부에서 일하는 민간인 과학자가 되었다. 수학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작전 연구부에 소속되어 폭격기의 손실 비율과 승무원 숙련도의 상관관계를 통계적으로 조사해 사령관에게 조언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사령부에서는 숙련도가 높은 승무원이 임무를 완수하고 살아 돌아올 확률이 높다고 믿고 있었는데, 이는 직관적으로 타당할 뿐 아니라 전쟁 초기 1942년까지는 통계적으로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다이슨은 1944년도에 최신 자료와 통계 분석을 이용해 그런 효과가 사라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는 독일 공군이 영국 폭격기의 사각지대를 공략하는 새로운 전투기를 개발해 전장에 배치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령부에 이 사실을 알렸으나 그의 의견은 관료주의적인 체계를 뚫고 전달되지 못했다. 사령부의 관심사는 승무원의 이탈을 막고 사기를 높여 비행 횟수와 폭격의 성공 확률을 높이는 일이었다. 승무원의 숙련도와 생환 확률에 상관관계가 없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독일과의 싸움에 도움이 되지 않을 터였다. 그렇게 스무 살 젊은이들의 비행은 죽음으로 귀결되었고, 스무 살의 다이슨은 사무실이라는 안개 뒤에서 그런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다이슨은 이때를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폭격 사령부는 전쟁의 역사에서 오래된 악에다가 과학과 기술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악을 더한 것의 초창기의 예였다. 기술은 악을 익명화한다. 과학과 기술을 통해서 악은 관료주의적으로 조직되어, 그 누구도 일어난 일에 대해 전혀 책임 의식을 갖지 않게 되었다. 랭커스터 폭격기를 타고 레이더 화면에 나타난 불분명한 반점을 향해 폭탄을 뿌리는 소년병이나, 군 사령부에서 서류를 뒤적거리는 작전 장교나, 작전 연구부의 좁은 사무실에 앉아 확률을 계산하는 나도 개인의 책임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자신이 죽인 사람을 보지 못했다. (52쪽)

  마법 도시의 고아처럼 전쟁 속의 사람들은 기술을 통해 본래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익명화된다. 기술은 악을 익명화했고, 전쟁에 참여한 이 역시 익명화됐다. 이것이 제2차 세계대전, 영국이라는 비극적인 세계에 던져진 다이슨의 자기 인식이었다. 디지털 성범죄를 비롯해 기술이 악을 익명화할 수 있다는 건 오늘날 익숙해진 사실이다. 그러나 악이 자행되던 전쟁 현장에 있었던 과학자의 오래된 고백은 여전히 독자로 하여금 ‘책임’에 대해 숙고하도록 만든다. 한편, 그에겐 죄책감에 머무를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는 이 비극적인 세계에서 수학이라는 도구를 다룰 줄 알았고, 그것을 즐겼다.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이 폐허가 된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향할 때, 그 역시 미국에서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세계 대전 이후 패권 국가로 자리 잡고, 과학기술의 빠른 발전을 도모했던 미국은 그야말로 마법 도시였다.    

미국이라는 마법 도시

  1947년 미국으로 건너간 다이슨은 코넬 대학교에서 핵물리학자 한스 베테의 지도하에 물리학 연구에 뛰어들었다. 당시 전후 미국 물리학계는 2차 세계 대전 동안 미뤄왔던 순수 과학에 대한 열정이 분출되는 시기였다. 그리고 그 선두에는 원자 폭탄을 개발하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연구자 집단, 로스앨러모스 그룹이 있었다. 이곳에서 다이슨은 전후 미국 물리학계의 영웅이었던 로버트 오펜하이머(Robert Oppenheimer),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과 교류할 수 있었다. 영국과 다르게 격식이 없고 자유분방한 미국 연구 문화에 깊이 젖어든 그는 양자 전기역학의 기반을 세우는 데 기여하게 되었다.

  다이슨은 교수와 학생 간의 격의 없는 대화와 연구에 대한 열띤 토론에 자유로움을 느끼면서도 미국의 물리학자들에게서 “인생의 비극성”을 모르는 이질감을 느꼈다고 회고한다(83쪽). 1, 2차 세계 대전의 현장에 살았던 당시 유럽인의 정신에는 비극적인 정서가 깊이 새겨져 있었던 반면, 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미국인들은 전쟁으로 사람이 죽는 비극을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전후 미국 물리학계의 활발한 학문적 분위기는 어느 정도 전쟁의 비정함과 기술의 폭력성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낙관적인 정신을 견지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다이슨은 이러한 낙관성에 이질감을 느끼면서도 미국적 정신으로 채워진 마법 도시에 살게 되었으므로 도시의 규칙을 따라 수학과 물리학이라는 도구를 끊임없이 이용해야 했다. 기술과 함께 지내던 그는 어느새 기술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에 물들어 갔다.

  1956년 다이슨은 로스앨러모스에서 수소 폭탄 발명을 이끈 프레더릭 드 호프만(Frederic de Hoffmann)의 추천으로 원자력 에너지의 평화적 사용을 위한 거대 사업에 가담하게 되었다. 이는 1955년 제네바 회의의 결론으로 핵전쟁 위기를 막고 평화로운 핵에너지 사용을 위한 국제 협력의 시대가 열리는 때에 발맞춘 것이었다. 그는 제너럴 아토믹스 사에서 원자로를 설계하는 공학의 세계에 빠르게 적응하면서 “인류를 위해 무제한의 에너지를 싸게 공급하는”(155쪽) 꿈에 경도되었다. 그리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원자력 에너지를 동력으로 하는 우주선 개발 프로젝트에도 참여한다. 오리온 계획이라 불렸던 그 프로젝트의 구호는 “1970년까지 토성으로”였다. 그는 과거 메이 플라워호의 식민지 개척 비용보다도 적은 비용으로 인류가 우주를 개척하는 꿈에 빠졌다. 그러나 정부가 우주 진출 계획에 핵 추진을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1963년 부분적 핵실험 금지 조약이 체결되면서 오리온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그렇다고 그가 과학기술이 약속하는 하늘의 꿈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외계 문명과의 조우, 은하계 녹화 사업 등 그치지 않는 호기심으로 미래 개척의 정신을 보였다. 이 때문에 그는 사람들에게 미래학자로도 알려져 있다.  

  그러나 과학자 혹은 미래학자 다이슨이 묘사한 과학기술의 미래는 진정 누구를 위한 미래일까?[v] 그가 그린 미래가 호기심과 인류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에서 비롯된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20세기의 정신을 가지고 아직 경험하지 못한 그 너머의 세계에 대해 말할 때, 무엇이 감춰지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그는 20세기의 전쟁과 관련한 문제에 있어서는 폭격 사령부에서 경험했던 비극성을 기억해내 과학기술과 정치, 제도가 어떻게 얽혀있는지를 성찰하고 비판적으로 접근했다. 단적으로 1961년 미국 과학자 연맹에 참여한 그는 “어떤 질문은 해결하지 않은 채 그냥 두어야 한다. 어느 시점에서 우리는 그만두어야 한다”(197쪽)며 핵실험 금지 조약에 찬성하기까지 했다. 그가 그토록 바라왔던 오리온 계획의 사활이 걸린 문제였음에도 말이다.

문제는 그가 직접 경험한 제2차 세계 대전과 냉전이라는 정치적인 맥락을 벗어나 미래로 시선을 옮길 때면, 호기심 충족과 인류의 번영이라는 미명 아래 기술이 초래할 사회상에 대한 염려와 정치적∙사회적 합의의 중요성이 자취를 감춘다는 것이다. 그는 기술적 상상력을 발휘해 생명의 다양성과 번성의 원리를 모방한 녹색 기술을 가진 인류가 은하계에 진출하는 모습을 아름답게 그려냈다. 그러나 기술의 수혜자이자 수행자인 ‘우리’ 혹은 ‘인류’라는 모호한 대상 말고, 구체적인 ‘사람의 자리’[vi]에까지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관점은 부족해 보인다. 왜 그 사람들은 지구를 떠나야 했을까? 기술을 개발하고 지원하는 이들은 누구인가? 지구엔 누가 남을까?

그는 미래를 논할 때, 과학기술이 현실 세계에서 작동했던 법칙을 잊고 다음과 같이 오래된 목적론적 세계로 회귀하고 마는데, 다음은 그가 인류의 은하계 진출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말한 내용이다.  

이렇게 해서 생명은 지구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주에 퍼져서 다양하게 진화할 수 있다. 우리의 모든 재주는 자연이 세운 계획의 일부이며 자연의 목적에 따라 사용된다(329쪽)

여기에는 실체가 불분명한 ‘자연’이 최종적인 행위자로 지명되었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미래는 자연적인 것이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단지 시인의 기질이 충만한 사람이 자신의 열망에 대한 은유로서 목적론적 세계관을 차용한 것일까? 자연이 누구의 편인지는 시인만이 알고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이런 시인만 사는 세상엔 모든 인간이 발을 붙일 땅이 없다. 그가 꿈꾸는 낙관적인 과학기술 문명이 20세기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진정으로 누구를 대변하는지, 그리고 그 미래에 무엇이 빠져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부족한 것은 실로 아쉬운 지점이다.  그가 본인과 비슷한 낙관적인 상상력의 소유자들과만 대화하지 않고 다른 관점을 가진 이들과 대화를 나누었다면 어땠을까. 과학기술과 사람이 맺는 구체적인 관계를 놓친 채 미래를 그리는 다이슨의 모습은 손에 든 기계를 내려놓을 수 없는 마법 도시 속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저 너머의 꿈과 구원자

  그렇다고 다이슨을 마법 도시에 갇힌 과학자로 결론 내려서는 안 될 일이다. 한 가지 남은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마법 도시』의 세 번째 주제로, 그가 기다리는 구원자가 이 책의 말미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몽상의 물리학자답게 ‘하늘과 땅의 꿈’이라는 제목이 붙은 마지막 장에서 그는 천문학 강의를 위해 방문했던 이스라엘에서 꾸었던 두 가지 꿈 이야기를 들려준다. 첫 번째 꿈은 아들과 함께 우주를 여행하는 꿈이다. 그들은 꿈속에서 우주 비행선을 조종해 관측되지 않은 은하로 모험을 떠나고, 우주의 팽창에 따라 멀어지는 은하를 바라본다. 주위의 무한한 어둠 속에서 그저 침묵을 지키면서. 그러나 다이슨은 관광객처럼 우주를 돌아다니던 하늘의 꿈에 만족하지 못했다.

나는 우주에서 우리가 관광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이 모습이 한 가지 측면만을 반영한 것이며, 우리의 본성에서 가장 심오한 부분은 반영되지 않았다고 믿는다. 우리는 구경꾼이 아니다. 우리는 우주의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이다. (359쪽)

그는 기계적인 우주를 관찰하는 인간상에 머물지 않고 우주와 사회에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인간의 모습을 꿈꿨다. 단, 중요한 것은 인간이 어떤 식으로 개입해야 하는지다. 

  불편한 은하 여행을 마치고 꿈에서 깬 다이슨은 이스라엘 친구와 차를 몰고 골란 고원에서 갈릴리 바다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드라이브를 했다. 3000년 동안 예언자들의 땅이었던 곳은 그가 몽상에 잠기기 좋은 장소였다. 구약 성서에 등장하는 예언자 엘리야 이야기를 되새기던 그는 이스라엘에서의 여정을 마칠 때 두 번째 꿈을 꾼다. 꿈속에서 그는 절망에 빠진 엘리야가 나무 그늘 아래에서 들었다던 세밀한 신의 음성 같은 이미지를 본다. 우주 속에서 인간의 역할이 궁금했던 그는 신에게 항의 전화를 걸고 어린 두 딸과 함께 신을 방문한다. 그와 두 딸은 예의를 갖춰 왕좌 앞에서 신을 기다리는데, 왕좌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던 이는 다름 아닌 태어난 지 백일 정도 된 아기였다.

왕좌는 비어 있지 않았다. 백일쯤 된 아기가 자리에 누워서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 나는 아기를 팔에 안고 몇 분 동안 말없이 서 있었다. 침묵 속에서 나는 가슴에 품고 있던 질문이 대답되었음을 천천히 깨닫게 되었다. (363쪽)

  따뜻한 대답을 발견한 다이슨은 딸들의 손을 잡고 신의 집을 떠나고, 이 장면으로 책이 마무리된다. 차가운 우주를 다 채울 만큼의 작은 아기가 그를 보고 웃고 있고, 그 여린 목소리가 거센 폭풍을 뚫고 들려온다. 이것이 바로 그가 얻은 만족스러운 답이자 그의 구원자였다. 그가 얼마나 만족스럽게 잠에서 깼을지를 상상해본다. 잠에서 깨어난 그는 여전히 마법 도시에 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저 너머의 꿈을 꿀 것이다. 그러나 그 꿈이 그저 더 높은 하늘로 날아가려는 꿈이어서는 안 된다. 첫 번째 꿈은 마법 도시를 우주까지 확장시키려는 인간의 노력이 허망한 표류로 종결됨을 보여준 게 아니었을까. 그런 순간에 인간이 생기를 머금고 이 땅에 태어난다는 사실은 마법 도시에 새로운 가능성을 초래한다. 그저 끝없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마법 도시의 확장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안에 누가 사는지가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계에 입문한 아이가 마법 도시의 규칙을 흔드는 날을 함께 꿈꿔야 한다. 그렇다면 그는 책의 서두에서 이미 이 구원자를 언급한 것이다. 마법 도시에서의 구원은 “끊임없이 성장할 과학과 기술을 파괴적인 방향이 아니라 건설적인 방향으로 끌고 갈 이들”(16쪽)이 이 땅에 태어나 상상력과 책임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달려있다. 비록 그의 깨어있는 정신은 과학기술이 펼칠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보았지만, 그의 무의식은 꿈을 통해 다른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인간의 상황

  다이슨은 어린 시절 수학과 물리학에 빠졌고,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영국에 던져졌으며, 미국으로 건너가 과학자가 되었다. 미국에서의 그의 활동은 이론물리학부터 원자로와 우주선 설계, 핵무기 감축을 위한 과학자-시민사회 운동, 그리고 과학기술이 초래할 미래에 대한 묘사까지 다방면을 아우른다. 이 모든 것을 통해 그는 인간의 상황에 지속적인 관심을 표현했다. 이는 수학에 푹 빠져있던 어린 그에게 어머니가 당부하셨던 말씀을 지키려고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 말은 고대 로마의 노예 출신 극작가 테렌티우스(Terentius)의 다음과 같은 말이었다. 

나는 인간이다. 그러므로 인간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나와 관계없는 일로 여기지 않는다. (31쪽)

인간에 대한 그의 관심은 전쟁 중 기술에 대한 성찰로, 과학기술을 이용해 인류의 복지를 증진시키고자 하는 노력으로, 또 인류가 무한한 우주로 진출해 자유롭게 살 날에 대한 전망으로 나타났다.  다이슨의 자서전은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분투한 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삶을 통해 진정 드러내고 싶었던 것은 20세기 과학자들이 처한 상황이다. 바로 그들이 마법 도시에 갇혀 지내게 되었다는 점이다. 마법 도시의 과학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마법 도시의 과학자는 과학기술이라는 도구의 사용을 뿌리칠 수 없게 되었다. 그 세계의 정치와 윤리는 과학기술과 긴밀하게 얽혀 있고, 과학자는 복잡한 사안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과학기술은 전쟁의 비극을 심화시킬 수도 있고, 인류의 복지와 자유를 위한 원동력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마법 도시의 과학기술은 끊임없이 이 사이를 오고 갈 것이다. 그리고 이 규칙은 미래에도 지속되어 과학자를 지배할 것이다. 여기에서 과학자의 실천과 기대가 필연적으로 좋은 결말을 불러오리라는 보장은 없다. 과학자의 삶과 마법 도시의 미래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는 과학자 홀로 알 수 없다. 다이슨이 예측한 미래를 우리가 재고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다이슨은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바탕으로 20세기 중반, 과학자의 상황과 역사를 해석해 사람들에게 내놓았다. 이 이야기에서 다이슨은 마법 도시에 갇혀 살아가는 듯했으나 꿈의 끝에서 인간의 역할을 발견하며 구원받았다. 그러므로 그는 마법 도시의 경계에 서게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을 통해 다이슨은 과학자가 아닌 독자들에게는 앞서 말한 과학자의 상황을 읽어내라고 요청하고 있으며, 과학자에게는 자신이 발견한 경계선으로 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그 경계선엔 인간의 책임이 버티고 서 있다. 이제 중요한 건 그의 당부대로 마법 도시를 물려받은 사람들이 흔들리는 것이다. 그들이 과학자를 포함한 인간의 상황을 이해하고, 함께 짊어져야 할 책임을 어떻게 수행하는지에 따라 마법 도시의 미래가 바뀔 것이다. 더 거대해진 마법 도시가 즐비한 21세기엔 더욱 그런 흔들림이 필요하지 않을까. 마법 도시의 규칙을 투명하게 증언하고 그 경계에 섰던 과학자, 프리먼 다이슨을 추모하며 21세기에는 어떤 인간이 태어나고 있는지 몽상에 잠겨본다.


[i] 양자 전기역학은 전하를 가진 입자들의 상호작용을 양자역학적으로 계산하는 이론이다. 계산 결과와 실험값이 가장 정확한 이론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ii] 「이론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 96세로 잠들다」 http://scimonitors.com/프리먼-다이슨-96세로-영면-우주시대-낙관한-과학-거장/

[iii] T. S. 엘리엇 (1922), 황동규 역 (2017), 『황무지』 (3판), 민음사, 12-13쪽.

[iv] Nesbit, E. (1910), The Magic City, Macmillan.

[v] 이 부분은 다음 책의 논의를 참고했다. 전치형, 홍성욱 (2019), 『미래는 오지 않는다』, 문학과지성사.

[vi] 전치형 교수님의 책 제목을 빌렸다. 전치형 (2019), 『사람의 자리 과학의 마음에 닿다』, 이음.


프리먼 다이슨, 드와이트E. 노이엔슈반더, 하연희 번역 (2017), 『어느 노과학자의 마지막 강의』, 생각의길.

『프리먼 다이슨, 20세기를 말하다』는 약 20년간 서던내저린 대학(Southern Nazarene University)의 “과학, 기술, 그리고 사회”라는 교양 과목의 교재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담당 교수 노이엔슈반더 및 수강생들이 다이슨과 주고받은 편지가 이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번학기 STS 수업을 들은 필자는 이것도 다이슨과의 인연이라 생각하여 이 책을 추천한다. 다이슨의 소소한 개인사와 학생들의 인생을 격려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프리먼 다이슨 지음, 김학영 번역 (2018), 『프리먼 다이슨의 의도된 실수』, 메디치미디어.

프리먼 다이슨이 2000년대에 <뉴욕 리뷰 오브 북스 (The New York Review of Books)>지에 실었던 서평을 모은 서평집이다. 과학과 인문학의 논쟁에 그가 어떤 식으로 참여했는지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본인 서평에 대한 반응 혹은 반론을 함께 실어 읽는 이로 하여금 더 풍성한 대화에 참여하도록 한다. 그의 모든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책을 읽고 논쟁에 참여하며 배우는 모습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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