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기의 『페스트』 낭독 모임, Zoom-in!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석사과정
금현아
kumha1130@kaist.ac.kr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석사과정

정현수

hyonsoo.jeong@kaist.ac.kr

들어가며

           코로나19 일일 확진자 수가 줄어들 기세를 보이지 않던 3월 초·중순. 뜻밖에 길어진 봄방학을 누리다가 어느새 성큼 다가온 온라인 개강에 뒤숭숭하기는 대학원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우연히 몇몇 학생들과 전치형 교수님이 학과 휴게 공간에서 마주친 참에 곧 다가올 온라인 개강의 모습을 저마다 그려보았다. 담소 사이사이에 재미있는 상상이 펼쳐졌다. 종종 있던 야외 수업은 모두가 잔디에 둘러앉되 각각 2~3m씩 멀찍이 떨어져 앉은 모습이 될 터였다. 수강생이 열 명만 되어도 둥그런 원의 끝에서 끝에 앉은 사람은 서로의 말을 잘 알아듣기가 힘들 것 같았다. “제 생각에는요…!!! 그런데 잘 들리시나요?” 종이컵과 실을 이용해서, 혹은 마이크를 돌려 써가며 서로의 말을 전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우스갯소리를 나누며 즐거웠지만, 그만큼 이 어려운 시기에 어떻게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잘 나눌 것인가에 대해 모두가 조금씩 저어하고 있는 듯했다. 같은 날 전치형 교수님께서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  읽기 모임을 제안하셨다. 코로나19 판데믹 상황에서 또 다른 전염병인 페스트에 대한 글을 같이 읽으면 재미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정해진 시간에 Zoom으로 만나 한 명씩 돌아가며 책을 소리 내어 읽되, 모든 사람이 한 번씩 읽고 나면 어떠한 토론이나 대화 없이 화면 밖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우리가 모였다고도 모이지 않았다고도 하기 애매할 그런 모임. 학생들은 제각각 다른 반응을 보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메일함에 도착한 교수님의 정식 제안에 꽤 많은 학생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며칠 뒤 3월 26일 목요일. 밤 9시 무렵이 되자 하나둘씩 Zoom 화면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필자들을 포함한 학생 열 명과 교수님 두 분은 각자 자신의 방 혹은 연구실을 배경에 두고 『페스트』를 펼쳤다. 책을 읽고 발제 혹은 토론을 진행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낭독만 하는 독서 모임은 대부분의 참여자에게 처음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낭독 순서가 되면 약간은 긴장하는 듯했다. 5분가량 서너 페이지를 읽고 “다음 OO가 읽어주세요” 혹은 “넘기겠습니다” 정도의 말을 남긴 후 다시 조용히 다른 참여자가 읽어주는 것을 들었다. 하루에 한 부를 50분가량 함께 낭독하고, 한 부의 여남은 페이지는 각자 읽은 뒤 다음 부를 낭독하는 방식으로, 매주 목요일 밤마다 진행됐다. 그렇게 5주째 되는 4월 23일, 완연한 봄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요했던 캠퍼스의 안팎에서, 우리는 마지막 문장의 낭독을 함께 마쳤다. 그날만큼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간단한 소회를 나누고 잘 자라는 인사를 남겼다.

그림 1 3월 26일 첫 모임 중 찍은 사진 (사진: 금현아)

           코로나19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페스트』를 읽으며 우리는 각자, 그리고 함께, 무엇을 느꼈을까? Zoom이라는 기술을 매개로 함께 책을 읽는 경험은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만난다’라는 행위의 의미를 변화시켰을까? 마지막 낭독 후 나누었던 소회에서 한 발 더 들어가 보고픈 마음에 본 필진은 6월 6일부터 약 일주일 동안 서면 인터뷰를 진행하였고, 참여자들이 정성스레 적어 보내준 답변을 아래와 같이 재구성했다.

서면 인터뷰를 시작하며.

Zoom 통한 페스트 독서 모임에 참여하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 모임에서 기대하셨던 점, 그리고 기대와 달랐던 점은 무엇인가요?

           코로나19 상황에서 전염병에 관한 이야기인 『페스트』를 읽는 것이 참신하고 흥미롭다는 게 상당수 참여자들의 대답이었다. 실제로 그 무렵 도서관에서 『페스트』는 예약이 줄줄이 차있을 정도로 구하기 힘들었다. 또한 독서 모임이 시작된 3월은 고강도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사람들을 직접 만나기 어려웠던 터라 Zoom을 통한 독서 모임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였다는 응답도 있었다. 한편, 한 참여자는 책을 낭독한다는 것이 한창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외부와 단절된 모습일 거라는 예상을 했지만 오히려 직접 갈 수 없는 의료 현장과 죽음의 현장을 추체험할 수 있는 기회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로나19 『페스트』, 서로를 들여다보다

코로나19 상황과 『페스트』 연결할 공통점 차이점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희선: 저희가 『페스트』 독서 모임을 처음 시작한 건 3월 26일이었는데, 한국에서 코로나19가 한풀 꺾여가던 때입니다. 불과 몇 주 전엔 하루 감염자 숫자가 600명을 넘었는데 그 숫자는 조금씩 줄어 100명 안팎까지 도달했습니다(3월 26일 기준). 왠지, 리외(『페스트』 등장인물)의 다짐처럼 우리가 “쓸데없는 환영들을 쫓아버린 다음, 적절한 대책을 세우”고 하루하루 “자신의 일을 충실히 수행”하여 얻은 결과처럼 느껴졌습니다.

“‘페스트’라는 단어가 언급된 것도 사실이고, 바로 이 순간에도 재앙 때문에 희생자가 한 두 명 쓰러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 재앙이 멈출 수도 있었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인정할 것은 확실히 인정하고 쓸데없는 환영들을 쫓아버린 다음, 적절한 대책을 세우는 일이었다. […] 확실한 것은 매일의 노동 속에 있었고 그 외의 것은 실낱들, 무의미한 몸짓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거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일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다.” (페스트, 54-55쪽)

지원: 『페스트』의 현실에서는 개인주의에 빠져있는 군중이 묘사되었습니다. (중략) 물론 현재 코로나 상황에서도 생필품 사재기 등 개인의 이기심이 발동한 상황이 있었지만, 이와는 전혀 다른 삶의 양태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라는 재난 상황에서 골목 상권을 살리기 위한 운동, 의료진들을 위한 응원 릴레이 등 힘든 상황을 함께 이겨내는 공동체의 모습도 보게 되었습니다.

병이 확산되고, 사람들이 죽어가고, 사람들의 이동이 통제되는 모습에서 전염병 바이러스 확산에 대한 공포는 소설 속 페스트 상황이나 지금이나 비슷했다. 이러한 위기 상황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아 지금은 절망감을 느끼지만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나간다면 이 역시 언젠가는 끝날 것이라는 점에서 참여자들은 현재 상황에 대한 위로를 얻었다. 참여자들은 현재는 책 속과는 다른 양상도 나타나고 있음을 말해주었다. 책 속에서는 페스트로 인해 봉쇄된 도시를 탈출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는 등 개인주의에 빠져있는 군중이 묘사되었다. 현재 코로나19 상황에서도 마스크 대란 등 이기심에서 비롯된 혼란스러운 상황이 발생했지만, 의료진의 노고를 기리기 위한 덕분에 챌린지 등 힘든 상황을 함께 이겨내고자 하는 공동체 정신, 연대를 일궈내려는 삶의 형태도 볼 수 있었다. 또한, 여러 가지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하여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모습은 책 속에서 페스트와 대응하는 모습과는 다르다는 응답도 있었다. 예를 들면, 자가 격리 감시를 위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거나 출입 관리를 위해 QR코드를 이용하는 등의 모습들도 있다.

『페스트』를 읽으면서 혹은 읽은 후에 코로나19 상황을 바라보고, 감각하고, 살아내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미량: 섣부르게 절망하거나 희망하지 않고 그저 매일을 사는데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승희: 죽음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지 않는 것,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죽고 있겠구나, 그 사람들의 고통까지는 잘 알려지지 않고 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페스트』를 읽어서 그나마 병상에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원: 『페스트』를 읽기 전에 가장 관심을 기울였던 정보는 확진자 수와 이동 동선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책을 통해 코로나19와 비슷한 상황을 마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면서, 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코로나19를 겪으며 어려움을 겪거나, 새로운 삶의 방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된 것 같습니다.

희선: 코로나19는 더 이상 질병과 죽음의 문제만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보다 우리가 서로를 기억하고, 사랑하고, 상상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감정을 서서히 잃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커졌습니다.

 우리는 『페스트』를 통해 직접 겪어보지 못한 삶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전염병을 직접적으로 마주한 삶은 어떠한가? 페스트를 직접 마주하고 있는 책 속의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통해,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볼 수 있었다. 즉, 『페스트』는 코로나19라는 전염병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것에 집중하였던 감각을 전염병의 최전선에서 어려움을 겪고 이겨 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뻗을 수 있게 해줬다.

『페스트』 저자가 전달하려 했던 메시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메시지가 코로나19 겪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희원: 같은 종류의 역병이라도 어떤 사회경제적, 직업적 위치에 있는 사람인지에 따라 상이한 경험을 한다는 점을 중요하게 짚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이렇게 역병이 확산되는 것을 지도자나 특정 기관, 조직의 책임으로 그리지 않고, 다양한 층위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골고루 전달하는 그 메시지가 코로나19 관련 악의적 언론 보도가 홍수처럼 밀려드는 현 상황에서 굉장히 특별하게 느껴졌습니다.

혜정: 페스트로 인한 당시의 모습, 사람들의 생각과 페스트로 인해 확산되는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이것을 이겨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삶 등을 관찰한 걸 남기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에 누군가는 페스트로 인해 상실감이 큰 상태에서 그 상실을 계속 갖고 살아가고, 누군가는 언제 페스트가 있었냐는 듯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모습에서 페스트가 우리 삶에 어떤 걸 남겼는지, 그 안에서 개인은 어떻게 상실을 안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전염병 시대를 살아가는 것 같지만 개개인의 경험은 다르다. 특히, 전염병을 통해 재생산되는 불평등의 문제가 코로나19상황에서도 여전하다는 것을 참여자들은 지적해 주었다. 실제로 감염병 대응에 취약한 계층은 사회적 약자들이라는 보도도 쉽게 볼 수 있다[i]. 누군가는 스마트 기기로 마스크에 대한 정보를 빠르게 얻고 재택근무를 하며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킬 수 있을 때, 마스크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지 못하거나 사회적 거리두기가 불가능한 노동 현실에 놓여 있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일면은 위기가 끝나고 우리가 일상으로 복귀하게 되더라도 큰 흔적을 남길 것이다. 누군가는 완전히 뒤바뀐 일상을 살아갈 테지만 누군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도 있다. 코로나19가 지나간 자리에 남은 상실과 고민거리를 안은 우리는 이전과 완전히 같은 생활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즉, 참가자들은 페스트 낭독 경험이 아직 코로나19 시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코로나19가 지나간 이후에도 계속해야 할 고민이 무엇인지를 지적해 주었다. 

만남, Zoom-in-out

본 섹션은 Zoom이라는 기술이 만남을 매개했던 방식을 들여다보기 위한 질문으로 구성하였다.

실제로 만나 책을 읽는 것과 달리 Zoom을 통한 모임에서는 카메라를 끄거나 켜서 본인의 얼굴을 보여줄지 말지뿐 아니라 다른 참여자들의 얼굴을 보는 방식 또한 선택해서 자신의 화면을 구성할 있습니다. 본인이 모임에 참여할 때 선택한 시각화 방법과 그 이유가 무엇인가요? 또한 그러한 방법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읽는다는 느낌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Zoom에는 다양한 보기 방식이 있다. 먼저 본인의 얼굴을 다른 참여자들에게 공개할 수도, 공개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다른 참여자에 대해서는 갤러리보기를 통해서 참여자 모두를 볼 수도 있고, 혹은 현재 발표자만 볼 수도 있다. 이러한 시각화 방식은 우리가 만나는 데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묻고자 하였다.

그림 2  사진 속 몇몇 참여자는 본인의 얼굴을 공개하지 않은 채로 낭독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 (Zoom 화면의 오른쪽 채팅에는 Zoom 접속 순서대로 낭독 순서가 적혀 있다.) (사진: 신희선)

승희: 이 모임은 읽고 와서 소감을 나누는 모임이 아니라 텍스트를 읽는 모임이었기 때문에, 읽는 사람의 표정이나 입 모양 등을 아주 상세하게 볼 필요성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중략) 그냥 평소에 옆에 유튜브를 그냥 틀어놓는 것과 거의 비슷한 편안함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나의 참여 비중이 엄청 큰 것은 아니지만 확실히 참여를 하고 있는 것은 맞으니까요. 다시 말해 이번 모임은 서로 얼굴을 상세히 보지 않아도 되었고, 참여도 면에서 그만큼 부담감도 덜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참여자들이 각자 방에서 읽는 모습을 보는 건 재미있었습니다. 매 순간 누군가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내 목소리를 듣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해서 신선하기도 했고요.

희원: 함께 모여서 읽지만, 제 방에서 책을 읽을 때 나오는 편안한 자세로 책을 읽고 싶은데, 카메라가 켜져 있으면 조금 부담스러워서 카메라를 꺼 두었습니다.

지원: 독서모임 중 거의 모든 시간 동안 각자 책을 보고 있기 때문에, 사실 Zoom에서 화면 역할이 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저 같은 경우는 다른 분들이 화면을 꺼둔 상태로 참여했을 때도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혜정: 처음에는 화면이 보이게 설정해두었는데, 책보다는 자꾸 화면에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래서 화면을 껐는데 마음 편안히 나 자신의 느낌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중략) 제가 읽을 때는 다른 사람이 제 모습을 볼 수 있게 화면을 켜기도 했고 때로는 제 모습을 가리고 목소리만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나의 이런 시도에 멤버(참여자)들이 어떤 느낌을 받을까 궁금해하기도 했습니다. 

Joëlle: I do not necessarily like my face being seen while I read so I appreciated being able to hide my face. Other than that, I have a tendency to like seeing everyone screens on mine, I find it easier to know who is speaking, who is there, etc. 

오로지 낭독만 하는 이 독서 모임에서는 누군가의 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할 뿐 얼굴을 보는 것이 중요하지는 않다고 느낀 참여자들이 많았다. 또한 자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도록 카메라를 꺼 둠으로써 편안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도 했다. 직접 만남에서는 서로의 시각과 청각을 적극적으로 동원해 참여하지만, Zoom 화면에서 이뤄진 본 낭독 모임은 청각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만남에 참여하고 있다는 확실한 느낌을 준 것이다.

희선: 다양한 보기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전 첫 두 회에선 모든 사람의 얼굴을 켜두고 책을 읽었습니다. 발표자 보기 모드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서는 책을 읽는 사람의 얼굴만 켜두었습니다. 읽는 사람에 더 집중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실제 만남에서는 모든 참여자가 아니라 말을 하고 있는 사람, 즉 화자에 주의를 집중하게 되는 것처럼 Zoom을 통해서도 현재 낭독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집중할 수 있게 화면을 설정해둔 참여자도 있었다. Zoom을 통해 구현된 2차원 만남 공간에서도 집중을 기울일 만남의 대상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독서 모임 내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입으로 책의 텍스트를 읽어낸 소리를  Zoom이라는 플랫폼 거쳐 듣게 되었습니다. Zoom에서 발생하는 기술적 문제(technical issue) 소리가 끊겨 들리기도, 혹은 빠른 속도로 들리기도 했는데요, 이런 것들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읽는다는 느낌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혜정: Zoom에서는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지만, 오히려 직접 만나는 자리에서 주의가 분산되는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해요. 딱히 기술적 문제도 크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희원: 모여서 읽더라도 소리가 울리거나 말을 더듬어서 문장을 따라가다가 멈칫할 수 있는데, 그 정도의 상황처럼 여겨졌습니다.

희선: 독서 모임 시작 전부터 어느 정도 (기술적 문제에 대해) 생각을 하고있던 터라 당황스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서 튀어나오는 작은 부자연스러움들이 긴장감을 주었던 것 같습니다.

기술적 문제는 많은 참여자들에게 사소한 요소였다. 직접 만남에서도 크고 작은 주의 분산은 이뤄지기 마련이며 항상 매끄럽게 낭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미량: 그때마다 우리가 떨어져 있다는 것을 한층 더 실감했습니다.

이처럼 기술적 문제들로 인해 우리가 떨어져 있음을 한층 더 실감할 수 있었다는 참여자도 있었다. 떨어져 있지 않았다면 경험하지 않았을 소리 끊김, 화면 끊김 현상 등은 우리가 서로 다른 공간에서 만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셈이다.

줌을 통해 정해진 시간 동안 책에 대한 토의 등은 하지 않고 오로지 정해진 분량만큼 책의 본문만 낭독하는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러한 방식이 독서 모임 참여에 미친 영향이 있었나요?

Joëlle: I liked it, it was simply reading for reading, which is sharing the pleasure of reading aloud that we do not have often the occasion to have in our everyday readings. And once it was over, we could rapidly go back to the rest our life after this little break. 

희선: 책 전체를 미리 읽어오는 방식이 아니라 매주 한 챕터씩 함께 소리내어 읽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토론없이 끝내는 것이 더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각자 내용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매주 소감과 의견을 내야했다면 부담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토의를 하지 않고 책의 본문만 낭독하는 방식이 참여자들이 독서 모임에 참여하는 데 있어 부담을 주지 않았다. 읽으면서 동시에 토의를 위한 생각을 깊이 해야 하는 의무감도 주지 않았고, 모임이 끝나고 ‘나가기’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바로 각자의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희원: 본문을 낭독하면서 카뮈가 적은 문장들을 더 온전히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인 독서 모임에서는 저자의 생각을 파악하는 것과 함께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 배경을 고민하거나 비판점을 찾는 것도 중요한 활동 중 하나였던 것 같은데, 책 본문을 낭독했던 이 모임에서는 코로나19라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을 카뮈의 도움을 받아 이해할 수 있는 회복의 시간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Zoom을 통한 낭독은 저자의 문장들을 소화하는 데에도, 더 나아가 참여자가 살아내고 있는 현실 상황을 이해하고 회복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Zoom을 통한 이러한 형태의 독서 모임이 ‘만남’ 에 대한 생각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또한 코로나19 상황이 종료된 후에도 직접 만나는 형태가 아닌 Zoom을 통한 독서 모임이 계속될 수 있을까요?

희선: 저는 사실 화상회의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던 사람입니다. 얼굴이 화면에 여과없이 보이고 오디오가 겹칠 수 있는 온라인 만남에선 사람들이 불필요한 말을 아끼게 되니까요. 한 사람씩 차례를 정해 몇 페이지씩 돌아가며 읽는 온라인 독서 모임은 화상회의의 이러한 혜택을 잘 활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에는 온라인 만남이 물리적 거리를 극복하기 위한 용도라고만 생각했는데, Zoom독서 모임을 통해 어떠한 종류의 만남이냐에 따라 만남의 방식 역시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Joëlle: It did not really mediate anything, I do think meeting people and read could also be nice, but it would take more time in our already very busy life schedules. That is why I do think it is a nice alternative to meeting in person, especially for such activity if we do not search for a discussion afterwards. 

혜정: ‘줌으로도 만남을 지속할 수 있구나’ 싶었습니다. 오히려 직접 만남이 가져오는 부담스러움을 줌에서는 보이고 싶은 부분만 보여주고, 나머진 나 자신에 집중할 수 있어서 더 마음이 편안했던 것 같습니다. 독서 그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는 생각이요. 그런데 만남의 깊이에는 한계가 있겠죠. 제 경우에는 독서가 좋았기 때문에 이런 형태의 모임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Zoom이라는 화상 회의 공간은 직접 만나는 것으로 인한 여러 부담을 덜어내거나 불필요한 말을 아끼게 하는 등의 장점을 가진다. 얼굴을 맞대고 둘러앉아 책을 읽을 때 신경 쓰게 되는 요인들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자신과 텍스트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또한 참여자들은 시공간 상의 제약으로 직접 만나기 힘든 경우에 적절한 대안이 될 수도, 더 나아가 새로운 형태의 만남이 활성화될 가능성을 엿보았다고도 응답해 주었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서는 만남이 화면 안에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깊이의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러한 점을 고려했을 때 집약적인 토론이 필요한 모임은 힘들 것 같다는 점도 지적해 주었다.

그림 3  4월 23일 마지막 모임 후 찍은 사진 (사진: 금현아)

나가며

           본 『페스트』 낭독 모임이 끝난 이후에도 또 다른 책으로 Zoom을 통한 독서 낭독 모임이 5주 더 진행됐다. 두 차례의 낭독 모임에서 참여자들이 기대하고 얻어갔던 것들은 제각기 다를 것이다. 하지만 한산하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한 캠퍼스에서 많은 변화를 겪은 참여자들에게 본 낭독 모임은 각별한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각자가 거리를 두고 생활하기를 각별히 당부받는 이 시기에 우리는 어떠한 만남을 바라고 상상하며, 기술을 매개로 한 대안적 형태의 만남은 무엇을 가능케 하는지, 기존의 만남에서 소중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돌이켜 볼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코로나19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얼마 전 중국 네이멍구에서는 페스트 환자가 발생했다. 더 많은, 더 복잡한 전염병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죽어갈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비대면 문화에 대한 논의는 점점 더 활발해질 것이다. 서로의 얼굴을 직접 마주하며 연결될 수 없는 상황에서의 대안으로 Zoom과 같은 화상 플랫폼들로 우리는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과학기술사회학 연구자 셰리 터클(Sherry Turkle)은 그녀의 책 『Alone Together』[ii]를 통해 우리가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며 연결되는 것의 대안으로 자리 잡은 여러 가지 기술들이 우리의 관계를 어떻게 바꾸는지 이야기한다. 전염병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기술은 사람 간의, 혹은 사람과 기술 간의 관계를 어떻게 바꾸게 될 것인가? 우리는 더욱 각자 살아가게 되는가, 아니면 기술과 같이 더욱 함께 살아가게 되는가? 서로 사이의 거리가 조심스러워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더욱 ‘각자(alone)’가 아니라 더욱 ‘함께(together)’가 되기 위해서 기술이 무엇을 가능케 하고 무엇을 제약하는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i] 경향신문(2020.05.15), 「차별, 불평등 드러낸 코로나19… ‘후순위’로 밀려난 약자들」

[ii] Sherry Turkle (2011), Alone Together, Basic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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