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 탐색의 구술사: 과학뒤켠 10호 발간을 축하하며

터프츠 대학교 박사 후 연구원
전준
June.Jeon@tufts.edu

시작은,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

 “야! 일어나! 아직 자냐?” 

2009년 1월의 어느 날, 나는 숙취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채 자취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나의 핸드폰에 다급한 문자를 보낸 사람은 김영규, 함께 STP 석사과정 1기로 합격한 친구였다. 전날 같이 술을 좀 많이 마셨던 것 같은데 어떻게 된 거지? 나는 비몽사몽 전화를 걸며 학교로 뛰쳐나갔다. 그러고 보니 오늘 회의실에 테이블을 들여다 놓기로 한 날이구나.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이 시작되던 그때, 태초엔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은 STP 휴게실로 사용되고 있는 2층의 작은 방이 1기 석사생 4명의 공동 연구실이었고, 3층의 세미나실에는 조악한 테이블과 삐걱거리는 의자 여럿이 있었을 뿐이었다. 이 테이블들과 의자들은 인문사회과학부 건물 어디엔가 버려져 있던 것들을 나와 영규가 드라이버로 한땀 한땀 분해해서 옮겨 다시 조립한 것이었다. 온종일 테이블을 나르고 조립했지만, 어쩐지 어설펐다. 테이블 사이의 나사는 풀었다 다시 조이는 일을 가정하지 않고 설계된 것인지 헐겁게 덜렁거렸고, 합판에서 떨어져 나간 톱밥이 바닥에 천지였다. 원형으로 재조립한 회의실 테이블의 모서리가 손만 올려놓으면 높낮이가 맞지 않아 덜컹거렸다. “박범순 선생님이 보시면 뭐라 하실 거 같은데…” 내가 앓는 소리를 했다. 영규가 A4 용지 몇 장을 접어 두툼하게 만들어 탁자 아래에 끼웠다. 여전히 높낮이는 안 맞았지만 덜컹거리는 것은 해결된 것 같았다. “이러면 아무도 모를 거야.” 테이블 사이의 이음새가 허술하면 청테이프로 둘둘 감아 고정했다. 역시 1기로 입학한 우수한 인재들은 뭐가 달라도 다른 것이었다.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석사 1기로 입학한 4인은 다들 나름대로 사연을 가지고 이곳에 왔다. 김영규는 카이스트에서 물리학과를 졸업했는데, 뭔가 역사학 공부에 심취해 있는 듯했다. 김세아는 카이스트 신소재공학과를 졸업했고, 학기 시작 전까지는 제네바에 있는 국제기구에서 인턴을 하고 있었다. 이미 글로벌한 활동을 하는 대단한 친구였다. 김지현 누나는 우리 중에 제일 연장자였는데, 생화학으로 대학원 생활을 하던 중, 과학기술정책 분야에 뜻이 있어 전공을 바꾸어 다시 대학원에 오게 되었다. 나는 학교 신문사 기자를 하다가 알 수 없는 미로에 빠져 STS 공부를 해보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다들 조금씩 다른 경로를 거쳐 왔지만, 우리 모두의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아무런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 않았던, 미지의 신설 대학원 프로그램에 1기로 입학했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소위 “첫 빠따”였다.

첫 빠따이기만 했을까, 교수님들의 지도는 “불 빠따”였다. 첫 학기에 우리는 박범순 교수님의 과학기술정책 개론 수업(과학사 + 과학사회학이 혼합된 수업이었던 것 같다), 김소영 교수님의 공공 정책 수업, 그리고 당시 카이스트 의과학 대학원에 계셨던 김미경 교수님의 생명공학과 법 수업을 함께 들었다. 세 과목 모두 엄청난 분량의 리딩(reading)을 자랑했다. 우리는 인문/사회과학으로의 전환에 현기증을 느낄 틈도 없이 하루살이 인생처럼 리딩에 파묻혀 한 학기를 보내야 했다. 나는 특히 영어 독해 능력이 부족해서 고생을 많이 했다. 단 하나도 모르는 단어 없이 지나가는 문장이 없었다. 행간을 읽는다든지, 맥락과 흐름을 파악하며 읽는다든지, 그런 고급 스킬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었고, 그저 수업 시작 전까지 눈으로 한 번씩 훑고는 들어가자는 목표뿐이었다. 하지만 온종일 의자를 뭉개고 앉아 책을 읽어도, 덮고 나면 무엇을 읽었는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그 상태로 수업에 들어가면 박범순 교수님은 으레 그 훈훈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So, what did you learn this week?” 하고 질문하셨다. (지금보다는 상당히 젊고 훈훈하셨다는 기록을 남겨둔다. 학생 한 명에 주름살 하나…) 한 명씩 돌아가며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정말 할 말이 없던 날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전 배운 게 없어요, 아니, 습득한 내용이 없어요. 저를 두고 먼저들 가셔요… 마음의 소리를 억누르고 간신히 궤변을 늘어놓다 보면 하루가 어찌저찌 흘러갔다. 

정체성 투쟁과 대학원 공간

그러나 수업에서 생존하는 어려움보다 우리가 당면했던 공통된 과제는, 과연 우리 대학원이 무엇을 하는 대학원인가 하는,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금요일 밤이 되면 우리는 세아의 기타 소리를 벗 삼아 둘러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곤 했다. 너는 무엇을 하고 싶니? 너는 무슨 생각으로 이 대학원에 왔니? 이 대학원은 어떤 공부를 하는 공간이라고 상상하고 왔니? 아니, 우리는 이 대학원을 어떤 곳으로 가꾸어 나갈 수 있을까? 근데 그 전에… 우리는 졸업할 수 있기는 하니? 개개인의 존재론이 집단의 인식론으로 타고 흐르고, 또한 그것은 집단의 존재론에 대한 질문으로 변하여 우리 주위를 배회했다. 우리는 마치 말랑말랑한 찰흙으로 빚어진 작은 보트 위에 올라탄 선원 같았다. 우리를 싣고 어딘가로 나아가는 배, 그러나 우리의 발걸음이 생생하게 찍혀 그 모습이 변하는 배, 왠지 바닷물에 조금씩 허물어져 나가는 것은 아닐까 왠지 불안한 배, 돌아가면서 조타석 불침번을 서던 배. 누가 강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러한 불안감의 정체는 1기로 대학원에 입학해 이곳을 함께 만들어나가는 창립 멤버라는, 일종의 책임감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랬는지 우리 1기들은 서로를 ‘동지’라고 불렀다.

당연히 우리는 그 무엇도 확립해 놓지 못한 채, 짧은 석사과정을 끝내고 각자의 길에 들어섰다. 거실에 걸려 있는 멋들어진 가훈이 가족을 정의하지 않듯이, 공통된 정체성 같은 것이 있다 한들 그것이 우리 대학원을 정의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던지던 질문들을, 지금의 재학생들도 아마 똑같이 던지고 있을 것이다. 대학원 공간은 우리에게 정체성 투쟁의 경험과 과정을 제공해 주었다. 이 공간과 우리, 그리고 나 자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고민했던 날들은 결국 각자의 길을 이끄는 표지판이 되었다. 

정체성 투쟁은 과학기술정책대학원만의 과제가 아니었다. 소위 전통적인 학과로 분류되는 장소에서도 개인과 집단의 방황은 여전했다. 유학 생활 초기, 처음으로 극복해야 했던 나의 과제는 자신의 학문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일이었다. 훌륭한 책을 읽고 논문을 읽어도, 마치 미술관의 작품을 감상하는 듯한 묘한 타자감이 나를 괴롭혔던 것 같다. 이 아름다운 작품들 사이에서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 하는 불안감이 서늘하게 등골을 스치는 그런 날들이 있었다. 이제 그런 불안감과는 어떻게든 승부를 내야만 했다. 

그러나 적어도 연구자에게 있어서는 이러한 정체성 투쟁에 의식적으로라도 몸을 던져보는 것이 귀중한 자산인 듯하다. 연구자로서 나 자신은 어떤 지형도에 위치해 있는지, 나의 청자들은 누구이고 나는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인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연구자가 될 수 없다. 대학원에는 이러한 고민이 필요 없다고 착각하는 안락의자 속의 ‘공부 애호가’들이 종종 보인다. 아마 한 번도 그런 고민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적이 없어 왔기 때문일 것이다. 소위 ‘전통적’인 학문의 울타리에서 오랫동안 머물면 마치 정체성 투쟁을 면제받은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남들이 이미 만들어 제도화시켜 놓은 학제의 틀 안에서 자신도 미끄러져 가다 보면 언젠가 정해져 있는 정답의 길로 들어서게 되리라는 착각일 것이다.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을 거친 동지들은 모두 그러한 착각으로부터 자유롭다. 말하자면, 정체성 투쟁의 근육운동을 매 순간 겪어왔던 셈이니까. 누군가 이 고민을 대신해 주었으리라는 착각, 할 필요가 없는 고민이라는 착각, 혹은 남들은 고민하지 않는데 나만 방황하는 것 같다는 착각—이 모든 착각을 접어두고 우리는 지금도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이라는 울타리에서 마음껏 헤매며 고민하고 있다. 

과학뒤켠—방목의 기록, 대학원의 나이테

과학뒤켠이 어느새 10호를 낸다. 과학기술정책에 대한 다채로운 생각들을 담은 개성 있는 소책자가 이제 열 권이 쌓이는 것이다. “과학뒤켠”이라는 제목은 언제 보아도 감탄을 자아낸다. 과학기술정책학이라는 깃발 아래에서 다 함께 무엇을 공부하고 있는지 이보다 더 드라마틱하게 표현할 수 있는 제목이 있을까? 해리 콜린스(Harry Collins)와 트래버 핀치(Trevor Pinch)의 책 ‘골렘’의 한국어 번역본에는 “과학의 뒷골목”이라는, 원서에는 없는 부제가 달려있다. 나는 왠지 으스스하고 불길해 보이는 “뒷골목”이라는 표현보다 “뒤켠”이라는 표현이 더 좋다. 1호 편집장 신유정 박사는 “다양한 과학의 뒤켠을 발견할 것”이라고 썼다. 사회 속의 과학기술을 조명해 내, 정당한 관심을 받지 못했거나 새로운 관점이 필요한 과학기술정책의 이슈들을 풀어내는 것이 이 간행물의 목표라고 적고 있다. 

과학뒤켠이 그 컨텐츠를 통해 소기의 목적을 이루었는지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른 듯하다. 나는 결과물로서의 과학뒤켠이 아닌, 상징과 과정으로서의 과학뒤켠에 더 주목하고 싶다. 과학뒤켠의 뒤켠을 응원하는 마음이다. 한 권의 책자를 만들기 위해, 각각의 저자들은 당시의 자신들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과학기술정책의 이슈에 대해 심혈을 기울인 글을 썼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이 어떤 고민을 하는 공간인지 여러 번 되물었을 것이다. 어쩌면 몇몇은 그러한 글들이 모여 엮인 책자를 손에 쥐며 자신의 고민과 집단의 고민이 서로 교차하는 지점에서 실체화된 이 소중한 결과물에 자신의 정체성을 투영해 보았을 수도 있겠다. 책자를 받아 드는 다양한 독자들도 상징적 구성의 일원이었을 것이다. 이 미지의 대학원은 과연 무엇을 하는 공간인지—과학뒤켠은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안팎을 넘나들며 그 구성원들과 청중들의 의미의 장이 되어왔다.

<그림 1> Survey in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

다시 2009년으로 돌아가 본다. 2009년 봄학기, 과학기술정책 세미나를 수강한 석사 1기생들은 학기 말 페이퍼를 모아 한 권의 소책자를 만들었다. Survey in Science and Technology Policy 라는 단출한 제목을 가진 이 책은, 마치 앞으로도 계속되기를 바라는 의지를 표현한 듯 2009라는 제호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책의 2010버전이 출판되는 일은 없었다. 모두에게 그렇듯, 대학원 첫 학기 기말 페이퍼는 아무에게도 들켜서는 안 되는 부끄러운 기록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직 간직하고 있는 이 얇은 소책자를 가끔 펼쳐 내 글은 절대 읽지 않고 남의 글만 읽는다. 풋풋하고 조심스러운 문장들이 톡톡거린다. 다행히 이 책이 널리 읽히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던 듯하다. 그래도 대학원의 나이테 맨 안쪽에 이 얇은 책 한 권도 돌돌 말려 있을 것 같다. 

과학뒤켠은 널리 읽힌다. 더 많은 사람이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쓴다. 가볍거나 무거운 이야기들, 사색적이거나 경험적인 단상들이 불쑥 튀어나온다. 이 개성 있는 책자들이 돌돌 말려 두터운 거목의 살집을 채우고 있다. 모두 자신과 단체의 정체성을 묻고 답하며 쌓아온 기록들이다. 이 잡학다식한 공간의 뜨거운 질서없음이 앞으로도 이어지기를 빈다. 과학 뒤켠 10호의 발간을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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