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편집장과의 대화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석사과정
이선민
allkinds@kaist.ac.kr

과학뒤켠 10호의 편집진은 열 번째 호를 기념하는 [Behind STP] 섹션을 준비하던 중 문득 과학뒤켠이 편집진, 필자, 그리고 독자 모두에게 가지는 의미와 지향점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찾은 사람은 바로 과학뒤켠 창간호의 편집장이자 (타칭) 과학뒤켠의 어버이인 신유정 교수.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이하 STP)의 졸업생이자 바로 옆 방에서 신진 연구자로서의 삶을 이어나가고 계신 교수님을 찾아가 물었다. 과학뒤켠의 탄생 비화, 초심,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까지.

<그림 1> 신유정 교수님과 KAIST 마스코트 넙죽이

연구자 신유정

최근에 MIT에서 박사후 과정을 마치고 KAIST에 돌아오셔서 현재 인문사회융합과학대학의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십니다. 우선 축하드립니다. 교수님께 할 질문을 정리하던 도중 교수님의 박사학위 논문 제목인 “학제성의 정책적 기반: 한미 뇌과학분야 형성을 중심으로”를 접했습니다. 학부를 KAIST 기계공학과에서 졸업하셨는데, 그러면 그때부터 뇌과학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있으셨던 건가요? 그리고 어떻게 해서 이 주제를 가지고 STP에 진학하게 되셨나요?

저는 사실 기계공학과에서 굉장히 즐겁게 공부를 하고 있던 전형적인 공학도였습니다. 당시 뇌연구에 대한 유행에 불어 기계공학과 내에서 관련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던 분위기였습니다. 그때부터 brain-computer interface, brain-machine interface 등의 주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때 KAIST에 STP 부전공 프로그램이 생겨 제가 몇 개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때 부전공 학생으로 들은 수업에서 제 뒤통수를 치는 내용이 많았어요. 사실 과학기술연구자들은 실험실 밖의 이야기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아요. 그런데 알고 보니 실험실 안에서 지금 내가 왜 하필 이 주제를 연구하는지, 이 장비들은 어디서 펀딩을 받아 온 건지, 이 실험실은 누구의 지원으로 유지되고 있는지……. 알고 보니 연구자로서 생활하는 아주 작은 실험실에서부터, 보이지 않는 복잡한 사회적, 정치적 네트워크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우리가 과학기술정책이라는 것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진짜 과학기술 활동이 이루어지는 실험실이라는 공간과, 그 곳에서 일어나는 일과, 여기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요소를 이해하지 않고 어떻게 과학기술정책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고민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요.

이건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2011년, 그러니까 제가 학부 3학년이었을 때 KAIST에 많은 사건이 있었어요. 학생들이 학업을 그만두거나, 세상을 달리하거나, 이런 힘든 상황이 누적되다가 한꺼번에 분출된 해가 2011년이었거든요. 그때 제가 한 학생으로서 한 생각은, 과학기술이 중요하다고 많이들 그러지만 정작 한국 과학기술의 미래라는 KAIST에서, 이 학생들은 전혀 흥미나 비전을 갖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구나. 과학기술정책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안에 과학기술에 종사하는 연구자들이나 학생들을 향한 세심한 관찰과 고민은 너무 적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 없는 과학기술정책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런 전반적인 생각 속에서 실험실과 연결된 다양한 사회로 시선이 돌아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제가 원래 해왔던 뇌과학이란 주제와 맞춰서 STP로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뇌과학이 ‘연구를 바라보는 연구’의 입장에서 다른 과학기술 분야와는 구별되는 특징이 있나요?

제가 뇌과학에 관심을 두던 시기는, 지금 인공지능 연구가 그런 것처럼, 뇌과학을 향한 하이프(hype)가 크던 때였어요. 뇌과학을 통해 사람에 대한 이해가 바뀌면 예컨대 우리가 정치를 하는 방식, 경제를 하는 방식, 이런 것들을 모두 바꿀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져 나왔어요. 그렇다면 이렇게 세상을 다 바꾼다는 뇌과학이라는 학문은 과연 어떤 학문일까, 뇌과학자는 과연 누구일까, 하는 게 궁금해졌거든요. 그런데 제가 뇌과학 커뮤니티의 역사를 연구하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 중 하나는 뇌과학 또는 뇌연구라는 학문이 참 정의하기 어렵다는 거였어요. 뇌과학자를 표명하는 사람들도 너무 많고, 뇌과학 안에 하위 분과도 너무 많고. 왜냐하면, 굉장히 학제적인(interdisciplinary) 학문이기 때문에. 뇌과학은 시작부터 학제성을 특징으로 가지고 발전한 학문이었어요.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이 뇌과학자들이 학제성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고, 그것을 왜 커뮤니티의 중요한 가치로 뽑았으며, 어떻게 그것이 커뮤니티의 진화 과정에 녹아들었는지 하는 겁니다. 그래서 뇌과학의 큰 특징이라고 하면 21세기에 가장 많이 사람들의 촉망을 받았던 소위 ‘융합 학문’이라는 거죠.

해당 논문에서 한국과 미국의 뇌과학이 하나의 학제로 형성되는 과정을 분석하셨는데, 학문이 그 자체로 순수하고 독립적으로 형성된다기보다 여러 정치적 행위를 통해 하나의 제도로서 자리 잡는다는 주장이 지금의 한국 과학기술정책에 어떠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시나요?

요즘 새로운 기술, 새로운 학문이라는 말을 굉장히 쉽게 하잖아요? 4차산업혁명 같은 수사도 그렇고. 새로운 기술과 학문이 등장할 때 사람들은 뭔가 자명하고 객관적인 연구 결과나 발견이 선행하고, 이것 때문에 그 기술과 학문이 ‘뿅’하고 만들어진다고 생각하죠. 근데 사실 학문을 사람들 간의 커뮤니티로 본다면, 역사적으로 특수한 환경 속에서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이거나 사회적인 과정을 통해 아주 복잡하고 장기적으로 진화한다는 걸 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복잡다단한 커뮤니티의 발생 과정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새로운 학문을 성장시킬 것인지, 그게 단순히 정부의 지원만으로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 이런 것들을 비판적으로 고민을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또 오늘날 유행처럼 등장하는 연구 트렌드들에 어떻게 대응을 할 것인가, 이런 것들도요.

그럼 다시 STP 이야기로 돌아와서, 학부생 시절부터 뇌과학을 향한 관심이 꾸준히 있다고 하셨는데, 그럼 STP에서 수학한 경험이 본인의 연구에 어떤 영향을 줬다고 생각하시나요?

음, 우리가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지배적인 프레임이 있어요.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에서 먼저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이것이 후발 국가에 퍼지게 되는 그런 그림을 많이 상상하죠. 그런데 STP에서 과학기술의 발전이나 정책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것은 과학기술의 발전이 그런 식으로 선형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국가의 지역적으로 그리고 시대적으로 특수한 배경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집단적으로(collectively) 형성되는 거죠. 그래서 어떤 한 시대의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역적인 수준에서의 이해와 또 글로벌한 흐름에 대한 이해가 동시에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결과적으로 원래는 한국에 관한 내용으로만 박사학위 논문을 쓰려고 했는데, 미국과 한국의 뇌과학 연구의 발전을 동시에 보는 비교적 관점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교수님 본인에 대한 질문을 마무리하면서, 정책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자신의 연구가 실제 사회와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또 궁극적으로 이 분야의 학생들이 어떤 실천적인 지향점을 가지고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무래도 정책 공부를 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하는 연구가 좀 더 현재 정책이 집행되는데 쓸모가 있으면 좋겠다는 그런 바람이 있긴 한 것 같아요. 그런 바람이 큰 사람 중 하나였죠. 근데 이제 와서 느끼는 거지만, 정책 현장에 영향을 미친다는 걸 너무 짧은 시간 안에서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내가 정책 연구자로서 하는 여러 활동이 논문이 되고 책이 되고 다른 매개물이 되어서 살아있으면 지금 당장 정책 현장을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훗날의 정책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좀 장기적으로 볼 필요는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학자로서 조급해지고 빨리 성과를 보고 싶고 이런 경향이 생기는 것 같은데 이런 것들은 지양해야 하는 태도가 아닌가 싶고요.

과학뒤켠의 탄생

이제 과학뒤켠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과학뒤켠 1호가 발간되었을 때의 상황이 궁금한데, 과학뒤켠을 내야겠다는 아이디어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나오게 됐나요?

확실하게 말을 해야 할 건, STP 내에서 학생 잡지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수요가 계속 있었어요, 저 혼자만의 아이디어는 절대 아니고. 2013년에서 2014년쯤 STP가 계속 성장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오기 시작했어요. 정책을 역사적이거나 사회학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정치학적으로 또는 경제학적으로, 정량적으로 또는 정성적으로, 그러니까 방법론 면으로나 주제 면으로나 풍성한 커뮤니티가 됐어요. 그래서 우리가 STP 커뮤니티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연구 활동들을 한 플랫폼에 모아보면 어떻겠냐, 그렇다면 STP가 어떤 곳이고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보여줄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러면서 우리도 과학기술정책이란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겠느냐. 이런 이야기에 공감하는 학생들이 많아졌고 그즈음 학생회의에서 이 안건이 공식적으로 상정됐어요. 그렇다면 누가 이걸 좀 이끌고 제도적으로 안착을 시킬 것이냐, 하는 문제에서 제가 자원을 해서 초기 편집장이 되었죠. 그러니까 이건 모두의 아이디어였고 저는 그저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작은 역할을 맡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네요. (웃음)

그렇다면 STP에서 과학뒤켠이 만들어진 것은 신생 학과로서, 그리고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연구 분과로서 생긴 모호한 정체성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하면 될까요?

네,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STP는 ‘과학기술정책’이라는 이름을 단 초창기 대학원 중 하나였잖아요? 이 대학원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기조는, 지금까지 오랫동안 과학기술정책이 관리되어왔던 방식과는 다른 얘기를 해보자는 거였어요. 공공정책의 일부로만, 행정적으로만 이것을 보는 게 아니라 과학기술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과학기술정책을 얘기해 보자. 과학기술정책을 경제발전이나 효율성과 같은 가치로만 이해하지 말고 다양한 사회적 가치에 비추어 생각해 보자. 이런 색깔을 어떻게 여기 STP 커뮤니티에 있는 학생들이 더 풍성하고 구체적으로 만들어 나갈지에 달린 문제였어요. 그래서 시작은 KAIST STP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플랫폼이 되길 원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이게 국내외의 다른 과학기술정책에 관심있는 학생들이 모여서 커뮤니티를 만드는 씨드(seed)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정책이라는 거는 참 다양한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구성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 이런 사람들을 한 곳에 데리고 있을 플랫폼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러면 그 당시에 과학뒤켠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떤 사람들과 같이 어떻게 역할 분담을 했나요? 예를 들면 1호에서는 기고자가 전부 STP 학생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처음에는 편집진과 필진의 구분이 좀 모호한 부분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STP의 공식 동아리의 형태로 출범했어요. 그래서 감사하게도 학과의 지원을 많이 받았고요. 과학뒤켠을 만들고자 하는 학생들의 수요가 뚜렷했기 때문에 STP 내부 인원을 중심으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동아리에 참여했어요. 모두가 자기 일이라고 생각한 거죠. 초창기라서 정해야 할 것이 많았어요. 간행물 이름, 섹션 구성, 로고 같은 것들. 그래서 첫 두 호 같은 경우에는 모든 것을 다 같이 했다고 하는 게 더 옳을 것 같아요. 그래서 이 때는 편집진과 필진이 뚜렷하게 구분이 되지 않았어요. 필진이 완전히 완성된 글을 가지고 오는 게 아니라 러프하지만 재밌는 아이디어를 뒤켠에 들고 오면 우리 편집진이 피드백을 줘서 함께 좋은 글로 완성해나가는. 편집진과 필진의 거리가 가까운 걸 지향하는 형태로 시작을 했어요. 필진은 글을 내고 편집진은 심사하는 기존의 간행물 출간 방식에서 벗어나고자 한 거죠. 학생들이니까 기회도 많이 주고 서로 더 많이 배울 수 있도록요.

근데 이제 3호부터 시작을 해서 점점 외부 필진을 받게 됐고, 지금 10호는 이제 딱 반반으로 구성되어 있네요. 처음에는 과학뒤켠이 ‘STP 잡지’라는 확고한 정체성이 있었다고 느꼈어요. 학생들이 다 함께 만들어 나가는. 근데 이제는 그보다 다양한 사람들이 드나드는 플랫폼으로 성격이 변했다고 보이는데요, 교수님께서는 이 부분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런 종류의 변화는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환경이 바뀌니까 잡지가 만들어지는 방식도 달라질 수밖에 없죠.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우리가 정말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관해 지속적으로 대화를 했는지’인 것 같아요. 외부 필진의 유입은 저 개인적으로는 자연스러웠다고 생각을 해요. 왜냐면 궁극적으로는 국내외의 과학기술정책을 공부하는 학생들을 끌어들이고 싶었고 이 학문 커뮤니티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으니까. 그렇지만 그 이후에 아까 말씀하신 대로 필진과 편집진의 관계, 이런 것들을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STP 사람들과 계속 소통해야 하는 문제예요. 왜냐하면 과학뒤켠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와 비교해서 지금 STP 학생들의 수요가 다를 수 있잖아요. 그런 수요를 민감하게 감지하고 충족시키는 유연성이 필요한 시점이고, 그런 점에서 이전 편집진과 이런 고민을 공유하는 건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해요.

과학뒤켠이 계속 발간되다 보니까 어느샌가 우리 사이에서 이건 꼭 성사시켜야 하는 프로젝트가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오히려 내부 인원의 참여를 유도해내기가 어려워진 면도 있고……. 

STP 사람들의 수요가 무엇이고, 과학뒤켠이 그들에게 뭘 제공해줄 수 있는지를 계속해서 고민하고 알리는 것이 편집위원과 편집장의 역할인 것 같아요. 저희가 이게 STP에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우리는 기본적으로 모든 활동을 전부 다 영어로 하는데, 그래서 사람들이 한국어로 글을 써 볼 기회가 없어요. 그래서 그걸 많이 강조했었어요. 한국어 저널에 기고하려면 굉장히 학문적인 저널에 엄청 오래 기다려서 글을 낼 수밖에 없는데, 우리는 너희들에게 열려있는, 네가 한국어로 너의 연구를 알릴 수 있는 플랫폼이다. 국내 연구자들에게 내 연구가 무엇이다 하고 보여줄 수 있는 짧은 피스가 있는 건 큰 장점이거든요. 이런 점이 STP 사람들에게 어필이 될 수 있지요.

다른 하나는 STP 사람들이 STP 활동을 하면서 하는 자연스러운 활동이 있잖아요, 거기에서 글이 나올 수 있어요. 아주 완성된 형태가 아닐지라도. STP에서 하는 북클럽이라던가, 컨퍼런스에 참가를 했다던가, 민속지 연구를 했다던가, 이런 활동들을 하면 그 결과는 보통 어떤 공식적인 창구를 통해 발표하잖아요.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자기가 연구자로서 느꼈던 단상이라던가, 방법론적 고민 같은 뒷이야기들을 가볍게 써서 실을 수 있는 곳이라는 인상을 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편집진이 수동적으로 글을 받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내부 및 외부 필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제안하고 손을 뻗는 역할을 해야 해요. 이런 점들은 기획 단계에서 고민이 많이 필요해요. 누가 뭘 하고 있는지 알고 먼저 연락을 하는. 그런 활동의 일환으로 지금까지 새로운 섹션이 많이 등장했어요. [수업뒤켠]같은. 이런 인센티브는 사람들이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에 계속을 설득을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림 2> 역대 과학뒤켠 표지들

창간호의 서문을 읽어보니까 왜 과학뒤켠에 ‘뒤켠’이라는 이름을 붙이게 되었는가를 소개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집에서 주방이 있는 장소를 뒤켠이라고 부르는데, 과학기술의 풍성한 밥상이 아니라 이 밥상을 차리는 공간을 보려고 한다는 의미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밖에 나가 일을 하려면 주방에서의 가사노동을 필요로 하잖아요? 그렇다면 과학기술은 일종의 생산 활동이고, 이것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어떤 종류의 가사노동, 혹은 재생산 활동이 필요한 것인가요?

갑자기 이 질문을 하니까, 원래 과학뒤켠 말고 다른 제목 후보들이 생각나네요. 그게 뭐였죠?

언더커버, BackSTage, ST’issue…

아, 생각났어요. 우리가 흔히 과학기술 하면 화려한 미래를 상상하지만, 사실은 그 화려함 이면에 감춰져 있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 화려함을 가능케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조명하고 싶고 그런 노력이 우리가 정책을 논할 때 필요하지 않을까. 앞에서 말했듯이 STP의 기조가 여기에 공감하는 것도 있었고요. 과학기술이라는 화려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기술과 위험과 함께 살아가는 선로 노동자들이나,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중독물질을 마시는 사람들이나,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갖추지 못한 채 연구하는 대학원생이라던가, 또 다양한 비인간, 비생물이 동원됩니다. 혹은 정책이 만들어지는 현장 뒤의 어떤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이해, 이런 것들은 생략한 채 밝은 미래만을 이야기하는 경향도 있고요. 우리가 엄마가 차려준 밥상은 당연하게 잘 먹는데, 그 뒤에 가치화되지 않고 인식되지 않는 가사노동이 있잖아요. 이런 점에서 과학 뒤켠의 저 활동들이 가사노동과 비슷하다고 느낀 것 같아요. 꼭 필요하지만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까부터 이 인터뷰에서 계속 반복되는 주제가 있는 것 같아요. 과학기술로 표상되는 밝고 화려한 미래와 거기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는 어떤 것들의 대비. 과학뒤켠은 그 첫 서문부터 이런 것들을 살핌으로써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겠다는 포부를 밝히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무엇이 조명을 받고 무엇이 그렇지 못하는지를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또 그 기준을 인식하게 한 문제의식은 무엇인가요?

그것을 가르는 동력은 굉장히 다양하죠. 시대와 나라마다 다를 거고, 계속해서 변화하고. 그게 고정적이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연구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그런 경제적이거나 정치적이거나 관습적인 동력에 의해 현재의 과학기술정책 생태계가 구성되어 있을 텐데, 계속해서 변화하는 이 동력을 포착하고 끄집어내는 것이 과학뒤켠의 초창기 목표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동력을 추적해 나가는 과정에서 다양한 연구 방법론이 쓰일 수 있어요. 흔히 질적 연구와 양적 연구를 구분하는데, 저는 그 두 가지가 상호보완적으로 쓰일 때 가장 이롭다고 생각하거든요. 보통의 학문적인 환경에서는 연구자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여기에서는 그런 연구 방법론을 섞어서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다양한 연구를 하는 사람들을 균형 있게 데리고 오려고 한 적극적인 노력이 있었죠.

또 하나 짚고 싶은 것은, 저희가 초창기에 많이 애정을 뒀던 건 [정책] 섹션이었어요. 최근으로 올수록 세상에 수많은 정책 보고서가 쏟아져 나오잖아요. 그런 보고서들이 현장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한 채 또는 다른 연구 보고서들과 소통하지 못한 채 둥둥 떠다니고 있는 측면이 있었거든요. 근데 이런 보고서들에 대화를 걸고 비판적으로 비평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생각이 뒤켠하고도 연결이 되는 이유는, 우리가 보고서를 읽을 때 그 보고서의 결과만 보잖아요. 근데 그 보고서를 만든 사람은 누구고, 어떤 고민을 했고, 한계는 무엇이 있고, 그 보고서의 이면에 있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을 잘 기울이지 않죠. 과학뒤켠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 중 하나는 그런 정책 보고서들의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을 같이 보고, 거기에서 아까 말한 동력을 비판적으로 추적해 보자는 거였죠. [정책] 섹션이 그런 노력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정리하자면 과학뒤켠이 선보이고자 하는 새로운 관점이라는 것은, 과학기술에서 가려진 것들을 조명하면서 그것들이 가려지게 하는 동력을 다양한 방법론을 통해 추적해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정책] 섹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원래 이 섹션은 Short Policy Review와 Long Policy Review로 양식이 정해져 있었지만 3호부터는 이게 사라졌어요. 이전에는 정말 정책 보고서 비평이라는 느낌이라면 그 이후에는 좀 더 짧고 일상적인 스타일의 글이 [정책] 섹션에 실리게 된 것 같은데 이유가 특별히 있었나요?

딱히 이유는 없었어요. 그런데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는 것 같긴 해요. 정책 보고서를 비평한다는 게 조금 부담스럽기는 했을 것 같아요. 이게 실명이다 보니……. (웃음) 그럼에도 우리가 이런 포맷을 유지한 것은 그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보고서들이 그냥 개별적인 문서로 떠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계속 회자가 되고 비판이 되어야 그 생명이 길어지는 거거든요. 그래서 뒤켠 같은 간행물을 통해서 정책 보고서를 공론화시키는 작업을 하고자 했어요. 한 번 보고 잊히게 되는 보고서들이 너무 많은 게 정책 연구의 현재이니까, 이걸 바꿔야 하지 않을까? 근데 당시에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익명으로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요즘은 ‘부캐’가 유행이니까. 아무래도 학생 입장에서는 실명으로 공식적인 보고서를 비평하는 게 쉽지 않을 수 있고, 그러니까 비평가로서의 부캐를 만들어서 해보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에야 드네요.

앞으로 가야 할 길

‘정기’간행물로서의 뒤켠을 유지하는 데에 올해 유독 큰 변수가 많았어요. 사람들이 점점 바빠지고, 다양해지고, 코로나로 인한 영향도 있고……. 그래서 이번 10호는 유난히 새 시도가 많았어요. 그 중 하나가 ‘국제화’라는 목표인데요, 한편으로는 아까 한국어로 글을 쓸 수 있는 플랫폼이라는 말을 해 주셔서, 어떻게 하면 한국의 과학기술정책 잡지라는 기존의 정체성과 새로운 필진 및 독자층의 수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요?

이거는 앞으로의 편집진 여러분이 만들어나가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팬으로서 저의 생각은……. 언어 문제는 사실 초창기부터 있었어요. 소위 국제화라는 이름 아래 많은 활동이 영어로 이루어지고 있잖아요. KAIST만 해도 논문 작성이나 수업이 모두 영어로 이루어지고. 그런데 그런 것이 과연 바람직하기만 한 것인가 비판적으로 바라볼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 공부하면서 한국어로 사고하고 글을 쓸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게 조금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리고 초창기에는 한국의 과학기술정책 커뮤니티에 기여하고자 한다는 목표 의식도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저희가 선택한 방법은 인터넷에 한글과 영문 버전을 둘 다 올리되 인쇄는 한국어로 하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외국인 학생들도 STP에 관심을 더 가지게 되었고, 이런 상황들을 고려할 때 정답이랄 만한 것은 없는 것 같아요. 다만 STP 커뮤니티 내에서 과학뒤켠의 목적을 설정하기 위한 꾸준한 대화가 필요하겠죠.

STP는 과학기술학에서의 성과를 과학뒤켠뿐만 아니라 다양한 창구를 통해 학계 내외의 독자들과 소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럼 STP라는 학과가 이런 노력을 하는 것이 어떤 의의를 갖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사실 과학기술정책 혹은 과학기술학이 낯선 분야라고 느끼실 분들도 많을 텐데요.

첫째는 우리가 대학원에서 배우듯, 과학기술정책이 과학기술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과학기술을 우리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면서 살고 있고, 우리의 세금이 여러 과학기술 분야에 투자되고, 과학기술이 어떻게 발전하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방식이나 사회의 운영 방식이 달라지기도 하고. 그러므로 STP에서 사회와 이렇게 소통하려고 하는 노력은 이런 정책의 현장에 전문가들뿐만 아니라 다양한 이익당사자를 초대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과학기술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냐는 질문이 소수 전문가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토론해야 하는 질문임을 계속해서 환기하는 노력인거죠. 그래서 정책의 대중화라고 해야 할까요? 이런 활동들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한편으로는 그 과정에서 과학기술정책 커뮤니티도 동시에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정기간행물을 통해서든 다른 방식을 통해서든 사회와 소통을 하려는 노력을 통해 과학기술정책이 중요하고 매력적인 학문임을 사람들에게 알림으로써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끌어들일 수 있을 거에요. 그렇게 해서 다양한 사람들이 이 커뮤니티에 들어올 때 더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될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고민하는 방향이 더 풍부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무리하면서 드리고 싶은 질문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좀 추상적이지만 현재 학자로서, 그리고 또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가지고 계신 가장 큰 문제의식은 무엇인가요?

음, 과학기술정책을 논할 때 크게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과학기술의 밝은 장밋빛 미래를 그리면서 어떻게 하면 빠르게 선진국을 추격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학자들이 있고, 반면에 과학기술을 비판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죠. 과학기술이 어떻게 진보의 방향이 아니라 폭력에 중첩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는지. 근데 저는 비판하는 것과 비평하는 것을 넘어서, 어떻게 하면 건설적인 발전 방향을 가져갈 수 있을지를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정책을 연구하는 사람이자 정책에 관심이 있는 사람으로서 얼마나 정책 현장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비판적인 입장으로 보면서, 동시에 어떻게 실천적인 행위를 할 수 있는지, 학자로서의 거리감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그 거리감을 어떻게 ‘밀당’을 하면서 학자이자 연구자이자 시민으로서 지낼 수 있는지.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제 STP가 막 10주년을 넘기고 박사 졸업생들을 활발하게 배출하기 시작한 단계에 와 있습니다. 초창기 졸업생이자 학계에 남기로 선택한 선배로서 이 공부를 하기로 한 후배들에게 하고 싶으신 조언이 있다면?

새로운 분야이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을 무서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어떤 새로운 방법론을 취한다든가 새로운 접근법을 취한다든가 새로운 주제를 들고 오는 것에 대해서 망설임이 없었으면 좋겠고. 그것이 기존의 학문적 관습과 대치가 된다고 하더라도 결국 연구라는 건 새로운 길을 창조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실험적인 것들을 해 봤으면 좋겠고. 그 과정에서 과학기술정책을 사유하는 본인만의 색깔을 찾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대학원 생활도 힘들지만 대학원 밖의 생활도 힘드니 있을 때 잘 즐겼으면 좋겠어요. (웃음)

<그림 3> 1호의 편집진들

5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과학뒤켠의 목표는 여전하다.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이 과학의 뒤켠에 대해 궁금해하고, 찾아보고, 토론하게 하는 것. 그 ‘초심’을 확인하면서, 또 앞으로 더 성장해나갈 과학뒤켠의 모습을 상상해보면서 인터뷰를 마쳤다. 마지막에 교수님은 과학뒤켠의 시작을 함께해 준 1호의 편집진들께 감사를 전한다는 말씀을 덧붙여 달라고 당부하셨다. 무엇이든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을 진하게 느낄 수 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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