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애인의, 비장애인을 위한, 비장애인에 의한 ‘접근성’? – 드라마 속 비장애 중심적 상상력

안희제
비마이너 칼럼니스트
dheejeh@naver.com

[사진1] 드라마 스타트업 포스터. 뒤로 엷은 구름이 있는 파란 하늘이 보이는 나무 계단에 주요 인물들이 앉거나 서 있다. 남주혁, 강한나는 앉아서 전면을, 배수지, 김선호는 계단 옆 난간에 기대어 전면을 응시한다. 이들 아래에는 tvN 토일드라마 START-UP 스타트-업이 화사한 색채로 적혀 있고, 배우들의 이름 또한 보라색, 주황색, 초록색, 노란색으로 적혀 있다. 10월 17일 tvN 첫 방송, 매주 (토일) 밤 9시 방송. 하늘에는 ‘반짝일 우리들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이라고 적혀 있고,  그 위로는 CJ ENM, 연출 오충환, 극본 박혜련, 기획 tvN 스튜디오드래곤, 제작 하이스토리라고 적혀 있다. 

장애와 기술 발전의 관계를 고민하다 보면 tvN 드라마 <스타트업>[1]을 떠올리게 된다. 이 드라마에서 ‘삼산텍’이라는 스타트업을 운영하는 주인공들은 인공지능과 화면인식 기술을 결합하여 시각장애인을 보조하는 애플리케이션 ‘눈길’을 개발한다. 나에게는 이게 드라마를 보는 내내 거슬렸는데, 그 이유는 여기에 장애와 기술에 대한 한국 대중매체의 태도가 집약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눈길’은 천재 공학도 남도산(남주혁)이 아이디어를 내서 만들어진 애플리케이션으로, 카메라에 보이는 대상들을 인식해서 음성으로 설명해준다. 실제로 TTS(Text to Speech, 문자 음성 합성) 혹은 OCR(Optical Character Reader, 화면 문자 인식)이라고 불리는 기능은 이미 많은 스마트폰에서도 지원하고 있으며, 구글 독스(Google Docs) 등에서도 사용할 수 있다. 이는 각각 화면에 있는 글자를 인식하여 읽어 주거나, 그림/사진에서 글자를 인식하는 기술이다. 글자뿐 아니라,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올리면 자동으로 나무, 인물, 음식 등을 인식하여 대체 텍스트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드라마에서는 이런 기능들의 정확도가 상당히 높아진 것을 ‘눈길’로 보여주고 있었다. [2]

그렇다면 ‘기적적인 치료’도 아닌 이 애플리케이션이 드라마 속에서 대체 어떻게 다뤄지기에 나는 드라마를 보는 내내 속이 거북했을까? 비단 내가 가진 크론병 때문만은 아니니, 이제 앞으로 그 이유를 설명하려 한다. 

“딱한 눈”

도산은 자신이 좋아하는 서달미(배수지)의 할머니 최원덕(김해숙)이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 그는 화면인식 기술을 활용하여 할머니의 일상을 더 낫게 만들어주고 싶어서 ‘눈길’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이는 익숙하면서 진부한 설정인데, 영화나 드라마와 같은 미디어에서는 오랫동안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 문제가 가까워지는 계기를 본인이 장애인이 되거나, 본인과 가까운 사람이 장애인이 되는 것으로 그려 왔기 때문이다. ‘장애 인식 개선 교육’이나 ‘장애 이해 교육’ 등에서도 ‘당신(혹은 당신의 가족)도 장애인이 될 수 있다’라는 방식으로 비장애인들을 설득하는 전략을 사용하는 건 그것이 가장 익숙한 서사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그런 사례가 많기도 하지만,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할머니를 떠올리는 도산의 태도다.

(도산) 눈이 많이 안 좋으세요?

(원덕) 아직 괜찮아, 잘 보여. 관리만 잘하면 나빠지더라도 천천히 나빠진다더라.

(도산) 달미는 모르죠?

(원덕) 어 몰라. 그러니까 너도 모르는 척해.

(도산) 아니 어떻게 그래요. 달미가 나중에 알면 얼마나…

(원덕) 울겠지, 왜 말 안 했느냐고 원망하며 울겠지. 그리고 너처럼 날 딱하게 보겠지.

(도산) 할머니, 저는…

(원덕) 난 그 딱한 눈이 싫다. 그 눈을 보면 진짜 내가 큰일 난 것 같아. 당장 세상의 모든 빛이 몽땅 사라지고, 일상이 송두리째 박살날 것 같고 그래. 그런다고 내 눈이 좋아질 리도 없는데 말이지. 그 딱한 눈은 너 하나만 하자, 어? 더는 그런 눈 보태기 싫어.

7회, 06:15~07:55

할머니는 도산에게 절대로 자신의 손녀인 달미에게 자신의 시력 이야기를 꺼내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 이유는, 할머니의 표현을 빌리자면, “딱한 눈” 때문이다. 그는 달미가 이를 알게 되면 달미 또한 자신을 “딱한 눈”으로 바라보게 될 것이며, 바로 그러한 시선이 자신의 일상을 무너뜨릴 것이니까. 그는 시력 상실보다 주변의 시선을 걱정했다.

(뜨개질하던 도산은 눈을 감고 머릿속으로 생각한다.)

(원덕) 그 눈을 보면 진짜 내가 큰일 난 것 같아.

(도산) 큰일 났다 싶겠지.

(원덕) 일상이 송두리째 박살 날 거 같고 그래.

(도산) 겁이 많이 날 거고.

(원덕) 그런다고 내 눈이 좋아질 리도 없는데 말이지.

(도산) 눈이 좋아질 수 없다면 그 눈을 우리 기술로 대신해보면 어떨까?

7회, 69:00~70:05

도산은 대화가 끝나고 집에 가서 혼자 뜨개질을 하며 할머니와의 대화를 회상하는데, 놀랍게도 “딱한 눈”에 대한 내용은 거의 다 빼놓는다. 그의 고민은 오직 기술을 통한 개선이라는 치료 서사 일변도로 진행된다. 이 장면에서 눈을 감고 뜨개질하던 그는 실뭉치를 놓치는데, 도산이 뜨개질을 좋아하고 잘한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이 장면은 ‘상실’이나 ‘실패’로 그려진다. ‘뜨개질의 실패’와 ‘시력 상실’을 등치 시키는 연출은 이 드라마가 장애에 상실과 실패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그러니 ‘눈길’의 시작은 할머니의 시력 상실이 아니라, 할머니의 시력 상실에 대한 도산의 연민이었다. 눈을 감아서 일시적으로 ‘장애 체험’을 하며 자신이 당사자의 고통을 잘 알게 된다고 믿게 되는, 그래서 당사자가 거절한 “딱한 눈”을 하고 그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넘겨짚는 그런 연민 말이다.

‘장애 워싱’과 박찬호

주인공들이 하는 일은 스타트업이니 수익성은 중요하지만, 문제는 투자를 따내는 방식이었다. 삼산텍의 멘토이자 유능한 투자자인 한지평(김선호)은 이 사업이 수익성은 없고 의미밖에 없는 사업이라고 일갈한다. 그러면서 건넨 제안이 이미지 쇄신이 필요한 기업을 공략하는 것이었다.

(달미) CSR팀 리스트네요?

(지평) 광고도 못 하고 유료 서비스도 못 하잖습니까. 스스로 매출을 낼 방법이 없는데 어쩌겠어요? 대기업에 의지할 수밖에. 올해 CSR 예산이 넉넉한 기업들로 리스트업 해 봤어요. 자, 봐 봐요. 파란색은 장애인 복지에 관심이 있을 기업들이고, 빨간색은 오너 리스크니 탈세니 구설수 때문에 이미지 회생 프로젝트가 필요한 기업들이에요. [달미가 호응한다] 그 점을 잘 공략하면 아마 얘기가 좀 쉽게 풀릴 거예요.

(달미) 감사합니다, 팀장님. [부드러운 음악]

(지평) 뭐가요?

(달미) 맨날 브레이크만 거시더니 이번엔 액셀을 세게 밟아 주시네요.

8회, 22:20~23:07

물론 판타지 드라마가 아니니 현실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었겠지만, 현실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다룰지, 공허하게 다룰지는 연출의 역량이고 선택이다. 이는 인권, 특히 장애인권이 ‘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에 이용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뒤에서는 장애인 의무 고용 기준을 어겨서 벌금을 가장 많이 내고[3] 공장에서 발생한 문제로 시각장애인이 된 사람들은 돈으로 매수하거나 무시하면서[4], 앞에서는 시각장애인 안내견 사업을 벌이고[5] (범용성도 떨어지는) 시각장애인용 기계인 ‘릴루미노’를 만들어 홍보하는 삼성과 같은 사례는 그야말로 기만적이다.

꼭 삼성이 아니더라도 시장에서 인권은 종종 이미지 개선을 위한 장식으로 활용된다. 멋진 여성들을 내세운 광고로 많은 호응을 얻은 나이키는 사실 2018년까지도 성별 임금 격차를 해소하라는 취지로 여성 노동자들에게 소송을 당했다.[6] 이런 방식의 기만이 ‘핑크 워싱(pink washing)’이라고 불린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스타트업>에서 지평이 삼산텍에 권한 것은 ‘장애 워싱’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삼산텍의 대표인 서달미는 ‘장애인을 위한’ 사업을 한다면서 여기에 어떠한 이견도 제시하지 않았다. 드라마는 이런 현실을 비판적으로 그려낼 의지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권을 장식품으로 만드는 것은 기존의 비장애인 중심적 사회를 그대로 유지한다. 접근성을 ‘챙기는’ 기업이 ‘착한’ 기업으로 칭찬받고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은 접근성이 당연한 권리로 주어지지 않는 현실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접근성이 주어져야 한다고 말하는 대신, 접근성을 특정 회사나 개인의 성과로 환원하는 것은 결국 접근성을 사적인 것, 단순한 ‘상품’으로 여기게 한다.

이처럼 공공성을 사적인 층위로 환원하는 것은 ‘눈길’의 개발과 관련한 결정적 순간마다 등장한다. 이 사업에 대한 지평의 태도가 극적으로 바뀌는 지점은 원덕의 시력 상실을 알게 되는 시점과 일치한다. 그는 어린 시절에 자신을 도와주었던 원덕이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고는 그에게 달려가 울며 사업의 필요성을 재고하게 된다. 지평의 태도 변화가 원덕과의 사적인 인연에서 비롯되었다면, 다음에는 박찬호가 (맞다, ‘그’ 박찬호.) 도산과의 사적인 인연을 계기로 뉴스에까지 나와서 ‘눈길’을 홍보해준다. 현실에서는 배리어프리(barrier-free)를 내걸고 만들어진 애플리케이션 중 꾸준히 유지되는 것조차 흔치 않다. ‘배리어프리’라고 앱스토어에 검색하면 이전에는 검색 결과에 나오던 앱이 이제는 나오지 않는 경우도 많고, 대체로 사용자 수나 평가도 매우 적은 편이다. 그런데 뉴스 홍보 한 번으로 그렇게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다는 것은 당연히 어불성설이다.

박찬호가 등장한 것은 삼산텍이 애플리케이션을 홍보할 방법을 못 찾았기 때문인데, 그들이 시각장애인 당사자 단체나 커뮤니티에 연락하는 장면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달리 말해, 이 드라마를 쓴 작가(박혜련)가 당사자 단체보다 먼저 떠올린 게 박찬호라는 뜻이다. 게다가 그들은 당사자 딱 한 명의 테스트만을 거쳤다. 정말 ‘눈길’을 제대로 만들고 홍보하고 싶었다면 눈덩이표집(snowball sampling)[7]을 사용해서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연락해서 구체적인 피드백을 받고 알렸어야 했다.

“갚지 못할 빚”

(도산) 눈이.. 많이 안 좋아지셨어요?

(원덕) 야, 너 또 딱한 눈으로 나 보고 있지, 지금, 어? 쯧.

[도산과 달미가 웃는다]

(도산) 아니에요, 아니에요, 할머니. 너무 좋아 보이세요. 앉으세요.

(원덕) 응, 그래. [잔잔한 음악] 도산이 니 덕에 편해. 이 눈길 없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어. 의지가 많이 돼.

[도산과 달미의 약간 그렁그렁한 눈을 보여준다]

(아현) 그러게, 눈길 성능이 너무 좋아서 내가 땡땡이를 못 쳐요. 눈 좀 붙이려 그러면 ‘졸고 있습니다’ 이렇게 다 일러댄다니까?

(원덕) 그러게? 용해! [함께 웃는다. 그 와중에 도산의 눈에는 약간 붉은 빛이 돈다] 눈길 만들어 줘서 정말 고맙다. 갚지 못할 빚을 졌어. 이게 무슨 이냐 그래, 응?[8]

(도산) [도산이 계속 울먹임을 참으며 원덕의 손을 잡는다] 더 많이 누리셔야 돼요.

(달미) 할머니, 도산이가 눈길 엔지니어랑 엄청 친하거든? 그러니까 불편한 거 있으면 도산이한테 다 얘기해!

(도산) 저한테 말씀만 해 주시면 제가 바로바로 업데이트해 달라고 할게요.

16회, 13:06~14:30

어쨌든 드라마에서 ‘눈길’ 프로젝트는 상당히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원덕은 ‘눈길’ 덕에 예전처럼 핫도그 가게를 차릴 수 있게 되었다. 도산과 달미는 가게에 찾아가서 달미의 엄마 아현(송선미)과 할머니 원덕을 만난다. 할머니는 눈길을 지금까지 잘 쓰고 있다며 고맙다고 말한다. 이제 삼산텍의 후신(後身)인 청명컴퍼니의 관리 대상이 아닌 ‘눈길’에 대해 달미는 ‘도산이가 개발자랑 친하니 얘한테 피드백 주면 빠르게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개발자와 가까운 사람이 있으면 물론 편리하겠지만, 이는 앞서 꾸준히 등장한 ‘사적인 인연’의 문제를 반복하고 있다. 남도산이 ‘눈길’을 기획한 계기, 한지평이 사업에 설득된 과정도, 사업 홍보를 성공으로 이끈 것도 모두 사적인 인연이다. 바로 앞 장면에서 원덕이 도산에게 졌다는 “갚지 못할 빚”은 드라마 안에서 주로 지평이 사실상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것이나 다름없는 원덕에 대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다. 똑같은 표현을 여기서 원덕이 도산에게 씀으로써, ‘눈길’은 사적인 인연으로 다시금 환원된다. 사업의 목표는 ‘공익’으로 설정되어 있지만, 모든 것이 과할 정도로 오직 사적인 틀에서만 이뤄졌다. 게다가 AS에서도 사적인 경로가 우선 튀어나오니, 그야말로 이 드라마에서 ‘눈길’이라는 접근성 기술의 기승전결은 통째로 사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착한 기업’이라는 환상

[사진2] 광고의 한 장면. 셔츠에 조끼를 입은 한 남성이 주황색 프레임의 자동차 안에 희미하게 보이고, 화면 중앙에는 ‘우리의 기술로 30만 청각장애인이 가지게 될 30만 개의 새로운 꿈을’이라고 적혀 있다.[9]

(달미) 에? 도어 록 어쩌고?

(원덕) 아, 고장이 나서 바꿨어. 아, 야, 너도 너도 이거 하나 갖고 다녀.

(달미) 음, 열쇠 귀찮은데. 왜 굳이 시대를 역행해?

(원덕) 응?

(달미) 기술이 훨씬 좋고 편한데. 그냥 도어 록 다시 달자, 할머니.

(원덕) 할미 기술 싫어. 노인네 따만 시키지, 뭐.

(달미) 기술이 왜 싫어. 기술이 얼마나 편한지 보여 줄까?

(원덕) 뭐 해?

(달미) 우리 삼산텍이 드디어 서비스를 시작했거든

(원덕) 뭔 서비스?

(달미) 눈길이라는 앱인데, 시각 장애인용 어플이야.

(원덕) 가, 갑자기 시각 장애인은 왜? 인공지능 인가 뭔가 한다더니.

(달미) 인공 지능 이용한 앱 맞아. 도산이 아이디어인데.

(원덕) [차분한 음악] 도산이 아이디어라고?

(달미) 응. 음성이랑 이미지 인식을 이용해서 그분들 눈을 대신해 준다. 뭐, 이런 서비스지.

8회, 41:35~42:53

원덕은 터치 방식으로 된 전자자물쇠를 버리고 아날로그형 열쇠 방식으로 문 잠금장치를 바꾼다. 달미는 거기에 대고 좋은 기술을 두고 왜 시대를 역행하느냐면서, 환경을 바꾼 할머니에게 ‘눈길’을 보여주고, 할머니는 눈길로 ‘성경’을 읽으며 감동한다. 평소 그가 천주교 신자라는 설정이 있긴 했으나, 읽을 글로는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다. 여기서 굳이 성경을 선택한 연출을 통해 기술적 혁신은 ‘구원’이라는 종교적 의미로까지 확장된다.

특히 달미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인력감축 솔루션을 내놓은 ‘인재컴퍼니’와의 경쟁에서, 자신들은 혁신의 속도만을 강조하지 않고 그 빠른 혁신 안에서 다칠 수 있는 사람들, 힘들어질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술이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눈길’을 소개한다. 여기서 정말 난감하게도, 인력감축을 목표로 하는 인재컴퍼니 사람들은 인성에도 문제가 있고, 인재컴퍼니의 CEO 원인재(강한나)는 극의 후반부가 되기 전까지는 계속 달미에게 훼방을 놓는 ‘나쁜 언니’였다. 드라마는 ‘나쁜 기업’과 ‘착한 기업’이라는 대조에서 기업의 성격과 개인의 인격을 동일시함으로써 다시금 공(公)을 사(私)로 환원하는 동시에 ‘착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딱한 눈”의 폭력은 싹 가려 버린다.

‘눈길’을 사용하더라도 할머니는 여전히 터치스크린으로 된 도어락을 그대로 누르기 어렵다. 각 번호가 있는 위치 옆에 촉각적 표시를 해 둬야 하지만, 드라마에서 환경의 변화는 아예 등장하지 않거나, 시대를 역행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무엇보다도, 개인에게만 적응을 요구하는 것은 적응하지 못한 개인이 사회에서 탈락해도 괜찮다고 전제하고 있기도 하다. 나이와 같은 인구통계학적 요소나 소득, 재산과 같은 경제적 요소, 그리고 통상적인 건물의 구조나 거주 환경과 같은 한 사회 안의 문화적 요소에 따라 새로운 기술에 대한 개인의 적응에는 다양한 한계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신기술과 그에 대한 적응을 접근성의 해답으로 제시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배제되는 사람들은 묵인하겠다는 태도일 뿐이다.

여기까지 나온 이야기를 모두 종합하면 우리는 총체적인 비장애 중심적 세계관을 발견할 수 있다. 어느 착한 비장애인의 (당사자가 바라지 않는) ‘딱한 눈물’이 유능한 비장애인의 ‘미안한 눈물’로 이어지고, 열심히 기술을 개발해서 할머니를 도와주겠다는 착한 비장애인 손녀의 ‘다짐의 눈물’로 이어지는 이 모든 과정은 ‘비장애 중심적’이나 ‘시혜적’이라는 말을 빼고는 도무지 묘사할 수가 없다. ‘도와주기보다 딱한 시선부터 거두어라’라고 말하던 할머니가 막상 기술을 접하자마자 너무 고마워하며 잘 쓰는 모습은 그야말로 화룡점정이다. ‘도움이 필요한 당신을 우리가 구원합니다’라는 대기업들의 메시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이제는 ‘도움이 필요 없다고요? 당신은 틀렸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걸까? 이쯤 되면 <스타트업>은 ‘착한 기업’이라는 환상을 극한까지 몰아붙인 결과물로 보일 지경이다.

나가며

한국에서 접근성 관련 사업이 오래 이어진 사례는 정말 드물다. 얼마 전에 접근성 조사에 조언을 구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아서 대화를 나누었는데, 접근성 사업으로 꽤 성공했던 한 스타트업이 이제는 연락도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참여한 다른 사업을 주도한 소셜벤처 또한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이런 상황에서 박찬호가 개연성인 말도 안 되는 서사가 실제로 접근성 사업에 관련된 당사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제작진은 털끝만큼이라도 생각했을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좋은 기술이라고 할지라도, 당사자의 의사를 일방적으로 거스르는 비장애인의 연민에 근거해서는 안 된다. 이런 구도에서 문제 해결의 ‘주체’로 표상되는 것은 오직 비장애인이다. 지금과 같은 서사에서 접근성은 비장애인의, 비장애인에 의한, 비장애인을 위한 장식, 즉 ‘장애 워싱’이 될 위험이 크다.

‘눈길’은 기술의 스펙터클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따뜻함’을 부여하고, 등장인물들의 사랑을 엮어내는 지극히 사적이고 효율적인 소재다. 물론 사적인 계기로 활동을 시작하는 사람은 많다. 나에게도 나의 질병, 그리고 공동체에서 사귄 친구들은 활동을 이어 나가는 큰 동력이다. 하지만 활동의 내용은 반드시 장애인 차별 해소와 보편적 접근성 개선, 정책적 개입을 통한 기술의 공공성 확보라는 방향으로 확장되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술은 그것을 누릴 수 있는 극소수의 운 좋거나 돈 많은 사람만을 위한 특권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처럼 접근성이라는 공적인 문제를 사적인 요소로 환원하는 것은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스타트업’이 가지는 위상과도 관련된다. 한국에서 스타트업은 ‘밀레니얼 세대’에게 단지 취업난 속의 새로운 선택지를 넘어, “‘청년’의 잠재성이 발현되는 이상적인 개척지로 합리화”되고 있다. 여기서 고용 불안정과 같은 사회문제의 해결은 국가나 사회와 같은 공적인 주체가 아니라, 스타트업을 경영하는 ‘청년’이라는 사적인 주체의 몫이 된다.[10] 청년들의 스타트업과 경쟁, 그리고 시장에서의 성공을 중심축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한국 드라마라는 점에서, 이미 <스타트업>이 접근성을 어떻게 다룰지는 예고되어 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우리가 진정 착수해야 할 프로젝트(start-up)의 구체적인 형태는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프로젝트가 비장애인의 연민이나 기업의 기만, 사적인 감정에 의해 추동되지 않고, 누구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바탕으로, 무엇보다도 공공성을 추구하며 발전해야 한다는 것일 테다. 


[1] 배수지, 남주혁, 김선호, 강한나 주연, 오충환 연출, 박혜련 극본, 기획 tvN, 스튜디오 드래곤, 제작 하이스토리.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있다. 이 글에서 인용하는 대본은 넷플릭스의 청각장애인용 자막을 받아 적은 것이다.

[2]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파워포인트나 페이스북과 같은 프로그램에 내장된 기술은 사진을 올렸을 때 ‘사람 N명 이상’ 정도로 읽어주는 반면, 드라마에서 나오는 기술은 ‘20대 중반으로 보이는 여성 2명이 3미터 앞에 있다’와 같이 훨씬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수준이다. 실제로 이런 기술이 현재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아직 일상에서 접하기는 어렵다.

[3] 국민일보(2019. 9. 25), 「대기업, 장애인 고용 대신 부담금으로 때우겠다?」.

[4] 한겨레(2019. 6. 22), 「삼성의 ’10억 회유’ 뿌리치고 산재 인정까지… 혜경씨 모녀의 ‘7전8기’」.

[5] 디지털타임스(2018. 12. 19), 「삼성화재, 시각장애 안내견 기증」.

[6] The Guardian(2018. 8. 10), 「Nike hit with lawsuit from four women who allege gender discrimination」.

[7] 처음에는 소규모의 응답자 집단으로 시작하여 다음에는 이 응답자들을 통해 비슷한 속성을 가진 다른 사람들을 소개하도록 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표집방법. ⸢눈덩이표집⸥,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520373&cid=42121&categoryId=42121

[8] 강조는 인용자.

[9] 「현대자동차그룹(HYUNDAI)」, https://youtu.be/0dshwSuoa6s\

[10] 조문영 (2018), 「청년자본의 유통과 밀레니얼 세대–하기: 젊은 소셜벤처 창업자들에 관한 문화기술지」, 『한국문화인류학』, 제51권 제3호, pp. 309-364.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WordPress.com 제공.

위로 ↑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