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문과생이 과학 한다는 것

심지수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석사과정
index@kaist.ac.kr

필자는 진성 문과생이‘었’다. 얼마나 진성이었던지 반(反)이과생이라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당시 멋모르고 입학한 필자의 모교는 과학고 전환 사업 후보 학교이자, 교육부 선정 수학/과학 교과교실제 중점학교였다.[1] 이 말은 학교 건물 한 동을 과학실 4개(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실)와 수학실 4개(가우스, 오일러, 피타고라스…)가 통째로, 위엄 넘치게 차지하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아니나 다를까, 수시전형 지원을 고려하고 있었던 문과 지망생들에게는 입학하자마자 수학경시대회, 과학골든벨대회, 과학의날 물로켓 대회에 포위당한 채 하루하루 위기의식을 느껴가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무언가 대책이 필요했다. 이를 계기로 1학년 문과 지망생 10인이 결집하여 무슨 화백회의 같은 게 성사되었고, 열띤 논의 끝에 당시 교내 대외활동의 핵심이었던 과학부의 4부 체계(물, 화, 생, 지)와 대등하게 문과생들의 동아리(인문, 사회, 경제, 사범)를 운영해달라는 <인문·사회 심화부(인사심)> 설립 기획안을 학교에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발족한 <인사심>은 꽤 흥하였고, 수많은 인문사회 관련 비교과 활동이 생겨났으며 이듬해 인문사회부 교무실이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필자는 이때 회장으로 ‘추대’되어 본의 아니게 마치 반이과 물결의 선봉장 같은 쓸데없이 웅장한 이미지를 얻은 채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게 되었고, 이 일화를 자기소개서에 써서 대학에 합격하였다.

모교의 특수성을 차치하더라도, 사회 전반적으로 이공계를 선호하는 현상이 있다는 것은 당시에도 잘 느껴졌다. 그런 시류에 맞서 <인사심>을 성공시킨 경험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자랑스러운 일이었고, 문과생으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공고히 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성공의 자랑스러움만큼이나, 그 성공의 촉매제였던 이공계 선호 현상의 영향 또한 막대하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학부생이 된 후에도 진로와 취업 이야기가 나올 때면 수백 가지 형태의 이공학 이야기가 귓가를 맴돌았다. 하지만 전공 책에 나오는 숫자라고는 연도랑 페이지 번호, 챕터 번호밖에 없는데! 역시 인생 편하게 살려면 수학, 과학을 공부하는 게 좋을까? 요즘 뜨고 있는 코딩이라도 배워야 하나? 하지만 필자는 철저한 배제 노선을 택했다. 학부 첫 번째 전공은 사회계열(정치외교학)이었고, 두 번째는 인문계열(불어불문학)로 결정했다. 이쯤 되니 돌이키기에는 이미 너무 멀어진 느낌이었다. 무엇보다도 수학, 과학, 공학이란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는 느낌을 강하게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들을 건드릴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재능 있는 분들이 수학 과학 연구하시라 하고, 나는 무소의 뿔처럼 Liberal arts의 길을 간다!’라는 일종의 사명의식과 함께, 본인의 학문적 정체성이란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결사옹위에 기초하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정도로 필자는 진성 문과생이‘었’다. 그러니까… 올 3월 필자가 모두(본인 포함)의 예상을 깨고 카이스트에 입학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림 1> 카이스트 합격 소식을 들은 <인사심> 친구들의 반응

문과의 아이콘으로 여겨졌던 필자의 카이스트 합격 소식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나면 돌아오는 반응은 하나같이 “네가 거길 왜 가?”였다. 합격 발표 후 한참 동안은 아래와 같은 환장할 대화들 속에 파묻혀 허우적거리며 지냈다. 여기서 문제는 필자 본인에게도 (직접 지원서 넣고 합격까지 했으면서) 이런 현실이 굉장히 낯설었다는 점이다.

― 저기 뭐냐 그 서울에 있는 경영대학원 가는 거지?

― 아니 나 대전 본캠이야.

― 뭐라고??? 너는 갑자기 거길 어떻게 가는 거야?!

― 어… 그러게 나 이 학교 어떻게 가는 거지…?

이 당혹스러운 감정은 수강신청하는 시기까지 이어졌다. 과학기술학, Biomedical Research, Disaster Science… 우와… 이토록 생경한 단어들이 내 과목선택 화면에 떠 있다니. 수업을 같이 듣는 사람들은 거의 다 이과 출신일 테니 배경지식 측면에서 출발선이 다를 터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름대로 이 좁은 길을 선택한 근거를 스스로 정립할 필요가 있었다. 나는 왜 갑자기 과학기술을 배우겠다고 이곳에 뛰어든 걸까? 혹시 이미 따라갈 수 없는 영역에 감히 발을 들여버린 건 아닐까? 그래서 나의 첫 학기는 이러한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실마리를 얻기 위해 나름대로 분투하던 나날의 연속이었다. 어떻게든 한 학기를 무사히 마친 지금, 그동안의 기록과 생각을 정리하면서 이러한 개인적 경험이 더욱 넓은 범위로도 뻗어 나갈 수 있을지 가늠해보자는 것이 본 기고의 취지임을 밝힌다.

앞에서는 문과생이‘었’다고 강조하였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장 ‘지금부터 나는 이과생!’이라고 선언할 생각은 없다. 다만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이제부터 더 이상 ‘나는 문과생!’이라고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카이스트에서 감히 과학을 공부하려는 나는 이제부터 정식으로 이공학도인가, 아니면 그냥 카이스트에 있는 도로 문과생인가? 어쩌면 둘 다 아니지 않나? 이러한 존재론적 의문을 풀어나가는 일련의 과정이란 곧 새로운 지평의 입구에서 공포하는 출사표이자, 지금까지 굳건하게 붙들고 있던 아이덴티티의 형태를 허물고 다시 새롭게 빚어 올리려는 시도이다. 인문학과 이공학 사이를 가로막는 이 벽은 얼마나 높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벽을 넘나들 수 있는지에 대하여 이제부터 함께 규명해보고자 한다.

문과생이 과학하기는 많이 어렵다

앞으로 이어질 논의의 범위를 전략적으로 좁혀보도록 하겠다. 그러니까,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서 이골이 날 정도로 들어온 “사실 문과와 이과의 경계는 나눌 수 없고…” 하는 얘기는 여기서 안 하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해온 건 외려 문/이과 구분이 너무나도 철저했던 ‘분단의 현장’이었지 않은가. 따라서 이런 현실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문과생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사실상 문/이과가 양분되어 있다고 상정하는 편이 더 적절하지 않겠느냐는 판단이다.

그동안의 교육과정 아래에서는 고등학교 2학년에 진학하는 순간부터 문/이과를 가로막는 거대 장벽이 나타나곤 했다. 사실 장벽이 높기는 해도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주 불가능하지는 않다. 하지만 일련의 만만치 않은 과정을 거쳐야 하며, 이 과정은 문과 측과 이과 측을 서로 비교했을 때 불균형적인 양상을 띤다. 크게 두 가지 방식을 예로 들 수 있는데, 첫 번째는 본진에 머무르면서 다른 쪽의 지식을 교양 차원으로 접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아예 상대편으로 전향하는 방법이다.

사실 첫 번째 경우가 학생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발전되기는 힘들다. 고등학교 문과 반의 지구과학 수업이나 이과 반의 사회문화 수업을 생각해 보자. 문/이과 모두 상대편 과목을 의무적으로 듣지만, 집중해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할 동기는 없다. 대학 입장에서 볼 때도 기계공학과 학생을 선발할 때 사회문화 성적을 반영할 이유가 없고, 행정학과 지원자에게 지구과학 성적을 요구할 이유도 없다(만일 지구과학 성적을 반영한다는 대학이 진짜 있다면 입학원서비 수급에 크나큰 난항을 겪을 것이다). 대한민국 고등학생 특성상 입시에 들어가는 과목 따라가기도 상당히 바쁘므로 이런 ‘기타과목’들에 대한 집중을 기대하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 대학에 진학한 다음에는 어떨까? 핵심교양 등의 이름으로 상대편 과목 한두 개를 필수 수강하도록 하는 일부 대학을 제외하면 학부과정에서도 수업을 통해 상대편 지식을 제대로 습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 제대로 배우지 않았으므로, 대학에 들어와서도 웬만하면 타과 과목 수강을 피하게 되는 연쇄작용이 일어난다. 즉 대학교 과정에서도 문과생이 수업을 통해 이공학 지식을 향유하기는 상당히 어렵다.

한편 ‘장벽을 넘는’ 사례를 찾아보면 문과생이 컴퓨터공학 방면으로 이동하는 트렌드가 가장 두드러진다. 전과, 복수전공, 편입 등 직접적인 전환뿐 아니라 컴퓨터공학과 교양수업을 수강하는 등의 간접적인 접근 방식으로도 문과생의 유입은 증가하고 있다. 컴퓨터공학은 다른 이공학문에 비해 수학 과학 지식을 덜 요구하면서도 현재 취업 시장에서의 활용도가 가장 높으므로 문과생 입장에서 도전해볼 만하다고 인식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수학, 공학과는 거리가 먼 인문계열 학생 사이에서도 컴공 진입생이 많아지고 있다. 올해 2학기 서울대 컴공 복수전공자로 선발된 인원(17명) 중 경영대학, 인문대학 소속 학생이 29%(5명)를 차지했다. 같은 기간 고려대 컴퓨터과학과 이중전공생 중 인문계열 학생의 비중은 73%에 달했다.”
“서울대 컴공과 박모 씨(25)는 “3~4년 전만 해도 수업에 문과생은 1, 2명 있을까 말까였는데 요즘은 거의 절반이 타전공자고 그 중의 절반은 문과생”이라고 했다. 박씨는 “컴퓨터공학은 다른 공학에 비해 수학을 덜 쓰긴 하지만 어릴 때부터 코딩을 해왔던 애들을 따라가는 것이 문과생들에겐 어렵다”며 (이하 생략)” – 매일경제(2020. 12. 6)[2]

하지만 여전히 컴퓨터공학을 제외한, 수학 과학의 지식이 일정 수준 필요한 학문의 경우에는 교양으로라도 듣는 문과생을 찾기 힘들다. 물론 대학과정에서 문과생이 이공학문을 반드시 들어야 할 이유는 없고, 문과생이 과학기술 과목에 갖는 낯섦만큼이나 이과생이 인문사회 및 언어 과목에 갖는 낯섦도 상당할 것이다. 아래 그림에서 어느 쪽에 더 편안함을 느끼는지는 순전히 개인 차이이다. 수식만 보면 속이 안 좋아지는 사람(예를 들면 필자)이 있는 한편 죽어도 감성 담은 줄글이 안 써지는 사람도 있는 법이다.

<그림2> 같은 풍경을 바라보는 문과와 이과의 차이 (짤방)[3]

그러나 이와 같은 ‘장벽 사이의 양극화’ 현상이 바람직한가 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무엇보다도 우려되는 점은 감성 없는 이과생과 수학 못 하는 문과생이 받는 사회적 대우가 불균형적인 현실에 있다.

과학은 어떻게 문과생을 괴롭히는가?

사실 옆에 장벽이 있든 말든 문과생도 나름대로 울타리 안에서 잘만 지낼 수 있다면 별다른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문과생은 문과생이 된 바로 그 시점부터 장벽의 직간접적인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필자가 <인사심>을 창설하면서도 느꼈다고 했던, 사회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이공계 우대 현상이 그것이다. 우선 이 현상은 취업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데, 2021년 현재는 여러모로 이공계 졸업자 수요가 인문계 졸업자 수요에 비해 월등하게 많으므로 이공계열의 인기가 당연히 높다. 그런데 생각보다 이 흐름이 절대적이지 않다. 조선 시대 사농공상까지 안 갖고 오더라도, 시대 상황에 따라 문/이과의 진학 및 취업 양상과 이를 대하는 일반 인식은 큰 폭으로 요동쳐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불과 20년 전인 2001년 신문기사에서는 자연계열 수능 응시자 수가 32%나 감소했다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이과 기피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칼럼을 기고한 이장무 당시 서울대학교 공과대학장은 이러한 기피 현상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분석하고 있다.[4][5]

“첫째는 문과 출신 중심으로 편중된 우리 지도층의 구조다. 민간부문에서는 10대 그룹 임원의 절반 이상이 이공계 출신이지만 고급 공무원은 9%만이 이공계 출신이다. 둘째는 경제 위기의 여파로 생긴 고용불안 현상에 따라 어린 학생들이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 IMF 이후 우리나라 제조업의 전반적인 불황과 최근 벤처기업의 거품붕괴가 겹치면서 고급 기술인력의 실업증가가 보도되고 있다. 셋째 원인은 대학입시에서도 찾을 수 있다. 획일적이고 경직된 입시제도, 산업계의 수요와 학생의 선호도에 부응하지 못한 학과 정원관리, 인문계·자연계 교차지원 허용에 따른 부작용 등을 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대학의 자연계 학과들이 아직도 구태의연한 교과 내용과 방식으로 변화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도 반성해야 한다.”

이공계 출신 고위공무원 비율, 안정적인 직업을 선호하는 태도 등은 지금까지도 크게 변화하지 않았으나, 2001년에는 각 요인이 이공계 진학을 기피하게 만들었던 반면 현재는 이공계 진학을 선호하게 만들었다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조금 확장해보면, 현재 문과생들은 안정적인 직업을 위한 대안이 없어 공무원을 준비하며 인문계열 진학을 후회하는 느낌이 있지만 20년 전에는 공무원 임용을 바라보고 인문계열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수요가 상당했다는 것이다. 2021년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인문계열은 근세 이래로 전도유망했던 적이 없고 자연계열이 취업 시장에서 항상 우위를 점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생각보다 사회가 항상 그렇게 흘러가지는 않았다는 점을 밝혀둔다.

그렇다면 어찌 됐든 현재 흐름에서는 4차산업혁명 시대가 열렸다고도 하고, 그에 발맞추어 이공계 호황도 이어지고 있으니 이로써 사회적 이공계 우대 현상이 만연한 것이라고 결론 내린다면 충분할까? 그렇지 않다. 여기에는 중요한 지점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이공학이 그 자체로 막강한 정치적 권위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수학이나 과학, 기술에 대한 지식은 이성적이고 객관적이며 중립적이라는 명제에 반대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완전무결의 이미지를 입은 과학기술은 정치적 결정 과정에서도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예를 들어 정치인은 과학기술을 끌어옴으로써 과학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며 객관적인 지식이 자신의 편에 있다는 정당성을 확보하게 된다. 상대방은 다른 접근법에는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지만 ‘객관적 사실’이라고 들고 온 과학기술 지식에 감히 반박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이는 해당 입장을 관철하기 위해 지난한 논쟁을 펼치는 것보다 훨씬 더 가성비가 좋다.[6] 사실 문/이과 이슈 역시 이와 같은 정치 현상의 일환인데, 수학 과학 지식의 ‘딱 떨어지는’ 이미지가 결국 이를 공부하는 이과생들의 품격까지 올려주는 정치적 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항상 해석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열어두는 문과 학문에는 이런 치트키가 없다. 게다가 이과 지식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반응도 호의적이지 않은데, 왜 이게 그렇느냐고 용기 내서 물어보면 착한 사람은 “이건 너무 당연해서 설명할 게 없는데”라고 하고, 선을 좀 넘은 사람은 “이래서 문과는 안돼”라고 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장벽을 뛰어넘으려는 문과생의 흔치 않은 의지를 더욱 희박하게 만든다. 결국, 앞서 언급한 것처럼 특정 과목을 쉬워하거나 어려워하는 것은 개인적 특성의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수학 과학 잘 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똑똑한 사람 대우를, 문과생들은 수학 못 해서 도망친 사람 대우를 받게 된다. 이 완전무결적 지식(수학, 과학)의 강력한 정치적 권위는 해당 지식을 배우지 않은 문과생들에게 불리한 구조로 귀결되는 것이다. 문과생들은 본인의 취업이 어떻게든 마무리되는 순간까지 ‘나는 왜 수학을 못 해서 문과 와서 이 고생하나’ 하는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된다.

종합해보면 과학기술 지식의 우월화(prioritization) 현상에 의해 해당 지식을 함양하지 못한 문과생들은 여러 가지 사회적 불이익을 경험하고 있는데, 그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게 아니라 고등학교 때 이과 수학을 안 배운 데 따른 연쇄반응에 있었다. 해당 수학지식을 몰라도 이해할 수 있는 과학기술적 지식이 많으며, 혹여나 필요하다면 나중에 다시 익혀도 되는 일인데 말이다. 오호 통재라. 이렇게 문과생 모두가 어린 시절에 내린 선택의 대가로 지금까지도 이공계 트라우마에 시달려 왔던 것이라면 그야말로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해야 하는 이유

지금까지 논의된 이야기들은 곧 필자가 카이스트에 진학한 이유이기도 하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첫째로는 문/이과를 갈라놓은 장벽을 문과에서 이과 방향으로 넘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못 넘을 건 또 뭐야!’라고 생각하는 치기 어린 마음이 한몫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소위 객관적이고 중립적이고 이성적이라 하는 (그래서 더 인정받는)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으므로 그 뒤처진 부분을 메워야 한다는 내면의 위기의식이 크게 작용했다. 그런데 필자가 카이스트 STP에서 과학기술에 대해 처음 배운 내용은 이러한 의식을 정면 돌파하는 것이었다. “과학기술이 과연 언제나 ‘딱 떨어지는’ 지식일까?”

많은 사람이 과학기술 지식의 객관성과 중립성 관념을 저항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는 일선 현장의 과학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 중의 어떤 사람들은 정치사회적 활동과 과학의 상호작용을 과학의 객관성에 대한 오염으로 받아들이며, 과학이 그런 불확실하고 주관적인 가치들로부터 철저히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7] 누가 뭐래도 물이 섭씨 100도에서 끓고, 지구가 자전하고, V=IR인 것은 절대불변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맞닥뜨리는 과학의 모습은 어떠한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정책 결정자들은 정책 도입 이슈가 발생할 때면 종종 가장 결과가 명확해 보이는 과학기술로써 모든 논란을 단번에 잠재우려 한다. “경제적으로 부정적인 효과가 발생합니다!”나 “사회 양극화가 만연해집니다!”보다 “과학적으로 그렇다니까요?!”가 가져다주는 영향력은 언제나 강력해 보인다. 그런데 이와 동시에 반대하는 집단에서는 ‘다른 과학기술’을 들고 나타난다. 똑같이 ‘딱 떨어지는’ 과학기술의 언어에 맞추어 성실히 조사결과를 들고 왔다는데, 각각 도출된 결과는 광막한 양극단에 위치한다. 둘 중에 한 쪽이 이세계(異世界)의 과학법칙을 끌어온 걸까? 아니다. 오히려 이 세계(This 世界)에서 정치와 사회와 문화가 언제나 과학에 개입하고 있음을  마땅히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정치가 과학기술을 참고하는 바로 그때, 과학기술 역시 반드시 정치의 영향을 받는다.[8] 기술이 생산한 구조물들이 어떻게 배열되느냐에 따라 사회의 질서가 변화하며[9], 미흡한 과학기술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는 사회 운동을 촉발하기도 한다.[10] 과학자는 진리를 전달하는 익명의 대리자가 아니라 각자의 개성으로 지식을 생산하는 주체이며,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행위자이다.[11][12] 하다못해 정부에서 연구용역예산을 어떻게 배분하느냐에 따라 개별 과학자들이 연구하게 될 학문분야의 분포가 달라지고, 그 분포가 연구자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는 사실도 무시할 수 없지 않은가.[13]

물론 물이 섭씨 100도에서 끓는다는 사실을 부정하자는 것이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과학이 사회와 상호작용할 때 당연한 기본 원리를 놓고 왈가왈부하는 일은 없다. 그러나 같은 물을 마시더라도 소는 우유를 만들어 오고 뱀은 독을 만들어 왔다면, 두 결과물이 산출된 과정을 비교하는 작업은 상당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여기서 “둘 다 원래는 순수한 물이란 말야. 왜 저 소랑 뱀은 가만히 있던 물을 마셔가지고 이상한 혼합물을 만들어대는 거냐고!”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오히려 과학이 보여줄 수 있는 거대한 확장 가능성의 한 부분을 놓치는 것이다. 사실 과학기술이란 문과생이 가진 모호함과 포괄성과 주관성의 시각으로도 반드시 관찰되어야 하는, 충분히 관찰될 수 있는 대상이다. 과학기술정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바탕이 되는 과학기술뿐 아니라 그와 얽혀 있는 수많은 정치사회적 요소들까지도 놓치지 않는 안목이 필요할 것이다. 그동안의 이공학문에서는 당연, 객관, 순수라는 미명 (그리고 “이래서 문과는 안돼” 같은 비아냥) 아래 과학기술로부터 파생되는 수많은 중요한 담론들을 간과하고 있었다. 바로 여기가 문과생의 과학을 가능케 하는, 그리고 문과생의 과학이 필요하게 되는 지점이다.

<그림 3> 네이버 영어사전에 liberal arts major를 검색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검색결과.[14]

문과생의 과학 연습 ─ 뛰어넘어보기

이처럼 과학을 둘러싼 여러 가지 요소들을 해석하려 할 때 문과적 세계관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이러한 관점은 그동안 인문학에 신경 쓰지 않았던 이과인들까지도 솔깃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개인적으로는 확신하고 있다. 세계관의 출발점은 여기부터이다. ‘나는 누구인가? 이 세상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나는 왜 살며 왜 공부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저마다 다르며 생각하는 주체가 각자 정한다. (독자 여러분도 다음 문장을 읽기 전에 본인의 대답은 어떠한지 잠깐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이 중에서 특별히 설득력이 있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던 대답들은 철학이 되었고, 어떠한 철학이 사람들의 일상과 함께하였는지에 대한 기록들이 모여 역사가 되었다. 누군가는 임의의 여러 사건을 모아 조건을 같게 조정해주면 일관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음에 주목하였고, 그동안 다른 누군가는 여러 비슷해 보이는 사건들이 사실 저마다 고유하며 상이한 특성들을 가진다는 것에 천착하였다. 현대 우리 사회에 이르러 이과와 문과로 명명된 사조의 지각판이란 바로 이러한 세계관들이 모여 창조된 결과물이다. 

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결론은 무엇인가? 누군가 “세상에는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지식이 존재하며 이것은 다른 모든 지식에 대해 우월하다”고 주장한다면, 이 주장이야말로 그토록 갈망하는 절대와 객관의 영역에 결코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오만한 관철은 이윽고 그 대척점의 응답으로부터 관절과 골수를 찔려 쪼개지기까지 할 것이다. 만약 우리 스스로마저 이 시류에 휩쓸려 스스로를 우월화의 프레임 안에 가두고 있었던 거라면, 이제는 과감하게 우리의 장치를 들고 울타리 너머를 응시해보자. 아래 두 사례를 통해 문과생의 시각으로 과학을 대하는 법을 모색해보고자 하는데, 낯설 수야 있겠지만 죽었다 깨어나도 못 할 정도로 어렵지는 않다.

#Ep.1 더 멀리 보기

“하지만 당신이 농사 짓는 일하고 무슨 상관이죠? 그 방면에 아는 바 있다는 거예요?”
“당신은 농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스스로 땅을 갈거나 닭을 키워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그보다는 오히려 문제가 되는 물질의 구조, 토지의 지층, 대기의 작용, 토양과 광석의 성질, 여러 가지 물체의 밀도와 모세관 현상 등, 꼽으려고 들면 한이 없는 그런 것들을 알아야 하는 겁니다. 게다가 건물의 건축, 동물의 사료 공급, 고용 인부들의 영양을 보살피고 비판하려면 위생학의 모든 원칙을 철저히 터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또 식물학도 익혀서 식물의 종류를 식별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겁니다, 르프랑수와 부인, 아시겠어요? (중략) 바라건대 우리 농민은 화학자가 되어주었으면, 아니 적어도 과학의 충언에 좀 더 귀를 기울여주었으면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서, 나는 말입니다, … (이하 생략)” – 귀스타브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 중[15]

누군가는 이 텍스트로부터 “맞는 말이잖아”라는 결론만을 가져간다. 위 등장인물 오메Homais의 장황한 발언은 꽉 찬 2페이지 분량에 달하며 모든 문장은 일단 맞는 말이다. 하지만 맞는 말임을 선언하는 것만으로 논의를 종결한다면 이는 우리 앞의 장벽을 뛰어넘기에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이때, 필자가 몸담았던 불문학의 영역에서는 그 ‘맞는 말’의 저 너머를 바라보는 훈련을 한다. 이 소설은 19세기 유럽의 혼란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아수라장의 정점을 점하던 계층은 부르주아지bourgeoisie이며, 등장인물 오메는 바로 이 계층에 해당한다. 사조의 영역에서는 실험과 관찰, 증명으로써 검증할 수 있는 것들을 제외한 모든 형태의 사고를 인정하지 않는 실증주의가 사회 전반에 위세를 떨치던 시기이다. 부르주아 계층은 이 트렌디한 사상의 선두주자로서 사회의 모든 영역 위에 활개를 치며 자신들의 영향력을 넓혀 갔다. 예컨대 농사를 지어 본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도 농민을 대표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때 지질학, 대기과학, 위생학, 식물학, 화학은 무슨 의미를 갖는가? 여기에서 이 과학기술들은 오메의 권위를 공고히 하기 위해 ‘활용’되었으며, 이 사실은 과학기술들이 본래 가진 속성보다 유의미하다. 이제 텍스트의 정합성을 헤치고 더 깊숙이 들어가면, 맥락을 초월하는 보편성에 접속되어 인간의 무지와 허영, 그리고 현학성의 모습을 마주한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오메는 인간homme, 즉 우리 자신을 의미한다). 

이쯤 되면 이 텍스트에서 각 과학 학제의 순수하고 객관적인 일반 정의를 논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외려 주목해야 할 곳은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인 것이다. ‘맞는 말이지’ 하고 지나치기엔 너무나도 아깝고, 짚고 갈 것들이 산더미처럼 많은 이 세계의 단편. 마침내 객관으로 점철된 언어로부터, 맥락이라든가 불규칙이라든가 유동성이라든가 하는 것들이, 강둑을 거슬러가는 고기들의 꼬리침과 같이 우리의 시야에 튀어 들어올 것이다. 이공학의 시선 아래서라면 그동안 이것들은 틀림없이 주목받지 못하였다. 비로소 여기에 나란히 선 우리는 더 멀리, 더 세심히 볼 줄 아는 자들이다.

#Ep.2 더 자신(自身) 있게 보기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뿌리 찾기’를 위한 유전자 검사에 대해 조사한 알론드라 넬슨의 논문에서[16], 과학기술(유전자 검사 기술)은 수검자들에게 명쾌한 해답을 제공하지 못한다. 수검자들은 확실한 유전적 실마리를 얻기 위해 여러 회사로부터 유전자 검사를 받지만, 회사마다 사용하는 추적 방법이 다르며, 검사 결과가 말해주는 ‘유전적 고향’ 또한 크게 다르다. 너무나도 다른 결과지를 여러 장 받아온 수검자들은 존재적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결국 최선을 다해서 그들의 생물학적 속성을 자전(自傳)적 특성과 일치시키려 노력한다. 그들의 기원을 찾고자 하는 갈망은 마침내 저마다의 의미를 지닌 스토리로 승화된다.

“제가 유전자 검사를 1977년부터 했거든요. 지금까지 30년 동안 받아온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제가 (남아프리카) 호텐토트족 자손이라고 생각해왔어요. 그동안 호텐토트에 대한 지식을 쌓으면서 살아왔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제 와서… 새로운 방식의 검사에서 제가 가나 혈통이라는 결과를 받은 거죠.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이 결과가 맞다면 어떡하지?’”
“작년 아프리카 축제에 갔을 때 국기 상점이 있었는데, 빨강-검정-초록의 삼색기가 있길래 이건 어느 나라 국기냐고 물어봤어요. 특정 국가나 민족을 대표하는 깃발이 아니고 아프리카의 디아스포라를 광범위하게 상징하는 깃발이라 하더라고요. ‘나는 삼색기가 필요 없어요. 내 유전자가 그러는데 나는 가나 혈통이래요.’라고 하니까, 국기 파는 사람이 ‘이제 잘 아시니까 이런 일반적인 깃발은 필요 없겠네요.’라고 하더군요.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달라진 게 있다면, 그때 처음으로 가나 국기를 샀다는 거예요.” – 넬슨의 논문 중, 과학기술로 인해 ‘존재적 혼란’을 경험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팻의 일화[17]

팻은 “우리는 여전히 우리가 누구인지 ‘기술적으로’ 알 수 없다”고 말한다.[18] 국기 판매대 앞에 선 팻은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기, 가나 국기, 그리고 삼색기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해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리고 30년 동안의 검사 결과 대신, 큰 혼란을 안겨 준 직전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마침내 새로운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그녀는 최종적으로 가나 국기를 골랐지만 같은 상황에서 남아공 국기나 삼색기를 집어드는 선택 또한 충분히 근거 있는 결정일 것이다. 지극히 과학적이고 기술적이지만 ‘딱 떨어지지’ 않는 모습이 여기에 나타나 있다. 

이처럼 결국 세계관이란 자신의 시야를 통해 보이는 대상을 규정하는 것이다. 즉 그 주체는 언제나 우리 자신이 되어야 한다. 객관성과 순수성, 그리고 난해성으로 무장한 이공학문의 권위 또한 우리의 시야 밖에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우리 모두는 끊임없이 바라보고, 자신(自信) 있게 이해하고, 각자 자신(自身)의 고유한 색깔로 이 모든 것들을 해석해야 하며 이를 위한 충분한 역량을 이미 가지고 있다. 어떠한 지식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지식을 무서워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이 우리의 사고에 봉사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단언컨대 합당하다.

나가며

한때의 진성 문과생은 이렇게 과학에 도전하고 있다. 완벽한 노 베이스에서부터 난공불락의 벽을 공략하는 것이기 때문에 ‘감히’ 도전한다는 표현이 퍽 적절하다고 느낀다. 학기 초에는 자연상수 e가 어디에 왜 필요한지 이해하기 위해 제법 끙끙대보았다. 유튜브에서 양자역학을 다룬 동영상을 끝까지 본 다음 아는 척도 해보았고, 도서관에서는 인공지능 서적을 빌려왔다. 여기 학부생들이라면 아마 중학교 때 다 끝낸 내용일 것이다. 역시 이 정도 수준으로 이공학도를 자처하기도, 그렇다고 백 퍼센트 문과생이라 정의하기도 어려워진 현재의 스탠스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다면 우리 삶 속에서 뻗대고 있던, 문/이과를 양분하는 거대 장벽을 감히 뛰어넘어보았다는 것이며,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벽을 넘나들면서 양쪽의 좋은 도구를 가져올 수 있게 되었다는 점, 그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바라건대는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 대일 땅이 저편에도 있었더면 한다. 모든 문과생이 이렇게 벽을 뛰어넘기 시작했으면 한다. 융합이다 통섭이다 여러 이야기가 나온 지 한참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인공지능윤리 세미나가 열리면 철학전공 연사의 “제가 기술 이쪽은 잘 몰라서…”와 인공지능전공 연사의 “저는 윤리 그런 건 잘 몰라서…” 중 한 마디를 양자택일해서 청취해야 하는 괴랄한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바야흐로 문과 출신의 이공학문 이해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이다. 이 과학기술이라는 것이 양분의 벽 너머 저 멀리, 막연한 두려움과 생경함의 구석에 박혀 있다 할지라도, 결국 우리들의 망원경으로 관측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별임을 알게 되길. 그러나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인문학과 이공학은 본디 서로 연결되는 것이니 둘 다 못 할 이유가 없다”는 말을 하지 않겠다. 오히려 우리의 경험에 의거하여 철저한 분리를 상정하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과생은 감히 과학 해도 된다. 과학을 해보자, 감히.


[1] 교육과학기술부(2010. 9), 2010년 ‘교과교실제’ 운영 학교 명단.

[2] 매일경제(2020. 12. 6), 「[스물스물] “부전공이라도 컴공으로” 공대 몰리는 문과생들… 수강신청은 ‘전쟁’」.

[3] 해당 그림은 짤방이라서 표기할 1차 출처가 없습니다. [2차출처 네이버 블로그] URL: https://m.blog.naver.com/corncake123/220432526573

[4] 조선일보(2001. 6. 2), 「‘理科’ 기피 이대론 안된다」.

[5] 이은경(2006), 「이공계 기피 논의를 통해 본 한국 과학기술자 사회의 특성」, 『과학기술학연구』, 제6권 제2호, pp.77-102.

[6] Parthasarathy, S. (2020), “‘Stick to the Science’: When Science Gets Political”, in Howe, N. ed., Nature Podcast, Episode 1, 24:15, URL: 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20-03067-w

[7] Nature Podcast (2020), Op. cit.

[8] Nature Podcast (2020), Op. cit.

[9] Winner, L. (1986), “Do Artifacts Have Politics?”, in The Whale and the Reactor – A Search for Limits in an Age of High Technology, pp.19-39,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0] Murphy, M. (2006), Sick Building Syndrome and the Problem of Uncertainty: Environmental Politics, Technoscience, and Women Workers, Durham: Duke University Press.

[11] Shapin, S. (1989), “The Invisible Technician”, American Scientist, Vol. 77, No. 6, pp.554-563.

[12] Traweek, S. (1992). Beamtimes and Lifetimes: The World of High Energy Physics.

[13] Nature Podcast (2020), Op. cit.

[14] Urban Dictionary (n.d.), “Liberal Arts Major”. [Retrieved from Naver Dictionary] URL: https://n.dict.naver.com/#/search?range=all&query=liberal%20arts%20major

[15] 귀스타브 플로베르, 김화영 역(2000), 『마담 보바리』(1판), 민음사, 195-196쪽.

[16] Nelson, A. (2008), “Bio Science: Genetic Genealogy Testing and the Pursuit of African Ancestry”, Social Studies of Science, Vol. 38, California: Sage Publications.

[17] Ibid., pp. 769-771의 내용을 필자가 각색.

[18] Ibid., p. 769.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WordPress.com 제공.

위로 ↑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