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트 브라운, 우동현 번역 (2020),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 푸른역사

이슬기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과정
sophia@kaist.ac.kr

체르노빌 재난 이후 왜 사회가 변하지 않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역사학자 케이트 브라운의 답은 ‘체르노빌의 피해가 조직적으로 축소됐기 때문’이다. 체르노빌 생존지침서는 이 조직적인 피해 축소의 과정을 다양한 차원에서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 원자력 기구(IAEA)에서 발표한 체르노빌 사고의 공식 사망자 수는 54명이라는 것에 의문을 가진 저자는 이 재난의 의학적, 환경적 피해를 파악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했다. 총 7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체르노빌 원전을 좁게 보거나 사고가 일어나기 전후의 몇 년의 상황만을 분석하지 않는다. 대신 체르노빌 주변 지역, 늪지대, IAEA 회의장까지 사고 직후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시공간에서 체르노빌 사고 이후의 삶과 그 삶이 과학에 의해 분석됐던 방법, 재난의 피해가 축소됐던 방식을 분석했다.  

체르노빌에 대한 확장된 분석은 재난이 어떻게 축소되었는지를 파악하는 것과 동시에 기존 체르노빌의 서사에서 빠진 이야기들을 복원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체르노빌 이후에 방사능에 피폭된 우유, 양털, 산딸기가 어떻게 유통됐는지, 어떻게 아이들의 갑상선 암은 ‘치료되기 쉬운 질병’으로 언급될 수 있었는지, 저선량 방사선의 피해는 과학자에게 정확히 알 수 없는 무언가로 남을 수 있었는지를 책은 보여준다. 이 작업을 통해 저자는 체르노빌의 공식적인 피해로 포함되지 않았던 피폭된 공간과 사람을 드러냈다.

2019년에 미국에서 출판된 이 책은 작년에 한국어로 번역되어 소개됐다. 대학 출판사에서 나온 학술서가 아니고 특정 개념이나 이론을 전면에 내세우는 책은 아니지만 체르노빌을 둘러싼 새로운 서사를 제공하고 기존에 분석되지 않았던 소련의 여러 자료들을 분석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고 생각해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1][2] 또한 이 책은 다른 책들에 비하여 연구자가 어떻게 자료를 모으고 누구를 어떻게 만났는지를 상세하게 드러낸다는 특징이 있다. 저자는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등 여러 지역에서 27개의 문서고를 방문했고 41명과 면담을 진행했다. 이처럼, 이 책은 많은 자료에 기반한 책이지만 읽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다른 역사책에 비하면 읽기가 수월한 편이다. 이 서평에서는 저자의 이런 연구와 글쓰기 방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책의 여러 부분에서 저자가 자료를 찾고 해석하는 고민이 드러나지만 여기서는 2장 <방사능 생존>을 소개하겠다. 이 장은 저자가 국립중앙정부최고기관 문서고를 방문하면서 시작된다. 문서고의 직원은 체르노빌에 관한 자료가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지만 저자는 자료 목록 책자를 찾아보며 우크라이나어로 적힌 문서철을 발견한다. 이 자료는 체르니히우(우크라이나 북부에 위치한 도시)의 양모 공장 노동자들이 청산자[3] 자격을 요구하는 것이었는데 이 자료를 시작으로 저자는 양모의 이동과 양모 산업에 연루된 사람들이 피폭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저자는 문서고 자료와 인터뷰를 바탕으로 체르노빌 금지구역 내에서 생산된 양털이 금지 구역을 넘어 이동하고 체르노빌의 공식적인 피해로 기록되지 않는 종류의 피해를 야기했다는 것을 보인다. 일례로 저자는 문서에 기록된 양모 공장을 방문하는데 당시 이 문서에 서명을 했던 노동자들을 직접 만났다. 직원들은 당시 양털을 옮겼을 때 누가 죽고 아팠는지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이처럼 저자는 하나의 사료를 시작으로 현장 인터뷰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상세하게 보여준다. 책을 읽으며 이 과정을 따라 가보면 저자와 함께 조사를 다니는 듯한 느낌까지 받을 수 있다. 

책에서는 이처럼 하나의 사료를 시작으로 연구를 확장하는 과정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저자가 사료를 어떻게 비판적으로 검토하는지도 볼 수 있다. 저자는 사료에서 “역사의 소곤거림”이라고 본인이 명명한 공식적인 서사에 포함되지 않은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잡아낸다. (151쪽) 그 자료는 노동자들이 정부에 보낸 것으로 자신들이 피폭되어 건강상의 문제를 겪고 있다고 주장하는 글이었다. 이 자료를 바로 인용하여 사용할 수도 있었겠지만 저자는 자료가 제시하는 바를 그대로 믿지 않는다. 저자는 이 소곤거림이 노화에 의한 것인지 방사선에 의한 것인지를 구분하기 위하여 본인이 방사선 의학 출판물의 사례와 사료의 내용을 대조했다. 물론 이 노동자들에 대한 과학적인 조사가 없었기에 정확한 판별은 불가능하지만, 저자는 기존에 라돈으로 인해 피해를 봤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이 노동자들이 겪는 건강상의 문제가 방사능 피해 일수도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 저자가 사료의 한계점을 명확히 하되 그로부터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최대한 끌어낸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저자는 문서고 방문과 면담 이외의 방법을 사용하여 체르노빌을 분석하기도 한다. 책 3부 <인위적 자연>에서는 자연을 문서고로 사용한다. 저자는 “사람과 아카이브는 거짓말을 하더라도 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이다.[4] 이런 믿음으로 제3장에서는 숲에서 방사능 피해를 연구하는 연구자들과 함께 방사능 수치를 계산하며 “핵 이후의 풍경을 읽는 방법”을 연습한다. (207쪽) 방사능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숲을 거미가 없는 곳으로 만들었고 핵 이후의 풍경은 미디어에서 말하는 핵 사고 이후의 자연적 회복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는 벨라루스의 알마니늪도 방문했다. 이 지역의 경우 체르노빌 이전에 핵무기 실험을 했던 장소로 알려져 있으나 문서로 남아있는 기록 거의 없었다. 저자는 늪의 성분을 통해 이전에 이곳에서 진행됐던 핵 실험들을 설명한다. 자연을 문서고로 삼은 이 장에서 저자는 체르노빌을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파괴가 예정된 시간표상에서 속도를 높이는 촉진제”로 봤다. (230쪽) 체르노빌 이전에도 핵 실험은 존재했고 그 피해가 자연에 기록되어 있다. 저자는 이를 통해 자연은 스스로 회복되지 않으며 스스로 조작 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으며 자연을 사료로 사용하는 방법도 시도했다.

앞서 언급한 두 장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이 책은 사료를 찾고 해석하는 방법을 보는 데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다. 이 책의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체르노빌을 과거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으로 남겨두지 않고 체르노빌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다. 저자는 당시 활동했던 정치가, 의사, 과학자 등의 전문가 집단과 정부 기관 NGO의 활동까지 분석하고 있지만, 체르노빌 주변 지역에서 오래 살았던 인물을 통해 그 지역의 역사를 보여주거나 (193-202쪽) 체르니히우의 현장 노동자처럼 체르노빌의 주변 지역에서 사고 이후에도 계속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 저자가 체르노빌 주변 지역에서 산딸기를 채집하는 사람들을 따라가서 같이 산딸기 채집을 하고 도매상에게 넘어가는 과정을 추적하기도 한다. (457-464쪽) 저자의 이런 노력은 정치적이고 과학적인 담론에서 체르노빌 사고를 분석하는 것에 더하여 이 사고가 그 지역민들의 삶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이렇게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체르노빌 사건의 다양한 층위와 그 의미를 보여주고 있다. 각 챕터마다 다양한 생각이 여러 장소를 오가기 때문에 어느 장을 펼쳐도 흥미로운 사료와 이에 대한 분석을 볼 수는 있다. 그렇지만 여러 장소와 시간을 오가며 이야기가 진행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체르노빌 통제구역과 그 주변 지역의 상을 그리기는 어렵다. 또한, 이야기가 여러 갈래로 뻗어가면서 정작 책의 시작 부분에 언급되는 정부에서 발간한 생존 지침서가 체르노빌 출입금지 지역 밖의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해됐는지 그리고 그 지침서에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들이 포함됐는지는 알기 어렵다. 당시 이 책자를 받은 사람들은 이 책자를 얼마나 신뢰했을까? 신뢰하거나 하지 않았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체르노빌 생존 지침서에 대한 내용이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됐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저자가 책 전체를 통해 보여준 것처럼 체르노빌과 같은 재난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 재난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작업들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체르노빌과 같은 재난이 그저 단발적인 사건, 이미 마무리된 사건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하는’ 재난임을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우리는 계속 이 재난을 기록해야 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내러티브를 찾아서 이런 재난이 잊히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케이트 브라운의 책은 ‘무엇을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모범 답안이라고 생각된다.


[1] Aronova, Elena. (2019), “Nuclear fallout”, Science, Vol. 363, p. 1044.

[2] 「The Monster Within: On Two New Books About Chernobyl」, https://lareviewofbooks.org/article/the-monster-within-on-two-new-books-about-chernobyl

[3] 체르노빌 사고를 청소하기 위해 근무하던 도중 상당한 방사능에 노출된 사람들을 의미함.

[4] Brown, K. and Groesz, L. M. (2019), “Interview with Kate Brown,” Kritika: Explorations in Russian and Eurasian History, Vol. 20, No. 3, pp. 437-445.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

WordPress.com 제공.

위로 ↑

%d 블로거가 이것을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