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의 겸손한 목격에서 배우기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석사과정
이슬기
lsg523@kaist.ac.kr

과학은 소수의 천재가 발견해낸 진리로 다수의 대중에게 혜택을 가져올 수 있다고 약속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점차 “보편적이고 객관적이며 진리를 다룬다 하는” 과학이 실은 보편적이지 않고, 특정 집단만을 위해 봉사해온 지식이었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다. 보편의 탈을 쓴 지식은 사실 우리 모두의 삶에 꼭 맞지 않는다. 우리에게 봉사하지 않는 지식은 우리의 몸과 삶에 불협화음을 만들어내고, 그로 인한 고통을 야기하기도 한다. 과학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학문이 아니기 때문에 과학에는 역사도 있고, 작동하는 맥락도 있고, 과학을 수행하는 사람들의 영향력도 있다. 역사, 맥락, 관계성에 대한 탐구는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집중하는 분야인데, 이처럼 과학기술을 인문사회과학의 방법론으로 연구하는 학문을 ‘과학학’이라 한다. 리뷰를 할 두 책의 저자들은 과학학을 공부한 사람들이다. 『겸손한 목격자들: 철새·경락·자폐증·성형의 현장에 연루되다』(이하 겸손한 목격자들)을 집필한 네 명의 공저자는 과학학의 하위학문인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현장연구로 학위를 받았다.[i] 이 책은 저자들의 학위 연구를 대중교양서의 글쓰기로 재구성한 것이다.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 여성 우울증』(이하 미괴오똑)의 저자 역시 과학사를 전공하고 우울증을 연구하여 학위를 받았는데, 이 책에서는 20, 30대 여성의 우울증에 집중하며 이들과의 인터뷰, 개인적인 경험 등을 담아냈다.[ii] 이들의 이야기는 과학이 가진 보편의 탈을 벗기기 위하여, 지금까지 ‘자연스럽게’ 여겼던 과학을 뜯어보게 한다.

1. 우리의 목격은 상황적 지식을 만드는 방법론이자 도구이다. – 『겸손한 목격자들』

『겸손한 목격자들』은 “이것은 과학기술학 책이다.”라고 선언하는 임소연의 서론으로 시작한다. 임소연은 과학기술학의 역사를 개괄하며 공저자들이 가진 공통된 특성 — 여성이며, 이공계에서 공부했고,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이하 과사철)에서 공부했음 — 을 밝힌다. 이들의 방법론인 겸손한 목격은 역사적으로 과학의 주체였던 남성, 백인, 서구 과학자들의 관찰과 다르다. 저자들은 “투명하고 객관적이기 때문에 겸손하게 느껴지는 과학의 관찰이란, 관찰자의 사회 구조적 특성이 아무런 표식을 남기지 않는 이들, 즉 남성, 백인, 서구인에게나 허용된 것 (p.17)”이라 비판한다. 저자들은 모든 관찰이 필연적으로 내포하는 주관성을 숨기려 하거나, 그들의 관찰을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기 위해 몸부림치지 않는다. 그 대신, 저자들의 몸이 위치한 현장에서 이질적인 다른 행위자와의 연결을 최대한 드러내는 글쓰기 방식을 취한다 (p.18). 이들은 이러한 ‘현장에 연결된 목격’을 ‘연루(Implication)’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과학은 소수 천재들의 머릿속에서 이룩되는 성과가 아니고, 과학자들이 비인간 요소와 씨름하는 일상적인 활동이라는 것이 과학기술학의 ‘실험실 연구’가 재정의한 과학의 모습이다.[iii]  그러나 『겸손한 목격자들』의 첫번째 저자인 성한아는 이러한 ‘실험실 연구’가 과학실행에 관여하는 비인간을 실험 장비인 기계에만 집중하여 보여준다는 점을 지적한다. 과학실행에 관여하는 비인간 중에서는 생명을 지닌 동식물도 있는데, 성한아의 현장은 철새를 그 예시로 삼는다. 저자는 <겨울철 조류 동시 센서스>라는 제도하에 조사원이 조사 지역의 모든 지점을 직접 확인하면서 해당 지역에 도래한 철새들을 관찰하고 세는 과정에 연루되어 있다. 그는 <센서스> 조사원을 비인간인 철새와 함께 과학실행을 할 수 있는 몸을 갖춘 전문가로 인식한다. 우리는 저자가 보여주는 인간과 비인간이 관여하는 과학실행의 모습에서 ‘인간 너머의 윤리’가 가진 특징을 이해해볼 수 있다. 다음으로 김연화의 글은 전통적인 실험실 연구 방식으로 진행된 연구를 소개한다. 저자는 ‘경락’의 실체라 여겨지는 프리모관(봉한관)이라는 새로운 해부학적 구조를 ‘발견’하려는 실험실에 연루되었다. 실험실 내부의 사람들은 실험의 재현성 문제를 고민하고 점차 숙련된 과학자가 되어가는, 일반적인 모습의 과학 수행을 하고 있었음에도, 실험실 외부 사람들은 이들의 과학이 ‘진짜 과학’인지 의문을 가졌다. 저자는 이러한 의문이 어쩌면 프리모관(봉한관)의 기원이 미국이 아닌 북한이며, 해부학이 아닌 경락에 대해 이야기했기 때문, 즉, 이 ‘낯설지만 일반적인’ 과학 수행이 우리가 평소에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던 과학과 정치의 경계,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를 흔들어 놓았기 때문일지 모른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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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원의 글은 자폐증을 지닌 아이를 둔 엄마들의 삶을 현장으로 삼아 이들과 관계 맺고 연루되어 진행한 연구를 보여준다. 저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충분히 성찰하며 현장에 접근했고, 의료 전문가와는 다른 방식으로 보는 어머니들이 어떻게 서로 다른 ‘자폐증들’을 돌보는지 설명한다. 여기에서 저자는 합리/비합리, 과학/비과학의 이분법은 자폐증에 관한 ‘좋은’ 돌봄을 만들어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p.229). 우리는 저자의 현장을 통해 지식과 진단 범주 등이 절대적으로 실제 삶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며, 끊임없이 재구성하고 개선해야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윤리적이라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임소연은 성형 수술 현장에 ‘임코디’로 연루된 자신을 드러낸다. 성형 수술 현장은 흔히 과학실행의 장이 아닌 그 본질이 오염된 상술의 장 정도로 여겨진다. 그러나 저자는 성형 수술의 현장에서 얼굴 이미지를 3차원에서 2차원으로 만들고, 이를 측정하고 가공하며 공유하는 방식이 과학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실험의 방식 및 실험 기록물을 다루는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고 말한다. 그의 시각에서 성형 수술은 분명 동시대의 살아있는 과학기술이므로, 단순하고 책임 없는 비판보다는 과학 기술과 성형 수술이 가진 양면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더 나은 과학 수행으로 개선할 수 있도록 비판할 것을 제안한다.

네 명의 공저자는 철새, 경락, 자폐증, 성형 수술의 현장에서 과학, 과학지식, 객관성, 전문성, 윤리 등 과학기술 전반을 구성하는 핵심 키워드에 대해 질문한다. 연루된 목격자로서 이들의 진술은 끊임없이 울퉁불퉁한 과학의 경계를 드러낸다. 이들의 목격은 매끄러운 과학만 보려는 이들을 껄끄럽게 하고, 경계가 그저 당연히 받아들일 것이 아님을 느끼게 한다.

2. 새롭게 쓰일 고통의 기록에 옹호자가 되기 –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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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괴오똑』은 『겸손한 목격자들』 과 연루 방법론을 공유한다. 저자 하미나는 “타인의 삶에 동떨어져 객관적인 관찰의 방식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손을 잡고 우울증이라는 미로를 탐색하며 다양한 길을 걸어보다가, 마주하는 여러 방들의 문을 하나씩 열어보는”(p.5) 방식으로 글을 전개하였음을 밝힌다. 그 방들은 크게 셋으로 묶이는데, 맨 첫번째 방들은 엄살, 진단, 치료라는 이름을 가진다. 1부 <나의 고통에도 이름이 있나요>에서 저자는 여성혐오, 진단, 약의 역사를 살피며 우리는 어떤 고통에 더 아파하고 어떤 고통을 더 의심하는지 질문한다 (p.41). 그리고 만약, 우리의 고통을 해석할 자원이 부족하다면, 우리에 의해서 다시 쓰이고 말해지고 발견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p.124). 역사적으로 여성의 고통은 쉽게 생식기의 차이와 여성 호르몬만으로 환원되어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2부 <죽거나 우울하지 않고 살 수 있겠니>에 속한 방인 가족, 연애, 사회는 20, 30대 여성의 우울증이 단순히 여성 호르몬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복잡성을 가지고 있음을 저자와 31명의 당사자들이 함께하는 새로 쓰기의 과정을 통해 보여준다.

마지막 3부 <이야기의 결말을 바꿀 수 있다면>에는 자살, 돌봄, 회복의 방이 있다. 여기에서 저자는 현재 우울증과 자살을 단순한 인과로 접근하는 방식이 단편적이라 지적하고, 고통에 연루된 우리가 어떤 돌봄과 회복을 그릴 수 있을지 묻는다. 하미나는 우리가 연루된 존재들이라면, 우리의 존재와 삶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며 세상을 떠난 자들의 존재와 삶 또한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이야기한다. 이를 바탕으로 세상을 떠난 이들의 삶에 연루된 우리, 즉 남겨진 사람들의 임무로서 돌봄이 가져오는 지식과 관계, 그리고 맥락을 치열하게 사유할 것을 제안한다 (p.292). 하미나 작가는 2021년 한국과학기술학회 후기학술대회에서 그의 작업이 고통의 과학 지식을 돌보고 과학 지식으로 고통을 돌보는 일을 포함한다고 밝혔다. 자신의 작업은 ‘쓰는 행위를 통해 누군가의 이야기에 권위를 실어주는 것’이라 이야기하는 그는 지식과 돌봄이라는 키워드에 관심을 유도한다. 또한, 우리가 삶 속에서 실천할 돌봄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하게 하고, 내 안의 우울과 우리 주변의 우울을 볼 수 있고 돌볼 수 있는 몸을 갖추게 한다. 내가 마음이 쓰이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3. 책임감 있는 응답 – ‘연루 선언(Implication Manifesto): STS, 현장 연구와 (다시) 만나다’

이 두 책은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방식이 닮았다. 『겸손한 목격자들』 책 말미에는 ‘겸손한 목격자들’, ‘의심스러운 과학기술’, ‘현장연구’ 등을 주제로 나눈 네 명의 저자들의 대화를 실었다. 이들의 대화는 <함께 갈 연구자들>이라는 꼭지에서 ‘일상의 과학기술을 포착하는 연구자들’로 확장되며 (p.328),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독자들의 리뷰를 통해 책이 닿는 대상을 더 확장하며 마무리된다. 이와 유사하게 『미괴오똑』은 책을 함께 구성한 인터뷰이들의 후기를 에필로그로 삼았고 세 명의 관련 분야 여성 전문가들의 추천사를 포함했다. 이러한 마무리 방식은 흔히 학술 단행본의 앞부분이나 학위논문의 뒷부분에 위치하는 감사의 말처럼 우리의 연구가 많은 사람에게 빚지고 있음을 명확하게 밝힌다는 측면에서 유사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두 책의 마무리는 단순한 감사를 넘어 자신이 만들어낸 활자를 독점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가진다. 대신, 그들 자신의 많은 노력이 담긴 책을 조금 더 나은 무언가를 위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 닿게 하려는 실천적인 글쓰기의 성격도 엿보이며, 전형적이지 않은 수 많은 이야기가 오갈 수 있는 장으로 책을 내어놓으려는 모습이 보인다.

이들의 이야기는 여성이고, 한국인이며, 서울대 과사철에서 공부한 저자들이 그들의 몸을 매개로 하여 동시대를 목격한 일로 이해할 수 있다. 또, 과학학 학계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이 속한 학문을 치열하게 고민한 노력으로도 이해할 수도 있다. 이들은 2021년 11월 27일 ‘과학기술과 사회정의’를 주제로 개최된 한국과학기술학회 후기학술대회 라운드 테이블에서 이 두 권의 책을 바탕으로 <연루 선언(Implication Manifesto): STS, 현장 연구와 (다시) 만나다>라는 주제의 발표를 진행했다. 위 발표에서 저자들은 연루(implication)를 얽힘(entanglement)과 구분되는 개념으로 제시한다. 저자들은 존재가 상호 의존적이라고 이해하는데, 따라서 ‘이미 존재하는 개별적 존재’를 전제하는 ‘얽힘’이 그들의 현장에는 적용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신에 ‘연루’ 개념이 가진 ‘책임감을 가지고 응답(responsible for)’ 해야 한다는 성격을 강조한다. 이들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이미 모두가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을 숨기기보다는 오히려 인식하고 연결성을 드러냄으로써(사실은 모든 지식이 그렇지만) 이를 부분적이고 상황적인 지식(situated knowledge)를 생산하는 방법론으로서 활용할 수 있다.

이들의 방식은 더 나은 과학 기술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 현재의 과학 기술이 응답하지 못하거나 응답하지 않는 고통이 무엇인지 각자의 생각을 꺼내어 놓고 함께 대화에 참여하도록 촉구한다. 저자가 책임감 있게 자신의 위치를 내보이며 쓰는 글에는 독자도 충실한 응답을 하게 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소외되었던 고통에 응답하려 노력하는 학문적, 실천적 방법론. 그것을 갖춘 과학은 지금의 과학과 어떻게 다를까?  객관성과 불변성을 내세우는 과학은 종종 보편에 속하지 않는 목소리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한다. 『미괴오똑』과 『겸손한 목격자들』이 알려준 ‘연루’라는 목격방식이 과학과 만났을 때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서로를 돌볼 수 있는 과학의 가능성을 보게 된다. 이러한 ‘연루의 과학’은 앎에 대한 응답의 책임을 요구하는데, 알게 된 이는 앎의 부름에 응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글 또한 연루된 목격자로써 쓴 서평인 셈이다. 저자들이 연루된 현장에 대한 이차적 연루이며, 새롭게 제시된 과학에 대한 하나의 적극적 반응이다. ‘미괴오똑’한 연구자들의 목소리가 모이고, 연루된 현장에 대한 겸손하고 책임감 있는 목격이 모일 때, 과학은 비로소 가짜 보편의 경계를 넘어 더 많은 이들의 삶에 맞는 지식이 될 것이다. 이 두 권의 책은 다른 존재보다 잘나기 위한, 혼자만 살기 위한 과학지식보다는 함께 살아가고 함께 돌볼 수 있는 과학지식을 쌓고 싶은 이들에게 실마리를 제공한다. 

읽을거리 (선택)

기고한 글과 관련된 읽을거리 1~3개를 자유롭게 추천해 주세요. 책도 좋고, 논문이나 기사도 좋습니다. 각 읽을거리에 대해 3문장 정도로 소개해주세요.


[i] 김연화, 성한아, 임소연, 장하원 (2021), 『겸손한 목격자들: 철새·경락·자폐증·성형의 현장에 연루되다』, 에디토리얼.

[ii] 하미나 (2021), 『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이해받지 못하는 고통, 여성 우울증』, 도서출판 동아시아.

[iii] 1970년대 시작된 실험실 연구(laboratory studies)는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의 한 분과이며, 과학이 수행되는 실험실 현장을 미시적인 관찰을 통해 실험실 특성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을 제공하는 분석 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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