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질없는 STP 학부 부전공: 그럼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대학원생 A

#0

“…다시 한번 경청해 주시고 코멘트해 주신 교수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멘트를 끝으로, 나는 지도 교수님께 호스트와 진행을 넘겨드리고 줌(Zoom) 화상회의실을 나왔다. 그렇게 카이스트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데 가장 중요한 관문을 통과하게 되었다. 엄청나게 기쁘거나 벅차오르는 감정이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여러 굴곡 끝에 가장 중요한 관문을 넘었다고 생각하니 안도감이 들었다.

 이렇게만 보면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전형적인 대학원 시절을 지냈다고 볼 수 있겠다. 흔히 이야기되듯, 새파란 학부생 시절을 벗어나 실패를 반복하며 방황하고, 졸업을 걱정하고, 여러 난관을 이겨내고 졸업을 하는 것은 많은 대학원생의 공통된 경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 그래도 힘들었던 내 대학원 여정의 난도를 높인 요인이 하나 더 있었는데, 바로 과학기술정책학(STP) 부전공이었다.

#1

학부를 졸업할 때가 거의 다 되었지만, 대학 생활 내내 동아리 활동에만 전념했던 나에게는 제대로 된 진로 고민을 할 기반이 없었다. 과학기술정책학(STP) 부전공 수업에서 배운 과학기술학(STS) 내용은 재미있었기에 부전공까지 하게 되었지만, 이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사나 사회 이슈에 관심이 많았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지 거대한 포부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이 길이 본업이 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 앞에 나는 남들처럼 이공계 대학원에 가야겠다고만 생각했다. 여기에 더해, STP 부전공 프로그램이 장차 이공계 진로에서 성장하여 리더 역할을 할 이들에게 필요한 기반을 제공했으면 좋겠다는 김소영 교수님의 이야기 또한 기억하고 있던 터였다.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 부전공을 신청한 학생들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들었던 이야기 같다.)

그래도 다른 교수님의 의견 또한 들어봐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이전에 수업을 듣기도 했던 박범순 교수님께 면담을 신청했다. 교수님께서는 친절하게 면담 요청을 받아주셨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던 것으로 기억한다. 선명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이 자리에서 교수님께서는 나에게 STP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은 있는지 물어보셨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앞서 언급했던 이유를 떠올리며, 부전공을 통해 배웠던 것을 바탕으로 이공계 연구자로서 활동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러고 나서 “그럼 저는 이공계 진로를 밟으며, STP 부전공을 이수한 사람으로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라는 막연한 질문을 던졌다. 교수님께서는 ‘잘 모르겠다’라는 대답을 하셨던 것 같고, 나도 어차피 이에 대한 답은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이런 길이 미지의 영역이라는 점을 수긍하며, 나는 정중하게 감사 인사를 드린 뒤 오피스를 나섰다.

그 후 졸업 전까지 STP 부전공 과목을 몇 개 더 듣고, 학부 졸업을 하였다. 수업은 재미있었고, 전체 평점에도 약간의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즐거운 시간은 이제 다 끝났다는 사실을…

#2

대학원 입학 직후 운 좋게도 모 장학생 선발 면접을 보게 될 기회가 주어졌다. 학부를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어 학부생 티를 벗지 못했던 나는, 어떻게든 돋보여야 한다는 욕심에 바니바 부시의 ‘The Endless Frontier’ 등 부전공에서 배운 내용을 넣어 장차 사회에 기여하는 과학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자기소개서에 써냈다.

서류는 다행히 통과했지만, 막상 면접장에 가보니 면접관으로 들어온 분은 정석적인 이학 계통 커리어만 밟아 오신 교수님이셨다. 이제 막 학부생을 벗어난 나에게 이런 시나리오를 고려할 정도의 센스는 없었고, 내 서류를 평가할 대상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알량한 지식에 취해 쓴 자기소개서 내용 때문에 면접 내내 고통받았다. 아마도 ‘과학적 탐구에 대한 호기심’ 같은 전형적인 과학자로서의 비전을 발표하기를 기대하셨던 것 같은데, 내 자기소개서는 과학자의 사회적 의미와 역할에 대해 가득 차 있었다. 이로 인해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싶은 거냐’고 거세게 공격받았고, 나름대로 변호를 시도했지만 계속되는 압박에 그만 내 페이스는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정신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면접장에서 쓸쓸하게 나왔고, 그 후에 받아든 결과는 당연히 탈락이었다. 그 뒤에 지원한 다른 장학생 선발에서 STP 부전공과 관련된 내용을 모두 봉인한 채 평범하고 모범적인 이공계 대학원생으로 나 자신을 묘사했고, 선발되었다.

#3

다른 대학 연구실에 출장을 갈 일이 생겼다. 방문한 연구실 측에서 간단히 식사 대접을 하게 되어 학내 식당에서 다 같이 점심을 먹었다. 식사하는 와중에, 누군가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를 유심히 보더니 이런 이야기를 했다.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대한 세미나라고? 과학 하나 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죽겠는데, 저런 것도 하다니 대단하네.”

그래서 나도 그 포스터를 보니, 황당하게도 학내에서 열리는 창조과학 세미나를 홍보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저기에 문제가 있다고 나서서 지적하지 않았다.

‘교진추 사태’[1]가 터진 지 몇 년이 지난 후였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연구 현장에서는 과학의 사회적 역할에는 관심이 없고 나이브하게 개인의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으로 기억한다. 저걸 붙이고 다니는 사람이 여기 학내에 있다는 사실 자체에 순간 화가 났지만, 이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기에는 손님의 입장이라 차마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이후 실험을 수행하며 나는 각종 실수를 연발하며, 방문한 연구실에 민폐만 끼치고 가는 불청객으로 전락해버렸다.

내가 과학자의 올바른 사회적 역할 같은 것을 고민해 봤자, 자기 일에만 충실한 소시민적 과학자들보다 실험 수행 능력이 모자란 채로는 주위에 걸림돌이 될 뿐이었다. 분하고 슬펐으나, 그 순간 과학기술학에 대해 배운 내용은 나에게 당장 현장에서 데이터를 내고 살아남는 능력을 제공해 줄 수 없는 무기력한 지식일 뿐이었다.

#4

기나긴 시간이 지나 졸업 준비와 동시에 취업을 준비하게 되었고, 모 직장의 화상 면접을 보게 되었다. 제출했던 입사지원서 양식에는 부/복수전공을 기입하는 칸이 있었고, 나는 깊게 생각하지 않고 학부 부전공에 ‘과학기술정책학 부전공 프로그램’을 적었다. 그리고 면접관 중 한 분이 이 부분을 집어냈다.

“부전공을… 특이한 걸 하셨네요?”

이 질문을 받은 순간, 앞서 언급한 대학원 생활 초에 겪었던 장학생 면접의 안 좋은 기억이 떠올랐다. 전공 이외의 다른 곁가지에 관심이 많아 보일 여지를 불식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나는 최선을 다해 둘러댔다.

“그것은 과학기술에 대해 인문사회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분야라 당시에 관심이 있어서 수업을 들었지만… 부전공이었고요. 주전공은 OO학과였고 그것이 주 관심사였기 때문에 주전공의 대학원으로 진학했습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더 캐물어 보는 일은 없었다.

#5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겠지만, STP 부전공은 내 대학원 생활에 있어 현실적인 이익보다는 손해로 작용했다. 이렇게 된 데에 당시 나의 경솔함과 미숙함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지만, 이를 참작하더라도 과학기술에 대한 인문사회적 관점이 커리어를 위한 자양분으로 환원되기 어려운 현실도 같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나름대로 그 적용점을 찾고자 모 과학기술인 단체에 가입해 보기도 했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하기에 당장 닥쳐오는 여러 연구실 업무는 나에게 심적인 여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차라리 특출나게 뛰어난 논문을 냈다면, 또는 화제가 되는 일을 벌였다면 언론에 인터뷰라도 하면서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을 풀어낼 수도 있었겠지만 나와 같은 범인(凡人)에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돌아보면, 나는 본 전공을 다른 이들만큼 깊게 파고들지도 못했는데, 연구 현장에서 크게 관심을 두지도 않는 과학기술학에 대해 수박 겉핥기 마냥 지식을 취하고 치열한 실험실 생활에 뛰어든 격이었다. 대학원 입학 동기들은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의 실적과 이익을 알뜰히 챙기고 있는 것만 같은데, 나는 대책 없이 과학의 사회적 의미 같은 것을 찾다가 떠밀려 다니며 어느 쪽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한 주변인이 되어버린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였나, 나의 대학원 생활은 초반부터 엄청나게 휘청였다.

물론 이렇게 쓰고 끝낼 것이면 이 글을 쓰지도 않았다.

#6

STP 부전공 수업을 들으며 가장 크게 깨졌던 환상이 있다면, 과학기술이 진공 속에서 만들어졌으며 인류의 진보에 절대적으로 기여한다는 ‘과학입국’에 대한 환상이었다. 과학기술이 가치 중립적이지도 않고, 사회 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권력자들에 의해 휘둘리기도 하는 취약점을 지녔다는 이야기는 학부생 시절에는 그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이공계 대학원이라는 공간은 이 충격이 현실로 구현되는 곳이었다. 어딘가에서 촉망받던 인재가 돌연 연구실을 그만뒀다는 기괴한 소문들이 들려왔고, 또 어딘가에서 가까운 지인이 갑자기 완벽히 망가진 상태로 나를 찾아오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일들은 모두 사람을 갈아내는 구조에 대한 언급 없이, 개인의 문제로만 떠내려가 버렸다.

그럼에도 STP 부전공을 통해 배운 중요한 점이 있다면, 과학기술을 수행하는 중심에 결국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이 모여 우리 사는 사회를 이루듯, 과학기술 또한 그렇다는 점은 희망을 걸 수 있는 지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흔히 이야기되는 연구 현장의 많은 노동력을 담당하는 대학원생을 비롯하여 장비를 다루는 테크니션, 심지어는 각종 실험 장비, 소모품, 시약 등을 조달하는 업체 분들 등 수많은 이들이 연구 현장이라는 사회를 이루고 있지 않은가. 이 중에서 누구를 빼 버린다면 연구 현장은 멈춰버릴 것이다. 비록 이런 현실을 그저 업무 관계나 거래 관계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이 현장에서의 일반적인 인식이라 한들, 나는 그래도 과학기술학을 조금이나마 공부했던 사람으로서 다른 식의 접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무감을 은연중에 계속 가졌던 것 같다.

#7

그래서였나, 내가 대학원 생활 중에 생각보다 많이 사용했던 문구 중 하나는 ‘죄송하지만’이었다. 비록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기에 소위 ‘인간만도 못한 대학원생’이라는 자조적인 농담이 오가는 대학원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어느 순간에는 나도 연구 현장의 누군가에게는 갑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상대하는 분이 ‘사장님’이 아니라 ‘피고용인’일 때 이 부분을 가장 크게 느꼈다.

중요한 실험 장비가 심각하게 말썽을 일으키던 시절, 담당 엔지니어 분께서 이 문제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해서 잠을 못 잔다고 감정적으로 호소하던 상황이 있었다. 당장 내 실험이 급하고 서비스를 요구한 갑의 입장이니 내 알 바 아니라고 무시할 수도 있었겠지만, 서로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떠올리니 “드릴 말씀이 없네요. 죄송합니다.”라는 대답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었다. 다행히 그 문제는 일주일 정도 뒤에 해결되었고, 이렇게 생긴 친분 덕에 이후에 장비 A/S를 요청할 때 소통이 수월해져 후배들에게도 관련 노하우를 전수하기 편해졌다.

연차가 쌓여가며 연구실을 탐색하러 온 학부생도 가르치고, 후배 대학원생을 받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등 선배의 역할을 할 일이 많아졌다. 학부생 시절에는 대학원생들에게 “아니 왜 굳이 힘들게 대학원을 와?” 같은 이야기를 수도 없이 많이 들었지만, 내가 선배가 된 상황에서 영양가 없는 그런 이야기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에, 나는 대학원 생활 중에 생기는 에피소드들을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해 주려고 노력했다. 단순히 실험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실험 프로토콜이 어떠한 좌충우돌과 우연의 산물에서 발생했는지를 이야기하며, 사람이 수행하는 과학 행위의 불확실성과 역동성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다. 지금 쓰고 있는 장비가 사실은 값이 얼마라는 속물적인 이야기를 하면서도, 동시에 그래서 과학은 가치 중립적이지 않다는 도전적인 명제를 던지기도 했다. 중앙분석센터에서 전자 현미경을 다루는 모습을 보여주며, 사실 나는 전자 현미경에 쓰인 기술은 깊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에게 있어서 일종의 블랙박스와 같다는 이야기를 통해 철저히 분업화된 현대 과학의 민낯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이야기했다.

“그래도, 나는 그렇게 생각해. 결국 실험도 연구도 사람이 한다고. 사람이 살아야 연구가 있고 과학이 있다고.”

그것은 나 자신이 살기 위한 주문이기도 했고, 소리 없이 사라져 간 다른 이들에 대한 나름의 예우이기도 했다. 과학은 사실 그렇게 위대하지 않고, 그렇기에 그 과학을 수행하는 이들은 거대한 이상에 깔려 희생될 필요 없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어야 하니까.

#8

과학기술학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그 현장에서 일하면, 뭔가 새로운 접근을 시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일말의 기대를 하면서 대학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팍팍한 현실 앞에 내 대학원 생활은 평범한 결말을 맺게 되었다. 구호를 외치고 혁명을 이끌기도 전에, 당장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실험과 여러 업무 앞에 무너지는 나는 그저 작은 대학원생이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나는 이렇게 살아있다. 잘 살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현장에서 여러 문제에 몸으로 직접 구른 뒤에 결국 살아있다. 당장은 부질없어 보일지라도, 연구 현장에서 흔히 제기되는 어려움을 과학기술학을 배운 입장에서 조금은 낯선 시선에서 접근한 경험을 간직하며 어떻게든 나는 살아있다. 그 경험이 결국 우리를 살리는 실마리가 되리라는 희망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믿는다. 박사학위는 또 다른 시작인 만큼, 앞으로 이 희망을 지켜나가야 할 또 다른 현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럼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1] ‘교과서진화론개정추진위원회’, 이른바 ‘교진추’라는 창조과학 단체가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에서 시조새 등 진화론 관련 내용을 삭제하라는 청원을 넣어 실제로 성공할 뻔했으나, 2012년에 각종 보도가 터지고 네이처 기사로까지 실리며(https://www.nature.com/articles/486014a) 실상이 알려져 다행히 실패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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