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 있는 “심리상담의 기술”

이화여자대학교 상담심리학 석사과정
김예지
ducl1896@gmail.com

1. 심리상담계 내 과학기술의 위치

‘슈퍼비전’을 위해 새벽의 한 가운데에서 심리상담에서 나눴던 얘기들을 한 글자씩 써 내려간다. 사이사이의 침묵과 눈물, 휴지 뽑는 소리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녹음파일을 수없이 돌려 들으며 생각한다.  

더 나은 방법은 없을까?

심리상담은 ‘내담자’가 일상생활에서 겪고 있는 다양한 심리적 문제에서 벗어나, 보다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상담자와 내담자가 협력하여 문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이다. 상담 진행방식, 접근법에 따라 다양한 형태의 심리상담이 있지만 결국 독립된 공간에서 인간 대 인간으로 대면하는 행위라는 사실은 동일하다. 이 순간만큼은 모든 전자기기를 비롯하여 여타 외부세계로부터 차단된 공간에서 상담자와 내담자 간의 상호작용, 특히 내담자의 내면세계에 집중한다. 모든 순간이 오프라인인 상담에서의 특별한 경험이 심리상담이 지닌 강점이라지만, 이러한 경향성이 상담을 넘어 모든 과정까지 이어지면서 현대 과학 기술의 산물들이, 특히 한국에서는 유난히 상담계에 가까이 닿지 못하고 있다. 50분, 한 번의 좋은 상담을 위해 상담자는 예약메일을 써내려 가고 예약날을 문자로 전송하며, 이번 상담에 나눴던 말들을 써내려가고 슈퍼비전을 받기 위해 수 시간의 정성을 들인다. 동시에,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상담을 받기로 결심한 예비 내담자는 이곳저곳 검색을 해보지만 좋은 상담 관련 리뷰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상담자 소개, 비용, 상담 전문분야 등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지 못할 것이다. 예약은 전화 혹은 문자로만 진행이 되고 온라인 상담을 받고 싶을 경우 화상통화 프로그램인 ZOOM을 통해 만나야 한다.

이미 살아가는 게 힘에 부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깊은 어려움을 다루는 일인 만큼 상담자, 내담자 모두가 보다 쉽고 빠르게 질 좋은 상담을 하고 받기 위해 과학 기술의 보조가 필요하다. 그러나 대면 활동의 최전방에 있고, 개인의 민감한 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온라인 작업을 최소화하는 과정에서 상담자와 내담자들은 과학기술의 편의성을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 19로 인해 심리상담의 수요가 증가하고  비대면 상담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면서 과학기술과 상담계 내  윤리 간의 괴리도 심화되고 있다. 

상담과 과학기술의 동행은 어떻게 이뤄져왔고, 어디로 나아가는가?

2. 보조하는 기술 vs 대체하는 기술

코로나 19의 여파로 등장한 ‘코로나 블루’로 인해 심리상담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심리상담 관련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직접 상담센터를 찾아가기엔 부담이 되는 사람들을 위해 국가 차원의 전화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최적의 상담자, 상담센터를 매칭한 후 전화, 텍스트, 화상 등을 통해 상담을 지원하는 앱들도 늘고 있다. 이처럼 전문 상담자를 통한 상담 서비스 외에도, 비슷한 사람들과 심적 부담감을 나눌 수 있는 공간부터 개인이 스스로 자신을 돌볼 수 있도록 감정 기록, 명상, 나아가 특정 정신장애에 효과적인 치료적 접근법을 제공하는 서비스들도 있다. 더불어 최근 서울시 및 ‘트로스트’와 ‘마인드케어’ 등의 정신건강 앱에서 ’심리상담 AI 챗봇’을 도입하였다. 이처럼 챗봇은 사람에 의해서만 진행되던 기존의 심리 상담을 인공지능으로 대체하는 기술 중 하나로 주목받고 있다. 이를 통해 상담을 찾는 사람들은 보다 쉽고 편하게 비대면 심리상담을 경험하지만, 그들이 ‘좋은 상담’을 받고 있는지는 보장할 방법이 없다. 챗봇이 유용하게 쓰이는 기업의 일반적인 고객센터와는 다르게, 심리상담에서는 같은 심리적 문제라도 내담자의 성향에 따라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적확한 표현을 담아 전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상담자와 내담자가 서로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해졌다지만, 상담자들이 상담을 준비하는 과정을 원활하게 도와주고 상담 자체의 질을 높여주는 기술의 등장은 요원해보인다. 내담자들이 더 ‘좋은 상담’을 받게 하기 위해서는 ‘상담을 보조하는 기술’이 ‘상담을 대체하는 기술’보다 선행되어야 한다. 

상담을 보조하는 기술은 무엇일까?

한 회기의 심리상담을 위해 상담자는 여러가지 기술적 도움을 받게 된다. 심리상담에 최적화되어 개발된 프로그램이 아니라 기존에 다른 분야에서 쓰이던 프로그램을 상담자들이 사용하는 것은 한계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  상담을 준비하고 관리하는 데에는 크게 세 가지 프로그램, 상담 내용 기록 프로그램, 상담 자료 관리 및 저장 프로그램, 화상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2-1. 심리상담 보조프로그램 – 축어록 기록 프로그램

축어록은 상담 동안에 나눴던 상담자와 내담자의 모든 대화내용과 언어·비언어적인 표현을 텍스트화한 것이다. 축어록의 목적은 상담자 본인이 했던 상담 내용을 되돌아보거나 선배 상담사나 멘토에게 슈퍼비전을 받아 상담자로서의 역량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그렇기에 축어록은 상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과정인데, 축어록을 풀기 위해 상담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프로그램의 역사는 비교적 짧다. 상담 특성상 축어록 프로그램을 선정하는 데는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상담 관련 개인정보가 수집 및 이용되지 않을 것. 슈퍼비전과 같이 제3자에게 내담자의 정보를 공유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첫 상담 시 작성하는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동의서에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온라인 상의 데이터 공유는 동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상담자는 데이터 보안이 철저하거나, 데이터 수집을 하지 않거나, 오프라인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만 사용한다. 둘째, 상담자와 내담자의 대화가 분리되어 정리될 것. 축어록을 쓸 때 내01(내담자의 첫 번째 발화), 상01(상담자의 첫 번째 발화) 처럼 번호와 각 발화자를 구분해서 써야하기 때문에 대화가 사전에 분리되면 축어록 작성 시간을 절감할 수 있다. 

<그림1> 축어록 예시 (위 내용은 연출된 가상의 대화입니다)

초기에는 녹음 파일을 켠 후 엑셀로 내담자와 상담자의 말을 칸마다 구분해가면서 축어록을 풀었는데, 점차 전문화된 축어록 프로그램이 등장하였다. 상담사들 사이에서 최근까지도 활발하게 사용된 프로그램은 ‘토크노트’, ‘풀다’로, 녹음 플레이어와 문서 작성이 동시에 가능하다. 단축키를 통해 녹음파일 되감기나 발화자 구분 등 간단한 기능을 사용하여 축어록을 풀 수 있기 때문에 엑셀보다는 편리하지만 여전히 시간이 많이 걸리는 건 마찬가지이다. 다음으론 구글 문서를 켜놓고 녹음파일을 틀어서 구글 음성 인식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은 한 번 소리로 상담 내용을 복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주기적으로 음성 인식을 다시 켜줘야 하기 때문에 축어록을 푸는 데 걸리는 총 시간은 비슷하다. AI 음성인식 기능은 개인정보를 수집하기 때문에 사용할 수가 없지만 최근에 암호화되어 개인정보를 수집하지 않으면서 자동으로 AI 음성인식이 가능한 AI 녹취록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네이버 클로바노트’와 상담사들이 직접 만든 ‘마이 카운슬러’가 대표적인데, 네이버의 경우에는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에 동의하지 않는 옵션이 있는 대신에 비동의 시 무료로 이용 가능한 음성인식 시간이 동의할 때에 비해 줄어든다. 상담자들이 직접 만든 AI 녹취록 서비스는 보안이 더 강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30분 이상의 녹취는 유료로 서비스된다. 이러한 AI 음성인식의 등장으로 축어록이 훨씬 간편해졌지만, 클로바 노트의 경우엔 베타 버전이기 때문에 언제 다시 유료화될 지 모르고, 매주 여러 내담자와 함께한 상담 내용의 축어록을 돈 주고 푸는 것은 상담사들에게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상담자만을 위한 음성인식 서비스는 분명 필요하지만, 데이터 수집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여타 AI 음성인식 서비스와 다르게 외부 기업들의 투자가 이뤄지지 않는 큰 요인으로 생각된다.  

2-2. 심리상담 보조 프로그램 – 클라우드 서비스 & 화상 프로그램 

이전에는 서류 파일에 내담자와 관련된 정보들을 프린트하여 각 센터에 보관하였지만,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파일을 암호화하여 개인 컴퓨터에 저장하는 방법도 생겨났다. 더 나아가 온라인 클라우드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내담자들의 기록물들을 각기 다른 클라우드에 보관하기 시작했다. 구글 드라이브와 같은 클라우드 서비스의 데이터는 구글 데이터 센터에 안전하게 보관되고, 데이터는 전송될 때도, 로컬 기기에 보관 중일 때도 암호화된다. 이처럼 안전성 보장에 대한 명시가 되어 있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상담자들은 여전히 불안해하는 실정이다. 의료계에서는 EMR(전자의료기록)과 같이 의료기록들을 전산화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고, 그만큼 다양한 EMR 프로그램들이 개발됐지만 아직 심리상담계에서는 심리상담 기록에 대한 통일된 전산화 방법이 없어 적절한 전자 기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담자가 상담자나 상담센터를 바꾼 후 상담자의 요청으로 이전 심리 상담이나 심리 검사 기록이 필요해도 확인할 길이 없다. 내담자는 일상생활이 힘에 부치는 상황임에도 또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야 하고 심리상담에 필요한 일련의 과정을 새로이 거쳐야 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상담 회기와 비용이 늘어나게 된다. 

코로나 19로 인해 비대면 상담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면서 화상 프로그램을 이용한 상담이 늘고 있다. 물론, 이전에도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대면 상담이 어려운 경우에는 온라인 상담을 진행했지만, 상담심리 자격증 취득을 위한 수련 기준에 기존에는 없던 비대면 상담 항목이 따로 추가될 정도로 코로나 19의 영향이 크다. 대부분의 경우 ZOOM을 사용하는데, ZOOM에서 화면 공유 시 해킹의 위협이나 개인정보 유출 관련 문제가 발생하면서 새로운 대안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내담자들의 사적인 이야기부터 얼굴의 노출 위험이 있기 때문에 상담자들은 이러한 상황을 불안해하고 있다. 

<그림2> 비대면 상담

3. 심리상담과 과학기술을 이을 교량, 사회제도

미국의 경우에는 상담자들이 비디오를 통한 슈퍼비전이 축어록을 대체하는 추세이고, HIPAA(미국 의료 정보 보호법)에서 인정한 클라우드 서비스에 대한 정보들이 리스트화되어 제공되고 있다. 심리상담 앱의 순위를 나열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심리상담 관련 어플이 출시되어 있고, 앱 내에서 화상 상담을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다. 한국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심리상담계가 성장하고 있지만, 미국과 달리 국내 심리상담계의 부족한 인프라는 미국과 달리 심리상담과 관련해서 아직까지 적절한 법제화가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청소년 상담사와 임상심리사를 제외하고 심리상담 관련 자격증들은 국가가 아닌  여러 다른 학회에서 발급 및 관리하고 있기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상담자라는 직업의 범위는 매우 모호하고 통일되어 있지 않다. 여러 갈래로 파편화된 상담자와 상담센터들은 각기 다른 학회에서 제공하는 윤리 강령 하에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상담을 해 나가게 된다. 법이라는 명확한 울타리 없이 상담자는 윤리라는 다소 개인적인 책임감과 판단에 의해 내담자들의 개인정보가 좌우되는 매우 부담스러운 상황에 놓이게 되고, 온라인 기록물 보관이나 화상 프로그램에서의 보안과 같은 온라인 윤리는 국내 상담계에서 아직 제대로 합의된 바가 없기 때문에 온라인 기술 사용에 있어서 상담자는 더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렇게 통합된 규칙과 시스템의 부재는 과학기술의 발전을 지연시키고, 이는 또다시 불안정한 상담시스템의 악순환을 낳게 된다. 

심리상담과 과학기술은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다. 방법이 다를 뿐 인간이 보다 편안하게 혹은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는 점에서 심리상담과 과학기술 간에 공유하는 공통점은 명백히 존재한다. 다만, 인간이 곧 심리상담의 주체이자 매개체라는 점, 심리상담계 내 합의된 시스템이 없다는 점이 심리상담에 대한 과학 기술의 개입을 어렵게 한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심리상담과 과학기술이 서로 닿기 위해서는 법이라는 다리가 필요하다. 법제화를 통해 상담자와 내담자를 보호할 하나의 울타리 아래서 심리상담의 위치가 명확해지면 과학기술이 상담계를 보다 원활하게 보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상담자들이 보다 편리하게 상담을 준비해나가면서 50분이라는 짧은 상담 시간을 더욱 밀도 있게 쓸 수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법 아래서는 상담자들도 보다 자유롭게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며, 당사자성을 가지고 심리상담을 위한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도전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최종적으로 심리상담과 관련된 국가 차원의 지원도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법으로 통일된 시스템을 가지고 상담과 과학기술이 만나 더 많은 상담자와 내담자가 서로 긴밀하게 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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