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여학생이 던지는 사라지지 않는 질문

– 과학기술혁신 공약 토론회 및 청년과학기술인과의 토크쇼 패널 참여 후기

POSTECH 화학과 석사 졸업

지은경

Ekjee0328@gmail.com

12월의 마지막 수요일, 새해를 맞이하기 전 잠깐의 휴식을 위해 복잡한 서울을 떠나 바닷가 마을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대학 선배와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 난데없이 KAIST에 다니는 지인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에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혹시 1월 중순에 열리는 대선 행사에 참석할 수 있을까요? 대선 후보와 직접 이야기 나누는 자리에요.”

평범한 회사원이던 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대선 후보와 마주할 기회가 찾아왔다.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과 학부 및 대학원 총학생회에서 2022년 1월 18일부터 3일간 ‘과학기술혁신 공약 토론회 및 청년과학기술인과의 토크쇼’를 개최하였다. 기본적으로 대선 후보가 직접 참여하여 과학기술계 당사자들과 함께 과학기술 정책에 관해 질의응답 하는 기획이었다. 바른과학기술사회실현을위한국민연합(과실연)과 변화를꿈꾸는과학기술인네트워크(ESC)에서 공동 주관하는 행사였는데, 나는 ESC 소속으로 ‘청년과학기술인과의 토크쇼’의 패널로 섭외를 받았다. 전화를 건 지인은 행사가 평일에 진행되는 데다가 현업에 있는 여성 과학기술인을 찾기 어려워 돌고 돌다가 나에게 전화를 건 것이라고 했다. 다행히 시간을 낼 수 있을 듯하여 그 자리에서 바로 제안을 수락했다. 5분도 채 안 되는 통화를 끊고 나자 심장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대선 후보를 만난다고?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나눠야 하지?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머릿속이 무수한 물음표로 잔뜩 엉킨 기분이었다. 

나만 할 수 있는 질문을 찾아서 

사실 과학기술인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공적인 자리에서 발화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KISTEP과 미래창조과학부에서 진행하는 기술영향평가에 과학을 전공하는 시민으로 참여한다던가, 과학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전세계가 나선 함께하는 과학행진에서 이공계 여성 대학원생으로서 마이크를 잡고 연설을 진행하기도 했다. ‘더 나은 과학과 더 나은 세상을 함께 추구한다’는 캐치프레이즈가 나의 이념과 꼭 맞아서 과학기술인 시민단체인 ESC에서도 오랜 기간 활동하고 있다. 내가 발 담그고 있는 과학기술계와 과학이 만들어 나갈 세상이 조금이라도 더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에 기회가 닿는 대로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해오던 와중에 과학기술 정책에 관해 대선 후보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정책의 판도를 조정할 수 있는, 대한민국 최대의 권력을 가질 이에게 당사자의 목소리를 직접 전한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이 스트라이크 존을 빙빙 돌아가는 볼이었다면 이번에는 미트에 일직선으로 꽂아 넣는 스트라이크인 것이다.

내가 참여하게 된 ‘청년과학기술인과의 토크쇼’는 젊은 과학기술인 여러 명과 후보자 한 명이 대담하는 자리였다. 1월에 이미 잡힌 일정이 많았던 나는 어느 후보자의 세션에 들어갈지 스케줄을 조율하다 자연스레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세션의 패널이 되었다. 토크쇼라는 이름이 붙은 만큼 앞서 진행되는 정책 토론회보다는 무게를 덜 수 있었으나 주어진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 질문을 미리 만들어 두어야 했다. 질문은 모든 후보에게 동일하게 던질 공통 질문과 패널에게 한 개씩 할당된 개인 질문으로 나뉘었다. 공통 질문은 어느 정도 추려진 상태라 개인 질문에서 어떤 주제를 다루어야 할지 고민되었다. 추후 오리엔테이션에서 각자 만들어온 질문을 피드백하기로 했지만 일단 다른 패널과 겹치지 않는 질문이 무엇일까 생각하는 게 우선이었다.

구체적인 질문 하나를 떠올리기보다 내가 거쳐온 정체성을 훑어보는 일부터 시작했다. 여성, 과학기술중점대학 출신, 대학원생, 기업 연구원… 지독하게 힘들고 가난했던 대학원 생활이었지만 인건비, 노동 시간, 대학원생 인권 등의 문제는 총학생회에서 꺼낼 것으로 예상하여 제외했고, 기업 연구원으로 발화하는 건 굳이 이 자리에서 할 일은 아닌 거 같았다. 학부생, 대학원생에 비하면 비교적 보호 받는 입장이기도 하고 말이다. 다른 곳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보다는 나만이 꺼낼 수 있는, 나여야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다 보니 소수자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섭외 전화에서 나눴던 대화도 한몫했다. ‘여성’ 과학기술인을 찾기 어렵다던 그 말. 행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남성일 것이고 과학기술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결국은 남성이다. 마침 대학원을 졸업한 뒤 삶의 방향성을 고민하던 내가 당장 직면한 질문이기도 했다. 이공계 여성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여성을 주제를 잡고 질문을 구체적으로 다듬었다. 내가 가진 어려움을 질문으로 옮기고자 하니 당장 마주한 임신, 출산, 육아가 떠올랐다. 지속가능한 연구자의 삶을 위해 꼭 필요한 질문이지만 비혼, 비출산 등 모든 여성을 끌어안을 수는 없어 일단 제쳐두었다. 행사에 자리하는 여성이 적을 것으로 예상되니 가급적 많은 여성 동지들을 대표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여성이기에 겪었던, 우리가 지금도 겪고 있는 어려움이 뭘까? 나 하나의 삶만으로는 가늠이 어려워 학부 때부터 스쳐 간 여자 친구들을 떠올려 보았다. 분명 학부 때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대학원으로 시간대를 돌리니 그 수가 팍 줄었다. 법조계, 의료계 등 아예 다른 학문으로 진로를 틀기도 했고, 이공계 대학원을 진학했어도 박사과정까지 완주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일단 나부터 석박사통합과정 이탈자이다. 그래서 우리 과에 여자 교수님이 거의 없던 걸까? 자꾸만 사라져 가던 학생들, 나조차도 포기한 학계의 꿈. 학내에서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여학생 비율이 높은 학과임에도 불구하고 박사후연구원, 연구교수에서조차 여성은 찾기 힘들었다. 

과학기술계에서의 여성 인력 이탈로 질문을 확정하고 나니 이번에는 단어 선택과 문장 표현이 고민이었다. 당일 진행 상황에 따라 추가 질문이 가능하지만 내 이름으로 던지는 단 하나의 대표 질문인 만큼 짧지만 많은 것을 이끌어 낼 수 있길 바랐다. 공약집에서도 찾을 수 있는 정책 계획보다는 현상에 대한 후보자의 견해와 정책 측면에서의 해결 방안까지 복합적으로 물을 수 있는 질문을 고안하려 애썼다. 내 질문은 결국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었다. “학부 때는 여자 동료가 많았지만 대학원에서는 그 수가 줄었고, 교수급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학계에서 여성이 이탈하는 현상과 원인에 대한 후보자님의 견해,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은 정책 측면에서 어떤 게 있을지 궁금합니다.” 

사라진 여학생, 10년 전 이공계 롤모델을 만나다.

학부 1학년 때 들은 어떤 과목에 롤모델을 선정하고 그 이유를 적어오라는 과제가 있었다. 놀랍게도 나는 그때 안철수 후보를 롤모델로 발표하였다. 당시 안 후보는 정계에 입문하기 전으로, 방방곡곡 토크콘서트를 다니며 청춘 멘토로 활약하던 시절이었다. 몸담고 있는 학문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고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것, 이공계에 발을 내디딘 내가 꾸었던 꿈이었다. 대학에 막 입학했을 때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여성으로서 이곳에서 살아남기란 영 녹록지 않았다. 수많은 성차별과 성폭력을 직접 당하거나 목도해야 했고, 내 미래를 조금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는 여자 선배는 존재하지 않았다. 당장 우리 과만 보더라도 여자 교수님은 지금까지 단 한 명에 불과했다. 내가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머나먼 꿈이 아니라 당장의 생존을 걱정해야 했다. 삭막한 현실 속 여자 동료들은 조용히 사라져갔고 나도 그렇게 사라진 한 명의 여학생이 되었다. 

행사 참석을 위해 대전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새삼 학부 1학년 때 썼던 롤모델 과제 보고서를 찾아서 읽어보기도 하고, 10년 전의 롤모델을 드디어 만나러 간다는 우스갯소리를 친구들에게 남기기도 했다. 행사 안내자료를 찬찬히 살펴보며 시간이 남으면 덧붙일 수 있는 추가 질문도 만들어 두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캠프에서 다른 사람을 보냈고,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선거 운동을 잠정 중단해 불참 의사를 밝혔다. 개인 스케줄에 맞춰서 들어간 안철수 후보 세션이었는데 얼떨결에 후보자를 직접 마주하는 몇 안 되는 패널이 되었다. 안철수 후보는 대선 주자 중 과학기술인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기에 이번 행사에서 어떤 답변을 들을 수 있을지 기대감을 품은 채 대전역에 내렸다. 

현장 분위기를 미리 파악하기 위해 같은 날 오전에 진행되는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선대위 디지털대전환위원장 세션을 처음부터 끝까지 온라인 방청하였다. 유튜브 생중계를 진행했기 때문에 동시 접속자 수로는 행사의 열기를, 쉴 새 없이 달리는 댓글로는 온라인 청중의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웠는데 아무래도 내가 들어가는 오후 세션은 후보자가 직접 출연하기에 더욱 많은 관심이 쏠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후보자를 만나는 것 자체로도 썩 부담스러운 일인데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니 약간의 긴장감이 올라왔다. 떨리는 마음을 다잡으며 KAIST로 향했다. 코로나 시국의 방학이라 더욱 황량한 캠퍼스에서 공지에서 본 낯선 건물을 찾아내었고 비로소 행사에 함께할 사람들을 마주했다

예상했던 대로 패널로 들어갈 사람들은 나를 제외하고 모두 남자였다. 사회자도 남자, 후보자도 남자이므로 나는 해당 세션에서 유일한 여성이 되었다. 이공계 대학을 다니며 숱하게 했던 경험이지만 정책과 관련된 행사에서마저 이렇게 되는 건 영 씁쓸한 일이었다. 만약 나 또한 행사 참석이 어렵다고 했다면 이 세션에 여성 패널은 아예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공계의 성별 불평등은 성비로만 봐도 명확하게 드러날 정도지만 여성 당사자가 아닌 이상 먼저 이야기를 꺼내는 경우는 흔치 않다. 휴가를 내서라도 이 행사에 참석하기를, 여성과 관련된 질문을 가져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널과 사회자, 운영진은 서둘러 리허설에 들어갔다. 그저 미리 구상한 질문이 담긴 대본을 읽을 뿐인데 패널 모두 긴장한 기운이 역력했다. 질문이 입에 붙도록 수차례 연습하는 그들 사이에서 대본 구성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고 앞 시간인 정책 토론회를 온라인 방청하며 안 후보의 발화를 분석했다. 오전의 박영선 위원장과 달리 안 후보는 말하는 속도가 확연히 느린 편이라 정해진 대본을 시간 내에 소화할 수 없겠다 싶었다. 그 자리에서 스태프들과 대본을 빠르게 수정한 뒤 행사장에 입장했다. 정책 토론회가 끝난 뒤 휴식을 취하고 돌아온 안철수 후보와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꽤 다양한 학교의 사람이 모였다며 그는 다소 놀란 눈치였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가라앉힐 틈도 없이 자리에 앉자마자 스탠바이에 들어갔다. 3, 2, 1. 드디어 청년과학기술인과의 토크쇼가 시작되었다. 사회자의 경쾌한 인사로 시작된 세션은 대본대로 순조로이 흘러갔다. 모든 후보자에게 동일하게 던지는 공통 질문은 사전에 공유되었기 때문인지 어느 정도 예상한 선에서 답변이 나왔다. 전반적으로 안철수 후보는 자신의 경험이나 관련 지식 기반으로 자신의 이공계 정체성을 어필하고자 하였다. 개인 질문 중에서는 청년 창업과 관련된 내용도 많았는데 안랩 설립 이야기를 꺼내며 청년 창업자들의 공감을 유도하였다. 앞선 답변을 듣고 있으니 내 질문은 어떻게 답변할까 점점 궁금해졌다.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왔고 나는 차분히 프롬프터에 띄워진 질문을 읽어나갔다. 질문 한 개당 질의 시간이 5분으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질문을 너무 천천히 읽지는 않으려 했다. 이공계에서 여성이 자꾸 사라진다는 이야기에 공감하던 그는 첫 마디로 딸의 이야기를 꺼내었다. 지금 자신의 딸도 마주하고 있는 상황이며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유능한 아버지를 두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비슷한 선상의 경험을 한다는 것에 놀라워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철수 후보는 교육으로 여성의 이공계 진입을 늘려야 한다는 주장으로 답변을 마쳤다. 아쉽게도 이후 이어진 딜레이로 추가 질문 시간은 갖지 못했다. 

사라지지 않는 질문이 많아지기 위해서

세션을 위해 쏟았던 시간과 노력에 비해 돌아온 대답은 다소 단출했다. 이공계 여성의 이탈을 십분 공감하는 후보자의 생각을 알 수 있던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나 이탈을 방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교육을 제시한 건 썩 달가운 답변은 아니었다. 나와 친구들이 ‘사라진 여학생’이 된 것은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는 고학력자로 분류될 정도로 학부부터 대학원까지 많다면 많은 교육을 받았다. ‘수학과 과학은 남자들이 훨씬 잘하지.’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과학기술에 대한 꿈을 꿋꿋이 키워온 우리가 이공계를 이탈하게 된 건 이 공간에서 여성으로서 생존할 수 있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 문제의 해결 방법은 그 누구도 우리에게 답해주지 못했다.

질문 하나당 주어진 시간이 질문 발화를 포함해 딱 5분이다 보니 던진 토픽의 무게에 비해 시간이 부족했던 건 사실이다. 티키타카를 주고받으며 보다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다뤄야 하는 질문은 매우 많은 반면 주어진 시간은 턱없이 모자랐다. 그럼에도 대통령 후보자에게 당사자성을 가지고 직접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자리가 만들어진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다. 통계, 보고자료 등을 기반으로 정책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 장애인, 외국인, 성소수자 등 소수자의 목소리는 직접 들어야 도중에 지워지지 않는다. 단순히 숫자로만 분석했을 때는 쉬이 드러나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행사가 끝나고 난 뒤 여러 매체를 통해 기사가 발행되었다. 특히 안철수 후보는 본인이 직접 참석한 데다 과학기술인의 당사자성을 지녔기에 언론에서 집중 보도하였다. 여성 문제는 다소 예민할 수도 있는 질문인지라 혹시 악성 댓글이 달리지는 않을까 보도자료를 찾아보았는데 그런 걱정은 전혀 할 필요가 없었다. 대부분의 기사에서 선진기술 개발이나 인력 충원, 청년 창업 등과 관련된 답변만 다루었기 때문이다. 어느 기사를 읽어보아도 내가 던진 질문은 쏙 빠져있었다. OT에서 후보자에게 던질 질문을 모았을 때도 들었던 생각이지만 나만 질문의 결이 달랐다. 창업 지원, 전공 선택 등 이공계 내에서의 미래를 물을 때 나는 이공계냐 아니냐 생존을 물었다. 대통령 후보자에게 던지는 유일한 질문으로 꼽았을 만큼 이공계에서의 생존은 여성 당사자로서 실로 간절한 문제였다. 허나 나 혼자만 결이 다른 질문을 가져갔던 것과 보도자료에서 여성이 말끔히 삭제된 점은 과학기술계 여성의 현주소를 다시금 보여주었다.

과학은 ‘일 더하기 일은 이’와 같은 공식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알고 보면 합의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 학문이다. 어떤 조건을 어떻게 가정하고 계산할지, 어떤 데이터부터 아웃 라이어로 처리하여 평균을 낼 것인지 등의 세세한 보정부터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면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까지 끊임없는 토론과 합의 속에 과학은 만들어진다. 과학이 다루는 수많은 주제 또한 학문이라는 이름 아래에 비슷한 속도로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연구비를 수주하지 못하는, 소위 비인기 주제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기도 하다. 어쩌면 과학이야말로 지극히 정치적인 학문일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더욱 다양한 시선과 경험을 모아 다채로운 해석과 함께 평등한 과학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성비만 보더라도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인 과학기술계를 조금이나마 바로 잡을 수 있는 게 바로 과학기술정책이다. 과학기술계 인력을 어떻게 다채롭게 구성할 수 있을지, 연구비의 행방을 어떻게 고르게 이끌어 낼 수 있을지 정책 측면에서의 고민과 서포트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사자성을 지닌 이들과 정책 결정자가 만나는, 이번 행사와 같은 자리가 계속해서 만들어져야 한다. 숫자로는 표현되지 않는 소수자들의 목소리가 정책과 보다 가깝게 맞닿을 수 있도록 이어주는 접점이 필요하다. 비록 이번 행사에서는 여성으로서의 존재가 또다시 삭제되는 일을 겪었으나 만약 다음에 소수자와 관련된 문제를 여럿이서 말하게 된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까? 정책의 방향을 살펴보는 자리에서 한 명이 한번 말하는 것과 여러 명이 반복해서 말하는 것은 언론이든 정계든 받아들이는 경중이 다를 테니 말이다.

행사가 끝난 지 6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글을 쓰다 보니 신기한 점을 발견하였다. 과학기술혁신 공약 토론회 및 청년과학기술인과의 토크쇼에 직접 참여한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와 새로운물결 김동연 후보는 각각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와 단일화하였고, 캠프 사람을 대신 보내거나 불참했던 세 명의 후보는 마지막까지 대선 레이스를 완주하였다. 후보자가 사퇴한 경우 우리가 투자한 시간과 노력은 무용지물이 되는 걸까? 나는 세상에 답해야 할 질문이 많아지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우리가 던진 질문은 대선 후보에게 직접 이야기하고 싶었을 정도로 쉽사리 해결할 수 없는 것이고, 명확한 해결 방안이 제시되지 않는 한 지속해서 답변을 요구할 것이다. 질문을 던지고 받은 주체는 바뀔 수 있지만 제시된 질문은 해결될 때까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 자신과 더 나은 과학을 위해 당사자들의 고민을 담은 질문이 앞으로도 계속 많아지길, 사라지지 않는 질문들이 결국에는 해답을 얻어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 있길 기대해본다.


읽을거리

보이지 않는 여자들

데이터는 객관적이고 독립적이며 이를 기반으로 하는 정책 결정은 투명한 것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거대한 데이터 속에 숨어있는 ‘데이터 공백’은 여성과 같은 소수자를 쉽사리 지운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데이터 공백이 만드는 사회적 불평등에 관해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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