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와 젠더, 가상의 자기 정체성

Metaverse and gender, a virtual self-identity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박사과정

황유진

gomsing@kaist.ac.kr

COVID19 시기에 비대면 활동 및 업무가 기존에 비해 급증하였다. 그 과정에서 메타버스(Metaverse)의 인기 또한 증가하였다. 메타버스의 시대를 논하면서 가장 많이 언급된 플랫폼은 제페토, 게더타운과 같이 비교적 최근 등장한 서비스들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는 VRChat이 있었다. VRChat은 2017년에 소개된 가상 플랫폼으로, 운영자들은 서버 관리와 기본적인 설계 유지 보수만 할 뿐, 캐릭터와 그 캐릭터들로 할 수 있는 행위들은 온전히 유저들에게 달려있다. VRChat이 가진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이 자유도이다. VR 디바이스를 사용하여 사용자는 캐릭터와 신체 동작과 얼굴 표정을 완전히 연동할 수도 있기에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가상 현실 접속과 가장 유사한 형태의 소셜 플랫폼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 VRChat이 소개되었을 때, 개발자들은 유저들이 자기를 닮은 캐릭터나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2018)> 처럼 자신의 이상적 외형 혹은 본인이 좋아하는 캐릭터 외형을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유저들은 캐릭터 디자인에도 VRChat의 자유도를 반영하였다. 완전히 형이상학적 외형을 선택하는 사람부터 차량을 자기 외형으로 선택하는 사람까지 등장하였고, 인간 외의 캐릭터들과 인간 캐릭터들이 동등한 위치에서 교류하는 새로운 플랫폼이 형성되었다. 이처럼 VR 상에서 ‘신체’의 개념은 현실 세계와 완전히 다른 법칙을 따르게 되었다. 반면에 인간 형태를 가진 캐릭터들에서는 또 다른 독특한 현상이 보였다. 자신의 성별을 바꾸어, 여성 캐릭터를 선택하는 남성들이 급증한 것이다. 

메타버스의 자유도,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

왜 이렇게 이 메타버스 플랫폼에는 여성 캐릭터의 모습을 한 유저들이 많을까? VRChat의 공식적인 통계에 의하면 남성 유저와 여성 유저의 비율은 대략적으로 8:2이다. 즉, 무수히 많은 여성 캐릭터들의 상당수는 사실 남성 사용자들이 선택한 가상의 여성 외형인 것이다. <왜 VRChat 에서는 모두가 여성 애니메이션 캐릭터인가? Identity, Gender, and VRChat (Why is everyone in VR an anime girl?)> 이라는 굉장히 도발적인 제목을 가진 비디오 에세이는 이 현상에 대해 두 가지 이유를 제시했다[1]. 첫 번째는 게임 개발 엔진 Unity를 사용하여 캐릭터 외형을 가져와야 하는 플랫폼 특성상 여성 캐릭터가 모델링이 더 많이, 더 나은 외형으로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전히 기술적 편의성과 심미학적 측면에서 여성 캐릭터를 선택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델링 기술이 발전하면서 남성 캐릭터 모델들도 많이 나왔지만 여전히 여성 캐릭터가 우세하다. 그래서 위 비디오 에세이에서는 두 번째 이유를 현실 세계에서의 본인의 젠더 정체성 변화의 한계와 가상현실의 젠더 정체성의 자유도로 꼽았다. 

가상 공간에서 본인의 성별을 숨기거나 바꾸는 것은 최근 일어난 일만은 아니다. 일명 ‘넷카마 (인터넷의 Net 과 여장남자를 뜻하는 일본어 오카마를 합친 신조어)’ 라고 불리는, 온라인상에서 여성인 척 행동하는 남성들부터 게임 내에서 유독 여성에게 집중되는 성희롱 등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목소리 필터를 쓰는 여성 플레이어까지, 가상의 성별 변환은 아마 인터넷 통신이 등장함과 동시에 일어났을 것이다. 그래서 누구에게는 온라인상에서 자신의 성별을 바꾸는 것이 그저 익명성에 기반한 자기 편의성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메타버스상에서의 젠더 정체성은 사뭇 다르다. 특히나 본인이 직접 움직여서 ‘체화’하는 젠더를 선택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인다. Rosalie Hooi와 Hichang Cho가 2014년도에 진행한 가상 아바타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아바타 유사도와 자기 자각성과 현존감은 양의 상관관계를 가지지만, 자기 표출도는 음의 상관관계를 가진다고 한다[2]. 풀어 말하면, 자기와 비슷한 모습을 가진 아바타일수록 더 자기 자신과 쉽게 동화시키지만, 표현의 자유도는 되려 자기와 다른 모습을 가진 아바타 일수록 높아진다는 것이다. 일본 버튜버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는 가상의 여성 자아를 만들어 냄으로써 현실에서 그들이 사회적 체면 때문에 누리지 못하였던 화려함과 ‘여성성’을 누릴 수 있기에 여성 캐릭터를 선택하였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하였다[3]. 이는 코스프레를 하는 심리와 연관 지을 수 있다. 2017년 코믹콘 (Visioncon)에서 진행된 인터뷰 연구에 의하면 남성 캐릭터로 코스프레하는 여성의 경우 본인 내면의 한 특성을 외형적으로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F2M (female to male) 코스프레를 한다고 답변하였다[4]. 외면과 내면의 자아가 가지는 괴리가 있을 때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 새로운 외면적 자아를 가지기도 하는데 그 방법 중 하나가 가상 캐릭터의 선택이라고 볼 수 있다. 되려 가상의 세계에서 성별을 전환함으로써 사회적으로 숨겨왔던 자아를 표출하기 쉬워지는 것이다.

어디 까지가 ‘나’이고 ‘나’로서의 권리가 생기는가?

가상 캐릭터를 통해 현실 세계에서의 제약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체성을 탐색하고 자아 실현을 이뤄낸 사람들도 많지만 반면에 가상 현실에서의 정체성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대중적 이해가 확립되지 않아 생기는 사회적 문제들 또한 증가하고 있다. 특히나 VRChat 이용자뿐 아니라 버튜버(virtual youtuber)들이 증가하면서 캐릭터에 체화된 상태일 때 입은 피해의 주체와 객체에 대한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올해 2월에 13세 어린이로 가장한 BBC 기자가 VRChat에서 성인 유저들이 미성년 유저들을 대상으로 그루밍 성범죄를 저지르고 가상 성행위를 유도하는 현장을 취재하여 메타버스의 안전성과 성범죄 위험성이 크게 이슈화되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Reddit에 VRChat 유저가 본인의 VR 내 성추행 경험을 공유하자, 해당 게시물의 댓글에는 ‘네가 당한 것이 아닌 너의 캐릭터가 당한 것인데 왜 이리 예민하게 반응하냐’라는 대응이 우세하였다. 물론 온라인 안팎으로 이러한 말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가 될 수 있음에 대한 많은 비판을 받았다. 현재는 학계와 법조계 모두 가상 세계 내의 범죄에 대해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가상 세계의 범죄를 인정하든 하지 않든, 이 모든 논의의 근간에 있는 질문은 “과연 메타버스상의 ‘나’는 현실의 ‘나’와 같은 권리를 가질 수 있는가?” 이다. 이 질문에 대한 법적 사례로는 2021년 도쿄 지방 법원에 버튜버로 활동하던 여성이 한 악플 작성자를 고소한 건이 있다. 일본의 한 버튜버는 자신에 대해 모욕적인 게시물을 작성한 네티즌을 고소했으나, 피고는 그 모욕은 버튜버의 본체(사람)에게 쓴 것이 아니라 버튜버(가상의 캐릭터)를 겨냥한 것이니 모욕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변론하였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Reddit의 몇몇 댓글과 같은 논리이다. 하지만 해당 변론에 대해 도쿄지방재판소는 ‘버튜버 캐릭터의 움직임은 원고의 인격을 반영하기 때문에 버튜버를 겨냥한 모욕은 원고를 향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라고 판결 내렸다[5]. 가상 세계에서는 가상 캐릭터와 현실 주체가 정체성과 인권을 공유하고 있다는 법적 판례가 생긴 것이다. 

피고가 위와 같이 변론한 것은 스스로 자신의 가상 캐릭터를 인지하는 방식과 타인이 다른 가상 캐릭터를 인지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VRChat 상에서 1인칭인 ‘나’의 입장에서는 ‘나’는 실제의 ‘나’와 일치하지만 타인이 보기에 내 가상 캐릭터는 NPC 캐릭터와 외관상으로는 차이가 없다. 그래서 피해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입장에서는 ‘내 캐릭터가/내가 가상 세계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라고 말하는 것이 AI나 로봇에게 감정을 이입하거나 가상 캐릭터와 사랑에 빠졌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름없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메타버스상의 캐릭터는 ‘현실의 나’와 동기화되어있는 주체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쿄 지방 법원의 판결은 가상세계에서 우리 뇌가 느끼는 체화감(embodiment)과 주체감(sense of agency)을 잘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 인간의 뇌는 일정 정도 이상의 체화 과정을 거치면 자신의 몸이 아닌 물체도 본인이라고 인지하도록 설계되어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시로는 고무 손 착각 현상(rubber hand illusion)이 있다[6]. 책상 위에 고무로 된 손 모형을 올려 두고 한동안 고무손에 주어지는 자극을 눈으로 지켜보게 하면서 피험자의 팔에 동일한 자극을 주면 어느 순간부터 피험자의 뇌는 고무손을 자신의 손으로 체화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실험자가 갑자기 망치로 고무손을 내리치면 반사적으로 피험자들은 자기 진짜 손을 확 빼며 내려쳐진 부위를 문지르기 시작한다. 이는 가상 현실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난다. 자신의 움직임에 완전히 동화된 캐릭터를 보고, 경험하고 있다 보면 가상의 캐릭터는 나 자신으로 체화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상의 나에게 입혀진 피해는 현실의 나에게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가상의 성별 전환의 영향  

가상의 나와 현실의 나는 서로 상호작용 하는 관계이다. 1인칭 시점에서 새로운 가상의 ‘나’를 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강렬한 경험이고 그 경험은 실재하는 ‘나’의 현실도 바꿔 놓을 수 있다. 스웨덴에서 140명의 남녀를 대상으로 진행된 가상의 성전환 실험의 결과만 봐도 그렇다. Pawel Tacikowski 박사가 진행한 이 실험은 VR 디바이스를 통해 1인칭 시점으로 다른 성별의 몸이 만져지는 것을 보면서 실제 현실에서도 실험자가 같은 위치를 만짐으로써 가상의 성별에 체화하는 과정으로 진행되었다[7]. 그 결과, 본인의 젠더에 대해 가진 생각들이 다른 성별 체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피험자들에 비해 전형적 고정관념(예: 남성이 여성보다 리더에 적합하다)이 완화됨을 볼 수 있었다. 위 논문에서는 가상의 성별 전환을 통해 젠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젠더는 고정적이다’라는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결론지었다. 가상의 성별 전환은 성적 정체성과 젠더에 대한 편견과 같은 정신적 층위뿐만이 아니라 생체물리학적 층위까지 영향을 준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연구에서는 가상의 성별 전환이 고정관념과 단기 기억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았다. 이 연구에 의하면 여성 피험자들이 여성의 아바타에 체화되어 있는 조건에서는 젠더 편견에 기반한 위협이 되는 안내사항이 주어졌을 때 (예: ‘본 과제는 성별에 따라 성공률에 차이를 보이며 남성들이 더 높은 성공률을 보입니다’) 과제 수행에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지만 남성 아바타에 체화되어 있는 조건에서는 과제 수행력이 저하되지 않음이 관찰되었다. 즉, 가상의 성별 전환이 고정관념 완화(stereotype lift)를 야기시킨 것이다[8]. 이처럼 가상 현실에서 다른 성을 체화한다는 것은 현실 자아를 형성하는 모든 층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메타버스라는 키워드가 무수한 언론들에 언급되면서 ‘가상 공간’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하지만 메타버스의 대중화와 발전을 논하기 전에 메타버스상의 가상 캐릭터가 그 캐릭터에 체화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을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메타버스’라는 개념에 대한 정의는 아직 의견이 분분하지만 필자는 ‘메타버스’를 공간적 개념이 아닌 메타버스는 특정 시점(時點, time point)을 뜻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현실의 삶과 비교해서 가상으로 만들어진 삶이 동일하게, 혹은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그 순간, 그때부터 그 사람은 메타버스 안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나’의 이데아에 최대한 근접하게 만들 수 있는 가상 현실에서 사람들이 진정한 본인의 아이덴티티를 형성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가상의 나 또한 현실의 나와 같은 보호받을 권리가 있으며, 이는 현실의 나에게도 영향을 준다. 메타버스는 완전히 단절된 새로운 세계가 아닌, 현실과 끝없이 상호작용하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읽을거리

Hooi, R., & Cho, H. (2014). Avatar-driven self-disclosure: The virtual me is the actual me. Computers in Human Behavior, 39, 20-28.

왜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닮은, 혹은 나와 완전히 다른 아바타를 선택할까? 라는 의문에 대한 해답일 될 수 있는 논문.

Tacikowski, P., Fust, J., & Ehrsson, H. H. (2020). Fluidity of gender identity induced by illusory body-sex change. Scientific reports10(1), 1-14.

젠더 이분화와 젠더 고정관념, 그리고 젠더 정체성에 대한 화두를 심리 실험을 통해 보여준 연구 논문. 젠더란 무엇인가 에 대한 고찰을 할 수 있게 된다.

[1] https://www.youtube.com/watch?v=5v_Dl7i4Bcw

[2]  Hooi, R., & Cho, H. (2014). Avatar-driven self-disclosure: The virtual me is the actual me. Computers in Human Behavior39, 20-28.

[3]  Bredikhina, L., & Giard, A. (2022). Becoming a Virtual Cutie: Digital Cross-Dressing in Japan. Convergence, 13548565221074812.

[4]  Nichols, E. G. (2019). Playing with identity: gender, performance and feminine agency in cosplay. Continuum33(2), 270-282.

[5] https://www.asahi.com/ajw/articles/14513722

[6]  Rohde, M., Di Luca, M., & Ernst, M. O. (2011). The rubber hand illusion: feeling of ownership and proprioceptive drift do not go hand in hand. PloS one6(6), e21659.

[7]  Tacikowski, P., Fust, J., & Ehrsson, H. H. (2020). Fluidity of gender identity induced by illusory body-sex change. Scientific reports10(1), 1-14.

[8]  Peck, T. C., Doan, M., Bourne, K. A., & Good, J. J. (2018). The effect of gender body-swap illusions on working memory and stereotype threat. IEEE transactions on visualization and computer graphics, 24(4), 1604-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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