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과 교육불평등: 학교도 공부도 너무 버거운 너에게

Artificial Intelligence and the Inequality of Education: Dear you with a tough school life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석사과정

심지수

index@kaist.ac.kr

이 글을 “너에게” 보낸다 그래놓고 제목에다 “인공지능과 교육불평등” 같은 재미없는 말을 넣어 놓은 것에 용서를 구합니다. 그럴 만한 사정이 좀 있는데, 이게 주로 어른들 보는 잡지라서 이 글을 여기에 실으려면 일단은 이 사람들 보기 편한 대로 장식을 달아줘야 하기 때문이에요. 아무튼 이 글은 확실히 어른들 말고 너에게 보내는 게 맞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른들은 읽지 말라는 거냐 하면 또 그건 아닌데, 그 사람들도 다 어렸을 때가 있을 거기 때문입니다. 근데 막상 어른이 되면 자기가 한때 어렸다는 걸 자꾸 까먹더라구요. 게다가 가끔은 자기가 나이만 먹었지 어릴 때랑 별로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보내는 사람 칸을 이렇게 고치고 글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학교도 공부도 너무 버거웠던 그 시절의 너에게 [1]


안녕, 오늘도 학교 잘 다녀왔는지. 어쩌면 지금 학교에서 이 글을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학교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은 굉장히 길다. 초, 중, 고만 해도 12년이고, 고등학교 졸업자 중에서는 70%가량이 대학에 진학한다고 하니까[2]. 고등학교를 자퇴하거나 조기졸업하는 사람, 졸업 후 바로 취직하는 사람, 전문대 가는 사람 등등 여러 경우를 따져보면 그래도 넉넉잡아 15년 정도는 학교에 있게 되는데, 그러니까 우리는 그 15년 동안 어딘가에 책상을 놓고 앉아서 공부를 해야 하는군.

그래서, 오늘도 공부 잘 하고 왔는지. 너에게 띄우는 글은 이 지긋지긋한 공부에 관한 이야기, 그 중에서도 가장 뻔할 수 있는 “왜 공부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십몇 년을 공부하는 동안 누구나 한 번쯤 ‘이거 왜 해야 되지’ 하고 생각해본 적이 있을 거다. 나의 “왜 공부하는가”라는 물음도 너와 마찬가지로 중학교, 고등학교 때 처음 던져지기 시작했다. 이 글 역시 그때 시작된 뻔한 물음으로부터 시작된다. 뻔하게 느껴진다는 것, 그건 바꾸어 말하면 공부라는 것이 곧 너와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거쳐 가는 과정이며 한 번쯤 마주쳐보는 현실이라는 거겠지.

그러면, 오늘도 너는 왜 공부를 하는지. 알다시피 보통은 대학진학 (더 멀리 보면 취직) 때문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니 우리나라 학생의 84.1%가 대학에 가고 싶어하고, 학부모의 경우 91.6%가 자녀를 대학에 보내고 싶어한다고 한다[3]. 대학진학이라는 동기부여는 학생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일까? 아닌 경우도 많다. 어쩌면 ‘나는 좋은 대학에 가야 되니까 공부를 해야 돼’라는 다짐은 다른 곳에서 만들어져서 학생한테 이식된 것일 수 있다. 이 다른 곳이란 어디일까? 사실 학생 본인이나 부모님만큼 학생들의 대학진학에 목매는 곳이 있는데 다름아닌 학교다. 생각해보면 “나는 왜 대학에 가고 싶지? 너는 왜 대학에 갈라 그러냐?” 라는 질문은 스스로도 많이 던져보고 주변 사람들이랑도 많이 하는 얘기지만, “학교는 왜 우리를 공부시켜서 대학에 보내려고 하지?”라는 질문에는 주의를 기울일 일이 잘 없었을 거다. 왜 국가는 세금을 써가면서 어린 국민들을 ‘공부하는’ 곳에 십몇 년씩 넣어두는 걸까?

<그림 1> “우리의 창의와 협력을 바탕으로 나라가 발전하며,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 「국민교육헌장」 중

기본적으로 국가가 국민을 교육하는 목표는 ‘1인분 하는’ 사람을 만드는 거다. 성인이 되어 사회에 진출할 때 필요한 기본 지식을 갖추고, 직업 현장에 잘 적응하고, 경제활동을 통해 국가를 같이 돌리는 것. 여기서 한 사람에게 기대할 수 있는 역할을 1인분 하는 것이라고 쳐보자. 다만 어떤 능력을 갖춰야 1인분으로 인정하는지는 시대에 따라 변해왔는데, 예를 들어 산업화 시절에는 공장에서 일하는 데 부족하지 않은 사람을 학교에서 만들어주는 게 목표였다. 1인분 할 수 있는 사람을 많이 만들어내면 공장에는 계속 새로운 사람들이 채워지고, 물건이 잘 만들어지고, 돈이 많이 모이고, 국가가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교육의 목표를 ‘1인분 많이 키워 국가 발전시키기’로 생각하면, 나라에서 왜 국민을 교육시키는지는 설명할 수 있지만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교육을 받아서 뭐가 좋냐고 물었을 때는 만족스럽게 답을 내릴 수 없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발전이란 말을 굉장히 새롭게 해석한 사람이 나타났다. 1998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이라는 사람이다. 센의 발전 이론에서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를 스스로 정한다. 이때 자기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역량이라 하고, 이 역량이 늘어나는 걸 발전이라고 부르자는 것.[4] 따라서 어떤 나라가 발전했다는 건 단순히 가진 돈이 많아진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이 커진 것을 뜻한다. 교육은 특히 발전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는데,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를 찾고, 이루고, 촉진하는 활동을 도와줄 수 있기 때문이다[5]. 학교에서 다양한 과목을 배우고 여러 진로를 알아가면서 학생은 좋아하는 분야와 잘 맞는 과목을 알아낼 수 있고, 자기가 이루려는 꿈과 원하는 삶의 방식을 그려볼 수 있고, 더 깊은 공부를 통해서 그 꿈을 차츰차츰 실현해갈 수 있다. 이렇게 교육은 ‘국가가 필요하니까’에 더해 ‘너의 꿈을 이루는 것을 도와주니까’라고도 그 존재의 이유를 가질 수 있게 된다. 국민으로서의 의무만이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권리도 되는 것. 학교는 우리가 원하는 삶을 자유롭게 정하고, 그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하기 위하여 10여 년의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나에게, 그리고 너에게.

기회로 배우는 기회

지금까지 저는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주로 사회의 공헌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어려운 가계 사정 속에서 학창시절을 보내야 했고,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도 학업 제반의 비용을 혼자 해결한 경험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학교 교육을 통해 자신의 꿈을 펼치는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울 테지만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자리를 원하는 사람 수와 받아줄 자리 수가 다르다는 건 바꿀 수 없는 조건이니까. 그에 따라 뽑는 쪽에서는 가장 나은 사람을 뽑아가고 뽑히려는 쪽에서는 자신이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다른 사람과 경쟁한다. 일자리뿐 아니라 대학교나 일부 중학교/고등학교를 들어갈 때도 마찬가지다. 위에서 살펴본 센의 표현대로라면 부지런하게 자신을 발전시켜 더 큰 역량을 가진 순서대로 경쟁에서 승리할 거라고 이해해도 좋겠다. 학교에서는 보통 이 역량을 성적으로 증명하니까 성적이 높은 순서대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곳에 취직한다고 생각해보자. 그런데 실제로는 개인의 여러 가지 환경에 따라 성적을 어느 정도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지가 다 달라진다. 그건 경제적 상황일 수도 있고, 사는 지역이나 피부색, 성별, 구사하는 언어, 아니면 개인이 가진 질병이나 장애일 수도 있다. 교육은 공정한 결과를 보장해주는 것 같지만, 결국 이런 바꿀 수 없는 조건들이 우리가 결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모두 다르게 나눠준다. 너 역시 뒤쳐진 출발선에 서있었다. 나는 전력질주하는 너의 모습을 보고 있다. 

학업을 지속하면서 저는 꾸준히 배워 온 양적 연구방법을 활용하여 그동안 품고 있던 교육환경에 대한 의문을 해결해보자고 결심하였습니다. […]  연구주제는 제 정체성과도 직결되는 물음으로서, ‘어린 시절의 가정환경은 성장 이후 학업적 성취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 이를 극복하고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다면 얼마나 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버거운 오르막을 뜀박질하던 너의 심정은 어떠했는지. 오늘의 네가 참고서 위에 눈물과 코피를 떨어뜨리며 발버둥칠 때, 나는 더 나은 내일을 상상해보기 시작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 경쟁을 피할 수 없다고 할 때 학교교육이 꿈을 이루어주는 발판이 될 수 있으려면 적어도 학교 안에서의 기회는 공평하게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어떻게 하면 학교교육이 기회의 격차를 줄이고, 배움을 원하지만 어려운 여건 속에 있는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을까. 나는 너를 위하여, 네가 살아갈 세상을 위하여 무엇을 보탤 수 있을까. 

교육기회 격차를 줄일 대책으로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예전부터 시도되었던 하나의 방법은 학생들을 다양하게 섞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서로 다른 마을에 사는 흑인 학생과 백인 학생을 강제로 같은 학군에 배정해보기도 했었다[6]). 아니면 장학금이나 교육 쿠폰을 지급해서 교육비 부담을 줄여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원하는 인터넷강의를 들을 수 있는 지원금을 쿠폰으로 주는 거다). 혜택을 준다면 모든 학생에게 똑같이 줄 수도 있고, 부족한 학생을 찾아서 몰아줄 수도 있다. 이렇게 하면 도움이 될까? 저렇게 하면 오히려 부작용이 생기지 않을까? 코로나로 학교가 문을 닫아버린 상황에서는 무슨 수를 써야 되는 걸까?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던 수많은 방법들 중 어느 하나가 뜬금없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껏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분야, 과학기술이었다.

그러나 학습기회 확충에 대하여 고민하면 할수록 이것을 정책이나 거버넌스 차원에서만 다뤄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실제 교육현장에 적용되는 기술에 대한 이해 없이 정책을 시행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국제기구 및 정부 기관 차원에서는 평등한 교육기회 제공 및 교육 격차 감소를 위해 적용 가능한 기술정책을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나는 과학기술과 전혀 친한 사이가 아니다. 사람들은 내가 도전을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깊이도 모르고 물마다 뛰어드는 바보인 건 아니다. 무서웠다. 그러나 그동안 물 앞에서 주저할 때 늘 그랬던 것처럼 현실은 이번에도 내 등을 가차없이 떠밀었다.

  • 내가 과학기술을 공부할 수 있을까?
  • 다른 데 가면 등록금 어떻게 낼 건데? 너한테는 선택지가 없어.

국비 지원! 이건 부모님에게 드려야 할 아쉬운 소리와 식당 메뉴판 앞에서의 수백 번의 머뭇거림, 한없이 낮아지는 자존감, 이 모든 삶에 걸쳐 나를 옥죄고 괴롭혀왔던 압박들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다. 부끄럽지만 이것이 과학기술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가장 큰 이유임을, 너에게만은 솔직하게 털어놓겠다. 지원서에는 “KAIST STP는 최적의 선택지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말이 적혔다. 연구주제와의 적합성, 우수한 과학기술 연구환경 같은 멋진 근거를 들었지만 저 가장 크고 확실한 이유는 차마 쓸 수 없었다. 다만 기회가 부족했던 사람이 기회에 대하여 공부하는 거라 치면 되는 거지,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이곳에 떠밀려 왔으나 결국 내가 탈 파도 하나를 골라잡았다. 사람들은 이걸 운명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나는 지난 1년 반 동안 운명처럼 교육 문제에 과학기술을 덧바르기 시작했다. 과학기술정책을 배우는 한편, 학점교류를 통해 교육학 수업과 인공지능 수업을 수강하면서 교육, 기술, 정책이 교차하는 지점을 찾는 일에 힘을 쏟아보았다. 지금부터는 그 노력의 일환으로, 요즘 가장 사람들 입에 많이 오르내리는 인공지능 기술을 어떻게 교육불평등 해소 문제에 접목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서 그동안 고민했던 것들을 나누어보고 싶다.

인공지능과 나의 배움

에이아이, 빅데이터 이런 말들이 요즘 엄청 많이 쓰이는데 이게 정확히 뭘 말하는 거냐고 물어보면 대답하기가 좀 애매하다. 딱 정해 놓은 뜻이 없기 때문이다. 이게 어떤 분야에 어떻게 쓰였는지에 따라서 설명이 다 다르기도 하고[7], 가끔은 인공지능이나 머신러닝이나 빅데이터분석이나 다 똑같은 뜻으로 쓴다. 다른 단어로 바꿔도 다 말 되고 그렇다. 이렇게 중구난방이지만 ‘이 정도 특징은 있어야 인공지능이다’라는 조건은 있다. 인공지능이라는 단어가 처음 만들어진 게 60년쯤 전인데 그때는 “기계가 언어를 쓰고 형식을 정해서 원래 인간이 풀던 문제를 풀어주고, 스스로 발전할 수 있으면[8]” 인공지능이라고 봤다. 유네스코에서는 “지적인 행동을 해서 정보를 처리할 능력이 있는 기술이면[9]” 인공지능 기술이라고 정했다. 그니까 어떤 컴퓨터 프로그램이 나름대로 사람이 하는 방식을 따라하든가 아니면 사람보다 더 합리적인 방식으로 어떤 지적 판단이나 행동을 하게 되면 인공지능으로 칠 수 있는 것이다[10].

<그림 2> 2016년경부터 전 세계가 에이아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왼쪽 위부터 한국[11], 일본[12], 미국[13], 네덜란드[14] 신문에 게재된 연도별 인공지능 관련 기사 수.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인공지능이라는 말이 나온 지가 벌써 60년이 넘었지만, 이렇게 에이아이 얘기가 갑자기 많이 나온 건 2016년경부터니까 불과 6년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다 그 시점부터 에이아이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11] [12] [13] [14]. 사실 인공지능이 이때부터 핫해진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에이아이도 학습을 많이 시킬수록 성능이 좋을 테니 학습할 수 있는 데이터가 많을수록 역시 좋다. 2010년대에 들어서자 전 세계 데이터 저장량은 해마다 두 배씩 뛰고, 저장비용도 해마다 절반 이상으로 줄어들게 되었다[15]. 그리고 데이터를 처리해야 되는 컴퓨터 성능도 18개월마다 두 배씩 늘어난다는 게 발견됐다[16]. 근데 이것도 다 옛날 얘기고 요즘은 성능이 훨씬 빨리 좋아지는데, 2012년 컴퓨터 성능과 2018년 컴퓨터 성능은 약 30만 배 차이가 나고[17], 2014년에 하루 꼬박 걸려서 돌리던 머신러닝 프로그램을 2018년에는 2분만에 돌릴 수 있다고 한다[18]. 전에는 이렇게 컴퓨터 성능이나 데이터 양이 미친 듯이 증가한 적이 없었는데 몇 년 전부터 이게 다 맞아떨어진 것이다. 빠르고 정확하고 가격도 저렴하니 이젠 인공지능 안 쓰면 손해 보는 시대가 되었다. 이제 우리 곁에는 지치지 않고 빠르게 돌아가는 두뇌가 있다.

코로나19 상황 역시 정보 기술의 필요성을 보여주었다. 특히 교육 분야에서 보면, 현재 팬데믹 사태로 인한 봉쇄조치와 이에 따른 장기 휴교가 전 세계 학생들의 교육 기회를 극단적으로 제한시킨 상황이다. 휴교 조치로 인해 전 세계에서 발생한 학습 손실은 10조 달러 규모로 추산되고 있다[19]. 게다가 이러한 손실은 잠깐의 휘청임으로 끝나지 않는다. 성장기 학생들이 적절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흘려보낸 시간들은 인생 전반에 걸쳐 상당한 직간접적 피해로 이어질 것이다. 이것은 이 학생들을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국가의 입장에서도 만만치 않은 타격이 되고[20] [21] 그렇기 때문에 이 대규모의 교육 손실을 회복하는 일은 세계 각국의 시급한 숙제가 되었다. 이때 인공지능 기술은 교육발전의 측면에서도 여러 가지로 활용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인공지능 기술은 교육 현장에서 배움과 가르침, 교육정보관리의 질을 높이며, 정책 차원에서는 교육개발 프로젝트의 증거 기반 기획, 모니터링, 그리고 평가 효율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그 중에서도 특히 학업성취에 영향을 미치는 학생 개개인의 배경 차이를 줄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예를 들어 기초교육을 위한 모바일 컨텐츠는 특히 책이 많지 않은 지역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설계 및 활용이 가능하다고 평가되고 있다[22].

코로나19 사태에서 주목해야 할 또다른 지점은 세계 전체가 한 순간에 반강제적으로 정보 기술을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생각해보면 MOOC(대규모 공개 온라인 학습과정) 같은 웹 서비스 기반 대안교육은 그 전부터 이미 알려지고 있었지만 웹 기반 솔루션을 정식 교육에 도입할 날이 이렇게 갑자기 다가오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팬데믹 상황이 회복되고 있는 지금 단계에서도 많은 교육기관들은 이전의 완전 대면체제로 돌아가기보다는 온·오프라인 혼합 형태로 교육을 제공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세계의 교육은 더이상 팬데믹 이전의 체제로 완벽히 돌아갈 수 없어 보인다. 게다가 앞으로도 코로나19와 같은 대규모 위기가 다시 발생하지 말란 법이 없다. 따라서 교육 분야에도 정보통신기술을 도입함으로써 비상사태 속에서도 교육체계를 유지하고 위기관리 능력을 높일 수 있도록 대비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추세에 발맞추어 글로벌 의제를 주관하는 국제기구들도 인공지능 같은 신흥 정보기술들이 미치는 영향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현재 글로벌 목표로 시행 중인 유엔 지속가능개발목표 4번 (SDG 4: 양질의 교육) 및 2030 교육행동 프레임워크 (2030 Education Framework for Action)를 달성하기 위해 인공지능의 긍정적·부정적 영향력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었다. 정보통신기술을 교육 발전에 도입한다는 아이디어는 2015년 세계교육포럼에서 「인천 선언」이 채택되었을 때 선언문의 일부로 처음 제시되었고[23], 그 뒤 ‘교육개발을 위한 정보통신기술’만을 집중적으로 다룬 「칭다오 선언」이 따로 채택되면서 입지를 더욱 높였다[24]. 처음에는 정보통신기술이라는 큰 틀에서 논의가 다루어졌지만 시간이 지나자 인공지능에 특별히 초점을 맞춘 논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19년 유네스코에서는 인공지능과 교육에 대한 첫 번째 국제 합의인 「베이징 합의」가 채택되었다. 다양한 정보기술 중에서도 인공지능이 그 증가하는 영향력을 인정받아 교육개발 분야의 독립적인 의제로 발돋움한 것이다[25]. 합의문에서는 SDG 4번 달성을 위해 전 세계가 다음과 같은 분야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해보자고 제안하고 있다.

  • 교육정책에서의 인공지능 기획
  • 교육운영과 전달을 위한 인공지능
  • 교사와 교수법 강화를 위한 인공지능
  • 학습과 학습평가를 위한 인공지능
  • 인공지능 시대의 삶과 노동을 위한 가치 및 기술 개발
  • 모두에게 평생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인공지능
  • 교육분야에서의 공정하고 포용적인 인공지능 활용 촉진
  • 젠더평등한 인공지능, 젠더평등을 위한 인공지능
  • 윤리적이고 투명하며 감시 가능한 교육데이터 및 알고리즘 보장
  • 모니터링, 평가, 그리고 연구

그러면 이제 한 번 알아보자. 이 인공지능이라는 것이 어떻게 너의 교육에 영향을 미칠 것인지, 어떻게 우리에게 더욱 공평한 교육기회를 가져다줄 것인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위험에 우리를 빠뜨릴 수도 있는 것인지.

인공지능과 너의 배움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공부를 하는 과정은 혼자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교실 안에서 선생님과 학생이 모두 헤쳐나가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어려움은 그 교실에 여러 학생이 있다는 것, 그리고 가르치는 내용을 알아들을 수 있는 역량의 수준이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수십 명의 학생 앞에서 선생님은 어느 수준에 맞춰서 진도를 나가야 할지 선택해야 하는데,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이미 내용을 알고 있어서 지루해하는 학생과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은 반드시 생긴다. 평균이 항상 정답인 것도 아니다. 우수학생 15명, 보통학생 5명, 미흡학생 15명이 있는 반에서 보통 수준으로 수업을 한다면 그걸 최선의 선택이라 할 수 있을까? 이미 내용을 알고 있는 학생 15명은 시간 낭비를 하고, 이전 내용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15명은 외계어 같은 수업을 들으면서 다른 의미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게 된다. 이 상황에 대해 생각해보는 게 중요한 이유는 같은 교실에 있는 35명의 친구들이 우수, 보통, 미흡학생으로 나뉘는 데 여러 불공평한 원인들이 작용하고, 자칫하면 학교가 이 원인들의 영향력을 줄여주기는커녕 오히려 확대 재생산하는 공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림 3> 2021학년도 수능 수학영역 (나형) 성적별 분포[26]. 중위권이 제일 적다.

너가, 내가, 그리고 옆의 친구가 수업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무엇 때문일까? 당연히 머리가 나빠서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보통 머리가 나쁘다고 말할 때 전방위적인 지적 결함을 얘기하는 경우는 잘 없다. 그보다는 특정 과목이 잘 안 맞는다든지 (“나는 영어단어 외우는 건 괜찮은데 수학은 진짜 뭔 소린지 하나도 이해가 안 돼”), 많이 안 해봐서 익숙하지 않다든지, 흥미를 못 느껴서 시도해본 적이 없다든지 하는 것들이 학습부진의 주된 이유가 된다. 같은 맥락에서 어떤 사람에게는 과목 상관 없이 학교 공부 자체가 안 맞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 결과가 본인의 의지와 선택에서 나온 것이냐 아니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냐다. 영어 시험에서 30점을 받은 두 학생이 있다고 하자. A학생은 주변에 영어학습지도 없고, 원어민교사도 없고, 영어를 제대로 배워볼 기회도 없어서 최근 몇 년 동안 이렇다할 영어공부를 해본 적이 없었다. B학생은 영어를 배울 기회가 충분히 있었음에도 평소에 관심이 있는 힙합 지식을 쌓는 데 시간을 들이느라 영어 성적이 낮게 나왔다. 이때 같은 30점을 받았더라도 본인 의사로 머리 나쁨을 선택한 것과 머리 나쁨 ‘당한’ 것은 아예 다른 것으로 봐야 한다. 게다가 현실은 좀 더 복잡한 경우가 많다. B학생의 주변에 영어 학습 콘텐츠는 많이 있었지만 알고보니 가정에 불화가 있었고 힘든 삶을 위로해주던 유일한 존재가 힙합 음악이었다면 어떨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영어 공부량을 선택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선택의 뒤켠에는 제한된 기회의 울타리가 둘러싸여 있는 것이다. 이런 복잡한 사연을 가진 학생들이 한 교실에 열몇 명이 있다. 하지만 반대편에는 부모님의 지원을 받아 어렸을 때부터 영어학원도 다니고 원서도 몇 권 읽어본 학생들이 또 열몇 명 있다. 교실에서는 어쩔 수 없이 평균 수준으로 수업이 진행된다. A학생이 어느 날 외교관을 동경하게 되거나 B학생이 기깔나는 벌스를 쓰기 위해 영어공부가 해보고 싶어지더라도 그 ‘평균’을 뒤늦게 따라잡기란 너무나도 힘든 일이 되어버리고 만다 (“얘들아 이거 다 아는 내용이지? 그냥 넘어간다?”). 시간이 갈수록 수업내용은 더 어려워지고, 격차는 더욱 커진다. 이건 학생이 게으른 잘못도 교사가 무능한 탓도 아니다. 구조적인 문제다. 선생님 한 명이 학생 서른 명을 일일이 케어해주는 데는 당연히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학교 교육이 우수학생의 발전을 막고 미흡학생에게 따라잡을 기회를 주지 못하는 현실에 마냥 손을 놓고 있게 할 수만은 없다.

이때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하면 어느 정도는 학생들을 하나하나 케어해줄 수 있게 된다! 학생이 어떤 유형의 공부를 잘 하고 어떤 유형에 약한지, 어떤 방식으로 공부 방향을 잡아야 하는지, 어떤 과목을 선호하는지 등을 파악할 때 컴퓨터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이를 컴퓨터 보조 학습 (CAL: Computer Assisted Learning)이라 부른다[27]. 이건 교실을 아예 없애고 컴퓨터로만 공부를 시키는 게 아니라 기존 학습 과정에서 발견된 부족한 점을 컴퓨터가 보완해주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일선 학교에서는 보통 주요 과목에 한해 상반, 중반, 하반의 3~4단계로 수준별 학습을 진행하고 있지만 각 반 안에서도 학생들의 이해도 차이가 있기 때문에 완벽한 해법은 될 수 없다. 이때 인공지능은 학생마다 서로 다른 학습경로를 제시해주며 개별학습을 가능하게 하고 배움의 기회를 넓혀줄 수 있다[28].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통해 학생이 어느 개념이나 유형을 어려워하는지 구별할 수 있고, 취약한 유형의 문제들을 더 많이 풀게 할 수도 있다. 교사 입장에서도 학생들의 학습데이터를 인공지능이 분석해주면 학생별로 수업 내용을 모두가 얼마나 이해했는지 일일이 직접 확인하는 수고를 줄일 수 있다. 35인 학급에 AI기반 개인화 학습을 도입한다면 학습경로를 35가지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학생 한 명 한 명의 수업 이해도를 관리할 수 있는 기술은 배움의 기회를 넓히고 격차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지금까지 학교교육이 학생의 수준을 맞춰주지 못할 때는 개별적으로 사교육 서비스를 이용해야 했다. 학교수업 내용이 따라가기에 딱 알맞은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심화학습이나 보충학습을 위해 학원, 과외, 인터넷 강의 등을 따로 알아보는 방향으로 교육 구조는 만들어져 왔다. 나에게 맞는 수업 진도를 학교가 아니라 다른 데서 더 잘 제공해줄 수 있다면 학교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된다. 게다가 사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경제적 여유나 주변 환경 같은 여러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하고, 이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학생의 교육 격차는 갈수록 벌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학교교육이 우수학생의 우수성을 유지하면서 미흡학생의 학업수준을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데,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인공지능 기술이 여기서 잠재력을 가졌다고 기대되고 있는 것이다. 이 기술은 우리나라처럼 교육 환경이 상대적으로 잘 꾸려져 있는 나라뿐 아니라 아직 발전 단계에 있는 나라에서도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소외 계층, 장애인, 난민, 학교 밖 청소년, 그리고 고립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적절한 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다[29]. 코로나19처럼 갑자기 발생하는 대규모 위기 상황 속에서 정상적인 학교교육을 제공할 수 없을 때도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교육 시스템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문제들을 극복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인공지능 기술은 학습하는 데이터가 많을수록 성능이 높아지는 구조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정보를 최대한 많이 수집해야 하는데,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이 많다. 첫째로, 이 정보들은 모두 개인정보이기 때문에 프라이버시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만약 이 거대한 데이터들이 해킹당한다면 학생 개인뿐 아니라 국가에도 막대한 손해를 발생시킬 것이다. 그렇다고 국가 차원에서만 이 데이터를 꽁꽁 싸매고 외부 유출을 전면 차단한다면 교육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한한다는 문제가 있다. 둘째로, 인공지능의 판단을 교육 차원에서 전적으로 믿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인공지능은 데이터와 알고리즘에 맞게 결과를 보여주지만 무슨 판단으로 그 결과가 나왔는지 확실히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특히 인공지능이 데이터를 학습한 환경과 그 데이터를 적용하는 환경의 차이를 반영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한국 학생들의 데이터로 만든 인공지능을 개발도상국에 적용했을 때 한국에서와 100% 똑같은 교육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데이터에 따라서는 교육과 관련 없는 특성을 바탕으로 편향된 결과를 제시할 가능성도 있다. 공부 못하는 지역/국가 출신이니까, 남자니까/여자니까, 흑인/백인/아시아인이니까 학업 수준이 이 정도 되겠지 하고 알고리즘이 판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잘못된 판단으로 학생이 잘못된 학습을 하게 되었다면 그 보상은 누가 해줘야 할까? 책임이 교사에게 있는지, 인공지능을 만든 회사에 있는지, 아니면 학생 본인에게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워진다[30].

인공지능을 비롯한 정보통신기술이 우리네 교육체계에 허겁지겁 도입된다고 해서, 갑자기 모든 학생이 조건과 배경에서 벗어나 평등한 교육기회를 갖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기술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만능열쇠가 아니다. 오히려 기회 불평등이 존재하는 각 학교의 상황, 지역의 상황, 국가의 상황이 고려되지 않은 채 무턱대고 최신 기술을 때려 박아버리는 방식은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실제 사례를 통해서 확인된 바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이니 시간이 있으면 아래 ‘두 번째 읽을거리’를 읽어 보길 추천한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정보기술이 좋은 면에서든 나쁜 면에서든 우리의 배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은 불리한 조건으로 인해 공정한 교육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잠재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교육을 위협할 수 있다는 점도 많이 지적받고 있다[31]. 그래서 우리는 기술을 계속 지켜보아야 한다. 기술의 위험을 가능한 한 줄이고 소외받는 사람들의 교육을 위해 필요한 곳에 알맞게 적용할 수 있다면, 전 세계의 모든 아이들과 청소년들이 공정한 교육기회를 갖기 위하여 이 기술이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우리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꿈을 이루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며, 세상을 더 밝게 바꿔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이자 나의 이유에게

저는 ‘불리한 환경 속에서 학업을 시작했더라도 적절한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의지가 있는 누구든지 노력에 합당한 성취를 이룰 수 있다’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세계의 교육기회 확충에 헌신하는 것을 장기적 목표이자 방향성으로 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삶을 스스로 그 선례가 되기 위한 도전이라 정의하였고, 이를 원동력으로 하여 지금까지의 학업적 성취를 이루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제부터는 시야를 글로벌 수준으로 넓혀 소중한 사례들을 더욱 많이 발굴해보려는 것입니다.

나는 다시 시선을 너에게 돌려본다. 너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너의 모습에 나의 모습을 겹친다. 너는 사교육 참여율이 70%나 되는 세계 최고 교육열의 나라에서[32] 학원도 과외도 인강도 없이 학교교육과 눈물과 몸부림만으로 나를 만들어냈다. 이제 너는 다양한 모습이 되어,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 힘겨운 하루하루를 살아내면서, 이루고 싶은 꿈을 가졌지만 남들보다 멀리 떨어진 출발선에서부터 벅찬 경주로를 뛰어가고 있겠지. 너의 교육 속에 인공지능이 있더라면, 체계적인 교육정보관리와 맞춤형 학습, 원격 지도가 있더라면 너는 그토록 버거운 학창시절을 보내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그건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기술의 잠재력을 기대하기 이전에 너의 잠재력을 믿는다. 우리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남들보다 어려운 길을 가게 되었지만 그래도 버텨내 보자. 나이자 나의 이유야, 너는 지금도 나를 있게 하고, 살게 하고, 공부하게 한다. 나의 분투가 충분한 배움의 기회를 받고 꿈을 이루는 너를 한 명이라도 더 만들어낼 수 있다면, 나는 이 힘겨운 나날을 충분히 값진 시간으로 기억할 생각이다. 그렇기에 10여 년 동안 학교를 다니고 공부를 하는, 남들에게는 지극히 평범한 기억이 되겠지만 우리에게는 무척 힘이 부쳤던 시간으로 기록될 이 나날들의 조각을 나는 단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너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겠다. 너를 만나면 밥을 한 끼 사겠다. 네가 잘 하고 있음을 알려주겠다. 그리고 몇 번이고 따뜻하게 물어보겠다. 안녕, 오늘도 학교 잘 다녀왔는지, 오늘도 공부 잘 하고 왔는지, 오늘도 왜 너는 공부를 하는지.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들은

하나, 둘, 죄다 돈을 벌러 가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나,

나는 너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33].

2022년 7월 25일

조금 더 산 너

읽을거리

“교육 양극화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요”, 씨리얼 (2021).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된 학생이 교육 양극화에 관해 나눈 인터뷰 영상입니다. 저소득 학생은 언제나 어디서나 여러분 곁에 있습니다. 그리고 경제적 환경뿐 아니라 성별, 인종, 종교 등 바꿀 수 없는 배경 때문에 교육 기회를 얻지 못하는 학생도 세계적으로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이 친구들도 공정한 교육 기회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영상뿐 아니라 영상 아래 댓글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디지털 보급하면 사회가 발전?… OLPC의 순진한 꿈이었다”, 한국일보 (2015년 4월 12일).

선한 의도로 디지털 기술을 개발도상국에 가져왔지만 현장의 상황과 맥락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기술을 주입시켰을 때 역효과가 일어난 사례입니다. 구글에 ‘olpc 실패’라고 검색하면 빠르게 찾을 수 있습니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504121746679299

[1] L’hommage à Saint-Exupéry (1943), Le Petit Prince.

[2] 통계청 (2017.6), “취학률 및 진학률”, 『한국교육개발원 교육통계분석자료집』.

[3] 통계청 (2020), 「기대하는 교육수준 및 이유」, 『2020년 사회조사』. 참고로 대학 이상 교육 받기를 바라는 이유로는 학생과 부모 모두 ‘좋은 직업을 갖기 위해서’라는 응답이 가장 높았다 (각각 54.7%, 44.1%).

[4] Sen, A. (1999), Development as Freedom, New York: Alfred A. Knopf.

[5] Walker, M. (2005), “Amartya Sen’s capability approach and education”, Educational Action Research, Vol. 13, No. 1, pp. 103-110.

[6] Coleman, J., United States Office of Education, and National Center for Education Statistics. (1966), Equality of Educational Opportunity. DC: U. S. Dept. of Health, Education, and Welfare – Office of Education.

[7] UNESCO (2021), Recommendation on the ethics of artificial intelligence.

[8] McCarthy, J., Minsky, M. L., Rochester, N. and Shannon, C. E. (2006), “A proposal for the Dartmouth summer research project on artificial intelligence: August 31, 1955”, Al Magazine, Vol. 27, No. 4, pp. 12-14.

[9] UNESCO (2021), Op. Cit.

[10] Russell, S. J. and Norvig, P. (2020), Artificial Intelligence: A Modern Approach (4th Edition), Pearson.

[11] Chuan, C.-H., Tsai, W.-H. S., and Cho, S. Y. (2019), “Framing Artificial Intelligence in American Newspapers. In Proceedings of the 2019 AAAI/ACM Conference on AI, Ethics, and Society (AIES ’19)”, NY: Association for Computing Machinery, pp. 339–344.

[12] Vergeer, M. (2020), “Artificial Intelligence in the Dutch Press: An Analysis of Topics and Trends”, Communication Studies, Vol. 71, No. 3, pp. 373-392.

[13] Kawashima, S. (河島茂生) (2020), 「新聞記事に見る人工知能やロボットの言説の変化 (Discourse on Artificial Intelligence and Robot in Newspaper Articles)」, 『人工知能 (Journal of the Japanese Society for Artificial Intelligence)』, 32 巻, 6 号, pp. 935-942.

[14] Kim, S.-A. (2020), “Exploring the Trends and Challenges of Artificial Intelligence Education through the Analysis of Newspapers in Korea, 1991-2020: A topic-modeling approach”, Journal of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Convergence Engineering, Vol. 18, No. 4, pp. 216–221.

[15] Laudon, K. C. and Laudon, J. P. (2016), Management Information Systems: Managing the Digital Firm (14th Edition), Pearson.

[16] Heeks, R. (2017), Information and communication technology for development (ICT4D), Routledge.

[17] Amodei, D. and Hernandez, D. (2018). “AI and compute”, OpenAI blog, blog.openai.com/aiand-compute/

[18] Ying, C., Kumar, S., Chen, D., Wang, T., and Cheng, Y. (2018), “Image classification at supercomputer scale”, arXiv:1811.06992.

[19] Azevedo, J. P., Hasan, A.,; Goldemberg, D., Iqbal, S. A., and Geven, K. (2020), “Simulating the Potential Impacts of COVID-19 School Closures on Schooling and Learning Outcomes : A Set of Global Estimates”, Policy Research Working Paper, No. 9284, DC: World Bank.

[20] Psacharopoulos, G., Collis, V., Patrinos, H. A., and Vegas, E. (2020), “Lost wages: The COVID-19 cost of school closures”, Available at SSRN 3682160.

[21] Hanushek, E. and Woessmann, L. (2020), “The economic impacts of learning losses”, OECD Education Working Papers, No. 225, Paris: OECD Publishing.

[22] UNESCO (2013), UNESCO policy guidelines for mobile learning, Paris: UNESCO, p.10.

[23] UNESCO (2015), Education 2030: Incheon Declaration and Framework for Action Towards inclusive and equitable quality education and lifelong learning for all.

[24] UNESCO (2015), Qingdao Declaration.

[25] UNESCO (2019), Beijing Consensus on Artificial Intelligence and Education.

[26] 그림출처 https://blog.naver.com/3san3/222291246364

[27] Schittek Janda, M., Mattheos, N., Lyon, H. C., and Attström, R. (2001), “Computer assisted learning: A Review”, European journal of dental education: Official Journal of the Association for Dental Education in Europe, pp. 93-100.

[28] UNESCO (2019), “Artificial Intelligence in Education: Challenges and Opportunities for Sustainable Development”, Working Papers on Educational Policy, Vol. 7, Paris: UNESCO.

[29] Ibid.

[30] Ibid.

[31] Ibid.

[32] 통계청, 교육부 (2007-2012). 「지역별 사교육 참여율」, 『초중고사교육비조사』.

[33] L’hommage à 윤동주 (1942). 「쉽게 씌어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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