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 데이팅 앱, 그 이후의 삶

성소수자에게 데이팅 앱은 조금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성 소수자의 정체성은 그러한 섹슈얼리티가 형성되기 위하여 특정 공간에 의존한다는 측면에서 본질적으로 공간적이라 할 수 있는데, 인터넷을 통해 매개되는 데이팅 앱과 같은 가상 공간은 이성애규범적 사회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 성소수자들에게 하나의 ‘안전망’으로 기능하며, 그들이 조금 더 안전한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따라서 성소수자와 데이팅 앱의 관계는 단순히 수요와 공급, 서비스와 사용자와 같이 단편적으로 독해될 수 없다. 나는 아래의 글에서 데이팅 앱을 접한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사용 경험을 순차적으로 기술하며, 데이팅 앱이 게이로서의 삶의 맥락 속에서 어떻게 위치하며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이나 동시에 그렇지 않기도 하다.

스크린 위의 벗은 여자

‘우리나라 인터넷은 OO양이 발전시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포르노그래피 업계에 종사하는 여성 혹은 성행위 영상이 유출된 여성으로 인해 인터넷 대중화가 빠르게 이뤄졌다는 뜻이다. 과학사학자 쿠퍼스미스(Coopersmith)는 "포르노그래피의 생성, 전송 및 확산은 통신기술의 발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포르노그래피는 기술로서 정의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인터넷 대중화의 태동기였던 1990년대 한국 사회에서 포르노그래피는 어떤 모습으로 정의되었는가?

누구를 위하여 벨은 울리나

청각 산업은 농아를 배제했다. 무선통신과 디스크 축음기가 등장한 지 몇 년이 되지 않아, 음반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뉴욕에선 1910년 이미 공영 오페라 중계가 진행되었다. 청각 산업이 농아 공동체를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수백만이 방송 오케스트라와 야구장의 홈런을 듣기 위해 거실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청각 기술의 침공을 고고하게 버티던 활동사진, 즉 영화조차 1920년대가 지나기 전에 소비자의 요구에 굴복했고, 이 모든 변화에서 농아는 배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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