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슨 실린더와 벨러 버르토크의 과학적 민속음악

과학적인 태도란 무엇이었을까? ‘자연 그대로의’ 민요와의 급작스러운 첫 만남 이후 버르토크의 손에는 항상 에디슨 실린더가 들려 있었다. 실린더를 통해 그는 현재 보존된 것만 약 13,000종에 이르는 민요를 녹음했다. 녹음한 민요는 버르토크의 손을 거쳐 악보로 옮겨졌고, 이후 분석·분류를 거쳐 출판되었다. 이는 새롭게 등장한 음향학, 과학적 분류법, 그리고 에디슨 실린더가 등장하기 전에는 실현하기 힘든 기획이었다...나팔과 태엽, 바늘, 왁스에 의존하는 이 작은 기계는 버르토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일까?

곰과기린의 영화뒤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맞아요, 이런 현상은 아마 코믹스라는 제한적인 매체에서 스크린이라는 훨씬 더 범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매체로 옮겨왔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겠죠. 스파이더맨의 벤 삼촌이 했던 대사가 생각나네요. “With great power comes great responsibility.”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MCU의 엄청난 대중성은 분명 어떤 식으로든 우리 시대에 영향을 미치겠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과학관은 살아있다 : 오사카 시립 과학관 관찰기

오사카의 과학관은 확실히 살아있었다. 놀이공원에서 지르는 함성과 같은 짜릿한 생동감은 아니었으나, 전시와 관람객 그리고 자원봉사자가 함께 만들어가는 과학관에서는 생태(生態)의 느낌이 났다. 사람이 과학관의 커다란 구성요소로 편입되어가는 과정을 관찰하면서 우리의 과학관도 그렇게 되기를 희망했다. 결국 이 작고 낡은 과학관이 빛날 수 있었던 건 ‘사람’ 때문이었으리라.

격리된 상상력: SCP 재단과 대중의 상상력에 대하여

SCP 재단은 상상력이 “과학적 프로세스와 격리”라는 테마와 공동 창작 절차를 통해 발현되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이러한 SCP 재단의 개성은 과학 이론에 기반을 둔 세계관을 확장하는 SF의 모습이 아닌, 문화 속에 분포된 상상들을 “확보”하고, “격리”하고, “관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즉, SCP 재단은 주제나 소재의 과학적 가능성으로 정의되는 SF가 아닌, 이질적일 수 있는 소재들을 ‘활동으로서의 과학’의 색채를 부여하는 틀에 담는 집단 창작물이다. 어찌 보면 유사 공상과학으로 분류할 수 있는 SCP 재단은 ‘설명하는 과학’이 아닌, ‘수집하는 과학’을 닮았다고 볼 수 있다.

Sound Remade

The interweaving of ‘culture’ and science is thus virtually everywhere, and how to find new possibilities to broaden the scope of both depend on the will and interest of musicians and scientists. Although scientists and artists might differ in their responsibilities and capacities – for example, musicians are more prone to ‘expression’ while scientists are ‘analytic’ although this is still refutable – both are quite indebted to one another in finding new horizon in their own fields.

연구실 뒤켠의 과학기술인: 과학적 합리성과 민주주의에 대한 단상

음악을 하는 사람이 음악으로, 글 쓰는 사람이 글로, 법을 공부하는 사람이 법으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고는 하는데, 과학기술인이 세부 전공 영역의 업적을 통해 사회 문제에 대한 생각을 전하는 방법은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과학과 공학 지식체계 고유의 속성 탓으로 돌리기에는 과학기술을 둘러싼 국가 정책과 제도들이—특히, 인건비를 포함한 연구 예산의 상당 부분을 국가로부터 충당한다는 현실—영향을 주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과학기술인을 연구실이라는 공간에 종속된 정체성으로 생각해왔다면, 목소리를 듣는 입장의 누군가에게 있어 ‘연구실 뒤켠의 연구자’는 마치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문학에서나 허용되는, 그 자체로 형용 모순적인 존재였던 것은 아닐까. 연구소와 연구실, 랩코트와 논문이 과학기술인의 전부가 아니라면 이들은 연구실 밖에서도 오롯이 과학기술인으로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Deus Ex Cultura

“이 문제들은 다 문화 때문”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회의장이나 토론장에서 목에 핏대를 세우며 토론을 벌이고 있던 사람들은 놀랍게도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한다. 모두가 동의하고 동의할 수 밖에 없어 보이는 말. “이것은 모두 문화 때문이며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은 무슨 의미를 가질까?

‘과학문화’를 찾아서: Mapping Science Culture

우리들은 대부분 한 때 ‘호기심 천국’을 보고, 과학관에 가서 감탄사를 연발하는 어린아이였다. 더 커서는 학교에서 과학을 배우고, 간단한 실험을 해 보기도 하고, 영화관에 가서 ‘인터스텔라’를 보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워지는 스마트폰을 구매하는 고객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 중 무엇을 “과학문화”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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