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동물 위령제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실험실과 가까운 사람이었다. 특별히 우리 연구실은 뇌를 연구하기 때문에, 희생된 쥐의 뇌를 바로 추출하여 샘플로 사용한다. 쥐를 케이지에서 꺼내고 내 손에 뇌가 들려 있었을 때까지 들었던 오묘한 기분은 글로 옮기기 힘들다. 그래봤자 작은 실험용 쥐이고, 연구에 필요하다는 당위성까지 있었지만, 무언가 죽인다는 불쾌함과 망설임, 죄책감 등이 뒤섞여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가 죽여온 많은 생명들은 단단한 외피가 있거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동물의 형태를 가지지 않았다. 털과 척추와 눈이 있는 무언가를 죽인다는 것, 그 숨이 끊어지는 찰나를 내 손 위에서 본다는 것은 머리로나 마음으로나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모델(Model)과의 대화

모델을 ‘현상의 이상적 대변자’보다는 ‘현상에 대한 대화의 매개체’로 이해할 때, 우리는 모델과의 대화에 한 걸음 나설 수 있다. 모델이 과연 현실을 얼마만큼 대변하는가? 이런 면에서 모델이란 대화의 매개체로 가변성과 유동성을 지닐 때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이상적인 또는 절대적인 대변자로서 모델을 다루기 보다는, 계속해서 논의하고 해체해야 할 대상으로 모델을 여기게 된다면 좀 더 풍부한 논의가 가능해 질 것이다. 성급하게 모델을 개발하고 현장에 투입하기 전에, 모델과 다양한 대화를 시도하는 작업들이 선행 되었으면 한다. 이는 기존에 정립된 모델의 실체를 더욱 분명히 하게 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논의들을 펼쳐나갈 밑바탕이 될 것이다.

누구를 위하여 벨은 울리나

청각 산업은 농아를 배제했다. 무선통신과 디스크 축음기가 등장한 지 몇 년이 되지 않아, 음반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뉴욕에선 1910년 이미 공영 오페라 중계가 진행되었다. 청각 산업이 농아 공동체를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수백만이 방송 오케스트라와 야구장의 홈런을 듣기 위해 거실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청각 기술의 침공을 고고하게 버티던 활동사진, 즉 영화조차 1920년대가 지나기 전에 소비자의 요구에 굴복했고, 이 모든 변화에서 농아는 배제되었다. 

막스플랑크 연구소 이야기

아인슈타인과 막스플랑크가 물리를 하던 이곳에서 나도 물리를 한다는 것은 정말 행복했다. 그리고 이들이 연구하고, 가정을 돌보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행복한 연구원들이 많으면, 더 많은 학생들이 연구원이 되길 꿈꿀 것이다. 

WordPress.com 제공.

위로 ↑